30. 한 순간 은별과 한결 사이에는 거대한 침묵의 벽이 생겼다.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머리 속이 새하얀 벽지가 되는 듯한 기분이다. 적막 속에서 은별이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흑.. 울면 안 되는데.. 울면 안 되는데.. 우리 은결이 웃으면서 보내줘야 하는데.. 그래야 가짜 엄마 역할 완벽하게 하는 건데... 흐읍... 엄마 역할.. 완벽하게 하는 건데...." 어머니의 깊고 깊은 모성애라는 게 이런 것일까? 내 배아파 낳은 자식이 아니지만 피 한방울 안 섞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찢겨나가는 듯 고통스럽고 아픈 은별이다. 한결, 그리고 은결과 함께 있었던 시간이 은별에겐 너무나 짧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은별은 한결의 와이셔츠를 꼭 잡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은결이한테 해 주고 싶은 게 너무 많았는데, 우리 은결이 유치원 방문도 해야 하고, 우리 은결이 재롱도 많이 봐야하고, 우리 은결이 가고 싶어 하는 동물원도 데려가고, 우리 은결이를 위해 파티도 해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빨리 진짜 부모님을 찾을 것 같았음 우리 은결이한테 조금 더 잘해줬어야 하는데.. 흐윽...." "......" 한결은 말없이 앉아서 은별의 눈물을 닦아주는 묵묵히 닦아주었다. 은별은 한결과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힘없이 웃으며 말한다. "이제, 너하고도 안녕이네. 초특급 왕자병하고 헤어져서 속이 시원해야 하는데, 그 동안 정들었나 보다.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플까.. 헤헤.. 어차피.. 은결이 없으면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닌데..." ".........." [욱신-] 그녀의 오열에도 아무런 대답도 없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한결의 고요하게 일렁이는 눈과 표정 없는 그의 얼굴에서 이유도 없이 가슴이 욱신거리며 아픈 은별이다. 한결은 이 헤어짐이 슬프지 않은 것일까? 처음부터 은별과 은결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던 한결이다. 어쩌면 그는 후련하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은별의 여린 가슴 한편이 따갑게 아려온다. 가슴이 무너지려하는 것을 참으며 자신의 옷을 꼭 부여잡고 은별은 힘겹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동안, 아빠 역할 하느라 수고했어. 너 의외로 가정적이더라.. 헤.. 진짜, 너 결혼하면 부인한테 잘 해줄 것 같아. 우리 오늘은 은결이랑 같이 잘까? ...... .......... ...마지막이니까.." "........" [욱신-] 여전히 아무런 말없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한결의 눈빛은 고요하기만 하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또 한 번 여린 가슴에 상처를 받는 은별이다. 은별은 소파 위에서 세상 물정 모르고 곤히 자고 있는... 내일이면 자신의 곁에 없을 은결의 모습에 가슴이 너무 아파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갑자기 그런 은별의 눈물을 닦아주며 한결이 말을 꺼냈다. "씨발, 누가 맘대로 마지막이래..?" "..뭐...?" "저번에 내가 맹세한 것 장난으로 흘려듣고 잊었냐..?" "..........ㆀ" ‘귀신같은 녀석. 잊고 있었는데.’ 한결의 말에 천천히 기억을 되돌려 회상하는 은별이다. 그 때, 내 앞에 있는 이 아이가 무엇이라 말했더라. -그 녀석은 잊어. 내가 항상 곁에서 널 지켜줄게. 다시는 너의 눈에서 눈물이 나오지 않게 맹세할게.- 그 말이 끝나고 기습적으로 이어졌던 내 첫 키스... 첫 키스.......!!!! 저번의 한결이 했던 부드러운 키스가 생각난 듯 은별의 하얗게 질린 얼굴이 붉게 물들여졌다. "기억나..." [chu-] 기사처럼 한 쪽 무릎을 꿇고, 은별의 한 손을 들어 손등에 키스하는 한결이다. 갑작스럽게 이게 무슨 짓이지? 당황한 은별은 눈이 동그래지면서 한결의 행동에 한없이 붉어지는 얼굴을 들지도 못했다. 한결은 그런 그녀의 머리를 한 번 손으로 헝클이고는 그에게서는 절대 들을 수 없을 듯한 따뜻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내 이름에 걸고 맹세한다. 사랑한다. 채은별. 한결같이 널 사랑할 테니까. 진짜 내 마누라해라." [두근두근-] 적막 속에서 한결의 고백에 거칠게 뛰는 은별의 심장. 예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부정하려고 했지만.......... 역시 심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심장의 고동을 느끼며 뭔가 다짐한 듯 하얗게 질린 얼굴에 미소를 띠며 한결에게 대답한다. "내 심장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거겠지...? 항상 곁에 있어줘야 해.. 한결아.." "날 못 믿냐?!! 뭣하면 지장도 찍을까?" "왜 좋은 분위기 깨고 그래..!!!!!" "픽- 언제는 분위기 탔냐? 이 몸하고 사귀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해라." "뭐.. 뭐!!!! 야!!!! 너!!!!!!!!!!!!!" "씹.. 너 뭐?! 안 자냐? 은결이 데리고 방으로 들어와///" 도망치듯 얼굴을 붉히며 방으로 들어가는 한결이다. 안 어울리게 부끄러워하는 건가? 그의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행동에 웃음이 나오는 은별이다. 거실에 남겨진 은별이 피식 웃으며 조그맣게 속삭인다. "픽.. 아무튼 입하고 머리하고 따로 논다니까. 자폭증에 왕자병 걸린 성격파탄자 현한결- ................. .............................. 그래도 고마워. 흔들리는 내 마음을 잡아줘서." 31. [다음날] 따스한 햇볕이 조그마한 창문을 타고 들어온다. 아침이 왔다. 여느 때보다도 화창하면서도 슬프고 우울한 빛이었다. 그리고 서서히 이별이 시간이 다가왔다. [푹-] 여느 때처럼, 은결이 한결의 품안으로 파고든다. "아빠, 일어나요!!!!" 한결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해맑게 웃으며 달려드는 은결을 꼭 껴안고는 벌써 일어나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표정이 굳은 채 서 있는 은별을 바라본다. "아빠!! 엄마가 은결이한테 선물 준 댔어요!!!" "그래.......... 우리 은결이 착해서 엄마가 선물 주는 거야." "와!!! 아빠 웃으니까 멋져요!!!!!" 은결의 말에 더욱 더 활짝 웃어 보이는 한결이다. 하지만 그의 호수처럼 깊고 맑은 눈에는 이미 은별처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결아, 준비하고 나와.. 은결이도 아빠랑 같이 나오고.." 눈시울을 붉히며 방밖으로 나가는 은별이다. 울음을 참기 힘든 가 보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한결의 눈망울에 슬픔이 짙어진다. 은결은 아무 것도 모르는 듯한 맑고 큰 눈으로 한결을 쳐다보며 또랑또랑 말했다. "아빠!!! 은결인 예쁜 엄마랑, 멋진 아빠가 너무 좋아요!!" 한결은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슬픈 눈을 감추듯 세상에서 가장 멋진 미소를 지으며 은결을 안아 올렸다. 그리고 속삭이듯 은결에게 말한다. "은결아, 기억하렴. 엄마, 아빠도 우리 은결이를 많이 사랑한단다..." [경찰서 앞] "........." 경찰서까지 걸어오는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은결도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알았는가 보다. 아니 어쩌면 이 영악한 아이는 마지막이라는 것을 말로 하지 않아도 몸소 느끼고 있는지도 몰랐다. 은결은 입을 열지 않고 잊지 않게 다는 듯 한결과 은별의 얼굴만 똘망똘망 쳐다보았다. [끼이익-] 오늘따라 가깝게만 느껴지는 경찰서의 무거운 문을 힘겹게 열고 들어가는 한결과 은별이다. 경찰서에는 모여서 웅성거리는 경찰들과 화장을 두껍게 한 차갑게 보이는 젊은 여자가 보였다. .............. "저 여자인가 보다. 내가 가서 먼저 얘기하고 와 볼께." ........ 한결과 한결에 품에 안겨있는 은결과 조금 떨어져, 은별이 경찰에게 다가가 몇 마디를 나누고는 차갑게 보이는 미녀를 돌아보았다. 아마 진짜 은결의 엄마가 맞는 모양이었다. 은결가 조금, 아주 조금 닮아보였다. 하지만 왜 이리 그녀의 눈은 냉랭해 보이는 것일까? "흐..흐읍...." 은결의 진짜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자마자 그녀의 붉은 눈시울은 이제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 눈물을 떨어트린다. 은별의 우는 모습에 뭔가 잘못된 것을 느낀 듯 은결이 놀라 울먹이며 소리친다. "엄마, 왜 울어요...? 아빠.. 여긴 왜 와요??!!! 은결이 버리러 온 것 아니죠..?!! 그렇죠?!!? 은결이 엄마 말 잘 듣잖아요.. 아빠, 은결이 이제 떼 안 쓸게요??!! 그러니까 버리지 말아요!!! 흐앙!!!!" "은결아.. 흐읍..... 엄마는 진짜 엄마가 아냐.. 은결이 진짜 엄...마는.. 저 분이야... 흐윽.." 은별이 떨리는 손으로 차갑게 생긴 여자를 가리키자 은결의 슬프게 떨리는 시선이 은결의 손끝을 향해 간다. 손끝으로 보인 자신의 진짜 엄마를 쳐다보던 은결이 몸을 부르르 떨다 울음을 터트리며 소리쳤다. "아냐!!! 아니란 말야!!!! 저 마귀할멈은 우리 엄마가 아냐..!!!!!!! 엄마가 진짜 엄마잖아요!!!! 은결이 버리지 마요!! 네??!!!! 아빠.. 은결이 버리지 말아요!!!" 떼를 쓰며 억지를 부리는 은결의 모습에 한결의 눈에도 절대 보이지 않을 것 같던 눈물이 한 방울 주르르 떨어진다. 한결은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은결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은결아... 미안하다... 이제 진짜 엄마한테 가야지...." 32. [또각또각-]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서 선명한 구두 소리를 내며 한결과 은결의 곁으로 은결의 진짜 엄마가 다가왔다. 은결은 점점 가까워지는 그녀의 모습에 겁을 먹고 울먹이며 한결의 품에 파고들었다. 한결의 앞에까지 온 여자가 색기가 흐르는 웃음을 지은 채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한결에게 말을 건넨다. "어머, 이게 누구야? 한결이 아니야?" 자신을 아는 듯이 말하는 여자의 말에 은결에게 시선이 가 있던 한결이 고개를 들어 여자를 천천히 살펴본다. 그의 행동에 은별도 덩달아 여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매서운 눈매를 가지고 있음에도 상당한 미녀였다. 여자의 얼굴을 천천히 살펴보는 한결의 눈이 심하게 떨린다. "차수진,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나? 당연히 저 애 엄마니까 여기 있지." "........." "역시, 진짜 아들이라고 할 만큼 닮았군. 그렇겠지. 한결씨 형의 아들이니까." "..................." "그.. 그게 무슨 소리예요?" 수진의 말에 한결의 침묵으로 일관하자 은별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수진을 보며 물었다. 수진은 그런 은별을 차갑게 노려보며 대답한다. "이 아이가 왜 이렇게 한결이랑 닮았다고 생각해? 딱 보면 한결이 아들같이 보이지 않아? 그렇게 보이는 게 당연해. 이 애는 저랑 이미 세상을 떠난, 한결이의 이복형 현한얼 사이에서 난 아들이니까." 그리곤 한결의 곁에 서서 그의 와이셔츠를 꼭 잡고 서 있는 은별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수진이다. 은별의 옆에 서 있던 한결은 고심하는 듯 하다,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수진에게 말을 건넨다. "어쩐지 나와 닮은 것도 나보고 거리낌 없이 아빠라고 부른 것도 우연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이상했어. 은결이도 계획적으로 네가 갖다놓은 거지?" "(흠칫-)" 수진이 당황한 듯 몸을 잠시 움츠렸다. 날카로운 한결의 눈빛이 빛나며 던진 예리한 말에, 수진은 약간 당황하듯 얼굴이 붉어졌다 다시 그녀 특유의 매혹적인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역시, 감이 좋구나. 한결아. 그래. 내가 너의 집 앞에 갖다 놓았어. 넌 냉정한 겉모습과는 달리 속은 너무나도 따뜻한 사람이니까. 그것도 너처럼 버려진 아이를 외면할 수 없을 테니까." "그.. 그런... 어..어떻게 자기 아들을..." 쏟아져 나오는 수진의 말에 충격을 받은 듯,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한결의 옷자락을 더욱 꼭 쥐는 은별이다. 이 여자, 과연 한 아이의 엄마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은별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면서 수진은 잔인하게 웃었다. "게다가 예상치 못한 대어가 걸리더군. 채은하가 너무나도 사랑한 동생 채은별이.." 잔인하게 웃던 수진이 은별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은별은 자신의 오빠와 함께 자신의 정체를 아는 수진을 한편으로는 어리둥절하게, 한편으로는 불안하게 시선을 마주 대하였다. "아참. 아이 이름 지어줘서 고마워. 아이에게 마땅한 이름도 없었는데.." "네?!!" 이름이 없다는 말에 놀란 듯 눈이 커지며 수진을 쳐다보는 은별이다. 은별이 쳐다본 수진의 눈은 알 수 없는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슬픔으로 가득 차 있는 듯 보이면서도... 수진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은별의 모습에 냉소를 띄며 말을 잇는다. "어차피, 한결이가 안 키웠으면 고아원으로 보내려고 그랬어. 그 동안 가짜 엄마 역할 하느라 수고했어. 채은별." [찰싹-] 수진의 눈에 있는 공허함 따위, 슬픔 따위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었지만 은결은 은별에게 이미 둘도 없는 소중한 존재다.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은별이 수진의 싸대기를 때렸다. 그런 그녀의 눈에는 끊임없이 눈물이 새어나왔다. 33. "어어, 저기요. 경찰서에서 싸우면.."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은별이 수진의 싸대기를 때리자, 당황한 경찰들이 손사래를 치며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한결은 상관하지 말라는 식으로 위압적으로 눈을 깔고 말했다. "우리끼리 문제니까 입 닥치고 얌전히 쳐 박혀 있어." "........ㆀ(딸꾹)" 한결의 강력한(?) 눈빛에, 아니 강력한 카리스마에 눌려 놀란 듯 딸꾹질을 하며 얌전히 꼬리를 내리는 경찰들이다. "..하.. 쳤어?" 수진은 은별이 때린 볼을 손으로 감싸 쥔다. 자기보다 훨씬 어린 여자에게 맞은 게 분한 듯 그녀는 얼굴이 벌게지면서 눈물을 흘리는 은별을 향해 소리쳤다. "하?! 네 년이 뭔데 내 볼을 때리는 거야!?! 오히려 때려야 할 사람은 나라구!!" 수진의 표독스러운 외침에 은별은 눈물을 자신의 옷소매로 슥슥 닦고는 괴로운 듯 가슴을 부여잡고, 앙칼지게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를 향해 간절하게 말한다. "제발.. 은결이... 우리 은결이 데려가지 마요... 은결이 내 아들이에요!!!!! 내 아들이란 말예요!!!!" 애타게 매달리며 소리치는 은별의 모습을 차갑게 비웃으며 수진은 여유만만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하하하.. 은결이는 내 배 아파서 난 아들이야. 채은별, 난 너의 그 괴로운 모습을 보고 싶었어. 내가 사랑한 채은하가 너 때문에 날 떠났으니까!" "...무.. 무슨 소리예요!!?" 전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은별이다. 오빠가 자신 때문에 떠나다니? 모든 상황을 다 안 다는 듯한 어두운 표정을 한 한결은 은별에게 은결을 맡기며 불안하지 않도록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후- 이런이런, 채은하를 떠나게 한 당사자는 전혀 사정을 알지 못하나 보군? 뭐, 이젠 상관없어. 이젠 내가 너에게 그 괴로움을 느끼게 해 줄 테니까. 은하는 실종되었지만 이젠 한결이가 있으니까." "무.. 무슨 말이에요.."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은별이 은결을 꼭 안으며 수진에게 되묻는다. "픽- 상관할 바 아니잖아? 이젠 은결이를 기르고 싶은 마음도 나네. 한결이는 자신이 존경하던 형의 아들인 은결이도, 그리고 그 엄마인 나도 저버릴 수 없을 테니까." 한결을 향해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며 매혹적으로 웃는 수진의 모습에 은별, 위기감을 느꼈다. 수진은 그녀의 말에 굳은 듯 미동 없는 한결을 끌어안으려는 듯 천천히 그의 곁으로 다가간다. 그런 수진의 모습에 당황한 듯 한결의 옆에 서 있는 은별은 손가락 하나 까닥 할 수 없을 만큼 굳어버렸다. [쿵!!!!!!!!] 살짝 옆으로 조용히 몸을 트는 한결 덕택에, 그의 품으로 쓰러지듯 몸을 던지던 수진은 스텝이 꼬여 경찰서 바닥에 키스를 하는 꼴이 되었다. 경찰들도 당황한 듯 쓰러진 수진과 한결에게 시선이 쏠렸다.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수진의 모습에 한결은 비웃으며 냉정하게 말한다. "차수진, 내가 말했을 텐데?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한얼형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뻔뻔스럽게 또 다시 내 앞에 나타나?" "현한결!!!" "은하형이 떠난 건, 채은별 때문이 아니라 너 때문이야! 은하형에 이어 이젠 나한테까지 꼬리 치냐? 내가 그렇게 만만하냐? 씨발, 네 향수냄새 졸라 역겹다. 오물 쳐 발랐냐?! 너 같은 년이 이 세상에 있어서 발전이 안 되는 거야. 어차피 고아원으로 보내려고 했다고? 애 아빠가 없어서 이름도 안 짓는다고? 미친, 그러고도 네가 애 엄마냐?! 꺼져, 다시는 우리 눈앞에 나타나지마!" 홍수처럼 쏟아지는 한결의 질타와 자신을 거부하는 행동에 당황한 듯 얼굴이 붉어지며 쓰러져있던 수진은 벌떡 일어섰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그녀는 옷을 털면서 눈물 어린 눈으로 한결을 간절하게 바라보며 크게 소리쳤다. "한결아, 네..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그건 네 자신한테 물어 봐. 네 자신이 얼마나 추한지.. 너한테는 죽어도 은결이 못 준다. 은결이는 이제부터 내 아들이야, 그리고 은결이 엄마는 네가 아니라 채은별이야." "한결아...!!!" "아빠!!! 이씨, 나쁜 마귀할멈!! 우리 엄마 괴롭히지 마요!!!" 한결의 말에 감동해 주르르 눈물을 흘리는 은별이다. 그런 은별을 달래며 수진에게 소리치는 은결의 모습에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며, 은별을 노려본다. "아니야, 이럴 수는 없어!!! 현은결, 내가 진짜 엄마야! 이리 오지 못해?!" "마귀할멈!!! 아줌마는 우리 엄마가 아냐!!!" "하.. 현.은.결, 얼른 이리 오지 못해?! 한결아. 넌 나를 버릴 수 없어!!! 넌 현한얼의 동생이니까!!! 나를 버리면 안 된다고!!!!!!!!!!!!!!!!!!!" "싫어!!!! 아빠 가면 안 돼요!!!!!" 수진의 말에 은결은 은별의 품을 더욱 파고들며 그녀에게 고함을 쳤다. 일이 생각대로 안 되는지 수진은 애꿎은 입술만 꼭 깨물며 안달난 사람처럼 안절부절하며 한결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시선에 한결이 은결의 말에 이어 차갑게 말했다. "뭔가 착각하는 가 보군. 널 사랑한 건 우리 형이지 내가 아냐. 내가 사랑하는 건 채은별 단 한 사람뿐이야." 냉정하게 수진에게 말하고는 뒤돌아서서 불안에 떠는 은별의 손을 따뜻하게 꼭 잡으며 한결은 이어서 구경난 듯 쳐다보는 경찰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순경 아저씨, 얘 내 아들이니까 내가 데려가요. 가자, 채은별." "으...으응..." "마귀할멈 메롱!!!" "한결아!!! 한결아!!!!!!!!!!" 분노에 떨며 한결을 애타게 부르는 수진을 뒤로하고, 그는 은결과 은별과 함께 자신의 안식처인 집으로 향한다. 34. ........... ............. "휴우..." 집으로 돌아온 한결과 은별은 지친 듯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많이 놀란 듯 집에 오는 동안 계속 훌쩍거리다 한결이 품에서 겨우 잠이 든 은결이다. 그런 은결을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혔다. 은결의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며 한결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오늘 고생했다. 우리 아가." 은별은 한결의 세심하고 자상한 모습에 잠시 미소를 짓다 조용히 한결에게 말한다. "한결아, 얘기 좀 하자." "...무슨 얘기..." "너는 누구야?" "(움찔)" "우리 오빠와는 무슨 사이야? 그 차수진이라는 여자는 누구고?" 은별의 질문에 뭔가가 떠오른 듯 한결의 두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저으며 초조한 모습을 보이며, 은별의 시선을 외면하며 말했다. "씹... 그 얘긴 하지 말자.." "날 못 믿니..?" 한결의 고개를 자신에게 돌려 시선을 마주하는 은별이다. 은별의 맑고 투명한 눈동자에 한결의 모습이 가득 담겨져 있다. 대답이 없는 한결의 불안한 모습에 그녀의 심연같이 깊고 깊은 눈에 맑은 눈물이 고이더니, 이내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린다. "울지마..." (chu-) 한결은 눈물을 흘리는 은별의 손을 꼭 잡으며, 부드럽게 은별의 입에 자신의 입을 맞췄다. 은별은 한결의 따뜻한 입술을 받아들이며 눈을 감는다. "으...ㅂ..." 한결의 혀가 은별의 입안으로 밀려 들어와 은별의 고른 치아를 세세하고 부드럽게 훑는다. 길게 이어지는 딥키스.... 은별의 호흡이 점점 가빠지며 얼굴이 붉게 달아오를 때쯤 한결이 촉촉한 입술이 은별의 붉은 입술에서 떨어진다. 그녀는 쑥스러운 듯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를 숙였고, 그런 은별을 강하게 끌어안으며 한결이 힘 있게 말했다. "사랑해.. 천하의 현한결이... 너 없이는 죽을 만큼, 채은별, 널 사랑해." "한결아..." 은별을 꼭 안고 불안에 떠는 한결이 안쓰러운 듯 그녀는 한결의 등을 쓰다듬었다. 이 아이는 도대체 어떤 상처가 있기에 이렇게 불안해하는 건지. 한결은 은별의 손을 잡아 자신의 심장에 갖다댄다. [두근두근-] 은별의 손에 한결의 고동치는 심장의 떨림이 있는 그대로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전해진다. "나를 알면, 내 곁을 떠날까 봐 두려워. 넌 이미 내 반쪽이고, 넌 이미 나의 존재의 가치이며, 넌 이미 고동치는 내 심장의 주인이니까... 사랑해, 은별아.." "한결아, 나도 널 사랑해. 네가 어떤 존재이든 난 상관없어. 이미 넌 내 마음을 가져갔잖아." 은별의 말에 안정이 되는 듯 떨림이 멈춰지는 한결이다. 은별의 이마에 살며시 그리고 부드럽게 베이비키스를 하고, 그 멋진 얼굴에 빙그레 미소를 띠며 은별에게 말한다. "만약 네가 날 떠난다고 해도 난 널 절.대.로 보내줄 수 없어." 누가 들어도 거만하고 자만으로 똘똘 뭉친 말이지만 한결의 사랑 방식을 아는 은별이기에 그 말에 마음이 놓인다. "날 믿어. 한결아!!!" "믿는 것 가지고는 안 되지, 개 목걸이라도 채워놓을까? 흐응, 아니면 밧줄로 꽁꽁 묶어서 방에다 꽁꽁 가둬놓을까?" "헉.!! 하..한결아, 그 건..." 한결이 말에 슬금슬금 뒷걸음치는 남모르게 식은땀을 흘리며 은별이다. 순진하기는, 자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그녀가 그는 귀여울 뿐이다. 한결은 기분 좋게 픽 웃으며 은별에게 말한다. "뭐, 특별히 위대한 나에 대해 이야기 해 주지." ‘젠장.. 그래, 또 부활했구나, 천상천하 유아독존!!! 쳇, 네가 봉이다!!!’ "그 대신, 다 얘기하고 나서 키스 10번 추가!" "뭐.. 뭐///?!!!" 한결의 입에서 나온 갑작스럽고 능청스러운 폭탄선언에 끝도 없이 붉어지는 은별의 얼굴이 꼭 잘 익은 사과 같다. 그런 은별을 귀여운 듯 쳐다보다, 한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한결의 숨겨진 과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35. [한결's behind story - 세가지 선물] "얼레리~ 꼴레리~ 한결이는 첩의 자식이래요~" "엄마가 둘이나 된 대요~" "꺼져!!!" "얼레리~ 꼴레리~ 현한결은 사생아래요~" 내가 화를 내면 언제나 웃으며 더욱 심하게 놀려대던 아이들. 그 아이들은 뭣도 모르고 나를 놀리며 재미있어 했지만 그 아이들의 놀림으로 인해 나의 가슴은 항상 상처투성이였다. "첩의 자식이 꼴에 꼴이라고 화낸다." "화내니까 더 꼴분견이네~" 그 아이들의 말에 나는 마지막에는 반박할 수 없었다. 사실이니까… 나의 아름다운 어머니는 내가 가장 증오하는 아버지란 작자의 두 번째 여자였다. 그러하니 나의 존재는 당연 본가에서는 눈엣가시였다. "당장 그 아이를 데리고 내 눈앞에서 꺼져." "..하..한준씨...날.. 사랑한다 했잖아요.." "사랑? 웃기는군. 내가 사랑이 뭔지 안다고 생각해? 넌 한낱 내가 씹던 껌이었을 뿐이야." 내가 태어남으로부터 동시에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채, 언제나 심장을 졸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난 친구들의 심한 놀림도, 아버지의 무관심도 다 참을 수 있었다.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어머니가 내 곁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 마지막 지주조차도 날 져버리고 말았다. "미.. 미안하다.. 한..결아... 엄.. 마를.. 용서..해 다..오..." "엄마!!! 안 돼!!! 죽지마!!! 어.. 엄마만 있으면... 난.. 난..!!!" "미.. 안...아버지를.. 너.. 무.. 미워.. 하지 말..렴..." "아.. 안 돼!!!!!" 까마귀 떼같이 시커먼 구름이 낀 불길한 날이었다. 12살, 어머니의 자살은 어린 나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어머니를 버리고 죽음에까지 몰고 간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어머니의 생명을 앗아간 세상이 너무 미웠다. 그 때부터였을까? 세상의 모든 것이 삐뚤게 보였다. 세상의 모든 것에 반항하고 싶었다. "큭, 첩의 자식이라서 매일 사고만 치고 다닌대." "애를 몇 이나 때려서 경찰서에 끌려갔다지?" "쯧, 애 엄마가 자살했다면서? 쯧쯧.. 엄마가 그 모양이니 애 역시 저 모양이지." 날 버린 세상에게 화풀이를 했다. 어릴 때부터 싸움질을 배웠고, 날 놀리는 애들은 무조건 팼다. 그러나 내게 돌아오는 건 어머니에 대한 욕과 멸시뿐이었다. 참을 수 없었다. 날 이렇게 만든 세상에게 복수를,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아버지가 날 돌아보게 하고 싶었다. 한 번만이라도... * * * 여느 때처럼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들었어요? 현한결이란 애, 국제 올림피아드 수학부분 금상 탔다면서요." "아! 그 애 천재라면서요!?" "대단하네.." "엄마도 아빠도 없다는 것 같던데? 어떻게 훌륭하게 잘 자랐나 봐요."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죽도록 노력했다. 하루 종일 공부에만 매달렸다. 날 버린 세상에서 인정받는 길은 이 것밖에 없으니까. 최고가 되기 위해 이를 악 물고 노력했다. 사람들이 내게 하는 천재란 소리는 내 노력의 산물이었다. * * *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난 탑 클래스만이 진학할 수 있던 명문중학교에 신입생 대표로 입학하게 되었다. "저희 신입생들은............. ..................................... .....선서합니다.. ...신입생 대표 현한결!" 남의 눈에 띄도록 모든 짓을 다 했었다. 가식이라고 해도 좋았고, 위선이라 해도 좋았다. 세상을 이길 수만 있다면.. 아버지가 날 돌아볼 수만 있다면.. ................ 중학교 입학을 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날씨가 너무 화창하다 못해 맑고 포근했던 그 날, 난 왠지 모를 설렘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옥상의 구석진 곳에서 햇빛을 받으며 드러누워 있었다. "오- 채은하! 너 차기 서열 1위로 선정됐다며!" "그래, 그렇게 됐다.." "자식! 축하한다! 이젠 소원 풀었네!! 그렇게 노력하더니.." "축하는 무슨… 아무튼 고맙다." "빼기는, 진짜 축하하고 나 먼저 내려가 본다." "그래." 우연히, 은하형과 그의 친구가 하는 얘기를 듣게 된 나였다. 하얗고 고른 치아를 드러내며 환희 웃던 사람, 태양이 그 사람을 위해 존재하듯 태양보다 더 밝게 빛나던 사람. 명문중 3학년 일짱이자 차기 서열 1위 채은하를 만난 것은 세상을 버린 나의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서열 1위라..." "어?! 이런 곳에 사람이 있었네? 안녕~ 반갑다. 이름이..?" 은하형은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도 빛나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나를 발견한 걸까? 구석진 곳에서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던 나에게, 그냥 지나쳐도 되었을 나에게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이름을 묻던 은하형이다. "현한결.." "아, 현한결. 한결.. 한결.. 좋은 이름이구나! 신입생인가 보네?!" "(끄덕)" 좋은 이름이라.. 난생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말없이 난 고개를 끄덕이며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 그 슬프도록 화창하고 파란 하늘을… 은하형은 그런 나를 보다 나와 같이 하늘을 바라보며 약간은 슬픈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 "네 나이와 같은 여동생이 있어, 한 번도 엄마의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아이지. 그 아이도 너처럼 슬프고 깊은 눈을 가지고 있어."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려 은하형을 쳐다보았다. "사진도 있는데, 너한테만 살짝 보여줄게. 아무도 안 보여준 거니까 딴 사람한테는 비밀이다!" 처음 만났는데도 꼭 잘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느끼게 해주는 형의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형은 소중한 듯 지갑에서 사진 한 장을 빼 내게 보여주었다. 은하형과 많이 닮은 온화해 보이는 인형같이 예쁜 여자아이의 사진을.. "예쁘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야. 내가 웃는 것도, 내가 기뻐하는 것도 다 우리 은별이를 위해서야. 내가 강해지려는 것도… 다 이 아이를 위해서야." 형은 내게 조심스럽게 다루며 그 사진을 보여주고는 소중하게 한없이 어루만지고 또 어루만졌다. 형이 그렇게 사랑하는 그 여동생이 부러워졌다. 형은 한 동안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너의 마음은 공허함으로 가득 차 보이는 구나." "......................" "강해지고 싶니?" "네?!" "네 눈이 강해지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아. 네 눈이 마음에 든다. 일진에 들어와라." 세상을 버렸던 나의 첫 행운. 이것이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필연적인 은하형과의 첫 만남이었다. 36. [한결's behind story - 세가지 선물] 난 은하형과의 운명적인 이끌림으로 은하형을 따라 그 다음날로 일진에 들어갔고, 그 곳에서 태하와 유빈, 그리고 사랑을 만날 수 있었다. "와!!!! 새로 들어온 애야!!!! 얘 되게 잘 생겼다!!!! 헤헤~ 우리는 천생연분~ 방가방가~♡ 방가방가~♡ 우리 친구~" 생긴 건 멀쩡한데 날 보자마자 쫄랑대던 사랑 녀석. 그런 사랑을 보며 유빈이 싱긋 웃으며 그를 말렸다. "사랑아, 저 애 당황하잖아." "꺄아!! 어디 한 번 안아보자!!!" 유빈 녀석이 말에도 절대 굴하지 않고 나에게 달려드는 사랑 녀석에게 냉정하게 한 마디 날려줬다. "꺼져." "헉.. 냉정하기는... 태하보다도 더 심하잖아!! 한 번쯤 안을 수도 있는 거지!! 쪼잔해!! 쪼잔해!!" "진사랑. 너 또 그러냐? 미안- 새로 들어왔는데, 처음부터 사랑녀석 주접에 당하는 구나.. 참, 이름이..?" 사랑녀석을 말리며 내 이름을 묻던 태하, 그나마 그 때는 태하 녀석이 가장 정상적으로 보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싱글벙글 웃는 유빈, 그리고 왕 주접을 떨어대는 사랑에 비해서는.. 태하의 질문에 나는 간결하게 대답했다. "현한결." 내 이름을 말하자 잠깐 태하란 녀석이 눈이 흔들렸다. 뭐지? 의아함을 채 갖기도 전에 내 옆에서 알랑거리는 사랑녀석에게 신경이 쏠렸다. "오- 요번에 신입생 대표 맞지?!" 그리고 날 안다는 듯 싱글벙글 웃으며 말하는 유빈의 말에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 묘한 느낌은 무엇인가? (쿡-) "하하하!!! 내가 침 발라 놓았으니까!! 넌 내 친구야!! 히히!!" "젠장...IIIIIIIIII" 사랑 녀석의 침이 내 볼을 타고 주르르 내려왔다. 젠장, 그 끈적끈적했던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침을 바르며 내게 친구라 칭하는 사랑 녀석은 내 경계 대상 1호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승리의 미소를 짓는 사랑 녀석에게 크게 소리쳤다. "씨..씨발, 다가오지 마!" 친구라면, 치를 떨던 나다. 차가운 표정과 모습으로 겉을 포장해 사람과 친해지기를 거부하던 나다. 누구도 내 곁에 다가오게 하고 싶지 않았건만… "어어?! 나의 침 공격을 받고도 거부하네?!! 그럼 친구로 받아줄 때까지 계속 침 발라야지!!" 아니, 이런 사이코를 보았나? 젠장, X 밟았다! 나는 재수 없게 잘못 걸렸다 생각하고 벗어나려 하는데, 이번엔 유빈 놈이 생글거리는 얼굴로 내 어깨를 꼭 잡는 게 아닌가? "어디 가려고? 우린 우러르고 존경하는 은하형으로부터 너의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주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맞아. 우릴 친구로 받아주지 않으면, 곤란해." "헤헤~ 부탁도 부탁이지만 난 한결이가 너무 좋다♡ 또 침 발라야지~♡ 침, 침, 침~♡ 히히, 한결이는 내 거야~♡" 마음의 상처라니…? …설마. 은하형은 어제, 그 잠깐 동안 내 눈을 보고 모든 것을 꿰뚫은 거였나? 온화한 미소에 곁들어진 여유, 보면 볼수록 신비하고 묘한 갈색 눈, 모두가 자신을 추종하게 만드는 카리스마, 그리고 남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인정. 은하형이 모두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될 만 하다고 그 때 느끼고 생각했다. "씨발, 그 친구란 거 하면 될 거 아냐///" "오~ 예~!!! 성공!! 우리들의 친구가 된 것을 환영해!" "잘 지내보자!" "픽- 잘 선택했다." 그렇게, 은하형은 내게 첫 번째 선물로 진정한 친구를 주었다. 난 형의 부응에 답하기 위해 형을 닮으려 노력했고, 그럴수록 은하형은 나를 더욱 믿어주고, 한결같이 신뢰해주었다. .............. .... 그리고 그 날이 왔다. 앞으로 일어나게 될 모든 사건이 시작되던 복선이 일어난 날. 그 날은 맑았던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괴변이 일어난 날이었다. [장례식장 빈소] 그 날은 갑작스럽게 비행기 추락사로 돌아가신 은하형 아버지의 장례식이었다. 형의 여동생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충격으로 실신해 병원에 입원했다고 들었다. "하… 아버지, 아버지, 은별이 하고 저만 세상에 남겨 두시고, 저 세상으로 홀로 그 먼 길을 가시면 전 어떡해야 하죠…?! 어머니, 혼자 그 곳에 계시기 쓸쓸해서 아버지를 데리고 가신 건가요?!! 흑… 거기다, 이젠 우리 은별이까지 데리고 가시려고 그러세요?! 안 돼요. 제발, 제발… 은별이만이 이제 저의 버팀목이에요!!!!!!" 3일 밤낮을 형은 형의 아버지의 빈소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태양같이 따뜻한 빛을 내던 형이 그렇게 우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언제나 유연하면서도 강하고,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형이었다. 은하형의 이런 모습은 내게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어쩌지도 못하고 우왕좌왕 하고 있을 때, 그런 형의 어깨를 잡는 한 사람 있었다. "그만 울어라. 채은하." "…한얼형." "그만 울어. 네가 여기서 무너져야 차기 서열 1위라고 할 수 있냐?! 더한 일도 넌 이겨낼 수 있잖아. 병원에서 네 여동생 깨어났다고 전해달래. 이제 하나뿐인 너의 혈육인 여동생을 지켜야지!" "한얼형, 은별이가 깨어났다고요?! 하아.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우리 은별이 내가 지킬게요!!!" 여동생이 깨어났단 소식에 은하형의 얼굴엔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나약한 나로서는 아무 위로도 못한 은하형에게 힘이 되어주던 사람. 서열 1위란 사람의 얼굴을 쳐다본 순간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 나와 닮았다...? "어라?! 한결이랑 포커스랑 많이 닮았다!!!" "그러게." "현한결이 크면 똑같을 것 같은데?" "와!!! 내 사랑 한결이랑 판박이다♡ 헤헤헤~ 그럼, 그럼, 서열 1위 포커스형한테도 침 발라야 하나?!" 진사랑. 뼈 추리고 싶으면 제발, 그 짓은 삼가해라. 사랑과 유빈이 웅성거리며 말하는 게 들렸는지 포커스라 불리던 나와 닮은 사람이 나에게 눈을 돌렸다. 나를 본 순간 그의 동공이 커졌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는 놀랄 만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현... 한결...?!" 37. [한결's behind story - 세가지 선물] 날 알고 있다?! 서열 1위 포커스란 사람은 당혹감으로 놀라서 굳은 나와 은하형, 그리고 의아해하는 나의 친구들을 장례식장 옥상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옥상 난간에 서서 천천히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며 내게 물었다. "현한준이란 사람이 아버지 맞지?" 나의 아버지를 알고 있다…? 내 정체를 알고 있는 이 사람은 누구지?! 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포커스의 대답을 갈구했다. "이렇게 만나는구나. 나의 동생..." "???!!!!" "결국 이렇게 된 건가, 축하해요. 그 동안 찾아다닌 보람이 있네요. 한얼형. 역시 너무 닮았다 했는데, 형 동생 맞군요?" 은하형의 차분히 이어지는 말에 난 이해가 안 간다는 식으로 날 보며 웃고 있는 포커스를 뚫어질 정도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내 시선을 느낀 포커스는 빙그레 웃으며 얘기하였다. "난 네 이복형 현한얼이라고 해. 그 동안 아버지 때문에 고생 많았다. 미안하다. 진작 널 찾았어야 하는데. 이제부터는 내가 널 도와줄게." 나는 전혀 알지 못했던 나보다 4살이 많은 이복형 현한얼. 가족, 이것이 은하형이 내게 준 두 번째 선물이었다. 은하형의 아버님의 슬픈 장례식장에서 난 나도 몰랐던 가족이 생겼다. . . . 그 날, 밤이 새도록 난, 형과 많은 대화를 하였다. "참, 너와 내가 형제란 사실은 비밀로 하자. 네가 내 형제란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면, 네 적은 너무나 많아지니까. 아버지한테도 내가 손을 쓸 테니까 너무 걱정 말아." "..한얼형.." 한얼형은 아버지의 죄를 사죄하듯 나에게 부족함 없이 대해주었고, 형과 내가 형제란 사실은 나의 친구들과 은하형 밖에 알지 못했다. ................. ....................................................... 형을 만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한결아~ 은하형의 총애를 받는 한결아~!!" "너 나한테 한 대 맞아볼래? 진사랑, 왜 안 어울리게 애교야. 짜증나려고 하니까 좋게 말할 때 집어쳐라? 맞고 울기 전에?" "우잉~ 한결아~ 부탁이 있오~♡" "...............닭살 돋아." "은하형한테 은하형의 예쁜 여동생 사진 좀 보여 달라고 말해봐~♡" "싫어." "안 그러면 얼굴에 침 바를 거야!!!!!!!!!!!!!!!" 침?!! 제.. 젠장!!!! 그 때의 느낌이 생생히 밀려온다. "젠장!! 하면 될 거 아냐!! 안 되도 난 몰라!!!" "얏호~ 한결아, 사랑해~♡" 윽, 그 끈적한 느낌에 속이 울렁거리다 못해 게워낼 것 같다. 은하형 아버님 장례식의 마지막 날이었다. 사랑의 부탁 아닌 협박에 난 형을 찾아 빈소 안으로 들어갔다. 우연히 장례식장 문 앞에서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빈소 안에 은하형과 차갑게 생긴 한 여자가 다투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은하야, 널 사랑해. 알잖아?!" "수진누나, 절 사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전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하?! 네 여동생?!! 걘 네 혈육이야!!" "혈육 문제가 아니에요!! 내가 지켜줘야 할 아이예요. 그리고 수진누나는 한얼형과 사귀고 있잖아요." "너 모르겠어?! 내가 한얼이랑 사귄 건 다 너 때문이야!! 난 한얼이를 사랑하지 않아!" "꺼져요.. 당신과는 할 말이 없어요. 이제 난 나와 은별이 생계를 잇는 것에도 벅차요." 그래, 그게 내가 차수진이란 지독한 여자를 처음 알게 된 날이었다. 차수진에 대해서는 어젯밤 한얼형에게서 형의 애인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한얼형의 애인 차수진이 은하형을 사랑한다고..? 상황 한 번 골 때리네.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돈이 필요한 거야?!! 그런 거야??!! 내가 돈이라면 만들어 줄께!! 흑…" 눈물을 흩뿌리며 장례식장 밖으로 뛰쳐나가는 차수진의 뒷모습을 보다가 이내, 난 은하형만 덩그러니 남은 쓸쓸한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남아있는 형의 모습은 초췌한 모습은 슬프고 외로워 보였다. "형.." 넋을 잃은 표정으로 아버지의 영정만을 바라보던 형이 내가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날 보며 무언가 고뇌하는 표정을 짓던 형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아. 봤니?! 한결아. 이건 한얼형한테 비밀이다. 한얼형 알면 난리 나. 난 정말 수진누나한테 아무 마음도 없어. 내 마음의 방은 이미 하나니까." 말하는 형의 얼굴엔 씁쓸함이 베어있었다. 더 이상 간섭하지 말아달라는 권고도 함께… 암울해진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난 말머리를 돌렸다. "알았어요. 근데, 형. 저기 할 말이 있는데요." "응? 뭔데?" "얘들이 형 여동생 언제 보여줄 거냐고 물어보라고 하던데요?" "평생 안 보여준다고 전해. 감히, 이 녀석들이 남의 귀한 여동생을…" "형이 그렇게 행동하니까 시스터 콤플렉스란 말을 듣는 거예요." "하하. 그런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던 은하형, 그의 모습에 나는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평안했던 하루.. 그러나 그 날, 비밀스런 어떤 일이 벌어졌다는 건 아무도 몰랐었다. 그 날 이후로 차수진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1년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38. [한결's behind story - 세가지 선물] * * *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중 1때처럼 그렇게 즐거웠던 적은 없었다. 내 옆엔 친구들과 나를 보좌해주며 언제나 지탱해주는 은하형, 그리고 내가 인정한 유일한 가족인 한얼형이 있었다. "쟤 요새 기대주라며?" "그러게, 1대 포커스하고 차기 포커스가 가장 신뢰하는 녀석이래" "부럽다." "근데, 쟤 말고 기대주가 한 명 더 있지 않았냐?" "글쎄, 현한결 나타나고 활약하는 동안 실종되었다고 하던데. 아무튼 현한결이란 녀석 한 번도 아무한테도 무릎을 꿇은 적이 없다 하더라." 난 모든 이의 주목을 받으며 서열을 높여갔다, 그렇게 내 인생의 봄이었던 1년은 빠르게 지났다. 차기 서열 1위였던 은하형은 예정대로 명문고에 진학하면서 제 1대 포커스였던 한얼형이 전국 서열 1위에서 물러나고, 많은 존경하는 일진들의 추대로 제 2대 포커스로 등극하게 되었다. "은~하~형~! 축하해요!!!♡ 헤헷, 축하선물로 사랑이의 사랑을 듬뿍 받으세요!" "쿡. 고맙다. 사랑아." "이제 차기 서열 1위는 은하형의 총애를 입고 있는 한결이가 되는 건가? 오오- 감투 썼네, 축하한다. 현한결. 서열 1위 되는 날 너 벗겨먹을 줄 알아라." "그런데 태하야, 한결이가 포커스가 되는 일이 축하할 일일까? 혹시 한결이가 서열 1위가 되면 말세가 오는 게 아닐까?!" "맞아맞아, 유빈이 말에 사랑이는 전적으로 동의!!!!♡ 한결이의 저 더러운 싸가지로 포커스를 과연 할 수 있을까~? 헤헤!! 어쨌거나 아무튼 한결아!!! 기념으로 한 번만 안아보자." 진사랑. 애정결핍이냐?! 틈만 나면, 스킨십을 못 해서 안달 난 녀석. 난 여자도 싫지만 게이는 더더욱 사절이다. "....Shut up." "무뚝뚝한 녀석. 현한결, 넌 어째 변한 게 없냐?!" 민태하. 그렇게 말하면서 넌 언제나 인형처럼 날 따라하는 하잖아.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사랑녀석 한 마디 더 거든다. "근데, 은하형!! 있잖아요! 형 동생은 언제 보여주는 거예요!!?? 매일 매일 자랑만 하고 보여주지는 않을 거예요?!!" "픽- 글쎄? 우리 별이는 내가 결혼시켜 줄 남자한테만 보여줄 거야. 그렇지? 한결아?" 그러고 보니 나 밖에 형의 여동생 사진을 본 적이 없었다. 형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쏟아지자 나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노골적으로 질문하는 은하형을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렇게 호프집에서 은하형과 유빈, 태하, 사랑과 함께 포커스로 임명된 은하형의 등극식을 축하하고 있을 때였다. [찰칵-!!] 갑자기 급하게 우리가 머물고 있는 룸의 문 여는 소리가 들리고, 비장한 표정을 한 명문고 교복을 입은 한 남학생이 은하형에게 소리쳤다. "큰.. 큰일 났습니다!!!! 포커스!!!!!! 제 1대 포커스께서!!!!!!!" "…왜 그래?" “포커스께서… 포커스께서…” “무슨 일이야?!!” "..교통사고로.. 즉사하셨습니다... 흐..윽..." 그 남학생은 말하자마자 이제 것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고 갑작스러운 소식에 넋이 나간 듯 우는 남학생만 쳐다보던 은하형과 난 실의에 빠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웃어주고 은하형의 등극을 축하하던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형은 믿어지지 않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남학생에게 재차 물었다. "..교..통사고.. 즉사라고...?" "수진누나가 차에 치일 뻔한 것을 구하다가...!!!!" [쨍그랑!!!!!!!!] 은하형이 들고 있던 유리잔을 벽으로 던져버렸다. "으.. 은하형?!!!" "형?!!!" 절대 화를 내지 않을 것 같던 은하형은 분노한 듯 술상까지 뒤집어엎었다. 형에게선 처음 들어보는 딱딱하고 냉정한 목소리가 남학생을 향해 되묻는 듯 말했다. "씨발, 하... 수진누나를 구하려다, 죽었다고...?" 분노로 일렁거리는 은하형의 깊은 갈색 빛의 눈동자. 그렇게 흔들리는 눈은 은하형 아버님 장례식 이후로 처음 봤다. 형은 남학생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씨발, 안내해라. 한얼형이 있는 장소로!" 그 길로, 형은 우리들과 함께 한결형의 시신이 있는 대학병원의 영안실로 곧바로 달려갔다. 그 곳엔, 1년 만에 나타난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차수진과 그녀 곁에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 몇몇이 서 있었다. "은하야..." "...형... 한얼형!!!!!!!!!!!!!" 39. [한결's behind story - 세가지 선물] "은..은하야!!!" 은하형은 자신을 애가 닳도록 부르는 차수진 따위는 보이지 않는지 흰 천으로 덮어진 한얼형의 시체를 부여잡고 눈물을 터트렸고, 난 눈물을 떨어뜨리며 뭔가 이상한 위화감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또각또각-]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천천히 중압감으로 가득 찬 구두소리를 내며,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 중년의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내 앞으로 다가온 그 남자는..... 아버지였다. 절대 잊을 수 없는 나의 아버지란 작자였다. 아버지는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보며 말을 꺼냈다. "현한결, 본가로 들어오너라." "......!!!!" "아버지로서의 명령이다. 요 몇 년간 너를 눈여겨보았다. 한얼이 그 녀석은 능력이 있긴 하지만 너무 정이 많아. 이제 내 대를 이을 인재는 너 밖에 남지 않았다." 아버지가 날 돌아봤다. 그렇지만 난 이렇게 돌아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형의 죽음으로 당신이 돌아보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난 있는 힘껏 주먹을 꽉 지며 입을 열었다. "아니, 난 본가로 들어가지 않아. 당신은 이미 내 아버지가 아니야. 당신은 이미 나를 버렸고, 나도 당신을 버렸다. 난 내 능력으로 당신을 돌아보게 만들고 싶었다. 형의 죽음으로 돌아보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 "흐음.. 현한결, 나는 너를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의 넌 아직 정신적으로 미숙한 것 같구나,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다음에 다시 찾아오마." "아니, 다시는 날 찾아올 필요 없어! 절대 당신한테 돌아갈 일은 없으니까!!" 한얼형의 죽음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내게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라는 근엄한 표정의 중년의 남자. 내가 가장 증오하던 그 남자인 그는.... .............나의 아버지 현한준. "안 돼!! 이.. 이럴 수는 없어!!!!!!!!!!!!!!!!!!!!" 내가 원망스러운 눈으로 영안실을 나가려는 아버지를 쳐다보고 있을 때, 차수진은 뭔가 잔뜩 질린 듯한 표정을 한 채 나와 내 아버지를 향해 소리쳤다. "숨겨둔 동생이 있었다니?!!! 이럴 수는 없어!!!!!!!! 아니야!!! H 그룹 후계자는 이 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이 아이가 H 그룹 후계자 현한얼 아들이란 말야!!!!" "......" "꼬마 아가씨,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군. 한얼이는 후계자 중 하나였지, 후계자가 아니야. 그리고 난 한얼이와 아가씨를 결혼시킨다고 한 적이 없었는데?" 차갑게 보이는 얼굴에 표독스럽게 조소를 지으며, 차수진에게 냉정하게 말하고는 돌아서서 영안실을 나가는 아버지다. 하,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 어릴 적 잔인한 한 마디로 어머니와 날 버렸던 당신은 변하게 없어. 여전히 사람을 도구로 밖에 보지 않아. "아냐,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없다고!!!! 내가 무엇 때문에 한얼이 애를 낳았는데!!! 이럴 수는 없어!!" [찰싹-] 미친 듯 고함치는 차수진의 뺨을 냉정한 표정으로 일관한 은하형이 때렸다. 절대 여자에게는 손찌검 하나 한 적 없는 형이다. 그런 형을 차수진은 눈물이 고인 눈으로 원망스럽게 올려다보았다. 형은 그저 차수진의 시선을 슬픈 눈으로 응시했다. "네..네가 어떻게 날..." "한얼형이 누나를 구하려다 죽었는데도 그런 말이 나와요? 수진누나?!" "한얼인 어차피 날 사랑하지 않았어!!" "..하.. 바보같은 사람. 누나가 임신했을 때, 한얼형이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아요?! 한 가지 길만을 추구하던 한얼형은 바보같이 한 사람밖에 볼 줄 몰라요!! 누나는… 바보예요. 누나가 한얼형 첫사랑이란 걸 몰라요?!!" "내가 사랑하는 건 너 하나야. 채은하." "…그런 말 믿고 싶지도, 사실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아요.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아요. 나타난다면 나도 내가 당신에게 어떤 짓을 할지 모르니까." "..........채은하. 너.. 후회하게 될 거야!!!" 오열하는 은하형과 차수진 사이의 대화에서 이상한 감을 느꼈다. 짜릿한 전율? 아니다. 이 느낌. 이 위화감. 나는 지금 느끼고 있는 내 감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며 눈물을 흘리며 영안실을 뛰쳐나가는 차수진을 붙잡았다. "뭐야?!!!" "씨발, 잠시 얘기 좀 하죠." . . . [Q까페] 난 발버둥치며 소리치는 그녀를 도살장에 끌고 오듯 가까운 카페로 데리고 왔다. "하고 싶은 얘기가 뭐지?" 카페 안에 앉아 날 원망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묻는 차수진. 한얼형이 죽었는데도 이렇게 표독스러울 수 있는지… 정말 진절머리가 나는 여자다. 그녀의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난 역겨워서 모든 것을 다 뒤집어엎고 싶었다. 짜증나는 걸 애써 참으며 내가 그녀에게 말했다. "씨발. 눈 좀 깔지 그래? 마시는 것 튀어나오려고 하니까." "뭐.. 뭐?!!" "나도 당신한테 그다지 좋은 감정 있는 거 아니니까. 좋게 말할 때, 그 눈 깔으라고. 그 눈 뽑아버릴 수도 있으니까." "뭐, 이 딴 게 다 있어!!!" 내 말에 소리를 버럭 지르고 상을 박차고 나가려는 차수진. 나는 그런 그녀의 등 뒤로 시니컬한 조소를 띠운 체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차수진, 당신 의도적으로 한얼형을 죽이려고 차로 뛰어든 거지?" 내 말에 깜짝 놀라 황급히 뒤로 돌아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응시하는 차수진이다. 눈물로 얼룩진 그녀의 얼굴에는 이미 의연함이 사라져있었다. 그녀는 당황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을 꺼냈다. "..무.. 무슨 말이야?" "당신과 당신이 안고 있는 아이가 차에 치일 뻔 한다면, 죽도록 당신을 사랑한 한얼형은 분명 당신과 당신의 아이를 구하려고 할 테니까. 당신은 이미 한얼형이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모든 것을 다 알고 의도적으로 한 짓이잖아." "...풋.. 무슨 말도 안 되는..." "1년 전 일이 생각나는군. H 기업의 재산을 노렸지? 한얼형의 아들이 후계자가 되면 기업의 재산은 다 당신께 되니까." 내 말이 끝나자 차수진은 조소를 띄우며 웃었다. "그래, 감이 좋군. 대강 맞았어." "..그런데 예상치도 못했던 내가 나타나서 다 망했다 이건가?" "잘 아는군. 너만 없었으면 모든 게 해결됐어!!! 젠장!!" "은하형에게 버림을 받아 그런 짓을 꾸민 거냐? 다시 은하형이 널 돌아보게 만들고 싶어서 그런 거냐?!" "그래, 그렇다면?" [쾅!!!!!!] 상을 발로 걷어차서 쓰러뜨리자 크지도 않은 눈 억지로 키우며 놀란 듯 나를 바라보는 차수진이다. 이 여자, 정말 역겹다. 난 최대한 분노를 참으며 차수진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씨발,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라. 넌 은하형이 내게 준 두 번째 선물을 앗아가 버렸어. 한얼형의 마지막 유품인 그 아이 때문에 지금은 내가 물러난다. 제발, 부탁하건대 그 아이 잘 길러라." 40. [한결's behind story - 세가지 선물] 그리고 은하형....... 난 차수진과 있었던 일을 있는 사실대로 모든 전말을 형에게 말했다. 그 때, 내가 왜 그랬을까? 안 그래도 인정 많고, 강한 겉모습과는 달리 마음의 상처가 많은 형인데. 은하형은 내 말을 듣고 심한 자책감과 자괴감에 빠졌다. "하, 결국 한얼형. 내가 죽인 거구나."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 난 이제 포커스의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어진 거야." "형!!!! 피하지 말아요!!!" "아니, 한얼형이 나 때문에 죽었는데 이 자리에 있을 만큼 뻔뻔한 인간이 아냐." "비겁해요. 형, 정말 실망이에요…" "미안하다. 네가 내 자리를 맡아 줘." 은하형은 모든 일진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 나이 16살이 되던 해,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포커스 자리에서 물러났다. 서열 1위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엘리트’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 서열 1위를 중학생이 된다는 것 자체부터 어긋났었던 것 같다. "쟤라며, 서열 1위." "맞아. 채은하가 물러나면서 포커스 자리 거저먹었잖아." "운도 좋다니까." 한 동안 일진들은 날 보며 수군거렸다. 포커스 자리를 얻기 위해 수를 쓴 것 아니냐는 소리. 은하형에게 뇌물이라도 받친 것 아니냐는 소리. 온갖 욕이란 욕과 별의별 소리가 다 들려왔다. 하긴 정식으로 올라간 것이 아니었으니, 그 만큼 반발도 컸다. "우씨..!!! 뭐야!! 잘 알지도 못 하는 녀석들이 내 사랑 한결이를 욕하다니!!! 우리 한결이 괴롭히면 내가 야금야금 물어다가 멍멍이 밥으로 써 줄 테야!!" "나도 동참!" "씨발, 다 싸잡아서 족칠까? 현한결" "민태하, 뒤처리는?" "다 한결이 책임이지!!!! 히죽히죽-♡ 우린 "한결이가 시켰어요!" 라고 하고 빠져나가고~" "진사랑, 그런 말하다 뼈도 못 추리는 수가 있다." 그래도 내 곁에는 친구들이 있었다. 뭐 그다지 정상으로 보이는 녀석은 없었지만. "걱정마라, 이런 건 시간이 지나면 다 사라질 테니까. 넌 내가 인정한 아이다. 그만큼 포커스로서 능력이 있다는 소리야." "은하형." 이런 일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거라며 서열에서는 물러났지만 나를 북돋아주며 항상 함께 하는 은하형이 있었다. * * * 그렇게, 가슴 아팠던 몇 달이 지났다. [쨍그랑-] “아- 씨발, 깼네.” 주번이었던 난 난데없이 교탁 위에 있던 유리병을 옮기려다 깨뜨렸다. 이거 담탱이가 제일 아끼는 건데… 망했다. 아침부터 유리병을 깨다니, 불길한 게 짜증이 난다. "씨발!!! 큰일 났어!!!!! 한결아!! " "젠장, 나도 큰일 났다." "뭔 큰일..?!!" "유리병 깨뜨렸어. 존나 불길하게…" "야..!!!!!! 지금 그게 문제냐!!!!!!!!!!!!!" "응. 이게 문젠데?! 씨발, 이거 담탱이가 아끼는 거잖아." "아우씨!!! 현한결!!!! 지금 은하형 꼭지 돌았어!!!!" 좀처럼 성급하게 굴지 않는 태하녀석의 다급한 목소리에 불길함이 느껴졌다. 문득 칼날 같은 바람이 내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다. 난 갑작스럽게 손이 떨려오고 가슴이 저며 오는 것을 애써 감추며 최대한 태연자약한 모습을 하며 차분하게 반문했다. "무슨 일이야?" "젠장!! 어떻게 안 건지 은하형 여동생이 신영고에 끌려갔어!!!" "..뭐..뭐라고..?" "지금 그것 때문에 은하형 혼자 꼭지 돌아서 신영고로 쳐들어갔다고!!" 은하형이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여동생이 신영고에 끌려갔다. 그건 나에 대한 불만의 표시이자 기존 포커스에 대한 반란의 시작이었다. 그 길로, 나와 태하, 유빈, 그리고 사랑은 곧장 신영고를 향해 달려갔다. [신영고등학교] 최대한 서두른 우리가 신영고등학교 운동장에 갔을 땐, 이미 전설이라 불리는 은하형이 그 많은 일진들을 물리치고, 피투성이가 되어 얼굴조차 알아보기 힘든 형의 여동생을 업고 나왔다. "은하형!!!" "..다 나 때문이야... 이 모든 게… ...우리 은별이가.. 지..켜준다고... 약속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 약속을…" 충격으로 비틀거리면서도 형은 냉정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누구인지 몰라도 차수진과 결탁한 것 같아. 내 동생 정체를 아는 사람은 그 여자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뒤에서 누군가 신영고를 움직이는 것 같아. 그게 누구인지는 모르겠어..... 유빈아, 좀 알아 봐줄래..?" "알았어요. 형." 형은 지친 몸에도 불구하고 그 연약해 보이는 몸에서 어떻게 힘을 내는 건지 이를 악 물고, 자신의 여동생을 병원에까지 엎고 갔다. 그만큼 형이 여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나 컸었던 것 같다. 형의 목숨보다 소중한 여동생이 너무 큰 충격에 뇌사상태에 빠졌다고 하자, 그 날 이후로 형은 동생이 퇴원하는 날까지 자신을 자책하며 하루도 병실을 떠나지 않았다. 소설제목 :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작가명 : +메시아+ E-mail : darksorcery@hanmail.net 연재장소 : 새싹소설① -10대 총편수 : 총 162편 완결 장르 : 연애소설 -------- 출처 : 인터넷소설닷컴 (http://cafe.daum.net/youllsosul) 팬까페 : http://cafe.daum.net/msacafe 댓글 4 개 이 글을...(0) 남자밝힘증__* 진짜 재밌어요...ㄲㄲ 06.12.10 17:48 유치원얼짱s 왜 이렇게,, 아빠가 된 일진짱 과 비슷한건지,,흠흠--;;ㅎㅎ 07.03.13 21:02 zaza -_-^^ 아빠가 된 일진짱......쓰는 사람 부터가 다르니깐...;; 머 그리고 그 사람 소설에서 이런 명작을 만들어 낸걸수도 있으니깐 비슷할수도? 07.07.02 17:58 유령하련 우와 멋있다................................... 07.09.05 19:05 이전 1 다음 최신목록 목록 윗글 아랫글 '　　　[퍼온소설]' 게시판의 다른 글더보기 제목 닉네임 날짜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061 ~ 080 >' 나린소주인 05.07.11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041 ~ 060 >' 나린소주인 05.07.11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021 ~ 040 > 나린소주인 05.07.11 [시작▶]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001 ~ 020 >' 나린소주인 05.11.21 [완결▷] 불량소년 잡는 자뻑천사님♬(21~完)' 나린소주인 05.11.28 카페에서 공개한 게시글입니다.'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키워드로 검색한 게시글 더보기 서비스 약관/정책권리침해신고카페 신고이용약관카페 고객센터검색비공개 요청 Copyright (c) Daum Communications Co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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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아아아아-] 형의 능글거리는 말에 모두 굳어버렸다. 은하형이 저런 말을 할 줄 전혀 예상하지 못 했는데. 침묵 속에서 한참을 심각한 표정으로 서 있던 사랑 녀석이 울먹거리며 형에게 이렇게 외치고 병원 밖으로 달려 나갔다. "흐흑..!! 형이 내 순결을 욕보였어!!!" ............ .........................ㆀ 어이가 없다. "쟤 왜 저래..?" "걱정마, 한결아. 원래 정상이 아니니 내버려둬." "맞아. 그냥 내버려둬. 저러다가도 멀쩡해 지니까." 민태하, 신유빈, 그렇게 말하는 너희는 정상이냐? 정상인 사람은 나뿐이야.<- 네가 제일 비정상이야![탕] * * * 형은 여동생이 퇴원할 때까지 여동생의 얼굴을 아무도 보지 못 하게 병실에서 지키고 있었다.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그 엄청난 집념과 노력에 난 대단히 감복했다. (은하씨 멋져-乃) "형, 무슨 생각해요?" "어?! 아, 미안! 한결이구나. 오늘 입학했지?" "네.." "명문고 입학을 축하한다!" 몇 달이 흘렀지만 아직도 형의 여동생은 뇌사상태에 빠져 있었다. 17살이 된 나는 자연스럽게 명문고에 진학했다. 그리고 은하형, 형은 신영고 사태가 있은 후부터 말수가 적어지고 부쩍 혼자 무언가를 생각하는 일이 빈번하게 많아졌다. . . 그러던 어느 화창한 날이었다. "하하! 얘들아! 드디어 은별이가 깨어났어!" 은하형이 오랜만에 그 온화한 얼굴에 활짝 웃음을 띠며 병실 앞에서 기다리며 서 있던 우리에게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오랜만에 보는 형의 밝은 모습에 내 마음까지 밝아지는 기분이 든다. "와~!!! 우리 그 은별이라는 애! 얼굴 보러 가요!" "안 된다고 했지." "쳇!! 너무해요!! 형!!" 형의 여동생이 깨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절대로 자신의 여동생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진짜 어느 한 군데가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건가..? 사진으로 봤을 땐 그냥 형이랑 많이 닮은 여자애였는데- * * * "은하형, 나 왔어요." 형의 여동생이 퇴원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오늘도 난 병실 앞을 지키고 있는 은하형을 방문했다. "아, 한결이 왔구나." "무슨 생각해요?" "아.. 아니, 아무 것도 아냐. 옥상으로 올라가자. 할 말이 있다." 형은 날 넌지시 바라보더니 뭔가를 깊게 생각하다, 이내 병원 옥상으로 날 데리고 올라갔다. "하늘이 맑구나..." 형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혼잣말을 했다. 형의 말에 나도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은하형을 처음 만났던 날처럼 화창하면서 맑고 그러면서도 쓸쓸한 날이었다. 그래, 혼자였을 땐 항상 쳐다보던 하늘, 여전히 변함없는 것은 하늘이었다. 화창했던 만큼 쓸쓸하며 슬프고 깊은 푸른색의 하늘. "한결아.." 조심스럽게 내 눈에 시선을 천천히 맞추며 다정하게 은하형이 내 이름을 불렀다. 형은 모를 것이다. 형이 내 이름을 불러줄 때마다 내 이름이 빛난다는 것을… 아마 모를 것이다. "예. 형" "내가 네 눈을 처음 보고 느꼈던 것은 저 하늘과 그 아이의 눈 속에 들어있는 것과 같은… ..........슬픔이었어.." "..." "그리고 외로움을 느꼈다." "형..." 찬란한 햇빛을 등에 지며 많이 왜소해진 형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형은 맑고 푸른 하늘을 슬프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만약 네가 언젠가 그 아이를 만나게 된다면, 만약 너와 같이 슬픔이 깃든 그 아이의 눈을 본다면 넌 분명 그 아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거야." "형..?" "만약, 우연히 그 아이를 만난다면 운명이라 생각하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나 대신 그 아이를 꼭 지켜주길 바래." 쓸쓸하게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옷깃을 간질인다. 바람에 휘날리는 갈색빛 머리칼에 가려진 형의 얼굴에서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느껴졌다. 백옥같이 하얀 피부를 가진 형의 야윈 얼굴이 아파보였고, 외로워보였고, 슬퍼보였다. 그 모습은 꼭 어디로 급히 도망쳐야 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멀리 떠나야하는 것같이. "형, 무슨 말이에요?" "그냥 혼잣말." 형은 나의 반문에 쓸쓸한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그게 내가 본 은하형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다음날, 형과 형의 여동생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은하형의 여동생은 사진으로도 나 밖에 본 적이 없는지라, (제대로 보지도 못했지만.) 아무도 사라진 은하형과 그 여동생을 찾을 수 없었다. [명문고등학교 2학년 7반] "은하형에 대한 것은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어." "차수진의 행방은?" "묘연해." "휴우. 신영고는?" "조용해졌어. 그런데 끝까지 누가 뒤에서 조종했는지는 말을 안 해." 정보통인 유빈이 노력을 했지만 형의 행방에 대해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 때부터였을까? 은하형이 실종된 뒤로 형이 물려준 이 서열 1위 자리를 아무도 넘볼 수 없도록 난 모두가 두려워 할 정도로 감정 없는 인형이 되었다. .............................. ............................................................. 그리고 형이 사라진지 1년째 되던 날, ‘세명고 2학년 7반 채은별..? 어디서 본 얼굴인데.’ 형의 말처럼 난 그 아이와 만날 운명이었을까? 우연히 난 버려진 아이의 손에 들려진 깊고 슬픈 눈을 가진 그 아이의 사진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은하형의 여동생 채은별이라는 아이를… . . . …운명일까? 정말로 우리가 운명이라면 내가 널 사랑해도 되겠니? * * * "그래, 은결이를 만난 건 우연이 아냐, 그리고 너와 만난 것도. 어쩌면 은하형은 모든 걸 알고 있었을 지도 몰라. 내가 너와 만나서 사랑하게 될 것까지도… 은하형이 준 세 번째 선물은 바로 너야. 채은별. 아참, 너 혹시 들어봤냐? 반란을 꿈꾸는..." ".........." 한결은 대답이 없는 은별을 바라본다. 그의 눈에 보인 것은 자신의 어깨에 기대 곤히 잠이 든 은별의 모습이었다. "야! 남이 졸라 열심히 얘기하는 데 혼자 쳐 자냐?" ".........." "젠장, 키스는 이자까지 쳐서 받을 줄 알아라.//"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은별의 이마에 키스하는 한결이다. 그러고는 그는 은별을 안아 올려 침대에 눕히고 옆자리에 누웠다. 한결은 자신의 옆자리에 누워있는 그녀를 꼬옥 끌어안고 잠을 청한다. "잘 자라, 내 꿈 꿔라. 씨발, 꿈속에서 딴 놈 만나면, 그 놈 작살낸다." "................" 어둠 속에서 이어지는 고요한 침묵. (툭-) 잠이 든 한결의 품속에서 잠자는 척 했던 은별의 눈에서 따뜻한 눈물 한 방울이 바닥을 향해 떨어진다. ‘한결아, 사랑해. 우리 세 식구, 오빠의 바램대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자. ............ ........... ................................... 오빠..... 은하오빠,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And that's all? 42. 그 일이 있은 후 쉴 새 없이 며칠이 흘렀다. 그 사이에 한결은 은결을 자신의 아들로 호적에 올리느라 법원을 쫓아다녔고 누구의 도움을 받았는지 간단히 그의 호적에 올릴 수 있었다. "한결아!! 넥타이 맸어?!" "아- 씹, 이딴 걸 왜 매야 하는데? 밭 매러 가는데!! 그냥 옷 입고 가면 되지!! 미쳤다고 정장 입고 가?" "그냥 평상복 입고 가면 너무 어려 보인단 말이야! 게다가 우리가 밭 매는 것도 아니잖아. 우리 엄연히 참관자라고." 그리고 오늘. 은결이의 유치원에서 가는 체험학습에 보호자로서 같이 가야하기에 아침부터 온 집안을 빗자루처럼 이리저리 휩쓸고 다니는 은별과 한결이다. "...하나둘셋!!!.. 폴짝폴짝 쿵쿵쿵!♬" 정작 체험학습을 가는 은결은 가만히 앉아서 하나둘셋에서 나오는 노래를 열심히 따라 부르며 얌전히 TV를 시청했다. "휴. 질렸다. 질렸어- 어떻게 넥타이도 못 매니?" "씨발, 못 맨다. 됐냐?!" "흐응~ 매줄까?" 평소 넥타이를 매본 적이 없는 그가 넥타이를 매려고 하니 그게 마음처럼 쉽게 되는가? 계속 비뚤어지고 모양이 이상해지는 게 사람 약 올린다. 넥타이 하나 못 매고 쩔쩔매는 한결에게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은별이 묻자, 한결은 그런 은별이 웃음 속에 꿍꿍이가 느껴졌는지 그녀의 눈을 피하며 대답했다. "씹. 매 줄 거면 매 줘. 쳐 웃지 말고." "호오~ 부탁합니다. 라고 말해야지?" "씨발, 때려치워!! 안 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짜증난다는 듯이 넥타이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소파 위에 불량스러운 포즈로 털썩 앉아버리는 한결이다. 은결은 그런 한결을 보며 갑자기 울먹거리더니 결국 울음을 터트린다. "흐앙. 아빠 거짓말쟁이!!!!! 바보!!!!! 미워!!!!!!! 은결이가 아빠 자랑 얼마나 많이 했는데!!! 아빠, 가야 해요!!!! 안 그럼 은결이 다시는 아빠 얼굴 안 볼 거야!! 은결이 삐짐!!" "으.. 은결아?" TV보다 갑자기 난데없이 떼를 부리는 은결의 모습에 한결은 적잖이 당황해 식은땀을 흘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모습에 은별은 생글생글 웃으며 한결을 쳐다보았고, 한결도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는지 무안한 듯 얼굴을 붉히며 개미가 기어가는 것 마냥 조그만 소리로 은별에게 말한다. "부탁해." "흐응~? 안 들리는데~?" 은별의 비아냥거림에 주먹을 꽉 지며 화를 참는 한결이다. 정말 애쓴다. 빠직 마크가 이마에 새겨지려고 그런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입으로 크게 은별에게 소리친다. "씨발, 부탁한다고!" "헤~ 들었다!!! 드디어~" 한결에게 엎드려 절 받기 식으로 들은 말이지만. 뭐 어쨌든 한결의 부탁한다는 말에 기분이 좋은 듯 생글거리며 그녀는 능숙한 솜씨로 단정하게 한결의 넥타이를 매주었다. "자~ 됐다" [딩동딩동-] 은별이 한결의 넥타이를 다 매주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결의 집 초인종 소리가 요란스럽게 집 안 가득히 울리기 시작했다. 손님 하나 찾아오지 않던 그의 집에 이른 아침부터 웬 벨소리? 어째 이거 좀 불안하다~? "어라? 이 시간에 누구지?" 의아함에 은별은 그대로 몸을 틀어 서둘러 이어폰을 받았다. "네, 누구세요?" [아하하하~♡ 한결이 마누라는 들어라! 오바~! 사랑이와 아리, 태하하고 유빈이에 의해 한결이 집은 완전히 포위 되었사와요~♡ 폭탄 테러하기 전에 우리도 은결이 체험학습에 데리고 가 줘요!!♡] 고막이 튀어나올 듯한 사랑의 큰 목소리에 얼떨떨해진 정신을 천천히 가다듬는 은별이다. 잠깐?! 이게 무슨 말이야? 체험학습에 데리고 가 달라니?!! 이어폰을 통해 들리는 사랑의 외침에 놀란 한결이 은별의 손에 든 이어폰을 뺏어 받는다. "씨발, 누가 오래?" [호오~ 누가 오래 라고? 현한결, 체험학습 장소에서 네가 애들 겁주지 않을까 걱정돼서 와 봤다!] "민태하, 내가 애냐? 애들 겁이나 주게? 필요 없으니까 학교나 쳐가라?" [안 돼~ 한결이 애 맞잖아! 매일 사고 치잖아! 게다가 학교 가기 싫어서 조퇴까지 하고 왔는데, 찾아온 친구를 뿌리치면 매정한 성격파탄자가 되는 거지!] "신유빈." [헤헤~ 한결아~ 사랑이는 미행이라도 해서 따라갈 거야! 못 가게 하면 한결이 곁에서 끈덕지게 붙어 있을 거야! 정 내가 가는 게 싫다면 나의 끈끈이 침 공격을 10회만 받아 봐.] 사랑의 말이 가장 결정타였는지, 한결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과거에 뭔가 사랑에게 많이 당한 듯 보이는 벌레 씹은 표정의 한결의 얼굴에 은별은 눈치를 보며 말한다. "한결아. 이제 갈 시간인데." "후- 너희들 얌전히 있어라. 눈에 띄는 짓 했다간 그 날로 저 세상이다." [만세!!♡] 어쩔 수 없이 인원이 대거로 늘어버렸다. 서둘러 신이 나서 흥얼거리는 은결을 품에 안은 한결과 은별이 모두가 기다리는 대문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사랑은 은결을 보자마자 쪼르륵 달려와 반가운 듯 말을 건넨다. "은결아!! 형아도 같이 가자!♡" "뭐야? 바보아저씨도 가는 거야? 수준 낮게." "헉..ㆀ 은결아~바보 아저씨가 아니라 형아래도." "한 번 바보 아저씨는 영원한 바보 아저씨야. 한 번 마귀할멈은 영원한 마귀할멈이고!" "헉.. 여..영원...??!!!!" "우씨! 도대체 내가 왜 마귀할멈인데!!! 이 깜찍하고 뷰티하고 프리티하고 큐트한 민아리가!!! 채은별. 도대체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야!!!! 엉!??" 은결이 진지한 표정으로 사랑과 아리를 향해 가시 담긴 말을 하자 은결의 행동에 사랑은 상처받은 듯 가는 길 내내 한결을 들들 볶아댔고, 아리는 은별에게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켰냐고 내내 따져댔다. 아무튼 우리의 은결군. 당신이 정말 사악하기도 하지.(훗) 43. [유치원 버스 안] 유치원 버스 안은 이미 많은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엄마, 그리고 함께 온 아빠들로 가득 차 성황을 이루며 웅성웅성 북적거렸다. 수많은 아주머니들은 어려 보이는 은별과 한결의 모습에 므흣한(?) 웃음을 지으며 은별 주위를 둘러싸고 질문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어머, 은결이 어머니하고 아버지는 굉장히 젊네요?" "하하;; 애.. 애를 일찍 나서요..;;;" "어머, 그럼 고등학생 때...//?" "///..아..아니 그게 아니라.." "사고도 대 사고를 친 게 아니죠. 크큭.." "하하-;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남들이 들으면 오해할 말을 정말 서슴지 않고 하는 아리의 모습에 은별은 부정의 말도 못 하고 쓴 눈물만 삼킨다. ‘아리 이 녀석. 지금 은결이 때문에 나한테 복수하는 거지?! 나중에 두고 보자!’ 마음대로 짓껄이는 아리를 흘겨보며 복수의 칼날을 가는 은별이다. 그렇게 은별과 아리는 아이들을 따라 온 부모님들과 함께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태하야, 우리도 고구마 캐서 팔아먹자." "신유빈, 너나 해." "요새 고구마 값이 얼마나 비싼데. 팔면 짭짤하다니까!" "진짜냐?" "응!!! 날 믿어." 은별과 아리가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잡담을 하고 있을 때쯤, 고구마를 수확해 몰래 팔아먹을 모의를 꾸미는 돈을 사랑하는 유빈, 그리고 유빈의 천산유수처럼 쏟아지는 말에 여느 때처럼 홀린 태하다. “바보들.” 그런 그들의 모습을 한결은 자리에 앉아 한심하게 쳐다본다. "우와!!!!!!! 귀여운 꼬마 엄청 많다♡" 사랑은 들뜬 마음으로 아이들을 쳐다보며 강력한 하트를 날린다. 그런 사랑의 모습에 아이들은 징그러운 듯 표정이 굳어지며, 바로 입에서 저절로 말이 튀어나왔다. "저 아저씨가 은결이가 말한 바보 아저씨인가 봐." "그런가 봐. 진짜 바보아저씨다!!" "헉...!! 으..은결이 너!!!" "(씨익-)" 커헉, 바보래. 바보!!!!! 이럴 수가!!!!! 사랑은 쏟아지는 아이들의 말에 충격을 받은 듯, 부들부들 떨면서 의자에 앉은 은결을 쳐다보았다. 그런 사랑에게 결정적으로 상처 준 것은 역시 한결을 아~주 닮은 사람 장을 꼬게 만들어 버리는 은결의 사악한 비웃음이다. "우씨..!!!!! 한결이 미워!!!!!! 이 성격파탄자들!!!!! 성격핵폭탄!!!!!! 천상천하 유아독존들!!!! 돼지들!!!!" 우리의 샌드백, 사랑군. 이리저리 치이는 게 정말 애처로워 보인다. 사랑의 눈물 섞인 애절한 외침을 뒤로하고, 유치원 버스는 체험학습 장소를 향해 부지런히 가고 있었다. * * * [체험학습 장소] "우와~ 밭이다!!!" "자, 모두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오세요." "네!!!" 밭에 도착하자마자 고구마 캘 준비를 하며 귀여운 꼬마 아이들은 노란색 유치원 체육복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밭으로 달려가는 아이들 사이에 은근슬쩍 끼어드는 얼굴에 철판을 깐 아리와 사랑 그리고 태하와 유빈이다. "자, 여러분! 고구마 캘 때 조심스럽게 잘 캐야하는 것 배웠죠? 오늘 이렇게 장소를 마련해주신 농부아저씨들께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잊지 말고요! 알았죠?" "네!!!!! 선생님!!! 농부아저씨 고맙습니다!" "허허, 뭘. 다들 재밌게 놀다 가요-" 농부 아저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정신없이 고구마를 캐는 일에 열중하는 순수한 아이들이다. "와아!!!!!!!!!!!!!!!! 고구마다!!!!!!!!!"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함성소리가 경쾌하게 밭에 울려 퍼졌다. 그런 아이들 사이에서 불순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후후. 이게 다 돈이야~" "야, 신유빈 좋아만하지 말고 너도 캐라고!!" "알았어~ 알았어~" 불순한 생각의 일인자! 유빈은 돈 생각을 하면서 입이 찢어질 듯 웃어댔다. 그런 유빈을 미친 인간인 듯 바라보며 열심히 고구마 밭을 파헤치고 다니는 태하다. 갑자기 유빈이 무언가 열심히 캐더니 태하에게 보여주며 큰 소리로 외친다. "심 봤 다!!!!!" 유빈의 얼토당토한 소리에 태하가 뭐 잘못 먹었냐는 표정으로 힐끗 유빈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자 그는 특유의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멀뚱히 바라보는 태하에 시선을 맞받아치며 말한다. "심봤어!!!! 고구마 밭에서 산삼 발견~!!!!!!!! 크기는 좀 작지만!!! 산삼은 산 속에서 나는 건 줄 알았는데! 밭에도 날 수가 있구나!!!! 우와~ 자연의 신비!!" "......" 산삼이라고? 이 논밭에서?! 좋아서 날뛰는 유빈의 손에 들려진 산삼이라 불리는 것을 태하는 이리저리 궁금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유빈은 산삼(?)을 소중히 끌어안으며 태하에게 말한다. "앗! 이건 내가 발견한 거야. 아무리 내 사랑 태하라도 줄 수 없다네~" "미친놈. 이게 산삼이냐?" "산삼이잖아?! 뿌리도 있고! 여기 불그스름한 꽃도!! 이거 팔면 시가 5000만원이야!! 나! 부자 됐다~~" "한심하다." 유빈이 정체불명의 식물을 소중히 모시며 날뛰는 것을 한심하게 쳐다보고는 태하는 옅은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미친, 돈에 눈이 먼 거냐? 아님 원래 모자란 거냐? 산삼 이름이 왜 산삼이겠냐? 산에서 나니까 산(山)삼이잖아! 한심하다. 신유빈, 내가 너를 믿은 게 잘못이지. 칡뿌리를 보고 산삼이라고 하는 녀석은 너 밖에 없을 거다." "헉..IIIIIIIII 칡뿌리라고?!!!!" 그렇다. 그 정체불명의 산삼은 어디선가 굴러온 칡뿌리였다. 유빈, 아는 척 하다 완전히 새 됐다. 완전히 새 됐어~♬ 그리고 이 와중에도 어느 커플은..... "꺄아!! 이 고구마 아리 닮았다." "헉!! 너무해!! 내가 그렇게 못 생긴 거야?!!" "아니. 맛있게 생겨서…" "핫../// 사랑이도 참~ 애들도 있는데///" 부끄러워하면서 입이 찢어질 듯 웃는 아리야. 너의 검은 속이 사랑이에게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하여튼 고구마를 캐면서도 닭털을 날려대는 사랑과 아리였다. 이런 철면피들~ 부럽다. 크윽! 44. 유치원 아이들과 한결 일행이 각각의 생각을 안고 열심히 고구마를 캐고 있을 때, 과연 한결과 은별은? "한결아!! 국 끓어나나 봐 줘!" "젠장. 내가 미쳤지." "불평 말고 얼른!!!" "알았어, 한다고!!!" 은별을 포함한 아줌마(?)들은 아이들이 먹을 점심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그리고 함께 따라온 몇몇의 아저씨들은 아이들과 함께 고구마 캐기에 바쁜데, 가정적인(?) 우리의 아빠 한결이는 당연히 은별이에게 끌려서 거들고 있다. 다소 불평은 많지만 말이다. "아얏.." 은별이 파를 썰다 손이 베인 듯 울상을 짓는다. 그녀의 베인 하얀 손에서 피가 주르르 흘러나오자, 은별보다 그녀의 옆에서 거들고 있는 한결이 더욱 놀란 듯 인상을 찌푸리며 피가 흐르는 은별의 손을 잡았다. "아앗.. 하..한결아, 아파." "씨팔- 조심해야지." [할짝-] "헉...////ㆀ" 은별의 가느다란 손가락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한결이 자신의 분홍색 도톰한 혀를 내밀어 살짝 핥았다. 그의 예측 불허한 행동과 처음 당해보는 묘한 느낌에 심장이 요동치며 얼굴이 붉어지는 은별이다. "어머, 은결이 아버님은 자상하기도 해라." "생긴 것도 훤칠하니.." "은결이 어머니는 좋겠어." "그러게, 아직도 신혼분위기가 폴폴 나네." ‘흐아..////신혼이라뇨!!! 아직 결혼도 못 해봤는데!!’ 마음속으로만 울부짖으며 오열하는 은별이다. 아줌마들의 말에 한결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은별을 자신의 품속에 아무도 보지 못하게 꼬옥 넣는다. 그녀는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런 한결을 쳐다보았고, 한결은 그녀의 이마에 붉은 입술로 도장을 찍고는 비웃음과 비슷한(?)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훗.. 채은별 들었냐?" "뭘?/// 이것 좀 놓고 말해." "싫은데? 안 들리냐? 날 찬양하는 소리. 채은별, 영광으로 알아라. 픽-" ‘또 돋아났냐? 성격파탄왕자병!!! 자폭증에 밥 말아먹은 녀석!!!! 아줌마들한테 그런 소리 들으니까 좋냐;?‘ …라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아줌마들의 칭찬 소리에 무아지경+자폭증에 빠져 헤어 나올 줄 모르는 한결의 품속에서, 바둥바둥 거리며 붉어진 얼굴로 한숨짓는 은별이었다. * * * "여러분! 점심시간이에요! 모두 모여요!!" "와아~~~~~~~~~~~ 밥이다!!!!!!!!" 점심시간이 된 것을 알리는 유치원 선생님의 외침에 사랑은 가장 먼저 소리치면서 점심을 만드는 아줌마들이 있는 야외식당으로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제일 빠르게 달려왔다. "은결아, 네가 저 아저씨 싫어할 만도 하다." "그러게, 완전 바보야!!" "수준 낮다. 진짜!!" 그런 사랑의 행동을 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은결의 주위에 모여 아이들은 나이에 맞지 않은 말들을 꺼냈다. 이런 성숙한 녀석들! 아이들의 정신세계란… "헉. 애들이 또 날 무시하네!!! 흐잉!" 아이들의 속삭이는 말에 또 상처받는 듯한 표정의 사랑, 그런 사랑이 안쓰러웠는지 은결이 한결처럼 인상을 쓰며 사랑을 욕하는 그들에게 한 마디 말을 던진다. "쉿. 저 사람 욕 하지 마." "엇!! 왜!!!" "아무튼 욕 하지 마!" "와!!!! 은결아!! 이 형아 감싸주는 거야?!" 자신을 옹호하는 듯한 은결의 말에 자못 감격한 듯 눈물까지 지으며 사랑이 은결에게 눈물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딱 잘라 은결이 냉랭하게 대답한다. "바보 아저씨. 착각은 노망의 지름길이라고 아빠가 말했어! 아저씨는 내 쫄병이니까, 아저씨를 놀릴 권리는 나한테밖에 없어! 메롱! 약 오르지?!" "헉..!!.. 쪼.. 쫄병...으억.. 혀..현기증이.. 흐앙!! 아리야!!!" 은결의 가슴을 콕콕 찌르는 비수 같은 말이 끝나자마자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저 멀리 걸어오는 아리를 향해 돌진하는 사랑이다. 언제나 사랑의 마음에 더욱더 깊은 쐐기를 박는 은결이다. 훗훗. 45. [야외식당] 모두들 정신없이 고구마를 캐고 난 뒤라 배를 많이 굶주렸는지 말 한마디 없이 맛있게 점심식사를 먹고 있었다. 한결의 옆에서 한 일도 없는 은별은 매우 많이 굶주린 듯 쉴 새 없이 밥을 퍼서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그러던 중, 귀엽게 생긴 남자아이가 은별에게 다가와 묻는다. "아줌마, 아줌마가 은결이 엄마예요?" "..케..켈룩..켈룩..;;" 생전 들어보지 못했던 아줌마라는 말에 너무 놀라 사래까지 들린 은별이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아이의 시선에 황급히 물을 마시고, 그녀는 애써 평정을 찾는 듯 빙긋이 웃으며 말한다. "으응. 그.. 그런데?" "아줌마, 내가 커서 어른 되면 나랑 결혼해요!!!!! 저요! 아줌마 아들 은결이보다 훨씬 잘생기고 똑똑해요!! 아줌마, 우리 집 부자니까 아줌마랑 짝짜꿍하면서 살 수 있어요." [툭-] 밥 먹는 도중에 아니 이게 웬 날벼락 같은 소리? 은별은 남자아이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들에 놀라 숟가락까지 떨어뜨렸다. ‘헉. 뭐야? 웨.. 웬 왕자병 꼬마?’ 한결도 그 아이의 말을 모두 들었는지 어이없게 아이를 쳐다보았다. 저게 아이의 입에서 나올 소리라고? 은별은 믿어지지 않는 듯 아이에게 다시 묻는다. "뭐.. 뭐라고?" "씨이, 내가 어른 되면 결혼해요!" ‘지금 이 꼬맹이가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ㆀ’ 순진하면서도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아이의 굳센 모습에 상당히 당황한 은별은 굳은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녀의 등 위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다. "와! 채은별, 인기 좋다. 14살 연하한테 프로포즈도 받고. 그나저나 우리 한결이 힘들겠네― 쿡쿡- 어쩌냐?" "맞아, 은별이는 좋겠다~♡" 유빈이의 말에 사랑이 옆에서 시시덕거리며 맞장구를 친다. 그들의 말이 들리지도 않은지 자신을 똘망똘망 쳐다보는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야 될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은별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은결이 밥상을 탕탕 치며 의자 위로 올라가 남자아이를 가리키며 큰 소리로 외친다. "우리 엄마는 은결이 거야!!!! 은결이가 크면 엄마랑 결혼할거야!!" Oh- my God! 이젠 은결이까지!!!!!!! 후훗. 작가의 농간이다.[탕] "오~ 이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까지! 은결이 화이팅!" "한결이 적은 나날이 늘어나네. 낄낄~ 스릴 넘치네~ 꼬맹이들이 라이벌이라니!!! 킥킥. 난 Only 은결이 화이팅!♡"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이 유빈과 사랑은 은결을 응원하고, 은결은 그에 힘을 얻었는지 다시 한 번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자신을 바라보며 이를 가는 남자아이에게 크게 외친다. "야! '진사랑'! 우리 엄마는 은결이 거야!!!! 우리 엄마는 나중에 은결이 크면 은결이랑 결혼할거야!!!" [싸아아아아-] 일동 한 순간 침묵의 늪에 빠졌다. 모든 시선은 은결이와 꼬마 진사랑에게 쏠리고, 자신의 이름을 꼬마 애한테 부르는 은결의 목소리를 듣고 당황한 18살 사랑이 버벅대며 말한다. "지.. 지금 방금 은결이가 저 꼬마 애더러 ‘진사랑’이라고 하지 않았어..?" "나도 그렇게들은 것 같은데." "호ㅡ 그렇게 된 거였군. 크큭." 어리둥절해하며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는 태하와는 사뭇 다르게 유빈은 뭔가를 알아냈다는 듯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며 생글거린다. "뭐야? 뭐야?! 신유빈!! 왜 웃어!!! 너는 알고 있지?!!! 웃지 말고 나도 알려줘!" 그러자 궁금하다는 듯이 유빈을 추궁하는 사랑이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유빈이 짓궂게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 "숙명의 라이벌 이름이 ‘진사랑’이니, 은결이가 같은 이름을 가진 널 그렇게 싫어할 수밖에." "헉..!! 그.. 그런 거야??!!! 이름 하나 같은 거 가지고?" "어린이한테는 이름만 같아도 숙명의 대상이야." 유빈의 입에서 술술 나오는 말에 사랑은 울 쌍을 지었다. 이제야 은결이가 자신을 가면 갈수록 더 싫어해 하는 이유를 안 사랑이다. "흥!! 이름만 같은 게 아니라!! 진사랑이랑 똑같아서 수준도 낮아! 메롱!!!!" 은결이 꼬마 사랑을 가리키며 18살 사랑에게 결정타를 날리자, 사랑은 충격에 빠진 듯 혼잣말을 중얼중얼 거리고, 아리는 도탄에 빠진 사랑을 위로하려 말을 꺼낸다. "사랑아! 울지 마! 네가 울면 내 맘이 아파! 네 마음이 은결이에게 전해질 날이 올 거야!" "그.. 그렇겠지..?!" "응! 내가 있잖아!" "응♡ 아리가 있으면 무서울 게 없지♡" 은결이한테 또 한 번 결정타를 맞고도 그럴 맛이 나는 걸까? 와중에도 닭털을 날리는 대단한 철면피 아리&사랑 커플. 정말 대단합니다! 확 철판 닭구이를 해먹어 버릴라! 46. * * * "엄마! 크면 은결이랑 결혼할거죠?!" "아줌마! 크면 은결이 말고 사랑이랑 결혼해요!" ‘헉, 아가들아. 왜 그러니? 아무리 내가 예쁘다지만.’ 아이들의 재촉에, 식은땀을 흘려가며 허둥대는 은별 옆에서 오묘하게 표정이 찌그러지며 한결의 이마에 빠직 마크가 생겼다. 한결은 당황한 은별의 허리를 꽉 끌어안으며 화가 났을 때의 특유한 저음으로 또박또박 아이들을 향해 말한다. "채은별 내 꺼 거든. 여기 있는 이 아줌마 나랑 결혼했어. 후- 그러니까 좋은 말할 때 애송이들은 빠져라?" 당장이라도 슝-하고 레이저가 나올 듯한 한결의 위압적인 눈빛에 조그만 몸을 콩벌레가 위협받는 것 마냥 동그랗게 수그리는 꼬마 사랑이다. 역시 힘없는 약자는 비참하다. 꼬마 사랑이는 은결을 노려보더니 휙 말을 던지며 사라졌다. "나중에 커서 두고 보자!!! 아줌마, 기다려요!!!" 마지막까지 아줌마라니. 은별, 패닉 상태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다. ‘헉. 아냐!!!! 난, 난 아줌마가 아냐!!!!!! 아니란 말야!!!!! 어째서!!! 꽃다운 18살에 아줌마 소리를 들어야하냐고!!!‘ 연신 아줌마란 말을 들은 게 꾀나 충격이었는지 쇼크 받은 듯한 은별은 혼자만의 패닉 상태로 계속 빠져 들어갔고, 은결은 한결의 말에 불만인 듯 볼을 부풀리며 외친다. "아빠!! 엄마는 은결이 거예요!!!" "네 엄마는 아빠 거야." 은결의 항의하는 듯한 말에 딱 잘라 반박하는 한결이다. 한결의 대답에 은결이의 귀여운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결은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띠거운 듯 은결의 시선에 적극 대응하는 따가운 시선을 보낸다. 그런 한결을 보며 은결이 울먹거리며 은별의 품안으로 쏙 들어간다. "엄마! 세상에서 은결이가 가장 좋죠?" 천진난만한 얼굴로 패닉 상태에 빠져 있는 은별에게 은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은결의 말에 정신이 들었는지 식은땀을 흘리며 매우 황당해하는 은별이다. "ㆀㆀㆀㆀ" "............." "......................(빠직)" 한결은 은결의 말에 대답을 주춤거리는 은별을 아주 뚫.어.지.게 노려본다. "나보다 은결이가 더 좋다고 하면 넌 끝이야." 란 눈빛으로. 은결 역시 간절한 눈빛으로 은별의 시선에 시선을 맞췄다. ‘저 유치한 녀석. 분명 내가 은결이가 더 좋다고 하면 저 녀석은 날 저 세상으로 보낼지도 몰라!!!! 황천길이라니- 아줌마란 소리를 들은 것도 억울한 데!!!!! 그렇다고 한결이가 더 좋다고 하면 은결이가 상처 받을 텐데...‘ 행복한 고민을 하며 괴로워하는 은별이다. 진정으로 당신이 부럽소! 어쨌건 생각을 마쳤는지 최선의 답을 말하는 은별이다. "엄마는 말이야, 은결이랑 은결이 아빠랑 둘 다 똑같이 좋아해." "헉!!! 안 돼!!!! 은결이가 아빠보다 더 좋아야한단 말이야!!!" "씨발, 하나만 골라. 채은별, 너 솔직히 말해라?!" 그러면서 주먹을 불끈 쥐는 한결아, 넌 뭐니?ㆀ 한결과 은결의 끊임없는 추궁에 은별은 아예 땀으로 목욕을 했다. 한결과 은결은 서로 지지 않겠다는 눈빛을 교환한다. 이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심각하게 갈등하는 은별이다. ‘부처님, 예수님, 공자님, 보살님, 하느님.. 저에게 어찌 이 가련한(?) 어린양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나보고 어찌 하라고!!!! 흑흑.. 난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 거야.‘ 어이, 어이. 아가씨? 핀트가 벗어났어! 은별, 그녀 역시 천상천하 유아독존 한결의 왕자병에 옮은 것인가? "야, 상황 죽인다. 이거 부자간의 싸움인 건가!?" "쯧. 뭐 이런 저런 면에서 최강의 라이벌이네, 현한결. 야, 근데 싸우려면 집에 가서 싸워! 이제 집에 가야지." 태하의 중재로 한결과 은결의 눈싸움은 멈추어 졌지만, 집에 가는 길 내내 한결과 은결의 살벌한 분위기 사이에서 애꿎은 은별만 때 아닌 식은땀만 죽죽 흘려대야 했다. * * * [한결의 집] 냉전 상태로 집에 도착한 한결과 은결, 그리고 너무나 많은 땀을 흘려댄 탓에 녹초가 된 은별이다. 은별은 흙먼지를 뒤집어쓴 은결을 보곤 한결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한다. "은결아, 엄마랑 목욕하자." "네!" 갑작스런 은별의 말 중에서 무언가를 듣고 분노한 듯 한결의 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귀에 걸린 피어싱이 흔들린다. 한결은 눈에서 레이저빔을 은별에게 쏘아대며 그녀를 향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씨발. 채은별 방금 뭐라고 그랬냐?" "어? 은결이랑 목욕하자고..." "죽고 싶냐?" ‘이 성격파탄자야. 넌 또 왜 그래..’ 한결이 왜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은별은 곰곰이 자신이 한 말을 되씹어본다. "어.. 어??!! 왜???!!;;" 한결이 무지하게 화난 듯 보이자 무조건 기는 힘없는 은별이다. 한결은 은별을 뚫어지게 노려보다 은결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현은결, 사내자식이 엄마랑 목욕하는 게 어디 있어! 아빠랑 해" "어? 한결아. 질투하는 거야~?" "시끄러." 부끄러운 듯 붉어지는 얼굴을 하며 당황해서 아무렇게나 말을 내뱉는 한결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는 귀여워 보여 은별은 소리 없이 피식 웃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눈썹을 꿈틀대며 은별에게 고함치는 한결이다. "씨발, 채은별, 쳐 웃다가 소리 없이 죽는 수가 있다?" "쳇;;" ‘그 성격파탄이 어디로 가겠냐. 쳇. 천상천하 유아독존 왕자병!! 혹시 목욕탕에서 우리 은결이 추궁하는 거 아냐?!!!!‘ 잘근잘근 한결을 속으로 씹어대며 이상한 상상을 하는 은별을 뒤로하고 한결은 은결을 데리고 욕실로 들어갔다. * * * [욕실 안] 욕조 안에서 자신을 씻겨주는 한결을 바라보며 심각하게 고심하던 은결이 한결에게 천천히 말한다. "아빠! 지금은 엄마, 아빠한테 양보할게요." "호, 포기했냐?" 한결은 은결이 귀여운 듯 볼을 꼬집으며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은 은결이가 힘이 없잖아요! 10년 뒤에는 은결이가 아빠만큼 커서 엄마 돌려받을 거예요." "픽. 그러던지." 진지하게 말하는 은결이 순진하면서도 귀여운지 한결은 미소 지으며 은결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한결의 손길에 은별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흥얼거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헤헤ㅡ 은결인 엄마를 좋아하는 만큼 아빠도 좋아요! 그러니까 믿고 맡기는 거예요!" 47. 비가 내리려고 하는지 푸른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고, 지면에는 습기 어린 눅눅한 바람이 불었다. 학교가 파하고 서둘러 은별은 아리와 함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휴우." "웬 한숨이야? 은별아?" "휴우우우-" "야. 웬 한숨이냐니까!!!" "휴우우우우우-" [딱-] 세상이 꺼질 듯 한숨을 쉬면서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은별의 머리에 아리는 있는 감정 없는 감정 모두 실어 꿀밤을 주었다. 은별은 눈물을 찔끔 흘리며 아리를 노려보며 소리친다. "우씨!!! 남은 심각한데 너 자꾸 그럴래?!" "뭐가 그렇게 심각한데?" "며칠 있으면 한결이하고 사귄 지 100일째 되는 날이란 말이야." "억! 그것 밖에 안 됐어?!!" "죽을래?" 자기 일 아니라는 식의 반응의 아리를 살짝쿵 살기를 실은 눈빛으로 노려보는 은별이다. 은별이 농담할 기분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는지, 아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은별에게 진지하게 묻는다. "하하하- 그런데?" "그게...!!! 흐아앙!!! 그 무심한 녀석은 아무 것도 모른단 말야!!" "흠, 과연. 예상대로구나. 현한결 걔는 그럴 만도 해, 호호호. 사랑이는 나한테 백일 때 장미 백송이랑 케이크랑!! 비~이~싸~안 커플링까지 줬어♡ 부럽지?! 부럽지?!" 아리는 울 쌍인 은별에게 자랑하듯 가운데에 하트모양의 루비가 박혀있는 귀여운 커플링을 그녀의 눈앞에 가져다 댔다. 지금 끊는 물에 식용유 붓는 거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듯한 그녀의 행동에 은별 더욱 열 받는다. "그래~ 징하게 부럽다!!! 이 바퀴벌레 한 쌍아!!!!" "뭣이, 바퀴벌레?! 잉꼬도 있고, 닭도 있고, 더더구나 진드기라도 있는데!!! 왜 하필 그 더러운 바퀴벌레 한 쌍이야!!!!!!!!" 아리야, 그게 논점이 아니잖아. 생각해보니 은별은 변변한 커플링도 받아본 적이 없다. 마지못해 은별은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커플 골든벨에서 우승해서 탄 상품인 은빛의 심플한 커플링을 쳐다본다. 이내 반지를 보다 또 한숨을 짓고 마는 은별이다. "휴. 무드의 무자도 모르는 그 녀석한테 무드란 걸 바라면 뭐 해. 하늘에서 별 따기이고, 사막에서 바늘 찾는 거랑 똑같지 뭐. 휴우. 포기해야지, 포기. 히잉~ 그래도 백일인데, 현한결 이 못된 놈!!!" "친구 기운 내!! 음, 은별이 넌 뭐 해주려고 그러는데?" 은별은 아리의 질문에 요리조리 머리를 굴리며 곰곰이 생각하다 한숨을 푹 쉬며 말한다. "실은, 나도 뭘 준비해야 되는지 모르겠어. 겨울이하고 사귈 때도, 이런 것에는 무관심했으니까." "흐음~ 이제 보니 너 완전히 외골수였구나? 쯧쯧. 순진한 것! 그러니까 여태까지 첫 키스도 못 했지." "아.. 아냐..////!!!!!" 아리의 말에 갑자기 한결과의 키스가 생각났는지 은별의 하얀 얼굴이 점점 사과보다 더 붉어졌다. 아리는 그런 은별의 얼굴과 당황한 행동에 보고 감을 잡았는지 번쩍 눈에서 광을 내며 은별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호오, 이 앙큼한 뇬. 키스 해 봤구나!!!" "남이사!! 키스를 하건 말건////!!!!" "은별아. 얼굴 그만 붉혀. 호박에 열 가한 것 같아!! 근데, 몇 번 해 본 거야? 느낌이 어때?" 키스 얘기가 나오자, 때를 기다렸다는 듯 눈에 안광을 내뿜으며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붉어진 은별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아리다. "누구보고 호박이라는 거야!!! 이 변녀!!!!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흐응~ 아무튼 은결이도 있는데 대단하다. 하긴 같이 사니까. 그렇게 안 봤는데, 현한결 인내심도 끝내주네. 아니면 은별이가 너무 유아틱해서 여자로 안 보인다거나." "죽을래?!!" 은별이 씩씩거리면서 아리를 노려본다. 아리는 은별의 시선을 무시하며 다른 곳을 쳐다보다 무언가를 보고 놀란 듯, 눈이 동그래지면서 당황한 듯 은별을 쳐다본다. "왜 그래?" "은별아, 저.. 저 사람 현한결 아니야?" 아리가 가리키는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은별. 건너편 길에 한결로 보이는 명문고 교복을 입은 소년과 어떤 미모의 여자가 다정스럽게 웃으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은별의 눈에 들어왔다. 은별은 믿어지지 않는 듯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보았지만 이미 다정해 보이던 그들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 .................. "은별아. 은별아." "어? 어." 아리가 여러 번 은별의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정신이 드는지 한결이 사라진 쪽에서 눈을 돌려 자신을 부르는 아리를 쳐다보는 은별이다. 아리는 은별이 걱정스러운 듯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우리가 잘못 본 걸 거야. 현한결이 여자한테 그럴 리가 없잖아." "....응...." "근데, 너 요새 식사는 제대로 하고 있어?!" "..응.. 걱정 마. 먼저 가 볼께." 아리의 말에 은별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힘없게 대답하고 아무 말도 없이 터벅터벅 걸어 길게만 느껴지는 집으로 향했다. 충격을 받은 듯 비틀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아리의 눈에는 쓰러질 듯 위태롭게 보였다. 48. [한결의 집] "다녀왔습니다." 은별이 집에 들어왔을 때 한결은 어디에도 없고,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은결만 조금 늦은 은별이 반가운 듯, 은별에게 안기려는 듯 두 팔을 벌리고 뛰어왔다. “엄마!!!” "은결이 오늘 하루 잘 지냈어?" 그런 은결을 꼭 끌어안으며 힘없게 웃으며 은결에게 묻는 은별이다. 은결은 그런 걸 모르는지 은별의 목을 꼭 끌어안고 기분이 좋은 듯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한다. "잘 지냈어요! 엄마!!!" "그래. 아빠는?" "아참! 오늘 바보아저씨하고, 아빠 친구 형아가 은결이 데려다 줬어요! 바보아저씨가 막 은결이한테 아빠라고 부르라고 해서 떼찌 해줬어요!!! 헤헤- 엄마, 엄마 아들, 은결이 잘 했죠??!!" 바보 아저씨는 사랑을, 아빠 친구의 형은 태하를 말한다. 은결이 유일하게 형아라고 부르는 사람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태하 밖에 없다. 그가 아마 한결과 닮아서 그런 게 아닐까? "그래? 바보아저씨 혼내줘야겠네." 신이 나서 조잘대는 은결의 머리를 은별은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은결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은별의 손길이 부드러워 기분이 좋은지 은결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을 잇는다. "아참! 그리고 아빠 친구 형아가 오늘 아빠 늦는다고 전해 달랬어요!" "그래?" 은결의 말에 더더욱 은별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아까 전에 여자와 웃으며 걷던 한결의 모습이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지는 기분이 든다. "....그래.. 그런 건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은별의 낯빛이 안 좋은 걸 느꼈는지, 은결이 그 작고 귀여운 손으로 은별의 볼을 슥슥 만진다. "엄마, 어디 아파요?" 천진한 눈을 크게 뜨며 진지하게 묻는 은결이다. 은별은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은결의 모습에 어느 샌가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나왔다. 은별은 눈물을 흘리며 은결을 향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엄마는 아빠를 믿어야겠지? 은결아?" "엄마, 울어요?!! 왜 울어요!!?? 엄마 울면 은결이 슬프단 말이에요!!" 은별의 눈에서 반짝이며 흐르는 눈물을 보며 은결 역시 덩달아 같이 울먹거리며 흐느꼈다. 은별은 그런 은결의 모습에 눈물을 소매로 닦으며 은결의 작고 외소한 몸을 더욱 꼭 끌어안으며 말을 잇는다. "엄마 안 울어. 우리 은결이가 있는데 왜 울겠어." "엄마?! 누가 엄마 괴롭혀요?!! 은결이 혼내줄게요!! 울지 마세요!!!" (chu-) 나이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은결이다. 항상 자신을 위해주는 은결의 말이 기특했는지, 은결의 볼에 뽀뽀를 하고 빙그레 웃으며 은별이 말한다. "그렇게 말해주니까 든든하네, 우리 은결이. 오늘 아빠 늦게 오시니까, 엄마랑 둘이서 맛있는 것 해 먹을까?!" "헤헤~ 좋아요!!" 은별은 은결의 함박웃음에 힘을 얻고 소파에서 툴툴 털면 일어났다. 그리고는 은결이 좋아하는 포켓몬스터를 틀어준다. .............. ................... "피카츄!!! 어~~~ 피카츄!! 힘내!!!! 안 돼!!! 로켓단!!! 피카츄!!!! 전기쇼크!!!" "엄마......;;;" "꺄아아아!!! 피카츄 내 사랑~♡" 은결 옆에서 피카츄를 보며 열광하는 은별을 아까 전에 눈물 흘리며 운사람 맞아? 라는 식의 한심스러운 눈으로 은결은 그녀를 쳐다보았다. "핫ㆀ" 그런 은결의 눈빛에 당황한 은별은 은결을 향해 베시시 바보처럼 웃어 보이고 부엌으로 들어왔다. 은결이 눈에 보이지 않자 그녀의 낯빛은 다시 창백하게 변했다.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그녀는 연신 ‘괜찮아’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불안하게 떠는 자신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49. [댕- 댕-] 새벽 2시를 가리키는 거실에 걸려있는 시계종이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그 종소리는 한결을 애타게 기다리는 은별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다. 한결이 아직도 오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기에... "흑.. 나쁜 자식..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마음이 아파왔다. 아까 낮에 본 영상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은별은 소파 위에 다리를 모으고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앉아 있었다. 다리 사이에 파묻은 그녀의 얼굴에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그 눈물이 흘러내려 그녀의 바지를 적신다. 아무리 다른 생각을 떠올리려고 해도 한결과 미모의 여자의 다정한 모습이 은별의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달그락-]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은별은 현관 쪽을 쳐다본다. 많이 지친 듯한 표정의 한결이 자신을 여태 기다리는 은별의 모습을 믿어지지 않는 듯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내 은별의 눈에 아롱아롱 매달린 눈물이 보였는지, 서둘러 그녀 앞으로 다가가 풀썩 힘없이 앉는 한결이다. 눈물이 흐르는 그녀의 볼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한결이 입을 열었다. "왜 우는 거야?" ".........." 한결의 질문에 말없이 멀뚱히 그를 쳐다보는 은별의 모습에 한결이 지친 표정이 역력히 드러나는 얼굴에 픽- 생기 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냐? 하긴 이 몸이 워낙 잘 생겨서 보고 싶겠군." ‘씨!!! 나쁜 녀석!!! 남은 열나게 걱정했고 만!!!! 또 자폭증부터 발동이냐??!!! 나빴어!!! 진짜 못 됐어!!!‘ 그녀는 속으로 한결을 잘근잘근 씹으며 복잡한 심정으로 진정이 안 되는 가슴을 안고, 고개를 들어 한결을 빤히 쳐다보다 은별이 입을 열었다. "어디 갔다 이렇게 늦은 거야?" "....... .....아는 사람 좀 만나느라.." 은별의 질문에 약간의 공백을 두고 대답하는 한결의 말에 은별은 가슴속에 묻혀두었던 불안감이 더해져 결국 눈물이 볼을 타고 또그르르 굴러 떨어진다. "아. 씨발, 왜 자꾸 우는 건데." 왠지 모를 불안에 떠는 은별을 꼭 끌어안는 한결이다. 은별은 그런 한결의 등을 꼭 끌어안는다. 은별은 고민스러웠다. 낮에 자신이 본 장면을 말해야 하는 건지... 한참이 흐르고, 조심스럽게 은별이 한결에게 조용히 말을 꺼낸다. "한결아.. 저기, 오늘 낮에..." "오늘 낮에 뭐?" "...아.. 아냐, 아무 것도.." 그녀는 그에게 묻기가 겁이 났다. 은별은 대충 말을 얼버무리고는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한결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런 은별의 턱을 한결이 한쪽 손으로 부드럽게 잡고 자신을 바라보게끔 돌렸다. 그리고 다른 한 쪽 손으로 은별의 허리를 강하게 안는다. (chu-) 많은 눈물을 흘려 약간 부은 듯한 은별의 눈에 한결이 부드럽고 따뜻한 입술이 살짝 와 닿았다. "아..앗..///" 갈수록 대담해지는 늑.대 한결의 농도 짙은 스킨십에 놀란 듯 붉어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푹 수그리는 은별이다. 그리고는 개미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따지는 듯이 한결에게 말한다. "..무.. 무슨 짓이야..///" "기운이 나게 하는 마법의 주문." 한결의 말에 한없이 붉어지는 얼굴을 푹 수그리며 은별이 중얼거렸다. "못 됐어. 진짜.." [두근두근-] 그의 품에 안겨있는 은별에게 한결의 경쾌한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한결의 심장 고동 소리에 덩달아 은별이 심장도 빠르고 가쁘게 뛰어댄다. 50. "바보, 그게 무슨 주문.. 읍.." 한결의 입술이 은별의 촉촉하고 작은 입술에 와 닿는다. 한결의 분홍빛 혀가 은별의 입술을 부드럽게 애무한다. 한결은 살짝 장난스럽게 은별의 입술을 깨물며 말한다. "사랑해, 채은별." "...///" 한결의 말에 장밋빛으로 붉게 물드는 은별의 얼굴. 한결은 자신의 가늘고 흰 손으로 은별의 턱을 받치고는 다시 은별의 입술에 부드럽게 다가가 키스했다. "하..읍.." 한결의 혀가 그녀의 입 속으로 들어오려던 찰나, 한결에게서 은은한 허브 향이 아닌 낯선 오렌지 향을 느끼고 애무하는 한결의 혀를 거부하며 거칠게 입을 떼고 은별은 한결의 품에서 떨어져 고개를 돌려 버렸다. "........" "..왜 거부해?.." 은별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듯 굳어 있다가 그녀의 손목을 꽉 잡으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는 한결이다. 자신도 모르게 낯선 향기에 한결의 키스를 뿌리친 은별도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한결의 눈을 쳐다보다, 한결의 상처받은 듯한 눈빛에 조그만 목소리로 말한다. "미안. 한결아, 나 피곤하다." "너 얼굴색이 왜 이래? 어디 아프냐?" 은별의 눈에 띄게 창백한 얼굴빛을 보며 걱정스럽게 은별의 얼굴을 만지며 묻는 한결이다. 은별, 한결의 적응 안 되는 모습에 닭살부터 돋는다. ‘으윽...; 다.. 닭살이... 우두둑... 갑자기 왜 이렇게 느끼해진 거야? 뭐 독 들어있는 거라도 먹었니?! 아님 혹시 단 것 먹고 사경을 헤매다 온 거니;?‘ "..아.. 아냐ㆀ 안 아파ㆀ 피.. 피곤해서 그래..." "흐응.." 한결은 고심하는 듯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던 그는 은별을 번쩍 안아 올리더니 터벅터벅 걸어 자신의 방 침대 위에 살며시 은별을 내려놓고는 그 옆에 피곤한 듯 그는 쓰러지듯 누워버렸다. "사랑해, 은별아." 은별을 꼭 끌어안고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하는 한결이다. 한결의 조용하고 잔잔한 저음의 목소리에 안심이 되는 듯 은별은 그렇게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 * * * 그렇게 물 흐르듯 며칠이 금세 흘러 버렸다. 그리고 언제나 일상처럼 은별과 아리는 학교가 파하자 서둘러 집으로 향하기 위해 하교 길에 올랐다. "은별아. 쟤 현한결 맞잖아." "...어..." "또 저 여자랑 가고 있잖아." ".........." 아마 한결은 자신을 보지 못 하였을 것이다. 벌써 며칠 째일까? 미모의 여자와 사라지는 한결을 보는 은별의 눈이 슬프게 일렁거렸다. 며칠째 한결이 미모의 여자와 같이 어디론가 향하는 것을 말없이 지켜본 은별이지만 그 옆에서 지켜보던 아리가 쫓아가자고 말해도, 은별은 말없이 고개를 저으며 사양했다. 한결을 믿기에, 요 며칠째 한결의 피곤한 모습에 말조차도 꺼내지 못했다. * * * [한결의 집] "엄마, 은결이 아빠 보고 싶어요!!" "은결아. 얼른 자야지. 아빠 오시면 깨워줄게." "히잉.. 알았어요..." 한결은 여전히 새벽 2시가 넘어서야 들어왔고, 밤마다 은결은 아빠가 보고 싶다며 자꾸 은별에게 칭얼거리다 잠이 들었다. 은별의 불안감은 당연 자연스레 불어났고 그로 인해 한결을 믿는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 ................................................ 그 날도 한결은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귀가했다. "한결아, 도대체 왜 이렇게 늦는 거야?" "..몰라도 돼.." 밤마다 눈물로 지새는 은별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나날이 차갑게 변하는 한결의 모습에 은별은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아본다. 그는 한숨을 한 번 쉬고는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현한결, 내가 싫어진 거야? 그렇담 확실하게 말해!!!" "........" 이성의 끈이 끊기며 더 이상 못 참겠다고 생각한 끝에 은별이 한결에게 소리쳤지만 잠들었는지 한결은 대답이 없었다. 은별은 소매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한결에게 차갑게 외친다. "나도 몰라, 나 은결이랑 잘 거야." [쾅!!!] 그 외침을 마지막으로 은별은 한결의 방문을 세게 닫고 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내일 한결에게 줄 선물이 들려있었다. 십자수로 직접 만든 핸드폰 줄과 한결의 분위기와 어울릴 듯한 캐주얼한 시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처음으로 줄 선물이었다. 그런데 정작 선물의 주인인 한결이 변해가고 있다. "흐흑...흡.. 나쁜 자식..." 은별은 곤히 자는 은결을 꼭 끌어안고 눈물로 또 날을 지새웠다. 꿈과 낭만을 그렸던 사랑이 산산이 부서진다. 그리고 오늘, 한결과 은별의 100일이 닥쳐왔다. 51. [일어나!!! 돼지야!!! 안 일어나면 보쌈해 먹는다!!!♬] 아침 7시가 되자 은별의 요란한 핸드폰 알람이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 드디어 한결과 은별의 백일인 날이 밝은 것이다. 아침 햇살은 여느 때처럼 따뜻하게 비춰왔지만 은별에게 오늘 아침 햇살은 마치 살을 에는 듯한 비수와 같이 느껴졌다. "아아악!!! 씨이, 나쁜 자식!!!! 왕자병!! 자폭증!!!! 성격파탄자!!!" 새벽녘이 되서야 잠깐 잠이 든 은별이다. 그녀는 일어나자마자 아무 얘기라도 하기 위해 한결의 방에 들어갔지만 이미 한결은 방안에 없었고, 고요한 정적만이 맴돌 뿐이었다. "엄마, 아빠 또 없어요?" 은별의 흐느낌 소리에 일찍 잠에서 깼는지, 부스스 일어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묻는 은결이다. "흑.. 은결아.. 우리 은결이.. 엄마..는.. 흑.. 어떻게 해야 할까.. 은결아.. 엄마랑.. 흡.. 둘이서 살까...? 엄마랑 둘이서..." 은별은 은결을 품에 안고 솟아 나오는 눈물을 참으려고 붉은 입술이 피가 나도록 꽉 깨물었다. 은별의 아파하는 모습에 은결의 눈이 반짝거리더니 이내 눈물이 고였다. "엄마! 울지 마요!!!" "..흐읍.." "울지 마요!!!! 흐앙!!!! 아빠 미워!! 엄마 지켜준다면서!!!! 엄마 울리기만 하고!!!" 구슬프게 우는 은별과 같이 짠 눈물바다를 이루는 은결이다. 한참을 울더니 은결이 소매를 쓱쓱 눈물을 닦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큰 목소리로 은별에게 말했다. "엄마!! 은결이 이제 투정 안 부릴게요!! 아빠 대신 은결이가 엄마 지켜줄게요!!" "은결아, 우리 은결이..." 굳센 의지가 가득 담긴 듯한 은결의 힘찬 말에 은별 역시 흐르는 눈물을 닦고 그에게 활짝 웃어 보인다. 아이의 위로가 이렇게 힘이 될 줄이야. 아마 은결이 없었음 은별 그녀는 또 한 번 힘없이 무너졌겠지. 은결이 대견스러움에 은별이 은결의 머리를 쓰다듬고 볼에 짧게 뽀뽀를 했다. 그녀는 은결이의 작은 엉덩이를 톡톡 두어 번 쳐주며 말했다. "자, 우리 자랑스러운 은결이, 유치원 가야지!" * * *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엄마! 은결이 없다고 울면 안 돼요! 금방 다녀올게요!" "그래, 안 울게." 은별의 곁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은결을 억지로 유치원 차에 태워 보내고, 은별 역시 서둘러 학교로 향한다. 마음이 무거운 만큼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하아. 나도 미쳤지." 혼자 길을 걷다 보니 한결의 생각이 난다. 한결의 생각이 떠오르니까 머리끝에서부터 화가 치미는 은별이다. "나쁜놈, 자폭증!! 천상천하 유아독존!!! 씨이... 원래 그런 놈이었어!! 오늘 백일인데… 미쳤어, 미쳤어!! 왜 자꾸 현한결 생각만 나는 거야!!" 흥분한 은별의 눈앞에 보이는 건 찌그러진 깡통이었다. 은별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는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깡통을 한결이라 생각하고 있는 힘껏 깡통을 찼다! [깡!!!!!!!!!] "아!!! 씨발!!! 내 귀한 머리를!!!! 또 누구야?!!!!" "헉!!!!IIIIIII" 누군가 깡통에 정통으로 맞았는지 맑고 경쾌한(?) 소리와 함께 맞은 사람의 고함소리가 은별의 귀로 정확히 꽂혔다. 은별 또 사고 쳤다! 헌데, 은별의 귀에 깡통을 맞고 소리치는 사람의 목소리가 낯설지가 않았다. ‘헉.. 저 왕자병.. 저 목소리.. 낯설지 않아..ㆀ 혹... 저.. 저번에 깡통 맞았던 놈(3화 참조)은 아..아니겠지?!! 채은별!! 미쳤어!!! 또 깡통이나 차다니!!!‘ 은별, 당황했는지 허둥대며 앞도 제대로 보지 않고 학교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52. [풀썩-] "아얏.." 고개를 푹 수그린 채 피해야 된다는 일념으로 정신없이 뛰던 은별은 뭔가 단단한 것에 머리를 부딪친 듯 신음소리를 내었다. 머리로 손이 올라가는 은별의 손을 누군가 잡았다. 그리고 이어서 조소와 함께 차가운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훗, 너 저번에도 깡통 찼던 년이지? 내가 널 다시 만나길 하늘에 빌며 고대했다. 감히 내 고귀한 머리에 깡통을 맞추고 도망가?! 좋아, 넌 딱 걸렸어. 어디부터 손봐줄까?"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역시. ‘악!! 역시 그.. 그 왕자병 놈인가?!!! 어떻게 잊지도 않고… 이럴 수가!! 왜 이렇게 운도 없는 거야. 난. 씨이- 진사랑보다 더 사이코인 녀석!!!!!‘ 화가 난 듯한 차가운 저음의 목소리, 심각한 왕자병, 그 때 은별이 찬 깡통에 맞고 은별을 쫓던 사람이 확실하다. 은별, 딱 걸렸다. "저.. 저기요!! 진짜 고의로 그런 게 아니거든요?!!!!" 은별, 우선 살고 보자는 식으로 한결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두 눈을 꼭 감고,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하지만 한결과는 새삼 다른 Feel~이 오는 게 분위기가 영 심상찮다. "픽- 한 번도 부족해 두 번이나 내 귀한 머리에 깡통을 맞추고 또 튀려고 한 사실을 잊으면 안 되지?! 안 그래? 깡통소녀?" [뚝-] 은별의 모습에 비웃으며 빈정대는 그의 목소리에, 안 그래도 한결 때문에 화가 난 은별의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은별은 그의 손을 뿌리치며 그의 얼굴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소리쳤다. "씨폴!! 그런 것 좀 잊으면 어디 덧나요!!! 사람이 사과하는데!! 고의로 그런 것 아니란 말예요!!!" "흐응. 그래서 사과했으니까 큰 소리 칠 입장이라 이건가? 깡통소녀?" "사과했으면 받아주면 되잖아요!! 당신이 재수 없어서 맞은 걸 가지고!!" "그래?! 경찰서에 같이 좀 가서 누가 잘못했는지 가려볼까? 오징어같이 쫄아서는 내 얼굴도 못 쳐다보는 주제에.. 픽-" 은별의 투정을 봐서라도 한 번 져 줄만도 하건만 남자는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더더욱 비웃는 소리를 내며 빈정거렸다. 은별은 남자의 말에 욱-해서 고개를 빳빳이 들어 남자를 쳐다본다. "윽- 눈 부셔.." 햇빛에 반사되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은별은 눈을 찡그리며 그의 얼굴을 쳐다보려고 노력했다. 마침, 떠밀려가던 구름이 따가운 햇살을 가린다. 빛이 사라져감에 따라 서서히 보이는 그의 얼굴에 은별은 깜짝 놀라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백설(白雪)처럼 하얀 피부와 다갈색의 반달처럼 휘어진 예쁜 눈, 햇빛에 반사되어 갈색 빛이 도는 흑단 같은 머리칼을 가지고 있는 남자! "....은...하 오빠...?" 은별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남자는 놀란 듯 은별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맺힐 듯한 그녀의 모습을 천천히 바라보면서 은하를 빼다 닮은 그 남자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은별은 은하처럼 보이는 그 남자를 보며 다시 한 번 물었다. "은하 오빠 맞는 거야?!!!" 은별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채은하, 은별의 오빠였다. 다짜고짜 눈물을 머금으며 그의 팔을 붙잡고 늘어지는 은별이다. 그는 자신을 보며 눈물짓는 은별의 모습을 보며 비웃음이 아닌 능글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시니컬한 목소리로 말한다. "픽. 그 성격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구나. 쫄아서 내 얼굴을 보지 못할 때는 언제고, 얼굴을 보니까 이제는 채은하 이름을 부르며 매달린다?" "........!!!" 53. 영락없이 은하의 모습을 한 채 조소를 짓는 그는, 은별의 앞에서 간간이 능글능글 웃어대며 은별을 응시했다. 은별은 고인 눈물을 닦으며 그를 뚫어지게 다시 쳐다본다. "픽- 내가 아무리 잘 생겼다지만, 닳으니까 그만 쳐다봐." 생글생글 웃는 그의 얼굴은 영락없는 은하였다. 능글거리는 웃음 때문에 온화한 분위기의 은하는 아니었지만, 쌍둥이라 해도 누구라도 믿을 만큼 많이 닮았다, 아니 똑같았다. ‘가만. 아니야. 저 녀석은!!! 우리 오빠는 자폭증이 없어!! 저 놈은 또 누구야!!!! 젠장, 심난해 죽겠는데, 현한결도 부족해서 자폭증 환자가 또 나타나는 거야!‘ 은별은 은하와 닮은 남자의 자화자찬(自畵自讚)에 입만 뻐끔거리다, 정신을 차렸는지 이내 남자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나도 자폭증 정신병자 얼굴은 별로 보고 싶지 않네요!!!" 은별이 고개를 돌리며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은하와 닮은 그의 손을 뿌리치려고 발버둥을 치자, 남자는 은별의 손목을 더욱 꽉 잡으며 그녀의 코앞에 자신의 얼굴을 갖다대며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채은별. 내가 채은하하고 닮아서 놀랐나?" "(움찔) 당신 누구야?!!" 알 수 없는 큰 위화감이 은별의 몸을 감싸 안았다. 은하와 닮은 것도 닮은 것이지만 이 남자. 위험하다. 은별은 자신을 알고 있다는 듯한 남자의 말에 움찔거리며 그에게 되물었다. "당신이라니, 내가 허니♡의 당신이길 바랬구나." "억.. 버터 발랐나 봐. 토할 것 같아." 처음 봤을 때의 비웃음이 아닌 능구렁이 같은 웃음을 지으며 묻는 남자를 쳐다보며 연신 토하는 시늉을 하는 은별이다. 그런 은별을 보며 귀엽다는 듯이 그녀의 볼을 툭툭 치며 남자는 아까전과는 달리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내 이름은 선우 현. 저번처럼 이름 헷갈리지 마라. 나이는 너하고 동갑. 그러니까 말 놔도 돼." "이름이 우현이라고?" "귀머거리냐? 또 그러네. 이름이 현이라고!!" "아. 현보다 우현이 낫다. 근데 저번처럼 이라니? 도대체 당신 누구야??!! 나하고 우리 오빠를 어떻게 알아??!!" 자신을 알고 있는 듯한 현의 말과 행동에 긴장한 듯 그녀는 그를 경계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며 잔뜩 몸을 수그렸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자신을 전혀 모르겠다는 식으로 쳐다보는 은별에게 약간은 충격 받은 듯한 표정으로 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날 정말 기억 못 하나?" "..? 우리 아는 사이야?!" "하- 이거 재밌게 되었는걸! 술래가 없는 숨바꼭질이 시작될 지도 모르겠군. 그나저나 채은하하고 한 약속, 무용지물이 되었군." 은별이 알 수 없는 혼잣말을 멋대로 중얼거리며 현은 어리둥절해하는 그녀를 쳐다보며 생글생글 웃었다. 도대체 뭐라고 씨부렁대는 건지... 은별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현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오빠랑 무슨 관계야?" "노 코멘트(No comment)!" "뭐야!! 당신 정말 재수 없어!!!" "그래, 난 네 당신이야. 허니♡ 큭." "악!! 쏠려..!!!!!" 은별의 물음에 동문서답하며 능글능글 웃는 현을 보며 그녀는 역겹다는 표정을 지으며 게워내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녀는 은하와 너무도 닮은 현이 신기한 듯 그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 . . ..........................운명의 바퀴가 서서히 굴러가기 시작한다. 54. ........................................ 자신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은별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 현은 즐겁다는 듯 호탕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말한다. "허니. 눈빛이 너무 뜨거워서, 이 몸, 몸 둘 바를 모르겠는데?" "억!!!! 착각은 자유라 더니..." "내 입은 진실만을 말하지." "거짓만을 말하는 게 아니고?!!" 현은 자신의 말끝마다 자꾸 말대답하는 은별을 향해 묘한 웃음을 띠며 자신의 검지를 치켜들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검지를 그녀의 목 근처에 가까이 대더니 그녀의 목을 싹 긋는 시늉을 하며 싸늘한 저음으로 말한다. "그렇게 말대답하다 소리 없이 저 세상으로 갈 수 있어." 그의 웃음에 은별은 싸한 한기가 몸 구석구석 스며드는 기분이 들었다. 이 능글거리는 웃음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그녀다. 게다가 현이 낯설지 않은 것은 단순히 은하와 닮아서인 걸까? 아무 것도 분간할 수가 없는 은별이었다. "그런데, 이러고 있으면 난 좋지만 허니♡ 학교 지각 아니야? 세명고등학교는 대머리 학주가 무섭기로 소문났던데, 괜찮아?" 현이 지긋이 은별을 바라보며 난데없이 말하자 은별이 놀란 듯 다급하게 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계는 얄밉게도 벌써 A.M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녀의 큰 눈이 더욱 커지더니 이내 현을 바라보며 그녀가 소리친다. "헉!!! 자꾸 왜 나보고 허니라고 부르는 거야?!!! 내가 왜 네 꿀물이야!!!! 넌 정말 나쁜 녀석이야!! 네가 붙잡는 바람에 늦었잖아!!!!" 은별은 있는 힘껏 현의 손을 뿌리치고 학교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런 은별의 뒤를 여유 있게 쫓아 뛰어오는 현이다. 막무가내로 쫓아오는 그를 느끼고 은별은 우뚝 멈춰 섰다. "왜 따라오는 건데?!! 넌 학교 안 가?!!!" "괜찮아, 허니~♡ 허니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근데, 나 걱정해주는 거야? 허니♡ 착하기도 하지." 현아, 좀 심하게 오바다. 은별은 어이가 없는지 고개를 설레설레 내둘렀다. ‘헉, 착각은 자유라 더니, 저런 미친놈을 봤나!! 안 그래도 현한결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데.. 왜 내 주위엔 하나같이 사이코들만 있는 거냐고!! 이러다 정신분열증으로 나 정신병원에 실려 가는 것 아냐?!‘ 현의 말에 충격을 받은 듯 그 자리에 서서 골똘히 생각하는 은별이다. 그런 그녀의 어깨를 툭 치며 사방으로 하트를 날리며 현이 말을 잇는다. "허니~ 그렇게 나랑 같이 있고 싶어서 가만히 서 있는 거야?!" "아악!!!!!!!!!!! 꺼져버려!!!!!!!!!IIIIIIII" 은별, 최강의 숙적을 만나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입술을 꽉 깨물며, 멀리 세명고 교문이 보이자 더욱 속력을 내어 뛰었다. 현은 아직도 은별을 쫓아왔다. 지치지도 않는가 보다, 오히려 지친 건 은별 쪽일까? 이 기세라면 진짜 은별의 교실까지도 쫓아올 듯싶었다. 은별은 힘겹게 뛰던 것을 멈추곤 휙 뒤로 돌아 숨을 몰아쉬며 현에게 소리쳤다. "헉.. 헉.. 왜..왜 자꾸 따라오는 거야..!??" "허니한테 바라는 게 있어서-" 불길하다! 여자의 직감으로 상당히 불안한 감을 느낀 은별이다. 하지만 현의 저 능글거리는 웃음 때문에 무엇을 바라는 지 예측할 수도 없다. 무서운 녀석, 강적이다.; "헉.. 헉.. 바.. 바라는 게 뭐야?!!" 은별은 다시 숨을 고르며 천천히 현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현의 입에서 바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내가 바라는 건 허니♡ 뿐이야." "아아악!!!!" ‘제발!! Please!!!!! 우리 오빠랑 똑같은 얼굴로!! 그런 느끼한 소리 좀 하지 말라고!!!!!!!!!!!!!!!!!! 아아악!! 정신착란 일어날 것 같아- 살려줘!! Help me!!‘ 현은 여전히 능글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은별에게 뭔가 갈구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현은 자신의 말에 발악하며 굳어버린 은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그녀의 귀에 대고 조그맣게 속삭였다. "허니♡ 학교 끝나는 시간에 교문에서 기다릴게. 데이트하자. 허니♡ 도망치면 죽음뿐이라는 거 알고 있지?" "헉..." 데이트? 데이트?!! 데이트라고?!!! 한결이와도 제대로 해본 적 없는 데이트를 하자고?! 뻥 져서 굳어있는 은별과는 달리 손까지 여유 있게 흔들며 서서히 사라지는 현이다. 그런 그가 사라질 때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현의 뒷모습만 쳐다보는 은별이었다. 55. [세명고 2학년 7반] 결국 현이 때문에 지각한 은별은 반짝반짝 대머리 학주에게 걸려 운동장 10바퀴를 뛰고 나서야 간신히 교실로 들어올 수 있었다. 오늘 쓸 체력을 한꺼번에 다 쓴 기분이었다. 지친 듯 풀썩 자리에 앉는 은별의 곁으로 눈에서 광을 내며 아리가 다가왔다. "야아아아!!!!!!! 채은별!!! 은별아!!! 네 이 뇬!!!! 교문 앞에서 네 옆에 있던 그 멋지구리한 남자는 누구야??!!!!" "헉.. 헉.. 말 시키지 마.. 그 놈 때문에 지각해서.. 헉.. 대머리학주한테 걸려서 운동장 10바퀴나 뛰었어.. 켈룩.." "흐음~ 은별이도 바람피우는 거야?!" "아니야!! 아. 짜증나!!!" 아리가 자꾸 추근덕대자 짜증나는 듯 몸서리치는 은별이다. 아직도 현의 능글거리는 웃음이 그녀의 머리 속을 헤집고 다녔다. 아리는 도저히 궁금해 못 참겠다는 듯 은별의 손을 꼭 잡고 큰 소리로 물었다. "으음, 도대체 누구야!!?? 누구인데!!?? 멀찌감치 봤지만 내가 아는 사람인 것 같단 말이야!!!" "..우씨.. 나도 오늘 처음 본 사람이라고!! 은하오빠랑 닮은 사람인데 이름이 선우 현이라고 했던가, 선 우현이라고 했던가? 아씨, 헷갈린다!!!" "뭐?!! 선우 현이라고?!!!" 은별의 말에 깜짝 놀라 어안이 벙벙해진 아리를 보며 그녀는 큰 눈을 반짝이며 뭔가 알고 있는 듯한 아리에게 묻는다. "혹시 알아?! 우리 오빠랑 관계있는...." "꺄아!!! 선우 현이라면 인터넷에서 베일에 싸여진 얼음 왕자로 소문났잖아!!! 게다가 네 오빠인 채은하와 도플갱어처럼 똑 닮아서 더 신기해 보이나 봐. 아무튼 인터넷 얼짱으로 최근 들어 엄청 유명한 사람이야!!!!" "헉. 말세다. 그 능글능글 능구렁이가 얼음왕자?!!! 세상에… 이 세상에 있는 왕자들 다 얼어 죽었나 보네. 말도 안 돼!! 누구야?!! 그딴 놈한테 얼음왕자라고 지은 인간이!!!!" 자신의 말을 자르고 흥분해서 소리치는 아리의 말에 기가 찬 듯 얼굴이 새빨개지며 아리에게 대꾸하는 은별이다. 얼음왕자라니? 말도 안 됐다. 분명 아까 전 은별이 처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을 만났을 때, 그의 이미지는 정확히 촐랑이+느끼돌이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왜 그러셔!! 눈에 콩 꺼풀이 씌워있어도 망정이지! 선우 현이 얼마나 멋진데!! 현한결과 뒤지지 않는 외모! 2대 포커스인 은하오빠랑 판박이처럼 닮은 신비로운 얼굴! 진짜 닮았어!!!! 후후후. 왕자님이 갖출 만한 쿨한 성격에~ 밝혀진 바 없는 미스테리한 정체까지.. 꺄아아아!!!♡" 선우 현에 대해 짜증나는 식으로 말하는 은별을 보며 아리는 흥분한 듯 있는 목청껏 선우 현에 대한 것을 외쳐대었다. 그 능구렁이가 왕자님이라니. 요새는 능구렁이가 왕자로 변할 수도 있나보다. "왕자님이 갖출 쿨한 성격? 웃기고 있네." 은별은 그런 그녀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며 조용히 중얼거리곤 혼자만의 생각 속으로 풍덩 다이빙을 시도한다. ‘민아리, 내가 너한테 물어본 게 죄다. 이 꽃미남 중독증!! 진사랑 녀석이 갑자기 존경스럽다.‘ 생각을 마친 은별은 중얼거리듯 아리에게 말한다. "능구렁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고, 인기는 많나 보네." "굼벵이 아냐?" "그 녀석은 능구렁이야!! 선 우현인가, 선우 현인가." "선우 현이래도!!!" "아아. 아무튼 그게 그거지." 더 이상, 능구렁이 같은 현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애써 그에 대한 생각을 지우는 은별이다. 그런 은별을 보며 무심코 아리가 말을 내뱉었다. "흐응~ 그런데 오늘 100일 아냐? 포커스랑 얘기는 했어?" ".........." 아리의 말에 단번에 침묵하는 은별이다. 그녀는 숨소리조차 내지 않은 채, 입술을 꽉 깨물며 흔들리는 눈으로 창문 밖을 쳐다본다. "은별아..?" 나날이 창백해지는 은별의 얼굴에 뭔가 낌새가 이상한 듯 아리가 은별의 고개를 한 손으로 잡아 돌렸다. 은별의 창백한 얼굴과 눈에 초점이 없는 것을 보고 걱정되는 듯 아리는 그녀에게 되묻는다. "너 정말 괜찮은 거야?!!" "........." "너!! 은하오빠 사라졌을 때처럼 그런 증상 나타나는 거지?!! 응?!!! 너 지금 현한결 때문에 아픈 거지??!!!" 아리의 다급하고 걱정되는 말에 은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리까지 걱정시킬 수는 없었다. 은별은 더욱 입술을 꽉 깨물며, 마음을 다잡고 차분히 아리에게 말했다. "아니야. 나 괜찮아." "너 참고 있는 거지?!!" "..........." "...아리야.. 미안.. 그만 하자." "후- 미안. 은별아, 있잖아. 내가 사랑이한테 현한결이 뭐 하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잖아. 근데 사랑이도 현한결이 요새 뭐 하는지 통 아무 것도 모르겠대." 아리의 말은 비수가 되어 은별의 귀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그녀의 흐릿하게 변한 눈이 더욱 초점 없이 흐려졌다. 가슴이 아려온다. 가슴이… 가슴이 저며 온다. 가슴이… 56. 시간을 무심하게 흘렀고, 학교가 파했다. 힐끔 교문을 쳐다보니 아직 현은 온 것 같지 않았다. 은별은 아직도 한결 때문에 혼란스러운 머리를 쥐어짜며 아리를 끌고 몰래 후문으로 빠져나갈 준비를 했다. 아리는 그런 은별을 보며 짜증을 내며 투정을 부린다. "왜 후문으로 가는 건데!!!" "그 싸이코 또 보면 내 머리가 남아날 것 같지 않아" "왜?? 잘 생겼잖아!!!" "너 이러는 거 진사랑한테 말해버린다. 네가 이러니까 은결이가 너보고 마귀할멈이라고 부르는 거야!" "칫.. 치사한 뇬.." 은별의 마녀란 말이 결정타였는지 입을 삐쭉삐쭉 거리며 아리 역시 그녀를 따라 후문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은별이 주위를 둘러보며 현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조심스럽게 후문 밖으로 살짝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풀썩-] "꺄아아악!!!!" "어딜 도망가려고, 허니♡" 언제부터 있었는지 소리 소문도 없이 현이 도망가려는 은별의 뒤에서 그녀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으며 차가운 조소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살짝 살기가 느껴지는 게 공포감마저 든다. "헉!!!!" "꺄아!!! 선우 현이다!!!! 실물이야!! 실물!!" 갑자기 나타난 현 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은별과 현의 화려한 외모를 보고 넋이 나간 아리다. 당황해 표정이 굳은 은별은 그를 바라보며 버벅 거리며 물었다. "어..어떻게..." "허니♡ 허니가 도망갈 줄 알고 내내 기다리고 있었어." "이 능구렁이같은 놈!!!" "쿡, 난 허니♡에 대해서는 뭐든 알고 있거든." 자신을 치켜보는 은별에게 사방으로 하트를 뿌려대며 살짝 그녀에게 상큼하게 왼쪽 눈을 감아 윙크하는 현이다. 아- 성격만 아니었으면 진짜 왕자라 불릴 만 하다. "웩웩.." "어라? 선우 현,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랑 많이 틀리네." "내가 뭐랬어!! 민아리!! 저 녀석은 능구렁이라니까!!!" 은별은 그런 현의 모습에 쏠린다는 표정을 짓고, 아리는 소문과는 전혀 다른 현의 모습에 당황한다. "허니♡ 허니가 그렇게 팅길수록 더 귀여워 보여." ‘미친놈아!! 이게 팅기는 걸로 보이냐!!?? 내 언젠가 너하고 내 주위에 있는 인간들을 깡그리 잡아서 언덕 위에 하얀 집에 데리고 가고야 말겠어!!! 아아악!!!! 사람 살려!!!!!!!!!!!!!!!!!!!!!!!!!!!!!!!!!!!!!!!!!‘ 은별은 능글거리는 현의 말에 속으로 미친 듯이 발악했다. 그는 점점 울상이 되는 은별의 모습에 사악한 웃음을 짓는다. 그가 은별의 가느다란 어깨에 살짝 손을 두어 번 쳐댔다. "참, 허니♡ 도망가면 죽음뿐이라고 내가 그랬을 텐데?" 그녀의 어깨를 위로하는 듯 치면서 능글능글 웃으며 저음의 목소리로 은별의 귀에 차분히 속삭이는 현이다. 그의 저음의 목소리에 은별은 식은땀이 흐르며 등골이 오싹해지는 소름이 쫙 돋아나는 기분까지 든다. ‘채은별, 정신 차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고 그랬잖아.’ "누구 맘대로 네 꿀물이야!!!! 난 이미 임자 있다고!!!!" 현에게 크게 소리치며, 작정한 듯 입술을 꽉 깨무는 은별이다. 그리고는 자신의 있는 힘을 모두 발에 모아 현의 발을 꾹 밟고는 그의 복부를 힘껏 팔꿈치로 찍었다. "윽... 허니.. 꽤 아픈데.." 은별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신음 소리를 내며 그녀를 안고 있던 팔을 풀고 현은 은별에게 맞은 배를 손으로 감쌌다. 그 사이 은별은 그의 품에서 빠져 나와 현에게 소리친다. "흥!!! 난 네 꿀물이 아니라니까!! 야!!! 얼음왕자인지, 빙수왕자인지, 나 애 하나 딸린 유부녀니까 건들 생각 말아!!!" 그리고는 이 틈을 놓칠세라 은별은 아직도 현의 참 모습에 정신을 못 차리는 아리를 막무가내로 붙잡고 뛰기 시작했다. "쿡.. 도망 가봤자 소용없어. 채은별. 이미 3초가 지났거든. 넌 이미 예전부터 나한테 찍혔다고- 넌 나의 늪에서 도망칠 기회는 잃었어." 휘청거리며 쉴 새 없이 달려가는 은별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조소를 흘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그녀를 열심히 쫓아 뛰어가는 현이다. 57. "허니~♡ 거부하지 말라니까!! 나랑 데이트 가야지~♡" 벌써 20분 째, 은별에게 엄청난 양의 하트어택을 날리며 현은 지치지도 않는지 소리까지 고래고래 지르며 쫓아왔다. 그리고 쫓기는 은별과 이유 없이 은별에게 끌려가는 아리다. "헉.. 헉.. 징그러운 놈!!! 젠장, 아직도 쫓아오다니.. 끈질긴 녀석. 분명 전생에 거머리였을 거야!!!!!!!!" "흐억.. 상상초월!! 은별아!! 헉헉... 언제까지 뛰어야해!??" "저 빙수왕자인지 뭔지 하는 능구렁이 같은 놈이 안 쫓아올 때까지..!! 더 속력 내!!! 바로 뒤까지 쫓아왔어!!!! 으악!!!!" "허니~♡ 부끄러워하지 말고 멈추라니까!!!" 이미 녹초가 되어 점점 속력이 떨어지는 은별과 아리에 비해 20분 째 뛰고도 숨소리조차 흐트러지지 않고 싱글벙글 웃으며 은별을 쫓아오는 현이다. 그의 모습에 은별, 당연히 지레 기겁할 수밖에 없다. "으.. 은별아.." 그 때, 아리가 갑자기 속력을 줄이며 멈췄다. 그 덕에 아리 뒤에서 뛰어오던 은별은 가속도의 법칙에 따라 아리의 어깨에 머리를 살짝 터치한다. "아얏!! 우씨!! 왜 멈춰;;!! 민아리, 잡히겠어!!" "그.. 그게 아니라.." 은별은 벌써 바짝 쫓아오는 현을 보며 아리를 다급하게 부추긴다. 하지만 아리는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이미 당황한 듯 은별과 그 광경을 번갈아 쳐다본다. "...하...................현한결...." 아리가 쳐다본 곳을 얼떨결에 쳐다본 은별이다. 그녀의 눈에 비친 건 길 건너편에서 한결에게 매달리다시피 껴안고 좋아하는, 며칠 째 자신이 있어야 할 한결의 곁을 지키던 미모의 여자와 그런 여자를 보며 생전 안 웃던 웃음을 짓는 한결의 모습이었다. 은별은 이미 초점을 잃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어~? 허니, 나 기다린 거야?" 어느 새 쫓아왔는지 은별의 옆에서 그녀가 바라보는 곳을 현은 같이 지긋이 바라보며 즐겁게 말했다. 그의 눈에도 같은 것을 보았으리라! "허니? 괜찮아?" "........." 은별을 걱정하는 듯한 현의 말에 그녀는 초점 없는 눈으로 현을 바라본다. 자신 앞에서 은하와 똑 닮은 얼굴로 마치 은하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온화하고 중후한 미소를 짓는 현의 모습이 은별의 눈에는 점차 은하와 겹쳐진다. 그녀의 큰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나온다. [풀썩-] "..허니..?" 은별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이 현에게 풀썩 안겼다. 자신의 품에 계속 파고드는 은별의 행동에 잠시 놀랐는지, 그는 움찔거리다 이내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은별을 꼭 안았다. 그러나 그녀의 초점 없는 눈에선 계속 눈물을 흘러내렸다. "흐윽... 흡..." "허니♡ 내가 온 게 그렇게 감격스러워서 눈물 흘리는 거야? 풋- 이거 가문의 영광인데? 울지 마, 허니- 허니가 울면 내가 슬퍼." 현아- 착각은 자유다. "....은하오빠.. 흐읍.. 한결아.. 한결아.." "..........." 현은 은별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아닌 은하와 한결을 부르는 소리에 표정이 석고상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모든 것을 다 아는 듯이 현은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꽉 지며 낮은 저음으로 그녀를 향해 또박또박 말한다. "채은별, 착각하지 마. 난 채은하가 아니고 선우 현이야! 현한결이 눈앞에서 여자와 노닥거리면서 가는 것을 보고도 울고 싶은 마음이 나는 거야? 그런 거야?" "흐..윽... 흡....." "은별아, 그렇게 울지 말고 우리 포커스 따라가자! 응?!!" 충격을 받고 현에게 안겨 정신없이 우는 은별을 보며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애원하는 아리다. 그런 아리를 현이 은별을 볼 때의 부드럽고 따뜻한 눈이 아닌 사람이라도 죽일 듯한 살기를 띈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움찔)..윽.." 그의 차갑고 매서운 시선에 아리는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은별은 초점 없는 눈으로 현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그의 품에서 떨어져 비틀거리며 눈물을 닦았다. 새빨개진 눈에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게 힘을 주며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끝났어... 현한결이랑 이제 끝이야... 아리야.. 너도 봤잖아.. 그 여자하고 껴안고 웃는 것...... 현한결은 이제 나 같은 건 관심도 없는 거야... 이제 끝이야..." "....은별아..?......" "은결이만 있으면 돼.. 우리 은결이만.." 은별은 넋이 나간 듯 은결의 이름만 되풀이했다. 잠시 후 그녀는 초점 없는 눈을 하고 비틀거리며 어디론가 향했다. 그런 은별이 불안한 듯 현이 은별을 부축한다. "허니, 괜찮아?!" "........." 현의 부축을 뿌리칠 힘도 없는지 아니면 부축을 받는 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 하는 건지 계속 어디론 가로 발을 옮기는 은별이다. ............ .............. 사라지는 은별과 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아리는 그들이 떠난 자리를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안 돼. 현한결, 채은별! 너희 둘 여기서 끝나면 안 돼!!! 여기서 끝나면 은별이 너 '그 때'보다 더 심하게 아플 거잖아." 아리는 이내 입술을 꽉 깨물고는 이렇게 된 모든 원인인 한결을 찾아 뛰었다. 58. "헉..헉..." 숨이 지금 당장이라도 넘어갈 것 같고, 심장은 쉴 새 없이 쿵쾅거리고 목이 마르고 갈라진다. 언제 이렇게 죽도록 뛴 적이 있었나? 아리는 힘겹게 뛰면서 자신의 머릿속에 질문을 던졌다. -처음이잖아.- 라고 두근두근 쉴 새 없이 뛰어대는 심장이 대답했다. ‘채은별. 이 뇬아!!! 너 내가 이렇게 힘들게 뛰어서 현한결하고 이어주면 보답은 꼭 해라!!! 안 하기만 해 봐라!‘ 속으로 은별에게 씩씩대며 부지런히 뛰는 아리다. 한참을 뛴 그녀의 눈앞에 며칠째 보이는 미모의 여자와 팔짱을 낀 채 길을 가고 있는 다정해 보이는 한결이 보였다. "헉.. 헉.. 포커스!!!!!!" 아리는 멈춰 서서 가쁘게 숨을 내몰아 쉬며 있는 힘껏 한결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쳤다. 한결은 자신을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병아리..?" 몸은 땀으로 흠뻑 젖고, 숨을 가파르게 쉬어대며 자신을 쫓아온 아리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며 차가운 저음으로 아리의 이름을 부르는 한결이다. "병아리가 아니라 민아리입니다." "병아리든, 민아리든.. 무슨 일이냐?" ‘쳇..!!!! 아무리 포커스라지만 은별이한테는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은별이 친구인 나한테는 완전 얼음이 뚝뚝 떨어지네. 옹졸한 녀석!!!! 내가 은별이의 심정을 알겠다!!‘ 한결을 속으로 상상도 못할 만큼 잘근잘근 씹어대는 아리다. 한결아, 넌 만수무강할 거다. 아리는 마음을 단단히 먹은 듯 비장한 표정으로 한결의 옆에 서 있는 미모의 여자 앞으로 다가갔다. [찰싹-] 아리는 땀을 닦던 손으로 한결의 옆에 있는 그 미모의 여자의 싸대기를 세게 터치한다. "꺄악!!!" 여자는 놀란 듯 비명을 지르며 어리둥절한 눈으로 아리를 바라보았다. "무슨 짓..." [퍽!!!!] 싸대기를 맞고 비명을 지르는 여자의 모습에 놀란 듯 눈이 커지며 아리를 향해 소리 지르려던 한결의 복부를 아리가 던진 주먹이 강타했다. "윽... 씨팔.." 예상치도 못 했던 공격이라 피할 사이도 없이 너무 갑작스럽게 맞아버린 한결은 욕을 낮게 읊조리며 아리를 노려본다. 아리의 표정을 단단히 결심한 듯 매우 비장해 보였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5분만 제 얘기를 들어주십시오." "뭐?" 아리는 자신을 노려보는 한결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그리고는 아리는 의아해 하는 한결 앞에서 허리를 곧이 펴고 고개를 치켜들며 말을 이었다. "야, 현한결. 너 정말 재수 없어." "씨팔... 죽고 싶냐?!!" 또박또박 경어를 쓰다가 갑자기 반말을 쓰며 자신을 욕하는 아리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한결은 인상을 쓰며 아리에게 냉랭하게 소리쳤다. 그런 한결의 모습에도 꿈쩍 않고 아리는 침착하게 계속 말을 이었다. "너 진짜 재수 없어. 은별이를 울리면서 여자를 만나? 은별이 다시는 안 울린다며??!!! 왜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냐고!!!" ".....뭐라고?" "오늘 너하고 은별이 100일인 거 알고 있기는 하냐?! 은별이는 너 여자 만나는 것 다 보면서 너 믿는다고 따지지도 않았어. 게다가 너 주려고 처음으로 십자수도 하고, 얼마나 지극 정성이었는지 알아?! 그런데 그런 애를 네가 울려?! 이 양심도 없는 놈아!!!! 네가 그러고도 은별이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어?" "..씨팔..." 한결은 쏘아붙이는 아리의 말에 조용히 욕을 읊조렸다. "저기, 무슨 오해가..." 욕만 읊조리는 그의 모습에 아리는 더욱 열을 내며 한결의 옆에서 자신이 때린 볼을 손으로 감싼 미모의 여자가 무슨 말을 하려하자 들은 체도 안 하고 그녀의 말을 자르며 아리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너, 은별이가 아픈 것 알고 있기나 해?! 은별이 바싹 말라 가는 것 안 보이냐고?!!!" "채은별이 아프다고..?!" 59. 은별이 아프다는 말에 한결의 낯빛이 파리해졌다. 설마 아픈 것도 모른 거야? 당황한 그를 보며 콧방귀를 뀌고는 아리는 계속 말을 내뱉는다. "하...? 정말 몰랐던 거야?! 그런 거야?! 그럼 너 은별이 1년 전에 신영고에 납치되었다 은하오빠가 구해온 건 알아?" "알아, 그게 왜?" "현한결, 은별이 병원에 실려 왔을 때 이미 은별이는 뇌사상태에 빠졌어. 그런데 극적으로 깨어난 은별이는 부분기억상실증에 걸렸어. 지금도 은별이는 신영고에 있었던 일도,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일도, 지금껏 자신이 겪었던 괴로웠던 일들은 모두 다 기억을 못 해." "..뭐...?!!!!" 지금껏 자신을 은별의 무엇을 알고 있었던 걸까? 아리의 말에 단단히 충격을 받은 듯, 눈이 커지며 몸을 부들부들 떠는 한결이다. 그의 귀에 걸린 피어싱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아리는 한 템포 쉬고는 다시 입을 열어 말을 꺼냈다. "부분기억상실증, 그래, 이건 어쩌면 아무 것도 아닐 지도 몰라. 오히려 유일하게 은별이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는 은하오빠가 은별이를 위해 소리 소문도 없이 떠난 게 문제였어. 은별이는 그로 인해 심한 대인기피증이 생기고, 기억을 못하는 스트레스로 인한 거식증까지 생겼으니까." "대인기피증에 거식증이라니, 누구 놀리냐? 거짓말하지 마라.... 채은별 밥 돼지같이 졸라 잘 먹어." 한결은 믿어지지 않는 다는 식으로 부정했지만 말하는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며 낯빛이 이미 창백해질 대로 창백해졌다. 아리는 더욱 싸늘한 목소리로 한결에게 말한다. "놀리냐고? 놀리는 것처럼 보여? 너 정말 구제불능이구나? 내가 이 상황에서 거짓말을 하겠니? 너 정말 생각 안 해봤니?!! 나.보.다.는 못 하지만 제법 예쁜데다가 전국 모의고사 차석까지 하는 수재인, 내가 보기에도 박식한 은별이에게 친구가 왜 나뿐일까? 대인기피증 때문이야!!! 은별이는 은하오빠가 사라진 이후로 '이별'을 죽음보다도 더 두려워해!!!" "하....?" 넋이 나간 듯 소리치는 아리를 멍하니 쳐다보는 한결이다. 손이 부들부들 떨려오며 그에게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비틀거리는 그를 보며 아리는 흥분한 듯 더욱 목소리가 커진다. "거식증은 은별이가 한겨울, 그 몹쓸 녀석을 만나면서 사라졌어. 그래, 마음의 안정을 찾은 거였지. 그런데, 그 녀석이 은별이를 버렸어!! 넌 모르지?! 이별을 두려워하는 은별이가 그 녀석하고 헤어진 후에 스트레스로 거식증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을 줄.." "......(툭-) " 감정 없는 인형인 한결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아리는 깜짝 놀라 몸을 움찔거리며 말을 끊었다. 한결은 주르르 흘러내리는 눈물도 닦지 않은 채 감정하나 실리지 않은 딱딱한 목소리로 아리에게 말한다. "계속 해." 그래도 아직 은별이에 대한 사랑의 촛불을 꺼지지 않은 듯 보이는 한결의 모습에 아리는 안도의 한숨을 푹 쉬며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보이지 않게 망가져 가는 은별이를 너하고 은결이가 잡아줬어. 네가 언젠가 은별이한테.. 건강한 여자가 좋다고 얘기했지? 은별인 흘려들어도 될 네 말 때문에 네 앞에서는 먹기 싫어도 꿋꿋이 먹었어. 걔가 얼마나 고생했을 줄 알아?? 네가 이 여자랑 몇 날 며칠을 같이 다녀도 은별이는 입도 벙끗 안 했지?! 은별이. 그 애는 너무 착해서 거식증에 시달리면서도 너하고 헤어질까봐 두려워서 아무 것도 말하지 못했어!" "....씨발!!!!!!!!" [쾅!!!!!!!!] 한결을 고함을 지르며 힘껏 벽을 주먹으로 쳐댔다. 있는 대로 화가 난 듯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고 그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60. 한결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며 아리는 목이 타는 기분을 느꼈다. 그의 눈은 새로운 사실에 의한 놀람과 경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다시 말을 잇는다. "제발, 은별이를 다시 잡아 줘. 현한결!! 너까지 은별이를 버리면 은별이는 재기 불가능이 될 지도 몰라. 은별이가 싫어졌어도.... 제발 은하오빠가 나타날 때까지 만이라도 곁에 있어 줘." [털썩-] "은별이의 제일 친한 친구인 민아리가 부탁드립니다. 포커스" 얼굴이 붉게 상기된 한결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는 아리다. 친구를 위해 무릎까지 꿇는다. 인간 민아리, 대단하다. 자신에게 무릎을 꿇고 비는 그녀를 보며 한결은 고개를 떨구며 자기 자신에게 욕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씨발-!! 현한결, 너 이 것 밖에 안 되는 놈이었냐!!!!" 은별에게 조금 더 부드럽게 말했어야 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짜증내지 않았어야 했다. 은별이가 밤새워 우는 줄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은별이 눈에 눈물이 흐르게 만든 건 ..........................한결, 자신이다.... [쾅!! 쾅!!] 한결은 애꿎은 벽을 주먹을 쳐대며 오열했다. 살이 까지고, 붉은 선혈이 주르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하..한결아!! 피...!!!" "씨발... 내버려둬!!! 은별이는 얼마나 아팠을까.. 씹!! 다시는 안 울리겠다고 맹세했는데!!! 하아.." 이미 주먹에 피가 철철 흐름에도 불구하고 한결은 그 고통을 계속 느끼려는지 하염없이 계속 벽을 주먹으로 쳤다. 한결의 곁에서 그를 말리는 미모의 여자는 자신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아리를 보며 다급하게 말했다. "저기, 꼬마 아가씨!! 뭔가 오해한 것 같네요!!!" "..........?" 아리는 자신에게 소리치는 미모의 여자를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아리의 눈빛을 당당히 받아치며 말했다. "뭔가 오해한 듯싶은데, 난 한결이의 하나밖에 없는 이모예요. 한결이가 너무 소중히 여기는 여자친구와 백일이라고 해서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는데 도와준 것뿐이에요." "에?!!!" "한결이 이 녀석이 여자한테는 워낙 숙맥이라, 호호. 내가 좀 도와준 것뿐이에요." 한결의 이모라는 미모의 여자의 말에 아리가 놀란 듯 주춤하자, 한결이 피가 흐르는 손을 감싸며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씨발// 이모!!!! 말하지 말라고!!" "어머, 한결아, 부끄러워 하기는-" "..아..씹..." 뭐야!!!! 뭐야!!!!!! 이럴 수가?! 그렇담 여태껏 은별과 자신이 본 것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오해였던 거야?!!!!! 아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버;; 포..포커스!!!! 그.. 그럼 은별이한테는.. 은별이한테는 이 분이 이모인 것 왜 말 안 한 거야??!" "물어보지도 않기에, 난 다 눈치 챈 줄 알았어.. 채은별이 차라리 화를 내면 말했을 텐데!!! 그래서 일부러 말 안 한 거였어. 젠장!!! 내가 미쳤다고 이런 유부녀랑 바람 피냐?!!" "유..유부녀?!!! 어버버버..;; 저..저기;; 며..몇 살이세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결의 이모가 유부녀란 말에 당황해서 말을 버벅거리며 한결의 이모에게 묻는 아리다. 그녀는 화사한 얼굴에 빙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올해 32살이에요." "아악!!!!!!! 말도 안 돼!!!!!! 이건 신의 농락이야!!!! 혹시 포커스, 포커스 집안에는 선남선녀만 있어요?!" "선남선녀는 개뿔이.. 저 아줌마가 선녀라면 이 세상에 있는 여자들 모두가 수박이다." "어머머, 참 한결이도.." 한결의 이모는 빙긋 웃으면서 그의 등을 아주 살.짝 터치한다. 하지만 작가는 보았다지요. 한결이 이모님 이마에 빠직 마크를요.[돌 슉-] "윽..." 한결은 원망 어린 눈빛으로 이모를 바라보았지만 여전히 한결의 이모는 온화하고 화사한 얼굴로 아리를 응시한다. 아리는 안 믿어진다는 식으로 한결의 이모의 손을 꽉 잡고 방방 날뛰며 소리친다. "헉?! 말도 안 돼!! 이게 무슨 32살의 얼굴이에요!!! 22살이라고 해도 믿겠다!!!! 젊음의 비결이 뭐예요?! 언니!!" 결국, 목적은 젊음의 비결이었구나. 아리야. 어린 것이 속이 정말 검다. 자신의 이모의 손을 잡고 방방 날뛰는 아리를 짜증스럽게 쳐다보며, 한결은 그녀를 향해 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 "씨발, 야, 병아리. 그 아줌마 화장발이니까 놀라지마." [꼬집-] 한결의 말에 살.짝 한결의 팔을 꼬집는 이모님. "윽...." 한결, 가뜩이나 없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며 살벌하게 자신의 이모를 노려본다. 하지만 여전히 한결을 바라보며 미소를 잃지 않는 한결의 이모. 당신이 지존이십니다.乃 "젠장. 야!! 채은별 어디 있어?!!" 생글생글 웃는 이모에게서 눈을 돌려, 아리에게 냉랭하게 묻는 한결이다. 은별이 어디 있냐니? 은별이 어디 있더라? 한결의 차가운 목소리에 아리는 번뜩 정신을 차린 듯 한결을 바라본다. ‘그..그러고 보니 채은별, 이 뇬이 어디 갔더라..?!;; 그 능구렁이 선우 현이랑 어딜 간 거지?!!! 헉!! 내가 못 살아!!! 아무리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다지만 포커스까지 때리고.. 난 죽었다!!! 흐아아앙!! 사랑아!! Help me!!!!‘ 서열 1위 포커스 한결을 때렸다는 것은 반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 안 그래도 이모 덕분에 바가지가 많이 긁힌 상태라 폭발하면 속수무책이라는 것을 뻔히 아는 아리다. 한결의 대답을 촉구하는 따가운 눈빛에 아리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리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애써 진정하며 더듬더듬 말하기 시작했다. "모..모르겠는데요; 포..포커스..;" 세 사람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지나갔다. 아리의 목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만 고요하게 울린다. 한결, 폭발할 듯한 위태로운 목소리로 아리에게 말했다. "......죽고 싶냐?" "(도리도리)" "..씹.. 야, 병아리. 넌 어쩔 수 없는 닭 새끼야." 소설제목 :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작가명 : +메시아+ E-mail : darksorcery@hanmail.net 연재장소 : 새싹소설① -10대 총편수 : 총 162편 완결 장르 : 연애소설 -------- 출처 : 인터넷소설닷컴 (http://cafe.daum.net/youllsosul) 팬까페 : http://cafe.daum.net/msacafe 댓글 3 개 이 글을...(0) zaza 아 완전 눈물 날뻔 했는데 깬다 깨 ㅋㅋ 07.07.02 18:25 또옹녀zz 위에 님말 동감이예요ㅋㅋㅋㅋㅋㅋ 07.12.23 19:14 또옹녀zz 위에 님말 동감이예요ㅋㅋㅋㅋㅋㅋ 07.12.23 19:14 이전 1 다음 최신목록 목록 윗글 아랫글 '　　　[퍼온소설]' 게시판의 다른 글더보기 제목 닉네임 날짜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081 ~ 100 >' 나린소주인 05.07.11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061 ~ 080 >' 나린소주인 05.07.11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041 ~ 060 > 나린소주인 05.07.11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021 ~ 040 >' 나린소주인 05.07.11 [시작▶]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001 ~ 020 >' 나린소주인 05.11.21 카페에서 공개한 게시글입니다.'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키워드로 검색한 게시글 더보기 서비스 약관/정책권리침해신고카페 신고이용약관카페 고객센터검색비공개 요청 Copyright (c) Daum Communications Co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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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아, 네 여자친구 찾아봐야 하는 것 아냐?! 오늘 저녁 11시까지는 ‘그 곳’으로 와야 해." 머리를 쥐어짜며 생각에 잠겨 혼자 연신 욕을 읊조리는 한결에게 한결의 이모가 다정하게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잔뜩 쫄아있는 아리를 쳐다보며 소스라치게 말하는 한결이다. "아참- 야! 병아리!!! 착각은 노망의 지름길이다. 채은별이 너보다 천 배 아니 만 배 더 예쁘다." "네.. 네?!!" 이 때 아리의 머리 회로 속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사태 파악 中) 뭐야!! 노망?!!! 흐억!! 채은별, 현한결 둘 다 쌍으로 재수 없어! 내가 정신이 잠깐 나간 거야!! 이런 것들을 도와주다니!! 어디 두고 보자!!! 언젠가 이 치욕을 꼭 갚고 말리라!!!‘ 한결의 말에 다시 한 번 뻥져서 그를 쳐다보는 아리다. 그는 이미 본래의 페이스로 돌아와 자신을 쳐다보는 아리에게 살짝 비웃음을 날리며 다시 무뚝뚝하게 말을 내뱉었다. "게다가, 날 쳤다 이거지?" "헉.. 포..포커스 그건요..; 제가 정신이 잠깐 나가서.. 엉엉.." 내가 미쳤지. 왜 포커스를 주먹으로 친 거지?! 주먹을 꽉 지며 다가오는 한결을 보며 거의 울상이 되다시피 얼굴을 찡그리는 아리다. ‘사랑아!!! 살려줘!!! 구해 줘!! 그럼 다시는 꽃돌이한테 눈 안 돌릴게!!! 모처럼 착한 일 했는데 보답이 이렇다면 이건 모순이야아아아!!!‘ 그 동안 얼마나 착한 일을 안 했음 이러겠느뇨. 한결의 사악한 페이스에 식은땀을 흘리며 다리를 후들거리는 아리를 보며 한결의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야, 병아리. 진사랑한테 전해라. 내일 보면 100대 맞을 준비하라고- 내가 미쳤다고 너 같은 병아리를 때리냐? 난 동물학대에는 별로 취미 없다. 아무튼 진사랑한테 꼭 전해라?" "에..?!!!;;;예?!!" "그럼 난 먼저 가 본다. 이모, 먼저 가볼게요." "그래! 꼭 와야 한다! 11시야!" 다급하게 말하고는 긴장이 풀려 땅바닥에 주저앉은 아리와 그녀를 일으키며 부축하는 자신의 이모를 뒤로하고 한결은 결연한 표정으로 서둘러 은별을 찾아 뛰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가 황급히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주머니 속에 핸드폰을 꺼내 유빈에게 전화를 걸었다. ~♪♪♪♬♪♪♬♬~ 한참동안 경쾌한 컬러링이 울리더니 이윽고 뒤에 이어서 들리는 온화한 목소리가 한결의 귀로 들려왔다. [여보세요.] "유빈이냐?" [한결아,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나 봐?!] "신유빈. 뭔 말이냐?" [천하의 현한결께서 이렇게 칭송이 먼저 전화를 하다니~ 100일 준비한다고 우리를 거들떠도 안 볼 땐 언제고 웬 전화? 세상이 발칵 뒤집혔어?! 아니, 뭐 잘못 먹고 체했어?] 키득키득 웃으며 말하는 유빈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가뜩이나 기분이 안 좋은 한결의 이마에 빠직 마크가 하나 생긴다. 유빈군. 잘못 하다가 한 대 맞게 생겼다. "죽을래?" [농담이다, 임마. 뭔 일이야? 혹시, 형수님이 사라지기라도 했냐?] "...돗자리 깔아라.." [히히, 깔려고 준비 중이야, 사이비 무당해도 돈 많이 벌잖아!] "신유빈, 작작 해라. 한 대 쳐 맞기 전에." [어라- 친구를 때리면 나쁜 어린이지.] 어린이라고? 이 자식 사람을 가지고 논다. 유빈의 비아냥거리는 말에 한결의 이마에 또 다시 빠직 마크가 깊게 패인다. "신유빈, 죽고 싶으면 계속 개겨라?" 살벌해지는 한결의 말투를 느꼈는지, 유빈이 당황했는지 헐레벌떡 말을 돌린다. [아우- 한결이는 너무 무뚝뚝해서 장난을 해도 재미가 없네.] "장난하려고 전화한 것 아니다." [칫칫- 네네, 천하의 현한결씨. 무슨 일을 해 드릴까요?! 맡겨만 주세요~ 후후후~ 하지만 돈은 선불입니다요!] "..신유빈, 너 좀 있다 만나서 두고 보자?! 어떻게 되나. 애들 풀어서 11시까지 채은별하고 은결이 찾아서 ‘그 곳’으로 와. 늦으면 너 죽고 나 산다. 명심해라." [쳇, 재미없는 놈.] "끊어." 토라진 듯한 유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칠게 전화를 끊고는 한결은 다시 서둘러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를 은별을 찾아 다시 뛰기 시작했다. 62. 그 때쯤 은별은.. [한꼬마 유치원] 은별이 정신없이 걸어서 도착한 곳은 은결이 다니는 아담한 유치원이었다. 유치원은 푸른 느티나무가 흐드러지게 서 있는 동화 속 집 같은 곳이었다. 은별을 뒤쫓아 오던 현이 유치원에서 발길이 멈춘 것을 보고 알겠다는 듯 박수를 치곤 빙긋 웃으며 은별에게 말했다. "허니, 허니♡ 애 찾으러 온 거야?" "......" 현의 말 따위는 들리지도 않는다는 식으로 무시하고 교복을 입었단 사실도 잊은 채, 은별은 유치원 문을 활짝 열었다. "어서 오세... 어머?! 은결이 어머님?!" 유치원 원장이 은별의 교복 입은 모습을 보고 놀란 듯 외쳤다. 은별은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초점 없는 눈으로 원장에게 외친다. "은결이.. 우리 은결이 어디 있어요?" "아.. 저기 은결이 어머님. 죄송해요! 아까 전에 연락 드렸는데, 핸드폰을 계속 안 받으셔서... 실은 은결이가 유치원을 몰래 나간 것 같아요." "뭐.. 뭐라고요?!" 은결이 유치원을 몰래 나갔다는 유치원 원장님의 말에 은별은 더욱 충격을 받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의 깊은 눈동자가 슬프게 흔들렸다. 은별은 주체할 수 없다는 듯 눈물을 흘린다. "은결아....... 안 돼!!! 은결이... 우리 은결이 찾아내!!!!" 은별은 주저앉은 채 소리를 버럭 지르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자식을 잃어버린 어미의 마음이 이렇게 아픈 것일까? 상상도 할 수 없는 마음의 고통이 은별을 탈진하기 일보 직전의 상황으로 몰고 갔다. 유치원 원장도 넋이 나간 듯 보이는 은별의 모습에 당황했는지, 그녀를 향해 허둥대며 위로의 말을 꺼냈다. "죄송합니다. 은결이 어머님, 지금 선생님들이 찾고 있어요! 침착하고 기다리시는 게....." "침착?! 침착이라고요?!" 은별은 원장의 말을 자르며 싸늘하게 말했다. 그러더니 그녀는 벌떡 일어나 유치원 원장의 멱살을 잡고는 눈물이 고인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원장은 은별의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며 현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낸다. "후, 또 내 차례?" 현은 도움을 구하는 듯한 원장의 시선에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은별의 손목을 꽉 잡고는 능글능글 웃으며 말했다. "저 쪽에 가서 우리 오붓하게 얘기 좀 할까?" "놔... 노라구!!!!" "못 놔." "제발 놔 줘. 은결이, 우리 은결이 찾아야 해!!!" 너무 울어서 팍 쉰 듯한 목소리로 그를 잡고 오열하는 은별을 막무가내로 끌고 유치원 밖으로 나오는 현이다. 현은 은별의 손목을 꽉 잡은 채, 고개를 떨어뜨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허니, 허니의 진짜 애도 아닌데 이렇게 열 낼 필요 있어? 왠지 허무하다고 느끼지 않아? 난 그럴 것 같은데-" 여전히 능글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현은 시니컬한 목소리로 냉정하게 말했다. "............." 한 순간 침묵하며 떨어뜨리고 있던 고개를 은별이 번쩍 치켜들며 현을 바라보았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한 동안 현을 응시하던 은별은 슬픔에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한다. "빙수왕자! 내 뒷조사를 한 거야?!" "빙수왕자라니.. 풋- 뒷조사라니, 과대망상이 좀 심한 걸? 그런 것 안 해도 난 허니에 대한 모든 걸 알고 있지." "거짓말 하지 마! 은결인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애야!" "아니, 현은결은 네 애가 아니야. 채은별. 널 두고 다른 여자나 만나는 현한결의 이복형 현한얼과 더러운 차수진 사이에서 난 아이잖아. 킥-" "........" 은결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는 현을 슬프고 깊은 눈으로 응시하는 은별이다. 은하의 눈과 닮은 그의 눈에는 공허함만이 가득 차 있었다. 현은 은별의 시선을 맞받아치며 더욱 냉정하게 소리쳤다. "그런 아이를 넌 사랑할 수 있어?! 애도 낳아본 적 없는 네가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혹시, 동정을 사랑으로 착각한 거 아냐?" 아니, 절대 그럴 리가 없다! 이렇게 심장이 아프도록 걱정이 되는데 이것이 동정이라고? 현의 말에 심하게 흔들리는 은별의 눈동자 속에 순간 그에 대한 증오의 불길이 활활 솟아올랐다. 63. 은별의 심정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도, 배려하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말하는 현의 말에 은별은 끓어오르는 화를 느끼며 또한 그의 말에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낀다. [찰싹-] 은별은 붉은 입술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깨물며 다부진 얼굴을 하고 현의 싸대기를 한 점의 망설임 없이 가차 없이 때렸다. 그리고는 냉랭한 목소리로 그를 향해 외쳤다. "넌 도대체 누구야?! 누구기에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식으로 그렇게 말하는 거야?! 은결이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아이야!!!" "....조금 아프다, 허니." 은별의 입에서 쏟아지는 모진 말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터진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데도 현은 꿈쩍 않고 싸늘하게 웃으며 시니컬하게 말했다. '저 웃음 언젠가 본 적이 있다.' 알 수 없는 기억 저편의 울림에 그녀는 머리를 부여잡고, 오한이 드는 몸을 움츠리며 현에게 소리친다. "이 능구렁이 같은 인간아!! 제발, 꺼져!!! 내 눈앞에서.. 당장!!!" "말이 좀 거친데. 허니?" 현은 움츠리는 은별의 어깨를 꽉 부여잡는다. 그가 고개를 숙여 은별의 눈에 자신의 시선을 맞추었다. 그의 공허한 눈동자와 눈이 마주친 은별은 순간, 머리에 깨질 듯한 고통이 전해져 왔고, 그녀는 지레 겁을 먹은 듯 현의 눈을 외면했다. "..내가.. 만약..." 그런 은별을 바라보며 약간은 낮은 보이스로 말을 꺼내는 현에게 은별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현은 조심스럽게 은별과 시선을 마주하고 은하처럼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말한다. "...내가 만약 진짜 채은하라면 현한결로 가득 찬 네 마음이 날 받아줄 수 있을까?" "..뭐?!" "정말로 그렇다면 다시 너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 진지하고도 애틋한 감정이 실린 현의 말에 은별은 꿈쩍하지 않고 그를 쳐다본다. 닮았다. 닮았다. 은하와 쌍둥이로 보일 정도로 너무 닮았다. 하지만 현에게서 위험하게 풍겨져 나오는 위화감과 가끔씩 어디선가 본 듯한 싸늘한 웃음은 은하의 것이 아니었다. 아니다. 이 사람은 은하가 아니다. 현이 만약 진짜 이 사람이 자신의 오빠인 은하라고 해도, 이미 은별의 마음엔 '은하'가 아닌 '한결'로 가득 차 있다. "아니, 넌 은하오빠가 아닐 뿐더러… 만약 은하오빠라고 해도 내 마음엔 이제 아무도 들어오게 하고 싶지 않아! 난 우리 은결이.. 은결이를 찾아야 해!!!! 그러니까 제발, 내 눈앞에서 꺼져!!!!" 자신의 말에 오열하는 은별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현이다. 잠깐의 침묵을 지키다, 현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한다. "후- 아직 시간은 많이 있으니까, 오늘은 이쯤에서 물러나지. 허니♡ 이건 포로로 가져갈게!!!! 다음에 보자고. 쿡." 현은 아까 세명고 교문에서 은별을 안았을 때, 그녀의 주머니에서 몰래 빼낸 핸드폰을 머리 위로 흔들어 댔다. 현의 머리 위에서도 그녀의 핸드폰 액정은 한결의 이름을 띄우며, 쉴 새 없이 진동을 울려댄다. 은별은 한결의 이름이 띄는 액정을 보고는 놀란 듯 눈이 커지며 현에게 소리를 질렀다. "능구렁이 같은 놈!!!! 언제 빼 간 거야?!!! 내 놔!!!!!" "안 되지. 이건 내 소중한 담보물인데, 더군다나 현한결과 다시 이어지는 것은 내 눈으로 보고 싶지 않아서 말이지. 쿡-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고- 그럼 이만. 허니♡ 우린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보게 될 거야." "야!!!!!!!!!" 재빨리 말을 마치고는 은별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뛰어 은별의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현이다. 은별은 그의 뒷모습을 어이없이 멍하게 쳐다보다 힘이 없어 따라갈 생각도 못하고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린다. "흐읍.. 한결아.. 은결아... 흑.. 하아.. 은하오빠, 난 어떻게 해야 돼...?" 은별의 차가운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져 딱딱한 길바닥을 적셨다. 64. 은별이 자신을 쫓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내심은 안도하면서 또 내심은 착잡함을 느끼며 현은 뛰는 것을 멈췄다. [부우우우웅- 부우우우웅-] 현은 30분전부터 액정에 지겹도록 한결의 이름이 뜨면서 쉴 새 없이 진동이 울리는 은별의 핸드폰 폴립을 귀찮다는 듯이 열었다. "여보세.." [씨팔!! 너 누구야?!] 은별의 핸드폰에서 때 아닌 남자 목소리가 들리자 엄청나게 흥분한 듯한 한결의 목소리에 현은 픽 웃으며 대답한다. "알 필요 없는데?" [씹.. 채은별 핸드폰을 왜 네가 받아?!] "난 네가 외면한 채은별의 상처를 보듬어 줄 사람이거든. 말하자면 차기 애인? 쿡- 아니, 진짜 애인이지." [외면? 상처?! 누구 맘대로 차기 애인이야?! 채은별 남편은 나야!! 너 나 누구인지 모르냐? 씨발, 좋은 말로 할 때 채은별 안 바꿔?! 죽고 싶냐?!] 물정 안 가리고 열을 내며 호통 치는 한결의 큰 목소리에 현은 귀가 따가운 듯 핸드폰을 멀찌감치 떨어뜨리고 귀를 후비며 대답했다. "전화 매너가 꽝이군. 현한결. 걱정 마, 난 네가 누구인지 똑똑히 알고 있어. 살인자 현한준과 창녀 강희아 사이의 자식인 현한결이란 것도 말이야." [씨팔, 너 누구야?] 자신을 알고 있는 듯한 현의 비아냥거리는 말에 이미 평정을 잃은 듯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으며 한결이 위압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현에게 물었다. 현은 피식 웃으며 한결에게 대답한다. "곧 보게 될 거야. 현한결. 바쁜 자와 지쳐버린 자, 쫓기는 자와 쫓는 자만이 남았을 때 말이지." [뭐라는 거...] [뚝-] 한결의 다급한, 절규에 가까운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전화를 끊고는 은별의 핸드폰을 거칠게 벽에 던져버리는 현이다. [와지끈-] 그대로 앞에 있는 벽에 부딪힌 은별의 은색 핸드폰이 충격으로 인해 두 동강이 나면서 파편이 이리 저리로 튀었다. 현은 흩어진 핸드폰 파편 중에 한 조각을 주었다. 그리고는 그 파편을 보며 냉소를 짓고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내가 부셔진 만큼 너도 이렇게 부셔지게 될 거야. 현한결." ................... ...................... * * * 이 때쯤 은결이는... . . . 밤마다 눈물로 날을 꼬박 지새우는 자신의 엄마, 은별을 위해 은결은 한결을 찾으려 무작정 유치원 밖으로 뛰쳐나왔다. 하지만, 막상 뛰쳐나왔어도 길을 잃고 헤매다 어느 인적이 뜸한 놀이터로 오게 되었다. "아빠 곰은 뚱뚱해, 엄마 곰은 날씬해, 아기 곰은...♬" [삐그덕-] 무서움을 달래기 위해 그네를 타면서 은결은 노래를 부르며 두려움을 달랬다. 하지만 혼자 있다는 사실은 4살 밖에 안 된 은결이에게는 너무나 큰 두려움이었다. 강한 척 꿋꿋하게 버텨온 은결이라 할지라도… "흑... 엄마.. 은결이 무서워요.. 아빠.. 은결이 무서워요.. 흑.." 그네에 앉은 채 힘없이 여리고 작은 몸을 수그리며 그 동그랗고 큰 눈에서 눈물을 주르르 흘리는 은결이다. 연약한 아이는 쉴 새 없이 나오는 눈물을 소매로 닦으며 중얼거렸다. "흑... 은결이 울면 안 되는데.. 흐앙... 은결이 엄마랑 울지 않기로 약속했는데.. 은결이 운다고 엄마가 안 찾아오면 어떻게 해. 흐윽..." 은결은 눈물을 참으려는 듯 입을 앙 물지만, 여전히 주체 없이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나온다. 땅거미가 지고 날이 서서히 어두워지는 것을 느끼며, 은결은 흘러나오는 눈물과 두려움, 그리고 공포감에 가녀린 몸을 바들바들 떤다. "어...?!! 은결이...?" 순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상냥한 남자 목소리에 은결은 한결일 것이란 기대를 걸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와와!! 은결이, 내가 찾았다!!♡ 역시 은결이랑 난 인연인가 봐~♡" "억. 바보 아저씨가 여긴 왜 온 거야!!" 은결의 기대와는 달리 사랑이었다. 은결은 눈물을 닦으며 애써 차갑게 말하려고 했지만, 반가운 감정이 실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헤헤- 유치원에서 은결이가 없어졌다고 하기에, 어디로 갔나 생각해보니까 놀이터가 딱일 것 같아서 이렇게 달려왔지. 은결아, 형아 보니까 반갑지?!" "치, 형아는 무슨!! 바보 아저씨면서!!" 역시, 은결과 사랑은 같은 레벨인가 보다. 티격태격 싸우는 것 같으면서도 항상 함께 주거니 받거니 하는 걸 보면. 습관적으로 나가는 은결의 모진 말에도 불구하고 그의 앞에서 생글생글 웃으며 팔을 벌리는 사랑이다. [풀썩-] "으아앙.!! 은결이 무서웠어요!!!" 은결은 자신이 언제나 심술궂게 대했던 사랑이 자신이 사라지자 가장 먼저 찾아와 준 것에 감동한 것인지 끝내 울음을 터트리며 사랑의 품에 안겼다. "착하다. 우리 은결이 착하다." "흐윽, 바보 아저씨 그 동안 미안했어요." "괜찮아, 울지 마. 뚝뚝." 자신의 품에 안긴 가녀린 은결을 사랑은 제 자식인양 꼭 끌어안으며 은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사랑은 훌쩍이는 은결을 보며 장난기 담긴 말투가 아닌, 아버지처럼 자상한 말투로 은결에게 말한다. "자, 이제 은결이 엄마랑 아빠 보러 가야지. 다들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은결의 조그만 손을 잡고 이끄는 사랑을 보며, 은결은 초조함에 가득 찬 얼굴로 우물쭈물 말했다. "진짜요?! 아빠, 은결이랑 엄마 싫어진 것 아니에요?" "물론이지, 한결이는 은결이랑 은결이 엄마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걸. 샘 날 정도로!!! 헤헤- 나도 은결이가 너무너무 좋지만♡ 나도 은결이 아빠하고 싶어~" 기운 없이 말하는 은결이 귀엽다는 듯 손을 더욱 꼭 잡고는 사랑은 하트어택을 날리며 일부러 쾌활하게 말했다. 은결은 사랑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사랑이 들릴 듯 말듯 하게 말한다. "바보 아저씨, 나도 아저씨가 싫지는 않아요." 65. 한결과 엉킨 실타래처럼 꼬일 대로 꼬이고, 은결은 이미 자신의 곁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현이한테 유일한 연락수단인 핸드폰마저 빼앗겼다. 은별은 정처 없이 떠돌다가 제 풀에 지쳐 아무도 없는 한결의 집 앞, 대문에 걸터앉았다. 끊임없이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기 위해 자신은 허벅지를 꼬집으면서.. "이제, 어떡해야 하지..." 은별이 힘겨운 듯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였다. ............ "뭘 어떡하긴 뭘 어떡해." 잠깐의 공백 뒤로, 저음의 목소리가 은별의 귀에 와 닿았다. 은별은 한결일까 하는 마음에 수그리고 있던 고개를 치켜들었다. 은별의 시선이 점점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을 향해 올라갔다. "민...태하?" 갑자기 눈앞에서 나타난 태하의 모습에 은별은 놀랐는지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태하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서두르듯 빠르게 말했다. "지금 한가롭게 날 쳐다볼 때가 아니야. 늦을 것 같다. 씹, 현한결이 졸라 지랄하게 생겼네." 태하는 급한 듯 말을 얼버무리며 은별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뭐.. 뭐야?!" 은별이 당황한 듯 손을 빼내려고 하자, 태하는 그녀를 힐끔 쳐다보며 빠른 속도로 말을 했다. "현한결이 기다린다. 안 가면 너 죽고 나 죽는다." "..한결이가 날 기다린다고?" 놀란 듯 태하의 말에 우물쭈물 거리며 발걸음을 반대편으로 돌리는 은별을 의아하게 쳐다보는 태하다. "왜 그러냐?" "저기 잘못 안 거 아냐? 한결이는 이미 날 버렸는걸..." 말하는 도중에, 은별은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눈물이 마를 때도 되었건만 한결의 이름만 나오면 왜 이리 눈물이 터져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태하는 그런 그녀의 어깨에 두 손을 올리고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누가 그런 말을 했냐?" ".........." "현한결이 직접 한 말이 아니면, 보이는 것도 믿지 마" "하지만.. .......... .... 한결이한테는 이미 다른 여자가..!!" 은별은 한결과 그 미모의 여자에 대한 생각에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끼며 목이 메기 시작했다. 눈이 따끔따끔 거리며, 눈물이 또 다시 솟구쳤다. 태하는 전전긍긍(戰戰兢兢)하며 당장이라도 눈물이 나올 듯한 그녀의 떨리는 눈을 응시하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하여튼, 과대망상하고는... 네가 본 여자는 현한결의 하나밖에 없는 이모야. 몰랐냐?" "뭐?" "이모라고. 돌아가신 한결이 어머니의 동생." "말도 안 돼! 거짓말!!.... 20대 초반으로 밖에 안 보이는데..." 은별의 울음 섞인 말에 태하가 보기 드문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했다. "픽. 그 여자, 이미 유부녀인데다가 32살이고, 중요한 것은 다 화장발이야." "헉.." "한결이 녀석 믿어라. 그 녀석은 너 밖에 없다. 언제나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던 녀석이다. 사랑에 굶주린 녀석이야, 절대로 너에게 배신 같은 거 안 한다. 그 사실은 나 민태하가 이름을 걸고 장담해." 호언장담하는 태하의 말에 은별은 또 패닉 상태로 빠져들었다. ‘뭐야!? 그럼 나 또 생쇼한 거야?! 흐앙!!! 내가 못 살아.. 채은별!! 완전 의부증(?) 같잖아!!! 이런 일에 노심초사하다니.. 아악!!! 쪽팔려~~~~~~~!!!‘ 소리 없는 외침을 내뱉으며 속으로 오열을 토하는 은별이다. 머리를 부여잡으며 의기소침해 있는 은별의 손목을 태하가 붙잡았다. 그녀가 왜 그러냐는 식으로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그를 쳐다보자, 태하는 다급한 듯 재촉하며 그녀에게 소리쳤다. "늦었어. 혼자 쇼하지 말고 얼른 가야해! 늦어서 만시지탄(晩時之歎) 하기 전에." "어딜..?" "거두절미하고, 따라와 보면 알아." 짤막하게 대답하고는 태하는 어리둥절해하는 은별의 손을 잡아 그녀를 이끌며 어디론가 한참을 뛰었다. * * * 얼마나 뛴 것일까? ............................ "헉.. 헉.. 도대체 어디 가는 거야?" "잔말 말고 따라와 보면 알아." "아.. 힘들어, 나 죽겠다. 헉.. 헉.. 도저히 못 뛰겠어." 하지만 태하는 지친 기색도 없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숨을 몰아쉬며 지친 은별을 이끌었지만 그녀는 지친 듯 자리에 주저앉기 일보 직전이었다. 태하는 안 되겠다는 듯 고개를 젓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씨발, 업혀라." "뭐?" "업히라고! 늦으면 너 죽고 나 죽어!!!" "아... 응ㆀ 미.. 미안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짜증을 내는 태하의 고함에 놀랐는지 얼떨결에 자신의 앞에 엉거주춤 앉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태하의 등에 은별은 힘없이 털푸덕 업혀버렸다. 그는 그녀를 업고도 거뜬히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 .................... 푸른 산 속은 하염없이 고요했다. 이따금 풀벌레 우는소리와 푸른 녹음이 정겹게 느껴졌다. "야, 채은별- 살 좀 쪄라. 그래야 한결이 녀석이 걱정을 덜 하지." 한참동안 은별과 태하, 둘 사이에 이어진 침묵 속에서 태하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은별은 갑작스러운 태하의 말에 놀란 듯 엉겁결에 대답이 튀어나왔다. "어?" "한결이 녀석이 왜 걱정하나 했더니, 정말 말랐네. 씹, 이슬만 먹고 사냐? 뼈 밖에 안 남았네. 좀 많이 좀 먹어라." 삐딱하게 말을 하긴 하지만 태하의 말은 분명 은별,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었다. 바람결에 태하에게서 나는 비누향기가 은별의 코를 간질였다. 꼭 한결의 등에 업혀 있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드는 그녀다. "항상 고마워, 태하야…" 자신의 등에 얼굴을 파묻으며 조용히 중얼거리듯 말하는 은별의 아련한 목소리에 태하는 조용히 미소만 띄웠다. 그렇게 그들은 어느 한 이름 없는 야산에 서둘러 올라갔다. 66. 이윽고, 힘겹게 산의 정상에 다다를 때쯤 은별은 여름이라 그런지 잔잔히 풀벌레 우는소리와 푸르고 싱그러운 녹음(綠陰)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와..." 그리고 그들이 정상에 올랐을 때 은별의 눈앞에 보인 것은 울창한 소나무 숲과 매미 우는소리 사이로 당쟁이 덩굴이 건물의 반쯤을 둘러싼 자연 친화적이고 아름다우며 고풍 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천문대였다. 태하 등에서 내려온 은별은 풍경을 보고 놀란 듯 탄성을 질렀다. "다 왔다." 산 속의 맑은 공기를 후웁 들이키며 태하가 은별을 바라보며 낮은 보이스로 기분 좋게 말했다. 은별은 멀뚱히 태하를 응시하며 여기가 어디냐는 눈빛을 보냈다. 태하는 마른침을 삼키며 은별의 눈빛을 읽은 듯 시계를 한 번 쳐다보고는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긴 한결이 이모 소유의 천문대야. 한결이 이모가 천문학자거든.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현한결도 별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아." "헉, 안 어울려." 태하의 진지한 말에 믿어지지 않는 다는 식으로 은별은 얼굴을 찡그리고 빈정대며 말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태하가 살벌하게 말을 잇는다. "그런 말 한결이 앞에서 하면 반죽음이다." "..(움찔)...;;" "아무튼, 현한결이 너하고 백일이라고 잠도 못 자면서 온갖 아르바이트 다 해서 이모한테서 이 천문대를 샀다. 뭐 오래되긴 했어도, 꽤 멋진 곳이지.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태하의 말에 은별은 터질 듯이 뛰는 심장의 고동을 느끼며, 푸른색 덩굴들과 어우러져 금상천화를 이루는 고풍스러운 백색의 천문대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웠다. 자신을 위한 천문대이기에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예쁘다..." "그래, 예쁘다니 다행이다. 네가 마음에 들어할 것 같다고, 현한결 녀석이 죽도록 일해서 번 돈으로 이 천문대 사면서 얼마나 날뛰었을 줄 아냐? 알고 있어라. 그 녀석 너한테 목숨 걸었어." 무뚝뚝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태하의 무뚝뚝한 말에 은별은 그간 걱정했던 일들이 모조리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얼굴이 편안하게 펴지는 것을 보며 태하는 조금은 심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근데, 너무 좋아하지는 말아라. 한결이가 아까 전에 네 핸드폰으로 전화 걸었는데, 어떤 이상한 놈이 받아서.. 저 성질 나쁜놈, 존나 열 받게 만들었다." 태하의 심각한 말에 문득 자신의 핸드폰을 뺏어간 능구렁이같은 선우 현이 생각나는 은별이다. 또 일이 꼬였다. 은별의 표정이 다시 침울해진다. 태하는 그런 그녀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거리며 말했다. "걱정할 것 없어. 죽기야 하겠냐? 20분 남았다. 들어가자." ‘죽기야 하겠냐 라니.. 흐억. 어쩌면 좋아!!! 민태하!! 남의 일이라고 무심하게 말하다니!! 엉엉.... 나 꽃다운 18살에 초상 치루면 어떻게 해!!!!‘ 눈이 핑글핑글 도는 것을 느끼며 현기증이 일어나는 은별은 어처구니없이 태하의 힘에 의해 힘없이 2층으로 올라가는 바깥 계단에 끌려 올라갔다. [달그락-]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태하는 그 안에 은별을 쑤셔 밀며 말을 이었다. "들어가면 한결이가 있을 거야. 난 안내역이니까, 여기까지가 끝이야. 한결이 너무 힘들게 하지 마라. 100일 축하한다." "저기, 태하야. 고마워.. 매번 신세만 져서.." 자신과 한결을 걱정하며 성심껏 말해주는 태하의 모습에 은별이 미안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나한테 감사할 것 없어." 태하는 그런 은별을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며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고는 중얼거렸다. "다만, 내가 웃을 수 있게.. ......................................................행복해져라..." "아...?" [쾅-] 그러고는 미처 은별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문을 닫아버리는 그의 슬프게 보이는 눈에 언뜻 눈물이 베어 보였다면, 그것은 은별의 착각이었을까? 67. 한동안 은별은 꼼짝 않고 태하가 닫은 문을 바라보다, 이내 그윽한 장미향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려 계단 아래를 쳐다 보았다. "..우와.." 은별의 자신의 아래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놀란 듯 탄성을 자아내며 입이 크게 벌어졌다. 천문대의 고급스러운 하얀 기둥과 벽에 자잘하게 수천 송이의 붉은 장미가 그윽한 향기를 내뿜으며 천문대 안에서 화려하게 수를 놓고 있었다. [터벅터벅-] 은별은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어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천문대 1층 중앙에는 커다란 ♡모양으로 만들어진 야광 촛불들이 '채은별 사랑해' 란 모양으로 배열되어 늘어서 있었다. 별빛을 받아 야광 촛대는 푸른색으로 형형색색 빛나고, 심지는 장미처럼 붉게, 그리고 강렬하게 타올랐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휘영찬란한 은빛 달빛의 조명을 받으며 흰 정장을 입은 한결이 눈처럼 하얀 백합 꽃다발을 들고 마치 한 폭의 그림같이 말없이 서 있었다. ‘현한결, 멋진 녀석. 저렇게 서 있으니 완전 그림이네. 왕자라고 해도 될 만하다. 그 성격만 좀 고치면.. 아자! 채은별! 파이팅! 넌 이겨낼(?) 수 있다!‘ 굳게 마음을 고쳐먹고 은별은 한 걸음 한 걸음 그에게 다가간다. "한결아.." 은별은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한결의 뒤에 서서 약간 상기된 얼굴로 조용히 한결을 불렀다. 은별의 자신을 부르는 고운 목소리에 멍하게 달을 쳐다보던 한결이 고개를 돌려 촉촉이 젖은 눈으로 은별을 바라보았다. "채은별..." [와락-] 한결은 그대로 백합 꽃다발을 떨어뜨리며 은별을 으스러지도록 끌어안았다. 은별은 의외의 태도에 놀란 듯 몸을 움찔거렸지만, 이내 그녀도 자신을 꼭 끌어안은 한결을 두 손으로 꼭 안았다. 은별에게서 나는 민트향이 한결의 숨결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일주일 만이었다. 그 동안 은별을 안고 키스하고 싶었던 것을 꾹 참으며 이 날을 기다려왔다. 한결이 은별을 향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씨발, 안 오는 줄 알았어. 안 오는 줄 알았어.." "한결아.. 미안해... 끝까지 널 믿지 못해서..." 울부짖는 한결을 꼭 끌어안으며 애틋하게 말하는 은별이다. 한결은 은별의 깊은 다갈색 눈을 바라보며 많이 야위어진 은별의 볼을 자신의 하얗고 가는 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은별의 볼은 한결의 손길에 더욱 상기되었다. 한결은 약간 고개를 숙이며 은별에게 말한다. "채은별,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한결...읍.." 은별의 말을 끝나기도 전에 한결의 그녀의 작고 예쁜 입술에 조용히 따뜻하게 달아오른 자신의 입술을 갖다대었다. 은별의 붉은 입술에 한결의 입술이 닿자 불이 덴 듯 뜨거워진다. "하...으..ㅂ.." 이윽고, 한결의 혀가 은별의 입안에 들어와, 그녀의 치아를 훑고는 은별의 혀를 찾아 부드럽게 애무한다. 몇 번의 길고 긴 키스 끝에 한결은 아쉬운 듯 입을 뗐다. 붉게 상기된 은별을 보며 한결이 그녀의 귀에 대고 조그맣게 속삭인다. "내 눈에는 채은별, 너 밖에 안 보여. 내 귀에는 네 목소리밖에 안 들려. 내 입은 네 입술만 찾게 되었어. 내 몸은 이미 널 미친 듯이 원해. 그리고, 내 심장은 너 하나에만 반응해." "한결아..." 한결은 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는 부스럭거리며 조그맣지만 고급스러운 반지 케이스를 꺼냈다. 그러더니 살짝 케이스 뚜껑을 열어 은별을 향해 내밀었다. 케이스 속에는 백금으로 된 가는 두 개의 링으로 이루어진 붉은 하트모양으로 된 루비가 중앙에 도드라지게 박혀있는, 심플하면서도 안목 있는 반지 두개가 나란히 꼽혀있었다. "한결아?!" 은별은 커플링에 굉장히 놀란 듯 눈이 커지며 한결을 바라보았다. 그는 피식 웃으며 얽혀있는 두개의 반지 사이에서 하나를 빼더니, 마치 기사처럼 한 쪽 무릎을 꿇고는 은별의 왼손을 들어 살포시 그녀의 약지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준다. "너는 내 삶의 빛이고, 내 삶의 이유야. 널 처음 본 순간부터 네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게 되었어. 책임져라, 넌 내 삶이자, 내 심장이니까." 조용히 말을 이으며 자신이 은별에게 끼운 반지에 한결이 살짝 자신의 붉은 입술을 갖다대어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은별의 눈에 시선을 맞추며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나 현한결은 이 자리에서 맹세합니다. 채은별을 영원히 사랑하겠노라고.." 68. 한결의 진심 어린 마음이 은별의 심장에 와 닿았다. 그녀는 한결의 진지한 말에 감명과 감동을 한꺼번에 받은 듯, 거의 울 듯한 얼굴로 얼굴이 붉어진 한결을 쳐다보았다. 그런 은별을 보며 한결은 장난기 어린 웃음을 환하게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에게 새침하게 말한다. "쿡- 넌 맹세 안 하냐? 자, 반지 끼워 줘." 한결은 멍하게 자신을 쳐다보며 눈물짓는 은별에게 내밀었다. 은별은 떨리는 손으로 케이스 안에 홀로 남아있는 하나의 반지를 꺼내 한결의 약지 손가락에 끼웠다. 그녀는 눈에서는 이미 눈물이 한가득 고여 있었다. "나.. 흡.. 채은별은.. 이 자리에서.. 현한결을 영원히 사랑할 것을... ........................................... .................................. 맹세합.. 흐앙..!!! 이 나쁜 놈아!!" "울지마." 울음 섞인 말을 잇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은별이 크게 울음을 터트리며 한결의 가슴을 주먹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한결은 그런 은별을 품에 안고 조심스럽게 달랬다. 하지만 은별은 막무가내로 울먹거리며 한결에게 소리쳤다. "흑.. 나쁜 놈아.. 성격파탄자.. 왕자병.." "어쭈, 계속 해라?" "흐앙!! 이 바보!! 진짜 미워, 미워 죽겠어!!! 흡.. 이렇게 무방비할 때 감동을 주면... 어떻게 해!!! 흑..." "쿡. 벌써부터 감동 먹으면 안 되는데, 지금부터가 시작인 걸." 한결의 품속에서 계속 펑펑 울어대는 은별의 이마에 그의 입술이 살며시 닿았다. "울보야, 그만 울어. 네가 울면 내가 더 울고 싶어지는 것 아냐?" "..흐윽.. 바보..." "넌 내 심장이라서 네가 울면 나도 같이 울어. 사랑해." "..흑.. 나도 사랑해, 한결아." 한결은 울음을 멈추지 않는 그녀에게 보기 힘든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고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은별의 눈이 한결의 손을 따라 하늘을 바라보았다. "앗!!!!" 한결의 손을 따라 시선이 올라가 본 융단처럼 까만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우주의 산물인 금빛 별똥별들이 짙은 검은색 어둠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붉은 빛을 발산하며 떨어지고 있었다. 바로 유성우(遊星雨)였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몰라도 우리 백일하고, 100년만에 유성우가 쏟아지는 날하고 일치하더라. 인상깊은 백일이 되게 하고 싶었는데, 어때?" 은색의 신비로운 달빛을 받으며 환히 미소를 짓는 한결과 그의 머리 위 융단 같은 하늘에서 비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금빛 별똥별의 모습이 은별의 눈에는 잡히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아름답게 그리고 신비롭게 느껴졌다. "너무 예뻐.. 고마워. 고마워.. 너무 고마워. 세상에서 가장 최고야!!! 한결아."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이 몸이 손수 만든 백일파티인데." 잘 나간다 싶더니. 한결군. 당신은 마지막에 입이 방정이야. ‘한결아.. 제발 그 자폭증 좀 빼 줘.. 옥의 티다. 옥의 티!!!! 끝까지 잘 나가면 어디가 덧나냐?!‘ 마지막에 꼭 분위기를 깨는 한결의 말에 울상을 짓는 은별의 귀에 은결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해 한결을 보던 고개가 은결의 목소리가 나는 휙 문 쪽으로 돌리는 은별이다. "엄마!!! 엄마!!! 우와!! 아빠도 있네!! 사랑이 아저씨 말이 맞네!!" 은결이었다. 사라져버린 줄로만 알았던 은결이 사랑의 손을 잡고 문 앞에 서 있었다. 은별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큰 소리로 은결을 이름을 외쳤다. "은결아!!!" [풀썩-] 있는 힘껏 은별이 두 팔을 벌리며 자신을 부르자 힘차게 뛰어와 따뜻한 은별의 품에 안기는 은결이다. 69. 드디어 제 모습을 찾은 한결네 가족이다. 자신의 품에 안긴 은결을 어루만지며 은별이 울먹거리며 말을 이었다. "은결아.. 은결아. 어디 있었던 거야?! 응..?" "은결이 무서웠어요.. 놀이터에 있었는데.. 아무도 안 찾아와 줘서.. 무서웠어요... 흐앙!!!" "미안, 엄마가 미안.. 미안해. 은결아.. 그래도 은결이 다시는 유치원.. 함부로 나가면 안 돼! 알았지?!" 은별의 당부하는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은결이다. 은결은 눈물을 소매로 슥슥 닦으며 은별의 옆에 서 있는 한결을 쳐다보며 힘차게 물었다. "아빠, 이제 엄마 안 울릴 거죠?!" "그럼." "약속하는 거예요!?" "물론, 아빠가 미안하다. 은결아." 한결은 은별의 품에 꼬옥 안겨 자신에게 당부하는 은결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기분 좋게 쓱쓱- 쓰다듬었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는 은별 곁으로 어느 새 어떻게 온 건지 심술궂게 웃는 아리가 다가왔다. "어이, 친구. 좋겠어~?" "뭐가?" "뭐가~? 지금 시방 네가 뭐가라고 그랬냐? 내가 너하고 현한결을 다시 이어주려고 포커스 앞에서 쇼까지 하는 그런 살신성인(殺身成人)의 정신을 보인 것도 모르냐? 앙?" 장난기가 가득 담긴 아리의 말이었지만 의외로 진지한 말에 은별은 거짓말이 아니란 것을 느끼고 그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아리는 싱긋 웃으며 은별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결초보은이라고~ 은혜는 꼭 같아♡ 나중에 내 부탁 하나 들어주기다~ 유후~♡ 안 갚으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지? 백일 축하한다~♡ 친구!!!!! 호호호호호~" "민아리.. 너!!!" "자자~ 그만, 그만하시고! 유빈이표 케이크 대령입니다요!" 은별이 아리를 향해 소리를 지르려는 것을 막으며 유빈이 거대하지만 왠지 엉성해 보이는 생크림 케이크를 들고 나타났다. 한결은 유빈이 가져온 케이크를 요리 저리 살피더니 상당히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살며시 물었다. "이거 네가 만든 거냐?" "응~ 한결아~ 나의 졸작! 맛있겠지? 나의 축하선물이야. 백일 축하해, 형수님- 한결아~ 많이 먹고 만수무강하거라~" ‘저거 저거, 왠지 불안하다.; 도대체 속에 뭘 넣었기에 저리 엉성해 보일까?‘ 유빈이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엉성한 케이크를 보며 불길한 듯 심히 케이크 감정에 들어가는 은별이다. 그리고 한결도 은별과 같은 생각을 했는지 유빈에게 다시 한 번 확인 차 조용히 묻는다. "이거 먹어도 안 죽냐?" "헉! 나를 뭐로 보고!!! 날 믿어~!! 얼마나 맛있는데!!!" 유빈은 한결의 묻는 말에 큰 소리를 탕탕 치고는 싱글벙글 믿음이 안 가는 웃음을 지으며 쾌활하게 말했다. 그리고 유빈을 뺀 나머지 아이들이 생각한다. ‘너니까 못 믿겠다는 거야.’ 유빈과 아이들이 담소를 나누는 동안 태하와 사랑, 둘이 함께 천문대 안에 있던 탁자를 들고 중앙으로 왔다. "으쌰-" [쿵-] 힘겹게 옮긴 탁자 위에 유빈은 자신이 만든 엉성하게 보이는 케이크를 올려놓고는 그 위에 긴 촛불 10개를 꼽고 불을 붙였다. 그러는 동안 사랑이 아리의 말을 따라하며 장난스럽게 한결에게 말한다. "한결아! 고맙지? 고마워죽겠지?! 결초보은이라고 은혜는 꼭 갚아~" "진사랑, 어디 한 번 죽어볼래?" 한결은 아까 아리에게 한 대 맞은 게 문득 생각난 듯 눈썹을 꿈틀대며 애꿎은 사랑을 노려보았다. "병아리가 또 잊고 안 전했냐? 아무튼 기억력 3초라니까, 너 내가 100대 맞을 준비하라고 그랬지?" "헉...IIIIII 무.. 무슨 소리야?" 한결의 살벌한 말과 살기가 가득 담긴 듯한 꽉 쥔 주먹을 보며 사랑의 하얀 낯빛이 노랗게 변했다 새파랗게 질리며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아리를 쳐다보았다. 시선을 교류하던 사랑과 아리, 하지만 이내 아리는 뒷 책임을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사랑의 시선을 외면한다. "아악!!! 싫어!! 살려줘!! 한결이한테 100대 맞으면 골로 간단 말이야!!!!" "그러게 누가 까불래?" "현한결, 은결이랑 수준 똑같은 놈을 때려서 뭐에 쓰려고 그러냐." "..흐음.. 그건 그렇군.." 여전히 무뚝뚝한 태하의 말에 심히 공감한다는 듯 한결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랑을 향해 나아가던 주먹을 풀었다. 사랑, 무슨 수준이 똑같냐고 소리치고 싶지만 역시 힘없는 자는 서럽다. 흑. "저기, 한결아- 이거...." "뭐냐?"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은별의 부름에 한결이 사랑을 보던 고개를 돌려 수줍은 듯 붉게 변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은별을 바라보았다. 은별은 자신의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한결을 주기 위해 만들었던 십자수 핸드폰 줄과 심플한 시계를 꺼내 그의 앞에 내밀었다. "이거, 내가 만든 거거든. 네가 준 것에 비해 초라하지만, 아, 저기 그러니까...... 음..../// ........받아줄래?" "...나 주는 거야?" "응....////" 얼굴을 더욱 상기시키며 말하는 은별이 예뻐 죽겠다는 듯 바라보며 한결은 그녀가 건넨 선물들을 소중히 받아 들고는 얼굴에 한 가득 웃음을 띠며 그녀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네가 주는 선물들은 나한테 목숨 같은 거야. 고맙다. 평생 간직할게." "자자~ 오늘의 주인공들! 염장질 하지 마시고! 먹는 것 앞에서!!! 촛불이나 불어!! 배고파 죽겠습니다! 아~ 닭살 돋는다!" 촛농이 떨어질 듯 위태롭게 흘러내리자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유빈이 서로 껴안고 있는 한결과 은별을 향해 소리쳤다. 아마도 자신이 만든 케이크가 훼손될까봐 그런 것 같다. "후~" 유빈의 재촉임에 한결과 은별이 손을 잡고 동시에 촛불을 분다. 촛불 10개가 그들의 입김에 한 번에 꺼지고, 굶주린 아이들은 시끌벅적해지며 케이크를 향해 달려든다. "은별아~ 너 요새 통 아무 것도 못 먹었지?! 뼈 밖에 안 남았어!!!! 좀 먹어 봐!; 겉보기보다 맛은 괜찮다." 아리가 건네주는 케이크를 입에 대는 순간, 은별은 어지럼증이 나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휘청거렸다. "은별아?!" "채은별?!!!" 창백해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위태롭게 비틀대는 은별의 모습에 걱정스럽게 은별의 이름을 부르는 아리와 쓰러지려는 은별의 허리를 받치며 한결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은별......." 그들의 목소리가 은별의 귀에는 점차 옅어진다. 그녀는 눈앞이 희미해지면서 점점 컴컴해지는 느끼곤 정신을 잃었다. 70. * * * ........... ............... "으..음.." 은별은 천근같이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떴다. 어둡고 흐릿한 시야가 점점 밝아진다. 그녀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의자에 앉아, 창백한 얼굴을 하고 선잠에 빠진 듯 눈을 감은 채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있는 한결이었다. "한결아..." 은별은 부스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흐리멍덩한 눈으로 한결을 초점 없이 바라보며 잠에 취한 듯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목이 가라앉은 듯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은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눈을 뜨는 한결이다. 잠에 취해 보이는 은별을 쳐다보는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한결...." "채은별!!!!" [와락-] 눈물이 맺히는 한결의 눈을 의아하게 보는 은별을 바라보며 한결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를 단번에 양손으로 꼭 끌어안았다. 은별은 멍한 머리를 두어 번 흔들고는 한결에게 말한다. "한결아..? 왜 그래?" "씨발, 너 죽는 줄 알고 얼마나 놀랬을 줄 알아?!" "하암- 죽다니..?" 은별은 잠이 덜 깬 건지 피곤한 듯 하품을 하며 풀린 눈으로 한결을 의아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너, 쓰러진 것까지는 기억 나냐?" "응, 그게 왜?" "너 지금 꼬박 3일을 의식 없이 쓰러져 있었어." "뭐?!!!" 놀란 듯 소리치며 한결의 품에서 떨어지는 은별이다. 창 밖을 보니, 이미 한밤중이었다. 한결은 아직도 정신이 안 나는 듯 눈을 비비는 은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너 쓰러지고 애들이 얼마나 놀랐을 줄 아냐? 씨발, 신유빈, 그 새끼가 케이크에 독 넣은 줄 알았다. 게다가 은결이는 3일 내내 시간만 나면 네 옆에서 울다가 방금 전에 지쳐서 잠들었다." "미..미안.." "씨발, 영양실조가 뭐냐! 영양실조가.." 한결은 그녀에게 잠시라도 슬픔을 주었다는 죄책감을 단단히 가슴속에 새긴 건지 슬픔이 가득한 눈으로 마른 은별을 바라보며 그녀의 가죽과 뼈만 남은 마른 손목을 꽉 붙잡았다. "채은별, 이게 사람 손목이냐?! 완전 피골이 상접을 했네." "씨이! 다 너 때문이잖아!" 한결의 비아냥거리는 말에 흥분한 듯 붉게 물든 얼굴로 그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르는 은별이다. 그런 그녀에게 비웃음을 날리며 한결이 묻는다. "누가 멋대로 오해하래?" "씨이...." 맞는 말이었다. 혼자 오해하고, 혼자 쇼한 은별. 할 말 없다. 고개를 떨어트리고 혼자 씩씩거리며 분을 참고 있는데, 그녀의 머리에 따뜻하고 포근한 손길이 느껴졌다. "혼자 고민하지 마라. 내가 있잖아. 사랑해. 채은별. 힘들면 나한테 기대라, 너 하나 기댈 어깨는 가지고 있다." 은별의 윤이 나는 갈색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한결이 부드러운 저음의 보이스로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은별은 그런 한결의 행동을 보며 뿌루퉁한 얼굴을 하고 삐진 듯이 입술을 쭈욱- 내밀며 새침하게 대답한다. "진짜 이건 병 주고 약 주는 거야!! 씨이.." "입술 내밀지 마. 키스하고 싶어지니까." "뭐..? 뭐..////!!!" ‘이제는 못 하는 말도 없어///!!! 신유빈이 만든 생크림 케이크 먹고 더 느끼해진 것 아냐?!!‘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얼굴이 사과같이 붉어지는 은별을 말없이 지켜보는 한결이다. 그런 한결이 이내 무언가 생각이 난 듯 표정이 굳어지면, 은별의 손을 꽉 잡은 채 그녀에게 묻는다. "근데, 씹- 잊고 있었는데 네 핸드폰 받았던 놈 누구냐? 있는 사실대로 이실직고(以實直告)해라? 안 그럼 알지?" "헉.. 그러고 보니 내 핸드폰!!!!" 잊고 있었는데 올 것이 왔구나. 은별, 갑작스런 한결의 질문에 당황한 듯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얼른 대답하라는 한결의 압도적인 시선에 그녀는 그녀의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은별은 한참을 얼버무리다 용기를 내서 말했다. "그게.. 은하오빠랑 똑같이 생긴 사람인데.. 이름이 선우 현이고, 좀 싸이코 기질이 다분한 이상한 인간이야- 내 핸드폰을 담보물이라고 뺏어가고… 그러니까.. 에- 나도 처음 본 사람이야. 묻지 말아줘." "은하형이랑 똑같이 생겼다고?" 한결이 은별의 말에 의아한 듯 재차 물었다. 은별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결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문득,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허공을 바라보았다. 은별은 이내 한숨을 푹 쉬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근데, 꼭 나와 은하오빠, 내 주위의 상황... 그리고 한결이 너에 대해서도,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 같았어." "그래, 그 자식, 많은 걸 알고 있더군. 내가 그 비열한 현한준 자식이란 것도 말이야. 선우 현이라..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계속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한결을 보며, 은하를 닮은 현의 생각에 잠긴 듯 눈을 내리깔며 유유히 은별이 말한다. "모든 걸 꿰뚫는 다갈색 눈을 가진... 그러고 보니까 눈이 은하오빠를 가장 많이 닮은 것 같았어." "근데, 그 새끼랑 아무 일도 없었지?" 눈썹을 꿈틀대며, 이마에 빠직마크를 하나 달은 채 은별을 향해 심각한 목소리로 묻는 한결이다. 그녀는 한결의 질문에 피곤한 듯 하품을 하며 대답한다. "하암- 무슨 일 있음, 나 초상 치르게? 근데, 어디 나가? 웬 정장차림이야?" 말을 마친 은별은 어두운 블루톤의 세미 정장을 단정하게 입은 한결을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블루톤의 정장이 한결의 하얗고 고운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조각 같은 외모의 한결, 누구 남자인지 정말 잘 생겼다. 한결은 졸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살짝 맞췄다. "단합 있어. 좀 있다 가봐야 해." "아? 늦게 오는 거야?! 나 졸린대.. 으음-" "좀 늦을 것 같다. 졸리면 그냥 자. 자는 것, 보고 갈 테니까." "우음- 미안한데.. 그럼 갔다 와.. 하암..." 은별은 많이 피곤한 듯 한결이 눕혀주는 대로 침대에 누웠다. 한결이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금새, 그녀는 한결의 앞에서 쌕쌕거리며 편안한 얼굴로 잠이 든다. 한결은 잠이 든 그녀를 보며 인상을 구기더니 약간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아무리 날 믿는다고는 하지만 너무 믿는 것 아니냐? 나도 18살 혈기왕성한 남자애라고..." 한결은 혼잣말을 조용히 중얼거리며 얼굴을 붉힌다. 고요히 잠든 은별의 하얀 피부와 어울리는 도드라지게 붉은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춘다. "채은별. 네가 너무 소중해서 만지고 싶어도 부셔질까봐.. 함부로 만질 수조차 없는 내 심정을 아냐? .....좋은 꿈 꿔라." 그 멋진 얼굴에 피식 웃음을 띄우며- 다시 한 번 은별의 다갈색 머리칼을 쓰다듬고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방을 빠져나가는 한결이다. 71. [마셔라 호프] "그래, 신하공고도 별 거 아니었다니까." "근데, 요번에 또 신영고가 움직였다며?" 몇 달만에 있는 단합이라 그런지 호프 안에는, 전 지역의 학교에서 온 남녀 일짱들이 수많이 북적거리며 수다를 떨었다. [덜컹-] 갑자기 소란스러운 호프집 문이 열리더니 어두워 보이는 표정을 한 한결이 들어왔다. "그러게, 한동안 조용하더니.." "포커스 왔다. 쉿!" "........" 한결이 들어오자 순식간에 숙연해지는 일진들이다. 서열 1위 포커스인 한결이 무섭긴 무서운가 보다. 그들은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며 자신들 쪽으로 다가오는 한결에게 인사한다. "어서 오십시오. 포커스" "어서 오세요." 한결은 약간은 언짢은 표정으로 당연한 듯 인사를 받으며, 유빈과 태하가 있는 제일 안 쪽 구석진 자리에 자리를 잡는다. "왔냐? 안 올 줄 알았는데 용케 왔네?" 태하가 자신의 술잔을 비우며 한결에게 말했다. 한결은 그런 태하를 힐끔 쳐다보고는 이내 유빈의 술잔을 뺏어 벌컥 술을 들이키며 타는 목을 축이곤 대답한다. "안 오려다, 요번에도 빠지면 안 될 것 같아서 와 봤다. 왜? 다시 가리? 너희들이 원한다면야 다시 가마." "아하하~ㆀ 아냐! 가긴 어딜 가~ 잘 생각했어!!!! 헤~ 애 아빠 되더니 철이 좀 들었나 보네~ 근데, 온 걸 보니까 형수님이 드디어 깨어났나 보네?" "오냐. 누구누구 덕분에 쓰러졌다 용케 깼다." "그러니까~!!! 그게 왜 나 때문이냐고~!!!" 한결이 띠거운 듯 유빈을 바라보며 얘기하자,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지만 유빈의 이마에는 이미 깊은 골이 패어져있었다. 자신을 몰아붙이는 한결의 말이 유빈은 엄청 억울한 것 같았다. "그런데, 유빈아!! 한결이는 고사하고 그 얼굴로 용케 왔네~♡ 오늘은 안면 운동 안 해~?? 헤헤~ 흠흠~♬ 요리 보고~♬ 저리 봐도 알 수 없는~ 팬더~ 유빈~♬" 갑자기 한결과 유빈이 말하는 사이에 끼여 들어, 이리저리 멍든 유빈의 얼굴을 쿡쿡 찌르며, 사랑은 둘리 주제가를 이상하게(?) 변형해 불러댔다. "그만 해라. 사랑아?" 사랑의 노래에 유빈은 싱글대는 얼굴이었지만, 이마에 빠직 마크를 두 개나 단 채로 상당히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게 더 코믹이었다. 사랑은 참을 수 없다는 듯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헤헤~ 유빈아!! 너 그렇게 웃으니까 진짜 팬더 같아! 눈에 시퍼렇게 멍 진 것 봐!! 키키~ 영락없는 팬더 유빈이~ 팬더 유빈이~♬" "진.사.랑. 너도 이렇게 만들어 줄까?" "난 사양입니다요! 팬더 유빈씨! 기념으로 사진 찍어서 영원히 보관해야지~♡ 기억 속에 추억이 될 꺼야!!!♡ 후후후후~ 자아~ 김치!!!!!" 핸드폰을 꺼내 즐거운 듯이 ‘팬더팬더’라고 흥얼거리며 사랑은 우스꽝스러운 유빈의 모습을 정성스럽게 찍어댔다. ♨♨♨ "..........." 유빈, 머리 위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사랑은 유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몸으로 감지하고, 슬그머니 조용히 술만 마시는 애꿎은 태하 뒤로 내뺀다. "아우!!!!!!! 현한결!!!!!!!!! 너 때문에 내가 이게 뭐냐!!! 너 때문에, 내가 저 모자란 인간한테 팬더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하냐고!!!!" "씨발, 그러게 누가 케이크에 독 타래. 은별이가 입에 대자마자 쓰러졌잖아!" "그러니까, 내가 뭐 때문에 독을 타냐고!! 억울해.. 독을 탔으면 너희들도 다 쓰러져야지!! 왜 채은별만 쓰러진 건데!!" "말이 많다." 한결은 유빈의 말을 살짝쿵 씹어주고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본다. 한결과 유빈, 태하를 뺀 몇 몇의 남자를 제외하고는 하나 같이 여자를 끼고 있는(사랑은 아리 옆에서 재롱을 떨고 있었다;) 모습을 보고, 그의 이마가 저절로 찌푸려진다. "포커스야!!! 포커스!!!" "꺄아- 요번엔 참석하셨네. 내가 포커스 옆에 앉을 거야!!" "누구 맘대로!!" 그 때였다. 호프 안으로 일진 여아 5명이 몰려들어오더니 한결의 주위로 그 여아들이 자기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며 그에게로 몰려왔다. "아! 포커스한테 옆에 가면 반죽음됩니다! 숙녀분들~ 죽고 싶지 않다면 웬만하면 저 쪽으로 가세요~" 유빈은 은별을 제외하고 여자라면 아연실색을 하며 경련을 일으키는 한결을 알기에 보이지 않게 한숨을 푹푹 쉬며 한결 주위에 여자가 오는 것을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차단한다. "아이참, 요번에도 쫓아내네." "그러게- 히잉, 언제 포커스 옆에 한 번 앉아보나 몰라." "완전 서리 밭이라니까." "자자, 그만 떠들고 얼른 딴 자리로 가시죠." ".........." 한결은 그런 유빈의 모습을 수수방관하며 말없이 술잔만 들이켰다. ........... .................... 한참이 흐르고..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미소년이지만 약간 옆으로 찢어진 눈 때문에 제비처럼 얄상하게 보이는 한민상고 3학년 일짱인 현권이 조용히 술만 마시는 한결을 보며 능글맞게 물었다. "우리 포커스는 어여쁜 마누라도 있다면서 한 번도 데려오지 않고, 이 형이 좀 섭섭하네~?" 자신에게 반말을 하는 현권의 말투가 거슬렸는지 한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형은 개뿔이 형.." 72. "개뿔이라니.. 포커스, 난 엄연히 너보다 나이가 많다구." "그 입 닥쳐라." 한결은 서열 1위 포커스란 직책과 결부되어 안 그래도 본래 타고난 성격이 안 좋은데 더더욱 안 좋아졌다. 자기가 인정한 사람 외에는(주: 은하, 한얼) 아무리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라도 경어를 쓰지 않는다. 물론, 상대는 한결에게 경어를 써야하지만. 성격 안 좋다고 불만을 토하지 말라. 맞는다.(탕!) "저 한민상고 서열 3위인 3학년 일짱 미쳤나 봐, 포커스한테 반말을 쓴다!!!" "매번 저러던데, 한 번은 포커스가 폭발직전까지 간 적도 있잖아." "맞아, 몇 개월 전이었지? 그러고도 또 저러네." 한결의 성격이 많.이. 아주 많.이. 고약하다는 것은 이미 전국 일진들 사이에서도 알아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권은 서열이 높은 사람이 많은 한민상고 3학년 일짱이란 이유로 한결을 볼 때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배짱 좋게 반말을 사용하며 그의 신경을 박박 긁어댔다. "포커스 마누라는 혹시 금으로 만들어진 건가? 아님 여자를 끔찍이 싫어해서 남자 애인이라도 만들어 둔 건가? 역대 포커스의 남자애인이라 볼 만 하겠군. 쿠쿡." 한결을 향해 장난스럽게 비아냥거리며 혼자 키킥대는 현권이다. 한결은 당장이라도 한 대 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분노를 참는 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때, 한결의 옆의 한구석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던 태하가 입을 열었다. "현한결 여자친구는 금으로 만들어 진 것도 아니고 엄연히 여자입니다. 이상한 오해를 하셨나 보군요. 말은 가려서 하는 겁니다. 현권선배." 태하의 말이 끝나자 순간 모든 일진들이 술렁거렸다. [웅성웅성-] "지금 민태하가 얘기 한 거지?" "웬일이야?! 포커스의 그림자로 침묵하는데 유명하잖아." 단합이 있을 때면 언제나 말없이 한결의 옆자리만 지키고 있던 태하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현권에게 쏘아붙이듯 말을 꺼내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시선이 놀란 듯 태하에게 집중되었다. "오, 민태하까지 입을 여네. 태하야. 포커스 마누라 예쁘냐? 포커스가 말을 안 하니까, 태하, 네가 말 좀 해 봐라." 신기한 듯 현권은 한결이 아닌 입을 연 태하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태하는 잠시 현권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태하는는 자신이 시선의 집중을 받은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눈을 감고 술을 들이키며 현권의 말에 말을 이었다. "예쁘냐고요? 눈 부실정도로 예쁘죠. 유명하진 않지만 세명고 얼짱이니까... 쓰러질 듯 마른 몸이 남자들한테는 보호본능을 일으키고, 우유처럼 하얀 피부와 다갈색 긴 머리카락이 도드라져 보이는 애예요. 그리고 웃을 때..... 은하형처럼 연하게 쌍꺼풀 지는 눈이 가장 예뻐요." 순간, 금기되어지다 싶었던 은하라는 말이 태하의 입에서 나오자 일진들은 잠시 술렁거리다 자기들끼리 눈치를 보며 침묵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애틋한 감정을 실어 말하는 태하의 모습을 수수방관하며 유심히 지켜보는 한결이다. ................ 몇 분의 침묵이 흐른다. 현권은 태하에게 가 있는 한결의 시선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며 태하에게 제비처럼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건다. "유심히도 보았네? 잘 아나 봐?" "은하형 동생이거든요. 은하형이랑 많이 닮았어요. .......그 것뿐이에요." 태하는 현권의 말에 선을 긋는 듯 딱 잘라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말하는 그의 말과 표정에는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포커스 마누라가 채은하 동생이래." "채은하가 애지중지하던 여동생?!" "웬일이야. 몰랐는데." 순간, 일진들은 수군거리며 태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결의 따가운 시선에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태하다. 왠지 살벌해지는 한결의 시선에, 현권은 피식 웃으며 말한다. "우리 잘난 포커스, 이제는 친구한테도 질투하나 봐~? 포커스, 여자친구 얼굴이나 좀 보여줘. 은하형 동생이란 말에 더 궁금한데? 괜히 안 불러내서 남자애인이란 말 듣지 말고." [쾅~!!!!!!!!] 그의 말에 한결이 술잔을 부셔질 듯 탁자에 내리쳤다. 그의 피어싱들이 희미하게 흔들린다. 한결은 많이 화가 난 듯 저음으로 현권을 향해 냉랭히 말했다. "씨발. 보자보자 하니까, 네가 뭔데 은별이를 부르라 마라야?!! 한 대 맞기 전에 말 높여라. 최현권. 엄연히 난 서열 1위야. 반말 쓰지 마." "누가 포커스가 서열 1위인 것 모르나? 아니면, 언제나 존경받는 은하형을 따라잡지 못하는데 대한, 알량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씨발, 너!!!!" 한결이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치려는 순간, 서둘러 사태를 파악한 유빈이 일어나 한결과 현권을 만류한다. "그만 그만~ 왜들 이러십니까~ 오랜만에 단합인데~ 한결아, 자리에 앉아! 그리고, 그냥 형수님 불러라. 멀쩡한 형수님이 괜히 남자라는 둥, 금으로 만들어졌다는 둥 오해 사지 말고." "씨발." 유빈의 말에 일어나려던 한결은 자리에 앉아 짧게 욕을 읊조리고는 현권을 노려보며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곤 걱정이 가득 담긴 한숨을 한 번 푹 쉬곤, 집에서 편안히 자고 있을 은별에게 전화를 걸었다. 73. ~따르르릉.. 따르르릉~ 꿈나라로 깊은 여행에 빠졌는지 신호음이 한참이 가도 은별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의 신호음 뒤로 잠에서 덜 깬 듯 가라앉은 은별의 목소리가 한결의 귀에 나른하게 들려왔다. [으음... 여보세요..] "채은별, 나야" [응, 한결아.. 왜..? 하암..] 졸린 듯 하품을 하며 왜? 라는 은별의 질문에 한결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채은별 이런 곳 싫어하는데. 씹... 게다가 아직 아픈데.. 씨발.. 최현권.. 최현권...‘ "야, 최현권. 밤길 조심해라." 생각하다가 문득 열 받은 듯 은별을 배려해 전화기 스피커를 손으로 가리고 현권에게 큰 소리로 외치는 한결이다. "충고 고맙다. 포커스."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하는 현권의 말을 들은 척 만 척하며 약간은 불안한 표정으로 다시 전화를 받아 자신의 뒷말을 기다리고 있을 그녀에게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한결이 말을 했다. "여기로 올 수 있어?" "헉!!! 저거 포커스 맞아?" "그.. 그러게, 말투가.....ㆀ" '여기로 와라' 도 '여기에 오너라' 도 아닌, 명령형 문장이 아닌 말 그대로 청유형 문장인 '여기로 올 수 있어?' 란 말이 한결의 입에서 나오자 일진들은 기겁했고, 심지어 닭살까지 돋는 사람들도 있었다. [응? 왜?] "애새끼들이 네가 보고 싶댄다." [흐음... 어딘데? 거기 먹을 것 많아..?] "마셔라 호프인데, 먹을 거라.. 좀 있긴 있는데.." [배고파, 나 삼일동안 쫄쫄 굶었잖아. 갈게, 30분만 기다려.] 잠에서 덜 깨어 약간은 몽롱한 듯한 목소리로 쉽게, 온다고 말하는 은별의 목소리에 빙긋이 웃는 한결이다. 일진들, 순간 한결의 비웃음이 아닌 적응 안 되는 진정한 웃음을 보고 일순간 닭이 되었다. [30분 뒤..] 은별은 약 기운 때문에 잠이 덜 깬 듯 눈을 비비며 호프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 은별을 제일 처음 발견한 유빈이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형수님! 여기야~" 유빈이 손이 흔들며 은별을 부르는 소리에 일진들의 시선이 모두 그녀 쪽으로 돌아갔다. 하늘빛 도는 민소매 원피스 위에 흰 난방을 걸치고, 긴 다갈색 생머리를 차분히 내려뜨린 그녀의 청순한 겉.모.습에 사람들은 넋이 나간 듯 바라보았다. "어, 저번에 포커스한테 맥주 부은 애 아니야?" "진짜?!" "포커스 마누라였네, 어쩐지.." 몇몇의 사람들은 저번에 나이트에서 본 은별을 알아보는 듯 소리를 질렀다. "씨발, 은하형이랑 진짜 닮았다." "그러게, 민태하 말처럼 존나 예쁘다. 은하형하고 포커스가 숨길만도 하네." 웅성거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은별은 멍한 눈으로 한결을 쳐다본다. 졸린 듯 다시 한 번 눈을 비비고는 한결의 앞으로 다가가는 은별. 한결은 안쓰러운 듯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에게 물었다. "왔냐?" "응. 왔어." 은별은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한결의 질문에 짧게 대답하고, 앉을 자리를 찾으려는 듯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털썩-] "배고파. 배고파. 기운 없어." “히잇!!” 그녀는 마땅히 앉을 공간이 없자 이내, 한결의 벌린 다리 사이에 풀썩 앉아 몽롱한 표정으로 앞에 놓인 안주를 주섬주섬 먹었다. 한결은 놀란 듯 잠시 움찔거리다 픽 웃으며 자연스럽게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는다. 그 모습을 본 여아 일진들 순간 경악하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꺄아!!! 포..포커스 여자 결벽증..." "씨발, 입 닥쳐라." "..............." 한결의 한 마디에 소란스러웠던 사람들이 숙연해진다. 은별은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안주만 주섬주섬 먹더니, 졸린 듯 하품을 하면서 한결의 쳐다보며 조용히 말한다. "한결아. 나 졸려." "나보고 어쩌라고?" "데려다 줘." "싫은데?" "무정한 놈!!! 그럼 나 혼자 갈까?! 오는데도 어떤 이상한 놈이 쫓아왔는데.." 은별의 말에 심상치 않게 눈썹을 꿈틀하는 한결이다. 그리고 은별은 속으로 '걸려 들었구나' 라고 생각하고 빙긋이 웃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한결이 인상을 팍 찡그리며 무뚝뚝하게 말한다. "착각은 노망의 지름길이다. 나 말고 누가 널 데려 가냐, 호박 주제에.." "뭐?!!! 너 말 다했어?!!!" "어." 은별의 말에 간단히 부정하는 한결의 비아냥거림에 은별, 화가 난 듯 뿌루퉁하게 볼에 바람을 잔뜩 집어넣고는 주위에 있는 일진들은 보이지도 않는지 그의 가슴을 퍽퍽 치며 소리쳤다. "나쁜 놈!!! 여자친구한테 호박이 뭐야!!!! 호박이!!! 가뜩이나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친히 와 주었건만.." "언제부터 네가 네 여자친구냐?" "뭐.. 뭐?? 그럼 여자친구 아니야??!" "응." "씨이... 현한결, 너.. 너어!!!" "네가 왜 내 여자친구냐, 애 하나 딸린 내 마누라지." "헉../// 몰라!!! 성격파탄자, 천상천하 유아독존, 자폭증 왕자병!!!! 나 여기서 잘 거야!! 바보, 한결이!! 흥=333" 한결은 낯뜨거운 말에 얼굴을 붉히면서 은별은 불만스럽게 꿍얼꿍얼 거리다 한결의 품에 고개를 파묻고는 시끄러운데도 불구하고 잠을 청했다. 그녀의 돌발 행동에 한결, 끝없이 얼굴이 붉어진다. 74. "지.. 지금 내 눈이 이상한가봐..;; 감정이 없다는 포커스가 얼굴을 붉혔..." "그럼 내 눈도 이상한 건가..?! 포커스가 언제부터 성격이 저렇게 변한 거야?!" 일진들은 장소 안 가리고 은별과 한결이 닭털을 훨훨 날리는 장면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경악하는 가운데, 한결은 소란을 피우는 그들은 살짝 노려본다. ".....zZzZ" 소란 속에서도 은별은 이내 약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한결의 품에서 쌔근거리며 곤히 잠이 들었다. 그런 그녀의 불편한 자세를 편하게 해주는 한결의 자상한 면에 또 한 번 일진들 충격을 먹고 얼떨떨해 한다.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도 있는군." 현권이 은별을 품에 안은 한결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며 말한다. 또 뭐가 불만이냐는 식으로 현권을 따갑게 노려보며 한결이 이마에 빠직 마크를 하나 달고 냉랭하게 물었다. "그래서 불만이야?" "불만은 무슨.. 은하형이 보면 참 좋아라 하겠군." "씨발, 무슨 소리야?" 의미 없게 술을 들이키며 빈정대는 현권의 말에, 화가 난 듯, 술잔을 움켜진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한결이다. 그런 그의 모습에 현권이 자조적인 웃음을 띠며 대답한다. "네 여자친구, 채은별 말이야. 자자한 소문을 들어보니 보호자인 은하형도 없는데, 재주 좋게 꼬셔서 집에서 살게 하고 게다가 버려진 현한얼 애까지 키운다며?" 한결의 표정이 점차적으로 굳는다. 어떻게 현권이 자신들만이 공유한 비밀을 알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더 일을 크게 만들기 전에 현권의 입을 닫아야 했다. 자신의 품에서 잠든 은별을 한 손으로 꼭 끌어안고, 다른 한 손으로 현권을 가리키며 유빈에게 냉랭히 말한다. "씨발... 보자보자 하니까 눈에 보이는 것도 없지?! 채은별도 있는데 내 손 더럽히기 싫다. 신유빈, 가서 처리해라." "하지만, 한결......" "현한결, 날 지금 건드려봤자, 좋을 것 없어. 신영고가 움직일 때, 눈치 챘어야지. 우리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 걸 말이야." 현권의 느닷없는 말에 모두 당황한 듯 한 순간에 주위가 조용해진다.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 1년 만에 다시 듣게 된 명칭이었다. 한결은 흔들리는 눈으로 현권을 쳐다보며 믿어지지 않는다는 식으로 그에게 딱딱하게 묻는다. "최현권.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다시 말해 봐. 뭐라고?" "얼마든지 말해주지,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 이 말을 전하러 온 것뿐이야. 난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 편이거든." ".............." "모르는 척 하지만 이 사이에도,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 추종자들이 많이 있지. 그 자리 우리 포커스에게 뺏기기 전까지, 몸조심하라고. 짝퉁 포커스 현한결." "씨발!!! 너!!!!!!!!!" "한결아, 그만해- 지금 단합 자리야!" "젠장, 최현권- 나중에 두고 봐."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란 소리에 웅성대는 일진들과 유빈과 사랑의 만류에, 화를 참는 듯 온 몸을 부들부들 떠는 한결이다. "가벼운 도발에 너무 반응하지 말라고, 포커스. 이런 면에서 보면 은하형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군." 현권의 계속 대는 빈정거림에 한결은 은별이 자신의 품에서 자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벌떡 일어나 술잔을 현권에게 던져버렸다. 그러나 현권은 한결이 던진 술잔을 가볍게 피한다. [쨍그랑-] 벽에 부딪힌 술잔은 산산 조각나며 깨져버렸다. 그리고, 한결의 품에서 자고 있던 은별은 한결이 일어나는 바람에 바닥으로 낙하를 시작하더니 이내 쿵 소리를 내며 바닥과 부딪히고 말았다. "아..아야.. 야!! 현한결!!! 내 엉덩이가 철로 만들어졌냐?!! 이렇게 바닥에 내동댕이치면 어쩌..." 술잔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와 한결이 일어서는 바람에 엉덩방아를 아주 강하게 찐 은별이 신음소리를 내며 일어나서 잔뜩 표정을 구기고 있는 한결을 바라보며 버러버럭 소리를 지르다, 이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말을 끊는다. "무슨 일이야..?" "..........." 어리둥절해하는 은별의 질문에 그녀를 꼭 끌어안으며 묵묵부답(默默不答)하는 한결이다. 현권은 은별을 손으로 가리키며 한결에게 소리친다. "조심하라구- 현한결. 우리 포커스도 은하형 동생에게 관심이 많거든. 네 최대의 약점이라는 사실에도 말이야. 뭐 네가 기르는 현한얼의 자식도 있지만." "무슨 소리하는 거야? 저 사람?" 현권의 차가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는 듯, 은별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을 가리키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 한결에게 시선을 옮기며 현권이 말한다. "참, 그리고 한 가지 더. 우리 포커스가 전해달라는 말이다. '현한결, 모든 것에 보호받고 얽매여 있는 듯 보여도, 사실 그 끝은 무방비하게 드러나는 법이야.' 이 말 잘 기억해 둬. 짝퉁 포커스." 현권의 마지막 그 말들이 결정타였나 보다. 한결은 그의 마지막 말을 듣고 딱딱하게 몸이 굳었다. 한결은 불안한 듯 가느다란 은별의 어깨를 꾹 쥐며, 날카로운 눈으로 현권을 쳐다보고 소리친다. "어째서… 어째서, 은하형이 내게 한 말을...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란 녀석이 알고 있는 거야?!!!" "글쎄, 우리 포커스는 네 모든 것을 알고 있지. 곧 네 눈앞에 진실이 나타날 거야. 기대하라고, 현한결. 픽-" 현권은 그렇게 안면이 돌처럼 굳어있는 한결에게 비웃음을 날리곤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호프 안을 빠져나갔다. 75. ".............." 현권이 빠져나간 호프에는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표정을 유지하는 한결이 언제 폭발할지 몰라 일진들은 숨도 못 쉴 정도로 침묵만을 지켜야했다. "뒤처리해. 나 먼저 간다." "한결아?!" "씨발, 신유빈. 오늘 단합 그만 해산해라." 한결은 차갑게 굳은 얼굴로 냉랭하게 유빈에게 말한 뒤, 은별의 손목을 꽉 잡고 막무가내로 호프를 빠져 나왔다. 한참을 말없이 걷다 은별은 한결에게 잡힌 손목이 아픈지 울상을 지으며 생각에 잠겨 있는 한결에게 애처롭게 외친다. "아..아야.. 한결아.. 아파.." "아.. 미..미안.." 애처로운 그녀의 애원에 놀란 듯 그는 말을 더듬으며 꽉 잡고 있던 그녀의 손목을 자유롭게 놓아주었다. 그러자 너무 꽉 잡아서 빨갛게 부은 은별의 가는 손목이 드러났다. "우씨, 가뜩이나 무식하게 힘센 녀석이 이렇게 꽉 잡으면 어쩌라는 거야!!! 이 천상천하 유아독존....... 한결아..?" 어라? 이게 아닌데? 이쯤에서 반응이 나와야 할 한결이 자신의 말에 아무 반응도 없이, 초조하게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습에 은별이 불안에 떠는 한결의 손을 꼭 잡는다. "한결아, 뭐가 그렇게 초조해?" "채은별.." "응." "채은별......" "왜?" "채은별...." 한결은 은별의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고, 계속 넋이 나간 듯 초조하게 그녀의 이름만 불러댔다. "은별아..." "..............." "채은별, 대답해라?" "왜 자꾸 부르는 건데? 성격파탄!" "채은별, 넌 절대 내 곁에서 떠나지 마라.." "응;?" 조용히 말하는 한결의 갑작스런 말에 놀란 듯 걸음을 멈추고 그를 빤히 바라보는 은별이다. 한결도 걸음을 멈추고 은별에게 시선을 맞추며 말을 잇는다. "엄마나 한얼형처럼 말도 안 되게 죽지도 말고, 은하형처럼 말도 없이 내 곁에서 사라지지마. 너 없음 나 미쳐버릴지도 몰라.." "걱정 마. 네 곁에서 진드기처럼 붙어 있을 테니까!" 한결의 말에 즉각 눈에 광을 키며 대답하는 은별이다. 그런 그녀의 다갈색 머리를 한결은 희고 고운 긴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진지한 표정을 한 채 말한다. "그럴 필요 없이 그냥 개 목걸이 채우면 안 되냐?" "헉..IIIIIIIIIII 농담이라고 해도 사양하겠어." 한결의 말에 뭐 씹은 표정으로 찔끔찔끔 한결의 뒤로 물러나는 그녀의 당황한 표정이 역력히 드러난다. 그런 그녀가 귀여운 듯 한결은 그녀를 꼭 껴안으며 그녀의 분홍빛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추고는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진심인데." "헉....;;;" 매혹적인 한결의 나긋한 목소리에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난감해하는 은별이다. 한결은 자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은별의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픽 웃는다. "채은별.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란 녀석과 연관된 놈들이 네 주변에서 얼쩡거리면 나한테 즉각 말해."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 가만, 어디서 들어본 말인데-a 음.. 어디서 들었더라;? 기억이 안 나네- 윽, 요새 들어서 조류의 길을 걷는 것 같아!;‘ 한결의 말에 은별은 데굴데굴 머리 속을 굴려보지만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알았냐..?" "어..응.."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진지하게 묻는 한결의 말에 생각에 잠겨 있다 얼떨결에 대답해 버리는 은별이다. ‘그 놈이 누군 줄 알아야 말을 하든 말든 할 것 아냐!! 네 놈만 알면 대수냐!!! 이 성격파탄 자폭증넘아..‘ 한결도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에 대해 모른다는 사실을 잊은 채, 말없이 속으로 한결을 원망하는 그야말로 공상의 여왕 은별이다. .............................. ............ 현권이 경고한 뒤 며칠 째,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결이 다니는 명문고가 여름 방학을 시작했고, 그리고 오늘, 은별이 다니는 세명고도 여름 방학식 날이 돌아왔다. "으음.. 몇 시야?" 방학을 한다는 설레는 맘 때문인지 은별은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동이 틀 무렵인지 밖은 아직 어둠이 다 가시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비비곤 옆에 있는 시계를 한 번 무의미하게 쳐다보았다. "뭐야.. 6시 반 밖에 안 됐네.." 그녀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이내 자신을 꼭 끌어안고 천사 같은 얼굴로 새근거리며 곤히 자는 한결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우윳빛같이 하얗고 잡티 하나 없는 피부. 시원하게 뻗은 콧날과 어우러지는 붉고 작은 입술. 붉은 색으로 염색한 결 좋고 윤기 흐르는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지만, 그 모습마저 예술로 승화시켜 버리는 한결의 외모였다. "잘 생기기만 하면 뭐하냐..." "채은별, 내가 몰래 볼 때마다 1억이라고 그랬지? 아무리 내가 잘 생겼다지만... 감상료는 꼬박꼬박 내고 봐라?" 은별의 조그만 중얼거림에 한결은 그새 깨어났는지 눈도 뜨지 않고 자세도 변함없이 은별의 말에 무뚝뚝하게 대꾸한다. "헉... 뭐야?! 언제부터 듣고 있던 거야?!" [두근두근-] 자신의 혼잣말에 대꾸하는 한결의 말에 화들짝 놀란 은별은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안간 힘을 썼다. 그런데 한결의 말을 리플레이하니 뭔가 상당히 거슬리는 말이 있었다. ‘귀신같은 놈. 이젠 혼잣말하는 데도 끼어 드냐!!?? 그 왕자병+자폭증 좀 고칠 수 없냐?! 이 싹수머리에 밥 말아먹은 놈아!! 그리고 뭐? 감상료가 1억??!!!‘ 은별의 마음 속으로 펼쳐지는 절규가 애절하기만 하다. 76. "씨이. 그럼, 나한테 키.. 키스하면 2억이야!!!" 억울하단 식으로 한결에게 엉뚱한 말을 외치는 은별이다. 저 욱-하는 성격, 점점 한결과 닮아가는 듯 싶다. "뭐?!!" 은별의 유치한 말이 통한 건가... 한결이 벌떡 일어나 누워있는 그녀를 사정없이 째려본다. 은별은 따가운 한결의 시선을 외면하곤, 휙 고개를 돌리며 살며시 눈을 감고 말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야!!" "호오~ 그래?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은별의 말에 한결은 빈정거리며 대답했다. 그럼 그렇지. 이제 폭발해서 나한테 소리 지를 때가 되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웃음을 짓고 있는 은별이었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게 조용해졌다. 은별은 한 동안 침묵하는 한결에게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헉.. 이 성격파탄자 녀석이 왜 이렇게 조용한 거야;? 자존심이 밥 먹여주는 놈이니까, 필시 여기서 물러나는 것은 아닐 테고.. 그렇다고, 저 녀석이 개과천선(改過遷善)한 것은 더더욱 아닐 텐데... 왜 이렇게 얌전한 거야? 불길하게끔..;;‘ 왠지 두려운 이 침묵과 한결의 행동이 궁금해지는 은별이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돌리며 실눈을 떴다. "허억!!! 무.. 무슨 짓이야!!!??" 그녀 위에 올라타 무게가 실리지 않게끔 엎드린 채, 은별의 얼굴 바로 코앞에서 뚫어지게 쳐다보는 한결을 보고 그녀는 휘둥그레진 큰 눈을 한 체 자지러지게 비명을 질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며.." 그는 민망하지도 않은지 그저 은별의 부드러운 다갈색 긴 머리칼을 섬세하고 긴 하얀 손으로 부드럽게 매만지면서 말했다. "무.. 무슨... 파..파렴치한 같은 행동...으..ㅂ.." 깜짝 놀라 말을 더듬는 은별의 입을 한결이 촉촉한 입술로 막아버린다. 은별, 당황한 듯 몸을 버둥거리다 이내 화려하고 부드러운 한결의 혀 놀림에 혼을 빼앗긴 채 그의 숨결을 느낀다. 긴 딥키스를 마치고 그는 학수고대(鶴首苦待)라도 한 듯 은별의 목에 입술을 슬쩍 가져갔다. "헉!!!!" 뜨거운 숨결과 함께 한결의 촉촉하고 부드러운 입술이 목에 닿자 은별의 온몸에 위험하다는 적색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한 순간 굳어있던 그녀는 번쩍 정신을 차리고 있는 힘껏 그를 밀쳐낸다. "무.. 무슨 짓이야!!"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면서 한 손으로 목을 가리며 자신을 노려보는 은별을 보며 한결은 태연자약(泰然自若)하게 웃으며 나직하게 말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내 거라고 표시해 둔 것 뿐이야." "뭐?!! 야!! 이 성격파탄자 같은 놈아!!!!" "난 은결이 깨우러 간다. 쿡." 얼굴이 사과같이 붉어진 채 흥분해서 베개를 던져대는 은별을 두고, 한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유유히 은결을 깨우러 방밖으로 나갔다. ................ .................... 그리고 방에 혼자 남은 은별은 그의 얼굴을 보기가 민망해, 한참을 침대에서 뒹굴며 전전반측하고 있었다. 시간이 꽤 흐른 것 같았다. 더 이상 머무적거리면 학교에 도착하는 게 늦을 것 같았다. 은별은 고개를 한 번 흔들고는 벌떡 일어나 교복으로 갈아입는다. 하복이라 그런지 그가 은별의 목에 남긴 키스마크가 가려지지 않는다. "오늘 방학식인데.. 우씨, 현한결!!! 이게 뭐야!!!" 울상을 지으며 될 대로 대란 식으로 대일 밴드를 목에 붙이고는, 아침을 먹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가는 은별이다. 이미, 한결이 차린 아침 밥상이 식탁에 올려져 있었고, 그와 함께 그의 무릎에 앉아 있는 잠이 덜 깬 은결이 흐리멍덩한 눈으로 아직도 붉은 은별의 얼굴을 바라본다. "아빠, 엄마 얼굴이 빨개요! 원숭이 엉덩이 같아!!" "워.. 원숭이 엉덩이..." 은결의 말에 뻥져 은결을 멍하게 바라보는 은별, 이내, 키킥 웃어대며 아침을 먹고 있는 한결과 눈이 마주치자 아까전의 일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며 더더욱 붉어지는 그녀의 얼굴이다. "아빠, 엄마 아픈가 봐요! 얼굴이 너무 빨개요!!! 지난번처럼 엄마 아픈가 봐요!!" 소리 없이 웃으며 아침을 먹는 한결의 옷자락을 흔들며 애처롭게 말하는 은결을 보며 그는 피식 미소를 짓고 만다. 은결이의 엄마 사랑이 끝이 없는 것을 보고 말이다. "...우..웃지마!! 현한결!!!" "쿠..쿡..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아.. 씨..///" 한결의 놀림에 더더욱 붉어지는 은별의 얼굴을 불안하게 쳐다보며 은결은 한결의 무릎에서 안절부절하며 몸서리쳤다. 은별은 그런 은결의 머리를 차분하게 쓰다듬으며 말한다. "엄마, 안 아파. 은결아." "정말요?" "그럼." 은결에게 살짝 웃는 척하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한결을 향해 있는 힘껏 째려보며 이를 바득바득 가는 은별이다. 그런 은별의 시선을 당당히 마주보며 웃음을 짓는 한결이 이내 은별의 목 쪽으로 시선이 가더니 무엇을 발견했는지 입을 연다. "대일 밴드 떼라." "뭐?!" "목에 붙인 대일 밴드 떼라구." "헉... 미친.." 한결의 말에 얼떨결에 욕이 튀어나오는 은별이다. 한결, 인상을 찡그리며 시니컬한 저음의 목소리로 은별에게 되묻는다.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 봐." "핫;; 내..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그래. 하하- 근데, 한결아. 대일 밴드, 안 떼면 안 돼?" "하나 더 만들고 싶음 떼지 말던지." "뭐?!! 우씨.. 떼면 될 거 아냐?!" 은별은 불만스럽게 중얼중얼 거리며 대일 밴드를 조심스럽게 뗐다. 그녀의 하얗고 가는 목에 새빨간 반점 같은 자국이 나 있다. 대일밴드를 뗐음에도 불구하고 한결은 여전히 인상을 찡그린 채 말한다. "자업자득이라고, 다시 한 번 키스하면 2억이라는.. 그런 말, 하지 마라. 다음에 그런 말 또 하면 알지?" 그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은별은 옆에 앉은 은결의 귀를 자신의 두 손으로 막으며 싱글 벙글인 한결에게 대꾸한다. "애 듣는데, 진짜 못 하는 소리도 없어///!" "듣지 못 할게 뭐 있냐?" 은결의 귀를 막은 은별의 손을 붙잡으며 한결은 은결에게 다정하게 말을 꺼냈다. "은결아, 요새 이상한 사람이 은결이 쫓아다니지 않지?" "없어요!" 한결의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하는 은결이다. "채은별, 너는?" "음... 없어-;" "엄마, 거짓말쟁이!" 아무런 생각없이 대답한 은별의 말에 대꾸하며 야무지게 소리치는 은결의 목소리에 은별과 한결의 시선이 은결에게로 쏠렸다. 뭔가 알고 있다는 은결의 눈빛에 이내 은별은 뭔가 찔린다는 식으로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어.. 엄마가 무슨 거짓말을 했다고 그러니? 하하; 으.. 은결아;?" "거짓말쟁이! 아빠, 있잖아요! 어제 엄마가요! 진사랑녀석의 형이 우리 유치원에 왔는데요!! 그 바보 형아가 맛있는 거 사준다니까 엄마가 따라가려고 그랬어요!!!" "으.. 은결아~!!!;;; 엄마가 비밀이라고 그랬잖아!!! 읍..;;;" 누굴 닮아서 이리 유도심문도 잘 하는 건지? 은결의 말에 대꾸하다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에 깜짝 놀라며, 손으로 입을 가리는 은별이다. 말 그대로, 제 무덤 팠다. "죽을래?" "하.. 한결아.." 은결의 유도심문(?)에 걸려든 은별의 실토에, 한결은 큰 눈을 더욱 크게 부릅뜨고 그녀를 노려봤다. 점차, 그 시선이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바뀌며 한결은 말했다. "네가 애냐? 먹을 것 사준다고 따라가게? 많이 먹으면 모를까. 별로 먹지도 못 하는 게.." "윽..;; 그게..." 차마, 자기보고 예쁘다고 해서 따라가려고 했단 말은 죽어도 못 꺼내는 은별이다..; "아빠, 어디 가서 우리 엄마라고 하지 말아요." "동감해. 아들." 누가 그랬던가?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고, 갑자기 서러워지는 은별이다. 한결의 성격을 똑 닮아 가는 은결과 한결의 갈굼에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둘을 쳐다보며 애절하게 외쳤다. "둘 다 미워!!! 우씨!!!" 77. 뒤죽 박죽한 심정으로 아침 식사를 허둥지둥 마치고, 한결과 은결의 갈굼에 토라진 듯 입을 삐죽거리며 등교 길에 오르기 위해 은별은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었다. "다녀와라. 어디 싸돌아다니지 말고 집으로 오고." "흥, 몰라!!" 혼자 삐쳐서 새침하게 한결의 인사를 무시하는 은별이다. 그런 그녀를 은결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바라보며 천진하고 순진한 목소리로 말한다. "엄마, 오늘은 은결이한테 뽀뽀 안 해줘요?" "아." ‘누구 자식이기에, 이리도 귀여운 거야!!!!’ 고슴도치도 제 자식이 예쁘다고 하지 않는가. 안 그래도 귀여운 은결이 천진하고 그 큰 눈으로 똘망똘망 은별을 쳐다보자 그녀는 이내 삐쳤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우리 은결이, 왜 이렇게 귀엽니!! 자~ 뽀뽀." 은별은 한결의 앞에서 보란 듯이 쪽- 소리가 리얼하게 들릴 정도로 오늘따라 은결의 볼에 찐하게~ 뽀뽀했다. 그녀는 은결이 너무 사랑스러운 듯 꼭 껴안고 볼을 비볐다. "나는 안 해주냐?" 한결은 은결과 은별의 다정한 모습에 질투라도 하는 듯 애써 태평을 유지하려 했지만 꿈틀대는 눈썹은 어쩔 수 없나보다. 은별은 그의 모습에 풋- 웃음을 터트리며 새침하게 말한다. "한결이는 안 귀여우니까 무효~!!!!!" "야!! 채은별!" 은별의 말에 안면이 서서히 굳는 한결을 보며 은별은 웃음을 터트리며 그대로 현관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녀는 손을 힘차게 흔들며 파안대소하는 얼굴로 열 받은 듯 얼굴이 붉어지는 한결에게 소리친다. "그럼 좀 있다 봐요~♡ 우리 귀여운 은결이도 유치원 잘 갔다오고!" "엄마! 빠빠." "야!! 너 딴 녀석한테 한 눈 팔면 초상 치를 줄 알아!!!" 재빨리 뛰어가는 그녀를 향해 크게 소리치는 한결의 질투 어린(?) 외침을 들으며 힘차게 학교로 향하는 은별이다. * * * [세명고 2학년 7반] ".....이상으로 방학식을 마치겠습니다." "얏호!!!!!!!!!!! 방학이다!!!!!!!!!!!!" 대머리 교장선생님의 길고 긴 연사를 마치고 방학을 알리는 선포가 내려졌다. 한 순간, 아이들의 환호성이 쏟아지며 방학 분위기를 더 돋웠다. "앗싸!! 방학이다! 드디어~ 방학♬ 꿈에 그리던~♪ 방학~♬" 방학식이 끝나자마자 사방으로 하트를 흩뿌리며, 아리는 혼자 흥에 겨운 듯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리고 은별은 아리 옆에서 집에 갈 준비를 하며 부지런히 가방을 챙기고는 시끄러운 듯 아리에게 한 마디 내뱉었다. "시끄러워. 그만 좀 삐약 거려." "앗! 나 병아리 아니래도!!! 은별아!! 드디어 자유의 시간이 온 거야! 앗싸~ 우리 학교는 보충학습도 없어서 너무 좋아♬ 좋아♬ 앗싸싸~♡" "좋기도 하겠다. 공부나 열심히 해. 그나저나 민아리 노래 그만 좀 불러대. 나의 귀가 심히 괴롭다고 소리치고 발광한다." "아니, 내 옥구슬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 뭐가 괴롭니!!?? 그렇게 맘에도 없는 말하지 말고 열심히 경청해!!" "웩.. 옥구슬이 아니라 쇠구슬이다." 듣기 싫다는 듯 귀를 막으며 연신 토하는 시늉을 하는 은별을 아리는 살짝 노려본다. 그 때, 은별의 목 언저리에 살짝 보이는 붉은 반점(?)을 보고, 그녀는 짝- 박수 한 번을 치고 사악하게 웃으며 은별에게 묻는다. "포커스랑 오늘 아침부터 찐~ 했나 봐? 목에 키스.. 읍.." "흐왓! Shut up!!" 황급히 아리의 입을 손으로 막아버리는 은별이다. 그러나 이미 얼굴은 아침의 일이 생각나 붉어질 대로 붉어졌다. 아리는 은별의 얼굴을 보며, 무슨 상상을 하는지 음흉하게 웃는다. "흐흐흐..." "야, 왜 네가 좋아하는 거야. 아무튼 변녀끼 다분한 뇬.. 진사랑이 너의 참 면모를 봐야 하는데!! 완전 사기야.." "훗.." 아리는 궁시렁 대는 은별의 어깨를 탁 잡으며, 여유 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은별에게 말을 꺼냈다. "우리 사랑이는 포커스처럼 밴댕이 소갈딱지가 아니라서, 다 이해해 줄 거야.. 헤헤헤.. 나의 사랑~♡" "소심한 건 진사랑이 한결이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지는 않아. 완전 콩깍지가 씌었구먼. 이 바퀴벌레 한 쌍아~!!!" "훗, 부러워서 그러는 것 다 알아." 착각도 유분수지. 뭐 부..부러워? 아리의 얼토당토한 소리에 넋이 빠져 한숨까지 나오는 은별이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리는 그저 헤실헤실 웃으며 은별에게 말한다. "그래서 말인데, 나 오늘 사랑이랑 데이트가 있어서 먼저 가 볼께~ 사랑이가 지금 후문에서 기다린대♡" "아, 그래? 좋을 때다, 좋을 때.. 친구를 내버려두고 자~알 놀아라?" 세상을 다 산 듯한 은별의 허심탄회(虛心坦懷)한 말에도 아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싱글벙글 입이 찢어지게 웃기만 했다. "응~ 잘 놀께~ 방학 잘 보내~♡ 나 먼저 가 볼께~ 안녕~♬" "잘 먹고 잘 살아." "응, 걱정 마! Bye~ Bye~" 누가 널 걱정한다고 했느뇨. 은별을 향해 손을 힘차게 흔들고 나가는 아리의 뒷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하지만 조금은 아주 조금은 그녀에게 부러운 감정이 들기도 했다. 그녀는 한 동안 교문 쪽을 바라보다 가방을 짊어지고 교실 밖을 빠져 나왔다. 78. 아리가 없는 하교 길은 한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채은별~ 누나!!!!!!" 그 때였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쓸쓸히 혼자 걸어가는 그녀의 귀에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은별은 고개를 뒤로 힐끔 돌린다. "헉-IIIIIIIIII" 괜히 뒤돌아 봤다! 은별은 뒤를 보자마자 경악하며 뒤로 슬금슬금 내뺐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몇 달 전 은별의 반에서 온갖 사이코 같은 말을 혼자 지껄이고 나간 재아였다. 저 녀석이 이 시간에 웬일이란 말인가!!! "처..천재구나.. 아.. 안녕~;;;" 어느 새, 자신의 코앞까지 헉헉거리며 뛰어온 재아에게 은별은 어설프게 웃으며 당황한 듯 말을 버벅거리며 인사를 건넸다. 재아는 버벅대며 인사하는 그녀 앞에서 팔짱을 낀 채, 그만의 특유한 웃음을 지으며 시니컬한 목소리로 말한다. "씹. 천재아라니까. 누나." "아.. 그래." 그게 그거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살벌하게 웃으며 욕을 지껄이는 재아의 싸이코틱한 면에 말도 꺼내지 못하는 은별이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아. 은별 누나. 나 오늘 이 학교 다니는 것 마지막이야!" 그들 사이의 어색한 침묵을 깬 건 재아의 뜬금없는 소리였다. 은별은 놀란 듯 눈이 커지며 재아를 바라보며 외쳤다. "에? 왜!!??" "씨발, 오늘을 마지막으로 예전 학교로 전학 가거든. 이제 이 학교에서 볼일은 다 끝났어. 준비는 다 끝나가니까." "무슨 말이야?" 그녀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재아가 이해가 안 간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은별의 호기심이 가득 담긴 시선에 재아 역시 그녀에게 시선을 맞췄다. 그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시원하게 말을 잇는다. "우리 포커스가 부르거든." "엥? 한결이가 부른다고? 그럼 명문고로 전학 가? 같은 지역인데 전학 안 되잖아? 뭐야? 돈 쓴 거야?" 생각하는 거 하고는. 돈을 쓰다니. 공상의 여왕 채은별이다. 그러나 한결을 부르는 은별의 말에 살짝 인상이 찌푸려지는 재아다. 이내, 전보다 더 살벌하게 웃으며 시니컬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 씹어 먹어도 성이 차지 않을 짝퉁 포커스 말고. 우리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 말이야. 쿡쿡." "너.. 설마.." ‘아참참, 소개를 안 했군. 내 이름은 천재아. 서열 2위 세명고의 1학년 일짱이자, 반란을 꿈꾸는 우리 포커스가 아끼는 후배! 누님을 지켜보라는 명령을 받고 서둘러 달려왔습니다!‘ 잊고 있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 재아에게서 자신이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의 총애를 받는다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이제야 나는 은별이다. 은별은 겁을 먹은 듯 서서히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아, 그렇게 도망갈 필요 없어. 누나. 오늘은 안 건들일 테니까 겁먹지 마. 우리 포커스가 때가 될 때까지 아무도 건들이지 말라고 그랬거든. 쿡." 재아의 차갑고 시린 웃음 속에서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자꾸 은별의 머릿속에서 배회하며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았다. 깨질 듯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은별이 묻는다. "도대체... 그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가 뭐야?!"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가 뭐냐고? 기존 세력인 전국 서열들에게 반발하는 자들의 우두머리이자, 그딴 썩은 녀석들을 뒤집기 위해 하나의 전쟁을 준비하는 게 바로 우리 포커스야." "전쟁.. 이라고?" "뭐 아직은 결정된 게 아무 것도 없지만." 약간 빈정대는 듯한 재아의 웃음 속에서 문득 잃어버린 기억의 파편 하나가 그녀의 머리 속을 훑고 지나갔다. 차갑고 싸늘한 웃음. 아주 오래 전에, 언젠가.. 그래, 언젠가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었다. 기억 저편에는 아주 두꺼운 벽이 그녀의 기억들을 가로막고 있었다. 더 이상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음에 은별은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다. 분명 기억을 못한다는 것은 부분 기억 상실증 때문이고, 필시 은별에겐 괴로운 기억이었을 것이다. 은별은 아무리 머리 속을 쥐어짜도 생각날 듯 하면서 생각나지 않는 기억에 아픔을 느꼈다. "누나, 왜 그래?" 자신을 부축하며 짓는 재아의 날카로운 웃음, 누군가와 많이 닮았다.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 항상 위화감을 주는 웃음을 짓던 사람. 79. '선우 현' 선우 현이란 이름이 은연중에 은별의 머리 속에 스쳤다. 그와 아주 오래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는 추측과 현이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라는 느낌을 받을 뿐, 더 이상은 아무 생각도,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천재아, 네 그 위화감을 주는 웃음. 그 녀석하고 닮았어!!! 네가 말하는 포커스.. 선우 현이지?!!" 얼떨결에 자신의 머릿속에 맴돌던 말을 내뱉는 은별이다. 재아는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짓다, 이내 다시 싱긋 웃으며 대답한다. "예리한데? 누나. 아니면, 기억이 돌아온 건가?" 은별은 자신의 느낌이 맞았다는 사실에, 아니 자신이 기억을 못하는 일들이 관계가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심한 두려움을 느끼며 몸서리쳤다. 재아는 그런 은별을 보며 여전히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며 말을 잇는다. "보아하니 기억이 돌아온 건 아닌 것 같네. 기뻐해야 할 지… 슬퍼해야 할 지 모르겠군. 맞아. 현이형이 제 3대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야. 누나랑 4년 전, 아니 저번에 만났었지? 현이형이 얘기해 줬어." "선우 현은 도대체 은하 오빠와 나랑 무슨 관계야?! 넌 알고 있지?!!! 그리고… 어째서 서열 1위란 이유만으로 아무 죄도 없는 한결이를 무너뜨리려 하는 거야?!" 은별은 애처롭게 마른 몸을 부들부들 떨며 가냘프게 소리쳤다. 그녀의 말에 재아의 얼굴에는 웃음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 그는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표정을 한 고개를 숙여 은별에게 들이밀며 시니컬한 목소리로 위압감을 주듯 또박또박 말한다. "서열 1위란 이유만이라고? 누가 그래? 짝퉁 포커스와 그 집안사람들이 현이 형에게 무슨 짓을 했을 줄 알아? 그 짝퉁 같은 녀석은 물러나야 해. 그 자리는 원래 현이형 거니까." "뭐? 무.. 무슨 소리야?!" 전혀 이해가 안 가는 듯이 은별은 날카롭게 소리치며 되물었다. 재아는 시니컬한 목소리로 생각에 잠기는 듯 살짝 눈을 감으며 대답한다. "아- 자세한 얘기는 나도 몰라. 현이 형은 워낙 비밀주의자라서 말이지. 다만,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알아 둬. 누나." 차갑게 말을 끊는 재아를 보며, 은별은 입술을 꼭 깨문다. 아무래도 그녀 자신 역시 한결 중독증인 것 같았다. 자꾸 한결을 욕보이는 재아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미워지는 것을 보니... "............" 또 한 차례의 침묵이 지나갔다. 재아는 침묵이 어색한 지 머리를 긁적이다 힘겹게 말을 이었다. "참, 그 짝퉁 포커스를 너무 사랑하지마, 누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 수도 있으니까. 옛 말에 등하불명(燈下不明)이라는 말이 있지. 현이 형은 밤마다 누나를 생각하면서 울고 있어." 애틋하게 말하는 재아의 말을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은별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순식간에 날카롭게 받아쳤다. "무슨 소리야?! 그 능구렁이 같은 녀석이 왜 날 생각하면서 우는데?! 말도 안 돼!! 그리고, 내가 누굴 사랑하건 상관할 바 없잖아?! 한결이는 짝퉁이 아냐! 엄연히 우리 오빠가 지명한 차기 포커스였어!" 은별의 온 힘을 다한 외침에 재아는 소름이 돋을 정도의 차가운 조소를 짓곤 서릿발 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은하형이 지목한 차기 포커스라.. 킥.. 씨발. 그거 알아? 누나? 은하형은 전국 서열 포커스이기 이전에, 제 2대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였다는 사실을..." 80. "무슨 소리야? 우리 오빠가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라니..?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어불성설(語不成說)과 같은 이치에 안 맞는 재아의 말에 은별은 넋이 나간 듯 멍하게 그의 얼굴만 쳐다보며 뒷말을 기다렸다. 재아는 여전히 살벌하게 웃으며 말한다. "말 되는 사실이야. 누나." "아.. 아냐!!!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 한결이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어!!!!" "그 짝퉁은 아무 것도 몰라. 은하형이 제 2대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란 사실은 극비였으니까. 지금도 우리 세력만이 진실을 알고 있지." "아냐.. 그럴 리가 없어!! 그야말로 어불성설 하지마!!! 이치에 안 맞아!!! 어떻게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이면서 전국 서열 포커스를 할 수가 있는 거야?!" 갑자기 알지 못했던 사실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오자, 은별은 머리에 심한 어지럼증을 느끼며 비틀댔다. 그는 휘청거리는 은별의 어깨를 잡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1대 포커스 세력 쪽에서 보낸 스파이였다면? 그러면 이해가 되지 않아?! 은하형은 전국 서열 제 1대 포커스인 현한얼에게서 세력을 쟁취하기 위해 보내진 거야." "아니야. 그..그럴 리가 없어!!!" "누나가 기억을 못할 뿐이야." 사실만 말했다는 듯 냉정하게 말을 끊는 재아를 보며, 은별은 더더욱 심한 어지럼증과 갈증을 느낀다. 그녀는 두려움 속에서 냉정을 찾으려 노력하면서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재아에게 차분히 말한다. "나, 지금 말 못 들은 거로 할래. 전혀 신빙성이 없는 말이야! 우리 오빠가 그럴 리 없어!! 너희는 불의의 세력일 뿐이야." 은별은 말이 끝나자마자 재아의 대답이 듣기 싫은 듯 양손으로 귀를 막는다. 재아는 그런 그녀를 보며 슬픈 표정을 감추기라도 하듯 욕을 지껄이며 크게 파안대소하였다. "씨발, 불의의 세력이라고? 큭.. 하하하" '미친 놈-; 갑자기 머리가 돌았나?' 은별은 배꼽을 쥐고 웃어대는 재아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생각했다. 재아는 그런 은별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을 웃다, 그녀에게 시선을 집중하며 약간은 슬픈 감정이 깃든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누나는 어떤 것이 정의이고, 어떤 것이 불의라고 정의할 수 있어? 반란을 일으킨다고 해서 우리 세력이 불의라는 그런 편협한 생각은 버려. 누나." "하지만!!!!" 은별이 자신에게 소리 치려는 것을 제지하듯, 재아는 은별의 입에 검지 손가락을 대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은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았어. 누나. 우린 우리의 것을 되돌려 받기 위해 이러는 것뿐이야. 만약 우리 세력이 반란을 일으켜 짝퉁 포커스 자리를 빼앗는데 성공하면 우린 정의가 되고, 짝퉁녀석은 불의가 되겠지. 반대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 우리 세력이 실패한다면.. 우리가 불의가 되고, 짝퉁이 정의가 되겠지." ".............." 논리를 거론하며 조목조목 말하는 재아의 말에 은별은 침묵한다. 그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재아는 목이 타는 듯 침을 한 번 삼키고는 한숨을 한 번 푹 쉬며 계속 말했다. "바로 그런 거야. 어떤 것이든 최후의 결과에 따라 불의가 될 수도, 정의가 될 수도 있어. 그리고 정해져있지 않은 정의와 불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던 사람이 바로 은하형이었지." "아니야, 그럴리가 없어. 아닐거야." 재아의 말에 극도로 혼란을 느끼는 은별이다. 재아의 말을 믿지 않으려 해도 자꾸 진실인 것처럼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아무 것도 모르겠단 식으로 슬프고 애절한 목소리로 재아에게 말한다. "우리 오빠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어..? 정말.. 아무 것도 모르겠어.. 모든 게 뒤죽박죽이야!!" 재아는 은별의 외침을 끝까지 듣고 있다 싱긋 웃으며 차분히 대답했다. "은하형은 정의도 불의도 아니었지만, 정해져 있지 않은 정의와 불의의 세력, 모두에게 존경을 받을 만큼 멋진 사람이었어. 다만, 정이 지나칠 정도로 많았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지. 씹.. 그것만 아니었음, 현이 형이 포커스가 되었을 텐데.." "..아냐.. 아냐.." 이제는 거의 울먹이며 은별은 기억나지 않는 머리를 쥐어짰다. 재아는 그런 은별의 손목을 잡으며 조소와 함께 시니컬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지금 내가 한 말이 누나를 괴롭힌다면 ......믿지 않아도 돼. 다만, 누나의 잠재된 기억 속에 진실이 있다는 사실은 외면하지마! 모든 수수께끼의 열쇠는 바로 누나야." 재아의 말에 은별은 생각에 잠겼다. '거짓이다. 지금 내가 듣고 있는 모든 것은 거짓이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필시, 그녀를 흔들기 위한 능구렁이 같은 현의 수작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안정시키려는 은별이다. 하지만.. 어째서 은별의 기억 저편에서는 재아의 말이 진실이라고 외치는 걸까? "그럼, 거두절미하고 여름방학 잘 보내. 누나. 우린 빠른 시일내에 다시 보게 될 거야. 그때까지 건강하길." 재아는 말을 마치자마자 생각에 잠겨있는 은별을 뒤로하고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은별은 한참동안을 그 자리에 서서 기억을 짜내려 했지만 이내, 심한 두통만을 느끼고 포기했다. 혼란스러웠다. "난 누구보다도 한결이를 믿어.. 그럼 된 거야.." 마침내, 그녀는 '한결을 믿자' 라는 간단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터벅터벅 학교를 빠져 나오는 은별이다. "덥다. 더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집에 가서 은결이 팥빙수 만들어줘야지!" 그녀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한결과 은결이 있는 안식처인 집으로 향한다. 뜨거운 태양이 활활 타오르는 여름의 한낮 불볕 더위가 은별에게는 너무나 길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소설제목 :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작가명 : +메시아+ E-mail : darksorcery@hanmail.net 연재장소 : 새싹소설① -10대 총편수 : 총 162편 완결 장르 : 연애소설 -------- 출처 : 인터넷소설닷컴 (http://cafe.daum.net/youllsosul) 팬까페 : http://cafe.daum.net/msacafe 댓글 1 개 이 글을...(0) 중독 진짜 재밋어요 히히 잼따 06.12.26 17:37 이전 1 다음 최신목록 목록 윗글 아랫글 '　　　[퍼온소설]' 게시판의 다른 글더보기 제목 닉네임 날짜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101 ~ 120 >' 나린소주인 05.07.11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081 ~ 100 >' 나린소주인 05.07.11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061 ~ 080 > 나린소주인 05.07.11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041 ~ 060 >' 나린소주인 05.07.11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021 ~ 040 >' 나린소주인 05.07.11 카페에서 공개한 게시글입니다.'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키워드로 검색한 게시글 더보기 서비스 약관/정책권리침해신고카페 신고이용약관카페 고객센터검색비공개 요청 Copyright (c) Daum Communications Co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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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 천사같이 예쁜 우리 엄마 아들이요!" 왠지 입에 바른 듯한 은결의 외침이었지만, 은별은 그런 은결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듯 활짝 웃으며 은결의 볼에 쪽- 소리가 나게 뽀뽀를 한다. "아유~ 우리 예쁜 강아지!!! 어쩜 이렇게 말도 잘 할까? 자, 은결이는 착한 어린이니까 얼른 양치질하고 오늘 아빠 마중 나갈까?" "네!!! 와! 오늘은 은결이가 아빠 마중하러 간다!!" 은별의 말에 힘차게 대답하고는 신이 난 듯 노래를 흥얼거리며 은결은 욕실로 들어가 손을 씻고 양치질을 했다. 은별은 그런 은결의 모습에 한 번 빙긋 웃곤 옷을 챙겨 입는다. [명문고 운동장] 이미 운동장 곳곳에 울긋불긋 천막이 쳐 있었고, 축제를 준비하는 많은 이들이 숨 가쁘게 뛰어다녔다. 은별은 은결의 손을 꼭 잡고 운동장 안에서 한결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어!! 아빠다!!! 아빠!!!" "은결아!!" 은결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한결을 찾았는지, 은별의 외침을 뒤로하고 한 천막 안으로 힘차게 달려갔다. "아빠!!!!!!!" 한참, 천막 안에서 학생회 학생들에게 지시를 하던 한결은 자신의 뒤쪽에서 은결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리자, 놀란 듯 황급히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눈에 자신을 향해 아장아장 달려오는 은결과 그 뒤를 빙긋이 웃으며 천천히 걸어 따라오는 은별이 보였다. (와락-) "아빠, 엄마랑 은결이가 아빠 마중 나왔어요!" 힘차게 한결 앞으로 아장아장 뛰어온 은결이 그의 품에 와락 안기면서 말했다. 한결은 그런 은결이 귀여운지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번쩍 안아 올리며 뒤따라온 은별에게 의아하게 말한다. "웬일이냐? 안 하던 짓을 다 하고, 혹시 벼락 맞았냐?" "벼락이라니! 꼭 와줘도 말을 그렇게 밖에 못 하니? 요새 고생이 심한 것 같아서 힘내라고 마중 나왔건만." 입을 삐죽거리며 한결의 말에 대꾸하는 은별이다. 그녀의 모습에 한결은 전에는 볼 수 없었던 크고 경쾌한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쿡- 쿡쿡. 징하게 고맙다." "별 말씀을." 은별을 바라보며 쾌활하게 웃는 한결과 그의 옆에서 피식 웃으며 대답하는 은별, 그리고 한결의 품에 안겨 신기한 듯 이러 저리 두리번거리는 은결. 이 세 가족의 다정한 모습을 보며 완전 딴판인 한결의 모습에 학생회 사람들은 전혀 적응이 안 되는지 닭살이 돋는다. "언제부터 저렇게 변한 거야? 얼음빙수 포커스!!! 아악!!! 적응 안 돼;"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됐나 보지!" "야, 그런 소리하면 재미있냐? 근데 저 포커스가 기르는 애 너무 귀엽다." "진짜, 포커스랑 엄청 닮았...." 학생들의 웅성거림에 인상을 팍 쓰며 째려보는 한결이다. 이내, 떠들썩한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은결은 이미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쯤은 귀에 익숙해졌다는 듯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의 작고 통통한 손으로 한결의 교복 옷자락을 꼭 잡으며 묻는다. "아빠, 언제 집에 가요?" 한결의 품에 안겨 그를 말똥말똥 쳐다보며 묻는 은결의 모습에 한결은 약간 언짢은 표정으로 힐끔힐끔 옆에 있는 학생회 사람들을 요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보면서 속으로 카운트다운을 세며 은결의 귀에 대고 조그맣게 말한다. .........3.............. ........2...... ......1..... "지금." [탁-] "앗!!! 포커스!!!" "허.. 한결아.. 무슨 짓이야;;"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한결이 한 손으로 은결을 품에 안고, 한 손으로는 갑작스런 상황한 당황한 은별의 손목을 잡은 채, 운동장 사이로 전력질주하며 달리기 시작한다. 놀란 듯 뛰어가는 그를 향해 소리치는 불쌍한 학생회 위원들. "포커스!!! 어디 가요!!!??" "회장!!! 어디 가세요!!!!??? 일 남았어요!!!!" "야!! 교문에 있는 애들!! 포커스 붙잡아!!!!" 학생들의 외침에 불안한 듯 한결과 같이 부지런히 뛰던 은별이 숨이 찬 듯 헉헉거리며 한결에게 말한다. "헉.. 헉.. 한결아, 너 회장인데 이래도 돼? 헉..헉 일 안 끝났다고 소리 지르는데?" "씹, 적성에도 안 맞아. 회장 따위 때려치우면 돼." "아빠, 아직도 쫓아와요!" 한결은 열심히 뛰면서 은별의 말에 가볍게 답했다. 전력 질주한 보람이 있는지 그들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까지 오는데 성공했다. "포커스!!!!!!" "회장!!!!!!!!!!!" 한결은 고개를 휙 돌려 자신을 허겁지겁 쫓아오며 요란을 떨어대는 학생회 위원들에게 크게 소리친다. "씨발, 모두 닥쳐라. 손수 날 찾아온 내 마누라랑 이렇게 날씨 좋은 날에 땡땡이도 못 까냐?!" "흐아..///" 은별의 손을 꼭 잡으며 외치는 인사불성(人事不省)으로 외치는 한결의 말에 부끄러운 듯 은별은 붉어진 얼굴을 한쪽 손으로 감쌌다. 한결의 황당한 외침에 학생회 사람들도 기가 막힌 듯 자리에 멈춰 서서 그를 어이없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불만 있냐? 불만 있는 녀석 있음 나와. 내가 가볍게 터치해줄 테니.." "(도리도리)IIIIIIIIIII" 한결의 냉랭하고도 의지가 담긴 말에 당황한 듯 고개를 흔들며,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끼고 뒤를 물러나는 학생들이다. 역시 힘없는 자는 비굴했다. "픽- 그럼, 간다. 열심히 해라. 내일 와서 엉망이면 죽는다." "포커스으으으으-" 굳어있는 위원회 학생들을 뒤로하고 살짝 차가운 조소를 흘기며, 은별과 은결과 함께 명문고를 유유히 빠져나오는 한결이다. 은결은 그런 모습을 한결의 품에서 유심히 쳐다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묻는다. "아빠, 저 아저씨들이랑 마귀할멈들 얼굴이 찌글찌글 호박같이 변해서 무서워요!! 근데, 그냥 나와도 되요? 저 아저씨들이 아빠 부르는데..." "걱정 마라. 아들. 이 아빠는 천하무적이야!" "우와!!! 아빠 최고!!!"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천하무적이라고 은결에게 말하는 그야말로 천상천하 유아독존 + 독불장군 한결이다. 그의 말에 크고 맑은 눈빛을 반짝거리며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은결의 모습이 왠지 은별에게는 매우 달갑지 않다. ‘그래, 한결아. 너 잘났다. 네 똥, 네 팔뚝이 제일 굵다!!!!! 쯧쯧. 너희 학교 사람들도 불쌍하지. 한결이 같은 애를 회장으로 뽑아놓다니. 고생을 사서 하네. 고생을 사서 해! 분명 협박해서 된 것 일거야!!!‘ 그녀는 몰랐을 거다. 은결에게 으쓱거리는 한결을 보며 인기투표로 한결이 회장이 되었다는 사실도 모르는 그녀는 연민의 눈으로 한결의 학교 쪽을 바라보며 혼자 속으로 씰룩씰룩 거렸다. 82. (매앰- 매앰----) 매미 우는소리가 정겹게 들리는 한여름이 도래했다. 온 세상을 뒤덮고 잇는 푸른 녹음과 풀내음이 향기롭기만 하다. 간간이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땅의 뜨거운 열기를 식혀주는 것 같았다. "우와~ 멍멍이다!!!!" 학교에서 도망 나와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은결이 산책을 하는 어떤 한 노인 데리고 나온 흰색의 마르티스 강아지를 보고는 신기한 듯 탄성을 지르며 그 쪽으로 달려갔다. 강아지를 보고 좋아하는 것을 보니 역시 천생 어린아이다. "은결아. 뛰다 넘어진다! 조심해." 아장아장 위태롭게 달려가는 은결의 모습을 보며 은별은 걱정되는 듯 은결에게 크게 소리쳤다. 그런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지 은결은 더 힘차게 뛰어갔고, 이내 강아지 있는 곳에 도달했다. 은결은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은별을 향해 손을 한 번 흔들고는 해맑게 웃었다. 은별은 한 번 은결을 향해 씽긋 웃어주곤 한결을 돌아보며 말한다. "후와. 덥다, 한결아. 안 더워?; 손 좀 놓고 가자. 응?" "존나 추워." 은별의 말에 냉랭히 대답하고는 한결은 자신이 먹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은별의 입에 물려주었다. 그는 더운데도 불구하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은별의 손을 더욱 꼭 잡는다. 좋으면 좋다고 말하지, 빙 돌려 말하기는… ‘이 나쁜 놈아!!!! 이 한여름에 땀 뻘뻘 흘리면서 춥다고 하는 싸이코는 현한결, 너밖에 없을 거다!!! 우씨, 이 찐득찐득한 느낌!!!! 크아아아악!!!!!‘ 한결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은별은 땀 때문에 미칠 듯 속으로 절규한다. 그 역시 절규하는 그녀의 속마음을 모르고 있겠지. 한결은 복잡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은별을 끌고 강아지와 놀고 있는 은결에게 향하는 와중,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채은별, 내일 은결이 호적상 생일이다." "응, 생일? 그래, 생일....... 뭐..뭐라고...?" (툭-) 놀란 듯 먹고 있던 아이스크림까지 떨어트리는 은별이다.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벌린 채, 뜨거운 햇살 아래서 한결을 멍하게 응시한다. "내일 은결이 생일이니까, 뭐 맛있는 거라도 준비해." "야!!! 이 성격파탄자야!!! 지금 말하면 어떻게 해!!!!!!" "지금 뭐라고 그랬냐? 성.격.파.탄.자?" "윽.. 지금 그게 논점이 아니잖아. 음식이야 준비하면 되겠지만, 선물은?? 1년에 한 번 있는 은결이의 중요한 날인데!!!" 한결, 은별의 말을 듣고 그제야 약간 고심하는 듯 강아지와 놀고 있는 은결을 바라보다 은별에게 다시 고개를 돌리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진사랑녀석을 선물로 줄까? 쫄따구로는 제격인데." "은결이가 좋아라 하겠다..;;" "아니면, 놀이공원을 통째로 사서 주던가." "한결아.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니? 아님 땅에서 솟아나니?" "뭐, 안 되면 그 인간 도움을 받던가." 말 뒤끝을 흐리며 약간 어두워지는 한결의 표정에 은별은 그를 의아하게 쳐다보다 번뜩 뭔가 생각난 듯 박수를 한 번 치고는 한결에게 경쾌하게 소리친다. "그냥 은결이한테 직접 물어보자!" 은별의 간단한 외침에 한결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즉시, 놀고있는 은결의 앞으로 다가갔다. 은결은 한결과 은별이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것을 보고, 폴짝 달려가서 한결의 품에 안기며 소리친다. "헤헤~ 아빠, 은결이 멍멍이랑 놀다왔어요!" "재밌게 놀았어?" "헤헤~ 네! 멍멍이 너무 귀여워요!" 한결은 활기차게 웃는 은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은별을 한 번 쓱- 쳐다보고는 은결에게 묻는다. "은결아, 내일 우리 은결이 생일인데 생일선물로 뭐 받고 싶어?" "앗! 내일 은결이 생일이에요?!" 놀란 듯 소리치며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한결을 초롱초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은결이다. 그는 은결의 시선을 마주하며 다시 부드럽게 말한다. "응, 은결이 선물 뭐 받고 싶어?" "음........." 한참을 고심하던 은결이 뭔가 생각난 듯 짝- 소리가 나도록 박수를 치더니 은별과 한결을 번갈아 쳐다보며 큰 목소리로 말한다. "은결이 엄마같이 예쁜 여동생 만들어주세요!" "헉...////// 뭐.. 뭐라고?!" 은결의 갑작스런 말에 엄청 당황한 듯, 은별의 얼굴은 끝도 한도 없이 붉어지고 또 붉어졌다. 한결도 붉어진 얼굴을 한 손으로 가리며 사과같이 붉은 얼굴로 허둥대는 은별을 바라본다. "흠흠..///" 한결도 적잖이 당황한 듯 괜히 헛기침을 하며 천진한 표정을 한 채 염원이 가득 담은 눈으로 계속 자신을 쳐다보는 은결에게 시선을 돌린다. "은결아. 그건 엄마, 아빠도 좀 곤란한..." "안 되는 거예요..?" 은결은 한결의 말도 잘라버리고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뭐라 딱 부러지게 대답을 못하고 애꿎이 붉어진 얼굴로 은별을 바라본다. 은별은 한결의 시선에 더욱 얼굴이 붉히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개미소리 만한 목소리로 은결에게 말한다. "은... 은결아; ..그거 말고 도.. 동생, 동생 말고 딴 거 뭐 받고 싶은 거 없어?" "흐앙~!!! 은결이도 동생 갖고 싶단 말예요!!! 진사랑이 매일 자기 동생 생긴다고 자랑하는데!!!! 은결이도 동생 만들어 줘요!!!!!!!!" "으아-///;;;;;" 역시 라이벌 꼬마 사랑에 관련된 것은 절대 지기 싫어하는 은결이다. 은별과 한결, 속수무책으로 울며불며 떼를 쓰는 은결을 보며 더더욱 얼굴이 붉어진다. 83. * * * ...................... "은결이는?" 은별의 질문에, 은결의 방에서 나온 한결이 짤막하게 대답한다. "방금 잠들었어." 집에 돌아와서도 내내 울고 불며 한결과 은별에게 여동생을 만들어달라고 떼를 쓰던 은결이었다. 한결과 은별이 은결을 달래려 애를 썼지만 누구의 똥고집을 닮았는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제 풀에 지쳐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곤히 잠이 들었다. 하루 종일 울어 댔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만... "후우..." 한결은 지친 듯 한숨을 푹 쉬곤 머리를 긁적이다 소파에 앉아 있는 은별 옆에 털 푸덕 앉는다. "................."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째각-째각-) 쉴새없이 움직이는 자명종 시계소리가 거실 곳곳에 고요히 울려 퍼진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은별은 자신을 끊임없이 바라보는 한결의 시선을 느끼곤 얼굴이 붉게 물든다. 그녀는 어디에 시선을 둘지를 몰라 안절부절못하다가 이내 자신의 무릎 속에 고래를 푹 파묻는다. 그 때, 갑자기 한결이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의 허리를 한 손으로 꼭 끌어안으며 말한다. "고개는 왜 숙여? 죄 졌냐?" "그.. 그런게 아니잖아..//// 아..씨.. 몰라//" 한결의 얼굴을 보기가 민망한 지 숙였던 고개를 그의 시선을 피해 반대쪽으로 휙 돌리는 은별이다. 한결, 자신을 피하는 그녀의 모습에 눈썹을 꿈틀대더니,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아 자신을 보게끔 돌린다. 이미, 그녀의 하얀 볼은 장미빛으로 붉게 물들어져 있었다. [두근두근-] 정적 속에서 한결과 시선을 마주하는 은별의 심장이 가파르게 뛰어댄다. 점점 더 붉게 물드는 은별의 볼, 그녀는 말없이 자신을 지켜보는 한결의 시선이 민망한지 더듬더듬 한결에게 말을 꺼낸다. "한...한결아.. 좀 놔 주라..///" "싫어." 딱 잘라 은별의 부탁을 한 마디로 거절하는 한결의 매력적인 저음의 보이스가 달콤하게만 들렸다. 그녀는 그의 뇌쇄적인 눈빛을 피하기 위해 눈을 꼭 감으며 버럭 소리친다. "놓으라니까!!! 지금 너 엄청 느끼... 으.ㅂ..." 한결은 은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촉촉한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그녀의 입술은 여전히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부드럽게 혀로 은별의 입술을 할짝이다가 살짝 그녀의 아랫입술을 깨문다. "아..." 은별은 흠칫 놀란 듯, 짧게 신음소리를 내며 입을 벌렸다. 한결은 놓칠 새라 그녀의 입안을 파고드는 듯 혀를 집어넣었다. "하..으...ㅂ..." 그의 혀가 은별의 고른 치아를 이리저리 훑다, 마침내 그녀의 혀를 찾아 부드럽고 달콤하게 애무한다. 한결의 깊은 딥키스에 은별의 정신이 아득히 몽롱해졌다. (털썩-)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그녀는 한결의 힘에 의해 소파 위로 맥없이 쓰러진다. "사랑해, 채은별.." "한결.. 으..ㅂ.." 그의 이름을 부르는 은별의 입안에 또 다시 그의 허브 향이 가득 채워진다. 달콤한 키스에 넋이 나간 은별은 한결이 자신의 귓볼을 살짝 깨문 사실조차 몰랐다. 눈이 풀려 멍하니 한결을 바라보는 그녀의 귀에 그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속삭인다. "우리 진짜 은결이 동생 만들까..?" "............." 넋이 나간 은별은 한결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그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다. 그는 다시 그런 그녀의 입에 입을 맞춘다. 한참 후, 아쉬운 듯 입을 떼는 한결의 고개가 그녀의 어깨 사이로 추락하듯 떨어져 그녀의 목을 능숙한 혀 놀림으로 농락한다. "하....아...ㅅ.." 조그맣게 터져 나오는 그녀의 신음소리가 자극이 되었는지, 한결은 망설이던 손을 흘러 들어가듯 은별의 블라우스 속으로 집어넣어 아기처럼 보들보들한 그녀의 살결을 느낀다. "아.. 아얏.." 헤쳐진 은별의 블라우스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쇄골에 키스마크를 새기려는 듯 살짝 깨무는 한결이다. 짜릿한 전율을 느끼며 신음소리를 내는 그녀는 자신이 낸 소리에 번뜩 정신이 나는지 눈이 원상태로 돌아온다. "..허..헉!! 혀..현한결!! 무.. 무슨 짓이야!!!" 자신 위에 올라타 있는 한결이 시선에 들어온 것을 보고 은별은 화들짝 놀라며 있는 힘껏 밀어내며 소리쳤다. (쿵-) "아.. 씨발.. 졸라 아파.. 채은별, 남자는 허리가 생명인 것 모르냐?" 은별이 갑작스럽게 미는 바람에 소파 위에서 떨어진 한결이 불만스럽게 말한다. 충격으로 아픈 듯 허리를 매만지는 그의 시선이 파헤쳐진 블라우스 사이로 훤히 드러나는 자신의 하얀 가슴에 머무는 것을 느낀 은별이다. 얼굴이 끝도 없이 붉어지며 옷을 다잡고 그에게 버럭 소리친다. "꺄아!!!!!! 이 변태!!!!/// 앞으로 1m 접근금지야!!! 나 은결이랑 잘 거야!!!!" 84. 은별은 화끈거리는 얼굴을 한 손으로 가리곤, 씩씩거리며 은결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다. "후우..." 은결의 옆에 쪼그리고 누워,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듯 한숨을 몰아쉬는 은별이다. 아직도 한결의 손길이 닿았던 곳들은 뜨겁게만 느껴졌다. "바보 한결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오늘밤 잠이 들 수 없을 것 같던 은별, ............................. "............zZzZ" 5분 뒤, 그대로 쪼그리고 누운 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잠이 드는 당신! 진정으로 태평한 여자다. ............................. 그리고 한결은............... 은결의 방으로 도망치듯 재빨리 들어간 은별을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긴장이 풀려 다리 힘이 빠지는 듯 소파에 기대고 앉는다. "후우. 미치겠네." 순간적으로 자제력을 잃다니, 그답지 않았다. 혼자 남은 그가 나직하게 말을 뱉었다.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장난으로 은별을 골려주려다 그녀의 민트향에 취해 그나마 약하게 연결되어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지고 이런 일까지 저지르다니.. 그는 소파에 기댄 채 잠깐 생각에 잠긴다. 언제부터였을까..? 은별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느꼈을 때는... 아마 처음 은별을 막무가내로 잡고 은결을 데려가라고 집으로 끌고 왔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뚝.. 뚝.. 우리 아가 착하지? 아빠 빼고 엄마랑 같이 살자.' '싫어!!! 아빠랑 엄마랑 같이 살 거야!!!!!!!!!!!!!!!!!!!' 지금 생각하면 처음 만났을 때 은결이가 떼를 써 준 것은 말은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한결은 내심 기뻤다. 혼자인 그의 곁에 갑자기 가족이 생긴 사실에 믿을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두근거렸다. '너 머릿결 진짜 좋은데, 너무 엉망으로 잘랐다. 여기 양 머리끝을 조금 치고, 앞머리도 조금 자르면 훨씬 깔끔하겠다.' 그리고 백화점에서 은별이 코앞에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졌을 때, 한결은 고동치는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이젠 그녀가 곁에 없으면 이제는 잠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구제불능 상태가 되어버렸다. 아무리 봐도 한결은 자신이 완전 은별에게 중독 되어 버린 것 같다고 생각하며 픽 웃곤 그는 뭔가 생각난 듯 옷가지를 주섬주섬 입곤, 머리도 식힐 겸 자는 은별과 은결을 두고 살짝 집을 빠져나갔다. [다음 날] 따뜻한 햇살이 유리창으로 쏟아져 어두운 방안을 환하게 비춰준다. "으음..." 뭔가 자신을 포근하게 안고 있음을 느끼며 기분 좋게 그 품을 파고드는 은별이다. 그러자 자신을 더욱 꽉 끌어안는 힘이 그녀에게 느껴졌다. 안긴 품에서 잔잔한 허브 향이 은별의 코를 간질인다. 익숙한 향기에 비몽 사몽한 그녀는 힘겹게 눈을 뜨며 자신을 안고 있는 흐릿하게 보이는 물체를 더듬더듬 만져본다. "휴우..." 뜨거운 숨결과 함께 낮은 한숨 소리가 은별의 귀를 맴돌았다. "헉!!!!!!!" 서서히 밝아지는 은별의 시야에 보인 것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며 안고 있는 한결의 모습. 놀란 듯, 그를 밀치며 은별이 떨어지려 하자 한결은 은별을 더욱 꼭 끌어안으며 낮게 속삭인다. "어딜 도망가려고? 변녀 채은별" "꺄아!!! 누구 보고 변녀라는 거야!!!" 어제 일이 생각나는지 은별이 홍조를 띤 얼굴을 숙인 채 씩씩대자 한결을 피식 웃으며 말을 잇는다. "방금 내 몸 더듬었잖아." "흐아아아;; 그건 잠결에 그...그런 거야!!!" "변녀." 가차 없이 한결은 은별을 놀려댔다. 변녀라는 소리에 점점 더 얼굴이 붉어지는 은별. 한결아! 그만 놀려! 은별이 얼굴 터지겠다! "씨이. 내가 왜 안방에 있는 거야? 나 분명히 은결이 방에서 잤는데." 은별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조용히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한결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시니컬한 목소리로 답한다. "너 몽유병 환자냐? 왜 자다말고 문 열고 나와서 이 방으로 오는 건데?" "뭐?!!!!??" "아무리 이 몸이 좋다지만. 하긴 나 말고 널 구제해 줄 사람이 누가 있냐? 픽-" ‘헉. 저 자폭증. 또 부활했냐?!! 크윽. 내가 미친 건가? 아무 것도 기억 안 나는데. 나 진짜 몽유병 환자인 건가?!!! 나 정말 언덕 위의 하얀 집 가야 하는 거야?!!!‘ 은별은 보이지 않는 피눈물을 속으로 콸콸 흘리며 생각나지 않는 머리 속을 데굴데굴 굴려보았다. 당연히 생각날 리가 없다. 새벽에 잠깐 나갔다온 한결이 은별의 방, 잠겨진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가 쪼그리고 자고 있는 은별을 데리고 나왔으니 말이다. "변녀 채은별, 피장파장이니 서로 얼굴 붉히지 말고, 접근금지 같은 것 때려치워라?" "변녀라고 하지 마!!!" "그럼 너도 접근금지 풀어." 이런 뻔뻔스러운!!! 한결이 인상을 찡그리며 단호히 말하자 울쌍을 지으며 그녀가 소리친다. "씨- 어차피 지금도 안고 있잖아!!!!" "픽- 얼른 준비하자. 오늘 은결이 생일이잖아." 씩씩대는 은별이 귀여운 듯 씩- 미소를 지으며 한결은 은별의 이마에 살짝 베이비 키스를 했다. 은별, 자꾸 속은 기분이 들지만 뭐라 할 수도 없는 처지에 애꿎은 입술만 꼭 깨문다. (두근두근-) 그 와중에도 은별의 심장은 한결의 품에서 고동치고 있었다. 은별은 자신의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무시하며 딴 데로 말을 돌리기 위해 한결을 향해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어 말했다. "아! 맞다! 근데, 은결이 선물은 어떻게 해?!" "어제 네가 밀지만 않았어도 선물 줄 수 있었는데." "뭐?!! 뭐!!!! 너!!! 진짜!!!" "픽- 농담이다. 농담." 한결의 나긋한 미소에 점점 더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은별이다. 진정이 안 된다. 은별이 붉게 달아오르는 얼굴을 숙였다. 은별이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인 것을 상심해서 숙인 것으로 착각한 한결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선물, 어제 새벽에 사 놨어. 걱정 마." "뭐? 정말?! 와- 현한결, 다시 봐야겠는데? 근데, 뭐 샀는데? 설마 뭐 아기인형 같은 것 산 건 아니지?" "내가 너냐?" "씨이- 아님 말고, 그럼 뭐 샀는데?" "뭐냐면....................................................." 한결의 속삭임에 은별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85. * * * "Happy birth day! 은결!!!" "생일 축하해! 한결이 아들!" "축하한다." "꺄아!!! 축하해♡!!! 내 사랑 은결이~!!!!" 은결의 생일이라고 일찍이 한결의 집을 찾은 사랑과 아리, 그리고 여전히 샤프한 얼굴에 싱글벙글 미소를 띠운 유빈과 그에게 끌려온 잠이 덜 깨어 부스스해 보이는 태하.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은 은결이는 어제 일로 여전히 삐진 듯 쀼루퉁한 표정으로 그들을 맞는다. "...칫..." "한결아~ 네 아들내미 왜 저래?" 은결이의 쀼루퉁한 표정과 원망 어린 눈동자를 보면서 유빈이 의아한 듯 은별과 함께 음식을 나르는 한결에게 묻는다. "...아.. 씨발.. 묻지 마.."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더듬더듬 한결이 대답하자 유빈, 더욱 궁금한 듯 씨익 웃으면 은결에게 다가간다. "한결이 아들~ 생일인데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을까?" "....흥=3" "왜 그래~? 이 형한테 말해 보려 무나~ 들어줄게!" "몰라!!! 아저씨는 못 들어준단 말예요!!! 흐아아앙..!!!" 유빈의 말에 풀썩 주저앉아 크게 울음을 터트리는 은결을 보며 은별과 한결은 말릴 생각도 못 한 채 서로의 붉어진 얼굴만 쳐다본다. 사랑은 그런 은결 옆에서 같이 쪼그리고 앉아 울먹거리며 묻는다. "은결아~ 울지 마~ 형아가 들어줄게!" "흐앙!!!! 바보아저씨!! 바보!!! 아저씨가 어떻게 은결이 동생 만들어 줘요!!!??" "헉..; 도.. 동생??" "흐앙!! 엄마, 아빠 미워!!!! 은결이도 예쁜 여동생 만들어 달란 말이에요!!!" "푸흡.. 켈룩켈룩.." 은결의 울부짖음에 몰래 음식을 집어먹다 사례가 들린 아리는 연신 기침을 하며 은별을 바라본다. 아리와 시선이 마주친 은별은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를 모르는지, 벌게진 얼굴을 숙인 채 애꿎은 입술만 깨물었고, 한결은 이미 은결의 말에 굳은 듯 망부석처럼 한 치의 움직임도 없이 붉게 물든 얼굴을 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쿡..쿡쿡..큭큭.. 하하하하~ 야~ 진짜 웃긴다.!! 여동생을 만들어 달라니... 누가 현한결 아들 아니랄까봐서.. 쿡쿡.. 골 쑤셔." "푸흡... 꺄아!!! 어떻게 해!! 우리 은결이, 생각하는 것도 깜찍하지!!!" 은결의 말을 듣고 한결과 은별이 굳은 것을 쳐다보며, 기가 막힌 듯 배꼽을 쥐고 웃는 유빈과 사랑이다. 그러나 태하는 심각한 표정으로 한결과 은별을 바라보다 은결 옆에 쪼그려 앉으며 약간 낮은 보이스로 무뚝뚝하게 말을 꺼낸다. "한결이 아들. 너희 엄마, 아빠의 얼굴을 보니까 네 동생을 가질 시기가 아니란다. 현한결을 똑 닮은 한결이 아들아, 너 혹시 애가 어떻게 생기는 줄 알면서 그러는 거냐?" "형아! 은결이는 다 안단 말예요! 아기는 엄마랑 아빠랑 사랑해서..." 자꾸 작아지는 은결의 말에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고, 모두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 은결은 크고 맑은 눈을 꿈뻑거리며 왜 쳐다보냐는 식으로 바라보며 다시 천천히 조그맣게 말을 잇는다. "아빠, 엄마가 사랑하면 꽃(?) 주머니에서 아기가 생긴다고 했단 말예요!!! 히잉~ 엄마랑 아빠는 사랑하지 않나 봐!! 아기도 안 생기고..!!!" "푸... 흡.. 큭..." 울 쌍을 지으며 말하는 은결의 어이없고도 순진한 말에 웃음이 나오는 것을 안간힘을 다해 참으려고 하는 일동들. 이미 그들의 얼굴은 웃음을 참기 힘든 듯 붉으락푸르락 변하고 있었다. 은결아, 아직 애였구나!![탕] . . 은결이의 황당하지만 귀여운 발언으로 은결이의 생일파티는 시작되었다. ............................ 그리고 시간이 흘러... "꽃 주머니에서 빨리 아기 가져라~ 은결이 실망시키지 말고~ 풋!" "꺼져. 신유빈" "그럼 간다~ 아참!! 형수님 한결이 애태우지 마~!! 한결인 지금도 아마 죽을 맛일걸? 쿡쿡." "에에?;;" "아, 씨발, 간다는 말만 하지 말고 얼른 안 꺼져?!" "간다, 가~ 치사해서~ 한결이 아들! 아빠, 엄마의 사랑만으로는 동생 못 만든단다~ 킥킥.. 잘 있어~" 은결은 생일이 끝날 때까지 표정이 풀리지 않았고, 이윽고, 날이 저물 때쯤 은결을 달래고 놀아주던 아이들도 지친 듯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갔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유빈마저 집으로 돌아갔다. "휴우. 폭풍이 휩쓸고 갔네." "어? 한결아, 어디가?!" "창고." "어, 왜?" "은결이 선물 줘야지." "아, 그거? 은결이 기분 꼭 풀어 줘~ 그럼 나 먼저 들어갈게~ 남자들끼리의 대화에 엄마가 빠져줘야지~ 한결이 화이팅!" 화이팅을 외치며 집안으로 들어가는 은별을 한 번 바라보고, 지친 듯 한숨을 쉬며 마당에 있는 창고로 들어가는 한결의 곁으로 쫄래쫄래 쫓아온 은결이 그 큰 눈을 천진하게 깜빡이면서, 한결을 올려보며 애처롭게 묻는다. "아빠, 진짜 은결이 동생 못 만들어 줘요?" "은결아.. 자, 아빠하고 엄마의 선물." 한결은 은결의 간절한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그의 손에 들려있는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약간 큰 상자를 은결에게 건네준다. "이게 뭐예요?" "열어 봐." "앗!!" 한결이 건네 준 상자를 연 순간 은결은 놀란 듯 소리쳤다. 그 상자 안에는 어제 새벽에 한결이 나가서 사온 하얗고 북실북실한 털을 가진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조그맣고 귀여운 마르티스 강아지가 있었다. "우와!! 멍멍이다!!!" "은결아. 동생 대신 강아지로 만족해라." "피이... 은결인 동생이 더 갖고 싶은데." 강아지를 꼭 끌어안으며 한결의 말에 토라진 듯 울 쌍 지은 얼굴을 숙이며 섭섭한 듯 한숨을 쉬는 은결이다. 그런 은결을 안아 올리며 한결이 빙긋 웃는다. "은결이가 조금 더 크면 여동생 만들어 줄게." "진짜요?" "그럼." "헤♬ 은결인 멍멍이도 좋아요! 멍멍이 은결이 동생 1호 할래요!!" "그래, 은결아. 이제 들어가자. 덥지?" 그는 안은 은결을 머리를 시원스럽게 한 번 쓰다듬은 후 터벅터벅 걸어 현관으로 다가간다. 은결은 자신의 품에 파고드는 강아지가 신기한 지 계속 강아지의 등을 쓰다듬는다. 그런 순박한 모습을 보며 한결은 빙긋 웃는 얼굴로 은결에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런데 은결아, 강아지 이름은 뭐로 지을 거니?" "음... 멍멍이!" "그러니까 멍멍이 이름을 지어줘야지." "멍멍이 이름 멍멍이요!" "이름이 멍멍이...?" "응!" 4살짜리 어린애한테서 뭘 바라는 거니? 한결군. 훗. 한결, 약간 얼이 빠진 표정으로 은결을 바라본다. 은결은 그런 것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멍멍이 얼굴에 자신의 얼굴만 비벼댔다. 86. * * * 며칠이 흘렀다. 후줄근했던 긴 장마가 끝나고, 남쪽에서 올라오는 태풍이 점점 상륙하고 있는지라 금방이라도 비가 올 듯 날씨는 무더우면서도 흐렸다. 짧은 여름방학은 그렇게 끝을 보이기 시작했고, 한결은 은결의 생일 이후에 더욱 바쁜지 학교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은결도 유치원에 가느라 바쁘고 집에 덜렁 혼자 남은 은별. 아니, 멍멍이도 있구나. "으으~ 심심해!! 멍멍아~ 우리 한 숨 자 볼까?" "왈!" "그래그래, 너도 자고 싶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멍멍이를 한 번 쳐다보고는, 은별은 기지개를 한 번 크게 키면서 방 안으로 들어간다. (부우우우웅-) 갑자기 은별은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그녀는 놀란 듯 잠깐 움찔거리다 서둘러 호주머니 속에 있는 최신형 핸드폰을 꺼냈다. 현이 그녀의 핸드폰을 뺏어간 이후, 한결이 선물로 사준 핸드폰이었다. 그녀는 파란 불빛이 깜박거리는 액정을 바라보다 폴더를 열었다. 「아. 씹- 핸드폰 배터리 없다. 30분까지 우리 학교 교문으로 와라. 너랑 같이 가고 싶은 데가 있다. -한결」 "헤? 데이트인가?" 은별은 한결의 문자에 물 만난 물고기처럼 활력소를 얻은 듯 방금 전까지 졸렸다는 표정은 하나도 없이 서둘러 나갈 준비를 한다. 긴 다갈색 머리를 한 갈래로 높이 치켜 묶고, 무릎까지 오는 산뜻한 하늘색 주름치마에 레이스가 달려있어 화사해 보이는 민소매 티를 입고 몇 번이고 거울을 쳐다보는 수줍어하는 은별이다. 그런 그녀를 멍멍이(주: 수컷)가 멀뚱히 바라본다. 엉큼하기는. "멍멍아~ 누나 갔다올게~ 집 잘 봐!" "왈왈!" 알겠다는 듯 짖어대는 멍멍이. 영리한 것. 은별은 그런 멍멍이 등을 한 번 쓰다듬어 주곤 싱글벙글 웃으며 흥얼거린다. "후훗.. 오랜만이네. 이렇게 나가는 것도~" 은별은 자신의 날아갈 듯한 기분과는 달리 까마귀 떼처럼 시커먼 구름으로 둘러싸인 흐린 날씨에 우산을 챙기며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한결이가 우산을 안 가지고 갔나?" 그녀는 뭐 대수겠냐는 식으로 어깨를 으쓱거리며 문을 잠그곤 집밖으로 나왔다. * * * . . "아~ 날씨만 좋으면 딱인데~!!" 명문고로 향하는 은별은 구름에 떠 있는 듯 날아갈 듯한 기분에 방방 뛰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뭐가 그렇게 즐거워? 허니?" "더헉!!!!!" 그녀의 뒤쪽에서 나는 이 낯익은 목소리와 말투. 설마....? 은별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안고 서서히 뒤로 돌아본다. "서..선우 현!!!!" 뒤를 힐끔 돌아본 그녀는 태연자약하게 팔짱을 낀 채 느긋하게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현의 모습에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 상태가 되어 믿어지지 않는 듯 현의 이름을 크게 소리쳤다. 현은 여전히 능글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오랜만이네. 허니? 보고 싶었어♡" "뭐.. 뭐야! 네가 어떻게..." "허니 만나고 싶어서 지금 연락하려고 그랬는데, 이렇게 만나다니, 쿡- 우린 역시 천생연분인가 봐~♡" 은별, 어이없는 듯 현의 말을 잘근잘근 씹어버리고 다시 뒤로 돌아 힘차게 명문고로 향한다. 현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피식 웃으며 그녀의 뒤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지금 가면 후회할걸? 은하형에 대해 말해주려고 그랬는데.." "뭐?" 현의 외침에 그녀는 몸을 가냘프게 떨며 뒤로 돌아 그를 흔들리는 눈으로 바라본다. 현은 그녀의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잇는다. "여기서 말하긴 곤란한데? 내가 잘 아는 카페가 있으니까 거기로 가자. 허니" (탁!!) 은별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팔을 가볍게 잡아채, 현은 그녀를 끌고 어디론 가로 향했다. "앗!!!" 그녀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한결을 생각했지만 이내 은하의 생각에 파묻혀 버린다. 현은 분명 은하에 대해 알고 있고 또한,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이다.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에 대해 뭔가 알 수 있을 것 같은 그녀는 아무런 저항 없이 현을 따라갔다. [Q 카페] 현이 데려온 곳은 노란 장미로 뒤덮여있는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카페였다. 카페 안까지 말없이 끌려온 은별은 현이 이끄는 대로 창가 쪽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그들이 앉은 테이블에는 노란 장미가 두 송이가 나란히 유리병에 꽂혀져 있었다. (투둑투둑-) 까마귀 떼 같던 구름에서 한 두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져 무덥게 달구어졌던 땅을 적셨다. "한결아..." 한 방울씩 비가 떨어지는 하늘을 창가를 통해 바라보며 은별은 약간 안색이 어두워지며 작게 한결의 이름을 읊조렸다. 비도 오니까 한결은 분명 집에 갔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만 불안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그런 그녀를 약간 언짢게 바라보며 현이 시니컬한 목소리로 말을 건다. "허니, 여기서도 현한결 걱정이야?" "................." "..후우.." 대답도 없이 창가만 바라보는 은별의 모습에 현은 흔들리는 슬픈 눈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숙이곤 낮게 한숨을 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은하형은 지금 캐나다에 있어." 87. "..캐나다...?" "나도 가 본적도 없고, 형하고 연락도 못 해봤지만.. 워낙 발이 넓어서 여차저차해서 형의 행방을 찾게 되었다." 은별은 떨리는 가슴을 안고 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내, 현을 쳐다보던 그녀는 눈물을 주르르 떨어뜨린다. "은하..오빠.. 흑..." 한없이 깊고 슬픈 은하의 눈을 하고 있는 현의 모습이 그녀에게서 떠나기 전날의 쓸쓸한 은하의 모습과 겹쳐지기에.. (우르르- 쾅!) 천둥이 요란하게 치며 빗줄기는 쏴아- 소리를 내며 더욱 거세졌다. 바늘처럼 따갑게 유리창을 때리는 빗줄기처럼, 은별의 눈물은 현의 마음을 쿡쿡 찔러 아프게 만든다. 현은 흐느껴 우는 은별을 초조하게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왜... 나를 기억하지 못 하는 거야?" 그의 떨리는 목소리에 흐느껴 울던 그녀는 대답 없이 고개를 들어 현을 바라본다. 그녀의 시선에 들어온 현의 심연처럼 깊은 눈이 초점 없이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나는 이렇게 가슴 아플 정도로 똑똑히 기억하는데..." "..............." 현의 끝 모를 슬픈 감정이 베인 말에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왔기 때문에- 왜 현에게 이런 감정이 생기는지 은별은 알 수 없었다. (쏴아아아아-) 까마귀 떼 같은 검은 먹구름에서 쏟아지는 비는 절정에 치달았다. 한치의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쏟아지는 폭우가 그녀에게 더욱 더 한결의 생각이 간절해지도록 만들었다. 은별이 자꾸 불안한 시선으로 창 밖을 내다보는 것을 현은 말없이 바라보았다. 이내, 그는 둘도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은별의 손목을 꾹 잡은 채 그녀를 어르듯이 부드럽게 말한다. "비열한 현한준의 아들인 현한결, 그 짝퉁 같은 놈은 잊어라. 그리고.... 나한테 와. 같이 은하형한테로 가자." "...................." 은별은 대답 없이 원망 어린 눈으로 현을 올려다보며 그에게 잡힌 손목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는 그런 그녀의 손목을 더욱 꽉 잡으며 단호히 말한다. "왜 나만 기억하지 못 하는 건데?! 나한테 사랑한다고 했던 말은... 다 거짓이었냐..?" "무.. 무슨 말이야?!" 단호히 말하는 현의 말엔 너무나도 애틋한 감정이 베어 있었다. 철렁 주저앉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은별은 당황한 듯 더듬거리며 현에게 물었다. "한겨울이 네 첫사랑이 아니라, 내가 너의 첫사랑이야! 한겨울 그 녀석은 널 뺏기지 않기 위해 내가 붙여놓았던 녀석일 뿐이야!" 현은 흥분한 듯 목소리가 높아졌다. (찰싹-) 은별은 온 힘을 다 해 그에게 잡힌 손목을 빼 내곤, 반대편 손으로 현의 싸대기를 냅다 치며 차갑게 말한다. "네가 누구건 난 네 소유물이 아니야!" 그녀에게서 맞은 볼이 따끔따끔 아리다. 그보다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의 눈이, 그녀의 입이....... 그리고 그녀의 가슴이 현을 더욱 아프게 한다. "다시는 마주 치지 말자!" 무뚝뚝하게 현에게 말하고는 서둘러 자리를 뜨는 은별의 뒤로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로 그가 말한다. "채은별, 네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은하형과의 약속을 어겨서라도 억지로라도 기억하게 만들겠어! 너만 내게 온다면 반란 따윈 일으키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끝까지 현한결을 택한다면 억지로라도 널 내게 오도록 만들겠어." "아니, 난 절대 너한테 가지 않아!" 은별은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냉정하게 외쳤다. 그녀의 대답에 현은 슬픈 건지, 화가 난 건지를 알 수 없는 오묘하면서도 냉정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잇는다. "그럼 현한결한테 전해, 축제의 날은 머지않았다고.." 그녀는 현이 하는 말을 잊지 않겠다는 듯 똑똑히 듣고는 한 치의 흔들림 없이 폭우 속으로 뛰어들어 한결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는 명문고 쪽으로 달려간다. .................... .......................................................... 그리고 남겨진 현의 슬프게 일그러진 눈의 붉어진 눈시울에서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주르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How would it be if you were standing in my shoes? (만일 네가 내 입장에 선다면 어떻게 될까? Can't you see that it's impossible to choose?" 내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넌 모르니?) 그는 점점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지는 은별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을 읊조리고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문고 교문] 엄청나게 퍼붓는 폭우를 뚫고 은별은 힘들게 명문고 교문 앞까지 숨을 몰아쉬며 뛰어왔다. "제발... 한결아, 집에 가 있어..." 은별은 간절하게 말하며 교문으로 점점 진입한다. 그런 그녀의 시선에 한 눈에 들어온 것은 교문 벽에 기댄, 한 남자의 실루엣이었다. 은별이 백일 선물로 준 핸드폰 줄과 시계가 비에 젖지 않게 꼭 쥔 손을 모은 채 망부석처럼 한결같이 그 자리에 서 있는 남자. 은별의 바람과는 달리 여태껏 비를 맞고 은별을 기다리는 한결이었다. (툭-) "한결아!!!!" 은별은 놀란 듯 들고 있던 우산을 떨어뜨리며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흠뻑 젖은 한결에게로 뛰어가 차갑게 젖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 "흐윽.. 이 바보야.. 여태껏 기다리면 어떻게 해..!!!흑..." 크게 울음을 터트리며 한결의 가슴을 쳐 대는 은별을 소중하게 꼭 끌어안으며 한결은 약간 쉰 듯 허스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 씨발.. 기다리는 건 졸라 못 하는데.. 너니까.. 채은별 너니까.. 죽을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어.." "흐읍... 바보야!!! 이 바보야..." ".................." 흐르는 빗물과 눈물을 젖은 소매로 닦고는 은별은 젖은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꼭 잡으며, 한결의 촉촉이 젖은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춘다. 한결, 은별의 돌발 행동에 놀란 듯 눈이 커지며 그녀를 바라본다. "흐윽.. 한결아.. 사랑해.. 사랑해.. 너 없이는 나, 채은별도 존재하지 않아.. 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 흑.." ".........................." 쉴 새없이 새어나오는 은별의 눈물을 바라보며 한결은 말없이 그녀를 더욱 꼭 끌어안는다. 그렇게, 쏟아지는 폭우가 그칠 때까지 한참 동안이나 은별은 멈추지 않는 울음을 터트리며 한결의 품에 안겨 있었다. 88. 세차게 퍼붓던 폭우는 어느 샌가 개어 맑고 푸른 하늘을 드러냈다. 은별도 이제 더 이상 눈물이 안 나오는지 축축하게 젖은 한결의 품에서 계속 코만 훌쩍거린다. 그는 그런 은별을 내려다보며 무뚝뚝하게 말한다. "야.. 다 울었냐?" "킁.. 응.." "졸라 더러우니까 떨어져." ‘치사한 새끼..!!! 콧물 조금 흘린 거 가지고 더럽다니!!!!!!! 여자친구한테 더럽다고 떨어지라는 성격파탄자가 어디 있어?!‘ 많은데. 많단다. 은별양. "쳇, 떨어진다. 떨어져. 치사빵구." 궁시렁궁시렁대며 한결의 품에서 떨어지려고 하는 은별이다. 한결은 그런 그녀를 더욱 꽉 안고 놔주지 않는다. 그런 그의 따뜻한 체온과 좋은 체취가 그녀에게 느껴졌다. "한결아?"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꽉 껴안는 한결을 올려다보며 은별이 나지막하게 한결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은별의 부름에 시니컬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내가 떨어지기 싫을 정도로 그렇게 좋냐?" "헉.. 이씨.. 누가 좋대?!! 떨어질 거야!!!!" (꽉-) 말은 심술 맞게 하면서 은별이 떨어지려고 하면 더욱 꽉 끌어안으며 놔주지 않는 한결의 행동에 어이없는 시선으로 그를 빤히 바라보며 그녀는 푹푹 한숨을 쉬며 속으로 궁시렁댄다. ‘한결아. 진사랑이랑 신유빈, 그리고 아리도... 언젠가 한 번 우리 모두 다 같이 손 붙잡고 언덕 위의 하얀 집에 가자꾸나.‘ 한결은 한참동안이나 은별을 안고 감쪽같이 개어 버린 푸른 하늘을 말없이 쳐다보다 이내, 나지막하게 그녀에게 말한다. "왜 늦었냐?" ".............." 갑작스러운 질문에 우물쭈물 거리며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은별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표정에 한결은 한숨을 푹 쉬며 말을 잇는다. "말하기 곤란하냐?" "아..아냐, 오는 길에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를 만났어.." "뭐?!" 머리를 긁적이며 조그맣게 말하는 그녀의 말에 놀란 듯, 은별을 품에서 밀치며 그녀에게 따가운 시선을 꼽는 한결이다. "지금 뭐라고 그랬냐?" "선우 현,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를 만났다고." "채은별, 너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냐?" "응, 한결이 너도 아는 것 아니었어?" "..................." 자신의 물음에 대답이 없는 한결을 힐끔 올려다보는 은별이다. 은별의 똘망똘망한 시선에 그의 표정이 약간 일그러진다. 그녀는 그의 표정에 당황했는지 다시 재차 묻는다. "서.. 설마 몰랐던 거야?" "넌 내가 저번에 얘기할 때 뭐 들었냐?" ‘그 때 한참 딴 생각 하고 있었지.’ 머쓱해진 그녀, 민망하지 한결을 시선을 피한다. "하하하..." 찔린다는 듯이 멋쩍게 웃는 은별을 한결은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이내, 크게 한숨을 푹 쉬고는 다시 은별을 꼭 끌어안는다. 슬퍼 보이는 깊은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은별의 귀에 조그맣게 속삭인다. "제발, 내 눈앞에만 있어라. 아무 데도 가지 말고 내 눈앞에만..." "한결아..." 슬픈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는 한결의 모습이 은별의 눈에는 너무나 작고 왜소해 보였다. 그 때, 한결의 모습을 보며 언젯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머릿속에 현인지 은하인지 분간할 순 없지만 싸늘한 냉소로 보아 현일 것 같은 사람의 왜소한 모습이 잠깐 스쳐갔다. "선우 현...." "그래, 그 선우 현이란 녀석 아니,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 그 녀석은 도대체 누구냐?" 생각에 잠긴 은별이 작게 현의 이름을 읊는 것을 들었는지 그가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낮게 깔은 목소리로 물었다. "은하오빠랑 똑같이 생겼는데 오빠와는 달리 엄청 재수 없어.. 그런데, 오늘따라 오빠와 가장 똑 닮은 눈이 슬퍼 보였어. 참! 선우 현이 너한테 전해 달랬어. '축제의 날은 머지않았다고..'" 은별은 한결의 물음에 작고 애틋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머리 속으로는 아까 전의 현의 말을 떠올린다. ‘한겨울이 네 첫사랑이 아니라, 내가 너의 첫사랑이야! 한겨울 그 녀석은 널 뺏기지 않기 위해 내가 붙여놓았던 녀석일 뿐이야!‘ 겨울을 은별에게 붙여놓은 것이 자신이라는 현의 말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겨울은 사귀는 1년 동안 지나치게 은별과의 스킨십을 꺼렸다. 덕분에 첫 키스를 한결과 했지만. 또한, 그녀는 겨울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조차 들은 적이 없었을 뿐더러, 그는 은별이 자신에 대한 마음이 깊어지지 않도록 항상 경계했었다. 하지만, 현이 은별의 첫사랑이라니...? "한결아..." 한참을 한결의 품에서 생각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왜?" "내 잃어버린 기억 속에는 뭐가 숨겨져 있는 걸까?" "..................." 한결은 말없이 한 손을 들어 은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녀는 그런 한결의 손길을 느끼며 불안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한결은 은별의 눈에 시선을 맞추며 단호하게 말한다. "걱정 마라, 네 기억 속에 무엇이 있든 간에 널 사랑하는 내 마음에는 변함이 없을 테니까." "응...///" 한결의 말에 은별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그런 은별의 손을 잡으며 한결이 말을 잇는다. "그럼 이제 가자." "에? 어딜??" "따라와 보면 알아." 89. 한결의 손에 이끌려 막무가내로 오게 된 곳은 백일파티를 했던 천문대가 있는 야산이었다. 그 산은 여름인데다가 흠뻑 비를 맞아서 그런지 더욱 푸르고 싱그럽게 보였다. 또한 푸른 녹음이 더욱 향긋하게 퍼진다. "한결아, 여긴 왜 온 거야?" 한결과 같이 산을 바라보던 은별이 고개를 돌려 한결에게 물었다. "..누구 소개 시켜 줄려고.." "응? 소개? 누구?" 은별은 궁금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곤 한결의 눈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한결은 약간 굳은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를 몇 번 좌우로 흔들고는 은별의 손을 잡고 산 속으로 이끌었다.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한결을 따라 산행을 하기 시작했다. (투둑-) "꺄악!!!" 한결의 빠른 발걸음을 따라 산의 중반쯤 올라왔을 때, 비가 온 지라 습기가 베인 흙에 미끄러져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며 소리를 꽥지르는 은별이다. 아뿔싸, 치마를 입고 온 것도 넘어지는데 한 몫 했다. 그녀의 가냘픈 외침에 놀란 듯 한결이 재빠르게 뒤돌아서 넘어진 그녀에게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달려왔다. "아.. 씨발, 괜찮냐?" "..........." 그렇게 물으면 괜찮다고 할 리가 없다. 무르팍이 피가 날 정도로 까졌는데. ‘괜찮을 리가 있냐!!! 산에 올 거면 진작 좀 말해주지!!! 우씨!!! 성격파탄자 같은 놈아아아아!!!! 너만 바지 입으면 다냐!!!‘ 은별아. 그럼 한결이도 치마 입힐까? 속으로 한결을 꼭꼭 씹으며 자신을 일으키는 그를 원망어린 눈으로 올려다보는 은별이다. 그녀의 눈빛에 한결은 눈썹을 꿈틀대며 위압적인 목소리로 시선을 내리깔며 말한다. "씨발, 누가 치마 입고 오라고 그랬냐. 팔 놓기전에 눈 깔어라?" "우씨.." 역시 약육강식의 미학은 처절하다. 울 쌍을 지은 고개를 숙이며 욱신대는 다리를 부르르 떠는 그녀의 모습에 한결이 부드럽게 은별의 무릎에 묻은 흙을 털며 어루만진다. "많이 아프냐?" 걱정스럽게 은별을 바라보며 그가 물었다. "그럼 아프지, 너 같은 안 아프겠냐?!! 씨이.." "이런 것 정도는 침 바르면 나아." ‘내가 너냐.. 침 바르면 낫게!!! 성격파탄 주제에.. 씨이..’ "후우.. 업혀라.." 이게 뭔 일인가? 속으로 궁시렁궁시렁대는 은별의 모습에 한결이 한숨을 푹 쉬고는 그녀 앞에서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업을 포즈를 취한다. "에에...;;; 어..업히라고?" 은별, 예상치 못한 한결의 행동에 당황했는지 우물쭈물 거린다. 그런 그녀가 답답했는지 인상을 찡그리며 한결이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씹, 안 업히려면 말던지." "아.. 아냐아냐!!" 한결이 일어서려 하자 이 기회를 놓칠세라 은별은 털푸덕 그의 등에 업혔다. 그는 소리 없이 웃으며 은별을 엎은 채, 다시 산을 타기 시작했다. 울창한 산림의 고요함과 엄숙함 속에서 그들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한결아.." 이따금 들리는 매미 우는소리와 정겨운 풀벌레의 울음소리만이 들리는 적막 속을 깬 건 한결의 등에 업혀 있는 은별이 그를 부르는 작은 목소리였다. "왜?" "........" 은별의 부름에 짧게 대답하는 한결. 은별은 잠깐 동안 말이 없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풀벌레 우는 소리도 잠잠하다. "잠만보- 불러놓고 자냐?" "누가 잔대?!" "그럼 안 자고 졸았냐?" 그녀는 한결의 말에 입을 삐죽거리며 한 손으로 한결의 붉은 머리카락 하나를 감정을 실어 확 뽑는다. "아.. 씹!! 채은별.. 무슨 짓이냐?! 너 떨어뜨려 버린다?" 한결이 장난치듯 등을 뒤로 젖히며 은별을 놓으려하자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결의 어깨에 두른 두 손을 더욱 꼭 두르며 은별이 소리친다. "헉!! 안 돼!! 살려줘~~~ 한결아!!! 네 머리카락이 너무 예뻐서 갖고 싶은 것뿐이었어!!" "..............." 은별의 다급한 외침에 얼굴이 살짝 붉어지는 한결이다. 행복하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널 사랑해서 행복하다. 붉어진 얼굴을 한 채, 그는 나지막하게 은별에게 속삭인다. "씨발, 내 몸은 머리카락 한 올조차도 다 네 거니까 그렇게 안 가져가도 돼." 90. [천문대 앞] 푸른 산림과 담쟁이덩굴에 둘러싸인 백색의 천문대가 은별과 한결의 눈앞에 살짝 드러났다. 정상이 멀지 않았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은별을 업은 채, 그녀에게 힘들게 말을 꺼냈다. "채은별. 너 살 쪘냐?" "무.. 무슨 소리야!!!" "씨발. 돌덩이 든 것 같아." "내려 놔!!! 내려놓으면 되잖아!!!!!" "닥쳐라! 더 무거워." 티격태격하면서 천문대가 있는 정상까지 올라온 한결과 결국 그의 등에 업혀서 정상까지 올라오게 된 은별이다. 다다른 정상에서 푸른 하늘이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도시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이기에- 은별은 쉽사리 그 경관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와~ 여전히 예쁘다!" 한결의 등에서 폴짝 뛰어내리며 그녀가 소리쳤다. 그녀의 외침에 한결은 약간 흥분한 듯 붉어진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띠며 은별의 이마에 짧게 베이비 키스를 한다. "그런데, 한결아? 천문대는 왜 온 거야? 볼 일 있어? 아차! 누구 소개시켜 준다고 그랬지? 누구를 소개시켜 줄려고? 중요한 사람이야?" 따가운 햇볕에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은별이 물었다. "천문대에 볼일이 있는 게 아니라, 볼일은 여기 있어." 한결이 천문대 옆쪽에 있는 두개의 작은 구릉을 가리켰다. 은별은 그의 손을 따라 저번에 왔을 땐 보지 못했던 구릉들을 바라보며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결에게 묻는다. "저게 왜?" "우리 엄마 무덤이야." "앗?!!! 뭐.. 뭐라고?!" "오늘이 엄마 기일이거든." "............" 한결의 말에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야무지게 닫는 은별이다. 한결은 그런 그녀를 이끌고 두개의 무덤 중 천문대 쪽에 좀 더 붙어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매앰---- 맴--) 매미 우는소리가 바람을 타고 은별의 귀에 흘러 들어왔다. 한결은 무덤 앞에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엄마... 씨발, 오늘은 얘를 소개시켜 주려고 왔어." ".........." 무덤 앞에서 은별의 손을 꼭 잡으며 외치는 한결의 모습이 차마 쓸쓸해 보여서 은별은 말없이 묵묵히 바라본다. "이름은 채은별이고 내가 존경하는 형의 동생이야, 그리고 내가 조금 더 크면 얘랑 결혼할 거야." "헉...///" 은별은 갑작스런 한결의 외침에 장미빛 홍조를 띄웠다. 그런 그녀를 한 번 바라보고 여념 없이 한결은 말을 잇는다. "언제나 내 멋대로 행동해서 미안해, 엄마. 그런데 이젠 더 이상 아무 것도 잃고 싶지 않아. 특히 은별이는 내 목숨보다도 더 소중해서 절대 잃을 수 없어." 그의 말에 은별은 붉어진 얼굴을 살짝 숙이며 한결과 맞잡은 손을 힘주어 더욱 꽉 잡는다. 한결은 그런 은별의 손을 들어올려 손등에 입을 맞추곤 그녀에게 다소곳이 말한다. "우리 고등학교 졸업하면 결혼해서 은결이랑 우리 세 가족 행복하게 살자." "흡..." 한결의 말에 또 다시 눈물을 툭툭 흘리는 은별이다. 그는 그녀의 볼을 장난스럽게 툭툭 치며 묻는다. "싫냐?" "아니.. 싫을 리가 없.. 읍..." 대답하는 은별의 입을 한결은 자신의 입술로 살짝 부드럽게 막아버렸다. 긴 프렌치 키스 후 입술을 살며시 떼고는 놔주기 싫은 듯 그녀의 달콤한 입술을 혀로 살짝 핥고는 한결이 말한다. "싫다고 해도 쇠사슬로 꽁꽁 묶어서 억지로라도 식장에 끌고 갈 거니까 걱정마라." "헉....IIIIIIIIII" 잘 나간다 싶었다. 끝에 또 한 마디 제대로 날려주는 한결. 그의 단호한 말에 왠지 섬뜩한 오한이 드는 은별이다. 이 녀석이라고 분명 하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한결은 굳은 은별을 보며 피식 웃고는 다시 무덤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하늘에서는 행복해야해- 엄마.." 91. "콜록.. 콜록.." 개학을 얼마 앞두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결은 진창 비를 맞았으니 몸이 성할 리 없다. 생전 한 번도 안 걸려본 감기몸살에 걸려 몸져 드러누웠다. "엄마~ 아빠가 많이 아야! 한가 봐요!" 한결이 누운 침대 옆에서 눈물이 고인 큰 눈으로 그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은결이 말했다. "한결아, 병원 가자. 응?" 은별이 높은 열 때문에 난 땀으로 축축이 젖은 한결의 이마를 물수건으로 정성스럽게 닦아주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한결은 인상을 찡그리며 기침을 심하게 하며 더듬더듬 힘겹게 말한다. "콜록.. 콜록.. 씹.. 병원은.. 무슨.. 콜록.." 자꾸 하얗게, 창백하게 질러가는 한결의 얼굴에 불안한 듯 자신의 옆에 있는 은결의 손을 은별은 꼭 잡으며 다시 한결에게 간절하게 애원한다. "한결아, 너 열이 너무 심해. 병원 가야해!" "콜록.. 채은별.. 은결이 밖으로..콜록콜록.. 내보내.. 옮으니까.. 콜록.." "싫어!! 은결이 아빠 옆에 있을 거야!!! 아빠 아프면 은결이도 아프단 말예요!!!" 은결은 자신의 작고 통통한 손으로 한결의 가늘고 긴 손을 꼭 잡고 울먹이며 외쳤다. 은별은 은결이 기특한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결에게 재차 말한다. "한결아, 그렇게 우기지 말고 병원 가자? 응? 네 몸이 쇠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게다가 은결이도 걱정하잖아." "콜록.. 이 딴 걸로 병원 가면.. 콜록.. 진사랑이랑 신유빈이.. 콜록..콜록.. 지랄해.." 그 때였다. "하하, 한결아~ 너무하다. 지랄이라니.." "맞아!!! 맞아!!!! 한결아~ 지랄이라니!! 우린 순수하게 좀 다독여줄 뿐인데!!! 헤헤~ 아리야♡ 그렇지?" "응? 응!!!" 갑자기, 한결의 방문을 열고 크게 소리치며 들어오는 유빈과 사랑. 그 뒤로 사랑의 말에 맞장구치는 아리와 말없이 묵묵히 한결을 바라보는 태하가 있었다. 그 와중에 은결은 사랑의 모습을 보고 반갑게 소리쳤다. "어? 바보 아저씨?" "헤헤~ 은결이 안녕~♡ 오늘도 러브리~♡" 갑자기 등장한 그들의 모습에 은별은 멍하게 그들을 바라보았고, 한결 역시 심히 놀란 듯 욕을 낮게 읊조리며 소리친다. "콜록.. 씨발, 너희 어떻게 들어 온 거야?! 콜록.." "사랑이가 담 넘어 들어왔어!! 헤헤.. 사랑이는 타잔이라서 담도 잘 넘어~!!! 멋지지? 은결아?" "바보 아저씨. 아저씨가 또 싫어지려고 그래.." "헉!!! 안 돼에에에에에!!!!! 공든 탑이 무너지랴!!!!" 한결의 질문에 새침하게 대답하던 사랑은 은결의 말에 매우 큰 충격을 받은 듯 징징댄다. 유빈은 그런 사랑을 한심스럽게 바라보다 말을 잇는다. "참, 현관문이 열려 있더라고~ 한결이가 그 유명한 감.기.님에 걸렸다는데~ 우리 잘난 포커스의 초췌한 몰골이나 보려고 왔지~ 문 열어달라고 그러면 안 열어줄 것 아냐?!"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비아냥거리며 말하면서 여느 때처럼 한결의 약을 슬슬 올리는 유빈이다. 저러다 언제 한 번 크게 맞지. "콜록.. 죽는다.. 무단 침입죄로 고소해 버려..콜록 콜록.." 한결은 유빈의 말에 살짝 은별을 째려보며 말하고는, 띵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힘들게 일어나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 태하를 향해 말한다. "콜록.. 콜록.. 그것 말고, 내게 할 말이 있어서 온 것 아니냐? 콜록.." 태하는 한결의 말에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현한결, 네가 조사하라고 했던 선우 현에 대한 자료는 워낙 극비라서 뭔가에 똘똘 감싸져 있어. 다르게 해석하자면, 그 녀석은 외국에 영주권이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사진을 보니까 은하형하고 정말 똑같이 생겼더군." 은별은 눈을 반쯤 감고 조용히 말하는 태하의 말을 경청하며 힘겹게 앉아있는 한결의 따뜻한 손을 꼭 맞잡는다. 태하는 그런 은별과 한결의 다정한 모습을 애틋하게 한 번 바라보고는 다시 말을 잇는다. "현한결, 선우 현 밑으로 어떤 세력이 있는지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게 우리의 실정이야. 신유빈이랑 같이 노력은 하고 있지만 파헤치기가 어려워." "저기 태하야..." 태하의 말을 끊으며 은별이 조심스럽게 태하의 이름을 부른다. 태하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녀를 슬픈 듯 보이는 오묘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런 그의 시선과 마주친 은별, 벌줌 해하며 고개를 약간 숙이곤 말을 잇는다. "천재아라는 애를 찾아 봐. 선우 현의 심복 같은 애니까..." ............................... 92. "빨리도 알려준다. 콜록.. 콜록.." "채은별, 혹시 은하형이랑 선우 현.. 관계있냐..?" 태하의 말에 순간 움찔하는 은별이다. 아직 선우 현의 말을 신뢰할 수 없는 그녀는, 은하가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라는 것은 그냥 묻어두자고 생각한다. "모르겠어..." "콜록.. 또 아는 건 없냐..?" 은별의 말에 한결이 태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볼을 힘없이 꼬집으며 말했다. 그녀는 그가 꼬집은 볼을 어루만지며 입술을 삐쭉거리며 대답한다. "흥! 꼬집었으니까 안 알려줘!" "헉~ 형수님!!! 너무 한다!!!" "맞아!! 별딱지 너무해!!!! 외계에서 날아온 주제에!!!!" "누.. 누구보고 별딱지라는 거야!!!" 사랑의 말에 강하게 부정하며 사랑의 뒤에 숨은 아리를 번뜩이는 눈으로 싸늘하게 노려보는 은별이다. 아리는 사랑의 뒤에서 메롱메롱 거리며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한결은 열 받은 듯 이마에 빠직 마크를 달고 힘겹게 소리친다. "콜록.. 콜록.. 씨발.. 머리 울려.. 다 나가..." "한결아, 많이 아퍼?? 정말 병원 안 가~?? 후훗, 역시 한결이도 그런 거였어.." "콜록.. 뭔 얘기가 하고 싶은 거냐..? 신유빈..콜록" 한결은 뭔가 말하려는 유빈을 불길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유빈은 사악하게 웃으며 알았다는 듯이 크게 소리친다. "한결이 너 병원비가 아까워서 그러는 구나?" 유빈도 한결의 안색이 창백한 게 심각한 것을 느꼈는지, 그의 한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꼭 잡으며 싱글벙글 웃는 얼굴과 대조되는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콜록.. 내가 돈에 미친 너냐. 콜록.. 콜록.. 병원비로 복권 2장 사는 징그러운 놈아. 감기나 옮아라. 콜록- 콜록..콜록" 한결, 징그러웠는지 그가 잡은 손을 기분 나쁘다는 듯이 빼며 불만스럽게 유빈의 면전 앞에서 일부러 기침을 해댄다. 그런 그의 모습에 유빈 여전히 웃는 얼굴로 한결에게 말한다. "역시 형수님 아니면 싫다 이거냐? 아무튼 한결아~ 너의 감기를 고맙게 옮아가마. 학교 안 가도 되겠다. 쿡쿡. 요새 축제 준비 때문에 뼛골이 아파 죽겠는데!!! 앗싸!! 요번엔 병원비로 로또 복권이나 살까~? 히힛.." "..콜록.. 애늙은이 같은 놈.." "한결아!~!! 나도 나도!!! 유빈이만 해 주다니 너무해!!! 사랑이도 한결이의 러브리♡ 감기가 옮고 싶어!!!" 사랑의 애교가 좔좔 흐르는 말에 유빈은 한결을 힐끔 쳐다보며 씨익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떼를 쓰는 사랑에게 말한다. "훗, 사랑이 너한테 안 해줄걸. 이 몸이 워낙 사랑을 받아서 말이야." "뭐야!!!!??? 한결아!!! 나도 기침!!!!!" ".........IIIIIII" 한결의 면전 앞에 딱 붙어서 그가 기침할 때를 기다리는 사랑이다. 한결은 몸살인데다가 아파서 힘이 없는지 사랑을 떨어뜨리지도 못하고 낑낑댄다. 그의 몸부림이 애절했지만 사랑은 전혀 놓아줄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냥 한결군. 당신이 포기하는 게 더 빠를 듯 싶다. "풋..." 그런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며 진정으로 사랑과 유빈은 죽이 잘 맞는 사이코가 아닐까 생각이 드는 은별이다. "..아..씹...콜록.. 안 떨어질래? 콜록콜록..." "와!! 사랑이도 한결이 기침세례를 받았다!!!" "더...더러워!!! 바보 아저씨!! 얼른 집에 가버려!!! 아빠 아야! 하단 말이야!" 침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로 감기 옮았다고 좋아라 소리치는 사랑의 모습에 질렸는지 은결이 버럭 소리 지른다. 아, 저 바보 콤비들. 유빈이나 사랑이나 둘 다 정말 못 말린다. "헉... 나 또 은결이 미움 받았어어어어.. 아리야아아아!!!" "헉..!! 울지마!! 사랑아!!! 내가 있잖아~" "아오.. 씨발.. 콜록.. 가버려!!!" 징징대는 사랑과 사랑을 달래며 소란스럽게 중얼거리는 아리, 또 아무 이유 없이 한결을 바라보며 히죽히죽 웃는 유빈 그리고 힘겹게 소리치는 한결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태하가 소리친다. "야, 지랄들 하지 말고 가자. 천하의 현한결이 아파 돌아가시겠다는 눈빛 못 봤냐?" "야!! 민태하!!! 콜록..콜록.." "채은별, 현한결 잘 보살펴라. 간다." "아, 응! 잘 가! 태하야~" 소리치는 한결을 무시하고 태하는 은별에게 인사를 하고 난리를 치는 아이들을 모두 끌고 조용히 한결의 집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한결은 한 바탕 유빈과 사랑의 폭풍이 휩쓸려서 개학날까지 꼼짝도 못하고 감기몸살로 드러누워 있었다. 유빈도 마찬가지로 감기로 몸져누웠지만, 사랑은... "왜~ 난 감기가 안 걸린 거지..?! 한결이의 러브파워 바이러스가 부족한 거야!!!!! 다시 가서 기침세례 받을래에에에에에에에!!!!" 개학을 할 때까지 매일 한결의 집에 찾아와 기침 세례를 받았던 사랑이지만 바보는 감기조차 피해간다고, 역시 감기는 사람을 알아보고 피했나 싶다. 풋. 93. [육아일기 번외]† 마 블 링 † (上) -과거를 기억하는 남자 비는 싫지만 소나기는 좋았고, 인간은 싫지만 너만은 좋았다. 내가 새라면 너에게 날개를 주고 내가 꽃이라면 너에게 향기를 주겠지만, 나는 인간이기에 너에게 사랑을 준다. 너의 그 하늘은 높고 무한해서 이 두 팔로는 안을 수 없다. 어째서 난 날개도 없이 널 사랑해 버렸을까? 하늘도 아니면서.... ..................................... ......................................... 해와 달이 하나가 될 수 없듯이, 물과 기름도 섞일 수 없어. 마블링은 물과 기름을 섞어 그린 그림이야. 그 만큼 더욱 색다르고 아름답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너무나 슬프게 보이지. 그림 속에서도 그 둘은 절대 어울릴 수 없거든. ...............................................................................................by. 레지나 만약 당신이 당신의 전생을 기억한다면… 만약 당신이 전생의 사랑했던 여자를 기억한다면… 만약 당신이 사랑했던 그 여자가 다른 이를 사랑한다면… 당신이라면… 당신이라면… [때는 과거 1095년 11월 26일 동유럽-] "세즈루, 내일이면 무슨 날이게~?" "내가 아냐?" "헉.. 너무해!!! 잊어버린 거야?" 여자의 심술궂은 투정에 남자는 피식 웃는다. 그는 둥글고 선한 눈을 살짝 감고 그녀의 다갈색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행복한 듯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레지나, 내가 잊을 리가 없잖아.. 우리가 만난 지 19년째 되는 날이자 우리의 결혼식이니까.." "기사님과 공주님이 결혼하는 날이지!" "그래.. 기사님과 공주님..." 그는 그녀의 말에 슬픈 미소를 짓는다. 세즈루, 그는 레지나의 집에서 주워 길러졌다. 레지나와 세즈루는 19년동안 언제나 함께 붙어 있었고, 드디어 모든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신분의 차이를 무시한 채, 내일 그 둘은 힘겹게 결혼을 하게 되었다. [1095년 11월 27일 동유럽-] 겨울이 서서히 다가오는 11월, 늦가을의 청명하고 푸른 유럽의 하늘 밑으로 둥그스름한 원형의 돔 지붕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정사각형의 모양으로 반듯이 지어진 거대한 저택이 있다. 집 내부엔 돌 조각을 사용한 모자이크가 화사하게 장식되어 마치 동화 속 궁전에 있다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후두둑- 후두둑-) 그 저택의 마블링처럼 생긴 창문 너머로 보이는 물 속이 다 드러날 정도로 유리처럼 바닥까지 맑게 비치는 호수와 그 위로 아름답고 우아한 백조들이 날개를 퍼덕거린다. "하아, 춥다..." 그리고 호수 근처에 그림 같은 소녀와 소년이 있었다. "세즈루!!! 백조가 너무 예쁘다!!!" 넋을 잃고 애틋한 눈으로 호수를 바라보던 소녀. 희고 고운 피부와 바다 색의 크고 맑은 눈 그리고 그와 어울리는 잔잔한 다갈색의 긴 머리칼. 하얀 눈처럼 흰 드레스를 입은 청순하고도 아름다워 보이는 그녀가, 호수에서 약간 떨어진 큰 침엽수 밑에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붉은 머리칼을 가진 세즈루란 이름의 조각 같은 미소년에게 소리쳤다. "레지나, 네가 좋아하는 인형극 다 준비했어!! 호수에 저번처럼 풍덩 빠져서 물에 젖은 생쥐 꼴 되기 전에 이리 와!!" 세즈루는 맑은 호수 바로 앞에서 손을 흔들어대는 레지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다급히 외쳤다. 그녀는 그의 말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큰 침엽수 나무 밑, 그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헤헤. 역시 세즈루 밖에 없다니까." "레지나, 지금 그 말 897번째인 것 아냐?" "쳇, 세즈루한테 밖에 이런 말은 한 적 없는걸." "얼씨구, 그 말은 788번째야. 징하게 영광스럽군요. 인형극을 좋아하는 꼬마 아가씨." 세즈루는 레지나의 오똑한 코를 한 번 장난스럽게 쭈욱 잡아당기고는, 기사처럼 옷을 입을 남자인형과 공주 풍의 드레스를 입은 여자인형을 집어든다. "흠흠.." 그는 몇 번의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레지나는 빙긋 웃으며 인형극 상자 앞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가다듬는 세즈루를 응시했다. 그런 그녀의 시선을 받으며 그는 인형을 천천히 움직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옛날 옛날에, 한 나라에 아름다운 공주님과 기사가 살았습니다. 그 멋진 기사는 전쟁에서 많은 공을 세워 유명한 기사가 되어 갔고, 어느 날 동화 속 아름다운 궁전에서, 우연히 보게 된 그 나라의 아름다운 공주님에게 첫 눈에 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음날로 진심을 담아 공주에게 청혼했습니다. 왕은 그런 기사에게 전쟁에서 대승하면 아름다운 공주와 결혼시키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기사는 공주님과의 사랑을 위해 많은 모험을 겪었답니다.. ........................... ....................................... 그러나 기사는 전쟁에서 큰 부상을 입었고 그는 목숨이 다 하기 전에 남은 모든 힘을 짜내 궁전에 있는 아름다운 공주님을 몰래 찾아갔답니다. 하지만 기사가 본 공주님은 이미 멋진 왕자님과 행복하게 살고 있었죠. 기사는 그런 공주님을 원망하지 않고, 왕자님과 영원히 행복하길 빌며.. 한 줄기 은빛의 눈물을 흘리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한 줄기 눈물은 하늘로 올라가 은색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별이 되었지요. 그리고 기사는 죽어서도..... 다음생애에 태어나서도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공주님만을 영원히 사랑했답니다." "흑... 흐앙...!!!!" "뭐야, 레지나 안 어울리게 우는 거야?" "세즈루 바보! 오늘 결혼식인데.. 왜 이렇게 슬픈 이야기를 하는 거야!" 긴 이야기를 마치고 세즈루는 눈물을 글썽이는 레지나의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눈물 맺힌 눈을 자신의 손으로 부드럽게 매만졌다. 레지나는 자신의 눈을 어루만지는 그의 가늘고 하얀 손을 잡아채며 말했다. "세즈루, 난 다음 생애도 널 사랑할거야!" "하.. 하하하.." 레지나의 단호한 말에 잠깐 어이없는 듯 그녀를 바라보던 세즈루는 금새 환한 표정으로 바뀌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녀는 그런 그의 웃음에 얼굴을 찡그리며 새침하게 소리친다. "뭐야?! 왜 웃는 거야?! 내 나이 19살에 걸고 맹세하는데 못 믿는 거야?!" "..풋.. 기특해서 웃는다. 그 약속 꼭 지켜라?" "걱정 마!! 난 약속 지킨다면 지킨다니까!?" "그 말은 벌써 999번째야." "너~!!! 세즈루!!!!! 자꾸 일일이 셀래?!" 세즈루의 말에 레지나는 흥분한 듯 볼에 장미빛 홍조를 띄우며 소리친다. 그는 더욱 호탕하게 웃다 이내 웃음을 멈추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오묘한 핏빛으로 붉게 물든 여운이 남는 노을이었다. 레지나도 노을을 바라보는 세즈루를 따라 서서히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본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그는 땅거미가 지고 어둠으로 감싸지는 하늘에서 눈을 돌려 레지나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들릴 듯 말 듯 조용하게 말한다. "난 다음 생애에서도 그 다음 생애에서도 네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영원히 너를 사랑할 거야.." 이제는 자신보다 훨씬 큰 그였지만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에서 휘영찬란하게 밝고 푸르게 빛나는 달빛을 받으며 말하는 세즈루의 모습이 너무나도 작고 왜소하고.. 슬프고.. 아름답게 보여서 레지나는 한 동안 그의 어깨에서 시선을 떼지 못 했다. "세즈루..." "자, 들어가자. 결혼 파티 준비해야지. 야경을 바라보며 하는 결혼식도 멋지겠는데?" 레지나의 부름에 별 하나 뜨지 않은 하늘을 바라보며 싱긋 웃는 세즈루의 애틋하게 보이는 웃음에 레지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의 뒤를 따라 저택으로 들어갔다. [야외 광장] 동화처럼 아름다운 저택의 광활한 광장에서 성대하게 열린 세즈루와 레지나의 결혼 피로연에 많은 하객들과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웅성거린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절친하더니 드디어 결혼을 하는군" "맞아요. 이 어려운 시기에 정말 축복 받은 아이들이죠." "그런데 요새 전쟁이 일어날 기미가.." "쉿! 조용히 하자고요, 성스러운 날인데.." 이윽고, 눈처럼 아름답고 새하얀 웨딩 드레스를 입은 그야말로 천사처럼 아름다워 보이는 레지나가 단정한 검정색 양장을 입은 세즈루의 에스코트를 받아 정원으로 나와 단상 앞에 다소곳이 섰다. 그리고 그 둘의 뒤로 늙고 중후한 목사가 따라 나와 단상에 서서 하객들과 구경꾼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 정숙해주십시오! 오늘로서 또 한 쌍의 연인이 결혼이란 종착점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을 모두 축복해....." (펑-!!!!!!) (후두둑!!!!!!!!!!!!!!!!!!!) 목사의 말을 끊는 엄청난 폭파음과 굉음, 귀청이 떨어질 만큼의 날카로운 쇠 소리에 정숙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며 비명을 질렀다. "꺄악!!!!!!! 저.. 전쟁이다!!!!! 전쟁이 났어요!!!!! 시..십자군 군대가!!!!" "교황이 전쟁을 일으켰어요!!! 꺄악!!!!" (쾅!!!!!!!!!!!!!!!!) 순식간에 세즈루와 레지나의 아름답고 거대한 저택의 대문이 부셔지며 십자군의 기마병들이 물밀듯이 저택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그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가 날카로운 검날이 새파랗게 빛나는 검을 하늘을 향해 치켜들며 우렁차게 외쳤다. "신의 가호는 우리의 것이다! 한 녀석도 남김없이 죽이고 불태워라!" "예!!!!"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모든 게 떠나갈 듯 우렁차게 대답하는 병사들, 광기어린 눈을 한 그들은 어린아이도, 여자도, 노인 할 것 없이 피에 굶주린 검으로 하나 둘 베고, 가르고, 찔렀다. "꺄악!!!!!!!!!" "크악!!!!!" 찢어질 듯한 비명이 온 세상을 흔들었고, 비릿한 피내음은 암흑으로 뒤덮인 천지에 곳곳이 퍼졌다. "하아..하아.. 세즈루... 나 힘들어..." "조금만 더 뛰자! 레지나.." 힘들게 저택의 뒤편 울창한 침엽수림 안까지 힘겹게 도망쳐 온 세즈루와 레지나. 나무에 이곳 저곳 긁힌 듯 그 둘은 이미 온 몸에 상처투성이였다. 레지나는 더 이상은 못 뛰겠다는 듯 숨을 몰아쉬며 간절한 눈으로 세즈루를 바라보며 애원했다. "흡.. 세즈루.. 너 혼자만이라도.. 도망쳐.." "레지나! 이 바보야! 내가 널 두고 어떻게 가?! 젠장! 업혀!" 그녀의 앞에 뒤돌아 앉아 무릎을 꿇으며 업을 포즈를 취하는 세즈루의 모습에 레지나는 풀썩 주저앉아 눈물을 뚝뚝 떨군다. 그녀의 새하얀 드레스가 우아하고 화사하게 바닥에 펼쳐진다. 죽음의 대한 공포는 크지 않았다. 다만, 혼자가 된다는 공포가 그녀를 엄습해 온다. "세즈루.. 흑.. 우리 죽는 걸까?" "...살 수 있어.." "세즈루.. 사랑해..." "그 말은 697번째야.." 세즈루의 장난스런 말에 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피식 허탈하게 웃는다. 그녀는 긴장이 풀린 듯 축 쳐진 몸을 바로 잡으며 그에게 말한다. "세즈루, 넌 지금 이 상황에서도 그런 말이 나와?" "19년 동안 봐 왔으면서 뭘 그러냐? 나 원래 이런 녀석이잖아." "..바보..." 레지나이 주옥같은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르 내려와 땅으로 추락한다. 세즈루는 다소곳이 레지나의 어깨를 잡으며 말한다. "사랑해.. 레지나.." (휘익- 탁!) "나..도... 쿨럭..." 갑자기 날라온 화살이 그녀의 여린 등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레지나는 화살의 반동에 의해 세즈루 앞으로 맥없이 쓰러졌다. "여자 한 명 밖에 없는 것 같은데요?" "가자! 따른 놈들도 찾아 봐!" 레지나의 풍만한 드레스에 의해 가려진 세즈루는 멀리 떨어져 있는 십자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갑자기 그의 손에 따뜻한 액체가 느껴졌다. 세즈루는 놀란 듯 쓰러진 그녀를 쳐다봤지만 붉디붉은 선혈만이 레지나의 입에서 하염없이 뿜어져 나온다. 그녀의 축복 받은 새하얀 드레스가 붉게 물들어 간다. 자신을 바라보던 그녀의 예쁜 눈이 서서히 감겨진다. 레지나가 죽어가고 있다..... "안 돼!!!!! 레지나!!!!" "세..즈.. 루... 다행이야.. 너..만 산다면...." "무슨 짓이야!! 너.. 너만 죽으면.. 난?! 난 어떡하라고?!" 절규하는 세즈루를 보며 레지나는 차갑게 식어 가는 손으로 그의 온기를 느끼고 싶은 듯 세즈루의 손을 꼭 잡으며 선혈이 흘러나오는 입을 힘겹게 움직인다. "쿨럭... 따..뜻하다.. 세즈루.. 약속.. 꼭 지킬게..." (풀썩-) 숨을 쉬지 않는다. 차가운 겨울 바람만이 세즈루를 감싸 안는다. 그녀의 심장이 뛰지 않는다. 영원한 어둠 속으로 레지나는 추락해버렸다. "하.. 레지나, 그 말 1000번째야...." 그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달빛에 비친 그 눈물은 기사의 눈물처럼 은빛을 띠고 있었다. 세즈루는 천천히 식어가는 레지나의 입에 입을 맞췄다. 그녀에게 한 그의 마지막 키스는 싸늘한 주검의 향기과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레지나... 레지나...." 잘 가요. 내 사랑- 울지 마세요. 우린 다시 만날 거예요. 다시 만날 거니까, 눈물도 인사도 그 때로 미룹니다... 이 몸이 한낱 눈물방울로 부서지더라도.. 전 당신의 눈 속에서 살겠습니다.. 설사 당신이 나의 이름조차 잊는다 해도.. ......................슬퍼하지 않겠습니다.... 94. [육아일기 번외]† 마 블 링 † (中) -과거를 기억하는 남자 당신과의 마지막 입맞춤은 싸늘한 주검의 향기와 비릿한 피 맛. 당신이 없어도 세월은 흘러가더군요. 당신이 없어도 세상은 변하더군요.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몰라보게 바뀌어도 당신을 향한 마음만은 변하지 않더군요... .....................................................................by. 세즈루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온다. 계절은 수없이 반복해 흘러갔고, 수레바퀴가 굴러가듯 많은 세월이 흘렀다. [1984년 11월 26일 김포국제공항-] "가만 보자.. 온다고 약속한 이 녀석들은 왜 안 오는 거야..?" 공항 밖으로 나가는 25살 정도 되 보이는 한 남자가 모든 이의 시선을 받는다. 갈색 빛이 도는 와인 색으로 염색한 결 좋은 머리칼에 새하얀 피부, 조각 같이 날카롭게 뻗은 콧날과 깎아 만든 듯한 턱선,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묘하게 차가운 듯 보이는 남자는 누군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며 공항을 유유히 빠져나가는 그 남자의 어깨의 갑자기 누군가의 손이 턱 얹혀진다. "뭐야?!" 깜짝 놀란 듯 소리치며 남자는 뒤를 바라본다. 그의 뒤에는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큰 키에 밝은 다갈색으로 머리가 눈에 띠는 준수하고 샤프해 보이는 남자와 능글능글 웃는 얼굴에 칠흑같이 검은머리를 한, 다갈색 머리의 남자와 많이 닮은 남자가 그를 배웅하러 왔는지 반갑게 맞이한다. "민태후!!! 깜짝 놀랐지?! 이게 몇 년 만이냐?!" "..3년 만이지. 선우유현, 그리고 채은규." "보고 싶었다. 자식!" "그 말은 231번째다. 선우유현." "민태후, 너 아직도 그 버릇 못 고쳤냐?" "넌, 아직도 그 능글거리는 웃음 못 고쳤냐?" 태후의 말에 은규와 유현은 싱겁게 웃는다. "근데, 은규가 안고 있는 선우유현 닮은 그 애새끼는 뭐냐? 선우유현! 벌써 둘째 애 난 거냐?!" 태후는 은규의 품에서 방실방실 해맑게 웃는 아기의 볼을 신기한 듯 톡톡 건드리며 유현에게 물었다. 그의 물음에 유현은 말없이 능글능글 특유의 웃음을 지어냈고, 은규는 기분 나쁜 듯 아기를 만지는 태후의 손을 딱 쳐버리며 유현 대신 대답한다. "무슨 실례의 말을!! 이 애는 나, 채은규의 첫 아들인 채은하라고!" "뭐??!!!!!" 놀란 듯, 눈이 왕방울만 해진 채, 무뚝뚝한 페이스가 와르르 무너지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태후, 그의 큰 소리에 시선의 이목이 모두 그와 그의 친구들에게로 쏠린다. "응애~ 응애~~~" "착하지.. 우리 아가.. 뚝뚝" 유현은 시선의 집중에 약간 얼굴을 붉히며 멋쩍어 하는 태후와 그의 외침에 깜짝 놀란 듯 크게 울음을 터트린 은하를 달래는 은규에게 조용히 말한다. "야! 내가 아는 카페 가서 조용히 얘기하자." [Q카페] 그들은 노란 장미로 둘러싸여 있는 아름다운 Q 카페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실은 너 영국으로 떠나고, 1년 지나서 유하별하고 결혼했다." "뭐라고?! 네가 그 유하별이랑 결혼했다고?! 야, 유현아. 내 귀가 이상한 것 같아, 나 이빈 후과에 좀 가야겠다." "아냐, 태후야. 은규, 하별이랑 결혼했어." "선우유현, 농담이지? 은규하고 유하별 지독한 원수 사이 아니었냐?" 고교 시절 때부터, 매너 있고, 머리 좋고, 잘 생긴 만능 엔터테이먼트 은규는 무뚝뚝한 태후와 항상 능글능글 웃어대는 유현보다 더 많은 여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태후와 유현과는 달리 절대 여자에게 심하게 굴지 않았던 젠틀맨 은규였지만 유독 고 1때부터 같은 반 반장이었던 하별은 쫓아다니면서 머리카락을 뽑는 다는 둥, 송충이를 책상 안에 집어넣는 둥 갖은 유치한 방법을 총동원해 징그러울 정도로 못 살게 굴었다. 그 둘은 학교에서도 소문난 지독한 원수 사이였다. 태후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식으로 소리를 꽥지르자 유현이 태후의 등을 세게 퍽 치고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연다. "보면 몰랐냐? 은규 저 자식이 유하별 짝사랑했잖아. 그렇게 괴롭힌 건 자기한테 관심 없는 하별이의 관심을 돌리려..." "아.. 씨, 선우유현! 그만해! 네가 알려 준 방법이었잖아!" 유현의 말을 자르며 은규는 민망한 듯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유현은 그런 그를 보면서 시니컬하게 웃으며 계속 말을 잇는다. "쯧쯧, 알려 준다고 그대로 하는 바보가 어디 있냐? 순진한 것.." "너?!!!" "근데, 왜 한준이는 안 보이냐?" 은규가 버럭 소리 지르려던 찰나, 태후의 조용한 물음에 안색이 어두워지며 마치 둘이 짠 것처럼 유현과 은규는 입을 굳게 다문다. 한준 역시 그들과 어렸을 때, 기업끼리 만난 파티에서 처음 만나 어울려 다녔고, 특히 태후는 한준과는 떨어져서는 안 될 정도로 그림자와 같이 사이가 각별했다. 그런 한준이 태후의 마중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왜 그러냐? 한준이랑 너희들 싸웠냐?" 의아하게 그들을 바라보며 태후가 재차 물었다. 그의 질문에 유현은 초조하게 커피 잔을 만져댔고, 은규 역시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고개를 두 어 번 젓고는 천천히 굳게 다문 입을 열었다. "태후 너도 알지? 3년 전에, 너 영국으로 유학 가던 날, 유현이 여동생 유진이랑 한준이 결혼한 거...." "어. 그게 왜?" (쾅!!!) "아우.. 씹" 태후 옆에서 초조하게 커피 잔을 만지던 유현이 탁자가 부서질 정도로 주먹을 내리꽂으며 욕을 지껼였다. 그런 유현을 보며 은규가 혀를 차며 조용히 말한다. "아프겠다." "...말이라고 하냐?" 인상을 바가지로 쓰며 신경질적으로 은규의 말에 대답하고, 유현은 찌릿한 손을 부여잡으며 은규 대신 냉소적으로 웃으며 말을 잇는다. "현한준, 그 개망나니 자식이 유진이랑 처자식인 한얼이를 내팽개치고 지네 회사에 새로 들어온 비서랑 바람났단다. 씨발." "....후우.. 유진이가 마음고생이 심하지.." 자신이 말을 잇는 은규의 말에 유현은 울화통이 터진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입술을 꽉 깨물며 한준과 사이가 각별한 태후의 눈치를 힐끔 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마음 같아선 한 대 치고 싶은데..." "내가 한 대 쳐 줄게." 표정 변화 없이 무뚝뚝하게 유현의 말을 되받아 치는 태후의 말에 놀란 듯 고개를 번쩍 치켜들고 그를 쳐다보는 유현과 은규. 태후는 그들의 시선에 아무렇지도 않게 피식 웃으며 말을 잇는다. "그 녀석, 어렸을 적부터 내 말은 잘 들었잖아. 설득해보자." [1984년 11월 27일, Q카페] "아아악!! 왜 내가 현한준이랑 놀아나는 비서랑 만나야 하냐고?! 차라리 그 시간에 내 귀여운 아들 유노랑 쎄쎄쎄하고 놀고 만다!!!" 은규와 태후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카페로 끌려온 유현은 그들이 한준과 정을 통하고 있다는 비서를 불렀다는 사실에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른다. "선우유현, 그 말 벌써 8번째다." "아우씨!!! 너 그 버릇 안 고치냐?!" "이 버릇은 인형극을 좋아하는 꼬마아가씨를 보지 않으면 안 고쳐질 거야.." 태후의 갑작스런 말에 놀란 듯 그를 바라보는 은규와 유현. 유현은 많은 충격을 받은 듯 어버버거리며 태후에게 소리친다. "너 좋아하는 여자 있었냐? 여자는 관심도 없던 녀석이?! 아오!! 씨발, 그 현한준이랑 놀아나는 계집애도 인형극 좋아한다던데.." "픽...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고 했다. 선우유현." "그 년이 적이냐? 바람난 창녀지!?" "...미..민태후씨...?" 태후의 차분한 말에 카페가 떠나갈 듯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유현의 목소리 뒤로 거의 울 듯한 표정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태후는 천천히 일어나며 여자를 자세히 보기 위해 고개를 든 순간, 그의 눈은 초점 없이 흔들렸다. "레..지..나..?" .................................................................................................................. 전 당신의 심연처럼 맑은 눈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전 당신의 앵두처럼 붉고 작은 입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전 당신의 모든 말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갈 때의 마지막 키스를... .....전 기억할 수 있습니다... ..................................................................................................................... (와락-) 눈물 한 줄기를 떨어뜨리며 "레지나"라는 이름을 외며 눈앞에 보이는 그녀를 태후는 와락 끌어안는다. "레지나 널 찾아 헤맸어! 나야, 세즈루.. 여기 있었구나, 드디어 찾았다... 네가 무슨 모습을 하고 있든 난 찾아낸다고 했잖아!" 태후의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한 듯 은규와 유현은 초점 없는 눈으로 멍히 그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익숙한 향기에 정신을 놓을 뻔하다가 간신히 이성을 다잡으며 태후를 밀친다. 태후가 다시 안으려하자, 그의 싸대기를 강하게 후려치는 그녀, 따가운 마찰음가 함께 그의 고개가 돌아간다. "전... 창녀가 아니에요!!!!" 버럭 소리를 지르는 그녀가 설움에 복받치는 듯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태후는 욱신거리는 자신의 볼을 만지던 손을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여자는 그런 태후의 손을 차갑게 쳐버린다. "뭔가 착각하시는 가 보군요. 전 레지나라는 여자가 아니라 강희아입니다." 싸늘했던 피로 물들었던 운명의 날 1095년 11월 27일, 피로 물들어진 붉은 광장에서 차가운 주검으로 변하면서도 끝까지 내 손을 놓지 않고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했던 그녀는 그 때의 ‘세즈루’란 태후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 95. [육아일기 번외]† 마 블 링 † (下) -과거를 기억하는 남자 "...나.. 기억 안 나..?" "누구시죠? 전 오늘 민태후씨가 불러서 처음 뵙게 되는 사람인데요?" 태후의 애절한 말을 딱 잘라 냉정하게 받아치는 희아다. 유현은 그런 그녀를 광기어린 눈으로 바라보다 희아의 싸대기를 사정없이 갈기며 버럭 소리친다. "씨발, 언제 태후까지 홀려 놓은 거야?! 꼬리 여덟 개 달린 여우 주제에!! 오늘 이 자리에서 죽여서 다시는 몸 못 굴리게 만들어 버리겠어!" 유현은 또 다시 희아의 볼을 치려고 손을 높이 들어올린다. 그런 그의 손을 은규가 단호히 잡고 고개를 두어 번 흔들며 낮게 속삭였다. "유현아. 여덟 개가 아니라 아홉 개다." "아오.. 씹!!!" 유현은 머리를 북북 긁으며 화를 참는 듯 붉어진 얼굴을 한 채 의자에 풀썩 앉는다. 은규는 빙긋이 웃으며 희아에게 차분한 음성으로 말한다. "초면부터 실례가 많네요, 앉으세요." 희아는 그의 미소에 조금 진정이 되는 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는 태후의 앞자리에 다소곳이 앉았다. ",..........." 한참동안 그들은 말이 없었다.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하시죠." 침묵하고 있는 그들을 대하기가 껄끄러웠는지, 희아가 먼저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만 멍히 바라보던 태후가 마음을 다잡으며 침착하게 묻는다. "한준이와 언제부터 만나셨죠?" "1년 전이요.." "...후.. 한준이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아버지의 수단 같은 녀석이에요. 사랑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녀석이기에 감정이 없어 다가올 날의 두려움도 없고, 흘러간 일들에 대한 향수도 느끼지 않아요. 내가 아는 한준이는 가족도, 친구도, 사랑도 믿지 않는 냉혈한이에요. 혹, 한준이가 H 그룹 사장이란 이유로....." (찰싹-) 태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희아는 있는 힘껏 그의 뺨을 쳤다. 또 다시 붉게 부어오르는 태후의 뺨, 그녀는 씁쓸해 보이는 태후의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섬뜩하리만큼 차갑게 소리쳤다. "한준씨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당신은 몰라요! 한준씨는 S그룹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원치 않은 정략결혼을 했을 뿐이에요! 그 사람도 날 사랑해요! 누구나 사랑할 권리는 있어요! 제발.. 우리를 내버려... 흡..." 말하는 그녀의 눈이 태후의 깊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치자 봇물 터지 듯 눈물이 쏟아졌다. 그녀는 손으로 눈물을 감추려 애쓰며 힘겹게 울음을 참으며 카페 안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하......" 그녀의 뒷모습을 끝까지 공허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태후는 마침내,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낮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씨발, 민태후 아는 여자냐?" 그런 태후를 끝까지 주목하던 유현은 화가 났을 때의 특유의 냉소를 지으며 태후에게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아니야.. 사람을 착각했나 봐..." 말하는 태하의 눈동자가 초점 없이 흔들렸다. 당신과 같은 세상에서 태어나기 위해 하늘에 수천 번도 더 빌었다. 당신을 기억했고 당신을 다시 만나기 위해 온 세상을 헤매었다. 당신이 싸늘한 주검으로 변할 때, 하지 못 했던 인사와 흘리지 못 했던 눈물을 위해 당신의 모습 하나하나를 잊지 않고 기억했다. 태후의 흔들리는 깊은 눈동자와 화를 참는 듯 붉은 입술이 푸르게 변할 정도로 세게 깨무는 유현의 모습을 보며 은규가 온화하게 웃으며 그들에게 말한다. "오늘은 그만 가자! 싸움 나겠다. 그만하고, 난 우리 귀여운 아들이나 보러 갈련다." "팔불출, 채은규!" "선우유현! 그게 네가 할 소리냐?! 너도 네 아들 선우유노만 보면 꿈뻑 넘어가는 주제에!" "넌 하별이한테 완전 잡혀 살잖아?" "유현이 너 말 다 했어?!" "다 했다~ 왜?! 떫냐?!" 항상 이런 식, 태후와 유현이 싸우려고 하면 은규가 엉뚱한 소리를 꺼내 분위기를 와해시켰다. "우리 은하가 얼마나 영특한 줄 아냐?" "영특하면 뭐하냐? 아직 제대로 말도 못 하잖아!" "넌 갓 돌 지난 애가 말 잘 하는 거 봤냐?!" 은근슬쩍 자식 자랑으로 넘어가는 그 둘의 싸움에 태후는 한숨을 푹푹 쉬며 카페 안을 몰래 빠져 나왔다. [다음 날] 태후가 희아와 한준의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한준의 본처이자 유현의 여동생인 유진이 평소에도 상태가 좋지 않던 심장병의 발작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다. [카톨릭 대학 병원] 유진이 쓰러졌다는 소식에 유현과 은규, 그리고 태후는 전광석화처럼 병원에 한 걸음으로 달려왔다. 그들이 그녀의 병실에 들어갔을 땐, 이미 정신을 차린 유진이 쇠약해진 몸을 일으켜 그들을 맞이했다. "왔어? 또 걱정시켰네.. 미안.. 어? 태후오빠도 있었어? 오랜만이네?" "그래, 오랜만이다.." 여전히 변함없는 태후의 무뚝뚝한 대답에 유진은 초췌해진 얼굴에 살짝 미소를 띤다. (쾅!!!!!) 그런 그녀를 말없이 지켜보던 유현의 얼굴이 차갑게 굳더니 자신의 주먹으로 병실의 벽을 부서지도록 세게 쳐댔다. "씨발!!! 현한준, 이 개새끼는 왜 안 와?! 지 마누라가 쓰러졌는데?!!!" "오빠, 한준 오빠는... 회사 일이..." 유현의 다그침에 빠르게 변명하던 그녀의 눈에 송글송글 눈물이 맺혔다. 그녀의 눈물에 유현은 화가 머리끝까지 난 듯 붉게 변한 얼굴로 유진을 직시하며 저음의 목소리로 소리친다. "현한준 그 개새끼 내가 찾아와서 유진이, 네 앞에 무릎 꿇게 만들지 못하면 난 인간도 아니야!!!" "유현아, 그 말 27번째야!" "아오!! 썅!!! 채은규! 너도 민태후 닮아 가냐?!" "오빠.. 그러지마.. 흡... 난 우리 한얼이만 있으면 돼... 괜찮아..." "선우유진!!! 너 왜 이렇게 물러 터졌냐?! 어??!!!!" 유현은 병실이 떠나갈 듯이 크게 울부짖는다. 그의 모습에 유진은 말없이 눈물만 흘린다. 이건 아니다. 뭔가 잘못 되었다. 다시 바로 잡아야 한다는 일념 하에 태후는 조용히 병원을 빠져 나와 한준의 회사로 찾아갔다. [H 그룹 사장실] 태후는 익숙한 듯 금새 사장실을 찾았다. 그가 사장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희아와 한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조금 열린 문을 통해 보인 한준은 희아를 향해 태후도 보지 못 했던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하............" 태후는 갑자기 다리 힘이 빠져 주저앉을 뻔했다. 저런 웃음을 보이다니.. 믿지 않았던 한준의 마음도 진심이다. 레지나, 아니 희아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를.. 그것도 태후의 절친한 친구인 한준을 사랑한다. (똑-똑-) "네." 허탈함에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걸 꾹 참고 그는 떨리는 손으로 사장실 문을 노크하고 들어갔다. "오랜만이다." 갑작스러운 태후의 등장에 놀란 듯, 한준은 경직되었다가 이내 표정을 풀며 반가운 듯 인사한다. "태후야! 언제 온 거야?!" "며칠 됐다." "연락 좀 하지!" "네 녀석이 연락한다고 반겨줄 놈이냐?" "픽- 너무하네." 한준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태후의 시선은 한준 옆에 서 있는 희아에게 꽂혀 있었다. 희아는 그의 시선에 벌쭘해하며 힘겹게 그에게 말을 꺼낸다. "저기..." "저번의 일은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녀의 말을 자르며 태후는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참기 위해 일부러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뭐야? 둘이 아는 사이야?" "아.. 아니에요, 한준씨. 커피라도 타올게요. 얘기하고 있어요." 한준의 물음에 당황한 듯 다급하게 대답하고 희아는 의미 없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태후의 눈길을 피해 사장실 밖을 나간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태후가 띠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유진이 쓰러졌다. 알고 있냐?" ".........." 그의 질문에 한준은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대답이 없다. 긍정이 표시이다. "....저 여자 사랑하냐?" "어..." 한준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태후의 심장은 산산조각 난다. 그는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이성을 잡기 위해 있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행복하게... 해 줘라..." 태후는 힘겹게 말을 마치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한준을 돌아보지도 않고 흔들림 없이 사장실을 빠져나갔다. 그 때, 사장실로 커피를 들고 오는 희아와 그의 눈이 마주쳤다. 희아는 자신을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는 태후에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서먹한 웃음을 지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Every move you make, every vow you break (당신의 몸놀림 하나하나와 당신이 깨어버리는 맹세 하나하나,) every smile you fake, but I always will remember. (당신이 흘리는 거짓 웃음 하나하나도, 저는 언제나 기억할 겁니다.) For all my life, I will keep a part of you with me. (평생 동안 전 당신을 마음속에 간직하겠죠.) May you find some comfort to him..." (한준이에게서 당신의 안위를 찾길 바래요..) 태후는 조용히 속삭이고는 그녀에게서 등을 돌린다. 그는 어리둥절한 희아의 시선을 느끼며 그녀에게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하며 자리를 떠났다. "행복하세요. 전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겁니다." (쨍그랑-) 그의 낯익은 속삭임에 희아는 가슴이 주저앉는 듯 놀라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고 한준이 그녀를 일으켜 세울 때까지 사라져 가는 태후의 쓸쓸해 보이는 뒷모습을 끝까지 쳐다보았다. .............................. 일주일이 흐르고, 태후는 동유럽으로 떠날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일주일 사이엔 많은 일들이 있었다. 4일 전, 유진이 입원한 병실에 한준이 희아를 데리고 찾아가 이혼 이야기를 꺼내고 돌아갔다. 그가 돌아간 직후, 유진은 엄청난 쇼크로 인한 심장 발작으로 너무나도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버렸다. [4일 전, 장례식장] 나타나지 않을 것 같던 한준이 눈물 한 방울도 없이 냉랭한 표정으로 그녀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그런 한준의 모습에 유현은 화산이 폭발하듯 화가 폭발한 듯 살기를 내뿜으며 한준을 사정없이 주먹으로 패며 소리쳤다. "씨발! 네가 무슨 낯짝으로 여길 와?!!! 넌 친구도 아냐!! 씨발!! 죽어버려!!! 너 때문에 유진이가 죽었어!!!! 씹!!!!!!" (퍽- 퍽퍽-) 유현이 한준을 사정없이 패는 데도 그 점잖던 은규마저 말리지 않았다. 태후는 옆에서 보다보다 못 보겠던지 유현의 복부를 주먹으로 강타했다. 태후의 주먹에 맞고 떨어져나간 유현은 어이없이 픽 웃으며 태후에게 말한다. "하하.. 씨발, 민태후, 끝까지 현한준 편드는 거냐?! 하- 하긴 넌 언제나 그랬지." "선우유현!"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유현의 싸늘한 표정에 태후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일으켜 세우려 손을 뻗었지만, 유현은 차갑게 태후의 손을 치며 말을 이었다. "민태후! 현한준! 이제부터 너희 내 친구가 아니야! 오로지 내 동생을 죽인 정신 나간 놈들일 뿐이야! 당장 나가!!! 씨발, 다시는 아는 체도 하지 마!!!" 그들의 20여 년간의 우정은 이렇게 허무하게 파탄 나버렸다. 이 일은 후에 있을 모든 일들의 재앙의 씨앗이자, 암울하고 불길한 복선의 시작이었다. .............................................................. 태후는 그 일이 있은 후, 한준과의 연락도 끊어버렸다. 이제 그는 더 이상은 한국에 머물 이유가 사라져버렸다. 누구의 따뜻한 작별인사 하나 없이, 그는 과거의 기억이 숨쉬는 동유럽으로 떠나며 레지나, 아니 희아에게 전하지 못할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를 써 자신의 별장 책꽂이 꽂아두고는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다... 그 편지가 후에 어떤 커다란 파장을 일으킬 줄 꿈에도 생각도 못한 채... .............................. To. 나의 영원한 마드모아젤에게.. 안녕하세요. 아니, 오랜만이네요 라고 인사하고 싶군요. 처음으로 쓰는 이 편지가 마지막 편지가 되는군요. 인사도 없이 떠나서 미안합니다. 마주 보고선 차마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아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동유럽에 있는 동화의 나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 지요. 그 곳의 건물 지붕은 마치 어릿광대의 모자 같고 마블링처럼 생긴 창문 너머엔 수정같이 맑은 호수와 새하얀 백조 그리고 당신이 있습니다. 인형극을 좋아하는 당신을 위해 저는 무대를 꾸밉니다.. 제가 그 곳에 가보지 않고도 사진을 보듯, 이렇게 선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우리가 한 때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했기 때문입니다. 광장이 아직 피로 물들기 전, 그 곳에서 열린 성대한 결혼 파티에선 모두가 축복 받고 행복한 표정입니다.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저는 기억하고 또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떠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하지만 저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당신을, 의미 없는 웃음을 지으며 절 바라보는 당신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습니다. 저는 동유럽으로 떠납니다. 그 곳에 가면 당신은 없을 지라도, 우리가 마지막을 함께 했던 피의 광장은 그대로이겠지요. 새하얀 드레스가 새빨간 선혈로 흠뻑 물들 때까지 내 손을 놓지 않았던 당신의 마지막 눈, 마지막 눈물을 기억하렵니다..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 언젠가는.. 언젠가는.. .... 당신도 날 사랑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지도.. .. from. ... ...... -The end- 96. 짧은 여름방학이 광음처럼 흘러가고, 개학날이 되었다. 그 동안 한결의 병간호를 하던 은별은 숙제가 밀려서 저녁 늦게까지 숙제를 끝내고 한결의 품에서 곤히 잠들었다. (chu-) "사랑해.."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일어난 한결은 자신의 품에서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곤히 잠들어 있는 은별의 긴 다갈색 머리칼을 매만지며 그녀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춘다. (달칵-) 방문을 살짝 여는 소리가 들리자 한결은 문 쪽을 바라본다. "아빠아아아아!" 방문 앞에는 아침잠이 없는 부지런한 은결이 새벽같이 일어나 한결을 부르며 쏜살같이 뛰어들어 왔다. "쉿." 자신의 앞까지 달려와 뭐라 말하려는 은결의 작은 입에 한결은 자신의 치켜든 검지 손가락을 대며 조용히 시키고는 은별이 깨지 않게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한 손에는 교복을 챙기고 한 손으로는 은결을 안고는 조용히 방을 빠져 나왔다. "아빠." ".........." 은결은 자신의 부름에 대답이 없이 교복을 갈아입고 있는 한결을 바라보며, 은별을 깨우지 않은 게 의아했는지 똘망똘망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묻는다. "아빠, 엄마는 왜 안 깨워요?" "엄마는 조금 더 자야해. 어제 늦게 자서 피곤할거야." 은결에게 조용히 대답하면서 한결은 교복 위에 앞치마를 입었다. 그런 한결의 모습을 초롱초롱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은결이 한결이 뒤돌아서 자신을 쳐다보자 조그만 두 손으로 자신의 큰 눈을 살짝 가리며 말한다. "은결인 아무 것도 못 봤어요! 아빠가 치마 입고 엄마가 되는 것, 은결인 정말 못 봤어요!" 한결은 어불성설 같은 은결의 말에 어이없이 픽 웃다가, 갑자기 그는 보기에도 사악한 미소를 짓더니 눈을 가리고 있는 은결의 귀에 대고 조그맣게 말한다. "은결아. 어흥이(주: 호랑이;) 나왔다." "앗! 어디, 어디요?!!!" 한결의 장난기 어린 말에 은결은 흠칫 놀라며 눈을 가리던 손을 후다닥 내리고는 재빠르게 한결의 뒤에 숨는다. 긴장한 듯 한결의 옷자락을 꽉 쥐며 세심히 주위를 둘러보는 은결의 모습을 보며 한결은 빙긋 웃으며 자신이 입고 있던 앞치마를 은결에게 입혔다. "쿡. 어흥이 갔어. 은결아." "휴우.. 은결이는 어흥이 무서워요! 앗!! 은결이가 엄마가 됐네!" 한결이 입혀준 앞치마를 들썩거리며 은결이 놀란 듯 외쳤다. 그의 외침에 소파 위에서 자고 있던 멍멍이가 부스스 일어나 반가운 듯 꼬리 치며 은결에게 다가와 몸을 비벼댔다. "은결아, 쉿!" "쉿!" "왈!! 왈!!" "앗!! 멍멍이도 쉿쉿!" 작게 짖어대는 멍멍이를 조용히 시키는 은결을 보며 싱긋 미소 짓고는 한결이 은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은 날마다 고생하는 엄마를 위해서 은결이랑 아빠가 만들자. 어때, 은결이도 좋지?" "네!!! 은결이도 엄마 맘마 만들 거예요!!" 한결의 물음에 힘차게 대답하며 은결은 즐거운 듯 자신의 발끝까지 내려오는 긴 앞치마를 손으로 나폴나폴거리며 한결의 뒤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간다. .............................. 창가로 쏟아지는 따가운 일광이 곤히 자는 은별의 얼굴에 비춰진다. 그녀는 눈부신 듯 인상을 찡그리며 부스스 일어나 평소처럼 시계를 바라보았다. "몇 시.. 헉!!!!!! 7시 20분??!!! 늦었다!!! 한결아!! 늦었... 어라..?" 은별은 시간이 늦었음을 보고 벌떡 일어나 자신의 휑한 옆자리를 바라본다. 옆자리에 있어야 할 한결이 없었다. "축제 준비 때문에 벌써 학교 갔나??!! 아악!!!! 이 빌어먹을 성격파탄자!!!!! 우씨!! 좀 깨워 주고 가지!!!!" 은별은 이미 많이 늦었음에 절규하며 속으로 있는 힘껏 한결을 열심히 씹으며 부랴부랴 세수를 하고 서둘러 교복을 입고는 부엌으로 뛰어들어 왔다. "어.. 뭐.. 뭐야?!" 헐레벌떡 뛰어 부엌에 들어간 그녀의 눈에 보인 풍경은 식탁에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놓여진 푸짐한 아침상과 정성스럽게 수저를 놓고 있는 한결과 은결의 모습이었다. "일어났냐?" 한결은 한 번도 해 본적 없는 행동이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휘둥그레진 눈을 하고 있는 은별에게 물었다. 은별은 자신 앞에 차려진 오색빛깔 진수성찬이 믿어져지지 않은 듯 자신의 옆에 서 있는 한결의 옷자락을 잡으며 물었다. "한결아. 이거 다 네가 준비한 거야?" "우리 꼬마 도련님도 같이 준비했지." "헤헤! 은결이랑 아빠가 엄마를 위해 준비했어요!" 싱글벙글 즐거운 듯 웃는 은결과 약간 상기된 얼굴을 한 한결의 말에 감격한 듯 눈물까지 글썽이는 은별이다. '한결아, 빌어먹을 성격파탄자란 말 취소할게' 란 생각도 잊지 않는 그녀다. (드르륵-) "앉아." 넋을 잃고 뚫어지게 음식만 바라보는 은별의 앞에 있는 의자를 빼 주며 한결이 말했다. "고마워. 한결아..." 그녀는 한결이 배준 의자에 주저앉는 듯 풀썩 앉아 밥과 반찬을 음미하는 듯 천천히 먹어본다. 긴장되는 듯 그녀를 쳐다보며 꿀꺽 침을 삼키는 은결과 한결의 모습에 은별은 끝내 눈물을 흘리며 힘겹게 말한다. "흡... 은결아, 한결아..." "아.. 씹, 또 왜 울고 그래. 울 정도로 맛이 없냐?" "엄마! 울지 마요!! 맛없으면 아빠가 다 먹을 거예요!" "은결아..; 그.. 그건;" 은결의 말에 잠깐 당황한 듯 어색한 미소에 땀을 삐질 흘리는 한결. 은별은 그들의 말에 고개를 있는 힘껏 휙휙 저으며 말을 잇는다. "아니.. 아냐, 흑... 내 생애에서 최고로 맛있는 아침식사야.. 고마워!!! 한결아, 은결아.." "울지 마라. 앞으로 자주 해줄 테니까." 눈물을 줄줄 흘리며 밥을 꾸역꾸역 먹는 은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빙긋 미소 짓는 한결이다. 97. * * * [세명고 2학년 7반] "얘들아~ 잘 지냈냐?!" "잘 지냈지. 야~ 나 방학 때, 시내에서 진짜 잘 생긴 애 봤다!" "웅성웅성" 개학이라 그런지 반 아이들은 시끌벅적 소란을 피웠다. 아침부터 울어버린 은별은 부은 눈을 비비며 힘없이 아리의 옆자리에 털썩 앉으며 인사를 건넨다. "에고고고.. 아리야, 안녕." "안녕!! 히히~" 아리는 무슨 기분 좋은 일이 있는지 아침부터 싱글벙글 웃으며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는 은별을 바라본다. 아리는 순간 은별의 부은 눈을 보고 놀란 듯 소리쳤다. "헉!!!! 용가리다!!!! 너도 깐따라삐야 별에서 왔니?! 용가리야, 둘리랑 도우너는 만났어?" "죽을래? 민아리?" "아니, 산다니까~ 별딱지야! 너 눈이 왜 그래? 포커스랑 싸웠어?"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근데, 눈이 왜 그래?? 호러다." "그게......" 아침에 있었던 모든 전후 사정을 상세히 말하자 눈에 광을 내며 정작 은별보다 더 감격해하는 아리다. "어쩌면 좋아!! 포커스 너무 멋있다!!! 이럴 줄 알았음 내가 포커스를 잡는 건데!!!" "착각은 노망의 지름길이다. 기억력 3초 병아리." "억! 너 지금 포커스 따라한 거지? 계집애~ 티내긴~" "됐다. 됐어. 내가 너하고 뭔 말을 하겠냐.." 허심탄회한 표정으로 아리를 보고는 방학숙제를 정리하기 시작하는 은별이다. 그 때, 시끌벅적한 교실 안으로 아리의 눈처럼 반짝반짝 광이 나는 대머리의 담임선생님이 들어왔다. (탕- 탕!) "조용! 조용!" 그는 칠판을 두어 번 치며 소란스러운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다. "담탱이가 웬일로 일찍 온 거야? 분명 학교 명예에 관련된 일 일거야. 아니면 내가 깐따라삐야 별에서 온 E.T다." 아리가 조용히 은별의 귀에 대고 말하자 심히 공감하는 듯 은별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맞아도 넌 깐따라삐야에서 온 E.T야. 민아리." "흠흠, 조용조용!" 담임은 목을 가다듬는 듯 몇 번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잇는다. "내일 알고 있듯이 명문고의 유명한 축제 '상록수'가 열린다. 그 때, 우리 학교도 몇 몇 유명한 부서 아이들이 초청 받아서 명문고에서 공연을 하지. 그런데, 요번에 코스프레부 애들이 집단 식중독에 여름감기까지 겹쳐서 입원하게 되었다." "우와, 그 돈 많은 코스프레부에서 얼마나 먹어댔으면 집단 식중독이냐!" "부럽다~ 우우~ 근데, 명문고 가는 사람 좋겠다." "맞아! 포커스도 있잖아!!!" 담임의 말에 여기저기서 야유를 보내며 웅성대는 아이들, 그들의 웅성거림에 은별도 분위기에 휩싸여 아리에게 한 마디 중얼거린다. "여름감기래, 여름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고 그랬는데." "포커스도 여름감기 걸렸잖아? 그럼 포커스가 개보다도 못하다는 소리네. 내가 자~알 전해주마~ 은별아!" "민아리!! 너 자꾸 그럴래?!!!" "응. 너의 괴로움은 나의 낙(樂)~♡" 어째 은별이 한결을 닮아가듯 점점 사랑을 닮아 가는 아리다. (탕!!탕-) 칠판을 주먹으로 터치하시는 차력을 보여주시며 소란스러운 아이들을 다시 잠재우시는 담임선생님. 새빨갛게 부어오른 것을 보니 많이 아프시겠군요. 붉으락푸르락한 얼굴에 눈물을 꾹 참는 게 다 비치십니다. 선생님~;; "흠흠. 그래서 그런데 우리 반에서 두 명이 상록수에 가게 되었다. 채은별, 민아리 너희 둘이 수고 좀 해 줘라." "네???????!!!!!!!!!!!!!" 예상치도 못한 담임의 말에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자동적으로 자리에서 은별은 벌떡 일어나 꽥 소리쳤다. 그런 그녀와는 달리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태연자약하게 웃는 아리다. 그런 그녀들을 보며 담임이 반짝반짝 대머리에 난 땀을 손수건으로 한 번 슥- 닦고는 말을 잇는다. "자리에 앉거라, 은별아. 너하고 아리는 고 1때, 피아노와 바이올린 이중주로 콩쿠르에 나가서 대상도 받았잖니? 학교의 명예에 걸맞은 실력.." "선생님!!! 전 못 해... 윽...." 아리는 담임의 말을 자르며 소리치는 은별의 허벅지를 아주 세.게 꼬집었다. 은별은 얕은 신음 소리를 내며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후훗." "아..아얏..! 미..민아리 뭐.. 뭐야?! 왜 그렇게 웃는 건데?!! 난 안 해!!!" 자신을 바라보며 당당하게 웃는 아리의 사악한 미소에 상황파악이 안 되는 듯 어리둥절해 하며 그녀를 노려보는 은별이다. 아리는 재빠르게 손을 들어 담임을 향해 말한다. "선생님~ 은별이도 한 대요~" "야!! 너?!!!" "오냐, 알았다. 수고 좀 해 주렴. 그럼 다음으로..." 자기 맘대로 정해버리는 아리의 행동에 흥분한 듯 붉어진 얼굴로 은별이 아리에게 소리친다. "미..민아리 너 죽을래??" "아니~ 살래~" "..........." 은별이 아리를 향해 살벌하게 눈을 흘기자 아리는 그녀의 시선을 당당히 받아치며 말한다. "저번에 100일 때, 포커스랑 잘 되게 해 준 게 누구였더라? 결초보은이라고 뱀도 갚는 은혜를 사람이 안 갚아서야 쓰나~? 앙?" "헉.. 이.. 마귀할멈..." 생각지도 못한 100일 때, 은별이 아리에게 진 빚. 역시 집요한 아리다. 결국 아무 반항도 못하고 아리의 뜻대로 명문고 축제에 가게 된 은별이다. 아리는 즐거운 듯 은별을 보며 말했다. "게다가 포커스네 학교 축제인데 몰래 가서 놀라게 해주면 더 좋잖아? 후후~ 사랑이가 내가 피아노 연주하는 걸 보면 뿅 갈 거야~♡" 착각은 자유란다. 아리야. 그녀의 말에 한 숨을 짓곤 울 쌍을 지으며 은별이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목적은 그거였군!! 민아리! 돼지 같은 뇬아!! 난 몰라!!! 한결이가 절대 자기 학교 축제에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단 말야!!!" "그러니까 더더욱 가야지! 뭘 숨기는데 못 오게 하는 건데?! 안 그래?" 아리의 말을 들어보니 그렇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는 은별이다. 아리는 또 뭔가가 생각난 듯 박수를 조그맣게 딱 치고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은별아, 옷은 걱정 마~ 코스프레부에서 준비한 옷 입고 가니까." "헉??!!!! 뭐??!!! 그 이상하고도 괴상한 옷을 입으라고????!!! 민아리이이이이이!!!" "후후~ 아무튼 오늘 점심시간에 음악실에 있는 바이올린이랑 피아노로 맞춰 보자고~ 결초보은~♡" ‘Oh my god!!!!!! 신이시여!!!! 어찌 이 가련한 어린양에게 시련을 주시나이까!!!‘ 축제에 대한 망상에 빠진 듯 싱글벙글 웃어대는 아리를 보며, 속으로 피눈물을 좔좔 흘리며 절규하는 은별이다. 98. * * * . . . 뿌연 짙은 안개가 걷혀지면서 칠흑 같은 어둠이 밀려온다. 사방에 깔린 어둠은 소리마저 삼켜버렸다. 점점 어둠에 빛줄기가 쏟아지면서 주위가 밝아진다. 창고 같이 어둡고 습기로 축축한 곳이었다. "어서 와. 배신자." 그 곳의 적막을 깨는 교복을 입은 수많은 남학생들이 웅성거리며 다갈색의 예쁜 머리칼을 온화한 얼굴의 미소년과 중앙에 있는 밧줄에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묶여있는 다갈색 머리의 미소년과 닮은 소녀의 주위를 에워싼다. "은별이를 풀어 줘!!! 약속대로 혼자 왔으니까.." 다갈색 머리의 미소년은 화가 많이 난 듯, 온화한 얼굴에 섬뜩하리만큼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은하오빠!! 안 돼!! 난 괜찮으니까. 도망 가!!!" 은별이 다갈색 머리의 소년, 아니 은하를 향해 울먹이며 간절하게 외쳤다. 그러자 수많은 남학생들 중에 우두머리로 보이는 초록빛이 도는 머리칼을 가진 남자가 매달려 있는 은별의 앞에 섰다. 준수하지만 차갑게 생긴 남학생들의 우두머리인 그는 시니컬하게 웃으며 은별의 싸대기를 힘껏 내리쳤다. "닥쳐, 계집애가 떽떽거리긴.. 채은하, 누가 당신이 오면 이 계집애를 풀어준다고 그랬지? 픽.. 우리가 원하는 건 따로 있다. 우리 신영고 일진은 그나마 너를 존경하고 따랐다. 헌데 당신을 따른 결과가 배신인가? 채은하, 실망했다. 감히 개 같은 현한얼 동생, 현한결에게 포커스 자리를....." "지빈형, 아니 신지빈 선우 현이 시켰나?" 우두머리의 남자의 말을 자르며 은하가 냉정하게 말했다. "은하오빠!! 현이는 이런 짓을 할 아이가 아니.. 꺄악!!!" (퍽-!!!!) 우두머리의 주먹이 은하의 턱을 강타했다. "오빠!!!" 입술이 터진 듯 피가 흐르는 은하의 입가를 보고 자지러지게 은별이 비명을 질렀다. "컥...." "입 닥치라고 했지? 꼬마 아가씨?" 우두머리는 그런 그녀의 목을 있는 힘껏 한 손으로 조르며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진 채, 말을 잇는다. "채은하, 신영고 이짱인 나를 너무 만만하게 본 것 아닌가?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 선우 현이 포커스 자리 때문에 죽도록 사랑하는 여자를, 그 것도 가장 존경하는 사람의 동생을 쉽사리 납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 어울리지 않게 계산 미스군. 재밌어. 정말 재밌군." "흡.. 오빠..." 목으로 계속해 오는 엄청난 힘의 압박에 숨쉬기가 버거웠는지 은별은 쉽게 정신을 놓아버리며 축 힘없이 늘어져버렸다. "그 더러운 손 은별이에게서 못 떼?!!!" 그런 그녀의 모습에 은하는 박차를 가하며 이전엔 보지 못했던 강한 살기를 내뿜으며 지빈에게 달려간다. 지빈은 순간 움찔하다가 지켜보는 남학생들에게 손짓한다. 그러자 순식간에 5~6명의 남자가 달려오는 은하를 붙잡더니 억지로 지빈의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든다. "이런.. 이런.." 지빈은 혀를 차면서 은별의 목에 쥔 손을 놓고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은하를 장난기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말한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진 냉정하고 품위 있는 분께서 여동생에 대해선 정말 끔찍하게 반응하는군. 안 그래? 골육지친이라고 남아있는 친동생을 남몰래 사랑하느라 힘들겠어? 쿡. 이 자리에서 당신이 끔찍이 사랑하는 여동생을 가져보지 그래?" 지빈은 정신을 잃고 매달려 있는 은별의 손을 묶은 밧줄을 칼을 꺼내 끊고는 축 쳐진 그녀를 은하에게 밀쳤다. 은별은 지빈의 강한 힘에 의해 무릎을 꿇고 있는 은하의 품에 쓰러지듯 안겼다. "........." "은별아. 정신 차려 봐. 은별아!!" "자, 가져 봐, 여동생을. 선우 현이 선수 치기 전에."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지빈을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냉랭하게 노려보며 정신을 잃은 은별을 아무도 볼 수 없게끔 은하는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지빈과 은하 사이에 팽팽한 시선이 오가던 도중, 갑자기 은하는 마음의 평정을 찾은 듯 표정을 풀며 지빈을 향해 날카롭게 외친다. "신지빈, 선우 현이 이 사실을 알면 가만히 안 있을 텐데?" "채은하. 뭔가 착각하나 본데, 우리 신영고는 편의를 위해서 선우 현을 따르는 척만 할뿐이지. 정말 따른다고 착각하면 안 되지. 우린 제 3세력을 만들고 있으니까." 지빈의 흥분한 듯 붉어진 얼굴로 사실을 털어놓자, 은하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한두 번 끄덕거리고는 차분하게 말한다. "그렇군. 그래서 너희 신영고는 여태껏 조족지혈일 수밖에 없는 거야. 너희가 따른다는 신영고 일짱이 누구기에, 얼굴도 안 비치는 거지? 일은 저질러놓고 무서워서 도망간 건가? 어디 그 잘난 면상이나 좀 보고 싶군." "비꼬지 마!" "신지빈, 너는 선우유노는 알지만 선우 현은 모른다. 현이는 나조차도 두려워하는 소리장도(笑裏藏刀)와 같은 아이야. 겉으로는 넉살 좋게 웃고 있지만 내심 속으로 칼을 갈고 있지. 선우 현은 이미 너희 정체를 파악하고 있을 거야. 피하는 게 좋을 걸..?" 은하는 온화한 얼굴로 달래듯 지빈에게 진지하게 말한다. "쿡.. 하하하하..." 그의 말을 듣고 믿어지지 않는다는 식으로 자지러지게 웃어넘기는 지빈이다. 한참을 파안대소하던 그가 일진 남학생들에게 다시 손짓을 하자 수많은 일진들은 은하와 그의 품에 안긴 채 여전히 정신을 놓고 있는 은별의 주위를 점점 압박하며 위압적인 기운을 내뿜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지빈은 여전히 피식거리며 은하를 향해 말한다. "우리가 비밀 준수를 얼마나 철저히 했나 모르나 보군. 쿡쿡. 선우 현이 여기로 올 일은 없다. 자! 채은하, 현한결한테 전화해서 어서 포커스 자리를 다시 돌려달라고 해! 그 포커스 자리를 우리 신영고에게 넘긴다면 풀어주겠다." "......신지빈, 내가 왜 한결이에게 포커스 자리를 넘겼을 줄 알아?" 99. 지빈은 자신의 질문에 동문서답하는 은하를 의아하게 쳐다본다. 그런 그의 시선에 은하는 여전히 태연자약한 모습으로, 평정을 잃지 않고 흔들림 없이 말한다. "싸움이나 전국의 일진을 이끌어 가는 데는 선우 현의 능력이 더 뛰어나다. 하지만 현이가 갖추지 못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한결이는 갖추고 있었지." "그게 뭐지?" "바로 인정과 신의, 겉으로는 냉혈한같이 차가워 보이는 한결이는 보기와는 다르게 인정이 많고, 또한 신의도 있다. 하지만 겉으로는 부드럽게 보이는 현이는 신의가 없어 남을 믿지 못하고 이용하려만 하지. 또한, 한결이처럼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그 만큼 영악하고 마음에 독을 품고 있다는 소리지. 선우 현이 서열 1위 포커스가 된다면 일진계에는 피바람이 불거야." "..하하하.. 쿡.." 지빈은 은하의 말에 악랄하게 웃으며 그를 주목한다. 그런 지빈을 말없이 서글프게 쳐다보는 은하, 은하의 표정이 마음에 안 드는지 지빈은 인상을 약간 찡그리며 말한다. "재밌군. 채은하. 역시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 이건가? 하지만 이번엔 꿰뚫어 보지 못한 듯싶은데? 시간을 끄는 것도 여기까지다. 선우 현은 안 온다. 포커스 자리를 넘길 수 없다면, 여기 이 자리에서 네가 사랑하는 여동생과 함께 반병신으로 만들어 주지." 지빈은 비웃음을 지으며 치켜든 손을 추풍낙엽처럼 떨어뜨린다. 순식간에, 은하에게로 덤벼드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신영고 일진들. 은하는 최대한 은별을 보호하기 위해 한 손으로만 주먹질을 하다보니 아무리 전설적인 그라도 당연 수로서도 힘으로서도 밀릴 수밖에 없었다. "쿨럭. 쿨럭.." 정신없이 날아오는 주먹과 발길질, 터진 입술 사이로 아릿한 피가 흘러나오고 온 몸 이곳저곳에 멍이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하는 자신이 맞을지언정 품에 끌어안은 은별을 절대 놓지 않는다. (쾅-!!!!!!!!!!!!!!) "씨발. 킥- 재미 좋다?" 창고로 밝은 빛이 비춰지고 시니컬한 목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은하의 정신이 희미해질 때쯤, 그의 앞에 익숙한 실루엣이 비춰졌다. 은하와 너무나도 닮은 그, 선우 현이었다. "신영고,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잘도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내가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면서 반란을 모의한 거냐? 쿡- 제대로 머리를 써야지. 멍청한 놈들," "서..선우 현!!!! 어..어떻게.. 안 거지..." "지빈형, 아니 신지빈, 내 정보망을 너무 무시하는 군. 그 대단한 짝퉁 포커스 현한결 곁에도 짐작도 할 수 없는 스파이를 붙여놓은 내가 신영고라고 해서 못 붙일 이유가 없지 않나? 어서 감춰둔 일짱이나 부르지 그래?" "젠장!!! 일짱은 누구인지 알 필요 없다!!!" 가쁘게 소리치며 지빈은 현의 뒤로 따라온 수많은 일진들의 수를 파악하기 위해 그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약점을 찾아야 한다. 너무나 영악하고 두려운 선우 현의 약점을.. "으...으윽....." 그 때, 쓰러진 은하의 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널브러져 있던 은별이 정신이 들었는지 신음소리를 내며 부스스 일어났다. "아.. 혀..현아?!" 그녀는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현의 모습을 보고 반가운 듯 소리쳤다. "은별아, 내가 왔으니까 걱정 마. 내가 저 새끼들 다 죽여 놓을 테니까." 은별을 향해 짓던 현의 웃음은 점차 지빈에게로 시선이 옮겨가면서 차가운 냉소로 바뀌며 싸늘한 한기를 내뿜는다. "꺄악!!! 은하오빠!!!" 은별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조금 떨어진 자신의 옆쪽에 쓰러져 있는 은하를 발견하고는 놀란 듯 소리치며 달려갔다. 지빈의 눈이 은하에게로 달려가는 그녀의 모습을 향해 시선이 옮겨진다. 선우 현이 사랑하는 여자, 그의 약점이다. "저 계집애가 좋겠군." 순간이었다. 각목을 들고 은별의 뒤를 쫓아오는 지빈의 모습에 은하가 있는 힘을 다 짜내어 은별에게 소리친다. "은별아!!!! 오면 안 돼!!!!!!!" (퍽-) "혀...현아....?" 은별을 치려던 지빈의 각목이 현의 안면을 강타했다. 순식간에 현의 얼굴에 주르르 붉은 선혈로 범벅이 되었고, 그는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진다. "현아!!! 현아!!!!!" 쓰러진 현을 끌어안으며 은별은 끝없이 쏟아지는 그의 선혈을 자신의 옷을 닦아낸다. 피가 멈추지 않는다. 붉은 피가… 끝없이 흘러나온다. 안 돼… 안 돼… "안 돼!! 현아.. 죽으면 안 돼!!! 안 돼!!!!!" 그러나 점점 정신을 잃어 가는 현의 모습에 애절하고 가냘프게 울부짖는 은별의 모습이 은하의 눈에서 점차 흐려진다.... ................................................................ ............................ "하..악.. 학...하악..." 싸늘한 한기가 자고 있던 은하의 몸에 흘러 들어왔다. 창문이 바람에 열린 듯, 방안으로 쏟아지는 차가운 겨울바람에 숨을 헐떡이며 잠에서 깬 은하는 힘겹게 일어나 능숙하게 창문을 닫았다. "하아... 뭐지...?" 1년 반이나 지난 신영고의 일을 꿈꾼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불안한 기운이 파리한 은하의 얼굴을 스쳐갔다. "....은별아... 은별아...." 은하는 침대 옆 탁자 사이에 있는 의자에 풀썩 주저앉고는 은별을 생각하는 듯 서글프게 눈을 감았다. 100. ‘오빠.. 어디 가? 나 두고 가지 마!!? 응??!’ ‘.........’ ‘오빠!! 싫어!! 제발.. 제발.. 아무 데도 가지 마!!! 내가 뭘 기억을 못 해서 떠나려는 거야? 응? 오빠..‘ ‘은별아. 미안..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은별과 헤어질 때의 마지막 그녀의 얼굴이 은하의 머릿속에서 흐릿하게 아른거렸다. 신영고의 일이 있은 후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은별에게서 떠나 캐나다로 온 지 1년이 지났다. 한 겨울인 캐나다와는 달리 한국은 늦여름이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깊게 생각이 잠긴 듯한 은하의 얼굴이 1년 사이에 성숙미가 더해졌다. (똑- 똑-) "Excuse me..." 생각에 깊이 잠긴 은하의 곁으로 열려있는 방문에 노크를 하곤 한국계 혼혈인으로 보이는 연한 갈색 머리에 이국적으로 생긴 그의 나이 또래의 한 여자가 다가왔다. 은하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여자에게 말한다. "Ah- Miss. Will." (윌양이군요.) 은하의 방에 기척을 내며 들어온 여자는 대학 기숙사에서 은하의 옆방을 쓰는 피아나 윌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부르는 은하의 호칭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You called me. 'Piana'." (피아나라고 부르세요.) ".............." 그녀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는 은하의 모습이 피아나는 섭섭한 듯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그녀를 바라보지 않는 은하를 슬픈 눈으로 한 번 쳐다보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Let us talk over our cups" (마시면서 얘기 좀 해요.)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커피 잔을 그에게 건네곤 씁쓸하게 창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창 밖으로 본 하늘엔 시커먼 먹구름이 저 쪽 끝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눈이나 비가 올 듯싶었다. "It's a nasty day. It's getting the snow cloud over." (심술궂은 날이네요. 눈구름이 사방으로 몰려와요.) ".......Isn't it?" (......그래요?) 창 밖으로 시선이 향하는 은하가 딱딱하게 대답하자, 피아나는 자신이 실수한 것을 느끼곤 안색이 파리해지며 그에게 미안한 듯 사과한다. "Ah!! I'm so sorry.. sorry.." (아.. 미안해요.. 미안해요..) "All right. Now I'm adapted to my conditions.." (괜찮아요. 이미 익숙해졌으니까..) 피아나는 씁쓸한 미소가 베이는 은하의 얼굴을 멍하게 바라본다. 다갈색의 예쁜 머리칼과 하얗고 고운 피부가 어울리는 은하의 얼굴이 파리해진 것을 그녀는 눈치 챘는지 다급하게 그에게 묻는다. "What's the matter? You look terrible." (무슨 일 있어요? 낯빛이 안 좋아요.) ".....I had a terrible dream last night." (.....어제 저녁에 악몽을 꿨거든요.) "What happened?" (무슨 꿈인데요?) "Sorry. Miss. Will. I don't talk about" (미안해요. 윌양. 말하고 싶지 않아요.) 피아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냉랭하게 대답하는 은하의 차가운 모습에 피아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은하를 향해 간절하게 말한다. "....You always make me sick. ....Nevertheless I love you...." (....당신은 항상 저를 힘들게 하는군요. ....그래도, 당신을 사랑해요..) 그녀의 애절하고 슬픈 말에도 은하는 요지부동하며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 피아나를 향해 조용하게 말한다. "Thank you for your trouble, but you cannot reasonably wish for more." (당신이 수고해주는 것에는 고맙게 생각하지만 그 이상은 바라지 마세요.) 은하의 냉랭한 말에 피아나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은하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알기에.. 그는 작게 한숨을 쉬고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차분히 말을 잇는다. "You don't love me. You don't even know me. I........" (절 사랑하지 마세요. 당신은 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니까요. 전......) (쾅-!!!) 은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피아나는 눈물을 흩날리며 방밖으로 뛰쳐나갔다. "하....." 은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버거운 듯 한숨을 깊게 쉬곤 마시고 있던 커피 잔을 탁자 위에 살포시 내려놓는다. (쨍그랑-) 순간, 탁자 위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산산 조각나는 커피 잔. 파편이 튀었는지 은하의 손에서 붉은 선혈이 주르르 흘러나왔다. "...한결아...? 현아...?" 갑자기, 4년 전 처음 한결을 봤을 때의 차가운 그의 얼굴과 1년 반전, 신영고에서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현의 얼굴이 은하의 머릿속에서 번개같이 스쳐지나갔다. * * * . . "흐아앙..!!! 아리야. 나 안 가면 안 돼?! 응??" 명문고의 축제 ‘상록수’가 열리는 날이 밝았다. 그렇지만 코스프레 부에서 옷을 갈아입는 은별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어디서 이 뇬이 또 앙탈이야?" "이게 어디가 앙탈이야?!! 이 병아리 같은 뇬아!!!! 나 상록수에 간 것 한결이한테 들키면... 저 세상으로 ByeBye 할 수도 있단 말야!!" "왜 그러는데?" "그게............." [어젯밤] 은별은 학교가 끝나고 아리의 집에서 내내, 피아노와 전자 바이올린을 맞춰보다가 저녁 늦게 가 되서야 아리의 닦달을 벗어나 힘겹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다녀 왔습니..." (와락-) "씨발, 채은별, 왜 이렇게 늦었냐?! 은결이랑 얼마나 걱정하고 찾았을 줄 알아?" 가뜩이나 축제와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 문제 때문에 예민해진 한결은 은별이 늦자 불안했던지 그녀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은별을 담쏙 안으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미.. 미안, 한결아.. 핸드폰을 두고 갔어.." "후우. 그럴 줄 알았다. 덜렁아." "더..덜렁이라니!!!!!! 씨이.. 성격파탄자 주제에.." "성.격.파.탄.자? 채은별. 죽을래? 키스할래?" "에..에??" 한결의 예상 불가능했던 말에 놀란 듯 눈이 커지며 은별은 그의 품에서 떨어지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한결은 피식 웃으며 그런 그녀를 다시 끌어안은 채, 소파에 앉으며 살짝 그녀의 입에 입을 맞추곤 말을 잇는다. "불안하니까, 내 앞에만 있어.." "아.. 으응..//" 한결의 무릎에 앉은 채 그에게 안겨있는 은별은 그의 크고 가는 흰 손을 만지작거리다 우물쭈물하며 조심스럽게 한결을 불렀다. "한결아.." "왜?" "나, 내일 너희 학교 축제 가면 안 돼?" 은별의 말에 움찔거리는 한결, 갑자기 뭐가 생각났는지 얼굴이 상기되며 흥분했는지 자신의 품에 안은 그녀를 밀치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씨발!! 저 세상 구경하고 싶으면 와라?!!!" .............................. .......................................................................................... * * * "이랬단 말야..!!!!" "I understand~♡" 은별의 간절한 울부짖음을 들으며 아리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정말 알아들은 것인가? "그러니까 나 안 가면.." 아리는 은별의 말을 무시한 채, 흥얼거리며 코스프레 부실에 있는 소품 장식 박스에서 무언가를 부시럭 부시럭 찾아서 그녀에게 던졌다. "뭐.. 뭐야?" 아리가 던진 것을 받아 어이없이 바라보는 은별. 그녀의 손에 있는 것은 가장 무도회 같은 데서나 쓰는 나비 모양의 하얀색 가면이었다. "그거 써~♡ 정체만 안 들키면 될 것 아냐? 결초보은~♡" "너.. 너?!!!" "별딱지만 쓰면 억울할 테니까 나도 쓸게~♡ 나는 깜장색!!" Fight 1. 은별 Vs 아리! 아리 Winner~ 당신의 집념에 찬사의 박수를 보내고 싶소! "민아리이이이이이이이이!!!!!!!!!!!!!!!!!!!!!!!!!!!!" 즐거운 듯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는 아리를 향한 은별의 강하고 괴로운 부르짖음이 코스프레 부실이 떠나갈 듯 울려 퍼졌다. 어째서 은별의 학교생활은 이리도 파란만장한 것인지.(웃음) 소설제목 :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작가명 : +메시아+ E-mail : darksorcery@hanmail.net 연재장소 : 새싹소설① -10대 총편수 : 총 162편 완결 장르 : 연애소설 -------- 출처 : 인터넷소설닷컴 (http://cafe.daum.net/youllsosul) 팬까페 : http://cafe.daum.net/msacafe 댓글 0 개 이 글을...(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최신목록 목록 윗글 아랫글 '　　　[퍼온소설]' 게시판의 다른 글더보기 제목 닉네임 날짜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121 ~ 140 >' 나린소주인 05.07.11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101 ~ 120 >' 나린소주인 05.07.11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081 ~ 100 > 나린소주인 05.07.11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061 ~ 080 >' 나린소주인 05.07.11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041 ~ 060 >' 나린소주인 05.07.11 카페에서 공개한 게시글입니다.'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키워드로 검색한 게시글 더보기 서비스 약관/정책권리침해신고카페 신고이용약관카페 고객센터검색비공개 요청 Copyright (c) Daum Communications Co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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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흠...ㆀ 아따, 차가 왜 이리 막힌 다냐?" 철판 깔린 아리의 노골적인 물음에 살짝 말을 돌리며 대답을 회피하는 기사 아저씨. 아리의 낯짝 두꺼운 말에 울 쌍인 은별이 고개를 돌려 아리를 살짝 노려본다. 아리는 그런 그녀의 시선에도 개의치 않고 말을 잇는다. "음~ 은별이는 시녀가 좋으려나? 아리 공주님의 시녀~♡" "네가 공주면 이 세상에 말세가 올 거야.." "아니다~ 아니다~ 별딱지의 그 옷차림을 보니, 사랑왕자님에게서 아리공주님을 납치하려는 괴도가 어울리겠다!" "쯧, 내가 널 납치하느니 차라리 언덕 위의 하얀 집에 방문하고 말래." 아리에게 말하면서 은별은 자신을 옷차림을 살펴본다. 은별은 아리와는 대조적으로 All 하얀색의 세미 바지 정장에 반짝 반짝 빛나는 백색의 구두까지 차려 신었다. 순결한 흰 색의 깨끗한 마이에는 은색의 단추들이 멋들어지게 달려있었고 등 뒤에는 하얀색의 모조 날개가 달려있었다. 얼굴엔 아리와 같이 흰색 나비 가면을 쓰고, 거기에다 긴 다갈색 머리를 풀러 늘어뜨리고 흰 색의 중절모를 쓴 은별의 모습은 그야말로 여자 괴도키드(명탐정 코난에 나오는...)를 연상시켰다. "오호호~ 나의 외모에 질투하는 구나~♡" 아리는 들고 있던 고급스러운 검정색 부채를 펴 나폴나폴거리며 말했다. "착각은 자유라 더니.. 완전 중증이네, 이대로 차 돌려서 같이 언덕 위의 하얀 집에 가는 게 어때?" "흐응, 별딱지 잊지 않았겠지? 결초보은♡" 그 놈의 결초보은이 원수다. 혼자 신이 난 듯 싱글벙글 웃는 아리를 보며 은별은 이리저리 이 국면을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 그러던 도중 불현듯 유치원에 있을 은결의 모습이 떠오르는 은별이다. 빠져나갈 묘책이 떠올랐는지 아까 전의 울 쌍인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헤실헤실 웃으며 아리를 향해 말한다. "민아리!! 차 돌려!! 나 은결이 유치원 가야 해!! 오늘 한결이가 없어서 내가 집에다 데려다 줘야 해!!!!" "흐음.. 그래?" "응! 얼른 택시 돌려~" 은별은 목숨을 건졌다는 생각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녀의 귀에 아리의 청천벽력 같은 말이 들려왔다. "은별아, 내가 말을 안 해 줬구나! 신유빈이 은결이 학교로 데려온 댔어~♡ 사랑이가 은결이를 위해 이벤트를 준비했거든~ 걱정 안 해도 돼~" Fight 2. 은별 Vs 아리! 이번에도 역시 아리의 Winner~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이미 은별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아리다. "헉.. 뭐.. 뭐라고..IIIIIIIIII???!!!" (쿠쿠쿠쿵-) 은별, 가슴이 끝없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을 느낀다. 그녀의 목숨이 걸린 마지막 희망이 사랑 덕분에 한낱 실오라기처럼 허무하게 날아가 버렸다. 아무튼 진사랑 이 녀석, 정말 도움이 안 된다. [명문고 운동장] "문어구이~ 1000원에 팔아요~" "노래 한 번 부르고 가세요~☆" 이윽고, 명문고 운동장으로 들어간 은별과 아리는 소란스러움과 화려함 속에서 축제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은별은 가면으로 얼굴을 가렸음에도 불구하고 연신 고개를 기웃 기웃거리며 초조하게 사방을 둘러보았다. "저 애들 좀 봐." "웬 나비 가면? 가장 무도회로 착각하고 온 것 아냐?" "쯧,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것 아니야?"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나비 가면을 쓴 그녀들을 바라보며 툭툭 한 마디씩 던지는 명문고 학생들이다. 그들의 말에 은별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며 아리에게 속삭인다. "씨폴. 니 뇬 때문에 졸지에 정신병자 됐잖아! 이 병아리 같은 뇬아!! 너 한결이한테 들키면 책임져!!!" "걱정 마! 걱정 마! 별딱지야, 어차피 넌 외계인이잖아. 자, 우리 공연 시간 다 되간다! 얼른 가자~♡" "내가 왜 외계인인데!!! 외계인은 너잖아!!!!" "알았어~ 나 예쁜 것 원래 알아. 그렇게 말 안 해도 돼~♡ 쑥스럽게..." 짜증을 내며 버럭 소리 지르는 은별의 말에 엉뚱하게 동문서답하며 아리는 무지막지한 파워로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를 질질 끌고 조회대 뒤쪽에 있는 접수처를 향해 서서히 돌아갔다. "저기 세명고에서 오셨어요?" 팔에 도우미란 팻말을 붙인 한 남학생이 조회대 뒤로 돌아 온 은별과 아리를 향해 말했다. "네~" "저 쪽에 학생회장이 계시거든요. 얼른 등록하시고 빨리 무대 올라가세요." "아.. 학생회장.... 학생.... 뭐.. 뭣이?!?!! 학생회장?!!! 저..저기요. 지금 방금 학생회장이라고 그러셨어요?" 도우미 남학생의 말에 은별, 사색이 되어 되묻는다. "네. 저 쪽으로 막사로 돌아가세요. 시간 없거든요! 서둘러 주세요!" "네네! 가자, 은별아~♡" "싫어..!! 싫어!!!!!!! 민아리!!!!!! 왜 오자마자 벌써부터 한결이를 마주 대해야 하냐고!!! 난 죽기 싫어!!!!!!!!!!!!!!!!!!!!! 앙앙!!!!!!!!!!!!!!!!!!!!!!!!!!!! 아리야, 친구 하나 살리는 셈치고 돌아가자! 응?" 은별은 다리에 힘이 빠진 듯 쪼그리고 주저앉아 아리의 풍성한 드레스 치마를 부여잡은 채 붉으락푸르락한 얼굴을 있는 대로 구기며 아리에게 절규했다. "누가 죽인데?! 괜찮아!! 가면이 있잖아!!! 결초보은(結草報恩)~♡ 각골난망(刻骨難忘)~♡ 사랑아! 기다려!!!!♡ 가자가자~ 별딱지야~!!!! 우리 다같이 힘을 내서 가자꾸나~!!!!" 아리는 절망에 빠져 쪼그리고 앉은 은별에게 힘차게 소리친 후 그녀의 목에 걸린 흰색의 넥타이를 무지막지하게 잡아당기며 접수대에 있는 학생회장인 한결에게 막무가내로 끌고 간다. "헉...IIIIIIIIIIIII" 한결이 있는 막사에 들어가자마자 뭔가를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 놀라 입이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는 아리다.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넥타이를 잡고 달리는 아리 때문에 목이 졸린 채 막사 안으로 끌려 들어온 은별은 거의 졸도하다시피 아리를 쳐다보며 힘겹게 말한다. "커..억.. 사.. 사람 살려... 쿨럭.. 이 뇬아... 넥타이.. 놔... 켁.." 화들짝 놀라 그녀의 넥타이에서 손을 떼며, 아리는 다물어지지 않는 입으로 은별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아앗.. 미안, 으.. 은별아. 저기... 저기......" "왜?" 아리의 더듬거리는 말에 짜증나는 듯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녀가 바라보는 쪽을 바라보는 은별 역시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허...헉...?!!!!" 장미를 연상시킬 만큼의 치렁치렁하고 화려한 붉은 색 드레스를 곱게 늘여 트려 입고, 와인 색의 결 좋은 긴 생머리를 가지런히 내려뜨린 채, 그 붉은 머리 위에 장미꽃으로 만든 화관을 쓴, 자신의 모습이 엄청나게 짜증나는 지 표정을 있는 대로 구기곤 의자에 불량스럽게 앉아 접수를 받는 어느 여인네보다도 꽃처럼 아리따운 여성(?).. "헉... 하.. 한결이....?!!!" 102. 붉은 색 장미로 수놓아진 화려하고 풍성한 퍼진 드레스에 그에 어울리는 중세 시대의 꽃이자, 탐스럽고 아름다운 머리를 가졌다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머리채를 딴 붉은 색 가발을 쓰고는 그 위에 장미꽃으로 장식된 화관까지 쓴 한결의 모습은 그야말로 상상초월, 월하가인, 절세미녀, 경국지색!!!! 온갖 수식어구를 갖다 붙여도 모자랄 정도로, 그야말로 서화가무 황진이도 울고 갈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은별은 아리와 같이 다물어 지지 않는 입을 쩍 벌리고 넋을 잃고 한결의 자태를 쳐다보았다. "씨발, 뭘 꼴아 봐? 눈 안 까냐? 입에 파리 100마리는 들어가겠네." 상기된 얼굴로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정체불명의 가면을 쓴(은별과 아리;) 두 명의 여자를 불만스럽게 쏘아보며 한결이 대뜸 소리쳤다. 아리는 한결의 외침에 화들짝 정신이 들었는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하게 한결을 쳐다보는 은별의 옆구리를 푹 찌르며 그녀의 귀에 속삭인다. "정신 차려! 별딱지야!" "우씨!!! 씨폴!! 아프잖아!!!" "쉿! 아픈 게 문제냐?! 거 봐! 포커스가 너 못 알아보잖아!" 아리는 저기압인데다가 여장한 자신의 모습이 엄청 열 받는 듯 폭발하기 일보직전인 한결의 모습을 힐끔 쳐다보며 은별에게 말했다. 한결은 자신을 자꾸 힐끔힐끔 쳐다보며 씨익 웃는 가면 쓴 여자(아리)의 모습에 더더욱 열 받았는지 책상을 주먹으로 쾅 내리치며, 예쁜 얼굴을 있는 대로 구기며 있는 힘껏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씨발!! 책상 뒤엎어 버리기 전에 접수 안 하냐?!" "..............." 한 순간 침묵,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겁먹은 얼굴로 일그러진 표정의 그를 쳐다본다. '헉! 엄청 열 받았다.' 한결, 한 번만 더 건들면 터질 것 같다. 은별과 아리도 한결의 분노하는 모습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어.. 어떻게 해.. 나 걸림 죽음이야. 죽음..." 목을 손가락으로 그으며 울먹거리는 은별, 아리 역시 불안한 듯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은별의 등을 토닥이며 머릿속으로는 '제발, 무사하게 해주세요.' 를 연발하면서 다소 긴장되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를 향해 속삭인다. "은별아.. 우.. 우리 가명 쓰자..;; 넌 금별, 난 아라..;;;; 어..얼른 이름 써!!!" "뭐?!!! 내가???!!!!" "그럼 너 말고 또 누가 있냐??!!!" "네가 해!!! 들키면 난 끝장이란 말이야!!!" "너니까 더 안전해!! 얼른!!!!" 아리는 힘껏 은별의 한결 앞 탁자로 떠민다. 차갑고 매서운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한결의 시선에 몸이 경직됨을 느끼며 은별은 긴장되는지 침을 꼴깍 삼킨다. "어물거리지 말고 얼른 써라?" 인상을 푹 쓰며 재촉하는 한결의 등살에 떠밀려 천천히 떨리는 손으로 채금별, 민아라라고 서류에 조심스럽게 쓰는 은별이다. "씨발, 야, 채금별인가 뭔가, 아, 씹. 이름도 비슷하네? 네 몸에서 나는 냄새 상당히 짜증난다?!" 한결은 자신의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서류를 작성하는 가면을 쓴 이상한 여자(은별)에게서 문득 은별에게만 나는 민트향이 바람결에 스쳐 전해져오자 기분이 상한 듯 눈썹을 꿈틀거리며 그녀에게 불만스럽게 말을 툭 내뱉는다. ‘현한결, 지금 너 내 냄새가 짜증난다 이거지?!!! 가면 하나 썼다고 여자친구도 못 알아보는 주제에!!!(누구나 못 알아본단다.;) 이 성격파탄! 천상천하 유아독존 같은 놈아!!!!‘ 마음속으로는 힘껏 한결에게 소리치고 싶지만 역시 마음만 이다. "세명고 학생 여러분! 얼른 올라와 주세요!!!" 쥐 죽은 듯 있는 게 상책이라고, 운영 위원들의 재촉에 한결에게는 예의상 한 번 고개를 숙이고는 군소리 없이 무대로 올라가는 아리를 은별은 따라나선다. * * * 명문고의 운동장은 학생들의 함성과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축제 분위기는 절정에 다다른 듯 떠들썩하면서도 유쾌했다. "자! 장기자랑이 마지막 무대를 장식해 주실 분들은 세명고에서 특별히 초청을 받고 오신 '채금별'양과 '민아라'양의 전자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이중주 무대입니다! 이 무대가 끝나면 곧 이어 자유선언 타임으로 들어갑니다! 그럼 채금별양, 민아라양 나와 주시죠!!!" 조회대 위에 꾸며진 무대 가운데에 서 있는 사회자의 들뜬 외침이 마이크로 전해져 운동장 끝까지 울려 퍼진다. 이윽고, 약간의 박수 소리와 함께 야외무대 위로 가면을 쓴 아리와 한 손에 전자 바이올린을 들고 올라오는 은별이 모습을 드러냈다. "요번 해는 코스프레가 아니네? 세명고.." "그러게, 코스프레 훨씬 재밌었는데.." 코스프레가 아닌 탓에 약간은 실망한 듯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뿜어져 나오자 은별이 약간 당황한 빛을 사회자에게 내비쳤다. 그녀의 시선에 사회자 역시 약간 당황한 듯 벌줌 해하던 것도 잠시, 아리가 피아노에 다소곳이 앉더니 은별을 향해 싱긋 웃으며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 "♬♪♪♩♬♪" 아리의 갈고 닦은 연주가 시작되고 그녀의 반주 흐름에 맞춰 은별이 정성스럽고, 한 마리의 제비처럼 재빠른 손놀림으로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화려한 손놀림에 의해 흘러나오는 곡은 바로 '몬티'의 '차르다쉬'... "야, 이거 유진 박의 연주로 유명한 곡 아냐?!" "엇!!! 진짜??!!" "끝내준다, 특히 저 바이올린 켜는 애, 천사 같다." 격정적이고 열정적인 피아노 선율에 맞춰 나비가 꽃에서 노닐 듯 환상적인 손놀림으로 현을 켜는 순백의 옷을 입은 은별의 모습은 마치 천사와도 같았다. 그런 그녀들에게 넋이 나간 듯 바라보는 명문고 남학생들의 끈적한 시선에 그들과 같이 무대 밑에서 지켜보고 있던 한결은 갑자기 기분이 울컥해짐을 느낀다. "씨발, 다들 조용히 안 하냐?!!!" 남학생들의 시선이 점점 더 가면을 쓴 순백의 정체불명 여자에게 쏠리자 한결은 열 받을 이유도 없이 버럭 그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헙...;;; 풋;;; 포..포커스..." 화려한 붉은 드레스를 입고 발광하며 소리치는 한결의 모습에 약간의 뉘앙스를 느끼며 살짝 조소를 지을 수밖에 없는 남학생들. 웃음을 참으려는 그들의 모습에 한결, 더더욱 열 받은 듯 그의 이마에 빠직마크가 연속으로 생긴다. "다들 눈 깔고 입 닥쳐라!!!?? 씨발, 저 흰색 정장 입은 년 쳐다보지 마라?! 어?! 지금 공연 중이다. 존나 시끄러워서 집중 안 돼." ".....저.. 저기 포커스... 포커스가 더 시끄러운....." "흠흠..." 한결의 외침에 놀란 듯, 겁먹은 듯한 올망졸망한 시선으로 한결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하는 남학생의 말에 한결은 상기된 얼굴로 헛기침을 하더니 그 남학생을 한껏 째려보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한다. "불만이냐?! 나랑 한 판 떠 볼까?" "헉.... 아.. 아니요..." 역시, 힘없는 자는 슬프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무슨 말을 하리오-; 한결은 다시 한 번 그 남학생을 째려봐 주고는 은별을 바라볼 때의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끼며..... (은별이지만...;;) 고개 숙인 남학생들 사이로 유일하게 고개를 빳빳이 들고는 순백의 천사 같은 정체불명 여자(은별)의 정열적인 바이올린 연주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식으로 불만스럽게 지켜본다. ........................................................... 103. "징-------" "와아아아!!!!! 최고다!!!" "휘이이이~ 와~~~" 화려하게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며 아리와 은별은 연주를 마쳤다. 우레와 같이 쏟아지는 박수에 만족한 듯 아리는 빙긋 웃으며 은별을 향해 앙증맞게 브이자를 날리며 관람하던 명문고 학생들에게 고개를 숙였고, 은별은 뒤통수가 왠지 따가운 것을 느끼면서도 만족한 듯 빙긋 웃으며 관람하는 명문고 학생들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한 뒤 무대에서 내려왔다. "휴우- 살았다.. 왠지 뒤통수가 너무 따가웠어.." "응. 힘겨웠어.." "씨!!! 다 마귀할멈 너 때문이야!! 이게 뭐냐고!!" "헤헤~ 그래도 성공했잖아~!!! 최고였다고!! 사랑이가 나란 걸 알면 뿅 가버리겠지? 헤헤!!!" "아서라.......... 이 바보커플..." "뭬얏!!!!!!" 아리와 은별은 티격태격하면서도 들키지 않고 무사히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무대가 잘 보이는 운동장 뒤쪽에 눈에 띄지 않는 스탠드에 앉아 가냘프게 한 숨을 푹푹 내쉬며 무대를 바라보았다. 그녀들이 바라본 무대에는 이미 사회자가 올라와 다음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 순서는 '자유선언! 나는 말한다.' 입니다. 자자~ 숨겨왔던 비밀이라던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이라던가, 하고 싶은 말 등 모든 이야기를 자유롭게 펼치는 무대입니다! 자- 기대되는 첫 무대는 우리 학교의 명물 중 하나인 진사랑군이 꾸며 주신 답니다! 관객 분들은 힘찬 박수로 맞아 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진사랑군 나와 주시죠!" "흐아앙~ 아빠!!! 엄마!!!!" "헤헤~ 은결아~ 울지마~ 내가 아빠한대두~"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서서히 무대 위로 싱글벙글 웃으며 서서히 몸을 드러내는 사랑과 그의 품에 안겨 칭얼대면서 엄마 아빠를 찾는 은결의 모습에 무대를 바라보며 관람하던 여학생들의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안 돼!!!!!!!!!!! 진사랑!!!!!!!!!!" "꺄아!!!! 사랑오빠, 그 애는 뭐야!!!!!!!!" "사.. 사랑아?!!!" 갑작스런 사랑의 등장에 아리는 깜짝 놀라 멍하니 무대를 바라보았고, 은별은 그의 품에 안겨 울먹거리는 은결을 보자 자신의 입장을 망각한 체 벌떡 일어나 무대를 향해 소리를 버럭 질렀다. "헉!!! 진사랑!!! 저.. 저 자식이 우리 은결이를...!!!!!" "으.. 아..아니 금별아;;; 차...참아!!!!!" "크악!!!!!! 참게 생겼냐고!!!!!!!!!!!!" 은결이 울먹거리는 것에 심한 모정을 느꼈는지 눈앞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듯, 물불 안 가리고 소리치는 은별의 옆구리를 아리가 손가락을 펼쳐 푹 찌른다. 그러자 푹 고꾸라지면서 은별이 아리를 째려보며 간신히 말을 뱉는다. "커..억... 무.. 무슨 짓이야!!!!" "이 뇬아!! 네가 지금 무대로 쫓아 올라가면 포커스한테 걸린다고!!! 걸리면 우린 끽이야~ 끽~ 저 세상으로 골로 간다구!!!!" "우씨....!!!!!!!!!!!!" 아리의 말에 흠칫 놀란 은별은 솟구치는 모정을 잠재우며 얌전히 제자리로 앉았다. 아리 역시 그녀의 옆에 앉아 한참을 충격이 가시지 않은 황당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곧 사랑이 무대 위에 나왔단 이유만으로 싱글벙글 웃으며 반짝거리는 안광을 내뿜으며 무대 위의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사랑은 한참을 칭얼대는 은결을 달래느라 애를 쓰다가, 결국 제 풀에 지쳐 포기했는지 은결이 칭얼거리던 말든 마이크를 잡았다. "헤헤- 아리야!!!! 들려???!!!!!!" "응!!!!!!!!!!!! 들려!!!!!!!!" 사랑의 질문에 자신이 가면을 쓰고 있단 사실을 망각한 체 벌떡 일어나며 소리치는 아리, 그러자 그녀를 향해 운동장에 서 있는 여인네의 시선이 몰린다. "........................." "하하하하...;;;;;" "하하하...;; 시..신경 쓰지 마세요..." 마치 광년이를 보는 듯한 시선에 아리와 은별, 어설픈 웃음으로 변명한다. 사랑은 눈치를 차린 것인지 아리를 향해 빙긋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헤헤~ 다 들리나 봐요~ 자~ 그럼 이야기를 시작할게요!" 사랑이 다시 말을 시작하는 바람에 은별과 아리를 째려보던 수많은 여인네의 시선이 순식간에 사랑에게로 돌아간다. 은별, 아까 전의 보복을 하는 듯 아리의 옆구리를 깊게, 것도 푸욱 찌르며 그녀의 귀에 대고 버럭 소리친다. "미..미친 마귀할멈아!!! 진사랑의 혼잣말에 대답하면 우째;;;!!!!" "커헉. 나..나도 모르게 그만…" "아무튼 이 바퀴벌레 한 쌍아." 은별은 어이없는 사랑과 아리의 모습에 낮게 한숨을 쉬고는 눈을 돌려 다시 무대를 주시하였다. 그녀가 본 무대에서 사랑은 이미 자신이 안고 있는 은결을 가리키며 말을 풀어놓고 있었다. "여러분~ 여기 보이는 이 예쁜 꼬마 보이죠?!" "네!!!!!!!!!!!!! 누구예요??????????!!!!!!!!!" "헤헤~♡ 제 아들이에요!!! 이름은 은결이고요." "누.. 누가 바보아저씨 아들이야!!! 흐아앙!!!!" "꺄아아아아아!!!!!!!!!!!!!!!!!!! 안 돼!!!!!!!!!!!!!!!!" 사랑의 폭탄선언에 반쯤 졸도하려고 하는 여아들의 비명에 은결의 부정하는 목소리는 묻혀버렸고, 엉뚱한 소리를 해대는 사랑을 바라보며 은별은 나중에 두고 보자는 식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노려보았다. "헤헤~ 농담이에요~ 하지만 우리 은결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올라 왔어요~ 제가 은결이를 처음 봤을 땐, 몇 개월 전 학교였는데요. 제 주위의 현 모군과 너무나 똑같은 판박이인 거예요!♡" 현모군이라니. 당신 주위에 현씨는 한 사람 밖에 없잖아. 연속되는 사랑의 폭탄 아닌 폭탄선언에 졸도 직전까지 간 은별이다. 그걸 모르는 사랑은 싱글벙글 웃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저는 첫 눈에 은결이가 너무너무 좋았는데, 제 마음이 전해지지 않았나 봐요! 은결이는 저를 바보아저씨라고 부르면서 너무너무 싫어했거든요!" "풋..." 사랑의 말 중에 왠지 '바보아저씨'란 말에 공감이 간다는 듯 은결을 바라보며 여아들은 작은 실소를 터트렸다. "하지만요. 마음은 역시 통하나 봐요~ 은결이가 절 그렇게 싫어하는 것 같지 않거든요~" "난 바보아저씨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 엄마랑 아빠 찾아달란 말이야!!!!!!!!!!!" 순간, 사랑이 잠시 멋쩍게 웃는 동안 사랑이 들고 있던 마이크에 대고 크게 소리를 빽 지르는 은결이다. "하하하하--" 그의 외침 덕택에 사랑은 그대로 뻣뻣이 굳어버렸고, 운동장은 폭소로 가득 차 버렸다. "나이스!!! 역시 내 아들이야-*" 사랑처럼 석고상처럼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 아리와는 달리 은별은 다른 여아들처럼 역시 은결의 외침에 활짝 웃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흐음. 채금별이라..?" 연주가 끝난 후에도 운동장에서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앉아있는 그녀들을 계속 주시하고 있던 한결은 금별이라는(은별이지만;) 여자에게서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낀 것인지 급히 정보통인 유빈을 찾기 시작했다. "신유빈, 신유........." 학교 뒤뜰에 가서야 유빈의 모습을 찾은 한결은 유빈의 이름을 불러댔다. 하지만 유빈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그저 심각하게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에 한결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말없이 유빈의 뒤로 가까이 다가갔다. "계획대로 준비는 되고 있습니다. 네- 걱정 마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조금 있다 뵙죠.. .................................." 순간, 일렁대는 바람결에 유빈의 마지막 목소리가 파묻혔고, 나무 뒤에서 바람 결 사이로 몰래 유빈의 통화내용을 경청하고 있던 한결의 뒤로 검은 그림자 세 개가 비춰졌다. "신유...... ......윽!!!!!!!!!!" 한결이 통화를 끝낸 유빈을 부르려는 순간, 그의 머리에 둔탁한 충격이 전해져왔고 그는 맥없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쓰러졌다. 104. "뚝뚝~ 은결아, 착하지? 형아가 맛있는 것 사줄께-" "싫단 말야~ 엄마!!! 아빠!!!! 으앙~ 엄마~ 아빠!!!!" 은결의 간절한 외침을 뒤로하고 사랑과 은결의 첫 무대가 별탈없이(?) 막을 내렸다. 지켜보느라 진땀 빼던 사회자, 다시 안면에 웃음을 찾고 무대 가운데로 나왔다. "하하.. 진사랑군의 깜찍하고 재미있게 장식한 첫 무대였습니다. 그럼 기대되는 다음 순서는...." "아!! 씹!!! 이거 안 놓냐?!! 너희 한 번 먼지 나게 맞아볼래?!!!" 은결과 사랑의 무대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다음 순서를 진행하던 사회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주 익숙하고도 익숙한, 화가 엄청난 듯한 저음의 목소리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무대를 멍하니 지켜보는 은별의 귀로 파고들었다. "아!!! 씹!! 안 놓냐???!!!" 분명 한결의 목소리였다. 사랑의 어이없었던 무대가 끝나자 관심이 없어진 듯 돌아서려는 학생들의 시선이 다시 한 번 무대로 쏠렸다. "헉!!! 포..포커스!!!" 순간, 학생들의 짧고 가느다란 비명이 순간적으로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그들의 서서히 눈에 보인 건 마치 예수를 연상케 하는 Big 사이즈 나무 십자가에 어느 새 갈아 입혔는지 깔끔한 검정색 정장차림의 한결이 양 팔목이 꽁꽁 묶여 이리저리 발버둥치며 버럭버럭 소리쳤다. 그런 그를 힘겹게 유빈과 태하가 무대 위로 나르고 있었다. 갑작스런 한결의 이상한 등장(?)에 은별과 아리, 또한 학생들 역시 무대를 보다 굳어버리고 말았다. "아오!!!! 씨발 안 놓냐?!!!!!! 너희 축제 끝나고 죽고 싶지?!!! 어떻게 강예진 사주를 받고 너희가 이럴 수 있냐고!!!!!! 신유빈, 민태하 이거 안 풀어?!! 얼른 풀어, 풀으라고!!!!!!" 한결의 날카로운 외침에 유빈은 두려울 게 없다는 듯 슬그머니 웃으며 자신의 침을 묻힌 검지로 사랑이 했던 것처럼 그의 볼에 꾹 찌르며 말을 꺼냈다. "헤헤, 뭐 그렇게 열 내시고 그래~? 우리는 저~얼~대 돈 받고 강예진한테 널 판 게 아니야~!!! 그~렇~지, 태하야?! 우리 절.대.로 그런 것 아니지?" "........" 유빈아, 속 보이는 말, 하지 말아라. 태하, 유빈의 뼈 있는 말에 뭔가 찔리는 지 은근슬쩍 한결을 바라보던 얼굴을 외면하듯 옆으로 살짝 돌렸다. 결국, 티격태격 하면서도 십자가에 매달린 한결은 무대 중앙까지 돈에 매수된 유빈과 태하에 의해 옮겨졌고 무대 중앙에는 이미 명문고의 퀸카 중의 퀸카라 불리는 예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고했어요! 민태하오빠, 신유빈오빠! 돈은 그 계좌로 넣어 뒀어요!" "쉿!!" 유빈이 말리기도 전에 이미 예진의 목소리가 무대에 설치된 마이크를 통해 운동장 곳곳에 널리 울려 퍼졌다. 역시, 돈 받고 날 매수했구나! 유빈의 돈독에 몸을 사리면서 한결은 예진의 얼굴을 보자 순간, 뭔가 많이 시달린 게 생각나는 듯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서 더욱더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뭐 들켰네~ 지금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으면 날 때려 보렴~ 한결아. 그럼 우리는 이만 가 본다~!!! 태하야 가자!!!! 한결아, 꼭 살아남길 바래!!! 후훗!!!!!!" "씨발!!! 내 언젠가 신유빈 너부터 죽이고 말 거야!!!!" 새파랗게 질린 한결의 비명은 안중에도 없는 지, 아님 이제 들어올 돈에 기분이 좋은 건지, 유빈은 끝까지 방글방글 웃으며 태하를 데리고 무대 밑으로 사라졌다. 예진과 십자가에 묶여진 한결, 둘만 무대에 남자 이미 학생들은 긴장되는 눈으로 무대를 쳐다보았고, 은별과 아리는 그런 학생들의 눈빛에 어리둥절하게 무대를 집중했다. 이윽고, 예진이 사회자에게 건네받은 마이크를 들고 한결의 곁으로 다소곳이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훗!!! 이 곳에 채은별이 있다는 것 난 다 알아요!!!!!" "헉?!!!!!!!" 예진의 순간적인 도발에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화들짝 놀란 듯 벌떡 일어서려는 은별을 아리가 간신히 저지하며 다시 자리에 앉혔다. "일어서면 어떻게 해!!! 은.. 아니 금별아!!!" "아니, 그게..;" "아무튼~!! 똥별이라니까~!!" "콱!!! 병아리 주제에!!!!!" "내가 왜 병아리야!!! 넌 똥별이잖아~!!!" 자신의 단순한 도발에 은별이 간단히 넘어간 걸 아는지 모르는지 예진은 운동장 널리 울려 퍼질 수 있을 정도로 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채은별은 들으세요!! 한결이 오빠는 내 약혼자예요!!!!!" "아오.. 씨발..." "헉. 뭣이, 뭣이?!!!!!" 예진의 폭탄선언과 동시에 운동장에 있던 학생들은 놀란 듯 입을 쩍 벌렸고, 한결은 좌절한 듯 마구 움직이던 고개를 숙였다. 은별 역시, 상상치도 못했던 소리에 자리에 얼은 듯 꽁꽁 굳어버렸다. 예진의 충격고백에(?) 웅성대는 학생들 사이로 예진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한 채, 다시 운동장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채은별!! 당신한테 절대 한결이 오빠를 빼앗기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절대 오빠네 집안에서 받아주지 않을 테니까!!!! 오빠의 신부가 될 사람은 나 밖에 없어요!!! 할 말 있으면 한 번 무대에 나와 보시죠?!" "씹! 강예진, 누가 너랑 결혼한다고 그랬냐?!!!! 어?!! 내가 미쳤냐?!!!! 입 안 닥쳐?!! 은별이 오늘 여기 안 왔으니까 얌전히 내려가라?! 응??!!!" 예진의 말, 분명 도발이다. 알고 있다. 도발이라는 걸.... 하지만 은별의 몸은 자동인가 보다. 아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녀의 몸은 무대 위로 올라와 있는 것을 보니... "뭐예요?! 당신! 당신이 무대 올라올 차례 아니거든요??" 예진은 전자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가면을 쓴 여자가 갑자기 무대 위로 올라오자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다 눈을 날카롭게 치켜뜨며 가냘프게 은별에게 소리쳤다. 그녀의 외침에 은별이 쓰고 있던 가면을 하늘 높이 날리며 소리쳤다. "내가 채은별이니까!" 105. 얼굴을 가리던 가면이 하늘 높이 날아 올라가고 환한 태양 빛 사이로 은별의 얼굴이 드러났다. 한결, 예상치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그녀의 등장에 놀란 듯 굳어버린 시선으로 은별을 멍하니 바라보았고, 예진도 잠시 굳었다가 이내 픽 비웃으며 마이크 하나를 은별에게 던지며 말했다. "당신이 한결오빠를 꼬신 그 여우 채은별이군요." "난 사람이지 여우가 아닌데," "제 눈에는 꼬리 9개 달린 여우로 보이는 데요?! 보잘 것 없는 당신이 어디서 내가 사랑하는 한결오빠를 꼬셔요!!! 한결오빠의 약혼녀는 나예요!! 한 달 후면 약혼 발표가 나니까!!!!!!" "씨발!! 강예진 너 입 안 닥쳐?!!!! 누가 너랑 약혼한다고 그랬어?!!" 흥분한 듯 붉어진 얼굴을 한 채, 예진이 다급하게 은별에게 소리치자 굳어있던 한결이 예진의 외침을 급히 맞받아 쳤다. 그의 외침에 예진은 상기된 얼굴로 분한 듯 입술을 꼭 깨물며 은별을 노려봤고, 가만히 예진을 응시하던 은별은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는 듯 슬프게 눈꺼풀을 반쯤 내려감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를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당신이 아무리 한결이의 약혼녀라고 해도, ....전 한결이를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뭐?!!" "당신이 한결이를 포기 못 하겠듯이 저도 한결이를 절대 포기할 수 없어요. 한결이는 이미 내 심장이 되어 버렸거든요..... .......이미 포기하기엔 너무도 늦었어요." 은별의 다소곳이 울려 퍼지는 말에 한결이 만족하는 듯 은별을 향해 그에게서는 보기 힘든 가느다란 미소를 지어냈다. 그녀 역시 그의 보일 듯 말 듯한 미소에 그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인정할 수 없어요!! 당신이 나보다 뭐가 잘났기에!!!!!" "사랑은 조건으로 하는 게 아니에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뿐." 은별의 말에 소란스럽던 운동장이 한 순간 숙연해졌다. 예진은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분한 듯 몸을 사리며 입술을 꼭 깨물었다. 이 때, 갑자기 어디선가 유빈이 무대 중앙으로 뛰어 올라와 마이크를 집더니 묘한 분위기에 감싸져있는 예진과 은별을 향해 소리쳤다. "자자, 아가씨들~ 이렇게 소리만 지르면 관객들이 재미가 없죠! 이 자리에서 한결이 쟁취를 위한 승부를 가리죠!!! 자~ 쌈박하게 한결이를 위한 세레나데로 말이지!!!!" "에에?!!" "훗," 유빈의 말에 깜짝 놀란 듯 소리치는 은별과는 달리 예진은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으며 한결이 묶여 있는 십자가 앞으로 다가갔다. 달갑지 않게 그녀를 째려보는 한결의 표정을 살짝쿵 무시하고는 그녀는 뇌쇄적인 눈빛을 쏘아대며 한결을 향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냥 편한 느낌이 좋았어~♬ 좋은 사람이라 생각 했어~ 하지만 이게 뭐야 점점 남자로 느껴져 아마 사랑하고 있었나봐 오빠 나만 바라봐 봐봐 그렇게 봐봐 아파 마음이 아파 내 맘 왜 몰라줘 오빠 그녀는 왜 봐 거봐 그녀는 나빠 봐봐 이제 나를 가져봐 이제 나를 가져봐♬" "와~~~ 끝내준다!! 역시 강예진이야!!!" "휘익~~~♪ 포커스 부러워요!!!!" 말로만 명문고 퀸카 강예진이 아니었다. 섹시하고 도발적인 춤으로 남학생들의 이목을 단숨에 끌어들여서 그녀만의 묘한 매력에 사로잡게 만든다. 그야말로 반짝반짝 빛이 나는 별 같은 여자.... "왜 날 여자로 안 보는 거니~ 자꾸 안 된다고 하는 거니 다른 연인들을 봐봐. 처음엔 오빠로 다 시작해 결국 사랑하며 잘 살아가 아무 것도 아니라 해도 나는 상처받아~ 이런 내가 싫다해도 지쳐버릴 내가 아냐 오빠 나만 바라봐~ 봐봐~ 그렇게 봐봐~ 아파 마음이 아파 내 맘 왜 몰라줘 오빠 그녀는 왜 봐 거봐 그녀는 나빠 봐봐~ 이제 나를 가져봐~ 이제 나를 가져봐~♪" "와아아아아!!!!!!! 강예진 최고!!!!!!!!!!!" 마지막에 상큼하게 윙크하는 것도 있지 않고 한결을 바라보며 매력적으로 윙크를 하곤 여유로운 웃음을 지은 채, 예진은 은별을 쳐다보며 강력한 눈빛을 보냈다. 표정에 한 치의 변화조차 없는 한결의 얼굴을 보면서도 예진에게서 강력한 위기의식을 느끼는 은별. 전세 역전이다! 준비한 게 전혀 없는 은별이다. "자~ 이번엔 채은별양 차례입니다!" "우..." 속이 타는 은별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싱글벙글 웃으며 그녀를 재촉하는 유빈에게 따가운 눈총을 주며 은별은 방법을 찾으려 머리를 굴려본다. ‘신유빈, 너 두고 보자!! 방법이.. 방법이.... 아!!!!!’ 그 때였다! 은별의 머릿속을 스쳐간 건 아까 전 아리가 쳤던 피아노였다. 그녀는 당장 깊게 심호흡을 한 채, 피아노 곁으로 다가가 마이크를 올려놓고는 살포시 자리에 앉았다. "........♪♬♩♪" 은별의 흩어진 기억의 파편 속에서 문득 생각난 곡. 그녀의 하얗고 고운 손이 피아노 건반 사이로 나비가 노다니 듯 움직였고, 이내, 귀에 익숙한 음을 내며 마이크에 의해 운동장 가득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반주 부분이 끝나고 눈을 감은 채 연주하던 그녀가 입을 열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변해가는 거울 속 나의 모습 만일 지금 나를 봐도 넌 사랑해줄까♪ 다들 그랬어, 사랑은 사랑으로만 잊혀지고 여자에겐 지금의 사랑만이 첫사랑인 거라고 하지만 나에게 사랑은 하난데 아직 가슴에 남았는데 또 다른 인연이 올수록 니가 더 보고 싶어. 한없이 너에게 받았던 그 사랑 나는 주지도 못했잖아 그때에 너에게 진 빚을 제발 나 갚게 해줘♪ 다들 그랬어 세월은 모든 상처를 잊게 하고 늘 여자는 지난날 추억 보단 사랑으로 산다고, 하지만 나에게 사랑은 하난데 아직 가슴에 남았는데 또 다른 인연이 올수록 니가 더 보고 싶어- 한없이 너에게 받았던 그 사랑 나는 주지도 못했잖아 그때에 너에게 진 빚을 제발 나 갚게 해줘♬ 피아노의 맑고 고운 소리와 아름답게 조화되는 은별의 차분한 목소리가 운동장에 있던 많은 학생들의 마음에 강한 파장이 일게 만들었다. 절정에 치닫는 듯, 노래를 하던 그녀의 얼굴이 약간 상기되었고, 한결 역시 처음 보는 은별의 모습에 놀라고 또 신기한 듯 눈을 떼지 못했다. 106. "하루만이라도 한번만이라도 그때로 돌아가 너와 나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허락된 하루라면- 내일이 나에겐 없다 해도 웃으며 눈감을게.........." "와!!!!!!!!!!!! 끝내준다!!!!!!!!" 은별이 노래를 마치고 피아노에서 손을 뗀 순간, 엄청난 환호성과 동시에 그녀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이 노래, 누군가가 자신에게 성심 성의껏 불러줬던 노래였던 것 같다는 생각에... "왜 우냐? 바보야, 네가 울면 난 미쳐.." "읍...." 일렁이는 마음에 조용히 눈물을 흘리던 은별의 귀에 낯익은 목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익숙한 한결의 향이 그녀의 입안 가득 퍼졌다. "역시 진짜 형수님이 이긴 것 같지? 안 그래? 강예진." "어떻게.. 어떻게 이런.." "아- 어떻게 한결이가 밧줄을 풀었냐고? 한결이 힘을 얕봐선 안 되지~ 이래봬도 명색의 포커스라고, 어쨌든 난 네가 시킨 대로 했어~" "너... 신유빈 너!!! 이렇게 될 줄 알고 일부러!!!!" "글쎄, 하지만 나도 좀 놀랐는걸! 힘들어 질지도 모르겠어." 패배감과 굴욕감에 몸서리치며 유빈을 노려보던 예진은 그에게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슬퍼 보이는 시선으로 한결과 은별을 바라보고 돌아서서 무대를 내려가는 유빈의 모습에 주춤하면서도 화가 난 듯 매서운 눈초리로 한결과 은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버버, 한결이 너../// 너!!!;; 이렇게 사람 많은데서 키..키스하면 어떻게 해.." "..픽.. 벌이야, 누가 여기 오라고 그랬어?" "...이씨..///!!! 네가 못 오게 하니까.." "청개구리 심보로 그랬다, 이거지? 키스 한 번 더 할까?" "...으..으악./// 이거 놓으란 말이야!!! 한결이 바보!!!" 한결의 딥키스로 숨이 가쁜 듯 붉어진 얼굴을 한 채, 한결의 품에 안긴 채 그와 장난스럽게 말하는 은별의 모습이 그녀가 돌린 시선에 한 눈에 들어왔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한결의 다정한 모습과 장난스런 말에 분한 듯 부들부들 몸을 떨며 은별을 향해 예진이 버럭 소리쳤다. "하.. 빼앗고 말 거야!!! 절대로 한결오빠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 오빠와 약혼하기 위해 5년을 기다려왔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아!!!" "어..어라.. 저..저기..." 예진은 은별에게 졌다는 패배감에 몸을 사리며 눈물까지 머금은 채, 간절하게 소리치고는 뒤 한 번 쳐다보지 않고 금세 무대 아래로 사라져버렸다. 당황해 눈이 커진 채 그녀의 애절한 뒷모습을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는 은별의 어깨 양쪽을 꼭 쥔 채, 한결은 그녀를 어르듯 부드럽게 말했다. "신경 쓰지 마, 절대 쟤랑 약혼 따윈 안 할 거니까. 내려가자." "...으응..." "짝퉁 포커스 현한결, 내려갈 필요 없어. 다음 무대는 나와 너의 처음이자 마지막 무대니까."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여전히 차가우면서도 날카로운 칼날이 베어있는 목소리. 무대에서 포커스에게 도전하는 듯한 말을 하는 남자에게로 운동장에 있던 학생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옮겨졌고, 무대에서 돌아서서 내려가는 은별과 한결은 낯익은 목소리에 깜짝 놀란 듯 동시에 번뜩 고개를 들어 무대를 바라보았다. "서..선우 현?!!" "은...은하형?!!!!!" 그들의 눈에 보인 건 은하와 똑같은 얼굴을 한 현이었다.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 놀라 거칠게 뛰는 가슴을 안고 현의 이름을 가냘프게 부르는 은별과는 달리, 현을 처음 본 한결의 입에선 은하의 이름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아, 허니~♡ 오랜만이지? 보고 싶었어. 허니도 그렇지?" "누... 누가 네 허니야!!! 전혀 안 보고 싶었어!!" "아아- 허니♡ 너무한 걸." 놀란 한결의 모습 따윈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은별을 향해 언제나처럼 싱글벙글 웃으며 한 걸음 다가오는 현의 모습에 그녀는 두려운 듯 오들오들 몸을 떨며 한결의 뒤로 숨는다. 한결은 선우 현이란 이름에 긴장한 듯 은별과 맞잡은 손을 더욱 꼭 잡으며 자신에겐 신경조차 쓰지 않고 은별을 향해 웃고 있는 그를 조금은 떨리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냐?" "어라? 짝퉁 포커스 너도 있었냐?" "..........;" 너도 있었냐니, 네가 먼저 불렀잖아. 자신이 존경하는 은하의 얼굴과 너무도 똑같을 정도로 판박이라 더욱더 적응이 안 되는 한결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어이없는 표정으로 현을 바라보자 그가 피식 웃으며 말을 꺼냈다. "쿡,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란건가? 아니면 존경하는 은하형과 판박이라 놀란 건가?" "둘 다야." "훗, 앞으론 놀랄 일이 더 많을 텐데, 현한결." "뭐?" 궁금한 듯 되묻는 한결의 말을 깔끔히 무시하곤 현은 피식 웃으며 마이크를 집고 운동장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난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 선우 현이다. 그리고 지금, 이 내가 명문고 일진에게 말한다. 이 짝퉁 포커스가 싫다면 내 밑으로 와라. 미래의 포커스인 내게로!!!!!!!!!!!!!!!!!!!!!!!!" "저 사람 2대 포커스 채은하 아니야?" "그러게, 너무 닮았다.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라니..." "씨발, 너 뭐야!!!!!!!!!!" 현의 갑작스런 외침에 소란스러워진 학생들의 웅성거림 사이로 한결이 열 받은 듯 상기된 얼굴로 눈썹을 꿈틀대며 그의 멱살을 확 잡아채어 올리곤 버럭 소리 질렀다. "이게 무슨 짓이야?!" "쿡,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뭐야?!!" "피식, 이거 좀 놓고 말하지? 지금부터 재미난 과거 이야기가 시작될 테니까." 107.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려고 하는 거야?!" 진지함 따윈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능구렁이처럼 웃으며 속마음을 절대 비추지 않는 현이 자신의 과거를 다 안다는 듯한 눈빛과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한결은 한편으로는 화가 나면서도 왠지 모를 두려움에 치를 떨며 현의 멱살을 더욱 꽉 잡고 소리쳤다. "이 손 좀 놓지? 멱살 잡힌 게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거든." "쓸데없는 말하지 말고 꺼... 윽!!!!" 순간이었다. 현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신의 멱살을 잡은 한결의 손목을 돌려 떼어버린 것은. 당연하다는 듯 현은 여전히 능글능글 웃고 있었지만 한결은 그의 힘에 놀란 듯 굳은 채, 부어오르는 손목을 잡고는 그를 강하게 쏘아보았다. 현은 그런 한결의 눈빛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픽 웃으며 말을 꺼냈다. "짝퉁 포커스, 그게 너의 힘이다. 넌 날 능가하지 못 해." "무슨 헛소리야! 손목 하나 돌려서 빼낸 게 네 힘이냐? 지나가던 개도 이 정도 힘은 있겠다." "아, 그런가? 다행이군. 이 정도에 당황하면 전쟁이 너무 싱거워질 테니까." 젠장, 이 녀석 보통내기가 아니다. 한결은 자신을 비웃으며 질타하는 현의 여유에 생전 처음 위기감을 느꼈다. 그가 긴장하는 것을 느꼈는지, 은별의 그의 손을 꼭 잡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한결아, 많이 아파?" "아, 괜찮아. 걱정 마." 한결은 그런 그녀의 마음 씀씀이에 고마운 듯 한 손으로 그녀의 결 좋은 머리를 쓰다듬다 문득 한결은 현의 많은 기억과 추억이 담긴 듯한 슬픈 시선이 은별에게 꽂혀있는 것을 느꼈다. 아까 전에 분명 현이 은별에게 허니♡라는 닭살스러운 말까지 썼던 기억이 스쳐 가는 한결, 긴장되는지 침을 한 번 삼키고는 현에게 물었다. "선우 현이라고 했나? 너, 은별이하고는 무슨 사이지?!" "사랑하는 사이지. 지금도 역시 그렇다고 믿고 있어. 허니가 그 때의 충격으로 날 잊어버린 건 유감스럽지만 곧 기억을 찾게 될 테니까. 기억의 파편이 모두 맞는 순간, 은별인 널 떠나 나에게로 다시 올 거라고 확신해." "절대 안 그래!!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난 한결이 곁을 떠나지 않아!!!" 현의 애절한 말에 은별은 한편으로 마음이 무거운 것을 느끼면서도 극구 부인하며 그에게 강력하게 소리쳤다. "결국, 허니 대답은 그거구나. 괜찮아, 다시 되찾아 오면 되니까. 현한결이 나에게서 빼앗아간 것 모두를 내 힘으로 다시 돌려받겠어." 은별의 강력한 외침에 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슬픈 미소를 지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동안, 긴장되는 분위기가 무대에 감돈 가운데 한결과 은별의 곁으로 유빈과 태하가 다가와 섰다. "은하형??!!!" "....오랜만입니다.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 "아니, 난 은하형이 아니지, 다시 한 번 소개하지.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 선우 현이다. 반가워, 민태하. 오랜만이군, 신유빈. 자, 그럼 이야기의 주인공은 다 모였군. 슬슬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가까이에서 보니 그야말로 은하의 얼굴과 똑같이 생긴 현의 얼굴을 처음 본 태하는 놀란 듯 황급히 은하의 이름을 꺼냈지만, 유빈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약간 고개를 숙이며 현에게 인사했다. 현 역시 태하와 유빈을 알고 있다는 듯 그들의 말에 대답하자 한결은 유빈에 반응에 놀란 듯 그를 쳐다보며 소리쳤다. "신유빈? 너 어떻게 저 녀석을 알아?!" "그게........." "신유빈, 연기는 이제 됐다. 모든 것이 밝혀질 때가 아니, 이제 모든 걸 시작하는 막이 올랐으니까... 그 동안 수고했다." 연기라니?! 예상치도 못했던 일들이 눈앞에 벌어졌다. 철썩 같이 믿고 있었던 유빈에게 현이 자신의 쪽으로 오라고 말한다. 태하와 한결은 딱딱하게 굳은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고, 유빈은 한 번 한결을 힐끗 쳐다보곤 이내 꿋꿋이 발을 옮겨 현 쪽으로 향했다. "신유빈, 너 내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지?" 현에게 다가가는 유빈의 작아 보이는 뒷모습을 보며 절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하는 한결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 항상 부드럽게 웃으며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았던 유빈의 얼굴에 한결의 애처로운 말은 어두운 그림자가 되어 드리워졌다. 침묵하는 유빈 대신 뼈 속까지 시리게 만들 정도로 차갑게 미소를 지은 현이 유빈 대신 조용히 말을 꺼냈다. "네가 친구로 생각하고 철썩 같이 믿고 있던 신유빈은 나의 형이자 제 1대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인 선우유노가 은하형이 명문 중학교로 갈 때부터 은하형 감시자이자 차기 포커스로 정해진 현한결 너에게 보낸 스파이야. 이미 오래 전부터 형과 난 널 주시해왔거든. 네가 어렸을 때부터 말야. 네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네가 믿고 있던 유빈이에게서 들을 수 있었지. 그리고 나에 대한 거짓 정보를 흘려준 것도 다 신유빈이지."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여태껏 함께 웃고, 싸우면서 버팀목이 되어주던 유빈이 스파이라니? 한 순간 마음 한 쪽이 무너지는 기분이 드는 한결은 애써 마음을 가다듬으려 노력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유빈에게 물었다. "거..짓말이지? 그렇지..? 그런 거지?!! 신유빈!!!" "...........미안하다. 용서는 바라지 않는다." "...신유...빈... 너!!!"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던 배신감에 치를 떨며 두 주먹을 꽉 쥔 한결이 유빈을 향해 다가가려 하자 어두운 유빈의 표정을 본 태하가 그의 앞길을 막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현한결, 아직 전쟁을 시작도 하기 전에 너의 세력 중 1/4은 떨어져나갔다. 친구란 명목으로 신유빈을 너무 믿은 댓가다. 그럼 이제부터 과거 이야기를 시작하지. 아, 무엇부터 말하는 게 좋을까? 그래, 현한결이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왜 버림받았는지 그 이야기부터가 좋겠군." 현은 유빈의 배신을 지켜보며 치를 떠는 한결의 모습에 만족한 듯 피식 웃음을 지으며 애처롭게 한결을 쳐다보며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유빈의 어깨를 위로하는 듯 툭툭 치다가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다시 능글능글 웃으며 한결의 향해 과거 이야기를 꺼냈다. "무슨 소리야?! 네가 어떻게.." 배신감에 몸을 사리던 한결은 자신의 과거에 대해 천천히 말을 꺼내는 현에게 어처구니없는 듯 되묻자 그는 예상했던 반응이었는지 묘한 웃음을 짓다가 옛 기억을 회상하는 듯 진지하게 바뀐 눈빛을 한 채 말을 잇기 시작했다. "옛날, 자신의 과거를 기억한다는 남자가 있었다." 108. "옛날, 자신의 과거를 기억한다는 남자가 있었다." "과거를 기억한다니? 선우 현, 너 어디 아프냐?" "…전혀 안 아프니까 넌 입 다물고 얘기나 듣지?" 현의 말이 시작되자 태하의 안색이 한 순간 초조한 낯빛으로 변했다. 한결은 뚱딴지같은 현의 소리에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은별은 웃음기가 사라진 현의 진지한 얼굴이 은하와 너무 닮아 이야기하는 그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자신의 과거를 기억한다는 그는,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자신의 전생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과거를 기억한다고 하면 분명 정신병자로 취급받기 일쑤였겠지. 영악했던 그는 전생을 기억한다는 것을 내색하지 않았지만 과거에 자신이 목숨보다 더 사랑했던 여자를 찾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유학이란 명목으로 집안의 도움을 받아 과거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동유럽을 떠돌아 다녔다. 그렇게 그의 25년이란 세월은 동유럽을 떠돌며 광음처럼 흘러갔다. 그는 25년 동안 헤매다 결국은 자신의 모국인 한국에 귀국했을 때 운명의 장난인지 우연히 평생을 찾아 헤매었던 과거의 연인인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과거를 기억하는 그와는 달리 과거를 기억하지 못 했고 불행히도, 손 써볼 도리도 없이 그와 가장 친했던 친구의 정부가 되어 있었지." ".............................." 현이 잠시 말을 멈췄다. 무대와 운동장 모두 침묵에 감싸졌다. 고요함과 긴장감 속에 한결은 침이 목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도 몰랐다. 현의 말은 여태껏 자신도 모르던 얘기였다. 분명 과거를 기억한다는 남자의 가장 친했던 사람은 자신의 아버지였을 것이고, 그의 정부는 바로 한결의 어머니일 것이다. 현은 잠깐 생각을 정리하는지 한숨을 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친구의 연인이 되어 있는 그녀의 행복하고 다정한 모습에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고자 평생을 찾아 헤매 만난 그녀를 그는 피눈물을 삼키며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더 이상 한국에 있을 이유도 동유럽을 떠돌아다닐 이유도 없어졌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결국 그녀에게 보낼 순 없지만 그녀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담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쓴 편지 하나를 자신의 별장에 있는 책상 책꽂이에 꽂아 남겨둔 채 다른 친구들 누구와도 연락을 끊고 다시 동유럽으로 떠났다." 진지하게 말하던 현의 표정이 어느 한 순간 싸늘하게 변했다. 마치 기억 나쁜 회상이라도 떠오른 듯이... 그의 말은 천천히, 그리고 차근차근 계속 이어졌다. "동유럽으로 떠난 그는 반년을 방황하다 결국 만나게 되었다. 자신이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사랑했던 그녀와 너무도 닮은 그녀의 언니를... 그는 마치 그녀의 언니를 그녀라고 착각이라도 한 듯 순식간에 그녀의 언니와 사랑에 빠졌고 만난 지 1달 만에 결혼해 다음해에 아이를 낳았다. 그게 바로 민태하다. 현한결의 어머니 강희아의 친언니인 강희우와 민태후 사이에서 낳은 아들 민태하." "뭐???!!!!!" 현의 폭탄선언과 같은 말에 다들 놀란 듯 눈이 동그랗게 변해서 태하를 바라보았다. 모두의 시선에도 태하는 유빈보다 더욱 어두워진 얼굴로 침묵만을 지켰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현의 이야기는 한결에게 너무나 많은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따져 말하자면 태하는 존재한다는 것도 몰랐던 자신의 이모의 자식이자 결국 한결과는 혈육으로 이어진 이종사촌이란 것이었다. 모두들 닮았다고 생각했었다. 한결과 태하는.... 생긴 것도 닮았지만 분위기면 분위기대로 성격이면 성격대로 그들은 많이 닮았다. 그런데 그 둘이 결국은 사촌지간일 줄이야!! "놀랄 만도 하지, 그 동안 숨기느라 힘들었겠군. 민태하. 불행히도, 민태하의 아버지 민태후, 그는 자신의 사랑에 대한 환상은 채 몇 년도 가지 못해 깨지고 말았다. 그는 과거의 연인이었던 강희아의 언니인 강희우에게서 강희아의 모습을 찾으려 했다는 것을, 그것을 사랑이라 착각한 것을 깨닫고 실망감과 죄책감에 결국 강희우, 그녀와 자신의 자식인 민태하를 버렸다. 그게 불행의 씨앗이었다. 강희우, 그녀는 민태후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미쳐버리고 만 거야. 그리고 그녀는 민태후가 사랑한 것이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동생인 강희아란 사실을 안 순간, 질투심에 눈이 멀고 말았다. 그녀는 당장 어린 민태하를 데리고 한국으로 와 민태후의 별장을 찾았다. 그리고 그녀는 찾아냈다. 민태후가 강희아에게 차마 보내지 못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를 말이야." "...그만....!!!!" 한창 현의 이야기가 무대의 열을 올릴 때,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 듯 태하가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두려움과 공포감에 어둡고 우울한 표정을 한 채 현에게 소리쳤다. 한결은 그런 그의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왜 그래? 민태하?!!" "태하야, 진정해." 은별이 옆에서 어깨를 흔들며 말리는 소리도 못 들었는지 태하는 그저 눈을 꾹 감고 귀를 막은 채 한결을 향해 소리쳤다. "그만해, 제발.. 더 이상 듣지 마. 현한결!!! 부탁이야!!!" "도대체 왜..." "왜 그럴까? 두려운 거지? 민태하. 현한결의 아버지 현한준이 자신의 피 같은 자식인 현한결과 너무도 사랑했던 연인인 강희아를 버린 것이 바로, 네 어머니 강희우의 탓이니까 말이야!" 현의 매섭고 차가운 입이 모든 것을 폭로해 버렸다. 더 이상 감출 수 없다. 현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한결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굳어버렸고 이내 태하의 눈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눈물이 주르르 떨어졌다. 현은 그들의 모습에 냉소를 지으며 자조적으로 말을 이었다. "강희우는 질투심에 눈이 먼 나머지 현한준을 찾아가 민태후가 강희아에게 쓴 편지를 건네주며 거짓으로 꾸민 이야기를 폭로해버렸다. 강희우는 현한준,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민태후가 현재, 현한준의 연인인 강희아와는 예전부터 사랑한 사이였고 아직도 잊지 못한단 거짓된 이야기를 말이야. 강희우의 말을 진실로 받아들인 현한준은 그녀의 말에 귀가 멀어 진짜 자신의 연인인 강희아의 말은 듣지도, 믿지도 않고 친구에 대한 말 못할 죄책감과 함께 강희아에게서 배신감을 느꼈고, 결국 강희아와 현한결을 버렸다. 민태후가 강희우와 민태하를 버린 것처럼." "..하? 거짓말...." 한결의 가슴속에서 쓰린 고통이 잦아졌다. 현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끝날 때마다 태하의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나와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그리고 현은 지치지도 않는지 한결을 향해 다시 입을 열어 가시 돋힌 말을 뱉었다. "현한결, 왜 민태하가 너의 그림자를 자청했는지 아나? 그건 말이야, 죄책감도 죄책감이겠지만 민태하는 네가 되고 싶었던 거야. 자신의 아버지가 진정으로 사랑한 강희아의 자식인 네가 말이야. 민태하 자신은, 자신의 아버지 민태후가 대리만족으로 낳은 자식일 뿐이니까." 109. "....뭐...?" "아직도 모르겠냐? 말귀를 못 알아먹는 군. 쯧, 모의고사 수석이라더니 그것도 아닌가 보네? 민태하는 그 동안 널 친구로 생각한 게 아니야. 민태하 역시 그의 아버지 민태후가 현한준을 바라보며 느꼈던 것처럼 너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는 것뿐이야. 짝퉁 포커스." 현은 시니컬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의 종지부를 찍었다. 그의 말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운동장에 있는 학생들은 엄숙한 침묵 속에서 누구 하나 말을 꺼내지 못했다. 짧았지만 너무도 길게 느껴지는 침묵과 고요를 깬 것은 한결이었다. "아니라고 말해! 저 녀석이 하는 말 따윈 거짓이라고 말하란 말야!! 태하야, 민태하... 민태하............ 제발 부탁이니까 아니라고 말해!!!" 고개를 떨군 채 묵묵부답하며 눈물을 흘리는 태하의 어깨를 있는 힘을 다해 꽉 붙잡고 한결이 울부짖듯 포효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한결아.." 그러나 그의 포효에 돌아오는 것은 절망에 가득 찬 목소리로 현의 말에 긍정하는 듯한 태하의 대답이었다. 태하의 대답에 한결의 머리 속에는 어머니의 영상이 한 차례 한 차례 지나갔다.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어렵고 험한 세상을 견디지 못해 진실도 알지 못한 채 결국 죽음을 선택한 어머니의 영상이...... 그는 솟구쳐 오르는 눈물을 참으려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안간힘을 쓰며 울음이 섞인 것인지 중얼거리는 건지 알 수 없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민태하, 씨발!! 너까지... 너까지 날 이렇게 기만하는 거냐?!!" "....미안하단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민태하!!! 너... 너 정말 나와 친구가 된 이유가, 내 닫혀 진 마음을 열고 들어온 이유가 결국은 선우 현이 말한 대로냐?!! 씨발!!!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때 마음을 열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 한결아!! 안 돼!!!" 머리끝까지 화가 나 주먹을 다지는 한결이 태하와 싸움이라도 하려는 듯, 의기소침해져있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자 은별이 소리치며 그 둘 앞을 가로막았다. "채은별, 비켜." "안 돼, 한결아!! 안 돼... 여기서 그만 하자.. 응? 제발.. 태하한테도 사정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한결아.... 흑.." 자신을 옹호하는 말을 하며 울음을 참는 듯 어깨를 들썩이는 은별의 모습에 고개를 떨군 태하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참기라도 하는 듯... "변명이라도 해!! 민태하!!! 나 돌아버리기 전에!!!" "한결아!! 그만......" "됐어. 채은별, 난 괜찮아..." 태하는 결심한 듯 떨구고 있던 고개를 들어 화가 나 상기되어 있는 한결의 붉게 변한 얼굴을 찬찬히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나 따윈 잊어라.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라 생각해. 현한결, 다시는 네 눈앞에... 나타나지 않을게....." "뭐??!!! 야!! 민태하!!!!!!!!!!!!!!!" 말을 마치곤 눈 깜짝할 사이에 태하는 뒤로 한 번 안 쳐다보곤 무대 밑으로 뛰어 내려가 한결과 다른 이들의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한결이 주먹을 꽉 지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의 작아 보이는 어깨에 은별의 마음이 아파 왔다. 그리고 또 그 광경을 지켜보는 또 한 사람, 유빈의 마음도... 그 때였다. "하하, 신파극이 따로 없네- 공연비도 따로 줘야 하나?"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자조적인 웃음을 지며 농담하는 것처럼 현이 말했다. 그의 말에 한결은 피가 몰릴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며 천천히 현의 앞으로 다가가며 또박또박 한 글자씩 천천히 말했다. "선우 현, 이것도 네 계획의 일부냐?!" "머리가 아예 안 돌아가는 건 아닌가 보네? 짝퉁 포커스." "씨발!! 너한테는 사람이 장난감으로 보이냐?!!!" "그렇다면? 킥, 이미 너희들은 내 계획대로 움직여주는 말에 불과하거든." ",.하?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씹!!!!!" "한결아!!!!!!! 꺄악!!!!!!!!!" 참을 수 없었는지 은별의 외침에도 이성의 끈이 끊어진 한결의 주먹이 능글능글 웃고 있는 현의 얼굴을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110. (퍽ㅡ!!!!!!!!!!) "윽... 씹..." "픽, 자신의 역량을 잘 깨달았나? 짝퉁 포커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한결이 복부를 움켜지며 쓰러질 듯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한결의 주먹보다 현의 주먹이 더 빨랐던 것이다. "하..한결아?!! 괜찮아??!!!" "현한결...!!!" 한결이 맥없이 맞는 모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기겁하며 그에게로 달려오는 은별의 모습을 눈도 한 번 떼지 않고 바라보던 현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유빈까지 안색이 변하며 한결에게 달려 나가려 하자 싱긋 웃는 얼굴과는 상반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신유빈, 잊지는 않았겠지? 여태껏 해 온 수고를 잃고 싶지 않다면 멈춰라." "........죄송합니다.......포커스...." 현의 말에 유빈은 발목이 잡힌 듯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그런 유빈을 모습에 숨을 가쁘게 쉬며 자신을 노려보는 한결의 매서운 눈빛에 현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만연하게 서린 눈가에 웃음기가 사라지면서 싸늘하게 변한 눈초리로 그의 눈빛을 맞받아 치며 입을 열었다. "은하형이 말했던 신뢰와 의리란 게 이렇게 싶게 무너지는 건가? 시시하군. 정말 시시해. 역시 은하형이 착각했던 거야. 자, 이제 신유빈, 민태하, 너의 오른손과 왼손이 다 떨어져 나갔군. 이로써 전쟁이 시작도 되기 전에 넌 네 세력의 1/2을 잃었다. 이제 진사랑과 너 둘이서 나에게 맞서야 하는 건가? 너한텐 역부족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어때? 재미있는 전쟁이 될 것 같지 않나? 현한결." "닥쳐. 선우 현." "지금 상태로 보아하니 넌 이미 삼진아웃 상태인 것 같은데?" "넌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나한테 이러는 거냐?!! 현에게 맞은 복부로부터 전해지는 고통에 한결이 인상을 쓰며 자신을 비웃는 듯이 오묘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한 현에게 물었다. 현은 그에게서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은별을 가리키며 크게 소리쳤다. "My Sweet Honey♡를 돌려받기 위해서지~" "누.. 누가 네 꿀물이야!!!!" 현의 말에 은별은 당황한 듯 흥분해 상기된 얼굴로 버럭 그의 말을 맞받아 쳤다. 현의 말에 더욱 당황한 것은 한결이었다. 더 이상 그는 아무 것도 빼앗길 수 없었다. 불안한 듯 한결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은별을 자신이 등뒤로 감췄다. "은별이는 절대 못 줘." "짝퉁 포커스, 나도 너한테 죽어도 받고 싶은 마음은 없어. 허니의 기억이 하나하나 맞춰질 때마다 제 발로 날 찾아올 테니까 말이야. 난 기다릴 뿐이야, 지금껏 기다리는 건 잘해왔으니까..." "난 꿀물 아니라니까!!! 누가 너한테 간다고 그랬어!!!"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허니~♡" "씨이....." 은별의 어떤 외침에도 끄덕 없는 현, 당신이 지존입니다.乃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여유 있는 현의 모습에 위압감과 두려움마저 드는 한결이 긴장으로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며 절망의 나락으로 빠지려는 마음을 추스르느라 주먹을 꼭 쥐는 모습에 현이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들릴 듯 말 듯한 말로 중얼거렸다. "다행이군, 마음을 추스르는 것을 보니 싸울 마음이 드는가 보군. 하긴 지금부터 무너지면 너무 재미가 없으니까. 아직 결전의 날은 멀었어. 그 때까지는 멀쩡하게 있어야지. 난 널 더욱더 절망의 나락 끝으로 몰아 마지막 순간에 떨어뜨릴 거야. 다시는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너희 집안이 나에게 했던 것처럼 말야." "선우 현, 넌 불의이자 지독한 악역일 뿐이야!!" 그의 말을 들었는지 은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소리쳤다. 현은 그녀의 외침에 약간 멈칫하다 여전히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지금으로썬 불의의 세력이야. 하지만 결과적으론 저 짝퉁을 물리치고 내가 정의가 될 거야. 그리고 너무해~ 허니♡ 그냥 악역도 아니고 지독한 악역이라니-" "어쨌든 악역 맞잖아!!!" "지금 내게 주어진 역할이 악역이라면 난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할 거야. 하지만 보란 듯이 불의를 정의로 바꿔 저 짝퉁을 악역으로 만들어주지. 그런 다음 공주님을 악역에게서 빼앗아 올 거야. 그리고 Game Over." 현은 말이 안 통할 정도로 막무가내였다. 한결은 보란 듯이 은별의 손을 꼭 잡으며 현에게 소리쳤다. "착각하지 마라! 선우 현. 넌 영원히 악역에 불의의 세력이 될 거다. 난 너에게 절대 무너지지 않아. 은별이가 있는 한!!!" 111. 자신 있게 소리치며 주먹다짐을 하는 한결의 모습에 현은 그저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웃으며 그의 외침에 답했다. "지금 그렇게 열낼 것 없어. 아직 결전의 날은 멀었다고. 최후의 만찬이 오기 전까지 마음껏 축제의 나날을 즐기길-" 현군. 한결이 열 받게 한 건 현아 너야.. 떠도는 말로 말이라도 못 하면 밉지 라도 않지. 저 청산유수 같은 말솜씨로 사람 골 아프게 하는 것은 물론이요, 전혀 속을 비치지 않는 말로 궁금증을 더 쌓이게 만드는 건 기본이다. 그리고 그의 포인트이자 카리스마인 언제나 사람을 비웃는 듯한 시니컬한 웃음!! 한결은 은하와 똑 닮은 현의 비웃음에 속이 뒤집어 질 것 같았다. "한결아~ 태하가.. 태하가 울면서 밖으로 뛰쳐나가던데 무슨 일이야?!!" "아빠!!!! 엄마!!!" 가면을 벗은 아리의 갑작스런 등장에 놀란 사랑은 떼쓰는 은결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졌다. 그는 한결에게 은결을 데려다주는 것도 까맣게 잊은 채, 은결, 아리와 함께 뒤뜰에서 하는 코스프레를 보고 오다 태하가 학교 밖으로 눈물을 흘리며 뛰쳐나가는 것을 보고 한결을 찾아 은결을 안고 무대 위로 헐레벌떡 달려 올라왔다. "...어라?!! 은하형아!!!♡ 은하형이다!!!!" "진사랑, 저 녀석이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야. 은하형 아니야." "뭐?!!!!?!!!" "어?! 아빠다!!" 사랑 역시 태하가 현을 보고 반응했던 것처럼 은하와 똑 닮은 현의 모습에 그를 향해 은하의 이름을 불렀지만, 사랑의 품에 안겨있던 은결은 현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 앙증맞고 조그만 입에서 '아빠'란 단어가 튀어나왔다. "은결아, 아빠라니?" 은결의 '아빠'란 소리에 은별이 황당하게 현과 은결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한결 역시 현을 보고 '아빠'라 부르며 반기는 은결의 모습에 많이 당황한 듯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지며 은결을 바라보았다. "아빠!!!! 많이 기다렸잖아요!!!" "은결아!! 안 돼!!!" 은결은 사랑의 품에서 폴짝 뛰어나와 현에게 달려갔다. 지금 현에게 달려가면 무슨 해코지를 당할지 모른다. 은별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기겁을 하며 은결을 향해 뛰어나갔지만 이미 은결은 엉거주춤 앉아 기다리고 있던 현의 품에 쏙 안겨버렸다. 예상과는 달리 그는 자신의 품에 안긴 은결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부드럽게 머리를 어루만져주며 싱긋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한새야, 오랜만이네. 아빠가 많이 늦었지?" "히잉! 아빠, 미워! 한새라고 부르지 말아요!!" "그럼 우리 한새를 한새라고 부르지 뭐라고 불러?" "이제 한새가 아니라 은결이란 말이에요! 아빠도 한새라고 안 부른다고, 다른 사람한테는 한새란 이름 가르쳐주지 말라고 해놓고! 은결인 마귀할멈이 지어준 이름 싫어요!" "아빠는 한새란 이름이 더 좋은데? 어쩌지?" "흥! 자꾸 한새라고 부르면 은결이 삐질 거야!! 흥=3" 은결에게 한새란 이름을 부르며 장난치는 현과 은결의 모습은 한결의 눈에는 마치 진짜 부자사이 같아 보였다. 이 둘은 도대체 언제부터 안 사이였을까? 한결은 또 다시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현이 은별을 대할 때보다 더 부드럽게 은결을 대했기 때문에... "은결아, 이리 와. 진짜 아빠한테 와야지!" 한결이 어르듯 부드럽게 은결을 향해 말했다. 그의 애정 어린 목소리가 들리자 현의 품에 안겨있던 은결은 그제야 현에게 돌아가 있던 고개를 돌려 한결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한결을 바라보던 은결이 현과 한결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 고민을 하는 듯 심각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이내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바뀌며 현을 향해 말했다. "아빠, 은결인 저쪽 아빠한테 가야해. 그래도 은결이 안 미워할 거지? 응, 아빠?" "글쎄- 한새는 아빠가 싫어졌나 보네?" "아냐 아냐!!! 절대로 그런 것 아니야!!! 한새라고 부르지 말래도!! 자꾸 부르면 진짜 아빠 미워할 거야!!!" "은결아, 이리 안 와?! 엄마한테 혼날래?! 그 사람은 아빠가 아니야! 나쁜 사람이라고!" 다정한 현과 은결의 모습에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은별이 화가 난 표정을 지으며 은결에게 소리쳤다. 은결인 그런 그녀의 외침에 어둡게 표정이 변하더니 곧 이어 뚝뚝 흘리는 눈물을 두 손으로 번갈아 닦으며 화가 난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며 흐느껴 말했다. "엄마... 큰 아빠는 나쁜 사람 아니에요. 흑… 큰 아빠가 은결이를 마귀할멈한테서 작은 아빠한테 데려다 줬다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은결이 눈물까지 흘리면서 하는 말을 모두 종합해 보자면 현이 차수진에게서 은결을 한결의 집에다 데려다 논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은별은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한결의 품에 안겨 상황을 설명하란 식으로 현을 가까스로 쳐다보았다. 현은 은별의 눈빛에 한숨을 쉬며 은결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새야, 아빠랑 약속한 것 잊었어? 그 얘기는 하지 않기로 했잖아." "하지만!!! 아빠는 나쁜 사람이 아니잖아요!!!!" 현의 말에 은결이 크게 소리쳤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말을 꺼냈다. "한 남자 밖에 모르는 어리석고 불쌍한 한 여자의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을 들어준 것뿐이야.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현한얼의 자식이라고는 하지만 어린 한새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으니까."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로 말하는 현의 얼굴에 슬프고 어두운 빛이 어렸다. 은결은 그런 현의 슬픈 얼굴을 바라보며 묵묵부답으로 한결의 곁에서 우물쭈물하며 눈물만 흘려댔다. 현은 자신을 보며 울고 있는 은결을 향해 힘없이 미소를 지어주며 말했다. "이야기가 길어졌군. 쓸데없는 얘기까지 하고 말이야. 난 그만 이 자리에서 물러나지, 그럼 결전의 그 날까지 모두 건강하길." "아빠, 은결이한테 또 올 거죠?" 무대에서 내려가는 현과 그 뒤를 뒤따라가는 유빈의 뒷모습을 보며 아직도 눈물을 흘리는 은결이 현에게 간절하게 소리쳤다. 현은 그런 은결을 힐끔 돌아보며 싱긋 미소를 지어주고는 뒷걸음치며 물러서는 학생들 사이를 벗어나 천천히 운동장을 빠져나갔다. 112. 현이 나타나 한 바탕 뒤집고 간 무대에는 황량한 바람만이 스쳐지나갔다. 하늘 아래 떠 있던 알록달록 오색 풍선들도 그 자취를 감췄다. 축제는 끝이 났다. 아쉬운 추억과 씁쓸한 기억만을 남긴 채......... "엄마, 아빠는 왜 안 와요?" 은결이 안절부절 초조해하는 은별의 곁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현이 나타난 뒤로 일주일이 지났다. 그의 계획대로 유빈과 태하가 한결의 곁을 떠난 이후로 한결은 심각한 정신 불안 증세를 보였다. 그만큼 한결에게 유빈과 태하의 역할이 컸다는 소리지만 그들이 없어진 지금 그는 이빨 빠진 호랑이나 마찬가지라는 소리도 되었다. "글쎄, 벌써 12시가 다 되어 가는데... 연락도 없이 어디 간 거야.. 걱정되게..." 연락 하나 없이 한결이 11시를 넘겨 들어온 것은 그와 은별의 백일 전 며칠간을 빼놓고 단 한번도 없었다. 그녀의 마음에 초조함과 불안감이 자꾸 엄습해 왔다. "엄마, 은결이가 큰 아빠한테 아빠라고 불러서 아빠가 은결이 미워하는 거예요?" "아냐, 절대로 아냐. 아빠가 은결이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진짜요?" "그럼 은결이는 엄마 못 믿어?" "아뇨- 은결이는 엄마 믿어요!" "그래, 은결아, 아빠는 은결이를 너무 사랑하는 거니까 괜찮아." 어린것이 자꾸 마음에 걸렸나 보다.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는 은결의 모습에 그녀는 경직된 얼굴에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은결을 달랬다. 확실히 은결이 현에게 아빠라 부르며 다정하게 장난치던 모습을 본 한결은 왠지 은결에게 거리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왜 이렇게 안 오는 걸까..." 울먹이는 은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은별이 조용히 말을 뱉었다. 태하와 유빈이 사라진 이후, 한시도 은별과 은결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던 한결이었다. 또, 충격 때문이었던지 말수가 없던 그는 더더욱 말이 없어졌다. "휴우..." 은별이 12시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 시계를 보며 얕게 한숨을 쉬었다. "은결아, 12시다. 이제 자야지? 일찍 자야 아빠도 은결이 많이 예뻐하지?" "네, 엄마." 졸음이 눈 한 가득 찬 은결을 보며 은별의 그의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주었다. 은결은 졸린 듯 하품을 하며 그녀의 포근한 품에 안겼다. 모정이 많이 그리운 모양이었다. 은별은 자신의 품에서 부비적 거리는 은결의 이마에 살짝 뽀뽀를 하고는 은결을 번쩍 안아 올려 그의 방 침대에 데려다 눕혔다. "잘 자렴, 은결아." "후암~ 엄마도 안녕히 주무세요.." 은결이 졸린 두 눈을 편안히 감는 것까지 보고 그녀는 지친 표정으로 방을 조용히 빠져 나왔다. (댕- 댕-) (엄마! 전화 받으세요~♬) 12시의 종이 화려하게 한결의 집 거실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동시에 전화 옆에 있던 은별의 핸드폰에서 은결의 목소리로 녹음 된 요란한 벨소리를 내며 전화가 왔음을 알렸다. 그토록 기다리던 한결이었다. 은별은 황급하게 폴더를 열고는 그대로 소리쳤다. "한결아?! 어디야??!!" "......................." "한결아?!!! 한결아??!" "추억이 담긴 곳, 너와 나의.." (뚝-) 술에 취한 듯 젖어있는 한결의 목소리가 나긋하게 전해져오더니 이내 전화는 잔인하게도 그 한마디만 남겨놓고 끊겼다. "핸드폰이 꺼져 있사오니...." 은별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연락을 시도했지만 매정하게도 한결의 핸드폰에선 기계음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추억이 담긴 곳이라니? 찬찬히 머리 속을 정리하던 그녀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장소는 하나였다. 어둠 속에서 하염없이 별들이 쏟아지는 장소, 은별을 위해 산 천문대였다. 은별은 서둘러 옷가지를 챙겨 입고는 한결이 기다리고 있을 그 곳으로 향했다. 113. * * * "오랜만이다. 여기도..." 있는 힘껏 뛰어서 도착한 은별은 숨을 천천히 고르며 천문대 주위를 한 번 빙 둘러보았다. 백색의 천문대는 여전히 순결하고 깨끗해 보였고, 역시 계절은 속일 수 없는지 천문대를 둘러싸고 있는 숲과 나무들은 서둘러 알록달록 색옷을 꺼내 입기 시작했다. (끼이익-) "한결아?!! 한결아, 여기 있..." 힘겹게 문을 열고 천문대 안으로 들어간 은별은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한결을 찾아 소리를 치다 이내 그녀의 목소리는 힘없이 끊겼다. 백일 때처럼 정 중앙에서 휘영찬란한 은빛 달빛을 받으며 조각 같은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지며 눈물을 흘리는 한결을 보았기에.. "언젠가 이 곳에서 모두 모여 너와 결혼해 축복 받고 싶었어." "한결아.." 은별이 온 걸 눈치 챘는지 한결이 흐르는 눈물을 훔쳐내며 술에 젖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이젠 태하도 유빈이도 없다. 지금 솔직한 심정으론 은하형이 원망스럽다. 왜 그 녀석들과 날 만나게 한 걸까? 왜 나에게 포커스 자리를 준걸까? 형의 마음을 모르겠다, 난. 그리고 난 왜 하필 널 사랑하는 걸까? 이것도 선우 현의 계략 중 하나인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너를 향한 내 심장은 절대 멈출 수 없는 것도 웃기다." "....날 사랑하는 걸 후회하니?" 한결의 말에 은별이 묻는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의 말에 한결의 고개를 흔들었다. 그의 대답은 부정이다. 그의 행동에 은별은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곤 오늘따라 유난히 작아 보이는 한결에게 한 발짝 다가가기 위해 발을 내밀었다. "난 널 죽도록 사랑해. 아니, 네가 없음 내 심장은 뛰지 않아. 하지만 옛 기억이 산산이 조각난 넌? 넌 기억을 찾으면 날 떠날지도 모르잖아. 그럴지도 모르잖아..." 순간이었다. 울음을 참으려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 한결의 말이 은별의 귀를 관통한 것은. "하...한결아...? 나 믿지 못 하는 거야?" ".................." 은별의 애절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물음에 묵묵부답 하는 한결이다. 그의 침묵에 그녀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 믿음을 얻지 못하는 게 이런 심정이구나. 은별은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이렇게 사랑하는데 한결에게 자신의 마음이 전해지지 않는 것 같아서... "한결아, 네가 날 사랑하는 만큼 나도 널 사랑해. 난 절대로 널 떠나지 않아. 내 심장 역시 널 위해 이렇게 뛰고 있잖아." 예전에 한결이 했던 것처럼 은별은 한결의 위해 뛰고 있는 자신의 심장이 있는 곳에 한결의 손을 살포시 가져다대었다. "무슨 짓.......!!!" "....(화끈)///////" 물컹한 느낌에 놀란 듯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은별의 손에서 손을 빼내려는 한결에게 순간 쉴 새 없이 두근거리는 은별의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그녀의 심장박동에 얼굴이 약간 붉게 상기된 한결은 남은 한 손으로 사과같이 붉게 변한 은별의 볼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천천히 자신의 가슴에서 손을 떼는 한결의 모습에 절정으로 상기된 자신의 얼굴을 감추려는 듯 은별은 고개를 숙였다. "별아, 너 정말 예쁘다..." "응?" 이게 웬 소리인가? 예쁘다니? 한결이 자신에게 예쁘다고 하다니? 그의 말에 놀란 듯 고개를 쳐드는 은별은 보며 한결은 시니컬한 웃음을 지으며 장난기 어린 말을 한다. "저쪽에 떠 있는 별이 참 예쁘다." "뭐.. 뭐야!!!" 이럴 수가, 한결의 장난에 속았다. 남은 기껏 진지하게 행동하는데 장난이나 하다니, 은별은 입을 삐죽 내밀며 삐진 척 한결을 바라보던 여전히 붉은 상태로 있는 얼굴을 살짝 옆으로 돌렸다. 그런 은별을 보며 재미있다는 듯 한결이 피식 웃으며 다시 나긋한 목소리로 말한다. "너 진짜 예뻐. 진짜 세상을 환하게 해준다." "...정말?" "정말이야. 진짜 예뻐." 은별이 살짝 고개를 한결 쪽으로 돌리자 순진한 그녀의 모습에 그는 또 다시 사악하게 웃으며 아까 전 가리켰던 별과 반대 방향의 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에 떠 있는 별이 정말 예쁘네." "너!!! 현한결!! 진짜!!!!!!!!!!!!!! 이 성격파탄....!!!" "그런데 아무리 예쁘고 휘영찬란하게 빛나는 별들이 많아도 내 눈엔 은별이가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가장 빛나 보인다." 은별의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은은한 달빛 아래서 은별의 어깨를 한 손으로 꼭 안은 채, 쑥스러운지 얼굴을 돌려 별을 향해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갑작스런 한결의 말에 덩달아 얼굴이 더욱 붉어지는 은별이다. "넌 절대 떠나지 마라. 너만 있으면 절대 난 무너지지 않아." "응, 한결.... 읍..." 여전히 대답을 가로채며 은별의 입을 덮치는 한결이다. 환하게 그들을 비춰주는 달들과 별들은 한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정겹게 울던 풀벌레의 울음소리도 어느 한 순간 끊어졌다. 어둠이 짙게 깔린 하늘에도 바람 한 점 없다. ...마치 폭풍전야처럼... 114. [명문고 2학년 7반] 태하와 유빈이 학교에 나타나지 않은 것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토요일이라 학교가 일찍 파했지만 한결은 현에 대한 정보를 찾느라 사랑과 일진 남학생들 몇 명을 데리고 교실에 남아있었다. 그는 일주일동안 바쁜 나날을 보냈지만 돌아오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현의 계획은 너무도 철저했다. 꼬투리 하나 잡을 게 없을 정도로..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현의 계획이고 어디가 끝이 될까?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생겨난 걸까? 은하형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라져 버린 걸까?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에 한시도 머리를 비울 수 없는 한결은 주절주절 옆에서 사랑이 하는 말도 모두 다 흘려들었다.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 정말 대단한 놈이네. 선우 현에 대한 쓸만한 정보는 아무 것도 없어. 있다해도 신용할 수가... 한결아?! 한결아??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아- 미안." 열심히 말하던 사랑은 그가 딴 생각을 하며 흘려듣고 있는 것을 보고 한결의 어깨를 두어 번 세게 흔들며 그의 귀에 대고 크게 소리치자 한결의 입에선 자동적으로 미안하다는 말부터 튀어나왔다. 사랑은 처음으로 자신에게 사과하는 그의 말에 깜짝 놀라 버벅대며 말을 꺼냈다. "헉, 하..한결아? 미..미안하다니..;; 한결아, 너 정말 괜찮은 거야??" "뭐가? 사과한 게 뭐 잘못 됐냐?" "아니, 그게... 한결아?! 너 정말 뭐 잘못 먹은 거 아냐?? 진짜 괜찮아?!" "괜찮다니까, 아까 전에 했던 말이나 다시 한 번 해 봐." "음-;; 그게............" 사랑은 한결의 입에서 나오는 강요가 아닌 부탁에 당황해 벌쭘해하면서도 재빨리 다시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는 교실 안에 선선한 가을 바람이 창문을 타고 들어와 부드럽게 그 둘을 감싸안았다. . . . 그렇게 시간은 하염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 ...................... * * * "메롱~ 현은결! 오늘은 우리 엄마가 더 빨리 데리러 왔다!" "우씨!!! 진사랑, 오늘 하루만 그런 거잖아!!!" "메롱메롱~ 약 오르지~?" "씨이~ 너!!! 내일 두고 봐!!!" 꼬마 사랑은 유치원 문 앞에 서서 한결을 기다리는 은결을 보며 자신의 엄마 손을 꼭 잡고 혀를 내밀며 은결의 약을 올렸다. "사랑아, 가자." "네~ 엄마~" 은결은 그렇게 자신의 약을 올리고는 엄마의 손을 잡고 유치원 밖을 나가는 꼬마 사랑의 모습에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씩씩거렸다. "은결이 아버님이 많이 늦으시네?" 유치원 선생님이 씩씩거리며 서 있는 은결에게 말을 건 순간이었다. (쾅-!!!) 유치원 문에 세게 열리며 검정색 정장을 단정하게 입고 선글라스를 쓴 젊은 남자 4명에게 둘러싸인 채, 회색 정장을 입은 깔끔한 외모의 근엄한 표정을 한 중년의 남자가 천천히 문안으로 들어와 은결과 선생님 앞으로 다가왔다. "저 누구시죠?" 은결의 유치원 선생님은 옆에 서 있는 은결의 손을 꼭 잡으며 높은 사람처럼 보이는 근엄한 표정을 한 중년의 남자의 모습에 긴장이 되는지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를 향해 물었다. 온 시선이 은결에게 가 있는 그가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당신의 옆에 있는 그 아이의 할아비 되는 사람이오만." "예?!!!" "할아부지??" 중년의 남자의 말에 유치원 선생님은 놀란 듯 은결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정작 은결은 중년의 남자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중년의 남자는 여전히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근엄한 얼굴로 검정색 정장을 입은 남자들을 향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앗! 놔줘요~ 은결인 아빠 기다려야 한단 말예요~" 중년의 남자의 지시에 따라 젊은 남자들은 유치원 선생님 옆에 있는 은결을 억지로 빼앗아 안았다. 은결은 심각한 상황인 것을 느꼈는지 발버둥치며 소리를 질러댔다. "저.. 저기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유치원 선생님은 당황한 듯 크게 소리쳤다. 중년의 남자는 그런 선생님의 손에 명함 한 장을 건넸다. "이 애 아비가 오면 이걸 건네주시길." "...H... H기업 회장 혀..현한준?!!" H기업,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기업들 중 하나였다. 그런 기업의 회장이 이 조그만 유치원에 친히 납셔서 은결의 할아버지라 칭하며 그를 데려가려 한다. 유치원 선생님은 자지러지듯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아..저.. 저기.." "그럼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당황한 선생님이 더듬더듬 뭐라 하기도 전에 한준은 은결을 데리고 이 한마디만 남긴 채 유치원을 떠났다. [세명고 교문] 학교가 파했다. 아직 여름의 기운을 벗어나지 못해 덥기는 했지만 명문고 축제 이후, 오늘도 역시 평안한 하루였다. "아~ 오늘도 정말 힘든 하루였어! 겨울 방학은 언제 오나~" "벌써부터 방학타령이야? 여름방학 끝난 지 아직 한 달도 안 됐다! 아무튼 병아리라니까!! 그런 타령할 시간에 중간고사 준비나 해!" "쳇! 공부 잘 한다고 뻐기는 거냐!!! 넌 별딱지잖아!" 청소를 마치고 은별과 아리는 친근한(?) 담소를 서로 다정하게 나누며 교문을 빠져 나오려 하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바람결을 타고 은별의 귀로 흘러 들어왔다. "안녕- 은별이 누나. 오랜만이네?" "...천재아...?!" 재아였다. 여전히 시니컬하게 웃으며 당황하는 은별에게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을 거는 그의 모습은 변한 게 없었다. 다만 많이 피곤한지 초췌한 낯빛에 퀭하게 변한 눈을 하고 있다는 걸 제외하면 말이다. 은별은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직감적으로 위험을 몸소 느꼈다. 불안감에 부들부들 떨며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을 느꼈는지 재아는 초췌한 낯빛을 감추며 전보다 더욱 살벌하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기억하네. 다행이다." "난 다행히도 무쇠머리가 아니란다. 너 안 본지 2달도 채 안 지났어." "아, 그것 밖에 안 되었나? 씨발, 난 또 1년은 지난 줄 알았네." ".......;;;" 현의 패거리는 다 긴장감이 없는 인간들만 모아놓은 것 같다. 어쩜 저런 말도 저렇게 무사태평하게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건지.. 황당한 나머지 식은땀까지 흘리는 은별이 그를 어이없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시니컬한 웃음으로 맞받아 치며 재아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한 손으로 턱을 매만지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누나, 산산이 조각난 기억의 퍼즐을 맞추고 싶지? 그리고 은하형이 누나를 떠나게 된 이유도....." "무.. 무슨 말이야?!" "모든 무대준비는 완수했어. 이제 주인공이 등장할 차례거든." "........................" "누나의 기억의 파편을 되찾고 싶다면 날 따라와. 현이형이 기다리고 있어." "은별아! 가면 안...!!" 재아는 싱긋 웃으며 굳어있는 은별을 향해 말했다. 아리는 그의 말에 그녀를 향해 절대 안 된다는 식으로 버럭 소리 질렀다. "갈게, 안내해." 아리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재아의 말에 대답했다. 아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은별을 바라보았지만 정색한 은별의 얼굴엔 확고한 의지가 있었다. "은별아, 너 무슨 생각이야?! 함정일 거라고!" "아리야, 넌 먼저 가! 이건 내 일이야. 함정이라 해도 난 괜찮을 거야. 선우 현은 절대 나한테 해를 가할 수 없을 테니까. 이대로 한결이만 고생시킬 수 없어. 나라도... 나라도 기억을 찾을 수 있다면..." "은별아..." 속삭이는 아리의 말에 은별은 살짝 두 눈을 감으며 아련하게 속삭였다. 뜸을 들이는 은별의 손목을 잡고 재아는 시간이 촉박한지, 그녀의 아련한 속삭임에 멍해져 있는 아리를 향해 소리쳤다. "그럼 옆에 있는 누나, 은별이 누나는 제가 좀 빌려갑니다. 이만." "으.. 은별아!! 안 돼!!!" "걱정 마, 괜찮아. 아리야, 한결이한테는 좀 늦을 거라고 전해줄래?" 재아의 손에 이끌려 따라가는 은별은 자신을 걱정하며 소리치는 아리를 고개를 돌려 쳐다보며 빙긋이 웃으며 애써 발랄하게 말했다. 그녀가 짓는 웃음은 어딘가 모르게 슬퍼 보였다. 아리는 은별과 재아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듯 그 자리에서 꼿꼿이 굳어 있었다. 시간이 저녁을 향하며 가을바람이 쌀쌀하게 변할 때까지.... 115. 재아가 서둘러 은별을 끌고 데리고 간 곳은 학교였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웅장하고 큰 건물이면서도 학교 특유의 허름한 본 건물도 가을이 다가오는지 노란 옷을 갈아입는 아름드리 커다란 은행나무도, 운동장 너머 멀리 보이는 낡은 강당도 은별의 눈에는 모두 낯익어 보였다. 황량한 가을바람이 아무도 없는 쓸쓸한 운동장의 모래를 쓸고 지나갔다. "천재아, 여..기가 어디야?" "신영고등학교." 은별의 질문에 재아는 감정 없이 딱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영고?! 왠지 모를 통증이 그녀의 가슴을 찌릿하게 타고 갔다.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아니, 낯선 장소가 될 수가 없었다. 1년 전에 이 학교 학생들에게 납치를 당해 끌려온 곳이 이 학교 강당이기에.. "가자, 누나. 현이형은 강당에 있어." "시...싫어, 여기는 왜 온 거지?! 여긴 내가 1년 전에 납치 당했던 곳이잖아?! 무슨 꿍꿍이야?! 기분 나빠!!! 설마 1년 전에 날 납치했던 게 선우 현인 거야?!" "It is contradictive(모순이야)." 섬뜩할 정도로 싸늘하지만 익숙한 목소리가 은별의 귀에 꽂혔다. 당황한 은별은 긴장한 듯 딱딱히 굳은 고개를 천천히 뒤를 돌렸다. 그녀의 뒤로 팔짱을 낀 채, 학교 정경을 아무 표정 없이 살펴보는 현이 있었다. 은하를 닮은 그의 갈색의 부드러운 머리결이 햇빛에 물결치듯 반짝였다. "기억이 없어도 이 곳이 낯이 익나보구나. 아니, 잊을 수 없겠지. 이 장소는 나에게나, 너에게나, 은하형에게나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 곳이니까. 어쩌면 다시 한 번 상처를 받게 될 지도 몰라. 조금만 아프게 할게. 조금만... 기억이 돌아오면 그 때 실컷 혼내줘도 좋으니까.. 조금만 아프게 할게. 은별아." "....무슨 소리야?" 자신의 뒤에서 알 수 없는 말을 주절주절 중얼거리는 그를 은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것도 잠시였다. "읍?!!!!" 은별이 당황할 틈도 주지 않고 순식간에 그녀의 뒤에 있던 현이 그녀의 붉은 입술과 오똑한 코를 손수건으로 막았다. 은별의 코로 알싸한 알코올 냄새가 침투하기 시작하더니 비명 한 번 질러보기도 전에 이내 정신을 잃으며 현의 품으로 쓰러졌다. 쓰러진 그녀를 안아 올리며 현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브로모포름(bromoform). 마취제니까 그다지 몸에 해는 없을 거야. 이런 방법까지 쓸 수밖에 없는 날 용서해. 미안해, 은별아." "현이형. 이제 곧 짝퉁 포커스녀석이 들이닥칠 거예요." "알고 있어. 모든 일은 계획대로 추진해. 그리고 신유빈을 마지막까지 감시해. 딴 짓 못하게-" "알겠습니다." 재아는 명심하겠다는 듯 현을 향해 고개를 짧게 한 번 숙여 보이곤 재빨리 허름한 신영고 본 건물을 향해 뛰어갔다. 재아가 사라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던 현 역시 은별을 소중하게 안은 채, 신영고 강당을 향해 발을 옮겼다. ................................. .............................................. [명문고 운동장] "포커스!!!!!!!!! 사랑아!!!!!!!!!!!!!!" "와!! 아리닷~!!♡ 아리야~!!!" 마침 학교 건물 밖으로 빠져 나오는 한결과 사랑을 부르는 아리의 목소리가 운동장 전역으로 울려 퍼졌다. 그녀의 목소리에 반가운 듯 사랑은 헤실 헤실 웃으며 그녀가 자신인 줄 알아 볼 수 있도록 높이 손을 들어 흔들었고, 한결은 은별을 찾는 듯 아리의 뒤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포커스!!! 큰일 났어요!!! 큰 일!!!! 켁켁..." "씨발, 내 귀 안 먹었으니까 숨이나 쉬고 소리쳐. 그런데 너 혼자 왔냐? 채은별은 어디다 떼어놓고?" "그게... 켁켁..." 숨이 넘어가지 않는 듯 켁켁 거리는 그녀가 안쓰러웠는지 사랑이 가쁜 숨을 내쉬는 아리의 연약하게 떨리는 등을 토닥토닥 쳐주었다. 약간 진정이 되는 지 새빨갛게 상기된 아리가 한결을 향해 다급하게 소리쳤다. "포커스!! 은별이가..!!! 은별이가!! 선우 현이 있는 곳으로 가 버렸어요!!!" "뭐라고? 다시 말해 봐." "은별이가 천재아라는 애가 데리러 와서 선우 현이 있는 곳으로 갔다고요!!! 포커스만 고생시킬 순 없다고 제 발로 갔단 말예요!!!" "씨발, 거기가 어디야?!" 헉? 거기가 어디라니... 아리, 순간적으로 한결의 말에 당황하다. 바보같이, 은별이 어디로 갔는지 장소를 몰랐다. 등으로 한 줄기 식은땀이 주르르 흐르는 아리는 침을 꿀떡 삼키더니 조용히, 아주 조용히 중얼거렸다. "모르겠는데요." "모.르.겠.다.고?" "그걸 안 물어봤....ㆀ" "아오! 씨발, 너 진짜 병아리냐!? 콱 영계탕 끓여먹어 버린다?!" "죄송해요!!! 포커스, 너무 정신이 없어서..." ".......&*()(%#@$%%#" 속에서 화가 솟구쳐 오르는 것을 간신히(;;) 참아내는 한결이다. 아리는 사랑의 뒤에 숨어서 주먹다짐을 하는 한결을 지켜보며 점점 간이 주먹만하게 쪼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부우우웅-) 화를 간신히 참고 있는 한결의 핸드폰 진동이 울려댔다. 한결은 숨어있는 아리를 향해 눈을 한 번 흘기고는 핸드폰 폴더를 열었다. "누구야?" -호오, 전화예절이 그게 뭔가? 아무튼 여전하군. 현한결.- "씨발, 너 누구야?!" -벌써 내 목소리까지 잃어버린 건가? 이런 이런..- "장난전화 치는 새끼면 조져버릴 수도 있으니까 웬만하면 끊어라?" -섭섭하군. 기억을 못 하다니, 나다. 최현권.- "최현권?! 씨발, 무슨 용건이냐?" -채은별은 현재 선우 현과 함께 신영고 강당에 있다. 찾고 싶다면 시간 낭비하지 말고 이리 와. 전쟁이 시작됐다. 뚝~- "뭐라고?!!! 여보세요?! 여보세요?!! 씨발!!!" 현권은 여전히 능글거리는 목소리로 은근히 한결을 놀리면서 자신의 할 말만 하고 한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잔인하게 통화를 끊어버렸다. 신영고라니?! 현의 속셈을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신영고라 하면 은별과 은하에게 모두 최악을 상처를 남겨준 곳이었다. 설마....?!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생각을 마친 한결은 잠시도 머무를 시간이 없었다. "진사랑! 지금부터 전국의 일진들을 모두 끌어 모아! 전쟁 때문에 지금 요 주위에 머무는 녀석들이 더 많지만 지방에 있는 녀석들도 다 끌어 모아. 시간은 5시간을 주겠다. 우선 오는 녀석들부터 신영고로 보내! 씨발!!" "무.. 무슨 일이야?! 한결아??" ".... 전쟁이 시작됐다." "뭐??!!" 입술을 꼭 깨물고 있던 한결의 눈에서 투쟁의식이 불타올랐다. 전쟁이 시작되었다. 은별이 현에게 있는 한 한결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아리와 사랑이 놀라서 뻣뻣이 굳어 있을 여유를 주지 않고 한결이 다시 입을 열었다. "병아리." "네넷?! 포커스." "은결이가 다니는 유치원 알지? 은결이 찾아서 집에 피신해 있어라. 은결이한테 무슨 일 있으면 네가 대신 죽는다." "네-ㆀ 포커스." "그럼 나 먼저 신영고로 가 있는다. 진사랑, 부탁한다." "응!!! 나만 믿어! 한결아!" 자신 있다는 듯 가슴을 툭툭 치며 소리치는 사랑의 모습에 한결이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짓고는 신영고를 향해, 모든 퍼즐이 맞춰질 그 곳을 향해 근근히 달리기 시작했다. 116. * * * "으...음...?" 시끄러운 웅성거림에 은별은 정신이 드는 지 게슴츠레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새하얀 불빛이 이리저리 퍼져 보였다.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무겁다. 자꾸 졸음이 왔다. 감기려는 무거운 눈꺼풀을 애써 뜨며 목이 타는지 허공을 향해 손을 뻗으려는 찰나, 무언가에 자신의 손과 발이 묶여있다는 것을 그녀는 깨달았다. "..윽... 물..." 힘겹게 말을 내뱉는 그녀의 입술에 물기에 젖은 차갑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닿았다. 거부하려는 그녀의 의지와는 달리 힘없이 은별의 입술이 벌려졌다. 그 순간을 기다렸는지 말랑말랑한 물질과 함께 차갑고 시원한 물이 은별의 입안을 한 가득 채웠다. 말랑말랑한 물질은 은별이 물을 잘 삼킬 수 있도록 도와주며 마치 무얼 갈구하는 듯 그녀의 입안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좋은 향기다. 들꽃 향기인 것도 같고- 알싸한 향이 그녀의 코를 자극했다. 이건 한결이의 향이 아니다?! 놀란 그녀가 온 힘을 다해 눈을 떴다. "으..읍!!!!" 그녀가 힘껏 뜬 눈앞엔 익숙한 낡은 강당의 풍경과 바로 앞에서 자신의 입에 입을 맞추고 있는 현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발은 의자에 꽁꽁 묶여 결박되어 있다는 것 또한 느낀 그녀의 안색이 대경실색하며 하얗게 질려가자 그가 그녀에게서 입술을 살며시 떼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정신이 들어?" 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은별은 화가 나 상기된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너..!!! 무.. 무슨 짓이야?!!!" "..아? 허니♡가 물을 찾기에 먹여준 것뿐이야. 왜? 허니♡ 뭐 잘못 됐어? 아? 양이 부족한 거야? 더 먹여줄까?" "뭐라고?!" "입으로 먹여주는 게 가장 편하잖아. 나도 좋고. 이런 걸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라고 하지." "누... 누가 좋다는 거야!!!!! 씨이!!! 너, 날 묶은 이 줄들 얼른 안 풀어?!!!" 그녀는 얼굴이 새빨갛게 변할 정도로 악을 쓰며 버럭버럭 소리질렀다. 그러나 현은 그녀의 이런 모습마저 귀엽다는 듯 결박되어 있는 그녀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려는 찰나, 강당 문이 열리며 비장한 표정을 한 재아가 들어왔다. "현이형! 짝퉁 포커스 세력이 예상했던 것보다 큽니다. 우리 쪽도 피해규모가 상당히 클 것 같아요. 그리고 형이 예상했던 대로 짝퉁녀석, 지방에 있는 일진들까지 다 끌어 모아 여기로 보내는 것 같아요." "흠? 그래. 뭐 대충 생각해 놨던 거니까.. 역시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는군. 현한결. 재아야, 지방에 있는 우리 쪽 애들한테 전해. 지금부터 모든 학교를 장악하라고. 그리고 현한결은 반쯤 죽여서 이리로 끌고 와." "네, 형." "선우 현! 무슨 소리야?!" 재아와 현의 말을 듣던 은별이 이해가 안 가는 듯 현에게 되물었다. 현은 빙긋이 웃으며 재아를 향해 나가라는 손짓을 보내곤 그녀의 새하얗고 투명한 볼을 쓰다듬으며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전쟁이 시작되었다. 오늘이야말로 진정한 포커스가 등극하는 날이지." "뭐...?! 설마, 지금 밖의 웅성거림은...?" "맞아, 지금 현한결과 그 세력들과 내 세력이 싸우고 있는 거야. 뭐 누가 이길지는 이미 판가름이 났지만 말야. 쿡." "한결이는 절대 안 져!!!" "과연 그럴까?" 차갑고 싸늘한 비웃음을 짓는 현은 은별의 몸을 관통해 단번에 얼게 만드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한참 후, 강당 문이 열리고 비릿한 피비린내와 함께 익숙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이미 결과 따윈 예상한 것처럼 싱겁게 웃는 현과는 달리 은별은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을 정도로 굳어버렸다. 만신창이가 된 한결의 양어깨를 재아와 현권이 부축하듯 끌고 강당 안으로 들어왔기에.. "하..한결아?!!!!!!" (털썩-) "이거, 이거. 완전히 초죽음이 되었군." 현이 그들의 앞으로 다가가자 안 됐다는 듯 혀를 차자 재아와 현권이 만신창이가 된 한결을 사정없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그들의 힘에 한결은 맥없이 현의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되었다. "흡.. 한결아! 일어서!!!! 흐윽... 한결아!!!!" 결박되어 있는 그녀가 발버둥치며 묵묵히 무릎을 꿇고 있는 한결에게 소리쳤다. 은별의 외침에 한결의 까맣고 흑단 같은 눈동자가 그녀 쪽을 향했다. 다행이다. 무사했구나. 이 절박한 상황 속에도 은별의 모습만 눈에 보이는지 그는 하염없이 울먹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와 시선을 마주쳤다. (퍽-!!!) 만신창이가 되어서도 한결의 시선이 은별에게 가 있다는 사실에 솟구쳐 오르는 화를 제어하지 못 하고 현이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세게 쳤다. "윽... 쿨럭..." "꺄악!!! 한..한결아?!!! 선우 현 이게 무슨 짓이야?!!!" 한결이 현의 주먹을 맥없이 맞으며 쓰러질 듯 위태롭게 비틀대자 안색이 하얗게 질린 은별이 자지러지게 소리를 지르며 발악했다. 숨을 가쁘게 쉬는 한결은 피투성이가 된 위태위태한 몸을 가누기가 힘든지 손을 땅에 바치며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었다. "씨발... 아직 우리 세력의 1/3이 신영고로 오지 않았다. 쿨럭... 선우 현, 큰소리치더니 고작 네 세력이 이것뿐이었냐?" "무슨 섭섭한 소리를.. 쿡, 여전히 한정된 시야에서만 보는 넌 날 능가하지 못해. 이미 지방에 남겨진 많은 내 세력 일진들이 전국 모든 학교를 장악하고 있거든. 이걸로 전국의 학교는 우리 세력에 접수되어 새로운 포커스인 나를 아주 당연하게 인정하게 될 거다." "젠장.. 넌 그걸 노린 거였냐...?" "그래, 이것만큼 확실하게 이기는 방법도 없지. 만일 하나라도 네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하... 쿨럭.. 치밀하군.." 이미 모든 게 끝이 났다. 한결은 힘겹게 눈꺼풀을 내렸다. 어쩌면 이렇게 될 줄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너무도 치밀하고 계획적인 현의 압승이었다. 아니 어쩌면 현에게 있어서 한결은 그저 그의 계획대로 움직여 주는 말에 불과했던 것뿐이었을 지도 모른다.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 한결의 모습에 현은 의외인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감정 없는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네 패배고 내 승리다. 누가 정의이고 누가 불의인지는 성립되었다. 현한결, 넌 이미 포커스 자리를 잃었다. 또한, 은별이 역시 잃게 되겠지. 그래, 예전에 내가 당한 그대로 너도 당하게 되는 거야." "선우 현!!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너한테는 사람 목숨이 장난이니?!! 얼른 이거 풀어!!! 한결이가 아프면 나도 아파.. 한결이 곁을 떠나서는 내가 살 수 없어!! 난 절대 한결이 곁을 떠나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말을 잇던 은별의 눈이 순간, 은하와 너무도 닮은 현의 투명한 갈색의 눈동자에 비친 슬픔을 보았을 때, 그녀의 머리 속에는 잃어버렸던 작은 기억의 파편 하나가 지나갔다. 분명 1년 전, 이 곳에서 그녀를 지키기 위해 그녀를 끌어안은 채 은하는 신영고 일진들에게 사정없이 맞고 있었다. ‘은별아, 내가 왔으니까 걱정 마. 내가 저 새끼들 다 죽여 놓을 테니까.‘ 그 때, 저 강당 문이 열리고 은하와 그녀를 구하러 온 사람은... 시니컬한 웃음과 부드러운 갈색 머리칼과 은하를 똑 닮은 외모. ..............분명 현이였다?! "선우 현, 넌 도대체 누구지? 어째서 내 기억 속에 네가 있는 거야?!" 은별의 떨리는 목소리가 강당 안 곳곳으로 울려 퍼졌다. 그녀의 외침에 한결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고 현 역시 슬픈 시선을 거두곤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드디어 네 잃어버린 기억이 찾고 싶어졌나 보구나. 쿡- 그래, 주인공들도 다 모였겠다, 좋아. 얘기해 주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말이야...." 117.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아주 오래 전, 우리가 태어나기 전 우리들의 부모님에 관한 얘기를 조금 해두지." 고요한 강당 안에 시니컬한 현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한결은 속수무책으로 자꾸 감기려는 눈을 부릅뜨며 말을 잇는 현의 얼굴을 올려다보았고, 은별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와 같이 초조한 기색을 내비치며 현을 바라보았다. 현은 힐끗 한결과 눈을 맞추며 말을 꺼냈다. "현한결, 혹시 알고 있나? 네 이복형, 현한얼의 어머니인 선우유진은 바로 나의 아버지 선우유현의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자 나의 고모라는 사실을..." 현의 말은 한결이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소리였다. "젠장.. 무슨 소리야.." 말을 내뱉는 한결은 고통스러운 듯 헛기침을 하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은별은 그런 그의 나약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가슴속에 치밀어 오르는 쓰라린 고통에 몸을 부르르 떨었고, 현은 한결에게 힐끗 눈을 흘기곤 태연자약하게 말을 이었다. "아, 그 전에 네 아버지인 현한준과 내 아버지인 선우유현, 그리고 은별이의 아버지인 채은규, 민태하의 아버지 민태후는 어렸을 적부터 소꿉친구였다. 집안끼리 친구로 맺어준 이유도 있지만 그들은 서로를 믿고 신뢰했다. 그런데 불행은 나의 고모 선우유진이 현한준을 짝사랑한 것부터였다. 현한준,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냉혈인간이라 불릴 정도로 감정이 없었다. 감정이 없는 그에겐 사랑도 없었지. 그런 그를 보며 홀로 애태우는 고모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며 나의 아버지는 고모와 현한준, 둘을 부부의 연으로 엮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집안끼리도 아는 사이고, 일이 우선 이었던 현한준은 고모와의 혼사를 거절하지 않았다." 침묵이 맴도는 강당 안에서 현의 목소리가 끊겼다. 흥분한 건지 화가 난 건지 알 수 없는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현이 와이셔츠 단추 2개를 풀어헤치며 후-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궁금함과 초조함으로 가득 찬 모두의 시선은 여전히 현에게 가 있었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현은 목이 잠기는지 몇 번 기침을 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때까지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 서로 미워하는 일도, 증오하는 일도... 그런데 일이 터진 거야. 가뜩이나 현한얼을 낳고 몸이 약해진 고모는 현한준이 그의 비서였던 현한결의 어머니인 강희아와 열렬히 사랑하는 장면을 눈앞에서 보게 된 거야. 충격이었다. 고모 역시 현한준을 진심으로 사랑했는데- 사랑 받지 못 한다는 슬픔에서였을까? 천성적으로 마음이 약했던 고모는 홀로 가슴앓이를 하다가 원래부터 심장이 약했는데 결국 후천성 심장병이라는 큰 병을 앓게 되었다. 고모를 그렇게 만들어 논 것도 모자라 현한준은 강희아를 데리고 고모가 입원한 곳까지 찾아와 이혼하자는 말부터 꺼냈다. 고모에게는 그의 그 한마디 말이 심장을 얼리기에도 충분했다. 그 자리에서 고모는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심한 충격을 받았고, 결국 쇼크사로 이 더러운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말도 안 돼..." 충격을 받은 듯한 한결의 푸념이 조그맣게 새어나왔다. 한준이 지독한 냉혈인간이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한얼이 죽었을 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게 한준이었다. 자신의 어머니 때문에 이복형 한얼의 어머니가 죽어갔다. 소리 없이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죄책감에 고통을 참는 듯 그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현은 길게 한 숨을 쉬었다. "고모를 죽이고도 모자라 장례식장까지! 그 파렴치한 현한준은 강희아를 데리고 나타났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소꿉친구라도 용서가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다. 내 아버지는 그 순간, 현한준과의 친구라는 연을 끊었고, 끝까지 현한준의 편을 들던 민태후와도 인연을 끊어버렸다. 그 뒤로는 내가 저번에 얘기한 것과 같이 과거를 기억하는 민태후는 강희아를 잊지 못해 현한준을 져버리고 홀로 동유럽으로 떠났다." "그럼 우리 아빠하고 선우 현 너희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은별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려왔다. 그녀의 질문에 현은 슬프게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조용히 대답했다. "두 분은 죽기 전까지도, 아니 죽을 때까지도 절친한 친구이셨다." "뭐...?" "4년 전 비행기 추락사로 은별이, 네 아버지가 돌아가셨지..? 그 비행기엔 우리 아버지도 타고 계셨다. 그것도 바로 옆자리에.. S 기업의 이사였던 네 아버지와 사장이었던 우리 아버지는 사업 때문에 함께 말이야." "..............하?" 은별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기억의 파편 하나가 또 다시 맞춰졌다. 4년 전, 아빠가 돌아가신 날, 실신해서 병원에 실려 갔다. 정신이 들었을 때, 입원실 자신의 옆자리에 입원해 있던 사람... 은별이 은하인 줄 착각하고 반갑게 말을 걸었던.......... ....선우 현? 처량한 표정의 현을 지켜보는 그녀의 두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아버지가 죽은 건 비행기 추락사였다고 믿었다. 그래,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 였다. 이미 처음부터 계획된 일이었다고!!!!! 이렇게 앞에서 얼굴만 봐도 치가 떨리는 현한결의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 기업인 S기업이 자신의 H기업보다 괄목상대하여 비약적으로 비대해지니까, 그걸 두려워한 나머지 사고로 조작한 계획을 세워 소꿉친구였던 은별이, 네 아버지와 내 아버지는 그의 계획에 의해 돌아가신 거야!!! 하....... ........정말 은하형이 원망스럽다. 왜 네게 모든 사실을 감춰서 네가 저 녀석을 사랑하게 둔 걸까?!!! 은별이 넌 이 사실을 알고도 네 아버지를 죽인 그 자의 자식인 현한결을... 넌 정말로 저 녀석을 사랑할 수 있니...?" 현의 애절하고도 간절한 외침은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은별은 심장이 점점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게 바로 한결의 아버지라니...?! 믿을 수 없다. 그녀의 묶여있는 손이 달달 떨려왔다. 현의 소리에 정신이 번쩍 나는지 한결이 처량하게 은별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며 흔들리는 그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은별아...." 한결의 아련한 부름에 은별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나왔다. 생각으로는 진실한 눈으로 말하는 현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있으면서도 몸과 마음은 한결을 거부할 수 없는 은별이었다. 과거를 회상하는 듯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던 현이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면서 애처롭게 은별을 바라보고 있는 한결과 그런 그의 시선을 피하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는 은별을 슬픈 시선으로 바라보며 입가엔 차갑디 차갑고, 자조적인 웃음을 띠며 다시 말을 꺼냈다. "좋아, 갈 때까지 가보자고. 이야기의 시작은 5년 전이다." 118. [현's behind story - 처음과 같이 이제와 영원히..] 이야기의 시작은 5년 전 내가 갓 13살이 되었을 1월이다. 그 땐, 불행이란 건 눈에 찾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나에겐 멋진 가족이 있었다. "여보, 얘들아. 오늘 귀중한 손님이 오시기로 했다!" "에이~ 아빠도 참, 그래봤자 은규삼촌 밖에 더 있어요?!" "땡! 유노야~ 반은 맞았지만 반은 틀렸다. 은규삼촌 말고도 다른 귀중한 손님이 오기로 했거든." "누구인데요?!!" "글쎄, 누구일까~ 아마 다들 아마 깜짝 놀랄 걸?" 유노형의 질문에 아버지가 싱긋 눈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핸섬한 외모와 잘 나가는 S기업의 사장으로서 철두철미한 능력을 지니고, 가족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자상한 아버지, 선우유현. "여보도 참, 애들 궁금하게.. 누군데 그래요? 아버지의 장난 어린 대답에 궁금한 듯 재차 물어보시는 어머니. 눈이 부실정도로 찬란하게 윤이 나며 출렁거리는 칠흑 같은 머리칼과 반쪽에 백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증명하듯 하얀 피부와 에메랄드빛 잔잔하고도 아름다운 큰 눈을 가진 한국계 영국인인 아름다운 나의 어머니, 금반하. "아빠, 누구예요~? 네~? 궁금해요! 얼른 말해보세요~" 유노형은 어머니의 말에 맞장구치며 아버지를 향해 정말 궁금해 못 참겠다는 눈빛을 쏘아대었다.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멋진 외모와 탁월한 리더십을 지닌 나와는 4살 차이가 나는, 이제 곧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될 유노형. 그리고............. "얘들아! 삼촌 왔다!" 은규삼촌,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버지의 친구였다는 삼촌은 이미 우리 가족에겐 또 하나의 가족 같은 분이셨다. 알고 지낸 지가 오래 되다 보니 '아저씨'라고 부르기 보단 '삼촌'이라 부르는 게 더 친근해 보이기에 우리 가족은 은규아저씨를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삼촌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은규삼촌~!!!!! 어.. 어라...?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유노형은 반가운 듯 현관을 열고 들어오는 은규삼촌에게 달려가더니, 그 곳에서 뭔가 굉장한 것을 보았는지 놀란 듯 탄성이 절로 나왔다. "왜 그러니? 유노.... ..어머..!!! 이게 웬일이야?!"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만 뻐끔대는 유노형의 모습에 형이 서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긴 어머니도 유노형 옆에서 그처럼 놀란 듯 탄성을 지르며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들의 의아한 행동에 궁금증이 생긴 나 역시 모두가 모여 있는 현관 쪽으로 다가갔다. "다들 왜 그래요? 누구기에...?!! .......에.... .....도플갱어??!!!" 은규삼촌 옆에서 온화하고 따뜻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손을 흔드는 그의 모습에 순간, 난 내 도플갱어를 본 줄 알았다. "커헉.. 난 아직 13살 밖에 안 되었다고요!! 이런데서 도플갱어를 보다니!!! 제 2의 숨겨진 주인공인데 이런 곳에서 죽을 수는 없다고요!!!!!!" 난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한 사람 앞에서 부들부들 떨며 소리를 질렀다. 그는 자신을 향해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는 날 보곤 깜짝 놀란 듯 인상을 찌푸렸다가 이해가 된다는 듯 박수를 한 번 짝 치곤 싱긋 웃었다. 도플갱어를 보았으니 이제 곧 난 죽고 마는 건가?!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을 때쯤 그는 심연같이 깊은 다갈색 눈으로 내가 호수처럼 깊은 그의 눈에 빨려 들어갈 정도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재밌는 아이네, 네가 선우 현이구나. 아버지 말대로 나랑 똑같이 생겼네? 신기하다. 하여튼 반갑다. 난 채은하라고 해." 화사한 웃음. 나와는 다르게 갈색 빛의 눈동자가 아름다운 사람. 한 눈에 반한다는 느낌이 이런 느낌일까? 뭔가 전류가 흐르는 듯 그에게서 운명적인 무언가를 느꼈다. 이게 나와 나의 도플갱어(?) 은하형과의 첫 만남이었다. .................... ........................................... * * * "어째 현이는 네 형 유노보다도 우리 은하를 더 쏙 빼 닮아 가는 것 같구나." "그러게요. 은규삼촌, 누가 보면 은하 동생일 줄 알걸요?" 아버지의 건강해 보이는 다갈색 피부와 어머니의 흑단 같은 머리칼을 물려받은 유노형은 나와는 그다지 닮지 않았다. 은하형을 처음 데리고 온 이후로 은규삼촌은 내 얼굴만 보면 은하형과 똑 닮았단 소리를 거들먹거렸고, 그 때마다 유노형은 반달모양으로 휘어지는 눈초리로 베시시 미소를 지으며 삼촌의 말에 즐거운 듯 웃으며 장단을 맞추곤 했다. "어?! 아버지!! 설마 저 몰래 숨겨둔 동생을 만드신 거예요? 이거 은별이가 이 사실을 알면 엄청 충격 받을 텐데, 뒷감당 할 수 있으시겠어요?" "쉿, 은하야- 은별이한테는 비밀이다!" "글쎄요~ 은별이가 요번에 시골로 올 땐 뭐 사달라고 했더라~" "쿡, 알았다, 알았어. 내가 졌다. 욘석아, 아무튼 지 여동생은 끔찍이 생각한다니까." "얼마나 예쁜 동생인데, 안 끔찍하게 여기겠어요." 항상 이런 식이다. 은규삼촌과 유노형의 장난에 너스레를 떨며 맞장구치는 은하형의 대답 끝엔 항상 형의 여동생, 채은별의 이름이 거론되곤 했다. 하지만 은하형의 여동생인 그녀는 지병인 천식을 앓고 있어서 공기 좋은 지방, 시골에서 따로 살고 있다고 했다. 마치 소중한 보물이기라도 한 듯, 은규삼촌도 은하형도 그녀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고, 그녀의 사진조차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래도 가끔씩 은하형은 내게 푸념을 늘어놓듯 자신의 여동생에 대해 말하곤 했다. "현아, 있잖아. 널 처음 본 순간 나도 도플갱어를 본 줄 알았어." "동감입니다! 저도 얼마나 놀랬다고요." "아마, 은별이도 널 보면 엄청 놀랄 거야." "..형 여동생이요?" "응,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여동생.. 눈보다도 더 새하얗고 고운 피부를 가지고 있고, 왕방울만한 다갈색 큰 눈에는 티끌 한 점도 없어. 속눈썹은 또 얼마나 긴지 눈이 오면 꼭 그 애의 눈썹 위로 쌓일 것 같아. 너무 맑고 청순한 애라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유 없이 슬퍼지며 가슴이 아파지곤 해." 은하형과 내 얼굴에서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칠흑같이 까만 내 눈동자와는 달리 은하형은 호수처럼 맑고 심연 같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다갈색 눈동자를 갖고 있다는 거였다. 은하형은 여동생에 대해 말할 때면 항상 행복한 듯 환한 웃음을 지었지만 그 다갈색의 반짝거리는 예쁜 눈동자엔 이유 모를 슬픔이 한 가득 담겨져 있었다. 119. [현's behind story - 처음과 같이 이제와 영원히..] 어느 새, 은하형을 만난 지 한 달이 지났다. 계절은 이윽고, 모든 것들이 꽁꽁 얼어있던 겨울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봄으로 향하는 2월의 길목에 서 있었다. "현아, 네가 보기에 은하, 어떤 것 같냐?" 언젠가 유노형이 진지하게 내게 물었던 질문이다. 그 동안 천천히 봐온 은하형은 사람의 이목을 끄는 능력과 탁월한 리더십, 그리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유노형은 어느새 누구보다도 은하형을 믿고 신뢰하게 되었을 지도 몰랐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은하형의 자상함에 그를 존경하는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음, 탁월한 능력에 침착하고 인정 많은 좋은 형이지. 왜?" "역시, 너도 은하가 좋긴 좋은가 보구나. 네가 사람 칭찬도 다 하고 말이야." "유노형, 무.슨. 말이야?" "현이, 넌 어떤 사람이 네 눈 밖에 나면 인정사정도 없이 괴롭히잖아. 그것도 너의 그 천재적인 머리로 하나하나 계획을 세워서 상대가 반격 한 번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아니 아예 재기조차 못할 정도로 일일이 처참하게 짓밟아버리잖아. 아무리 13살의 어린 내 동생이라 지만 내가 봐도 가끔은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섭다니까." "아하, 그.래?" 유노형의 얄미운 말에 울컥한 난 사악하게 웃으며 간지럼을 많이 타는 유노형의 약점인 옆구리를 사정없이 꼬집었다. "크..크큭.. 그.. 그만.. 그만해.. 현아.. 크큭.. 내..내가 잘못.. 했어... 큭..." "아무튼 간지럼 태우는 것엔 꼼짝도 못 하면서... 다음에 또 그런 소리하면 형, 숨 넘어 갈 지도 몰라." 간지럼 때문에 숨이 넘어갈 듯 헐떡거리며 온 몸을 비꼬면서 눈물까지 맺힌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사과하는 유노형의 모습이 하도 불쌍해 보여서 간지럼을 태우던 손을 멈추고 형을 향해 충고하듯 말했다. 내 진지한 말에 유노형은 내게 들리지 않을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소리장도(笑裏藏刀), 어떤 인간이라도 널 적으로 돌리면 피 보겠군." ............................ ............................................. * * * 행복이란 것에 온 몸이 전염되어 가고 있을 때쯤, 그 날, 날씨마저 암울했던 모든 복선이 시작되던 날이 오고 말았다. 그 날은 유노형의 고등학교 입학 배정확정이 나오는 날이었다. 까마귀 떼같이 시커먼 구름에 비가 총총히 오는 것에도 불구하고 은규삼촌을 따라 은하형이 아침 일찍 우리 집을 방문했었다. "형, 어디 불편해요?" 형은 그날따라 어두운 표정으로 거실의 창가 밖으로 보이는 벚꽃나무의 앙상한 나뭇가지를 슬픈 눈으로 말없이 지켜보았다. 나는 의아하게 생각하며 형에게 말을 걸었다. "응? 뭐가?" "꼭 울 것 같아 보여서요." 걱정스럽게 묻는 내 말에 형은 슬픈 표정을 지우며 빙긋이 웃었다. "아무 것도 아냐, 그저 잠깐 불길한 기분이 들어서... 참! 벚꽃 하니까 생각난 건데 벚꽃은 은별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야." 또, 은하형 여동생 얘기로 빠졌다. "..형, 그거 알아요?" "응? 뭐?" "형이 그렇게 여동생에 대해 말할 때 보면 진짜 시스터 콤플렉스 같아요." 그렇게 여동생을 아끼면서 도대체 어떻게 그 애 곁을 떠나온 거예요?" "정말 그렇게 보여? 아- 그래도 은별이가 보고 싶은 걸. 나도 병이다. 휴우- 나도 어떻게 그 약한 애를 그 곳에 혼자 두고 왔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강해져야 해. 그래야 우리 은별이를 지켜줄 수 있으니까." 은하형은 여태까지 어느 지방의 시골에서 형의 여동생과 함께 살다 고등학교 진학 문제와 장래, 그리고 여동생을 지키기 위해 강해지려고 아버지인 은규삼촌을 따라 이 곳으로 전학을 왔다 했다. 그리고 모든 엘리트들만 모이는 명문중학교 전학 시험에 통과해, 3월부터 그 학교 2학년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했다. . . "씨발!!!!!!!!!!!!!!!!!!!!!!" 나와 은하형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무렵, 있는 힘껏 욕을 하며 유노형이 현관으로 들어왔다. 유노형은 화가 머리끝까지 난 듯 얼굴이 시뻘개져서 콧김까지 내뿜고 분한 듯 주먹을 꽉 지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형, 왜 그러세요?" "유노형, 뭐 잘못 먹었어? 왜 그래? 어울리지 않게 웬 욕이야?" 놀란 은하형과 내가 분노한 유노형에게 다급하게 묻자 형은 화를 주체하지 못 할 때 나오는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씨발, 명문고 입학 불가란다." "뭐?!! 형, 수석으로 입학했잖아?!!" "그 개새끼 현한얼이랑 그 녀석 아버지인 현한준이 술수를 쓴 거지." 그렇게 말하곤 형은 허탈한 듯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도대체, 무슨 상황이에요? 전 이해가 잘 안 가는데..." "은하형은 역시 지금 상황을 모르는군요. 얘기해드릴까요?" 상황은 그랬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시작되었던 일이다.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이자 H기업의 사장이었던 현한준이 자신의 여비서였던 강희아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그로 인해 자신의 아내이자 나의 하나뿐인 고모, 선우유진은 엄청난 충격 때문에 약한 심장에 무리를 받아 쇼크사로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나의 아버지는 파렴치한 현한준과 친구의 인연을 끊었고, 할아버지에게서 S기업을 물려받아 그 기업을 점점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친구에서 원수로 변해버린 H기업과 동등한 위치로 가기 위해 노력했다. 집안이 원수지간이란 상황을 알고 있던 유노형과 현한얼은 명문중학교 입학 때부터 동시 수석합격이라는 것부터 시작해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라이벌이었다. "그런데 형, 도대체 무슨 문제인 거예요? 입학시험도 수석으로 합격했는데.." 내 얘기를 듣던 은하형이 궁금한 듯 유노형에게 물었다. 은하형의 물음에 한참동안 뜸을 들이며 생각을 정리하는 듯 눈을 감고 있던 유노형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픽- 코웃음을 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전국의 엘리트들을 양성하는 명문고를 중심으로 일진들이 서열을 가리기 시작했다. 모든 엘리트들이 모이는 명문고에서만 서열 1위가 나올 수 있고, 2년마다 포커스가 지정하는 사람에게로 계속 교체된다. 픽- 웃기지 않아? 현한얼, 그 자식 보기와는 다르게 승부욕 하나는 무서울 정도로 많은 녀석이거든. 보나마나 자신이 서열 1위가 되기 위해 가장 걸림돌이 될 나를 제거하려 수를 쓴 거지. 혼혈이 입학이 안 되다니, 말이 되냐? 웃음 밖에 안 나온다. 명문고는 H기업에 의해 돌아가는 학교니 별 수 없다, 이거지. 킥- 씨발.." "유노형..." "현한얼, 그 녀석이 오늘 나한테 뭐라는 줄 아냐? 그 동안 선의의 경쟁을 해서 즐거웠단다. 선의의 경쟁 좋아하네. 언제 지가 선의의 경쟁을 했다고? 그딴 것 개한테나 주라고 그러라지. 좋아, 서열이라... 재미있어. 나도 그 딴 것 따위 만들어 주지." 명문고 입학 불가만 아니었다면, 서열 1위 포커스 자리는 분명 유노형의 것이었다. 형이 혼혈이란 덜미를 잡아 약은 수로 현한얼은 그 자리를 탈취했고 그에 분노한 유노형은 은하형과 나와 함께 기존 세력, 그 누구도 알지 못 하도록 천천히 기존 세력에 반발하는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 세력을 넓혀 나갔다. 120. [현's behind story - 처음과 같이 이제와 영원히..] 시간은 광음처럼 흘러갔고, 어느 새 한 달이 지났다. 기존 세력의 근본지인 명문중학교에서도 반란을 꿈꾸는 세력이 더러 섞여있을 정도로 우리 세력은 점점 비대하게 넓어졌다. 그 중에는 기존세력에 불만을 품은 일진들도 다수 많았지만 우리 세력으로 들어 온 일진도 많았다. "현한얼,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젠장! 서열 높은 녀석들만 우대하는 것 봤냐? 씨발, 유노형이 서열 1위여야 되었는데.." "그 자식, 다 H기업 힘에 의해서 된 거잖아. 완전 거저먹은 자리지. 뭐- 유노형이 불쌍한 거지. 그나저나 반란을 꿈꾸는 차기 포커스가 정해졌다며? 도대체 누구야?" "몰라, 비밀이라는 것 같던데.. 혹시 우리 학교 1학년 일짱 신지빈 아냐?" "미안하지만 난 아닌 걸? 너희들은 알지 못하겠지만 유노나 나보다 더 대단한 녀석이 있지. 아직 밝힐 수는 없지만 그 녀석이 반란을 꿈꾸는 차기 포커스야." "헛, 시.. 신지빈.." 신영고 교복을 입을 여러 학생들이 중얼거리는 것을 어느 새 다가온 지빈이 차가운 조소를 지으며 딱 잘라 막으며 아무도 들을 수 없도록 조용히 혼잣말을 내뱉었다. "차기 포커스 채은하, 선우유노와 더불어 유일하게 내가 인정하는 녀석이지." 신지빈, 그는 신영고 1학년 일짱이자 유노형의 친구였다. 우리 세력은 유노형을 정점으로 유노형의 친구이자 오른팔인 신영고 일짱인 신지빈과 우리 세력에서도 극비의 인물이자 유노형의 왼팔인 은하형이 구축해 주고 있었다. 유노형은 아마도 은하형을 히든카드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세력에서도 몇 몇 중요 인물에서만 은하형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나는 반란을 꿈꾸는 차기 포커스가 된 은하형이 기존세력의 세력권인 명문중학교로 전학 가는 것을 당연히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노형, 할 말이 있습니다." 형이 명문중학교에 전학 가기 전 날, 유노형을 찾아왔다. 유노형은 그런 은하형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아쉽겠지만 명문중학교로 전학 가는 것은 포기해라." "아니요. 유노형, 전 명문중학교로 가겠습니다." "....무슨 소리하는 거냐?" "전, 싸움이 싫습니다. 피도 싫고요, 은별이가 싫어하는 것처럼. 전쟁보다는 제가 차기 서열 1위 자리를 차지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기존 세력은 반란을 꿈꾸는 세력이 되겠죠." "....자신 있는 거냐?" "믿어 주세요." 은하형에겐 역시 여동생이 제일 우선 인가 보다. 정말 시스터콤플렉스가 아닌지 의심해 봐야겠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눈초리로 유노형을 향해 자신 있게 미소를 짓고는 그렇게 은하형은 나의 예상을 단번에 깨버리고 명문중학교로 전학을 갔다. ....................................... ....................... * * * 그렇게 1년이란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났다. 비가 몰아치고 바람이 거세게 불던 어느 날이었다. "어? 유노형 오늘은 좀 늦었... 어라? 지빈형~!!!" "현아, 잠깐 이리와 앉아." 평소보다 늦게 집에 들어온 유노형은 무슨 일이 있는지 잔뜩 굳어 있었다.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난 형의 말대로 지빈형 옆자리에 앉았다. 순간, 술을 마셨는지 형들에게서 알싸한 알코올 냄새가 풍겼다. 마주 편에 유노형은 표정이 하나도 없는 얼굴을 한 채, 초조해 보이는 지빈형에게 무미건조하게 말을 꺼냈다. "지빈아, 네 동생을 명문중으로 보내라." "선우유노. 대낮부터 술 마시더니 너 취했냐?" "유노형,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명문중은 기존 세력의 세력권이잖아?! 은하형이 없어서 외로운가 보구나?" "아, 씨- 선우 현, 너 내 동생 맞냐?! 은하 움직임이 이상하단 말야." "채은하가 뭘 어쨌기에?" "안 좋은 예감이 들어. 은하가 요새 현한얼하고 접촉이 너무 잦아." 술에 취한 듯 약간 붉어진 얼굴에 진지하게 일관된 무표정으로 유노형이 차분하게 말하자 지빈형은 그런 형을 보며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유노형의 그 불길한 예감이 사실로 드러나게 될 거란 사실을 꿈에도 생각지도 못한 채.. "크크큭, 하하하.. 미치겠다. 선우유노 단단히 취하셨구만? 만약 은하가 여자라면 누가 보면 너 의처증이라고 하겠다." "죽을래?! 신지빈?!!!" "지빈형 말이 맞네, 유노형 진짜 은하형 너무 좋아하는 거 아냐?" "너희 둘 다 진짜 오늘 나한테 맞아볼래?!!!" "크큭, 유노야, 알았어, 알았어. 쿡쿡. 내 동생 명문중으로 보낼게. 크큭.." 서열을 차지하려는 일진들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나날이 치열해져 가고 있을 때, 유노형의 술주정(?)에 의해 갑작스럽게 지빈형의 동생인 신유빈을 반란을 꿈꾸는 세력의 스파이로서 명문중학교에 입학하도록 만들었다. .............................. ........................................... * * * [명문중학교 옥상] "오- 채은하! 너 차기 서열 1위로 선정됐다며!" "그래, 그렇게 됐다.." "자식! 축하한다! 이젠 소원 풀었네!! 그렇게 노력하더만.." "축하는 무슨. 아무튼 고맙다." "빼기는, 진짜 축하하고 나 먼저 내려가 본다." "그래." 은하형은 기존세력에서 유연하고도 부드럽고 성격으로 탁월한 리더로서의 능력과 그 동안 숨겨온, 아무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싸움실력을 보여주었다. 형이 반란을 꿈꾸는 세력이란 사실을 전혀 모르는 현한얼은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한 은하형의 신비스러운 다갈색 눈동자에 끌린 것인지 바보같이 은하형을 쉽게 믿어버리고 차기 서열 1위 자리를 내주었다. ......................................... 기존세력과 맞먹을 정도로 점점 비대해지는 반란을 꿈꾸는 세력, 그리고 H기업의 젊은 사장이자 절대 잊을 수 없는 원수인 현한준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부푼 꿈을 안고 달려가는 S기업의 필두 아버지, .......바쁜 자와 지쳐버린 자, 쫓기는 자와 쫓는 자만이 남았다. ........................................ ........................ 어쩌면 전쟁이 없이도 유노형이 기존의 서열 1위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착각이었을 뿐. 결국 그 날은 오고 말았다. 하찮은 이기심으로 인해 일어나게 된 비밀리에 진행되었던 피의 참극이... 소설제목 :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작가명 : +메시아+ E-mail : darksorcery@hanmail.net 연재장소 : 새싹소설① -10대 총편수 : 총 162편 완결 장르 : 연애소설 -------- 출처 : 인터넷소설닷컴 (http://cafe.daum.net/youllsosul) 팬까페 : http://cafe.daum.net/msacafe 댓글 0 개 이 글을...(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최신목록 목록 윗글 아랫글 '　　　[퍼온소설]' 게시판의 다른 글더보기 제목 닉네임 날짜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141 ~ 160 >' 나린소주인 05.07.11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121 ~ 140 >' 나린소주인 05.07.11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101 ~ 120 > 나린소주인 05.07.11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081 ~ 100 >' 나린소주인 05.07.11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061 ~ 080 >' 나린소주인 05.07.11 카페에서 공개한 게시글입니다.'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키워드로 검색한 게시글 더보기 서비스 약관/정책권리침해신고카페 신고이용약관카페 고객센터검색비공개 요청 Copyright (c) Daum Communications Co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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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아, 정의란 뭐고 불의란 뭘까?" "...................?" 갑작스럽게 엉뚱한 얘기를 꺼내는 은하형이 이해가 가지 않는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모르겠단 표정으로 형을 바라보았다. 묘한 사람, 은하형의 마음속엔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는 걸까? 형은 나를 한 번 쳐다보다 한 숨을 푹 내쉬고는 다시 붉은 태양에 외로움이 한 가득 담겨져 있는 눈을 돌리며 조용히 말을 꺼냈다. "후- 힘이 있어야만 세상을 움직이는 걸까? 이제 바쁜 자와 지쳐버린 자, 쫓기는 자와 쫓는 자만이 남았다." "무슨 소리예요? 형?" "................................" 나의 질문에 형은 한참동안 대답이 없었다. (투둑투둑-) 순간,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던 하늘에서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르르쾅-!!!!!!!!!) "꺄악!!!!!!!!!!!!!!!!" "혀.. 현아!!! 현아!!!! 은하야!!!!" 천재지변이라도 일으킬 듯 쾅- 하고 울리는 천둥치는 소리와 함께 안방에서 갑작스럽게 어머니의 자지러지는 비명 소리와 나와 은하형을 애타게 찾는 형의 외침이 들려왔다. 뭐라 조용히 중얼거리는 안방으로 향하는 은하형의 대답을 들을 겨를도 없이 난 후다닥 몸을 돌려 안방을 향해 정신없이 몸을 던졌다. "...비가 온다. 이 비는 어떤 눈물로 만들어진 비일까.." .................................... ............................................. * * * "오전 11시 비행기 추락으로 채은규, 선우유현. 두 분다 사망확인 되었습니다." 사망선고는 무엇보다도 매섭고 무엇보다도 싸늘한 선고였다. 먼 길을 떠난 두 분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두 분의 죽음이란 것은 이렇게 시나브로 말없이 다가왔다. "뭐.. 뭐라고요?" "사고였습니다. 저희로서는 어찌 손 써볼 도리가..." "..여보.. 여보... 유현오빠.. 안 돼!!!!!! 안 ......" (쿵-) "!!!!!!!!!엄마!!!!!!!!!" 아버지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지러지게 소리를 지르던 어머니는 이내 정신을 놓고 맥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그런 어머니를 옆에 있던 침대로 안아 올려 눕히던 유노형의 눈이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와 슬픔으로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유노형의 그 시선이 하염없이 슬픈 눈으로 유노형을 바라보는 은하형과 맞닿았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힘겹게 유노형이 입을 열었다. "은하야." "....네, 형." "너도 느끼고 있지?! 이건 사고가 아냐, 분명.. 분명 현한준과 관계되어 있을 거야!!!" "유노형, 지나친 생각이에요." "왜? 지나친 생각이라고? 채은하, 현한얼하고 붙여놨더니 너도 그 녀석한테 물드는 거냐? 들려오는 말로는 우리 고모를 죽인 장본인 강희아의 자식인 현한결하고도 접촉이 잦다며?" "....유노형, 한결인 불쌍한.. 아이입니다." "채은하!!!!!!" 그 하얀 얼굴에 우울한 빛을 띄우며 말하는 은하형의 말에 유노형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은하형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현한준, 현한얼, 현한결... 그 세 사람의 이름은 그 당시 어린 나의 마음에도 증오와 복수의 대상이란 이름으로 뿌리 깊게 새겨졌다. "너까지 나를 실망시키지 마라.. 은하야." "....알겠습니다. 현한준에 대해 조사해 볼게요." "후- 미안하다. 여동생이 쓰러졌다고 들었는데.." ".....괜찮아요. 제가 장례식 준비는 서두를게요. 형은 회사도 추슬러야 하잖아요. 현아, 너는 숙모님을 병원으로 모시고 갈 수 있지?" "네, 은하형." 은하형은 깊게 심호흡을 하곤 차분하게 우리가 할 일을 지침 해주었다. 하지만 형의 왜소해 보이는 어깨가 떨려왔다. 한 번도 우리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하는 은하형이 아파 보인다. 그 심연 같은 다갈색 눈동자에 슬픔이 한 가득 차 있는 듯 보인다. ............................... [카톨릭대학 병원] "...........삐- 삐-" 어머니는 4일째 정신을 놓고 계셨다. 유노형은 유노형 나름대로 회사 일로, 은하형은 은하형 나름대로 장례식 일로 어머니가 쓰러진 이후로 그 둘은 한 번도 병원에 들리지 못했다. "하암..." 어머니의 심장박동을 알리는 초록색 선이 고르게 올라갔다 내려간다. 한참을 지켜보고 있자니 지루함에 하품을 하던 나는 문득 고개를 돌려 옆 침대에 4일 째, 잠들어있는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아인, 티끌 하나 없는 우윳빛 하얀 피부에 은하형의 고운 머리칼을 연상시키는 허리까지 오는 다갈색의 윤이 흐르는 예쁜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오똑한 코에 하얀 얼굴과 대비되는 붉은 입술이 아기자기하다. 닫혀있는 저 눈 아래로 마치 동화 속 공주님처럼 숱이 많고 긴 속눈썹이 아름답다. "하아, 내 눈이 어떻게 된 건가?" 한 번도 이 아이처럼 내 눈에 쏙 들어온 여자는 들어온 적이 없었다. 나는 도리질 치며 내 눈을 세게 비볐다. 그런데 자꾸 심장이 요동친다. 내 자신도 모르게 자꾸 훔쳐보게 되는 그 아이의 모습에.. . . "오빠...? 은하오빠?" 따뜻하고도 맑고 청아한 목소리에 나는 눈을 비비던 손을 떼고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4일 동안 꿈속에 빠져있던 그 아이가 벌떡 일어나 앉아 그 닫혀있던 큰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라고?" "은하오빠, 표정이 왜 그래? 어디 아파?" 그 아이는 청아한 목소리로 나를 보며 은하형의 이름을 꺼냈다. 이 아이, 은하형을 알고 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그 아이의 침대 옆으로 다가가서 의아하게 나를 바라보는 그 아이의 눈에 시선을 맞췄다. 다갈색 눈, 은하형을 떠올리게 만드는 심연 같은 다갈색 눈을 지니고 있었다. "은하형을 알아? 넌 누구지?" "은하형이라니? 오빠, 진짜 어디 아픈 거 아냐?? 아니면 나 놀리려고 그러는 거지? 헤헤ㅡ 지금 석고상 놀이하는 거야? 얼굴이 이렇게 경직되어 있으니까 오빠 같지가 않다." "이 봐, 난 채은하가 아니라 선우 현이라고." 나의 말에 그 아이는 큰 눈을 빠르게 깜박이며 나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당황한 듯 말을 꺼냈다. "선.... 우현?" 이 여자애 뭐라는 거야. 남의 귀한 이름을 맘대로 바꿔 부르다니. 그런데 기분이 나쁘기보다 당황한 듯 구겨지는 이 아이의 표정이 재미있다. "...아.. 씨!!! 선 우현이 아니라 선우 현이라고!!" "아~ 생각났다! 우리 은하오빠 도플갱어 맞지?!!" "뭐? 뭐라고?;" "헤- 눈동자 색깔이랑 키 빼면 우리 은하 오빠 판박이라더니 진짜네?!" 단아하고 청순해 보이는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짓고는 손뼉까지 크게 치며 좋아하는 그 아이의 모습에 내 얼어있던 심장이 요동치며 가파르게 뛰어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아이, 아까 전부터 은하형 이름을 계속 부른 것 같은데? 궁금증이 먼저 앞서는 난, 날 보며 미소짓는 그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 은하형하고 친해? 왜 우리 은하오빠야?" "에? 우리 은하오빠니까!" "아니, 그러니까 은하형하고 친하냐고? 왜 자꾸 은하형을 들먹거리는 건데? 기분 나빠지네. 너 혹시 차수진이란 여자처럼 은하형 쫓아다니는 빠순이냐??!!!" "뭐 빠순이?! 이씨!! 차수진이란 여자는 또 누구야?! 은하오빠는 내 친오빠란 말이야!!! 이 바보야!!" "친오빠?.. 그래, 친오......... 뭐..뭐라고??!!!" "흥=3 은하오빠한테 일러줄 거야!!! 바보!!!!" 삐진 듯 뿌루퉁하게 볼에 바람을 넣는 그 아이의 모습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로 귀엽게만 느껴진다. 이게 은하형의 여동생이자 나의 첫사랑, 그리고 마지막 사랑이 될 채은별과의 운명 같은 첫 만남이었다. 122. [현's behind story - 처음과 같이 이제와 영원히..] * *　　　　　　　　　　　　＊ "오빠- 오빠 도플갱어가 내 옆에 있다!" [도플갱어라니..? 혹시, 현이?] "응응! 현이 어머님이 내 옆자리에 입원해 계셔. 아직 정신이 돌아오시진 않았지만, 근데, 현이 얼굴 보고 깜짝 놀랐어! 진짜 닮았더라!" [우연이네- 같은 병원인 줄 알았지만 같은 호, 게다가 옆자리에 입원할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많이 놀랐니? 정말 많이 닮았지?] "처음엔 진짜 오빠인 줄 알았다니까- 오빠, 참! 나 내일 퇴원해. 은하오빠, 내가 부탁한 것 들어 줄 거지? 응? 응? 꼭 들어줘야 해!!" [알았어, 알았어- 은별아. 들어줄게. 오빠가 우리 은별이 많이 사랑하는 것 알지? 아버지가 없어도 울지 않을 거지? 은별이는 강하니까..] "응, 나 안 울어, 오빠도 몸조심하고! 은별이도 오빠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 은별이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지 4일이 지났다. 그리고 어머니가 쓰러져 정신을 놓은 지 8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은별이는 은하형과 통화하는 게 그리 기쁜지 얼굴에는 화색이 돌고 웃음이 띄워졌다. 하긴, 장례식 때문에 형은 은별이의 병문안 한 번 오지 못 했으니까. 내일이면 은별이는 퇴원하고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게 된다. 은별이는 퇴원하는 게 즐거운 걸까? 난 어쩌면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이리 마음이 아픈데.. "현아, 현아~ 나랑 병원 옥상 올라가자~" "너 감기도 앓고 있잖아. 못생긴 간호사 아줌마가 혼내. 절대 안 돼." 은하형과 똑 닮은 나의 모습에 친근함이 드는 건지 처음 마주쳤을 때와는 달리 은별이는 금세 내게 살갑게 굴었다. "...흑.. 현이 미워.. 옥상 올라가고 싶은데... 흑.. 오빠라면 데리고 갈 텐데.. 현이 진짜 밉다..." 무릎 사이로 고개를 파묻고 흐느끼는 은별이의 입에서 나오는 내가 밉다는 소리에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파 왔다. 은별이의 입에서 은하형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정말 내가 은하형이 되고 싶은 심정이다. 아무래도 이거 중증인가 보다. 만난 지 4일 밖에 안 된 애한테 이런 감정을 느끼다니 말이다. "윽.. 데려가면 되잖아. 자꾸 울지 마." "헤~! 정말이지?! 현이가 최고~!!" 내가 이 말을 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무릎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고는 언제 울었냐는 식으로 활짝 웃으며 내게 소리치는 은별이다. 왠지 엄청 억울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귀여우니까 봐 준다. [병원 옥상] 병원 옥상 하늘 위에는 유난히도 별들이 많이 떠 있었다. 포근하게 불어오는 봄바람을 느끼기라도 하는 듯 팔을 활짝 펴고 있던 은별이가 뒤에 서 있던 나를 돌아보며 청아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현아, 바람에도 향기가 있다?" "......바람에 향기가 있다니?" "은하오빠가 내가 어렸을 때 알려준 건데, 사람 중에는 바람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이 있대. 신기한 건 나도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면 향기를 맡을 수 있어." 바람 향기를 맡으려는 듯 은별이는 숨을 힘껏 들이쉬었다. 그런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가 모두 사랑스러워 보인다. "피식- 정말?" "응! 바람향기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지만 포근하고 편안해. 꼭 은하오빠가 날 안아줄 때 오빠 몸에서 나는 향기 같아." 은별아, 너도 브라더 콤플렉스였니? 은하형의 동생이라 그런지 말하는 분위기가 형과 많이 닮았다. 진지하게 내 눈에 시선을 맞추고 바람향기에 대해 말하는 은별이가 여느 때보다도 순수하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푹-) "현아..?"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여 그녀를 안아버렸다. 놀란 듯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올려다보는 은별이의 호수같이 맑은 눈동자가 내 얼굴로 가득 차 있었다. 항상 이렇게 그녀의 눈동자가 나의 모습으로만 가득 차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두근- 두근-)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던 심장의 가쁜 고동소리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내일이면 그녀와 이별이다. 말해야 한다. 내 마음을...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을... 떨리는 가슴을 안고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은별이에게 말했다. "만난 지 4일 밖에 안 됐지만 네가 좋아. 네 얼굴을 볼 때마다 심장이 고장 난 것처럼 미친 듯이 뛰어댄다. 네 옆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아. 너와 함께 있고 싶어. 싫지.. 않다면 나하고 사귀지 않을래.....?" "..쿡쿡.." 기껏 남은 혼신을 다 해 말했는데 어이없게도 은별인 웃고 있었다. 그녀의 웃음에 얼굴이 타오르는 것 같이 뜨겁게 느껴진다. 당황한 나는 붉게 변해버린 얼굴을 감추지 못한 채, 그녀에게 허둥지둥 소리쳤다. "아.. 씨- 왜.. 왜 웃는 거야?!! 쪽팔리게.." "쿡.. 미..안, 꼭 우리 오빠가 나한테 고백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뭐?" "아니, 은하오빠의 도플갱어처럼 똑같이 생긴 현이가 고백하니까, 꼭 은하오빠가 나한테 고백하는 것 같아서 웃음이 나와. 쿡쿡.." ".............." 용기를 해서 말한 내 첫 고백이 아무래도 실패인가 보다. 만난 지 4일 밖에 안 되었는데 왜 이리 가슴이 아픈 건지… 나는 금세 의기소침해져서 은별이를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그 때였다. 은별이의 고운 목소리가 내 귀를 관통했다. "은하오빠하고 전화했었는데, 나 이제 지방에서 세명중학교로 전학 와. 병원 퇴원하고도 현이 하고도 자주 볼 수 있을 거야. 그렇게 걱정하지 마." "...은별아? 너 지금...?" ".....I'm feeling love to you."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채 살짝 눈을 감고 입가에 웃음을 띄운 채, 부드러우면서도 맑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을 내뱉는 은별이가 너무 예뻐 보여서, 너무도 기쁜 나머지 그녀를 꽉 끌어안고 말았다. 나를 감싸안는 그녀의 작고 따뜻한 두 손이 느껴진다. "은별아, 고마워.." 난 그녀에게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조용하게 속삭였다. 습기가 묻어나는 마파람이 따뜻하게 불어와 그녀와 나 사이를 부드럽게 안아줬다. 그렇게 나의 봄이 시작되었다. 123. [현's behind story - 처음과 같이 이제와 영원히..] 은별이와 사귀게 된 지 두 달 정도가 금새 지나가고 있었다. 은별이는 퇴원하고 유노형의 배려로 은하형과 함께 우리 집 바로 앞에 있는 오피스텔에서 살게 되었고, 서열 1위 차기 포커스와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 두 직책을 동시에 수행하는 은하형은 쉴 새 없이 바빴기 때문에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 은별이를 항상 우리 집에 맡겼고 그녀는 거의 우리 집에서 사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어머, 은별이 왔구나. 은별이는 보면 볼수록 예뻐지는 것 같네." "아주머니도 참. 부끄럽잖아요." "풋- 은별이는 유머감각도 나날이 발전하네? 참, 은하가 부탁했는데 오늘도 우리 집에서 자는 거니?" "그럴 것 같아요. 죄송해요." "죄송할 게 뭐가 있어! 요새 아줌마는 은별이 보는 재미에 사는데- 현아, 은별이 왔다!" 어머니는 즐거운 듯 경쾌한 목소리로 날 불렀다. 은별이가 퇴원하는 날, 어머니가 혼수상태에서 정신을 차리셨다. 그렇게 사랑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어머니께 되돌릴 수 없는 큰 충격이었지만, 어머니는 생각보다 굳세고 강하셨고, 금새 원래 자리를 찾으셨다. 다소 아버지의 빈자리 대신 S기업을 이끄는 유노형을 의지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리고 요새는 우리 집에 자주 머물게 된 은별이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신가 보다. "헉.. 헉.. 은별아!" "현아, 안녕! 헤헤, 어제도 왔는데 오늘도 와버렸어." "어머, 현이 좀 보래요. 은별이 보고 싶어서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로 달려오네. 이런, 엄마가 섭섭해서 이걸 어쩌나? 확 은별이를 내 딸로 삼아버릴까? 우리 무서운 둘째 아들 인생에 엄마가 한 번 태클 걸어볼까?" "절대 안 돼!! 나 은별이랑 결혼할 거야!!!" 어머니의 농담 아닌 농담에 화들짝 놀라 생각할 사이도 없이 나는 입에서 나오는 소리대로 소리를 버럭 질렀다. 갑자기 싸해지는 분위기에 급하게 달려오느라 홍조를 띈 내 얼굴은 잘 익은 사과처럼 끝없이 붉어졌다. "쿡쿡쿡, 우리 아들 얼굴 좀 보래요. 사과네- 사과! 벌써부터 현이 입에서 결혼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우리 현이 다 컸네." "..아.. 아주머니..ㆀ" "아.. 몰라!!!....///" 내가 미쳤다. 지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한 건지............. 심장이 두근두근 빠르게 뛰어대고,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어머니는 내 말에 배꼽이 빠질 정도로 미친 듯이 웃어댔고 당황한 나는 더 이상 붉힐 수도 없는 얼굴을 감추려 애쓰며 벌줌 하게 서 있는 은별이를 데리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후.. 심장이야.." 기분 좋은 심장의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어머니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아, 진짜 나랑 결혼할 거야?" "...헉.../// (화들짝)" 이런, 내가 당사자를 끌고 방으로 들어오다니... 젠장, 제 무덤 팠다. 그녀의 맑고 고요한 눈망울에 시선이 부딪히자 심장이 뛰다 못해 터질 것 같다. 뭐라 말을 해야 할 지, 이미 머리 회로는 정지한 것처럼 백지화 되어버렸다. "풋, 현아! 농담이야, 농담.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참, 이 것 봐라? 현아." 아무 생각도 없이 멍하게 있는 나의 귀에 은별이의 장난 끼가 담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농담으로 받아들인 거니? 난 진담인데... "뭔데?" "우리 학교에서 엄청 잘 팔리는 사진!" 난 그녀가 예쁜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럽게 건네는 사진을 받아보았다. 우리 나이 또래로 보이는, 같은 남자가 보기에도 잘 생긴 남자애의 사진이었다. 이 사진이 왜...? 난 사진을 건넨 은별이를 의아하게 쳐다보며 궁금한 듯한 눈빛을 보냈다. "현한결이라는 애야, 우리 오빠가 아끼는 애인 것 같기도 해. 가끔씩 은하오빠가 이 애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듣곤 하거든. 잘 생겼.. 혀..현아?!!" 난 은별이가 건넨 현한결 사진을 분노와 증오로 똘똘 뭉쳐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손으로 그 것을 있는 대로 구겨버렸다. 나의 행동에 은별이는 놀란 듯 동그랗게 변한 큰 눈에 두려움을 가득 담고 불안한 시선으로 날 마주한 채 내 이름을 크게 소리쳐 불렀다. "현아?!" "..씨발, 다시는 이 딴 녀석 사진 보지도 말고, 이 녀석 얘기 듣지도 마." "현아, 갑자기 왜 그래?" "이 딴 녀석, 씹어 먹어도, 밟아버려도 시원찮을 녀석이니까!!! 이 딴 녀석 사진 같은 것 다 버려 버리라고!!! 씨발...." 젠장, 모든 게 엉망이다. 은하형이 현한결에 대해 은별이에게 말하다니? 아직까지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현한결은 이미 나에게 숙명의 적일 수밖에 없다. 은별이는 전혀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더니, 이내 알겠다는 듯 손뼉을 짝 치곤 싱긋 웃으며 내게 소리쳤다. "아하, 현아- 너 질투하는 거야?" (딩-) 그녀의 어이없는 한 마디에 내 머리는 뭔가에 강하게 맞은 듯한 느낌이 든다. 은별아, 뭔가 핀트에 어긋났어. 내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그녀는 싱긋 웃으며 말을 잇는다. "헤헤- 질투 안 해도 돼~ 현아, 난 너 밖에 없다니까!" "휴우- 그래, 나한테도 너밖에 없어. 너한테는 도저히 화를 못 내겠다. 내가졌다. 내가졌어. 그래도 절대 이 녀석 얘기는 듣지도, 보지도 마. 알았지?" "알았어~! 후훗, 채은별! Winner! 쿡쿡.." 패배를 시인하는 내 말에 은별이는 활짝 웃으며 기분 좋게 웃었다. 문득 그녀의 웃음소리에 무안해진 나는 화제를 바꾸기 위해 전에 은별이가 부탁했던 노래를 구운 CD를 찾기 위해 CD케이스를 뒤적거렸다. "자, 이거." 난 찾은 CD를 조심스럽게 은별이 손에 건넸다. "응? 이게 뭐야?" "노래." "무슨 노래?" "네가 부탁한 이수영의 노래 구운 거야." "와아!! 현아~ 역시 너 밖에 없어!! 고마워!!!" 내가 구워준 CD를 품에 안고 어린아이처럼 뛰며 좋아하는 은별이의 순수한 모습에 내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그려진다. ................................ .................................................... 한참을 그렇게 은별이와 웃고 얘기하면서 시간을 보냈나보다. "하암.. 현아, 나 졸려." 피곤한지 하품을 하며 손으로 눈을 비비면서 은별이가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대었다. 그녀의 몸에서 나는 향긋하고 감미로운 허브 향이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은별이와 함께였으면,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는 눈이 반쯤 감긴 은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 "졸려? 졸리면 자야지, 은별아." "현아, 노래 불러줘." "무슨...?" "현이 노래 잘 부르잖아~ 불러주라~ 응? 제발~" 애교 섞인 은별이의 나긋한 목소리에 나는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루하루 변해 가는 거울 속 나의 모습 만일 지금 나를 봐도 넌 사랑해줄까♪ 다들 그랬어, 사랑은 사랑으로만 잊혀지고 여자에겐 지금의 사랑만이 첫사랑인 거라고 하지만 나에게 사랑은 하난데 아직 가슴에 남았는데 또 다른 인연이 올수록 니가 더 보고 싶어. 한없이 너에게 받았던 그 사랑 나는 주지도 못했잖아 그때에 너에게 진 빚을 제발 나 갚게 해줘♪ 다들 그랬어 세월은 모든 상처를 잊게 하고 늘 여자는 지난날 추억 보단 사랑으로 산다고, 하지만 나에게 사랑은 하난데 아직 가슴에 남았는데 또 다른 인연이 올수록 니가 더 보고 싶어- 한없이 너에게 받았던 그 사랑 나는 주지도 못했잖아 그때에 너에게 진 빚을 제발 나 갚게 해줘♬ 하루만이라도 한번만이라도 그때로 돌아가 너와 나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허락된 하루라면- 내일이 나에겐 없다 해도 웃으며 눈감을게.........." 이수영의 빚, 서글프면서도 감미로운 노래. 태양 같은 밝은 미소를 가진 은별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그리고 그런 그녀를 사랑하는 내가 가장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노래. 노래를 마쳤을 땐, 이미 은별이는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곤히 잠이 들어있었다. 새근새근 자는 천사 같이 순수한 은별이, 네가 없는 세상엔 내게는 내일이란 없을 것 같다. 아직 어린 나지만 하늘이 허락한다면 내가 눈감는 날까지 널 사랑하고 싶다. 124. [현's behind story - 처음과 같이 이제와 영원히..] * * * 어느 새, 반년이 훌쩍 지나가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 되었다. 태양 빛을 받고 찬란하게 핀 분홍빛 벚꽃이 만발하게 핀 학교마다 옹기종기 신입생들이 새로 들어오고 학교는 다시 한 번 활기를 되찾는다. 한편 명문고등학교에 수석으로 진학하게 된 은하형은 현한얼이 포커스 자리에서 물러나자 계획대로 서열 1위 포커스를 차지하게 되는 영광을 얻게되었다. 난 즐거운 소식을 들고 오랜만에 우리 집으로 찾아온 은하형을 축하해 주었고, 유노형 역시 기뻐하며 예정대로 은하형에게 반란을 꿈꾸는 세력 모두를 맡겼다. "은하형, 서열 1위 포커스 된 것 축하해요!" "그래, 은하야, 수고했다. 너라면 해낼 줄 알았다. 힘들겠지만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까지 맡기게 해서 미안하다." "괜찮아요. 전- 게다가 반하숙모께서 은별이까지 봐 주시잖아요. 게다가 유노형은 회사에 치여서 더 힘들잖아요. 그리고 반란을 꿈꾸는 세력은 지휘하는 건 현이가 많이 도와줄 거예요." "고맙다. 은하야, 잠깐 기다려 봐. 마실 거라도 가져올게." 유노형은 은하형이 기특한 듯 활짝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어 번 툭툭 치곤 부엌으로 들어갔다. 이대로 은하형이 반란을 꿈꾸는 세력으로 기존세력을 흡수하기만 하면 그 동안 엉켰던 실타래가 풀어지고 모든 일은 끝난다. "바쁜 자와 지쳐버린 자, 쫓는 자와 쫓기는 자만이 남았다." 유노형이 부엌으로 들어가고 나와 은하형 둘 만 남았을 때, 형은 잠시 나의 눈에 시선을 맞추며 서글퍼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은하..형?" 내가 그런 은하형은 의아하게 쳐다보며 형의 이름을 불렀을 땐, 이미 은하형의 서글픈 미소는 온대간대 없이 사라져버렸고 보통 때의 온화한 미소만이 남아있었다. 잘못 본 건가? 머쓱해진 분위기에서 때마침 유노형이 맥주 캔을 잔뜩 들고 거실로 나왔다. "자~ 오늘 한 번 마시고 취해보자!" "헉? 유노형?!! 무슨 술이야??!!" "후후~ 술이면 어떠랴! 너도 마셔라! 현아~ 아~" "됐어! 치워!" "뭘 빼고 그러시나~ 너도 사나이의 세상을 맛 봐야할 나이가 되었도다!" "시..싫... 읍... 켁켁-" 입을 안 버리려고 발버둥치며 도망치려는 나를 붙잡고 싱글벙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억지로 내 입을 벌려 맥주를 들이붓는 유노형이다. 이게 친형이 맞는지, 살인충동이 일어날 뻔했다. "유노형, 저도 한 번 현이한테 먹여 볼래요." "은하도 해 볼래? 쿠쿡." "아..씨.. 왜 나한테.. 끅... 그..래..." 변함없이 우리 옆에서 함께 웃으며 함께 자라던 은하형. 모든 게 예정했던 대로 모든 것이 굴러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그 때, 형의 서글픈 미소를 일찍 알아차렸다면 이런 결과를 낳지 않았을까? .............................. * * * 그 날은 3월 14일 화이트 데이었다. 날씨는 금방이라도 비가 올 듯 흐렸지만 아침부터 교실은 소란스러웠고, 그 날 따라 내가 다니던 사대부중학교는 예전보다 일찍 파했다. 난 기회라는 생각에 멋지게 장식되어 잇는 사탕 한 바구니와 은별이가 좋아하는 흰색 털을 가지고 있는 커다란 테디베어를 사 가지고 그녀가 다니는 세명중학교 교문 앞으로 찾아갔다. "어? 저 사람 서열 1위 포커스 아냐?" "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냐, 포커스보다 키가 작은 것 같은데?" "우와, 진짜 닮았다." "근데, 누구 기다리나 보다~ 와! 사탕바구니에 저 비싼 테디베어까지? 진짜 멋지다! 누군지 복 받았네! 부럽다아~ 와!!!!!!!!!!!!!!!!!!!!!" 학교가 파했는지 세명중학교 교문 앞에 서 있는 은하형과 꼭 닮은 나를 보며 교문을 빠져나가는 세명중학교 여학생들이 한 마디씩 중얼거리며 지나갔다. "포커스 하니까 생각난 건데 그 소식 들었어?" "뭐?" "포커스가 차기 포커스를 지정했는데, 현한결이란 애래." "아! 맞아, 들었어~ 진짜 잘 생겼더라!" "진짜 조각 같아! 저번에 가까이에서 봤거든! 근데 여자혐오증이 있다는 것 같다. 슬프다~" 지금 저 여자 애들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지? ...................현한결이 차기 포커스로 지정되었다고? (툭-) 말못할 강한 충격에 들고 있던 모든 것을 우르르 떨어뜨렸다. "현아?!!!" 멍해져 있는 내 모습에 놀란 듯 저 멀리서 날 보고 은별이가 내게로 뛰어왔다. 은별이가 달려오는 데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니 차리고 싶지 않았다. 은하형이 현한결에게 차기 포커스 자리를 내 주다니? 내 머리 속에서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현아, 왜 그렇게 멍하게 있어? 근데, 사탕바구니에 테디베어까지, 와- 이거 나 주는 거야? 현아! 감동......" "..은별아, 미안.." "현아??!!!" 내가 떨어뜨린 사탕 바구니와 테디 베어를 주워 품에 안고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은별이를 뒤로하고 난 명문고등학교를 향해 뛰어갔다. 은하형이 유노형과 날 배신할 리가 없다. 내 착각이라고 믿고 싶었다. "아니야. 이럴 리가 없어. 은하형이 그럴 리가 없어." [한 번만이라도~ 한 번만이라도~♬] 가슴이 터질 정도로 명문고등학교를 향해 뛰어가고 있을 때였다. 착잡한 내 기분과는 달리 내 옷 주머니 속에 있던 핸드폰은 경쾌하게 벨소리를 연주하며 쉴 새 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헉- 헉. 네, 여보세요." [선우 현이냐? 나, 지빈이다.] 핸드폰 폴더를 연 순간 들리는 목소리는 유노형의 절친한 친구인 지빈형 것이었다. 유노형과 절친했던 것과는 달리 지빈형은 날 탐탁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며 경계했었다. 그런 지빈형이 나에게 먼저 연락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게다가 지빈형의 목소리가 두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마구 떨리고 있었다. 불안하고 엄습한 기운이 내 주변을 감싸 안았다. "지빈형? 무슨 일이세요?" [...유노가.. 유노가...!!] "형?!!!!" [채은하가 현한결한테 차기 포커스 자리를 줬다는 소식을 듣고... 명문고등학교에 혼자 쳐들어갔다가 기존세력 일진들한테 한꺼번에 다구리 당해서... 씨발.. 좇 같아... 젠장!!! 유노, 죽기 일보 직전이야!!! 뇌사상태라고!!! 선우....] (달칵-) 내 이름을 소리쳐 부르는 듯한 지빈형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핸드폰 폴더를 닫아버렸다. 뇌사상태. 뇌사상태. 뇌사상태. 뇌사상태. 지빈형의 서릿발같이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에서 맴돈다. 유노형이 뇌사상태라고? 말도 안 돼. 유노형이 얼마나 강한데… 오늘따라 내 귀가 이상한가 보다. 사실이 아닌데… 유빈형이 현한얼한테 당할 리가 없는데… 근데 왜 자꾸 눈에서 빗방울 같은 것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건지..? [한 번만이라도~ 한 번만이라도~♬ 그 때로 돌아가 너와 나~] 마음을 가다듬을 여유도, 정신을 차릴 여유도 없이 핸드폰 벨이 또 울리기 시작했다. 은별이 목소리가 듣고 싶다. 은별이의 따뜻하고 고운 목소리가… 내 바람과는 달리 핸드폰 액정에 뜬 번호는 모르는 번호였다. 진정이 안 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폴더를 여느라 한참이 걸렸다. "흑.. 여보세요..?" [선우 현씨 되십니까?] "그..그런데요? 누구 신지..?" [XX경찰서입니다. 저 금반하씨와 무슨 관계이십니까?] "저, 아들인데요. 무.. 무슨 일인지?!!" [이런 말을 전해드리기 죄송하지만 금반하씨가 27층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즉사했습니다. 사유는 자살입니다. 여보세요? 여…] (달칵-) 자살이란 말을 듣고 그대로 핸드폰을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머리회로가 모두 정지해 버렸고, 그대로 백지처럼 하얗게 변했다. 파란 하늘을 가리고 있던 잿빛 구름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세찬 물줄기가 내 몸을 적셨다. 이상하다. 세상이 거꾸로 돌고 있다. 125. [현's behind story - 처음과 같이 이제와 영원히..] * * * . . "현아, 현아!! 정신 좀 차려 봐!!" 환청인가? 온통 암흑뿐인 세상에서 은별이의 목소리가 저 너머로 아득하게 들려왔다. "현아.. 흐읍.. 은하오빠, 현이가 눈을 안 떠." "울지마. 은별아. 현이 괜찮을 거야. 강한 아이니까 괜찮을 거야." 귓가에서 윙윙거리며 맴도는 은별이의 애절한 목소리와 그녀를 달래는 애처로운 은하형의 목소리에 뜨고 싶지 않은 눈을 억지로 힘겹게 떠보았다. 낯선 하얀 벽과 대리석 바닥, 낯선 공간이 날 마주하고 있었다. "아.. 윽.." 병원인가? 침대 옆에서 은하형의 품에 안겨 하염없이 울고 있는 은별이를 향해 손을 뻗은 순간 팔에 아릿한 통증이 전해져 난 얕은 신음소리를 뱉었다. 그 소리를 들은 건지 은별이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더니 나의 손을 꽉 잡으며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린 눈으로 내 눈에 시선을 맞췄다. "현아, 현아!! 괜찮은 거야?!" "..괜찮아. 그런데 여긴...?" "....병원이야. 현아..." 내 물음에 은하형이 힘없이 대답해주었다. 은하형의 눈에도 은별이처럼 울음을 참고 있는 듯 눈물이 한 가득 고여 있었다. 날 보던 은하형의 눈에서 주옥같은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슬픔을 담은 짠 눈물은 고스란히 내 머릿속에 잠재워져 있던 어머니의 자살과 뇌사상태에 빠진 유노형에 대한 기억을 끌어냈다. "은하형, 유노형은, 유노형은 어떻게 되었어요...?!!" "현아. 현아... 흑... 반하 숙모가... 유노오빠가..." "은..별아?" 끊임없이 눈물을 자아내는 은별이의 모습에 불안함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스멀스멀 밀려들어오는 오한에 몸을 부르르 떨며 애절하게 은하형을 쳐다보았다. 형 역시 쏟아지는 눈물 때문인지 허공을 향해 고개를 젖히며 나지막하게 내게 말했다. "…유노형도 숙모를 따라 좋은 곳으로 갔을 거야." "하하.. 은하형, 그게 무슨 말이에요?" "......유노형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하하- 은하형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럴 리가 없어, 유노형이 죽을 리가 없잖아? 그럴리가 없다고!! 은별아, 하하.. 나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나 어떻게...." "현아!!! 울지마, 울지마. 내가 있잖아." (와락-) 은별이가, 그 왜소하고 조그만 몸으로 나를 꼭 끌어안았다. 따뜻했다. 아버지의 큰 어깨보다도, 어머니의 다정한 품보다도, 유노형의 포근한 눈빛보다도... …나는 살아야했다. 복수를 위해서. 그래, 남은 나라도 복수를 해야 한다. 나를 이렇게 산산이 부서 버린 그들에게 응징을 해야 한다. 그래, 은별이만 곁에 있다면 세상이 끝난다 하더라도 살기 위해 발버둥 칠 것이다. "걱정 마, 난 살 거야. 꼭 살아남을 거야. 은별이 네가 있으니까." .................................................. ............................................................................... [장례식장] 그렇게 슬픔에 젖어있던 이틀이 지났고 서둘러 난 퇴원을 했고, 다음날 은하형과 함께 어머니와 유노형의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다. 빈소에는 두 사람의 영정만이 날 마주하고 있었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현아, 이거 받아라." "뭐예요?" "반하숙모가 남긴 유서야." 침통한 표정을 한 은하형이 어느 새 내 곁으로 다가와선 편지봉투를 하나 건넸다. 형에게 건네받은 하얀색 편지봉투에는 이미 희미해져 버린 종이냄새와 눈물자국으로 보이는 누런 얼룩이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바스락거리는 편지 봉투를 조심스럽게 뜯고 그 내용물을 꺼내려고 할 때 화가 난 듯 얼굴이 붉게 변한 지빈형과 함께 지빈형의 동생 신유빈이 빈소를 찾아왔다. "채은하." "...지빈형." 지빈형의 눈에서 나오는 강력한 스파크가 은하형을 향해 쏟아졌다. "채은하, 유노형을 죽인 건 현한얼이란 사실 잊지 마라. 넌 기존 세력이 아니라 반란을 꿈꾸는 세력이다. 그리고 이미 너도 알고 있겠지? 비행기 추락사로 가장한 네 아버지와 유노 아버지를 죽인 건 네 아버지의 소꿉친구였던 현한준의 직속부하직원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억측일 뿐이에요!!!" "이미 자명하게 사실로 드러난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 마라. 너에게 처음으로 실망했다. 채은하, 내가 유노 이외에 인정한 것은 너뿐이다. 그런데 넌 정이 너무 많아. 유노가 죽었는데도 현한얼과 그 가족들을 감쌀 셈이냐?!" 차가운 조소를 지으며 시니컬하게 말하는 지빈형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내 가슴엔 커다란 비수가 되어 사정없이 가슴을 찔러왔다. 아버지, 유노형, 어머니의 죽음, 모두가 다 현한준과 그 집안에 의해서 일어난 불행이다. 그런데도 그들을 감싸려하는 은하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은하형, 왜 서열 1위 포커스 자리를 현한결한테 넘긴 거죠?" 은하형에게 내가 물었다. 지빈형과 언쟁을 펼치고 있던 은하형은 한 치의 표정 변화 없이 내 질문에 대답했다. "너에겐 한결이에게는 있는 포커스가 되기 위해 중요한 조건 3가지가 없다. 아무리 내가 반란을 꿈꾸는 세력이라 해도, 그런 것을 떠나 포커스가 될만한 재목에게 이 자리를 넘기고 싶다." 현한결한테는 있고 나한테는 없다? 발끝에서부터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그 녀석에 대한 열등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형의 말에 난 마땅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 나를 한심스럽다는 듯 지켜보던 지빈형이 한숨을 크게 쉬었다. "채은하, 너의 그 잘못된 선택 때문에 유노는 죽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난 뒤에서 지켜보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채은하, 날 실망시킨 대가는 톡톡히 치를 거다." 차가운 말만 남겨두고 지빈형은 자신의 동생과 함께 빈소를 떠났다. 한 동안 빈소에 남겨진 나와 은하형 사이엔 어색한 침묵만이 흘렀다. "현아, 은하오빠!" 그 침묵을 깬 건 나의 여신, 은별이었다. 잠시 점심을 사러 나갔다 온다던 그녀의 손에는 먹을 것이 잔뜩 들려있었다. 그런데 들어오자마자 나와 형 사이의 싸한 분위기를 느낀 건지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은하형에게 물었다. "오빠, 분위기가 왜 이래? 현이랑 싸웠어?" "아무 것도 아냐, 은별아.... 현아." 형의 부름에 고개를 들어 형을 바라보았다. 형의 깊고 호수 같은 다갈색 눈에는 아무 감정도 없는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형은 한참동안 내 눈에 눈을 맞추고 있다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한결이나 한얼형을 원망하려거든 날 원망해라. 미안하다." "오빠, 무슨 말하는 거야?" "은별아, 오빠가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다. 현이 곁에 있어 줘." "오빠?!!!" 은하형은 그렇게 내게서 자꾸 멀어져 갔다. 하지만 은별이는 내 곁에 남아있다. 은하형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모든 게 다 현한결과 현한얼의 사탕발림에 은하형이 속아 넘어간 것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달랬다. "현아? 괜찮아?" 내 표정이 굳어있는 걸 본 건지 은별이가 조심스럽게 내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그런 그녀를 난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꽉 끌어안고 속삭였다. "은별아, 항상 내 곁에 있어줄 거지? 은하형이 날 져버려도 넌 내 곁에 있어 줄 거지?" "현아...?" "..사랑해, 사랑해. 너까지 없다면 난 살 수 없어. 언제까지나, 이 생을 다할 때까지 내 곁에 있어 줘." 그녀에게서 대답을 바라지는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다 해도 내 마음을 접을 생각은 없었으니까. 항상 은별이 옆에서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함께 숨쉬면 살아갈 거니까. "걱정 마. 현아. 언제나 곁에 있을게." 따뜻한 은별이의 목소리가 내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와 동시에 내 눈에선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내 목숨보다도 소중한 은별이 밖에 없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선 무엇이든 할 것이라고 그 자리에서 하늘에 대고 맹세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강해져서 은하형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고 증명할 것이라고... 126. [현's behind story - 처음과 같이 이제와 영원히..] 그 날 이후로 내 웃음은 거짓웃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외롭고 아픈 마음을 감추기 위해 늘 미친 인간처럼 웃었다. 하지만 난 나 자신도 놀랄 정도로, 모두가 두려워할 정도로 차갑게 변해갔다. 사람을 사귈 때도 이해 타산적으로 계산해보았고, 은별이 의외엔 누구도 믿지 않았다. …항상 웃었다. 내 가슴에 묻어둔 슬픔과 증오를 감추기 위해 웃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마음속으로는… 항상 날 이 지경으로 몰고 온 현한준과 그 가족들을 향한 복수의 칼날을 갈고 또 갈았다. "아, 그거 들었어? 채은하가 포커스로 등극할 때 전 포커스 현한얼 죽은 거." "나도 들었어. 여자친구 구하려다 죽었다며?" "그 여자친구 이름이 차수진이었던가? 아무튼 멋지다. 목숨을 건 사랑이라니-" "근데, 그 차수진이란 그 여자 채은하랑도 썸씽 있잖아! 차수진이 채은하한테 목맬 정도로 좋아한다며? 현한얼랑도 채은하 때문에 사귄 거라는데?" 길을 걷다 여학생들의 수다 속에서 우연히 듣게 된 현한얼의 죽음에 대한 소식. 죽었다고? 그것도 어울리지 않게 남을 구하려다? 완전 개죽음이군. 어쨌거나 남은 건 현한결과 빌어먹을 현한준이다. 그나저나 차수진이라? "쿡. 좋았어." ...............갑자기 떠오른 묘안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 * ....................................................... "후? 여긴가?" 내가 서둘러 찾은 곳은 수소문한 끝에 찾게 된 좁은 골목길에 위치한 차수진의 집이었다. 전 기존세력의 포커스 현한얼의 여자친구이자 여자일진 여짱이었던 그녀의 화려한 경력과 겉모습에 비해 그 집은 허름하고 낡아 있었다. 어쩌면 현한얼의 자식을 낳았지만 그가 자신을 구하다 죽는 바람에 일진에서도 버림받은 비참한 지금의 그녀와는 어울리지도 모르겠다. "응애- 응애-" 잘 닫혀 지지도 않는 대문을 살며시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갓난아기의 커다랗고 서러운 울음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울지 마! 울지 말란 말이야! 너 때문에 내가 이런 꼴이 되었는데!" 아기의 울음소리 뒤에 한 여자의 원망이 가득 담긴 날카로움 외침이 이어졌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천천히 돌렸다. 서럽게 울고 있는 갓난아이를 내 팽겨둔 채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는 그 여자를 향해 난 조용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차수진..?" 내 말에 천천히 고개를 든 차수진의 차갑게 굳은 얼굴에는 많은 슬픔이 어려 있었다. 그녀는 슬픔에 젖은 두 눈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면서 처음에는 당황하는 듯싶더니 점점 오묘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마치 꿈길을 걷는 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얼굴에 홍조를 띄우곤 소리쳤다. "은하야?! 여긴 어쩐 일이야?!" 그녀의 외침에 내 입가엔 차가운 조소가 걸렸다. 그래, 그렇게 날 채은하라고 생각하며 끝까지 속아 줘. 역겨운 너라도 이용가치는 다분하거든. "어떻게 잘 지내?"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따뜻하게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녀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내 웃옷을 꼭 잡고 빌었다. "지옥 같아. 은하야. 나 좀 봐 줘! 제발! 내가 잘못했어! 한얼이를 죽일 생각은 절대 없었어! 그저 난… 네가 날 돌아봐 주길 바란 거야! 널 사랑해. 은하야. 흐윽.. 사랑한다구!!!!" 그녀의 말에 그녀 모르게 차갑게 조소를 지었다. 은하형과 날 구분도 못 하면서 차수진, 넌 사랑을 운운할 자격이 없어. 은별아, 미안. 이번 한 번만 거짓말할게. 난 울부짖는 차수진을 향해 어떤 감정도 넣지 않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나도 네가 좋아." 네가 현한얼을 개죽음으로 몰아준 것에 말이지. 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라도 너한테 할 수 없어. 내가 사랑한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은별이 뿐이니까. 바보 같은 그녀는 은하형이 아닌, 내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듯 형용하기도 힘들 정도로 환한 표정을 짓고 나를 끌어안고 속삭였다. "사랑해. 은하야. 너만을 영원히 사랑해." "응애- 응애!!!!" "애 운다." 은별이가 아닌 다른 여자가 내 품에 안기는 것을 허락한 적은 없다. 사정없이 그녀를 떨어뜨리고 울고 있는 갓난아기의 핑계를 댔다. 내 품에서 떨어진 차수진은 우물쭈물 머뭇거리며 울고 있는 아기를 바라보았다. 망설여지는 거겠지. 현한얼의 자식을 네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안을 수는 없을 테니까. "애 이름이 뭐야?" 이 작은 피조물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게 불쌍했다. 서럽게 울고 있는 아이가 측은해져 보여 머뭇거리고 있는 차수진에게 물었다. 차수진은 내 질문에 당황한 듯 안절부절못하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름도 안 지어 준거야?" "..아니, 그게 은하야.." "한새(주: 은결이입니다)." "응?" "이름, 한새라고 지어. 한새." "아!! 응!! 한새라고 부를게!!" 내가 지어준 이름에 감격한 듯 차수진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녀에게 한 번 고개를 까닥이곤 울고 있는 한새를 어르기 위해 안아 올렸다. 그러자 마치 마법처럼 한새는 울음을 그치고 나를 향한 환한 웃음을 지었다. 순간, 가슴이 찌릿하며 뭉클해져왔다. 은별이와 닮은 한새의 천진한 웃음이 나의 아픈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것 같아서... ............................................................................. * * * 내가 16살이 되는 해에 은하형은 현한얼의 죽음으로 인해, 심한 죄책감에 몸서리치며 기어코 포커스 자리를 현한결에게 넘겼다. 은별이는 증오심에 몸부림치는 내가 걱정이 되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현아, 괜찮아?" "...걱정 마. 그 자리 다시 찾으면 되니까." "현아. 난 현이 네가 우리 오빠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안 미워해... 은하형도 분명 사정이 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 난 형을 여전히 존경해. 그리고 은별이, 네가 내 곁에 있잖아." "현아..." 현한얼의 죽음으로 인해 변한 게 있다면 은하형이 날 대하는 태도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복수로 불타는 날 경계하는 눈으로 바라보았고, 새로운 포커스, 현한결에 대한 불만을 가진 일진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점점 더 비대해지는 반란을 꿈꾸는 세력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사랑해. 은별아- 걱정 마." "현아, 있잖아, 저기...." "아, 나 잠깐 어디 가봐야 할 것 같다. 다녀와서 마저 얘기하자." 뭔가 머뭇거리며 말하려는 은별이의 말을 끊고 난 옷가지를 챙겨 입었다. 왠지 그녀의 눈빛이 두려움과 슬픔으로 뒤섞여 있었지만 대수롭게 여기진 않았다. 하지만 그 때, 그녀의 말을 들었다면 이런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을까? ...................................................... * * * 은하형으로 가장한 나와 차수진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1년 동안 이어졌다. 왠지 은별이의 마지막 눈빛이 마음에 걸렸지만 약속대로 오랜만에 차수진의 집을 들렸다. 그러나 그녀는 집안에 없었고, 방안에 얌전히 누워있는 한새만이 나를 반겼다. "아빠. 아빠." 날 본 한새는 반갑게 부르짖으며 넘어질 듯 위태롭게 엉금엉금 내게로 걸어왔다. 이제는 한새가 ‘아빠’라고 부르는 소리도 익숙하게 들려왔다. 그런 한새가 차수진을 향해선 절대‘엄마’라는 소리를 입 밖으로 낸 적이 없었다. 왠지 한새가 은별이를 본다면 그녀에게는 엄마라고 부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별이의 천진하고 순수한 미소가 한새의 미소와 많이 닮았기에... "아빠, 아빠." "그래, 아빠가 우리 한새랑 뭐하고 놀아줄까?" "뱅기!! 뱅기 태워 줘." "아빠, 힘든데.." "히잉- 한새, 뱅기. 뱅기 태워 줘." 걸음 걷는 것보다 말을 빨리 깨우칠 정도로 영특한 한새의 재촉에 못 이기는 척 난 한새를 하늘높이 들어올려 빙그르르 돌려주었다. "헤헤- 아빠, 또- 한새, 또 해줘." 재미있다는 듯 깔깔대며 웃는 한새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측은해 보였다. 날 진짜 아빠라고 굳게 믿는 한새는 내가 사라진다면 많이 아파할까? 이제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끝날 때가 가까워졌는데… 1년 동안 아직까지 남아있는 차수진의 힘을 이용해 기존세력의 많은 주요 일진들을 반란을 꿈꾸는 세력으로 끌어들였다. 이제 더 이상 그녀의 이용가치는 사라졌다. 바보 같은 여자였다. 여전히 날 은하형으로 착각하고 사랑하는 불쌍한 여자… (한 번 만이라도~ 한 번 만이라도~ 그 때로 돌아가~ 너와 나~ ♬♪♬♩♬♪) 한새와 한참을 놀고 있을 때, 내 핸드폰 벨소리가 구슬프게 울려댔다. 액정에서는 천재아의 번호가 뜨며 파란 불빛이 일렁거렸다. 천재아, 처음 봤을 때부터 지독히도 현한결을 싫어하는 게 마음에 들었던 아이였다. "한새야, 잠깐만- 아빠, 전화 좀 받자." 반란을 꿈꾸는 세력에 문제가 생길 때 빼고는 웬만해선 전화를 하지 않는 재아의 전화에 난 의아하게 여기며 한새를 품에 안고 폴더를 열었다. "무슨 일이야?" [현이형! 큰일났어요!] 숨이 넘어갈 듯 다급한 목소리였다. 재아의 목소리에 더불어 내 심장 박동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데 그래?" [형이 시킨 대로 지빈형이 다니는 신영고에 심어둔 스파이한테 연락이 왔는데요. 신영고 강당으로 한 시간 전에 은별이 누나가 끌려갔대요!!!!!!!!!!!! 게다가 지빈형의 세력이랑 예전 현한얼 여자친구였던 차수진이라는 여자일진이 이끄는 세력이 합쳐져서 제 3세력을 만든 것 같아요!!] "씨발... 애들 모아. 10분 안으로 신영고로 집합하도록. 늦는 녀석들은 나한테 죽는다." 차수진. 네가? 나를 이렇게 짓뭉겨본다. 이거지? 127. [현's behind story - 처음과 같이 이제와 영원히..] [신영고등학교] 신영고의 운동장에 도달했을 땐 이미 수많은 반란을 꿈꾸는 세력과 제 3세력들의 일진들이 뒤엉켜 엉망으로 싸우고 있었다. "현이형! 이 쪽이에요! 은별이누나 강당에 붙잡혀있대요!" "..씨발." "아, 그리고 형! 제 3세력에 대해서 알아봤는데요! 제 3세력의 우두머리가 누구인지, 아니 신영고 일짱이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신영고 이짱인 신지빈이 손을 쓴 것 같아요!" "천재아, 강당으로 안내해!" 난 재아의 안내로 그들 사이를 힘겹게 빠져 나와 신영고등학교 강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굳게 닫힌 강당 문을 연 순간 내 시선에 들어온 것은 달려드는 수많은 일진들에게서 은하형은 은별이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를 자신의 품에 꼭 안은 채 맥없이 맞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조소를 지으며 지켜보고 있는 지빈형, 아니 신지빈. "씨발. 킥- 재미 좋다?" 왜 우리끼리 이렇게 싸우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웃음이 나왔다. 갑자기 들린 내 목소리에 신지빈은 당황한 듯 내게 눈을 돌렸다. "신영고,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잘도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내가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면서 반란을 모의한 거냐? 쿡- 제대로 머리를 써야지. 멍청한 놈들," "서..선우 현!!!! 어..어떻게.. 안 거지..." "지빈형, 아니 신지빈, 내 정보망을 너무 무시하는 군. 그 대단한 짝퉁 포커스 현한결 곁에도 짐작도 할 수 없는 스파이를 붙여놓은 내가 신영고라고 해서 못 붙일 이유가 없지 않나? 어서 감춰둔 일짱이나 부르지 그래?" "젠장!!! 일짱은 누구인지 알 필요 없다!!!" 가쁘게 소리치며 신지빈은 내 뒤로 따라온 수많은 일진들의 수를 파악하려 하는 듯 그들을 힐끗 힐끗 쳐다보며 날카롭게 눈을 굴렸다. "으...으윽....." 그 때, 쓰러진 은하형의 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널브러져 있던 은별이 정신이 들었는지 신음소리를 내며 부스스 일어났다. 아, 다행이다. 무사했구나. 안도감에 눈물까지 나올 뻔했다. "아.. 혀..현아?!" 그녀는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나의 모습을 보고 반가운 듯 소리쳤다. 은별아, 걱정마. 넌 내가 꼭 지킬테니까. "은별아, 내가 왔으니까 걱정 마^ ^ 내가 저 새끼들 다 죽여놓을 테니까." 은별을 향해 안심하라는 웃음을 지어주고 점차 신지빈에게로 시선을 돌려 그를 향해 차가운 냉소를 지었다. 그래도 난 유노형의 친구였던 당신이 싫지 않았다. 밉지 않았다. 그리고 설사 날 떠났다하더라도 증오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의 심장인 은별이를 건든다면 당신이라 해도 용서하지 않아. "꺄악!!! 은하오빠!!!" 은별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조금 떨어진 자신의 옆쪽에 쓰러져 있는 은하형을 발견하고는 놀란 듯 소리치며 달려갔다. 그 순간 신지빈의 시선이 은하형에게로 달려가는 그녀의 모습에게로 옮겨졌다. 날카롭고 살기가 가득한 눈동자! 위험하다! "저 계집애가 좋겠군." 순간이었다. 각목을 들고 은별의 뒤를 쫓아오는 지빈의 모습에 은하형이 있는 힘을 다 짜내어 은별에게 소리쳤고 난 그녀를 향해 몸을 던졌다. "은별아!!!! 오면 안 돼!!!!!!!" (퍽-) "혀...현아....?" 은별이를 치려던 신지빈의 각목이 내 눈 주변을 강타했다. 순식간에 앞이 어두워졌고 눈과 얼굴에서 피가 흐르는 것 같았다. 어지러웠다. 은별이의 놀란 목소리가 귓가에 아득하게 맴돌았다. "현아!!! 현아!!!!!" 눈앞이 깜깜해지며 위태롭게 쓰러지는 날 꼭 껴안고 은별이는 내 얼굴에 흐르는 피를 옷으로 닦아내는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마. 울지 마. 울면 내 마음이 아파. 난 멀쩡해............................. 조금 어지러운 것뿐이야. 조금....... "안 돼!! 현아.. 죽으면 안 돼!!! 안 돼!!!!!" 은별이의 비명 소리를 마지막으로 난 정신을 잃었다. .................................................................................... * * * 내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보인 건 캄캄한 어둠과 함께 병원에서 나는 특유의 소독약 냄새뿐이었다. 옆에서 기척이 느껴지기에, 난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말을 꺼냈다. "저기, 불 좀 켜주세요." "현아..." 내 말에 대답한 것은 은하형이었다. "은하형이에요? 불 좀 켜주세요. 아무 것도 안 보여요." ".....현아... 미안하다...." 형의 애절한 목소리에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이 끝도 한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 때문에 그런 기분이 든 것 같다. "형, 무슨 말이에요? 우리 불 좀 키고 말해요. 형 얼굴도 안 보여...." 안 보여? 아무 것도? 설마...? "은하형, 내 눈!! 내 눈 어떻게 된 거예요?!!!" "현아." "내 눈, 내 눈이 왜 이래요? 왜 어둠 밖에 없는 거예요?!" "..........실명했다. 양쪽 다." 망설이다 조금 뜸을 들이고 대답하는 은하형의 아릿한 목소리에 얼마나 많은 고뇌가 담겨져 있는지 몸소 느껴졌다. 실명이라고 했다. 내 두 눈은 더 이상 아무 것도 보지 못 한다. 사랑하는 은별이 우는 모습도, 웃는 모습도, 슬퍼하는 모습도, 기뻐하는 모습도… "지빈형, 아니 신지빈은 살인 미수죄로 경찰에 끌려갔어. 네가 합의해주지 않는 이상 영창에 잡혀들어 갈 것 같아. 현아. 난 네가 합의를..." ".....형, 은별이는 어디 있어요?" 합의라고? 절대 용서 못 해. 은별이를 바라볼 수 있는 내 눈을 가져가 버렸는데. 합의라고? 난 은하형의 말을 끊고 냉소적인 목소리로 은별이의 안부를 물었다. "네 바로 옆자리에 있어. 충격을 많이 받았나 봐...... ......뇌사상태야...." 은하형의 말끝이 힘없이 떨렸다. 시리도록 아프게- 뇌사상태라고 했다. 순간 내 가슴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유노형도 뇌사상태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버렸는데, 은별이까지 보낼 수는 없었다. 아니, 은별이가 세상을 떠난다면 나도 이 세상에 있을 이유가 없다. 신지빈도, 그리고 이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인 현한결을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용서하지 않아. 절대로...." 난 끓어오르는 증오를 잠재우기 위해 입술을 꼭 깨물곤 더듬더듬 손을 뻗어 은별이의 손을 찾아 꼭 잡았다. ........................................................................... 몇일이 흘렀다. 눈이 보이지 않는 답답함에 난 몸서리가 쳐졌다. 은별이가 바로 옆에 있는데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다. 손 끝으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을 때, 병실 앞이 소란스러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눈이 보이지 않자 청력이 예민해진 나는 병실 밖에서 나는 그 웅성거림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형~ 여동생 얼굴 좀 보여줘요!!!!! 저번에 피투성이라서 제대로 못 봤단 말이에요!" "맞아. 기회인데, 좀 보여주시죠?" "안 돼- 안 돼- 절대로 안 돼!" 신유빈의 목소리와 은하형의 목소리, 그리고 낯선 목소리도 몇몇 들려왔다. 아마 기존세력의 일진들인 것 같았다. 내 정체가 발각될까봐 병실로 들어오려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은하형의 목소리와 배려하는 행동이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히잉! 형!! 보여주면 내가 뭐든지 할 게요♡" "호오? 진짜~? 그럼 우리 은별이 보는 조건으로 전국을 순회하면서 스트립쇼 할래? 사랑이가 하면 전국에서 반응이 죽여 줄 텐데..?" [싸아아아아-] 형의 말에 내 몸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은하형이 저런 말을 할 줄 전혀 예상하지 못 했다. 형의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 밝고 경쾌했다. 침묵 속에서 사랑이란 애가 울먹거리며 은하형에게 이렇게 외치고 병원 밖으로 달려 나갔다. "흐흑..!! 형이 내 순결을 욕보였어!!!" 풋-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보아하니 진사랑이란 녀석 엄청 엉뚱한 녀석이네. "쟤 왜 저래..?" "걱정 마, 한결아. 원래 정상이 아니니 내버려둬." "맞아. 그냥 내버려둬. 저러다가도 멀쩡해 지니까." 그들의 웅성거림 사이에서 한결이란 이름이 내 귀에 박혔다. 내 모든 걸 앗아가 놓고 네 녀석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웃고 있구나. 보이지 않는 눈을 문을 향해 고정시켜놓고 입술을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꾹 깨물었다. 128. [현's behind story - 처음과 같이 이제와 영원히..] "젠장!!" 현한결은 은별이가 뇌사상태에 빠진 몇 달 동안 줄곧 자신의 친구들과 병원을 찾아와 은하형과 함께 웃고 떠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현한결은 당연하다는 듯 명문고로 진학했고, 문득 나는 처음으로 내 자신이 비참하다고 느꼈다. 저 병실 문 너머로 현한결이 웃고 있는데 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현아. 많이 괴롭니?" 은하형은 절망의 늪 속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내게 때때로 이렇게 묻곤 했다. "모든 게 원망스러워요. 현한결도, 현한준도, 현한얼도, 신지빈도… 꼭 이 수모는 갚아줄 거예요. 내가 아픈 만큼 그들도 아프게 할 거예요." "현아." 가차없는 나의 대답에 형이 아릿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형의 부름에 대답 없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네 눈에 담긴 증오심은 버려라. 증오는 또 다른 증오를 낳는다. 그 증오는 나중에 널 후회로만 가득하게 만들 거야." 형은 항상 같은 대답을 했다. 하지만 은하형의 말에 난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 형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날 지금 지탱해 주는 게 바로 증오란 감정이란 것을. ................................................. * *　　　　　　　　　　　　　　　　　＊ 　　 (투둑투둑-) 그 날은 비가 내렸던 것 같다. 차가운 빗물이 하나 둘 떨어지는 소리가 창문가에서 들렸으니까. 여전히 변한 건 없었다. 뇌사상태로 누워있는 채 숨만 쉬고 있는 은별이 옆에서 보이지 않는 눈으로 몇 시간이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바보 같은 나. (삐그덕-) 병실의 낡은 문이 쇳소리를 내며 조심스럽게 열렸다. 창문가에 쏟아지는 빗소리가 더욱 세차게 들려왔다. 이윽고, 침묵 속에 슬픔에 젖은 듯 가라앉은 은하형의 목소리가 내 귀에 파고들었다. "현아, 각막기증자가 나타났다. 은별이가 깨어나면 수술하러 곧 바로 독일로 갈 거야." "..각막기증자라고요?" 기다리던 봄비를 맞은 새싹인 냥 은하형의 말에 내 귀는 온통 형의 가라앉은 차분한 목소리에 신경이 쏠렸다. "그래, 독일에 가면 좀 시일이 걸릴 거야. 그리고 거기서 만나볼 사람도 있고." "은별이는요...?" "이모 댁에 맡기고 갈 거야." "하지만 은별이가 언제 깨어날지..." "그 안구기증자는 꼭 너에게 기증한다고 약속했어. 걱정마라." 형의 말에 난 입을 굳게 다물고 침묵을 지켰다. 은별이를 두고 간다는 게 석연치 않았지만 다시 빛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은별이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다는 두근거림에 그런 생각은 깡그리 날아가 버렸다. ................................................................... 며칠이 더 흘렀다. 퇴원을 앞둔 나에게 오랜만에 손님이 찾아왔다. "현이 형." 시니컬하면서도 날카로운 목소리로 보아하니 천재아였다. 현재 반란을 꿈꾸는 세력은 내가 실명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은하형에게 입막음을 부탁했으니, 재아도 마찬가지로 모르고 있을 것이다. 돌아가라고 말할까? 하다가 반가운 마음에 보이지 않는 눈을 소리　나는 쪽으로 돌려 빙긋이 웃으며 재아를 마주했다. "왔구나. 오랜만이네." "...형, 어디보고 있는 거예요?" "아? 미안- 자다 일어나서…" "풋- 형. 그런 거짓말은 지나가던 개도 알아봐요. ...실명한 거죠...?" 재아의 마지막 말이 울음을 참는 듯 심하게 떨렸다. 너는 내 상황을 슬퍼해 주는구나. 하지만 달갑지 않다. 난 이제 은별이　이외엔 아무도 믿지 않으니까. 이제 더 이상 눈물은 남아있지 않다. 웃음이 나올 뿐… "됐다. 그 얘긴 그만하자. 왜 찾아온 거냐?" "...현재 상황을 말하려고 왔어요." "...후우.. 그래, 말해 봐." "반란을 꿈꾸는 세력은 현재, 형이 사라져서 많이 흔들리고 있어요. 게다가 기존세력은 신영고 사건이 우리가 저지른 일이라고 예의주시 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당분간은 세력을 대동해서 움직이기가 힘들 것 같아요." 당분간은 나도 반란을 꿈꾸는 세력을 움직일 생각이 없었으니 어쩌면 이 상황이 내가 잠적하기 위해선 다행일지도 몰랐다. 난 그저 싸늘하게 웃으며 재아의 말에 말을 이었다. "내가 자리를 비우고 있는 동안 네가 내 자리를 맡고 있어라. 그리고 만약 은별이가 깨어나면 한겨울을 은별이한테 붙여 줘. 딴 놈들이 넘보지 못하게. 그리고 한겨울한테 절대 스킨십은 금지라고 전해." "형, 진짜 팔불출 같아요. 진짜 징하네. 그렇게 은별이 누나가 좋으면 그냥 어디든지 데려가지 그래요?" "...천재아, 내가 눈이 안 보이니까 만만하다 이거지?" "푸- 그럴　리　가요. 형은 언제나 제 우상인　걸요-" 우상이라- 네게 있어 난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다. 한 여자를 처음 본 순간, 그 여자에게 미쳐있고, 그 여자만 믿고, 그 여자만 바라보며, 그 여자가 자신을 곁에 머물 수 있다면 뭐든 할 바보 같은 남자일 뿐이다. 옆에서 숨소리도 없이 누워있는 은별이의 손을 꼭 잡으며 재아에게 말했다. "참, 너한테 부탁이 있다. 신유빈과 신지빈을 내가 없는 동안 잘 감시하도록. 그 녀석들이 내게 진 빚은 훗날 써먹을 데가 많을 테니까." "알았어요. 형. 그럼 이만 가 볼게요." 그 말을 끝으로 재아는 할 말을 다 한 건지 부스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낡은 병실 문을 조용히 열고는 내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던졌다. "전 한 여자를 목숨보다도 사랑하는 형의 그 마음이 부러워요." 재아 너, 관심법도 하냐? 속마음을 들킨 듯 당황하는 나를 보며 재아 그 녀석은 분명 웃은 것 같다. 내 눈만 보이게 되면 재아 너 한 대 맞을 준비해라. 왠지 나를 닮아가는 재아의 웃음이 머리에 떠올라 나도 모르게 풋- 웃고 말았다. ....................................... ...................................................................... 그리고 며칠이 지나 소독약 냄새가 자욱한 병원에서 난 퇴원하게 되었고, 그 다음날 은별이가 뇌사상태에서 깨어났단 소리를 은하형에게 전해　듣게 되었다. ..................................... .......................................................... ＊　　　　　　　　　　＊　　　　　　　　　＊ [인천국제공항] "독일행 비행기에 탑승하실 분들은 2시까지 탑승을 마쳐주시길 바랍니다." 공항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북적거리며 소란스럽다. 이래저래 안내 방송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말소리만이 내 귀를 자극했다. "늦었다. 이제 게이트로 가자." 은별이가 퇴원소식이 들리자마자 은하형은 출국수송을 서둘렀고 일주일　만에 바로 독일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몇 시간이 지나면 이 곳을 떠나 타국의 땅에 도착할 것이다. "형, 은별이는......" "...........비행기 시간 늦겠다... 가자..." 일주일동안 은별이에게선 어떠한 연락도 오지 않았다. 눈이 보이지 않는 내가 찾아갈 수도 없었기에 더욱 불안했다. 하지만 은하형은 일주일 내내 은별이에 대해서 한 마디 말도 없었고, 오늘 그녀가 마중을 나오지 않을까 나는 기대했지만 내 기대는 허물없이 무너졌다. "모두 안전벨트를 매 주시고 기체 안에서 돌아다니는 것을 삼가　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체 안에서 안내 방송이 흐르고 곧 이륙하는 듯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타국으로 나가기 전에 은별이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왠지 이렇게 떠나면 다신 은별이를 못 볼 것 같은 기분 나쁜 느낌이 꿈틀거렸다. 내 기분을 안 건지 옆에 앉아있던 은하형이 그 따뜻하고 가는 손으로 내 차가운 손을 꼭 잡으며 들릴 듯 말 듯하게 중얼거렸다. "...조금은 힘들지 몰라. 그래도 모두를 위한 거니까 조금만 참아주렴." 129. [현's behind story - 처음과 같이 이제와 영원히..] 8시간의 긴 여정이 끝나고 피곤에 지친 몸을 추스르며 베를린 국제공항을 빠져 나왔다. 여기저기 곳곳에서 들리는 독일어와 차 소음이 소란스러웠다. 낯선 타국의 땅이지만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내겐 어느 곳이나 똑같이 암흑으로 둘러싸인 공간일 뿐이다. 이 곳의 하늘도 한국의 하늘처럼 시릴 만큼 푸르고 아름다울까? "후... 자, 이제 가자." 한참동안 내 곁에서 전화통화를 하던 은하형이 한숨을 쉬곤 희고 가는 손으로 차가운 내 손을 잡고 어디론 가로 이끌었다. 그렇게 말없이 꽤 걸은 것 같다. 형은 목적지에 도달한 것인지 순간 우뚝 멈춰 섰다. (띵-동-띵-동) 요란한 벨소리가 울리더니 이내 우리가 온 걸 기다리고 있었는지 확인 없이 서둘러 덜컹 쇳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들어가자. 현아." "형, 여기가 어디예요?" "우리가 한 동안 머물 곳이야." 은하형은 나를 부축하며 천천히 발을 떼어 앞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정원의 잔디에서 나는 아릿한 풀내음이 바람결에 내게 전해졌다. "왔구나." 풀내음을 맡고　있는 내 앞에서 사람의 기척과 함께 근엄하면서도 냉소적인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에요. 아저씨." 중년의 남자의 말에 은하형이 반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이게 몇　년만인지도 모르겠구나." "아저씨, 이 아이가 현이에요. 현아, 인사드려. 우리를 이곳에서 보살펴주실 민태후씨야." 민태후... 이름이 낯익었다. 그러고 보니 살아생전 아버지가 내게 두어 차례 언급했던 적이 있었던 이름이었다.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우 현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처음이라... 처음. 그래, 네가 현이구나. 역시 예상했던 대로 은하를 많이 닮았구나." 태후란 중년의 남자의 말에서 알 수 없는 뉘앙스가 풍겼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궁금증에 그에게 물었다. "절 아시나요?" "그럼 알다마다..." 대답하는 그의 냉소적인 목소리는 점점 슬픔에 젖어드는 듯 가늘게 떨려왔다. 그는 가을바람에 더욱 차가워진 내 손을 꼭 잡으며 다소 밝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우선 들어가자꾸나, 너에게 해 주고 싶은 얘기가 많구나." [집 안 거실] 태후란 사람의 이끌림에 들어온 집안에선 아늑하고 훈훈한 공기가 풍겨 나왔다. "아, 마실 거라도 가져오마." 그는 내 어깨를 두어 번치고는 부엌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눈이 안 보이는 내가 한 동안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자 은하형이 나를 이끌어 소파에 앉히며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수술은 2달 뒤에 잡혔다. 수술하고도 눈이 자리를 잡는데 3달이 걸리고 재활치료까지 받으면 거의 1년은 족히 걸릴 거야." "은하형!" 1년, 1년이라니... 너무도 아득하고 먼 시간이었다. 그 동안 은별이는 어떡하란 말인가?! 갑자기 한새의 웃는 얼굴도 떠올랐다. 그들에게 아무 말도 없이 떠나온 나는 앞이 더욱 막막해지는 느낌이었다. "은별이는… 은별이는 어떻게 해요?! 전화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 했어요! 분명.. 분명.." 가슴이 너무 아파 고통스럽게 숨을 몰아쉬며 형에게 소리쳤다. "그래서 어쩔 건데? 당장이라도 전화해서 눈이 실명되어서 수술 받으러 독일로 왔다고 말할래?! 은별이를 구하려다 다친 네가 어떻게 말하던지 넌 그 아이에게 상처밖에 줄 수 없어!" 나긋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바늘처럼 날카롭고 비수처럼 내 살을 에는 듯한 냉정한 은하형의 목소리에 놀라 머릿속이 백짓장이 되었는지 말도 꺼내지 못하고 얼어버렸다. "..미안하다. 내가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화내서 미안하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더없이 슬프면서도 나긋하게 형이 사과했다. 방금 전에 들었던 냉기로 가득 찬 형의 외침이 의아하게 여겨질 정도로 말이다. "미안하다. 현아. 미안하다." ..................................... ................................................................... ＊　　　　　　　　　　　　　　＊　　　　　　　　　　　　　　　＊ 은별이가 없는 곳에선 멈춰있을 것 같은 시간은 광음처럼 하염없이 지나갔다. 내가 수술 시간을 2시간 앞두고 있을　만큼 말이다. 막 여름이 끝날 무렵이라 후덥지근한 바람이 열린 창문 사이로 스며들었다. "오늘로서 우리 인연도 마지막이구나." "아저씨..." 조용히 바람을 맞고 있던 내게 어느 새 다가온 건지 아저씨의 기척이 느껴졌다. 아저씨의 목소리는 여느 때처럼 냉소적이었지만 그 안에 슬픔을 가득 안고 있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난 다시 동유럽을 배회할 거다. 내 소중한 기억들이 담긴 곳을..." 씁쓸하게 말을 마치는 태후 아저씨의 얼굴이, 표정이 궁금해졌다.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을까? 슬픈 표정을 짓고 있을까? 와중에 아저씨가 마지막이란 것을 상기시켜 주는 듯 다시 말을 꺼냈다. "2달 동안 내 길고 긴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구나." "아니요. 아저씨의 말 덕분에 많은 걸 알았어요." 2달 동안 난 아저씨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믿어지지는 않지만 실감날 정도로 전생을 기억하며 말하는 아저씨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현한준과 나의 아버지 선우유현, 은규삼촌, 그리고 태후 아저씨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 강희아의 언니 강희우와 태후 아저씨의 만남과 민태하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현재의 상황으로 오게 되기까지의 이야기... 2달을 들었어도 벅찰 정도로 수많은 이야기였다. "마지막으로 네게 묻고 싶구나, 한준이를 왜 그렇게 증오하는 거냐? 왜 네 가슴에 이는 증오의 불길을 끄지 못 하는 것이냐?" 내 대답을 바라는 아저씨의 마지막 말이 가느다랗게 떨려왔다. 몇 번이고 아저씨는 내게 때때로 물어왔지만 난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일지도 모를 오늘은 말해야할 것 같아 난 굳게 닫았던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이 우리 아버지와 은규 삼촌을 죽였어요." ".....무슨...?" "H그룹의 직속부하직원이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에 엔진을 만졌어요. 사고사로 가장한 인위적인 조작사고라고요!! 용서할 수 없어요!! 게다가 그 인간의 아들인 현한얼 때문에 유노형까지 뇌사상태에 빠졌다 죽었고, 어머니는 그렇게 의지하던 형이 그 상태가 되자 견디지 못하고 자살까지 하셨어요!" "..........." 단호한 내 말에 아저씨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고요하면서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눈도 보이지 않는데 소리마저 없으니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아, 태후아저씨. 시간이…" 어색한 침묵을 깬 건은 은하형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태후 아저씨는 은하형의 말에 부스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냉소적인 아저씨 목소리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애처롭고 따뜻한 목소리로 내게 조그맣게 말했다. "증오는 증오를 낳을 뿐이란다. 한준이와 한준이의 아이들을 용서해다오." 아저씨의 마지막 말이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애틋해서 순간 마음이 약해져 대답할 뻔했다. 입안까지 밀려온 말을 삼키며 아저씨를 향해 고개를 한 번 숙인 후 형을 따라 나섰다. ...........그게 아저씨와의 마지막 인연이었다. 한참을 말없이 묵묵히 걷기만 하던 형이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형..?" 형이 멈춘 바람에 덩달아 멈춘 나는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형을 불렀다. 은하형은 바람에 분분히 휘날리는 내 머리칼을 고이 쓰다듬으며 말을 꺼냈다. "현아, 네게 3가지 부탁이 있다." "무슨...?" "이 부탁은 꼭 들어줘야 해. 꼭..." 형의 말끝이 얼음처럼 시리며 눈물처럼 애절하다. 난 내 감정을 감추기 위해 여느 때처럼 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전, 형의 부탁이라면 뭐든지 들어줄 거예요. 말해보세요." "고맙다." 내 대답에 아마 형은 웃었던 것 같다. 그 온화한 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네가 오늘 수술에 들어갈 때 난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거다. 아무도 찾지 못 하게 아주 먼 곳으로 말이야. 행선지도 없고, 목적지도 없어. 어쩌면 태하 아저씨처럼 방황하며 배회할 지도 모르지. 첫 번째 부탁은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날 찾지 말아 달라는 거야." "은하형?!" 경악할 만큼 놀라기도 전에 형의 충격적인 말은 계속 이어졌다. "현아, 내가 왜 은별이와 너의 접촉을 막았는지 말해줄까? 은별이 뇌사상태에서 깨어났을 때, 이미 부분기억상실증이었다. 현이 너도 기억하지 못하고 아버지도 기억하지 못해. 아니, 괴로운 기억을 모두 없애버렸다." "...은별이가 나를 지웠다고요....?!" 은별이가 날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잔인하게도 형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비수가 되어 내 심장을 찔렀다. 그깟 눈이 안 보여도 끝까지 그녀 옆에 있었어야 하는 거였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눈물을 흘릴 일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내 두 번째 부탁은 네가 눈이 보이게 된다면 은별이가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지, 울지는 않는지, 슬퍼하지는 않는지, 아파하지는 않는지… 한 번만 지켜 봐주렴. 만약 은별이가 다른 사랑을 찾았다면 그냥 멀리서 지켜 봐주렴." 은하형이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눈가에 달린 내 눈물을 흩트렸다. 형의 말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은별이가 다른 사랑을 한다면 지켜봐 주라니? 마치 그런 일이 진짜로 일어난 냥 가슴이 너무 아려 와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현아...? 내 부탁 들어줄 거지?" 은하형의 독촉에 난 말없이 고개만 몇 번 끄덕였다. 그러자 형은 다시 내 손을 잡고 병원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형, 세 번째 부탁은요..?" 마지막 부탁을 말하지 않는 형에게 목이 메여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물었다. 형은 내 말에 한참동안 대답을 하지 않고 말없이 걸었고 우린 이내 소독약 냄새가 가득한 병원에 도착하고 말았다. 병실까지 날 안내한 형은 그제야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세 번째 부탁은 네가 눈이 보이게 되면 알게 되겠지. 수술, 성공하길 빈다." 물기가 가득 어린 애절한 목소리. 그 것이 형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 ................................................................................ * * * 수술한 지 벌써 3달이 지났고, 오늘 내 눈앞을 가리고 있는 붕대를 풀게 되었다. 붕대를 푸는 내 손이 가느다랗게 떨려오기 시작했다. 마지막 감겨있는 붕대까지 풀고 눈을 뜬 순간, 어둠 속에서 빛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선우 현씨, 제가 보이십니까?" 한국인 당담 의사선생님이 건조하게 나를 향해 말했다. 흐릿한 시선이 점차 뚜렷해지면서 의사의 얼굴이 보였다. 보인다! 환희의 기쁨에 복받쳐 오르는 눈물이 내 눈에서 주르르 흘러 내렸다. "보여요. 아주 잘...." "수술은 성공적입니다. 시력 상태도 아주 양호하고요. 그리고 이거..." "뭐죠?" "선우 현씨께 눈을 기증하신 분이 남긴 편지입니다. 전해달라고 해서 전해드리는 겁니다." 하얀 가운 주머니 속에서 흰 편지봉투를 꺼내 내게 건네는 의사 선생님에게서 편지 봉투를 건네받은 난 속에 들어있는 편지를 꺼내 천천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현에게. 네가 이 편지를 받아 읽을 때쯤, 넌 다시 빛을 볼 수 있겠구나. 수술 성공해서 다행이다. 건강해라. 현아. 내 두 눈을 네게 줬다고 아파하지 말고 울지도 마. 넌 나보다 세상을 더 크게 볼 줄 아는 거니까 이 두 눈을 네게 주는 것뿐이야. 현아, 내 부탁들 잊지 않고 있지? 이제 마지막 부탁을 얘기하는 일만이 남았구나. 내 마지막 부탁은 내 두 눈을 네게 준 것을 모두에게 비밀로 해줘. 꼭 부탁 들어줄 거라 믿는다. ............................그리고 한결이를 용서해다오. -은하- 」 은하형이 내게 눈을 기증했다고?!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거울 속에 비친 내 눈은 은하형의 깊고 깊은 갈색의 심오한 눈. 형에게 커다란 빚을 지고 말았다. 평생을 다 해서 갚아도 갚을 수 없는 큰 빚. ....................... 형의 남긴 편지에 적힌 것처럼 아프긴 했지만 울지 않았다. 내 안에 꿈틀거리며 튀어나오려는 복수도 잠재워 버렸다. ............................................. 130. [현's behind story - 처음과 같이 이제와 영원히..] "1년 만에 밟아본 한국 땅이라." 인천국제공항은 1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분주하고 생동감이 넘쳤다. 한국에서의 내 나이는 벌써 18살이었다. 채은별, 널 볼 수 없는 지옥 같은 1년이란 세월 정말 금방 지나가 버리더라. 눈물도 마른 지 오래지만 날 기억하지 못할 너일지라도 우리 다시 사랑할 테니까. 그렇게 믿고 있으니까 나 아파하지도 울지도 않을래. ",,,,후우... 변한 건 없네." 1년 만에 찾은 나와 우리 가족의 집. 여느 때처럼 두 그루의 목련나무에 눈꽃처럼 흰 목련꽃이 분분하게 피어있었다. 두 그루의 목련나무는 변한 것 없이 아름타운 자태를 이루고 있지만 이제 이 집에 남아 저 두 그루의 목련나무를 볼 수 있는 건 나 혼자 뿐이라. 혼자 살기엔 너무 넒은 집이지만 많은 기억이 담긴 곳이라 버릴 수 없는 집이다. 대문 열쇠를 따고 들어서려는 순간,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은하야..." 눈물 섞인 목소리에 난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말도 못 할 정도로 초췌하고 야위어진 얼굴에 쓰러질 듯 마른 몸을 한 차수진과 그녀의 뒤에 우물쭈물 거리며 거리를 두고 약간 떨어져 서 있는 한새가 있었다. 여전히 크고 맑은 눈망울이 귀여운 한새, 1년 사이에 많이 컸구나. ".....은하야... 흡..." "내가 은하형이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을 텐데?" "그래, 알고 있었어. 처음부터 네가 은하가 아니란 것쯤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널 사랑한 건 사실이야. 은하 대신이라도 널 사랑했었어. ........1년 전에 신영고 일은 정말 미안해! 너무 화가 나서… 나는 은하도, 이름도 모르는 은하를 닮은 너도 너무 사랑하는데… 너희 둘 다 채은별이라는 계집애 밖에 안 쳐다보니까 너무 화가 나서.. 흑.." 화가 나서 신지빈과 손을 잡고 제 3세력을 구축해 은별이를 납치하고 은하형을 협박해 포커스 자리를 탈취하려고 그런 거냐? 그것 때문에 난 두 눈을 잃었고, 은별이는 기억을 잃었고, 은하형은 가슴속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는데. "난 여자한테는 손 안 대니까 알아서 꺼져." 푸념을 늘어놓는 그녀를 냉정하게 외면하게 차갑게 소리쳤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봇물이 터져버렸다. 멀찌감치 떨어져있던 한새가 내 살벌한 표정을 보더니 눈물을 터트린 것이다. "흐아앙.. 아빠, 아빠- 한새, 또 버리지 마!!!!" ".........젠장..." 나 진짜 문제다. 아무래도 어린아이의 웃음과 울음이 약점인가 보다. 난 거칠게 내 머리칼을 손으로 흩트리곤 차수진을 지나쳐 한새 앞에 섰다. 눈물을 글썽이는 한새의 눈에 눈을 맞추며 빙긋이 웃는 얼굴로 한새에게 물었다. "한새야. 아빠가 전에 했던 말 기억나? 아빠가 울면 뭐라고 그랬지?" "흡.. ..어..어흥이가 잡아간다고... 흐앙..." "그러니까 뚝- 해야지." 내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새는 쉽사리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1년 전에는 눈물보다 웃음이 많은 아이였는데… 말도 못하고 사라져서 한새에게 너무도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은하야..." 한새를 달래고 있는 내 곁으로 차수진이 자신이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듯이 은하형의 이름을 나를 향해 부르며 천천히 다가왔다. "선우 현." "뭐?" "내 이름은 선우 현이라고. 채은하가 아니야." 눈물을 글썽임 그녀는 몇 번이고 내 뒤에 서서 옅은 소리로 내 이름을 곱씹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야?" "...미행했었어... 1년 전에... 매일같이 널 찾아왔는데... 흡.. 현아, 나 많이 원망스럽지?" "후-" 저 여자가 언제부터 저렇게 여려진 건지. 저 여자가 언제부터 저렇게 눈물이 많아진 건지. 답답한 마음에 얕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녀는 울음이 밀려나오는 것을 참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말을 이었다. "네가 날 이용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조금은, 조금은 행복했었어. 이젠 은하 앞에도 네 앞에도 나타나지 않을 거야. 앞으로, 영원히.... 그런데 부탁이 있어. 내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 하나만 들어주지 않을래?" "..........."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는 그녀를 지긋이 응시했다. "한새, 현한결한테 데려다 줘." 잠시 망설이는 기색을 비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어이가 뺨을 때리고, 목에 말이 걸려 나오질 않았다. ".....뭐?!" "그 앤 보기보다 마음이 여려서 자신처럼 버려진 애를 거부하지 못 할 거야. 내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야. 한새를 한결이한테 데려다 줘...." 또 무슨 일이 꾸미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위태로울 정도로 처량해서 거절할 수 없었다. 말이 없는 나와 그녀 사이로 아직 한기가 남아있는 봄바람이 살랑거리며 머리칼을 부드럽게 간질이곤 지나갔다. 그녀의 공허하게 비어버린 눈에 시선을 두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아. 마지막 부탁 들어주지." [한결의 집 앞] 차수진이 알려준 데로 한새의 손을 잡고 현한결의 집을 찾아갔다. 도착한 현한결의 집은 그 녀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예쁘고 아담했다. 담 너머로 흐드러진 분홍색 벚꽃이 분분하게 피어있는 그림 같은 집. 동화나 드라마 같은데서나 나올 듯한 모습에 한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바라보았다. "아빠, 아빠." 한새가 애타게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한새를 바라보았다. "아빠, 여기가 어디예요?" "..한새가 살 곳." "아빠는? 아빠도 같이 사는 거예요?" 그 하늘처럼 맑고 별처럼 반짝이는 커다란 눈으로 날 올려보며 절대 떨어지기 싫다는 듯 내 옷을 잡아끄는 한새의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도 애써 마음을 냉정하게 다잡으며 부정의 표시로 고개를 흔들었다. 한새의 눈가에 주옥같이 맑고 투명한 눈물이 걸쳤다. "..흑... 아빠.. 한새, 혼자 있는 거 싫단 말이야.. 흑..." "한새야." "흐윽.. 아빠, 한새 버리지 마.." "아빠는 한새 안 버려. 잠시 여기 사는 작은 아빠한테 한새를 맡기는 것뿐이야." 작은 아빠라는 말에 한새는 걸쳐있던 눈물을 옷소매로 쓱- 닦고는 또랑또랑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작은 아빠 앞에선 아빠가 누구인지도, 엄마가 누구인지도 모른다고 해야 해. 그리고 이름 물어봐도 대답하지 말고. 한새, 똑똑하니까 아빠 말 잘 알아들었지?" "....(끄덕끄덕-)" 그렇게 현한결 집 대문 앞에 한새를 앉혀놓고 뒤를 돌아보면 혹시나 마음이 약해 질까봐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하지만 한새가 걱정되어 얼마 가지 못해 골목에 숨어 한새를 지켜보는 내가 우습다. (꽝!!!!!!!!!) "아!!! 씨발!!!!!!!!!!!!!! 누구야!!!!!!!!!!!!!!!!!!!!!! 깡통 찬 놈이!!!!!!!!!!!!!!!!!!!!!!" 현한결이 한새를 데리고 경찰서를 데리고 가는 것을 지켜보는 내 머리로 어떤 녀석이 찬 건지 엄청난 속도로 날아온 깡통이 그대로 강타했다. 욕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다. 눈앞에 별들이 반짝거린다. "헉!!!!!!!!" 바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도망가는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헌데, 그 뒷모습이 누군가를 닮은 것 같다? "씨발!!!!!!!!!!! 미친년아!!!!!! 거기 안 서?!!!!!!!!!!" "헉.. 헉.. 미친!!!! 너라면 서겠냐?!!" 당황해 소리 지르는 목소리가 은별이의 목소리와 닮아서 더욱 열을 붙이고 쫓았다. "씨발! 감히 내 귀하신 머리를 맞추고 안 멈춘다 이거지? 오호라, 너 잡히면 족쳤어!!!!!!!!!!!! 더 열 받기 전에 웬만할 때 멈춰라!!!!!!!!" 이렇게 소리치면 멈출 줄 알았더니 그녀는 더욱 속력을 내었고, 결국 난 내 앞에 있던 은별이를 놓치고 말았다. 분명 은별 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안일한 생각에 발걸음을 돌렸는데… 그 때, 죽을힘을 다해 뛰어 그녀를 잡았다면 그녀가 현한결을 사랑하지 않았을 텐데. ............................ * * * "형, 학교에서 들려오는 소문인데요. 한겨울과 은별이 누나 오늘 깨졌대요." 반란을 꿈꾸는 세력을 관리하는데 시간을 보내기 바빴던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 동안 그녀를 찾지 못 했다. 헌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내가 붙여준 한겨울과 은별이가 깨졌단 소식이 들어왔다. "재아야. 한겨울, 당장 전학시켜." "네. 아. ....그리고 형." "왜?"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은별누나가 현한결과 함께 살고 있다고...." "천재아, 입 닥쳐." 믿고 싶지 않았는데… 정말 믿고 싶지 않았는데… 다음에 다시 은별이를 만났을 땐, 이미 그녀는 현한결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녀가 현한결에게 상처받고 있을 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내가 만약 진짜 채은하라면 현한결로 가득 찬 네 마음이 날 받아줄 수 있을까?" "..뭐?!" "정말로 그렇다면 다시 너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 그녀의 대답엔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아니, 넌 은하오빠가 아닐 뿐더러.. 만약 은하오빠라고 해도 내 마음엔 이제 아무도 들어오게 하고 싶지 않아! 난 우리 은결이.. 은결이를 찾아야 해!!!! 그러니까 제발, 내 눈앞에서 꺼져!!!!" 그녀의 기억은 정말 깨끗하게 나를 지웠나 보다. 나란 사람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은별이의 마음이 내게서 떠난 것은 나의 증오의 불길에 폭탄을 던져 놓은 셈이 되었다. . . . "내가 부셔진 만큼 너도 이렇게 부셔지게 될 거야. 현한결." 난 서둘러 반란을 꿈꾸는 세력을 정비하고 전쟁을 준비했다. 형, 미안해요. 형의 부탁 들어주지 못할 것 같아요. 가슴이 아파서, 도저히 은별이 없인 살아갈 수가 없는 저예요. ................................................................................................ .................................................... 현한결, 너와 난 끝과 끝인가 보다. "은하형이 말했던 신뢰와 의리란 게 이렇게 싶게 무너지는 건가? 시시하군. 정말 시시해. 역시 은하형이 착각했던 거야. 자, 이제 신유빈, 민태하, 너의 오른손과 왼손이 다 떨어져 나갔군. 이로써 전쟁이 시작도 되기 전에 넌 네 세력의 1/2을 잃었다. 이제 진사랑과 너 둘이서 나에게 맞서야 하는 건가? 너한텐 역부족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어때? 재미있는 전쟁이 될 것 같지 않나? 현한결." 또 다시 예전의 소리장도(笑裏藏刀)의 모습을 한 나로 돌아갔다. 협상을 안 해주면 교도소에 들어가게 될 신지빈의 상황을 이용해 신유빈을 이용했다. 태후 아저씨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이용해 민태하의 약점을 잡았다. 현한결, 넌 이미 내 상대가 되지 않는다. 난 꼭 널 꺾고 은별이를 내게로 돌려놓을 것이다. ............................................. ...................... ...................................................... ..................처음과 같이 이제와 영원히.................... ............................................................................ ..................................................................................... * *　　　　　　　　　　　　　　　　　＊　　 바다에서 밀물이 물밀듯이 밀려오듯 모든 기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깨질듯이 머리는 아파 왔지만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된 은별은 자신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현을 응시하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흑... 흑... 현아... 현아...." 현의 길고 긴 과거의 얘기가 모두 끝이 났다. 재아가 그들 곁으로 다가와 은별을 묶고 있던 끈을 풀어주자 그녀는 자신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현을 끌어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미안해, 현아... 내가 미안해.. 다시는.. 다시는... 흡..."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한결은 희미해지는 정신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당장이라도 끌어안고 있는 저 둘을 떼어버리고 싶었다. 은별을 부르고 싶은데 입이 말을 듣지 않고, 정신만 희미해졌다. "은......별........." 이대로 정신을 놓으면 은별을 다시는 보지 못할까 두려웠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는 정신은 그대로 자신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은....별아........." 한결은 그대로 조그맣게 은별의 이름을 되뇌며 정신을 잃었다. 131. * * * (털썩-) '하.. 한결아?!!!' 한결이 정신을 놓고 쓰러진 것을 본 후에야 은별은 현의 품에서 벗어났다. 기억이 돌아온 은별으로선 쉽사리 현을 뿌리치고 쓰러진 그의 곁으로 갈 수 없었다.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는 그녀를 보며 현이 한숨을 쉬곤 재아에게 손짓을 했다. '네, 119죠. 여기 신영고등학교인데요. 급한 환자가 있거든요. 빨리 와주세요!' 그의 손짓에 재아는 알았다는 고개를 끄덕이곤 곧장 119를 불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싸이렌 울리는 소리가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기존 세력의 서열 1위 포커스가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에게 무릎을 꿇었다!' 한결이 현에게 참패한데다 그의 앞에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고, 남아있던 기존세력 일진들 모두 그 광경을 보고 자진 싸움을 포기했다. 전쟁은 반란을 꿈꾸는 세력의 완벽하고 치밀한 승리로 끝이 났고, 기존 세력의 일진들은 모두 반란을 꿈꾸는 세력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학교마다 하루만에 반란을 꿈꾸는 세력의 일진들이 주름을 잡기 시작했다. ‘현아, 부탁해. 한결이가 의식을 차릴 때까지만 곁에 있을께.’ 정신을 잃은 채 병원에 실려온 한결을 진단한 의사는 그가 생명에 지장이 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의식이 돌아오길 꺼려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의 진단을 전해들은 은별이 어쩔 줄 몰라하며 간곡하게 현에게 부탁하자 그는 잠시 망설이다 그녀에게 소리쳤다. ‘싫어. 더 이상 기다리는 거 너무 힘들어! 저 녀석이 안 깨어나면 어떡케 해?! 난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타 들어가는 내 마음은 안 보이고 저 녀석만 보이는 거야?’ ‘그런 게 아니잖아!!! 난 너한테 돌아갈 거야! 한결이가 의식을 차릴 때까지만 있을 게. .........이별의 말은 내 입으로 전하고 싶어.... 부탁해.... 현아. 부탁해.....’ ...이별의 말... 그녀의 말끝이 가냘프게 떨렸다. 기억이 돌아온 은별의 마음엔 오로지 혼란뿐이었다. 분명 지금은 한결을 사랑하지만 자신 때문에 눈을 잃었던 현을 다시 외면할 수 없었다. 예전처럼 그녀는 상처받은 현에게 마음을 주어야 한다. 마음을 정리해야 했다. 어차피 결과적으로는 현에게 돌아가야 했지만… 이대로 이별을 고하지 않고 한결을 떠나기엔… 너무 가슴이 아팠다. ‘.....후우.....알았어.’ 현과의 약속을 회상하다 문득 은별은 바람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새하얀 벽과 차가운 대리석 바닥, 지독한 소독약 냄새가 풍기는 이 곳. 대학병원의 한 일반병실에서 이틀째 뜬눈으로 날을 지샌 은별은 새빨갛게 충혈 되고 퉁퉁 부은 눈으로 자신 앞에 누워있는 한결을 바라본다. "하아..." 병실 안에서 그녀의 낮은 한숨이 울려 퍼졌다. 이틀이 지났건만 한결의 의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의 의식이 돌아오면 그녀가 떠날 것이란 것을 알고 있듯이… 그는 의식이 돌아오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덜컥-) "우앙~ 한결아아아아아아아~!!!!!!" 의식이 없는 그를 보며 은별이 눈물을 지으려는 찰나, 거대한 소음과 함께 한결의 이름을 부르며 막무가내로 병실 문을 연 건 사랑이었다. 술이 얼근하게 취한 듯 붉어진 얼굴을 한 채,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며 그는 쪼르르 달려와 죽은 듯이 누워있는 한결의 손을 꼭 잡으며 소리쳤다. "한결아아아아~ 어울리지 않게 왜 의식불명이야~~!!!! 흑!!!! 일어나란 말야~~~~ 끅, 반란을 꿈꾸는 세력이 우리 세력 막 무시하고!!!! 끅끅... 괴롭히고~~~ 인간 대접도 안 해줘!!!! 억울해~~~ 흐앙~~~!!!" "헉!! 사..사랑아, 무..슨 짓이야!!!!" 완전 어린아이의 투정보다도 사랑의 투정은 더 심했다. 뒤쫓아 들어온 아리가 술김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음을 터트린 사랑을 보고 적잖이 당황한 듯 서둘러 달려와 그를 말렸다. 사랑은 자신을 말리는 아리를 뿌리치며 술김에 저지른 자신의 막가는 행동에도 미동도 없는 은별에게 불똥을 튀겼다. "한결이 마누라!!! 넌 우리 한결이 안 지키고 뭐한 거야!!! 끅- 한결이 아프잖아!!!! 흐앙!!!! 태하도 없고, 유빈이도 없는데!!! 한결이 마누라, 넌 대체 뭐한 거냐고!!!! 너 정말.. 끅... 미워..." "사.. 사랑아, 그만해!!" "놔- 씨이.. 끅, 태하만 있었어도, 유빈이만 있었어도 이렇게 비참하게 당하진 않았어.. 끅!!! 선우 현, 그 놈이 뭔데!! 내 친구를 이렇게 만들어 놓냐고!!!!! 씨이!!!" 사랑은 아리의 손길을 계속 거부하며 대꾸도 없는 은별을 노려보며 계속 소리쳤다. 그의 어린아이 투정 같은 외침에도 은별에겐 비수가 되어 그녀의 심장을 찔렀다. 그녀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떨어졌다. "그만해, 진사랑. 현이 욕하지마. 다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 바보같이... 바보같이... 내가 모든 걸 잊어서 그래. 그러니까 현이 욕하지마." 은별의 입에서 진지하게 쏟아져 나오는 말에 사랑은 술에 취해 초점 없는 눈으로 애써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응시하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왜 은별의 얼굴이 7개로 분산되어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일까? 사랑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 "별딱지야, 너 원맨쇼해? 얼굴이 7개로 보여~ 키키~ 칠면조다! 칠면조!" 얼굴이 7개로 보여서 칠면조라니?! 이게 웬 뚱딴지같은 소리? 사랑이 진지모드로 나올 때부터 알아봤다. 역시, 진지는 사랑에게 절대 어울릴 수 없는, 범접할 수 없는 범위인가 보다. 은별은 어이가 다 빠져나간 듯 고개를 휘휘- 내젓다가 이내 아리와 눈이 마주쳤다. 잠깐, 사랑과 아리가 여기에 있다? 그럼 가장 중요한 은결이는?! "민아리! 우리 은결이는?!!!" 은별의 다급한 외침에 아리가 깜짝 놀란 듯 숨을 힘껏 들이셨다. 아리가 한결의 부탁을 받고 은결이 다니는 유치원에 갔을 땐 이미 한결의 아버지라고 칭한 사람이 은결을 데려갔다고 유치원 선생님이 말했다. 그녀는 급한 마음에 그런가 보구나 하고 넘어갔는데, 막상 세력들의 전쟁이 끝나고 이렇게 은별이 물어오니 그녀 역시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아! 그게… 그러니까…" 아리가 말을 얼버무리고 있을 때, 때마침 끼익- 쇳소리를 내며 병실 문이 열렸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그 곳으로 향했다. 문에선 대여섯명의 까만 양복을 입은 체구 좋은 6명의 남자가 우르르 몰려 들어오더니 그 뒤로 근엄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카리스마 넘치는 중년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병실 안을 쭉- 둘려보더니 이내 한 곳으로 시선이 고정되었다. "처음 보는군. 그 쪽이 채은별양인가?" 옆에 서 있는 아리나 사랑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한결과 같은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중년의 남자의 강렬한 시선이 은별에게 쏟아졌다. 날 알고 있다? "네, 제가 채은별인데요." 은별은 퉁퉁 부은 눈을 깜박거리며 그의 시선에 시선을 맞추며 대답했다. 그는 그녀의 시선을 깔아보며 의식이 없어 죽은 듯 누워있는 한결의 상태를 쓱 둘러보았다. 한결에게서 눈을 떼지 못 하던 그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린 것은 얼마 지나서였다. "별로 유쾌한 만남이 될 것 같진 않군. 난 현한결의 아비인 현한준이라고 하네."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는 그를 바라보던 은별의 시선과 안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전에 한결이 말한 바와 같이 무섭도록 시린 냉기를 품은 사람이었다. 혼란 속에서 한준의 등장으로 인해 은별이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쯤, 사랑은 그저 풀린 눈으로 한준을 바라보곤 헤헤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헤헤~ 끅- 아리야♡, 저 사람이 한결이 아빠래~ 끅~ 한결이처럼 진짜 무섭게 생겼네~ 끅~ 호랑이 같아~ 어흥~~! 은결이가 보면. 끅- 자지러지게 놀라서 도망가겠다. 그치~~~~?" "사.. 사랑아..ㆀ" 나사 빠진 사람처럼 사랑의 술 주정은 점점 더 강도가 높아졌다. 아무리 아리가 옆에서 달래도 사랑은 인사불성(人事不省)이었다. 사랑아, 너 그러다 나중에 한 대 맞아! 한준의 얼굴엔 언짢은 기색을 완연하게 드러내며 자신을 보며 굳어있는 초췌한 은별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나하고 잠시 조용한 곳에서 얘기 좀 하지." ........................................... ................................................................ [Q카페] 한준이 은별을 데리고 무작정 온 곳은 예전에 현이 그녀를 끌고 왔던 노란 장미로 카페 전체가 장식된 것이 인상적이었던 Q카페였다. 그는 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은별 역시 그의 앞자리에 다소곳이 앉았다. 그가 먼저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뗐다. "채은별양. 시간도 별로 없으니 긴 말 하지는 않겠네. 한결이와 은별 양의 마음이 더 깊어지기 전에 한결이 곁에서 당장 떠나주게."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황이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한준의 말은 은별에게 과히 충격적이었다. 당장 떠나달라니? 한결의 의식이 돌아오는 것이라도 보고 싶었던 은별이다. "하지만...." "은별 양의 동의를 구하려고 물어본 것이 아니네. 한결이 녀석의 의식이 돌아오는 대로 예빈 양과 약혼을 시킬 거니까. 그 녀석의 골목대장 놀이를 언제까지고 지켜볼 생각은 없네." 예빈과 한결의 약혼. 그 소리를 들으니 은별의 가슴이 찢어질 듯 아려왔다. 하지만 현을 생각하면 그녀는 한결을 떠나야 했다. 그를 떠나서도 울지 않을 수 있을까? 현의 곁에서 웃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게 자신과 한결을 따르던 은결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한결과 은결만이 연약한 그녀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는데. "하지만... 하지만!!! 아버님도 알고 계실 지는 모르겠지만... 한결이하고 저 기르는 아이가 하나 있어요. 우리 은결이는... 은결이는 어떻게 하죠?!" "후- 그것도 은별 양이 신경 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네만? 어차피 그 아인 내 자식이었던 한얼이의 아이가 아닌가. 뭐 좋은 곳으로 입양시켰으니 은별 양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은별 양이 낳은 자식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긴말 말고 떠나주게." "하...." 한준의 말에는 한치의 감정도 없었고, 오직 계산된 치밀함뿐이었다. 은결이가 한결의 아버지 한준의 손에 의해 다른 곳으로 입양되었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마치 머리가 백짓장이 되기라도 한 듯. "할 말이 끝났으니 이만 일어나지. 은별양은 오늘 내로 떠나주게." 초점이 풀린 눈으로 멍하게 자신을 응시하는 은별을 보며 한준이 냉정하게 마지막 말로 그녀를 확인사살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찬바람을 일으키며 그가 떠난 후에도, 그녀는 한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한결아, 은결아. 미안해. 내가… 내가… 지켜주지 못해서…" 결국, 그녀의 충혈 되어 핏발이 선 붉은 눈에선 또 참지 못하고 눈물이 떨어졌다. 그녀는 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소매로 닦으며 홀로 중얼거리며 일어섰다. "태하를 찾아야 해. 민태하를… 한결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그녀는 자신이 사라지고 나면 이미 현에 의해서 무너진 한결이 끝도 한도 없이,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지는 것을 방관할 수 없었다. 한결의 가장 큰 버팀목이었던 그의 그림자, 민태하를 찾아야 했다. 그가 무너져도 옆에서 무너지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는 태하를... 은별은 입술을 꼭 깨물며 사라진 태하를 찾아 길을 떠났다. 132. 냉기를 품은 바람이 황량한 운동장을 휩쓸고 지나갔다. 태하의 주소라도 찾을 심정으로 무작정 명문고등학교로 달려온 은별이 급하게 숨을 몰아쉬며 교무실을 찾아 헤매었다. "어? 쟤 포커스 깔 아니야?" "그러게, 세력전쟁에서 진 포커스도 얼굴 들기 힘들텐데 깔이 여긴 웬일이야?" 명문고 여자 일진들로 보이는 몇 명의 학생이 그녀를 보며 수군거렸다. 그들이 중얼거리는 소리 하나하나 칼날같은 비수가 그녀의 가슴을 찔러댔다. "하아... 한결아. 나 너무 아프다." 아팠다. 그들이 하는 소리는 그녀에겐 너무 아팠다. 초점 없는 눈을 하고 맥없이 비틀거리며 중얼거리던 그녀가 복도 저편 끝에서 부리나케 달려오는 한 남학생과 부딪혔다. 그 충격으로 인해 그녀는 복도에 나뒹굴게 되었고 휘청거리던 그는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아, 미안." 사과하는 남학생의 목소리는 어떠한 감정도 없이 무뚝뚝했다. 은별은 그가 내민 손을 잡으며 고개를 푹 숙인 채 성의 없게 끄덕였다. 그리곤 그의 손을 놓고 다시 돌아가려 하는데 그가 은별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 "찾고 싶은 게 있나보지?" 자신이 마음을 읽는 듯 정곡을 찌르는 그의 딱딱한 말에 그제야 고개를 드는 은별이다. 180cm가 넘는 큰 키에 어울리는 교복을 흐트러짐 하나 없이 단정하게 입고 백옥같이 하얀 피부에 눈썹 위까지 덮는 결 좋은 보라색 빛 도는 머리칼과 연한 회색 빛 눈을 가진 조각같이 수려한 외모를 지닌 남학생이었다. "...누구?" "교무실은 바로 위층에 있어." 그 수려하면서도 단정한 외모의 남학생은 그녀의 마음을 읽는 듯 툭툭 말을 뱉었다. 은별은 한편으론 당황하면서도 한편으론 초점 없는 눈으로 신기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네 선택에 후회가 없기를… 방황이 없기를… 눈물이 없기를…" 마치 그녀의 심리를 다 파악한 듯 그는 냉정하면서도 차분히 말을 뱉고 뒤돌아 섰다. 알 수 없는 신비감과 묘한 감정에 둘러싸인 은별은 그를 다시 부를 수밖에 없었다. "저.. 저기 넌…" "내 이름은 사군자현(死君子賢). 인연과 필연. 너와 나의 만남은 우연 아닌 필연. 우리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지만. 난 길잡이. 그리고 넌 길을 찾는 자. 하지만 가끔은 뒤에서 널 지켜보는 그림자도 돌아봐 줘." 그녀의 생각,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다는 듯 그는 그렇게 알 수 없는 말을 천천히 말하며 그녀 앞에서 멀어져갔다. 마치 환상을 본 듯 은별은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교무실을 찾아 그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갔다. "학샹은 누구랑께?" 머리가 반쯤 벗겨진 학주선생님의 머리가 그녀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놀라 더욱 반짝거리는 머리를 노란 손수건을 꺼내 쓱쓱 문지르며 그녀에게 다가와 억양이 어눌한 사투리를 쓰며 물었다. 문득, 왠지 모를 서러움 때문에 눈에 주옥같은 눈물이 한 가득 고이는 은별이다. "학샹?!!?" 뚝뚝- 수정같이 맑은 눈물을 하염없이 떨어뜨리는 그녀를 보며 당황한 학주선생님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난감한 듯 갈매기 눈썹을 찡그렸다. 은별은 너무 울어서 약간 갈라지는 목소리를 내며 간신히 말을 했다. "태하, 민태하 주소 좀 알려주세요. 급해요. 제발…" "시방 학샹이 말하는 민태하 주소라믄… 2학년 7반의 민태하 그 쉐이 말인가?" "네! 맞아요." "그 미친 쉐이, 아프다고 학교 안 쳐 나온 지가 퍼뜩 2주가 다 되어 가는데…"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그녀의 애처로운 모습에 선생님은 쯧쯧- 혀를 차며 학생기록부를 뒤지더니 금세 태하의 주소를 적어 은별에게 건넸다. "야 만나믄 당장 학교 쳐 오라고 꼭 좀 전해 주그라. 감히 내가 있는데 거 아프다고 학교를 2주나 안 쳐오나?! 담주도 안 쳐 나오믄 다리몽뎅이 두 쪽으로 뽀샤버린다 전하그라." "네ㆀ 감사합니다." 학주 선생님의 눈은 바른 학생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로 불타올랐다. 왠지 그녀의 눈에서 흐르던 눈물이 쏙 들어가 버렸다. 민태하. 너 학교 오면 다리가 성하지 않겠다. 은별은 식은땀을 흘리며 깎듯이 몇 번이고 고개를 숙여 정겨운 사투리를 쓰는 학주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서둘러 학교를 빠져 나왔다. [태하의 집] 태하의 집은 학교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 시간이 얼마 지체되지 않았다. 그의 집은 그리 넓어 보이진 않았지만 혼자 살기엔 적당히 아담하면서도 담에 펼쳐져 있는 담쟁이 넝쿨이 꽤나 인상적이고 소박하게 보였다. "후우.." (띵동- 띵동-) 은별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초인종을 눌러댔다. 그러자 곧이어 나긋하면서도 마성을 지닌 듯 매력적인 여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구세요?] 에에? 왠 여자?!! 여자?!! 여자라니?!!!! 당황한 은별은 얼굴이 확 달아오르며 말까지 버벅거리며 간신히 대답했다. "저.. 저 미..민태하씨댁 집 아닌가요?" [누구세요?] "아.. 저.. 전 채은별이라고.. 하는..." (철컹-)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대문이 열리곤 황당해하는 은별 앞으로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절세가인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소녀와 그녀와 어울리는 그야말로 군계일학(群鷄一鶴)과 같은 소녀 나이 또래의 소년이 달려왔다. 오늘 뭔 날인가 보다. 왜 이리 눈에 선남선녀만 보이는 것인가?! 가뜩이나 충혈 된 눈에 더 피로가 몰려오는 듯한 기분이 드는 은별이다. "당신이 채은별이에요?!" 다짜고짜 그 미색의 소녀가 은별의 손을 꼭 잡으며 다급하게 물었다. "네.. 그..그런데요?" "우리 태하오빠… 우리 태하오빠 좀 살려줘요!!!!" "그게 무...무슨…?" "태하오빠가 2주 동안 물 한 모금 안 먹었어요!!!!! 2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언니 이름이랑 한결오빠 이름만 되뇌며 그저 허공만 바라봐요. 제발, 태하오빠 좀… 태하오빠..... 흡..." 소녀는 끝내 참지 못하고 큰 눈망울에서 눈물을 떨어뜨렸다. 가늘게 떨리는 소녀의 어깨를 따뜻하게 소년이 끌어안았다. "초아야, 울지 마." "지율아... 흑.. 태하오빠 어떻게 해.. 흡..." 지율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트리며 초아를 향해 은별이 입술을 꼭 깨물며 단호하게 말했다. "날 좀 태하에게 안내해 줄래요? 부탁해요." ................................................. ............................................................. [태하의 방] "여기에요. 문 열고 놀라지 말아요." 태하의 사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초아와 그녀의 남자친구라는 지율의 안내로 태하의 방 앞까지 오게 된 은별이 방문을 살며시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간 순간 기절할 만큼 놀랐다. 꽃병이 깨져 파편이 이리저리 널려있는데다가 책들이 이곳저곳 펼쳐져 있고, 태하는 침대 옆 작은 공간에서 공허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민태하." 자신을 부르는 그녀의 슬픈 목소리에 초점이 없는 그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태하야...." 듬성듬성 자라 얼굴을 뒤덮은 수염과 퀭하게 들어간 생기 없는 눈.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린 태하의 얼굴과 행세는 엉망진창이었다. 은별은 애써 눈물을 참으며 그의 앞으로 다가가 말을 꺼냈다. "민태하, 너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너 정말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애야?!" "...나가.." 그녀의 외침에도 태하의 반응은 냉담했다. "민태하!!!" "나가 줘." "...태하야.. 태하... 민태하.... 흑...." 은별은 눈물을 쏟으며 무너지듯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행동에 안절부절 하는 그의 생기 없는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그녀는 옷자락을 손으로 꾹 쥐며 고개를 숙인 채 소리쳤다. "한결이가 세력 전쟁에서 졌어!!! 게다가 의식까지 잃어버렸어!!! 한결이… 의식 찾으면 끝도 없이 무너질 지도 몰라. 네가 필요해. 태하야!!!" "...세력 전쟁에서... 졌다고...? 게다가 의식 불명...?" "부탁해!!!! 태하야!!! 부탁해…" "...채은별? 너 정신 나갔냐? 천하의 현한결이 졌다고? 천상천하 유아독존 현한결이 뭐가 어쩌고 어째? ....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감정 없이 말한다고 소리친 태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냉정을 잃은 듯 심하게 떨려왔다. 은별은 다시 한 번 태하의 눈에 시선을 맞추며 간절하게 말했다. "부탁해. 태하야. 한결이한테로 돌아가자. 응? 부탁해..." ".........." "태하야..." ".....난 안 가. 아니 못 가.... 이미 난 그 녀석의 친구가 아냐. 난 그저 그림자였을 뿐이야. 난 그저 한결이가 되고 싶었던 비겁한 녀석이야." 빈정 되는 듯 비아냥거리는 그의 말에 그녀의 눈에 순간 냉기가 흘렀다. (찰싹-) 그녀가 눈물을 닦던 손으로 멍하게 있는 태하의 싸대기를 힘껏 때렸다. 그런 은별은 어이없게 바라보는 그를 응시하며 그녀가 소리쳤다. "민태하!! 한 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 몰라?! 친구가 친구를 닮고 싶어하는 건 당연한 거야!! 바보야!!!! 한결이한테는 네가 가장 큰 버팀목이라는 것 몰라?!! 이 바보!! 멍청이!!! 해삼!! 말미잘!! 지렁이!!! 돼지!!! 호빵!!!!!!!!!!!!!!!" 눈물을 글썽이는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정신없게 듣던 태하는 은별의 말이 끝나자마자 황당한 듯 일그러진 표정을 짓다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하............ 하하하하... 채은별...... 넌 정말.... 쿡쿡....." "뭐야? 민태하....?! 왜 웃어!!! 남은 심각한데!!!!" ".....하하하하... 큭...." "야!!!!!" 숨이 넘어갈 듯 한참을 웃던 태하는 이내 무표정으로 돌아오며 그녀를 향해 말했다. "고맙다. 네 덕분에 제 정신이 돌아온 것 같다. 한결이, 입원한 병원 어디냐?!" 133. * * * . . "은별언니. 고마워요. 태하오빠,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줘서..." 태하가 한결을 만나러 준비해야겠다고 욕실로 들어간 사이, 그의 집을 나서는 은별에게 초아가 연민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매력적이고 나긋한 마성(魔性)의 목소리로 말했다. "아냐. 나야말로 고마워해야 해… 난 은결이 데리러 가야한다고 전해줄래? 그리고 태하한테 내 핸드폰 놓고 가니까 한결이한테 가면 전해달라고 해 줘. 내가 은결이 데리고 병원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결이가 먼저 깨어나 있으면 한결이한테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문자 꼭 보라고 전해달라고 해 줘." "알았어요. 그렇게 전할게요." 초아에게 몇 번이고 당부하고 그 대답을 듣고 나서야 은별은 발걸음을 옮겼다. 현의 오피스텔로 향하는 은별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미안해. 태하야. 널 속여서… 나 없이 무너질 한결이 잘 돌봐 줘...’ 은결이 입양되었다는 것도… 자신이 한결을 버리고 현에게 가야한다는 것도… 은별은 아무 것도 모르는 태하에게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 태하가 지금 자신이 한결을 떠난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분명 자신을 붙잡을 것이다. 만약 한결이 의식을 차려 태하에게 맡긴 은별의 핸드폰을 받게 된다면… 핸드폰 문자 보관함에 저장되어 있는 자신의 이별의 말을 보게 된다면… "한결아... 나 잊어야 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잊어야 해..." 그녀는 주위에서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시선에도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이제 영원히 안녕이다. 한결도, 은결도, 태하도, 사랑도, 아리도… 어릴 적 아무 것도 모를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모든 걸 잊고 싶었다. 모든 걸… 그녀의 머릿속엔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뒤엉켜 견디기 힘든 어지럼증을 몰고 왔다. [딩동- 딩동-] [누구세요?] "현...........아..............." 가까스로 간신히 현의 오피스텔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른 그녀는 현의 시니컬한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녀의 머리를 짓누르는 어지럼증에 의해 차디찬 바닥에 쓰러졌다. "은별아?!!!!! 정신차려!!!!" 그녀는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채 곧장 자신에게로 뛰쳐나온 현을 보며 그대로 정신을 놓아버렸다. ....................................................................................... .......................................................... .................................................................................................. [한결의 병실] 한결의 병실 앞에서 문을 바라보며 태하는 떨리는 손으로 손잡이를 잡았다. 문 뒤로 이미 패배감으로 물든 한결이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지기 싫어하고, 남 앞에서 무릎을 꿇기 싫어하는 녀석인데… 자신이 떠나지 않았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지지는 않았을 텐데… ‘난 은결이 데리러 가야하니까 좀 있다 한결이 병실에서 보자.’ 은별의 쓸쓸하고도 애처로운 마지막 모습 역시 그의 마음에 걸렸다. 오만가지로 드는 생각에 태하는 쉽사리 병실 문을 열 수가 없었다. (달칵- 퍽-) "아오.. 씹.." 그렇게 그가 망설이며 열지 못 했던 병실 문은 병실 안에 있던 누군가에 의해 갑작스럽게 열렸고, 생각에 잠겨있던 태하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문에 얼굴을 맞고 말았다. "이씨!! 한결이 바보!!! 깨어나서도 별딱지만 찾냐!!! 치치~ 너무해!!" "잔소리 말고 얼른 안 찾아와?! 씨팔!!!" "치~ 한결이 바보!!! 말미잘!!! 도롱뇽!!! 파충류!!! 금붕어!!!! 너희 아빠가 데리고 갔는데 나보고 어디서 찾으라고!!!!" "내가 왜 금붕어냐? 금붕어는 기억력 2초 병아리잖아. 잔말 말고 얼른 가서 찾아 와." "에이씨!!! 한결이 미워!!!!!! 엿이나 먹어랏!!!!" 의식을 차린 한결에게서 은별을 찾아오란 소리에 삐진 사랑이 병실 문을 열며 한결과 한참을 말다툼하던 중 이내 포기하고 고개를 돌린 순간, 자신의 앞에 떡 하니 서 있는데 태하의 모습을 보고 기겁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어..? 어라....? 어!!!!!! 이게 누구.. 누구야!!!!!!!! 미...미...민태하?!!!!" "뭐? 민태하..?!!!!" 병실 침대에 누워있던 한결이 사랑의 외침에 놀란 듯 자동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아앙~!!!!!! 태하야!!! 너 얼굴이 왜 이래?!! 누구한테 맞았어?!!!" 사랑이 태하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의 얼굴에 부풀어오르며 생긴 빨간색 줄을 보더니 이내 울먹거리다 울음을 터트리며 한 걸음에 달려가 그를 부둥켜안으며 소리쳤다. "어떤 놈이야!!! 우리 잘 생긴 태하의 얼굴을 때린 놈이!!!!!!!" ‘너 때문에 생긴 거잖아. 임마. 그리고 왜 우리냐? 난 나고 넌 너다.’ 생각에 잠긴 태하는 여전히 변함없이 자신에게 떼쓰는 사랑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짓고는 이내 몸을 일으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한결과 시선을 마주했다. "흐앙~~~~~ 태하야!!!!!!!!!!!!!! 사랑이 태하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한결이가 태하랑 유빈이 없으니까 히스테리를 매일 나한테만 부리고!!!!! 흐앙!!" "씨발, 무슨 낯짝으로 여길 쳐 왔냐?" "...................." 사랑의 징징거림 뒤로 한결의 얼음보다도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답이 없는 태하를 보며 한결은 어떠한 표정도 담지 않은 얼굴과 어떠한 감정도 담지 않은 시선으로 태하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잘도 날 외면하고 돌아섰잖아? 무슨 낯짝으로 여긴 쳐 왔냐고." (털썩-) "태...태하야?!" 순간이었다. 태하가 한결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은 것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태하는 한껏 긴장한 목소리로 한결에게 말했다. "미안하다. 현한결. 나란 놈이 못 나서… 나란 놈이 비겁해서… 그 자리를 모면하고 싶어서, 도망치고 싶어서 널 외면했다.… 네가 패고 싶다고 죽을 만큼 패고 되고 날 이용하고 싶다면 죽을 만큼 이용해도 된다. 그저 네 옆에만 있게 해 줘라. 네 행복한 모습 지켜볼 수 있게 네 옆에만…" (퍽!!!!!!!!!!) "하..한결아?!!!! 무.. 무슨 짓이야!!! 태하한테!!!" 무릎을 꿇은 채 부탁하는 태하의 얼굴을 주먹으로 강타하는 한결의 모습에 지켜보고 있던 사랑이 기겁을 하고 소리를 질렀다. 한 번도 자신의 친구들에게 손을 댄 적 없는 한결이었다. 한결은 더욱 더 차갑게 변한 시선으로 자신의 주먹에 맞고 너부러진 태하를 쏘아보았다. "씨발, 누가 내 앞에서 무릎 꿇으라고 했냐?! 씹..." 태하는 입가에 나는 피를 훔치며 다시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고 말했다. "현한결, 네가 나 용서해 줄 때까지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꿇는다." "씨발!!!" (퍽!!!!!!!!!!) 이번엔 반대편 볼에 한결의 주먹을 맞고 다시 한 번 쓰러진 태하다. 그런 그를 향해 한결이 불만이 가득 담긴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씨팔!!!! 너 귀 먹었냐?! 친구가 친구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게 어디 있냐고!!!!" "한결이 너.... 그.. 말...?" 몸을 일으켜 다시 무릎을 꿇으려던 태하가 경직된 자세로 한결을 바라보았다. 분명 한결의 말은 자신을 용서한다는 말과 같은 것이었다. 움직이긴 커녕 미동조차 하지 못하는 태하를 향해 한결이 다시 말을 뱉었다. "난 널 처음 만난 이후로 단 한 번도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한 적 없다. 네가 날 외면했어도 넌 내 친구였고, 선우 현에게 간 유빈이 녀석도 내 친구다. 나 그렇게 밴댕이 소갈딱지 만한 아량을 지니고 있는 놈 아니다." "현한결... 너..." "꺄아아아~ 역시 우리 한결이~ 짱 멋져!!!♡ 헤헤~ 암기하고 있다 나중에 써먹어야지!!!" 태하가 미처 감동하기도 전에 진지한 분위기를 홀랑 흩트려놓는 사랑이다. 저 자식을 그냥 확!!!! 동시에 같은 마음이 드는 한결과 태하다. 한 대 쥐어 패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한결이 사랑을 향해 소리쳤다. "씨팔!!! 너 내가 채은별 찾아오라고 했지?!!! 얼른 안 쳐 가냐?!!!" "히잉~ 한결이 너무해!!! 태하한테 멋진 말만 해주면서!!!!!!!!" "야! 진사랑!" 울먹이며 뛰쳐나가는 사랑을 부른 건 태하였다. ‘역시 태하 밖에 없어!’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확인 사살을 날리는 태하다. "채은별, 집에 있을 거다. 거기로 뛰어가 봐." "우씨!!!!!!!!!!!!!! 너희 둘 다 미워!!!!!!!!!!!!!!!!!!!" 사랑의 눈물 어린 외침이 병원을 뒤흔들 정도로 크게 울려 퍼졌다. 134. "히잉, 태하도 한결이도 다 미워. 매일 나만 괴롭히고!!!" 울부짖으며 병원을 나선 사랑은 태하와 한결이 감동의 재회에 끼어주지 않는 것에 불만이 많은지 볼에 바람을 가뜩 집어넣었다 다시 빼기를 반복하면서 궁시렁 거렸다. 문득, 사랑이 고개를 젖혀 하늘을 바라보았다. 비가 올 듯 구름이 잔뜩 낀 날씨가 꾸물꾸물하니 기분까지 침울해지는 것 같았다. "칫.- 3- 기분도 안 좋은 데 날씨까지 꿀꿀하고! 노래나 불러야지~♬ 시원한 열대 과일 코코넛~ 두구두구두두~♪ 나무 위에 줄줄이 줄줄~♬ 큰 것~♬ 작은 것~ 아주 맛있겠네~♩ ..............어라..........!?" 한결의 집으로 향하던 사랑이 어느 한 건물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젠장! 은별아. 정신 좀 차려 봐!" 한 남자가 사랑을 지나쳐 어디론가를 향해 허둥지둥 달려갔다. 소리치며 정신없이 뛰어가는 남자는 분명 선우 현이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 정신을 잃은 건지 업혀 있는 은별의 모습을 보곤 사랑은 상황파악이 안 된 건지 한참을 굳은 채 그 자리에 못이 박힌 것처럼 서 있었다. "분명 재수만땅 싸가지 선우 현이랑.......외계에서 날아온 별딱지였는데....? 한결이 아빠랑 얘기하러 간 별딱지가 왜 재수 없는 선우 현 등에 업혀 있는 거야?!" 사랑은 애써 진실을 외면하려 하면 머리를 굴려보지만 결론은 하나밖에 없었다. "서... 설마, 선우 현도 깐따라삐야 별의 외계인인 건가? 채은별, 동지끼리 만나서 한결이 버리려고 그러는 거지... 지금...?" 사랑의 말을 해석하자면 분명 은별이 한결을 버리고 선우 현에게 갔다는 말이다. 그의 마음은 걱정과 불안이 뒤섞여 다급해져 왓다. "하..한결이, 한결이한테 가야해!" 사랑은 ‘말도 안 돼.’란 말을 연발하면서 발걸음을 돌려 한결이 입원한 병원으로 향했다. [한결의 병실] "................." 태하와 한결, 둘만 남은 병실엔 정적과 침묵이 맴돌고 있었다. 의식을 차린 한결의 기쁜 마음은 한 순간뿐이었다. 의식이 돌아온 그의 머리 속에서는 다시 세력 전쟁에서 졌다는 사실과 서열 1위 자리를 빼앗겼다는 사실에 대한 압박감으로 짓눌러왔다. 그리고 자신이 의식을 차렸을 때, 보이지 않는 은별의 모습에 더욱 불길했다. "한결아. 이거." 한결의 침울한 모습을 보며 태하는 그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낫게 해줄 심산으로 은별이 자신에게 건네 준 핸드폰을 한 번 꾹 쥐어보곤 한결을 향해 건넸다. "뭐냐?" 한결은 그가 건네는 핸드폰을 받아들고는 성의 없게 물었다. 그의 성의 없는 목소리가 당연하다는 듯 태하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보면 모르냐? 채은별 핸드폰이잖아. 너한테 전해 달랬어." "이걸 왜 나한테 전해 달라는데?" 묻는 한결이 목소리가 두려움에 가득 찬 것처럼 가늘게 떨려왔다. '아차!' 순간, 섬뜩하고 칼날 같은 기분이 태하의 온 몸을 뱀처럼 기어 올라와 에워쌌다. 왜 자신에게 그녀는 핸드폰을 맡긴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에 돌아설 때의 그 쓸쓸하고도 애처로운 모습은 무엇이란 말인가? "....젠장..." 어떻게 생각하든 결론은 하나였다. 한결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에 힘을 준 채 꼭 쥐고 있던 핸드폰 폴더를 열었다. 「새 문자 9개」 한결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핸드폰을 붙잡고 그녀가 남긴 문자를 하나하나 세심하게 읽어 내려갔다. 「한결아, 나야 은별이. ...우선 미안하다고 사과할게. 정말 미안해.」 「나 때문에, 내가 기억을 잃은 바람에 너까지 피해가 가게 해서...」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그 동안 나를 지켜주고 위해줘서.」 「하지만 더 이상 너에게 피해가 가는 걸 원치 않아. …날 잊어 줘.」 「너의 기억에서 전혀 없었던 사람처럼, 그렇게 잊어 줘.」 「나도 널 잊을 거야. 가슴속에서도, 머리 속에서도. 너란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현이를 원망하지 말아 줘. 모든 건 바보 같은 나 때문에 시작된 일이니까...」 「.....미안해. 한결아, 다신 마주치지 않을 거야. 우연이라도....」 「짧은 시간이나마 많이 사랑했어... 안녕.」 은별이 남긴 문자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몇 번이고 쳐다보던 한결은 급기야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며 그녀의 핸드폰을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씨팔!!! 절대 선우 현 그 녀석한테 보내지 않아!!! 채은별, 데리고 와!!! 아니, 내 발로 가서 채은별 데려 올 거야!!! 나 떠나지 못 하게 내가 데려 올 거야!!" "한결아!!!" 침대를 박차고 나가려는 한결을 간신히 붙잡으며 태하가 간호사를 부르려는 순간, 병실 문이 열리며 땀으로 흠뻑 젖은 사랑이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들어왔다. 그는 급하게 뛰어오는 바람에 당기는 배를 부여잡으며 한결을 향해 말을 꺼냈다. "허..억.. 헉.. 하.. 한결아..." "...씨발.. 진사랑, 채은별... 채은별은 어디 있어!!" "...그게.. 선우 현이랑 채은별이 같이..." 한결의 살기 어린 눈동자에 당황한 사랑은 숨을 헉 들어 마시며 말을 멈췄다. 정상이 아니었다. 은별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것에 억누를 수 없이 깊은 상처를 받은 한결의 공허한 빈 눈에 차 오르는 깊은 분노와 살기만이 일렁거릴 뿐이었다. "씨발!! 민태하, 이거 놔!!! 놓으라고!!!!" "젠장, 진사랑! 간호사 불러 와! 얼른!" 태하는 극구 한결을 침대 밖으로 나오지 못 하게 극구 말리며 한결의 눈빛에 제압 당해 미동도 못 하는 사랑에게 소리를 쳤다. 그제야 허둥지둥 사랑은 움직이며 재빨리 간호사를 데리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 ............................................... ...................... * * * [Y 대학 병원] 담당 의사들은 고열로 쓰러진 은별의 상태에 초조하게 응급조치를 마치고 고비를 넘겼다는 듯 한숨을 돌리며 응급실에서 일반병동으로 그녀를 옮겼다. 담당 의사 중 한 명이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초조하고 창백한 얼굴을 한 채 그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현을 향해 냉철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엄청난 고열입니다. 다행히 고비는 넘겼지만. 조금만 더 늦었어도 위험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환자를 이런 상태까지 그냥 방치해 두신 겁니까?!" "..죄송합니다.." "후- 게다가 엄청난 스트레스와 과로에, 영양실조까지 덩달아 겹쳤습니다. 안 그래도 거식증이 있는 환자인데 생명에 지장까지 줄 뻔하지 않았습니까!!!!!" "..........................." 의사의 냉정한 외침에 현은 얼굴을 굳힌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를 괴롭히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그리 괴로운 것이었을까? 돌아온 기억 때문에? 떠나버린 은하형 때문에? 아님, 현한결 때문에....? 현한결이라니... 현은 애써 머리를 흔들며 아픈 그녀를 눈치채지 못한 자신을 책망한다. "으으....." 의사와 현이 초조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때 은별은 작음 신음소리를 내며 퀭하게 들어간 눈의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올렸다. "은별아!!! 정신이 들어?!!!" "....으윽... 머리 아파..." 부스스 일어나는 그녀의 어깨를 미친 듯이 흔들며 현이 걱정스럽게 소리쳤다. "선우 현씨! 환자에겐 절대 안정이 필요합니다!" 그런 그의 갑작스럽고 거친 행동에 의사는 깜짝 놀라 현을 향해 경고하듯 외쳤다. 의사의 외침이 들리건 말건 현은 은별이 깨어났다는 단 한가지 사실에만 신경을 쏟고 있다. "은별아!!!" ".................." 현이 애타게 불러도 그녀는 그의 얼굴만 멀뚱히 보며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은별의 시선과 표정이 이상했다. 전혀, 모른다는 사람을 본 것 같은 당황하면서도 생소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 그녀가 현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의아한 빛을 띄는 것 같았다. "은별아..?" "누구세요? 내가 왜 병원에 누워있죠? 은하오빠는 어디 있어요?" "은별아?!! 나야, 현이... 모르겠어?!" 또, 은별이 자신을 잊은 것인가?!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뒤섞인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현이 간절하게 물었다. 그녀는 여전히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은하오빠 친구예요? 나 내일 세명중학교로 전학 가는데, 왜 입원해 있는 거지?" 그녀의 눈에는 거짓이 없었다. 그저 투명하고 잔잔한 호수처럼 맑았다. 순간, 함께 그녀를 지켜보던 의사도 그도 경악한 듯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는 다시 한 번 믿지 못하겠다는 듯 그녀에게 되물었다. "은별아? 다시 말해 봐." "...은하오빠 친구?" "아니, 그 뒤에..." "세명중학교로 내일 전학 가는데...." 현은 허무하게 한숨을 쉬며 잡고 있던 그녀의 어깨를 놓아 버렸다. 그녀의 기억은 잔인하게도 또 다시 자신을 없애 버리고 만 것이었다. "채은별 환자, 기억이....." "쉿. 조용히 해 주세요." 의사가 말하려는 것을 현은 막으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은별은 근간 4년간의 모든 기억을 없애 버린 것 같았다. 잠깐, 그렇다면 현한결은.....?!! "은별아, 현한결이란 사람 기억해?" 그의 다급한 질문에 그녀는 잠시 생각하는 듯 인상을 찌푸리다 이내 대답했다. "......현한결....? 그게 누구예요?" 135. * * * 흰 대리석 바닥은 마치 얼음장처럼 차갑게만 느껴졌다. 어디로 가든 풍겨대는 소독약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현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의사는 X-Ray 촬영을 한 은별의 뇌에 대한 차트를 보여주며 말을 꺼냈다. "비정상적인 고열로 인해 해마상 융기의 추체 세포에 장애를 일으켰습니다. 채은별 환자는 근간 4년의 기억을 모두 퇴보시켰습니다. 이런 특이한 전례는 보기 드문 현상이라 저 역시, 환자의 기억이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 하겠습니다." 현은 의사의 말을 곱씹으며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영원히 돌아올 수 없다는 소리도 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피곤에 젖은 듯한 의사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대답에 현은 의미 모를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퇴원은 언제쯤으로 가능한가요?" "내일 중으로라도 퇴원은 가능합니다." "그럼 내일 오전 중으로 퇴원시켜 주세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퇴원하시더라도 환자의 건강에 유념해 주세요." 현은 작게 고개를 흔들어 긍정의 표시를 보내곤 진료실을 빠져 나왔다. 은별이 4년간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렸지만―자신 역시 잊어버렸지만― 어쩌면 기억을 잃어버린 것이 잘된 일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4년간의 기억 속에 담겨있던 현한결 역시 지워버리고 만 것이다. 현은 은별의 병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핸드폰 폴더를 열고 재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 잔잔한 컬러링 뒤로 냉소적이며 차가운 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여보세요.] "재아냐?" [현이 형. 무슨 일이에요?] "내일 저녁 중으로 캐나다 벵쿠버행 비행편 2자리 좀 구해 놔." [무슨...?] "은하형을 만나러 갈 거야. 시일은 좀 걸릴 거야." [알았어요. 형. (-뚝-)] 재아와 통화를 마칠 때까지 현의 얼굴엔 묘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래, 은별과 자신과의 기억은 다시 만들어 가면 되는 거다. 이대로 자신과 그녀 사이에 끼어들었던 현한결은 지워지면 되는 거다. (달칵-) 현은 살며시 은별의 병실 문을 열고 안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우울하고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창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은별아." "......아, 왔어요?" 현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그녀는 짓고 있던 우울한 표정을 금세 지우곤 그의 시선에 자신의 시선을 맞추며 빙긋이 웃으며 맞이했다. 항상 그랬다. 언제나 남을 먼저 배려하는 은별이였다. "혼란스럽지? 말 놔도 돼. 동갑이니까." "음, 그럴게요. 아니, 그럴 게." "풋." 자신과의 공간이 어색한 건지 허둥지둥하며 안절부절 못 하는 은별의 모습이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여 현은 살풋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은하를 빼다 닮은 현이 웃음 짓는 모습이 은하와 너무도 닮아 보여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다 이내 얼굴을 붉히며 그를 향해 소리쳤다. "이씨! 우리 오빠랑 너무 닮았잖아! 그렇게 웃으니까!!!" "...아?! 잠깐." 현은 그녀가 소리치는 것을 제지하며 빠르게 생각에 잠겼다. 은별이 의식을 차리고 일어났을 때, 분명 자신을 은하로 보지 않았다. 의아함에 머리를 굴리던 현이 잔잔해 보이는 그녀의 눈망울에 시선을 두고 물었다. "너 의식을 차리고 날 봤을 땐, 은하형으로 착각하지 않았잖아?" "그건..." 말을 얼버무리는 그녀에게 현이 재차 되물었다. "그건?" "우리 오빠보다 늙어 보였으니까 그랬지! 설마 은하오빠가 하루 사이에 폭삭 삭았을 리가 없잖아!" "뭐? 푸.. 큭큭.. 하하하.." 사실, 삭아 보인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은하와 현은 정말 도플갱어라 해도 똑같이 닮은 얼굴이었다. 특히 밝은 갈색의 심오하면서도 깊고 예쁜 눈이… 하지만 그의 냉소적이면서도 공허함이 가득 담긴 허무한 표정이 자신의 오빠인 은하의 서글프면서도 온화한 표정과 전혀 닮지 않았다면… 현은 그녀의 생각을 수긍할 수 있을까? 그녀는 자신의 말에 크게 웃음을 터트리는 현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네 나이는 14살이 아니라, 18살이야. 넌 지금 4년간은 기억이 없어진 거야.’ ‘저기, 그런데 당신은 누구세요?’ ‘내 이름은 선우 현. 널 사랑하고 너와 약혼하기로 한 사이야.’ 눈을 뜨고 일어났을 땐, 14살이라고 생각했던 은별, 자신은 이미 18살이었다. 그녀에겐 근간 4년간의 기억이 없다. 자신을 은별의 약혼자라 밝힌 현을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은 착잡했다. 그녀와 사랑하는 사이라고 하기엔 그에게선 애틋함과 그리움, 그리고 왠지 모를 커다란 미안함과 죄책감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저... 저기 우현아… 우리 오빠는?" "우...우현?!" "아? 이름이 우현 아니야?! 저기 그러니까.. 이름이...ㆀ" "세 번째다. 여전하네. 기억이 없어도 변한 건 없구나…" "응?" 알아들을 수 없는 현의 말에 은별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옅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다갈색 부드러운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선우 현이야. 선우 현. 은별아, 4년간의 기억이 없어서 불안하지? 괜찮아. 네가 괴롭다면 아무 것도 기억해 내려고 하지 마. 걱정 마. 네 기억, 내가 기억해. 나만 기억하면 되는 거야. 우린 언제나 함께였으니까… 내일 퇴원하면 은하형 보러 가자." 현은 다짐했다. 그녀의 잃어버린 기억을 영원히 봉쇄할 것이라고. 현한결 따윈 생각나지 않게, 그로 인해 고통 받지 않게. 그리고 …아파하지 않게.... "정말? 우리 오빠 어디 있는데?" "…캐나다." 이대로 아픈 기억과 상처만 남은 한국은 떠나버리는 거야. 작게 대답하는 현의 잔잔한 눈동자 안에 작은 일렁거림이 일어났다. .......................................................................................... ........................................... [한결의 병실] 병실 창가엔 새까만 어둠이 짙게 깔려왔다. 낮에 한 바탕 난동을 부렸던 병실 안은 쥐도 새도 모르게 고요하기만 하다. 간호사에 의해 억지로 진정제를 맞은 한결은 곧 잠의 세계로 빠져버렸고, 사랑은 그가 진정된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저녁을 사러 나갔고, 혼자 남은 태하만이 씁쓸한 표정을 한 채 잠이 든 한결을 곁을 지키고 있었다. "...채은별, 현한결. 너희 둘 다 왜 이렇게 힘든 사랑을 하는 거냐." 깊이 잠이 든 한결의 표정엔 괴로움이 역력하게 드러나 있었다. ‘꿈속에서도 아픈 거냐?’ 그를 바라보는 태하의 얼굴엔 고통스러운 표정이 한 차례 짧게 지나갔다. 자신의 상처를 건든 현의 말에 한결에게서 도망치지만 않았다면… 현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다갈색 눈에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면… 그리고.. .......... ........... .............. 태하는 애써 떠오르는 생각에 고개를 도리질 치며 입술을 꼭 깨물었다. "으...윽...." 식은땀으로 뒤범벅이 된 한결이 짧게 비명을 터트리면 잠에서 깨어났다. 몸을 일으킨 그는 어둠 속에서 형형하게 빛나는 두 눈으로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태하의 가슴 어린 시선과 시선이 마주쳤다. "...민태하..." ".................." "민태하! 대답해!" "................" 태하는 그저 씁쓸한 시선으로 한결을 바라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모습에 한결을 고개를 떨구며 덮고 있던 이불을 꼭 쥐어 잡았다. 손이, 온 몸이 수치심과 배신감, 무너짐 자존심에 부들부들 떨려왔다. "씨발,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이렇게 하루만 안 봐도 괴로운데…" "................" "은별이가 내 곁을 떠난 걸 상기하면 심장이 타 버릴 것 같아. 괴로워. 가슴이 너무 아파서 숨도 쉬지 못 하겠어. 채은별이 마치 ........내가 만들어낸 신기루 같아. 잡으려고 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없었던 것인 냥 사라져 버리는 신기루." 천천히 눈물 섞인 목소리로 말하는 한결의 목소리엔 깊은 슬픔이 베어있었다. 예전에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던 그의 모습은 사라져 버렸다. 그저 한 여자에게 버림받고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왜소한 그의 어깨만이 남았다. (끼이익-) 태하가 손을 뻗어 한결의 왜소한 어깨에 손을 갖다대려고 할 때, 갑자기 병실 문이 열리며 '끼이익' 듣기 싫은 쇳소리가 들렸다. "...젠장..." 병실로 들어오는 한 무더기의 사람을 보며 한결이 짧게 욕을 내뱉었다. 보디가드로 보이는 건장한 체구의 남자 6명 사이에 둘러싸여 들어온 그는, 차가우면서도 매서운 눈을 가진 그는, 한결의 아버지 한준이었다. 한준은 고집스럽게 다문 입을 열어 호통 치듯 한결을 향해 소리쳤다. "아직도 말버릇은 고치지 못 했구나." "당신이 여긴 왜 온 거지?! 당장 꺼져!!!" 한결의 외침 따윈 상관없다는 듯 한준은 그저 병실을 한 번 쭉 둘러보았다. "그 계집애는 떠난 모양이군. 그나마 말귀는 잘 알아듣는군." 한준의 얕게 중얼거리는 소리에 분노에 떨던 한결이 놀란 듯 눈이 커지며 냉소를 짓고 있는 그를 향해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뭐야!!! 은별이한테 무슨 소리를 지껄인 거야?!" "너를 떠나라고 했다. 정신 차려라. 현한결. 너를 이 지경으로까지 몰고 가게 한 장본인이 그 계집애니 미련 따윈 버려라. 그리고 골목대장 놀이도 이제 그만 집어치우고 본가로 들어와라." "뭐...라고........?" "은결인가 하는 네가 기르던 그 아이도 좋은 곳으로 입양시켰다. 그러니 더 이상 아무런 미련 갖지 말고 본가로 돌아와. 3달 뒤에 예진양과 약혼식도 있을 거니까. 서두르는 게 좋겠군." "씨발!!!!!!!!! 누구 맘대로!!!!!!!!!!!! 당신한테는 세상이 무너져도 돌아가지 않아!!!!!!!" 한결에게 한준은 항상 증오의 대상이었지만, 그가 이토록 원망스러운 적은 없었다. 피가 뜨겁게 끓어올랐다. 한준이 어떤 소름 돋을 정도로 차가운 말을 은별에게 퍼부었을까? 끔찍했다. 그 마음이 여린 아이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어떤 상처를 받았을까? 그리고 은결의 행방을 이제야 안 한결은 끝까지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한 무능력함에 그나마 간신히 버티고 있던 그의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네가 지내고 있던 집도 이미 다른 곳으로 넘겼다. 그럼 그렇게 알고, 퇴원할 날짜에 맞춰 사람을 보내마." "..........하..... 당신이란 사람 정말 잔인해....." 차갑게 말을 뱉고 돌아서는 한준을 향해 한결은 모든 전의를 잃은 냥 작게 중얼거렸다. 이젠 그에겐 마지막 남아있던 돌아갈 곳도, 쉴 곳도 사라져 버렸다. 한준은 한결의 애절한 중얼거림에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이내 병실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136. 병실 창밖에는 빛이라곤 볼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현한결." 침묵하고 있던 태하가 한준이 사라진 후에야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태하가 부르는 소리에도 한결은 그저 미동 없이 애꿎은 이불만 꼭 쥐고 있을뿐이었다. 태하는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불렀다. "현한결." "....태하야. 나가 줘. 나 지금 충분히 추하다. 그러니까 나가 줘." "현한결!!" "씨발!! 나가 달라고!!! 제발!!!! 더 이상 눈물 못 참겠어...." 그를 향해 소리치던 한결의 저음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고, 그의 눈에선 투명하고 맑은 눈물 한 줄기가 떨궈졌다. 태하는 왜소하고도 작아 보이는 그의 어깨를 꾹 쥐곤 힘을 담아 말했다. "혼자 짊어지려 하지마. 넌 강하면서도 약하니까." "민태하. 태하야. 젠장!!! 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모든 걸 잃은 난 이대로 현한준의 인형처럼 살아야 하는 거냐?" 이건 자신이 알고 있던 한결의 모습이 아니었다. 채은별이란 여자가 한결에게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새삼 깨닫게된 태하다. 서글픈 표정으로 한결을 바라보며 그의 이름을 작게 읊던 태하가 이내 뭔가 결심한 듯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한결의 어깨를 꾹 쥐었다. "현한결! 정신 차려!!" "...하.. 정신 차리라고?! 민태하, 너 같으면 이 상황에서 정신이 차려질 것 같아?!" 태하를 바라보는 한결의 까만 눈망울에는 공허함이 가득 배여 있었다. 그에게서 풍겨지는 짙은 패배감과 짙은 치욕스러움이 고스란히 태하에게 느껴졌다. 은별이 떠난 지 하루만에 이렇게 망가져 버린 그를 어찌하면 좋을까? "씨발!! 그렇게 채은별이 너한테 중요한 거냐?!!" "…어. 내 목숨보다 소중해." 신경질적인 태하의 외침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완강히 대답하는 한결의 말에 태하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한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포기하지 마라." ".....포기하지 않으면.....?" "되찾아 와. 네 힘으로. 선우 현을 이겨서 되찾아 와." "......하지만 이미 모든 세력이 다 선우 현에게......" "네 좋은 머리 썩혀서 뭐 하냐? 넌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거다. 잠시 자리 비워 줄께. 머리를 비우고 어떻게 해야할 지 생각해 봐. 네가 어떤 결과를 내리든 난 네 편이다." 자신의 말을 자르며 자신의 소견을 당당히 밝히곤 병실 밖으로 나가려는 듯 돌아서는 태하를 보며 그는 그나마 옅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래도 아직 자신에겐 하나라도 남아있었다. 바로 신뢰할 수 있는 '친구.' 한결은 진정으로 고마움을 느끼며 진심 어린 목소리로 뒤돌아 선 태하에게 말했다. "…고맙다. 태하야." "천만에." 병실 문고리를 잡은 채 뒤돌아보며 한결을 향해 미소를 짓는 태하의 표정은 어쩐지 기뻐 보이면서도 알 수 없는 슬픔을 띄고 있어 서글퍼 보였다. ........................................................................................................ ............................................................................. [다음 날 오전 인천국제공항] 예정보다 일찍 이륙하는 비행기표가 구해지는 바람에 은별이 퇴원하자마자 곧장 현은 그녀를 데리고 공항으로 달려왔다. 비행기 이륙 시간을 기다리면서 공항 면세점을 둘러보며 값싼 물건에 눈이 휘둥그레진 그녀는 이것저것 고르면서 현을 조르기 시작했다. "우와, 물건값 엄청 싸다!" "면세점이니까.." 워낙 잡초 기질이 다분한 그녀는 어제의 어색함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현의 붙잡고 살갑게 굴며 물건을 이것저것 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녀가 어떤 한 물건에 필이 꽂혔는지 계속 그 물건을 만져댔다. 현은 은별이 들고 설쳐대는 물건을 보고 당황해 식은땀을 주륵주륵 흘려댔다. "현아, 나 저거 사 줘~ 사 줘~ 응응?" "은별아, 그..그건ㆀ" 굳어진 현의 표정을 보지 못한 것인지 그녀는 계속 보채기만 했다. "현아~ 사 줘~ 응?! 응??" "....은별아, 그거 말야..." "응?! 이게 왜??" "그거 술인데..." "헉!!!! 수.. 술!!!! 엄마야!!!!" 그의 말에 화들짝 놀라 얼굴을 붉히며 물건을 제자리에 갖다놓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귀여운 나머지 주위의 시선은 생각지도 않은 채 허둥거리는 은별의 어깨를 붙잡고 그녀의 마른 입술에 그대로 현의 뜨겁게 달아오른 붉은 입술이 맞닿았다. "아...읍..." 갑작스러운 키스에 은별은 동그랗게 커진 눈에 코앞에 있는 현의 얼굴이 들어왔다. 낯선 향기와 이질감.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게 어루는 현의 뜨거운 혀가 은별에겐 마치 벌레처럼 느껴졌다. 싫었다. 그저 막연히 싫었고, 거부해야 된다는 생각에 그녀는 있는 힘껏 그를 밀었다. "…은별아?" "미..미안해."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간 현의 상처받은 듯 아픈 표정과 깊은 절망을 담은 눈망울에 그녀는 자신의 행동에 당황했는지 소매로 입술을 닦곤 얼굴을 붉히며 그에게 사과했다. 안절부절 못 하는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가만히 끌어안았다. "괜찮아. 괜찮아. 낯설어서 그런 거야. 낯설어서..." 그래, 괜찮아. 내 기억이 없어서… 낯설어서 그런 것 뿐이야. .................................................. ................................................................... [반나절 후 캐나다] 3시간 짜리 강의를 연속으로 듣고도 오늘은 어쩐지 지치지 않고 기운이 넘쳐 났다. 그리고 왠지 모를 두근거림과 설렘까지 은하의 기분을 들뜨게 만들었다. 1년만에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왠지 마음이 편안하고 기운이 솟았다. 그의 잘 생긴 하얀 얼굴에 보기에도 편안한 온화한 미소가 띄워져 있었다. "What's the matter with you? (무슨 일 있어요?)" 앞이 안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히곤 기숙사로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기분좋게 흥얼거리는 은하를 부축하며 피아나는 그의 편안한 미소에 행복한 듯 웃음을 띄고 물었다. "Why? (왜요?)" "I see that you feel happy. (행복해 보이네요.)" "Well…(글쎄요…)" 대답하며 환히 미소 짓는 모습은 피아나 역시 그를 만나면서 처음 본 일이었다. 가슴이 두근댈 정도로 아름답고 멋진 은하의 미소에 그녀는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으로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쳐다보았다. (달칵-) "Thank you, today. Miss. Will. (오늘 고마웠어요. 윌양.)" "That's OK. (뭘요.)" 은하의 감사의 인사를 받으며 피아나가 그의 기숙사 문을 열고 그를 부축해 안으로 들여보내려는 순간, 맑고 청아하면서도 슬픔이 가득 담긴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하오빠!" 여자의 목소리에 은하는 놀란 듯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익숙한 향기. 꿈에서도 헤매었던 익숙한 목소리. 보이진 않지만 분명 은별의 목소리와 은별의 향기였다. 1년 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사랑스런 동생, 은별이 바로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은별아…" 눈 안에 눈물을 가득 담고 나긋하게 은별을 부르는 그의 품안으로 은별이 달려와 꼭 안겼다. 137. "울지마. 은별아- 울지마. 오빠가 미안해. 오빠가... 울지마." "흐읍... 오빠. 은하오빠..." "착하지? 그만 울어." 피아나의 눈에는 갑작스럽게 은하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품에 안긴 여자의 작고 가녀린 등을 부드럽게 다독여주는 은하의 손이 정성스럽게만 보였다. 그의 눈엔 갑자기 등장한 은별의 모습에 당황함도 섞여있었지만 피아나에게는 절대 보여주지 않았던 다정함이 은별을 쓰다듬는 손엔 한껏 깃들여 있었다. "오빠.. 은하오빠.. 훌쩍.." 한참을 은하의 따뜻하고 포근한 품에 안겨 울던 은별은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는지 훌쩍이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이내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하는데 뒤에서 마음을 졸이며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피아나의 짧은 비명과 그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was Enha twins?! (은하가 쌍둥이?!)" 그녀의 외침에 고개를 들고 보이지 않는 눈을 피아나의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리는 은하다. 덩달아 은하의 시선이 가는 곳으로 은별 역시 시선을 돌렸을 때, 그 자리엔 아무 생각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무표정을 한 현이 서 있었다. "은하형. 여전하네요..." 익숙한 비누향기에 놀라 표정이 굳어있는 은하를 본 현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은하는 절망적인 표정을 지은 채 길게 한숨을 내쉬곤 다갈색 고운 머리를 쓸어 올리며 현의 목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말했다. "결국엔, 이렇게 되는구나." "...은하형..." "내 모든 부탁을 져버렸구나." ".....죄송해요." 미안함이 가득 담긴 현의 사과에 은하는 그저 고개만 흔들었다. 어쩌면 이런 결과가 될 줄 1년 전부터 몸소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참을 생각에 잠긴 은하와 고개를 떨군 채, 입술을 꼭 깨물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현을 번갈아 보던 피아나가 입에 고인 마른침을 삼키곤 은하를 불렀다. "Enha. who are they? (이들은 누구죠?)" "..................." 피아나의 질문에도 은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은하의 품에 엉거주춤 안겨있는 은별을 보며 다시 한 번 은하의 이름을 읊었다. "…Enha?" "Get out of here, Piana. (피아나, 여기서 나가주세요.)" 그녀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은하의 차갑고 냉정한 선을 긋는 말투에 피아나의 맑고 순수한 눈망울에는 상처받은 듯 한 가득 눈물이 고였다. 자신에겐 보여주지 않던 다정함과 항상 선을 그어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냉정함에 그를 사랑하는 피아나의 가슴엔 그런 그의 행동 하나 하나가 상처가 되었다. "I'm.....sorry.....(미안해요...)" 결국 그녀는 끝내 눈물을 터트리며 은하의 기숙사방 문을 닫고 나갔다. 하얗게 질린 얼굴과 상처받은 듯 흔들리는 눈이 은하의 가슴을 아프게 했지만 .......이게 그녀를 위한 최선의 길이었다. 자신으로 인해 더 이상 아무런 상관없는 피아나가 상처받는 것이 미안했다. "오빠. 저 여자 누구야...? 오빠, 괜찮아? 안색이 해쓱해." "...괜찮아.." 걱정스럽게 자신을 올려다보는 은별의 크고 깊은 다갈색 흔들리는 눈동자에 한 가득 담겨져 있는 은하의 모습, 많이 야윈 듯 보이는 그의 모습을 차근차근 살펴보는 그녀는 머지않아 그의 초점 없는 눈을 발견했다. "오빠? 눈...이 왜 이래? 이상해... 오빠 눈에 초점이 없어..." 초점 없는 눈.... 불현듯 떠오르는 어느 학교 강당 속의 현과 은하의 얼굴. 누군가에 각목에 눈을 맞는 현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은별의 머릿속을 지나갔다. 마치 비수가 머리 속을 찌르는 것같이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 왔다. "은별아. 왜 그래?! 식은땀 좀 봐!" 갑작스럽게 신음소리를 내며 힘겨워하는 그녀의 이마에서 나는 식은땀을 손으로 감지한 은하는 놀란 듯 은별에게 소리쳤다. "..오빠.....이상해.... 하아.. 하아.. 머리가... 머리가..." (털썩-) "은별아!!!!!!!!!" 고통스럽게 머리를 쥐어짜던 은별이 정신을 잃고 그대로 은하의 품으로 쓰러졌다. 놀라서 눈이 커진 채, 쉽사리 그녀 곁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있는 현을 보며 은하는 은별에게 보여주던 다정한 미소를 지운 채 그에게 물었다. "선우 현, 은별이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거지?" "..........." 은하의 추궁에도 현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은하는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다시 물었다. "....뭔데 그래?" "...다 저 때문이에요... ...은별이, 근간 4년의 기억을 모두 지웠어요... ......평생을 다 해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대요...." .................................................................. ......................................................................................... [다음날 저녁 한결의 병실] 어둠이 모든 것을 침식하며 삼키고 있을 시각, 한결의 병실에선 그런 어둠을 막기 위한 방패라도 되는 것인 냥 투명하고 환한 불빛이 하염없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병실 안은 한없이 고요했고, 어떠한 말 한마디조차 나눠지지 않았다. 병실 벽에 기댄 태하는 팔짱을 낀 채, 자세 한 번 바꾸지 않고 진지한 눈빛으로 골똘히 자신을 바라보며 무언(無言)의 눈빛을 보내는 한결을 시선을 교차했다. "으아~ 너희 둘 도 닦는 거야?!! 그런 거야?!! 나 심심하단 말야!!! 말 좀 해!!!!" 사랑은 참다참다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울분을 터트리며 소리쳤다. 벌써 한결과 태하과 눈빛만 주고받은 지 3시간이 지났다. 징그러운 놈들. 안 그래도 산만한 사랑이 말없이 세 시간을 버틴 것도 정말 용한 일이었지만 이미 한계에 도달하다 못해 결국엔 폭발하고 말았다. "피식..." 사랑의 간절한 외침에 한결과 태하는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이 사랑에게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 되었다. "아씨!!! 웃지 말고 말을 해!!!!" "진사랑. 언제 철 들래?" 짜증을 내는 사랑의 머리를 툭툭 치며 태하가 싱긋 웃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사랑은 그의 말에 자신을 머리를 쳐대는 그의 손을 쳐내며 볼을 부풀리며 대답했다. "씨이!! 왜 또 어린애 취급이야!!! 나도 대한민국의 18살 건강한 건아라고!!" "그래그래. 너 건아다. 누가 뭐라 했냐?" "이씨!!!! 태하, 너!!!!!!!"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흥분한 사랑의 주먹이 태하에게 날아가려던 순간, 허공을 가로지르는 한결의 중저음 목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민태하. 진사랑." "......" "앙?" 한결의 부름에 태하는 대답 없이 한결을 바라보았고 3시간만에 입을 열고 나온 한결의 목소리에 놀란 듯 대답하며 감격한 듯 큰 눈에 눈물을 달고 울먹거리는 사랑이다. "...답이 나온 거냐?" 한결과 진지하게 시선을 교류하며 태하가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도 반란을 일으킨다." "에?! 한결이 바보다. 우리 세력은 이제 없는걸!!! 다 선우 현 그 깐따라 삐야 별에서 날라 온 그 녀석이 가로채 갔는걸!! 우리 이미 끝이야~ The end!!!! 흑흑~ 절망적이야!!!" 사랑은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목을 조르는 시늉을 했다. 그런 그의 행동에 한결은 픽 미소를 짓다 이내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세력이 없으면 만들면 되는 거다." "그건 쉽지 않아. 그리고 만든다 해도 지금의 추세로는 선우 현의 영향력이 막강해." 태하의 말에는 걱정스러운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런 그의 말에도 한결의 굳은 의지가 담긴 표정은 변함없었다. "또 다른 하나는 아예 세력 같은 걸 없애는 거다." "뭐?!" "말도 안 돼!!! 한결이 바보!!!!" 한결이 충격적인 발언에 사랑과 태하 모두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는 여전히 흔들림 없이 자신의 소견을 당황한 그들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선우 현이 반란을 일으켰다면 나는 서열 따위를 없앨 거야. 어쩌면 은하형은 내가 서열 따위를 타도하길 바랬을 지도 몰라. 서열에 불만이 많은 일진들은 셀 수 없이 많아. 나도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마찬가지야. 학교 내에서 계급이 있다는 자체가 웃긴 일이잖아? 난 완전히 서열을 없앨 거다." "한결이 너....." 태하는 경악과 놀라움이 뒤섞여 오묘한 표정을 지은 채 한결을 바라보았다. …흔들림 없는 눈과 의지가 담긴 결연한 표정. 실패를 딛고 일어선 한결은 이미 어른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 태하는 오랜만에 밝은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내가 어떻게 도우면 되냐?"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선우 현한테서 유빈이를 빼내 몰래 여기로 데리고 와 줘." "유빈인 한결이 버리고 갔잖아! 유빈이를 왜 데려 와!! 한결이~ 해삼!!! 말미...읍!!!" 한결의 말에 강력히 반발하는 사랑의 입을 손으로 꽉 막으며 태하는 한결에게 하던 말을 계속 하라고 넌지시 눈빛을 보냈다. 그의 눈빛에 한결은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유빈이 그 녀석. 선우 현에게 약점이 잡혀 있어서 붙잡혀 있는 것 뿐이야. 마음이 많이 여린 녀석이야. 태하야, 사랑아. 너희 둘 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데려와 줘. 우리가 일으킨 반란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유빈이야. 승패는 유빈이에게 달려있다." 138. 태하와 사랑은 한결의 부탁으로 인해 유빈을 찾아 나선 지 벌써 이틀이 지났다. 그리고 그들이 있는 곳은 다름이 아닌, 현의 수족인 한민상고 일짱인 현권의 집 담벼락. 아득하기만 했던 유빈의 행방을 가까스로 찾게 된 그들은 그가 현이 붙여놓은 감시자들과 함께 현권의 집에 머물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꺄아!!!!!! 웬일이야! 선우 현 이 깐따라삐야 별에서 날아온 외계인 같은 놈!! 뭔 놈의 일진 애들을 저렇게 많은 뿌려 놓은 거야!! 누가 보면 최현권 집에 보물단지라도 숨겨놓은 줄 알겠다!!" "진사랑, 쉿. 조용히 해." 담벼락에 서서 몰래 내려다본 현권의 집에 엄청나게 많은 일진들이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길길이 날뛰는 사랑을 진정시키는 태하 역시 새삼 현의 치밀한 계산 능력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태하야, 이래 갖곤 들어가긴 커녕 발도 못 붙일 거야." "후우.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일진들이 이렇게 많이 배치해 놓을 줄이야." "우씨~ 완전히 그림의 떡이잖아. 이대로 돌아가야 하는 거야?" "아니." "뭐야, 답답하게~ 여기서 죽치고 있자 이거야? 아니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방법이야 있지. 사랑의 투정 어린 말에 태하는 고뇌가 가득한 표정으로 사랑의 얼굴을 차근차근 살펴보더니 이내 만족스러운 결론에 도달한 것인지 의미 모를 웃음을 지었다. 생전 보지 못했던 태하의 미소에 사랑은 온 몸으로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뭐.. 뭐야? 미..민태하?! 왜 웃어!!" "방법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 "뭐.. 무.. 무슨 방법이기에 웃는 거야?" "진사랑." 태하의 웃음에 짜릿짜릿하게 느껴지는 불안감에 치를 떨던 사랑은 갑작스럽게 웃음을 거두고 정상적인 무표정으로 돌아와 진지하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에게서 더욱 더 큰 두려움을 느꼈다. "왜.. 왜?! 왜 갑자기 진지해지는 건데!!!! 심장이 조마조마하잖아!" "진사랑, 한결이를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냐?" "뭐.. 뭐?! 갑자기 뭔 소리야?" "현한결을 위해 네 한 몸 희생할 수 있냐고." 저 녀석 지금 제 정신인가? 라는 식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랑에게 태하는 매고 있던 가방에서 미리 준비해 놓은 무언가를 꺼내 건넸다. "............!!!!........." 태하가 손에 쥐어준 '무언가'를 보더니 이내, 금방이라도 기절할 듯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는 사랑이다. 도대체 무엇이기에? "민태하? 너... 너 설마?" "진사랑, 이번 일은 아무래도 너에게 달려 있는 것 같다." ....................................................................................................... * * * '현아...' '형이 하시고 싶은 말이 뭔지 다 알아요. 죄송해요. 형. 형이 부탁한 세 가지 부탁 모두를 져 버려서... 하지만, 형.. 하지만... 하지만 은별이가 제 곁에 없으면 전 살아갈 가치를 못 느껴요. 은별이가 다른 사랑을 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다시 절 사랑할 거예요." 태하가 알 수 없는 모의를 꾸미고 있을 때쯤, 은하는 함께 있겠다는 현을 자신의 기숙사로 돌려보낸 후 쓰러진 은별의 병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지키고 있었다. 은하가 한참 전 현과의 대화를 천천히 곱씹어 생각하고 있을 때, 은별이 정신을 차렸다. 힘겹게 눈을 뜬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새하얀 병원의 천장이었다. 그녀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힘껏 짜내어 쉰 목소리로 은하를 불렀다. "으음... 은하.. 오빠." "그래, 은별아. 오빠 여기 있어." 그녀의 옆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샌 은하는 애달프게 자신을 부르는 은별의 손을 꼭 잡으며 마치 그녀를 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할 만큼 초점은 없지만 여전히 깊어 보이는 갈색의 눈동자로 은별이 있는 곳을 응시했다. "오빠, 눈 현이 준 거 맞지? 그래서 그 아이가 오빠 눈을 가지고 있었구나. 헤헤- 오빠, 은하오빠야. 내가 벌써 18살이래."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한참동안 은하 손을 꼭 잡은 체 말이 없던 은별이 침묵을 깼다. "나의 현실은 18살인데, 내 기억은 14살인걸." "............" "오빠. 은하오빠." "그래.." "은하오빠, 난 오빠의 그 깊은 눈동자가 너무 좋았어. 오빠의 갈색 눈동자는 항상 반짝반짝 예쁜 빛을 냈거든. 그 예쁜 눈으로 날 바라봐 줄 때는 꼭 내가 예뻐지는 기분이었어." 말을 잇는 은별의 눈에서 또르르 눈물 한 방울이 흘러 떨어졌다. "은별아, 울지마." 흐느낌도 없었다. 그녀도 모르게 흘러내린 눈물이건만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은하는 느낌만으로도 은별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나 보다. "나, 안 울어. 오빠. 나, 진짜 안 울어." "은별아, 그간 1년 동안의 이야기는 현이에게 들었다." "..응..." "은별아, 오빠 많이 밉지? 그 험한 세상에 혼자 두고 떠나서." 은하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눈물을 참으려 안간힘을 쓰는 듯. 그는 1년 전 은별의 곁에서 떠나던 날을 생각하면 여전히 자신을 찾아 헤매는 은별의 울음소리가 귓가에서 맴도는 것 같았다. 두 눈을 모두 현에게 주고 세상의 빛을 은하는 은별에게 자신이 짐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아니, 핑계겠지. 희망의 전부인 은별을 보지 못 한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어서 떠난 것일지도 모른다. 행여나, 마주치기라도 하면 독하게 먹은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았기에 은하는 머나먼 캐나다로 아무 말도 없이 은별의 곁을 떠나버린 매정한 오빠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오빠. 난 오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나 때문에, 나한테 짐 안 되려고 떠난 거잖아." "고맙다…" 분명 가장 힘든 것은 기억을 잃은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은하를 위로하려고 애쓰는 은별의 모습에 그의 눈에도 눈물이 핑 돌았다. 자신이 떠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기억상실증에 걸리지 않았을 텐데. 미안한 마음에 은하는 더듬더듬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오빠, 눈을 잃어도 은하오빠는 나한테 하나뿐인 가족....인걸." "은별아." 가족… 가족… 가족이란 말에 은별은 갑자기 무언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이 숨이 막혀옴을 느꼈다. 무언가 낯선 이질감. 그 이질감을 경계하는 다른 무언가가 그녀의 머리 속에서 실랑이를 벌였다. 무언가 떠올리려고 하자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은하오빠, 난 아무것도 필요 없고 오빠만 있으면 돼..." ......................................................................................................... 은별 쪽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다시 장소를 현권의 집 담벼락으로 옮겨보자. 태하는 야심만만한 표정으로 자신의 작품을 즐기며 바라보았다. "씨!! 민태하!!! 이게 뭐야!!!!" "뭐, 어때? 예술이네. 큭." "으아앙!!! 난 몰라!!!!!" 떼를 쓰며 울상을 짓는 사랑이 왜 이런지 궁금하시다고요? 그럼 그 궁금증을 해결해 드리지요. 사랑의 모습을 보아하니, 파우더를 바른 것인지 다갈색 피부는 어느새 새하얀 우윳빛으로 변해 있었고 입술엔 붉은 색 립글로즈가 반짝거렸다. 노란색으로 염색되어 있던 스타일 나는 바람머리는 온데 간데 자취를 감추고 허리까지 오는 검정색 긴 생머리만이 존재했고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세련된 선글라스를 쓴데다가 검은 원피스에 입은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날씬 늘씬 쭉쭉 빵빵 섹시한 미녀로 변해있었다! "넌 여자로 태어났어야 할 운명인가 보다. 쿡." "씨이, 뭐야! 민태하!!!! 왜 내가 여장을 해야 하냐고!!!" "우리 얼굴은 일진들 사이에서 너무 많이 알려져 있으니까 이렇게 여장이라도 해서 네가 유빈이 여자친구인양 유빈이 녀석을 만나러 가는 거지. OK?" 네가 해도 되잖아!!!" "내 키가 여자 키로 보이냐? 너야 그나마 180이 안 되니까 이런 분장도 커버하는 거야." "욕으로 들려." "욕이야." "뭐?!! 뭐!!!!!" "그렇게 열 내지 말고 얼른 작전실행에나 옮겨." 얼굴이 붉게 변할 정도로 흥분한 사랑을 태하는 지체 없이 현권의 집 대문으로 떠밀었다. 한편으로는 어이없고 한편으로는 당했다는 생각에 치를 떠는 사랑에게로 현권의 집 대문 앞에 서 있던 일진 두 명이 그의 곁에 다가와 말을 꺼냈다. "헤이- 예쁜 누님! 여긴 무슨 일이야?" "뭐.. 뭐?! 누가 예쁜 누..." 사랑아, 너 변장했잖아. 가까운 곳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태하는 망했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있을 그 때! "아잉♡ 오빠들♡ 저 유빈이 여자친구인데. 유빈이가 여기 있다는 소리를 듣고 왔거든요? 안 그래도 유빈이가 갑자기 사라져서 너무 너무 걱정돼서 왔는데~♡ 오빠들이 안 들여보내 주면 나 삐쳐서 울 거야! 훌쩍! 훌쩍! 삐침!" 이게 웬일? 진정, 진사랑 그대의 연기는 대단하다! 순식간에 여자보다도 더 다소곳하고 더 사랑스럽게 약간의 애교를 가미한 특유의 앙증맞고 귀여운 목소리로 두 명의 일진들에게 말하는 그! "다.. 당연히 열어줘야지! 안 그래?" "맞..맞아! 자, 들어가세요. 예쁜 누님!" 일진들은 벌써 사랑의 목소리에 녹아버린 양 순순히 대문을 열어주는 게 아닌가?! 작전 1 단계, 예상외로 수월하게 성공이다. 태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오랜만에 시원한 웃음을 지으며 생각한다. 진사랑! 너 다시 보련다. 어떻게 다시 볼 거냐고? 훗- 여자로. 139. . . . "신유빈, 네 손님이다." "무슨?" "네 졸라 어여쁘신 여친." ".........???" 그렇게 여자로 변장한 사랑을 아무런 의심 없이 일진들은 유빈의 앞에 대령했고, 유빈 역시 사랑을 알아보지 못 했는지 이런 여자 모른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능청스럽게 다시 화려한 연기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저기 오빠들♡ 자리 좀 비켜줄래요? 유빈오빠랑 할 말이 많아서요." "아, 그 치만 현권이가........" "뭐야? 이 여자 누구.. 읍?!!!" 일을 그르칠 수 없다는 일념 하에 어이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유빈의 입에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신의 붉은 입술을 갖다댄 사랑. 아리와도 아직 해 보지 못 했는데… 그는 아- 지렁이 삼키는 기분이 이 기분이구나. 라고 뼈저리게 느꼈다. "흠흠, 조.. 좋은 시간 보내세요." 사랑의 뒤에 있던 일진들, 갑작스런 그들의 애정행각(?)에 얼굴이 붉어진 채 방을 빠져나가기 바빴고 마침내 방문이 닫히는 순간, 사랑은 희망을 잃은 듯 넋이 나간 표정으로 유빈의 입에서 입을 떼며 신경질적으로 선글라스를 벗었다. "망했어. 망했어. 내 첫 뽀뽀!!!!!" "뭐…….야? 진사랑?" "씨이!!!! 이제야 알아보냐!! 신유빈 이 망할 놈아!!!!" "너 여긴 어떻게...? 잠깐!!! 너 나한테 지금 뭐...뭔 짓 한 거야?!! 게다가, 풋, 큭큭.. 하하하. 아니, 너 꼴이 왜 그래? 머리 수술 받았냐?" 사랑을 알아본 유빈은 여장을 한 그의 모습에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고 사랑은 그런 유빈이 얄미운 듯 색조화장을 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다 너 때문이잖아!! 이 자식아!!!" "쉿." "아.. 씨..." "...왜 왔냐?" "뭐?!" "왜 왔냐고." 유빈의 얼굴엔 순간 반가움에 환하게 웃던 얼굴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한결을 배신하고 현에게 발걸음을 돌렸던 그 때와 같이 싸늘하게 변해버린 시선으로 사랑을 바라보며 차가운 저음으로 그를 추궁했다. "신유빈, 너 뭐야?" "여기 네가 놀러올 곳이 아니야." "뭐?" "여기 새로운 포커스의 왼팔 최현권 집이야." (퍽-!) 살아생전 절대 그에게서는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진지한 모습을 한 사랑이 자신의 모든 힘을 모아 꽉 진 주먹으로 차갑게 변한 유빈의 볼을 강타했고, 전혀 무방비 상태로 맞은 그는 그대로 뒤에 있던 침대로 나가 떨어졌다. "신유빈, 다시 한 번 말해 봐. 누가 새로운 포커스라는 거야? 내 위에 있을 수 있도록 허락한 사람은 현한결 하나밖에 없어." "오랜만에 맞아보니 꽤 아픈 걸? 사람은 대세에 맞춰 살아가는 게 현명한거야. 진사랑." 사랑의 주먹이 꽤 셌던지 터진 입술에서 나오는 피를 쓱- 닦으며 유빈이 말했다. "신유빈. 더 맞아야 정신 차릴 거냐? 내가 목숨 걸고 여길 왜 왔겠냐? 이따위 정신 나간 변장까지 하고 내가 여길 왜 왔겠냐고!!! 널 찰떡같이 믿고 있는 천하의 현한결이 부탁이란 걸해서 온 거란 말이야!!!" "뭐?" "한결이는 널 아직도 믿고 있다고! 이 돼지 꿀꿀이 같은 놈아!!!! 한결인 네가 깐따라삐야 별에서 날아 온 선우 현한테 빌미를 잡힌 것도 다 알아!!! 한결이가 서열이란 걸 없애는데 필요한 건 신유빈 너라고, 널 데려오라고 했단 말이야!!!" 갑자기 웬 돼지 꿀꿀이 같은 놈이라니? 진사랑, 너는 참 진지할 수 없는 인간이구나. 그렇게 진지한 얼굴로 그런 말을 하면 어찌 안 웃을 수 있으리오. 뉘앙스가 폴폴 느껴지는 말에 유빈은 웃을 수도 없고 어정쩡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서열을 없앤다니 무슨 말이야?" "선우 현이 포커스 자리를 놓고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면 한결이는 서열을 없애는 것을 놓고 새로운 반란을 일으킬 거래." "서열을 없앤다고?" "어쩌면 은하형이 바랬던 것일지도 모르지." "............." 사랑의 말을 끝으로 유빈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눈을 감고 말없이 긴 침묵에 잠겼다. 그의 형 지빈을 빌미로 잡고 있는 새로운 서열 1위 포커스 현과 친구이자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그가 유일하게 믿고 따랐던 한결. 선택의 기로에 선 유빈을 보며 사랑 역시 침묵을 지키며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몇 분가량이 흘렀을까? 침묵하던 유빈이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어 충격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진사랑, 옷 벗어." "옷? 뭐.. 뭣이!!! 신유빈, 네가 아무리 날 조..좋아한다 하지만, 이..이건 아냐;;" 갑작스런 유빈의 말에 위험한 상상(?)을 하는 건지 사랑은 붉어진 얼굴로 대꾸했다. 뭔 상상을 한 거야? 지금. 유빈은 어이없다는 식으로 그의 이마에 꿀밤을 주며 전처럼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뭔 상상을 하는 거야. 내가 이 꼴로 밖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 "아..아니.." "그럼 방법은 한 가지 아냐? 네가 나대신 내 옷 입고 여기 있어." "뭐?! 그럼 넌!" "나는 너처럼 여장해서 여길 빠져나갈 테니. 선글라스 때문에 얼굴을 못 알아볼 거야. 3시간만 버티고 있어. 만약 최현권 그 자식 오면 자는 척 하고 있어. 자는데 확인 차 이불을 들썩거릴 녀석은 아니니까. 절대 들켜서는 안 돼! 알았지? " "으응..;;" 확인에 또 확인을 거듭하는 그, 역시 잔머리 하나는 누가 뭐래도 대단한 유빈이었다. [한결의 병실 앞] 사랑이 입고 온 옷을 입고 여장을 한 유빈은 특유의 능청스러움으로 일진들을 속였고, 가까스로 현권의 집을 빠져나온 그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태하의 도움으로 옷을 갈아입고 함께 한결의 병실로 왔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는 유빈이지만 몸은 긴장으로 굳어진 건지 딱딱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긴장 되냐?" 병실 앞에 선 유빈이 머무적거리자 태하가 피식 웃으며 유빈에게 가볍게 말을 걸었다. 긴장 되겠지. 그리고 미안한 마음에 더 머뭇거리는 거겠지. 태하 자신도 한결에게 돌아올 때 그랬으니까……. 그의 말에 유빈은 멋쩍은 듯 웃음을 지으며 한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응? 응. 좀……." "걱정마라. 들어가자."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간 병실에서 유빈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조용히 책을 읽는 사뭇 어른스러워 보이는 한결의 모습이었다. "오랜만이다. 신유빈." 병실 안으로 들어온 유빈과 태하에게 한결은 여전히 시선을 책에 둔 체, 유빈에게 말했다. 많이 야위었다. 얼굴빛도 좋지 않고. 한결을 쭉 훑어보던 유빈은 한결이 먼저 건넨 인사에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오랜만이다. 많이 야위었다." "야위긴, 네가 더 야윈 것 같은데?" "…….한결아." “…돌아온 걸 환영한다." 돌아온 걸 환영한다. 돌아온 걸 환영한다. . . . 그의 그 말 하나에 유빈은 그 동안 참아 온 수모와 고통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한결아, 정말 미안. 미안하다." "친구 사이에 미안하단 말은 하는 거 아니다." "..한결아.." "네 상황이 어떤지 알고 있어. 너희 형이 선우 현의 빌미로 잡혀있는 것도... 하지만 네가 날 떠났다 해도 다시 날 위해 돌아와 줬으니까 그걸로 된 거야." 유빈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절정에 다다랐다. 한결은 피식 웃으며 천천히 일어서 휴지를 그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 "사내자식이 울기는." 유빈은 떨리는 손으로 한결이 건넨 휴지를 받으며 말했다. "내가... 내가 뭘 도우면 되는 거야?" "신유빈. 괜찮겠냐?" "괜찮아. 이미 최현권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결심했어. 말해줘, 뭐든지 할 테니까." 한참을 확고한 빛을 내는 유빈의 눈동자를 응시하던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조금 어려운 부탁이 일이 될 거야. 지금처럼 최현권 집에서 머물면서 선우 현의 세력인 척 하면서 선우 현의 눈을 속일 수 있도록 도와줘. 내가 서열을 없애는데 동참할 일진들을 모으는 동안." 유빈은 한결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의 반란은 이미 정의가 되었고, 한결은 또 다른 정의를 위해 새로운 반란을 준비한다. 바쁜 자와 지쳐버린 자는 사라지고, 쫓는 자와 쫓기는 자만이 남았다. 140. * * *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유수(流水)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현과 은하, 그리고 은별은 은하가 다니고 있는 대학과 가까운 곳에 현이 마련해 놓은 집에서 두 달째 아무 문제없이 살고 있었다. 은별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진 것을 뺀다면 말이다. "현아." 정원에서 기르고 있는 요크셔테리아 강아지를 데리고 은별이 장난을 치는 동안 정원에 설치된 파라솔 안에서 가만히 앉아 말없이 점자책을 보던 은하가 옆에 앉아 은별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던 행복한 미소를 짓는 현의 이름을 부드럽게, 어쩌면 듣기엔 조금은 근엄하게 불렀다. "네, 형." "이제 그만 은별이를 놓아줄 때도 되지 않았니?" "무슨 소리예요?" 은별을 놓아주다니? 청천벽력과 같은 갑작스러운 은하의 말에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아니 자신이 잘못 들었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내젓고는 은하에게 되물었다. "은별이 여기 와서 쓰러졌다 깬 후, 두 달 동안 한 번도 웃지 않았다. 너도 알고 있지?" "....그게 왜요?" "현아." "웃지 않아도 좋아요. 나를 바라보지 않아도 좋아요. 하지만 내 곁에 없다면 전 미쳐요!!!" 현의 간절하고도 아픈 외침에 은하의 붉은 입술이 잠시 굳게 닫혔다. 몇 분의 침묵이 그 둘을 휩쓸고 지나갔을까? 이내, 은하는 하얗고 고운 손으로 갈색 빛을 내는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집착한다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게 아니다. 현아, 지독한 소유욕은 상대방에게 거부감을 일으킬 뿐이야." "아뇨. 사랑하게 될 거예요. 그렇게 만들 거예요." "하지만 은별이는..." [하루 하루 변해 가는 거울 속 나의 모습~♬] 은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현의 핸드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려댔다. 재아의 이름이 뜨면서 다급하게 울리는 핸드폰에서 왠지 불안한 감을 느낀 현은 은하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핸드폰 폴더를 열었다. "어. 재아야." [형! 크.. 큰일났어요!!!] 좀처럼 당황하지도 성급하게도 굴지 않는 재아의 목소리엔 다급함만이 있었다. "무슨 일이야?" [현한결이.. 현한결이!!!!!] "현한결이 왜?!!" 현한결이란 이름이 재아의 입에서 나오자마자 신경질적으로 한결의 이름을 크게 외치는 현의 목소리에 들은 은별은 순간 심장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결? 한결? 익숙하면서도 익숙지 않은, 심장이 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떨리는. [현한결이 서열을 없앤다고 일진들을 모아 세력을 만들곤 선전포고를 했어요!!!!] "....씨발, 지금 당장 한국으로 간다. 뚝-" 거칠게 전화를 끊은 현의 얼굴엔 화가 났을 때 나타나는 무표정만이 남아있었다. 은별은 왠지 모르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 내리며 화가 난 현을 의아하게 쳐다보았지만 현은 애써 은별의 시선을 져버리고 여전히 점자책을 읽는 은하를 불렀다. "은하형." "....현아. 만약에 말이다. 만약에…" "네." "은별이가 기억을 찾고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다면 너는 은별이를 놓아줄 거니...?" 은하의 자상한 목소리는 한없이 조심스러웠고 그의 초점 없는 눈은 한없이 슬펐다. 애절한 은하의 초점 없는 눈빛에 현은 왠지 모르게 가슴이 갑갑해져 왔다. 은별인 분명 자신을 사랑할 거라고 말해야 하는데 벙어리가 된 마냥 말이 나오지 않았다. "현아?" "시일이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어요. 은별이 제가 없는 동안 잘 보살펴 주세요. 갔다올게요." .................................................................. ........................................................................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의 높은 하늘 아래에 있는 명문고 운동장에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한결이 새로운 반란을 결심한 이래로 정확히 2달 후인 오늘. 명문고등학교 운동장에는 서열을 없애기 위해 모인 일진들 수천 명이 모여있었다.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진 눈을 또르르 굴려서 자랑스럽게 일진들을 바라보는 사랑은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헤- 벌리며 옆에 서 있는 태하를 흔들어 대며 말했다. "우와, 태하야!! 나나~ 한결이의 능력에 새삼 감탄했어!!" "그래도… 아직 선우 현의 세력에 2/3밖에 되지 않아. 현한결, 힘든 전쟁이 될 거야." 신나서 방방 뛰는 사랑과는 달리 태하는 걱정스러운 빛을 띠는 얼굴로 한결을 바라보았다. 예전 은별과 은결을 만나기 전, 그 때처럼 그저 감정 없는 인형처럼 날카롭고 차갑게 변한 한결의 얼굴엔 수심의 빛과 함께 기대감도 함께 비쳐졌다. "후. 유빈이가 포섭한 일진들을 우리 세력에 포함할 수도 있지만, 유빈이 그 녀석한테 해를 가하지 않으려면 그 녀석은 현의 세력에 껴 있어야 해." "사라졌던 선우 현이 나타나면 우리들의 반란은 시작된다. 하지만. ..,질지도 몰라. 우리가 일으킬 반란은 정의가 되지 못 할지도 몰라. 어제 우리가 선전포고 한 뒤로 선우 현의 모든 세력들이 사대부고로 모이고 있어." "후회는 안 할거다. 그리고 믿을 거야. 나를, 너희들을, 그리고 은별이를…" 현한결, 넌 정말 멋진 녀석이다. 태하는 한결의 굳은 의지를 보여주는 눈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유빈과 태하, 사랑 그리고 한결의 피와 땀이 섞인 두 달간의 노력으로 그들의 뜻과 함께 할 수천 명의 일진이 모았지만 현의 세력에 비해선 턱도 없었다. 분명 힘든 전쟁이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결은 왠지 가슴이 설레었다.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캐나다 벵쿠버] "한결. 한결. 한결…" 현이 재아의 연락을 받고 갑작스럽게 떠난 지 꽤 시간이 흐른 듯 하다. 현이 떠나자마자 은하 역시 은별에게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당부를 하고 급하게 어디론 가로 나서는 듯 했다. 그리고 집안에 혼자 남은 은별의 입에선 그녀도 모르는 새에 계속 한결의 이름을 되뇌고 있었다. "What are you doing, now? (뭐하고 있어요?)" "아, 피아나 언니!" 계속 한결의 이름을 되뇌던 은별에게 말을 건 사람은 피아나였다. 여태껏 자신을 돌봐준 사람이라 소개한 피아나는 은하의 대학 동기이자 낯선 타지에서 은별이 유일하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말상대였다. 은별은 자신과의 대화를 위해 한국어까지 배운 그녀의 손을 이끌어 의자에 앉혔다. "무슨 고민 있어?" 은별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파악한 피아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 피아나의 질문에 은별은 정곡이 찔린 듯 갈색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괜찮아?" "피아나 언니, 언니는 우리 오빠 많이 좋아하죠?" "What?!! 어.. 어떻게..." 엉뚱하게 나온 은별의 말에 화들짝 놀란 피아나는 금새 얼굴이 새빨개졌다. "오빠를 바라보는 언니 눈빛만 봐도 누구라도 알 수 있을걸?" "은하는 shiny하니까. 나도 모르게 눈이 가… 가끔씩 보여주는 미소에 심장이 너무 떨려와. Although, he lose his sight and he do not love me, I already love him." (그가 눈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나를 바라 봐주지 않을지라도 난 이미 은하를 사랑하는걸.) "피아나언니…" 은별은 피아나의 얼굴에서 주르르 한 방울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닦아주었다. 피아나는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는 은별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두 달 동안 피아나가 봐 온 은별은 웃음이 없었다, 아니 감정을 잃어버린 듯 했다. 은하와 쌍둥이인줄로만 알았던 현이라는 아이가 은별을 대하는 것을 보면 그가 분명 은별을 사랑하는 것을 피아나는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사랑을 받는 은별의 모습은 그야말로 부담감과 미안함만 비춰질 뿐, 그를 사랑하는 감정을 그녀의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었다. "은별아. 너는 현이를 사랑하니?" "........." 피아나의 질문에 은별은 우물쭈물 거릴 뿐 대답이 없었다. "Doesn't you love him? (사랑하지 않는 거지?)" "언니." "괜찮아, 감정은 속일 필요가 없어." "...흑.. 흑..." 피아나의 목소리가 너무도 따뜻해서였을까? 은별의 눈에서 참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피아나는 그런 그녀를 꼭 끌어안으며 따스히 등을 두드려줬다. "괜찮아. 은별아. 괜찮아." "흑.. 언니, 난 현이를 사랑하지 않아요.. 흡... 모르겠어요... 현이는 나에게 지극정성으로.. 흑.. 잘 해주는데.. 나는 사랑할 수 없어요... 너무너무 미안한데 기억나지 않는 무언가가 현이를 거부하게... 만들어요... 흑... 하지만 기억나지 않는 무언가가 너무 소중하게 느껴져요.. 흑.. 나 어쩌죠?" 울부짖는 은별을 천천히 달래는 피아나의 시야에 문 앞에 서 있는 은하의 모습이 들어왔다. 은별이 우는 소리에 그의 초점 없는 눈이 흔들리는 모습까지. 가슴이 저려오는 피아나다. 어째서, 어째서 당신은… "은하......" "은별아." 피아나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은하의 이름과 동시에 들린 은하의 따스한 목소리에 피아나의 품에서 고개를 돌린 은별은 문 앞에 서 있는 그를 보고는 피아나의 품을 빠져나와 다짜고짜 은하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오빠, 오빠... 흑, 내 기억을 찾고 싶어. 오빠..." 은별이 괴로워한다. 자신의 동생이 너무도 아파한다. 은하의 가슴은 이미 새까맣게 타버리고 재가 되었다. 달려온 은별을 소중히 끌어안은 은하는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은별아, 기억을 찾고 싶다면 한국으로 가자. 한국으로 가는 거야." "흑, 은하오빠...?" "한국으로 가자. 피아나, 도와줄래요?" 은하의 따스한 목소리가 처음으로 피아나에게 향했다. 분명 은별을 위한 부탁이건만 처음으로 자신에게 부탁하는 은하의 모습에 피아나는 슬픈 표정의 얼굴에 한껏 예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좋아요. 은하의 부탁이라면 뭐든지." 아픈 사랑이라도 좋아요. 힘든 사랑이라도 좋아요. 당신이 다른 이를 보고 있다 해도, 난 괜찮아요. 하지만, 하지만 말이죠. 가끔, 아주 가끔만 나 욕심을 부려도 될까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 그 따뜻한 눈빛을 내가 몰래 보도록 허락해 줄래요?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슴은 아프겠지만. 소설제목 :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작가명 : +메시아+ E-mail : darksorcery@hanmail.net 연재장소 : 새싹소설① -10대 총편수 : 총 162편 완결 장르 : 연애소설 -------- 출처 : 인터넷소설닷컴 (http://cafe.daum.net/youllsosul) 팬까페 : http://cafe.daum.net/msacafe 댓글 0 개 이 글을...(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최신목록 목록 윗글 아랫글 '　　　[퍼온소설]' 게시판의 다른 글더보기 제목 닉네임 날짜 [완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161 ~　完 >' 나린소주인 05.11.28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141 ~ 160 >' 나린소주인 05.07.11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121 ~ 140 > 나린소주인 05.07.11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101 ~ 120 >' 나린소주인 05.07.11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081 ~ 100 >' 나린소주인 05.07.11 카페에서 공개한 게시글입니다.'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키워드로 검색한 게시글 더보기 서비스 약관/정책권리침해신고카페 신고이용약관카페 고객센터검색비공개 요청 Copyright (c) Daum Communications Corp. All rights reserved. 카페친구들의 선물을 찾아보세요. 바로가기 Daum 카페 음악샵 내 블로그 내 메일 내 쪽지 랜덤 나쁜어린이소설♬〃PSH〃 cafe.daum.net/SIHNHYE 동물(공개) | 회원수 4587 카페정보내 정보 가입 2 방문 77 새글 5 카페지기 나린소주인 개설일 2004.01.09 프로필 손님 쪽지 0통 메일 0통 내 글 반응 휴대폰 카페 카페 초대 　　　[퍼온소설] 읽으신후엔 감상플을 .. 매너코멘부탁드려요 최신목록 목록 윗글 아랫글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141 ~ 160 > 글쓴이: 나린소주인 조회수 : 342 05.07.11 17:55 http://cafe.daum.net/SIHNHYE/JgAo/883 소설제목 :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작가명 : +메시아+ E-mail : darksorcery@hanmail.net 연재장소 : 새싹소설① -10대 총편수 : 총 162편 완결 장르 : 연애소설 -------- 출처 : 인터넷소설닷컴 (http://cafe.daum.net/youllsosul) 팬까페 : http://cafe.daum.net/msacafe 141. * * * * 근 두 달여만에 한국 땅을 밟은 은별의 기분은 뭐라 형용할 수 없었다. 어디론가로 전화한 은하의 짧은 통화로 비행기표를 쉽게 구한 그들은 12시간의 긴 여정을 끝내고 가을 하늘이 아름다운 한국의 땅을 밟았다. "It look so great. 한국이란 나라는." 은하를 부축하며 공항을 빠져나오는 피아나가 말없이 걷기만 하는 은하에게 말했다. "가을 하늘이 시리도록 예쁜 나라죠. 우러러 보면 부끄러움이 느껴질 정도로.." 그녀의 말에 앞이 보이지 않는 그는 그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근 1년여만에 밟아보는 모국의 땅이건만 앞이 보이지 않는 그로서는 마음만 아플 뿐이었다. 아픔이 많은 곳이었다. 도망치듯 동생을 버리고 타국으로 떠나야했던 그에겐... 피아나는 안쓰러운 마음에 그저 슬픈 눈으로 그를 쳐다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은별아." "응, 오빠." 앞서서 걸어가던 은별이 은하의 부름에 뒤를 돌아 그를 쳐다보았다. 은하는 자신을 돌아본 은별의 얼굴을 하염없이 쓰다듬으며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도 부드러운 은하의 손길이 오늘은 가슴 아프게만 느껴지는 은별이다. 은하는 한참동안 동작을 반복하다 은별의 이마에 살며시 입을 맞추곤 말했다. "여기서 택시를 타고 명문고등학교 앞으로 가렴. 그 곳에 가면... 네가 원하는 기억을 찾을 수 있을테니까." "오빠는...?" "네가 기억을 찾게 된다면 내가 있는 곳으로 오게 될 거야. 만약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오빠 핸드폰으로 전화해. 선택은 네 자유야. 은별아." "응?" "오빠는 너만이라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네 선택에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오빠?" 은하의 갈색 빛을 내는 초점 없는 눈이 가슴이 아릴 정도로 흔들렸다.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의 이름을 부르는 그녀를 은하는 서둘러 그들의 앞에 선 택시에 태웠다. "명문고등학교로 가 주세요." "오.. 오빠!" 은별은 영문도 모른 체 은하의 힘에 이끌려 얼떨결에 택시에 타게 되었고 그녀를 태운 택시는 은하가 선불로 내민 돈을 받고 은별의 외침을 뒤로 한 채 순식간에 출발했다. 한참 동안을 택시가 떠난 자리만 지켜보고 있는 은하에게 그의 옆에서 아무 말 없이 그를 부축하던 피아나가 씁쓸한 여운이 남는 목소리로 은하에게 물었다. "은하, 괜찮아요?" "비가... 비가 올 것 같군요." 피아나의 말에 보이지 않는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동문서답하는 은하다. 하지만 그의 말이 너무도 서글퍼서 피아나 역시 그처럼 하늘을 쳐다보게 되었다. 그의 말처럼 하늘엔 비를 머금은 회색 먹구름이 잔뜩 몰려와 있었다. "...비는 희미하게 남겨진 추억까지도 회상하게 만들죠." "은하." "눈물로 만들어진 비는 그 결과가 아픔 뿐이라도 진실을 보여주니까요." "은하,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 후- 당신에게 돌아올 것은 원망일지도 몰라요." "괜찮아요. 이미 난 은별이를 위해 모든 걸 버렸으니까요." 바보같은 사람. 바보같은 사람. 당신이나 나나 돌려 받지 못할 사랑만 하는군요. ...닮은 사랑. 어쩌면 피아나는 자신과 닮은 사랑을 하는 은하에게 끌렸는 지도 모른다. 은하를 보며 가슴 졸이는 피아나의 눈에 언뜻 반짝이는 무언가가 맺혀있었다. "Don't cry. Miss. Piana. 당신의 눈물은 내가 닦아줄 수 없으니까."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사람에게는 너무도 차가운 사람. 피아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매달려있던 눈물을 바닥으로 떨구었다. "That's OK. I'm strong. (괜찮아요. 전 강하니까요.)" "..." "은하, 우리도 가야할 곳이 있잖아요. 늦기 전에 서둘러요." 피아나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하며 말이 없는 은하를 부축해 어디론가로 향했다. * * * * 택시는 시원스럽게 뚫린 도로를 질주해 명문고등학교가 보이는 앞길에 당도했고, 그녀가 택시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서는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후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빗방울들은 메마른 땅을 적시기 바빴다. "명문고등학교..." 많이 들어본 듯한 익숙한 단어기에 은별은 계속 몀문고등학교란 말을 되풀이하며 차가운 빗 속을 천천히 걸어 멀리 보이는 명문고등학교 교문 앞으로 향해갔다. "채은별." 땅을 보고 걷던 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번쩍 고개를 들었다. 은별의 시야엔 교문 앞에서 한없이 쏟아지는 차가운 가을비를 맞고 흠뻑 젖은 몸으로 그녀를 여태껏 기다렸다는 듯이 은별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 씨발.. 기다리는 건 졸라 못 하는데.. 너니까.. 채은별 너니까.. 죽을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어..' 갑자기 머리 속에 떠오르는 익숙한 말과 목소리... 왠지 모르겠지만 이 상황이 익숙한 은별은 그저 떨리는 눈동자로 남자아이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이야." "누구..?"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그녀 앞으로 다가오는 남자아이의 아릿한 표정을 보면서 은별은 익숙함과 동시에 저릿하게 아파오는 가슴의 통증을 느꼈다. 남자아이는 그녀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정면으로 응시하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기억을 잃었다는 말은 들었어.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네가 첫사랑이라 믿었던 한겨울이야." * * * [사대부고등학교 운동장] 사대부고등학교 운동장에는 중앙을 기점으로 두 세력이 나누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세력의 선두에 각각 한결의 모습과 현의 모습이 보였다. 근 두달여만에 모습을 드러낸 현의 모습에 한결의 긴장으로 굳어졌다. 현은 새롭게 결성한 한결의 세력을 쓱 훑어보더니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비아냥거렸다. "픽- 내 세력의 2/3도 될 듯 말 듯 아슬아슬하군. 그 세력을 같고 덤비려고 하다니. 저번에 나한테 맞아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닌가? 짝퉁 포커스 현한결." "마음대로 지껄여라." "픽. 네가 그렇게 용 쓴다고 은별이가 너한테 돌아가지는 않아." 현의 시니컬한 목소리는 사람을 흥분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한결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기 위해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현은 그런 그의 모습이 가소롭다는 듯 차갑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욱하는 성질은 많이 죽였나 보군. 민태하도 다시 받아주고 말이야. 킥." "입 닥쳐." 한결의 뒤에 서 있던 태하가 한결 대신 현의 말에 냉정하게 대꾸했다. 현의 뒤에서 한결의 지시에 따라 현의 세력인 척 하는 유빈은 한결을 향한 그의 비아냥거림에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는 주먹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썼다. "크큭, 그래도 안타깝겠군. 여기 있는 신유빈은 내가 약점 하나를 잡고 있어서 말이야. 신지빈이 콩밥을 먹냐 안 먹냐는 나한테 달려 있거든? 이 녀석을 빼돌리지 못해 아쉽겠군, 그렇지?" "........." 계속되는 현의 비아냥거림에도 한결은 이글이글 타 오르는 카리스마 넘치는 눈으로 현을 노려볼뿐이다. 현의 도발에 반응하면 안 그래도 힘든 전쟁이 더욱 힘들거라는 것을 아는 한결이기에. 두 달여만에 어른스러워진 그의 모습에 현 역시 조금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재미있군. 좋아. 네 도전 받아주지. 이길 수 있다면 이겨 봐. 하룻밤 강아지." 142. * * * "한겨울...?" '그 녀석은 잊어. 내가 항상 곁에서 널 지켜줄게. 다시는 너의 눈에서 눈물이 나오지 않게 맹세할게.' 겨울의 이름에 또 다시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의 머리 속을 배회했다. 몇 달만에 모습을 나타낸 그는 다소 시니컬하게 변해있었다. 겨울을 기억 못하는 은별은 여전히 모르겠다는 듯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었지만. "1여년 전, 제 3세력의 예상치도 못한 신영고 사건으로 인해 눈을 잃은 선우 현이 눈 이식수술로 한국을 떠나게 되었을 때 널 지키기 위해 네게 붙여놓은 셰파트라고 하면 되려나?" 그의 말에 조금씩 어지럽게 변하는 은별의 머리 속에는 익숙한 장면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한겨울이 네 첫사랑이 아니라, 내가 너의 첫사랑이야! 한겨울 그 녀석은 널 뺏기지 않기 위해 내가 붙여놓았던 녀석일 뿐이야!' '그래, 보는 게 사실이야. 킥- 넌 나한테 놀아난 거야. 세명고 얼짱정도 되야 내 체면이 살지 않냐? 사실 네 오빠였던 은하형이 사라지고 나서 네가 좀 불쌍해서 사귀었지. 그리고 은하형이 다시 나타나면 세력도 좀 얻어볼까 했는데, 은하형은 나타날 생각도 하지 않고 1년 동안 갖고 놀았더니 이제 지겨워지더라구. 그 동안 즐거웠다.' "현한결, 선우 현 그 두 녀석 모두 바보같은 녀석들이었어." "....?" "특히 선우 현 그 녀석은 더더욱." 말하는 겨울의 목소리는 회한에 잠긴 듯 씁쓸하게 들렸다. "무슨 소리야?" "서열이란 게 뭐길래 나를 포함해서 모두 그렇게 아둥바둥거렸던 걸까?" "...서열..." '지금 내게 주어진 역할이 악역이라면 난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할 거야. 하지만 보란 듯이 불의를 정의로 바꿔 저 짝퉁을 악역으로 만들어주지. 그런 다음 공주님을 악역에게서 빼앗아 올 거야. 그리고 Game Over.' '착각하지 마라! 선우 현. 넌 영원히 악역에 불의의 세력이 될 거다. 난 너에게 절대 무너지지 않아. 은별이가 있는 한!!!' 조금씩 되살아나는 그녀의 기억들에 은별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많은 기억이 한꺼번에 흘러 들어온 탓에 아픈 머리를 내젓는 은별을 향해 겨울은 계속 말을 이었다. "선우 현의 비대해지는 반란 세력은 완벽했다. 현한결의 정식 세력과 막상막하였지. 우리 제 3세력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고안책이 바로 채은별, 너였어. 반란 세력과 정식 세력 사이에 징검다리 역할을 하던 채은하의 동생, 채은별. 내 형이자 제 3세력의 숨겨진 포커스인 가을 형은 채은하의 배신으로 인해 반란 세력에 회의를 느끼고 우리 세력으로 들어온 신지빈을 시켜 널 신영고에 납치했지. 예상대로 너와 연인사이였던 선우 현을 무너뜨리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선우 현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였어. 그 녀석은 두 눈을 잃은 상태에서도 자신의 부상을 숨길 정도로 치밀한 녀석이었으니까. 그런 녀석이 실수를 한 게 있다면 독일로 떠나기 전에 바로 나를 네 곁에 붙여놓은 거야. 반란 세력과 정식 세력에서 줄다리기를 한 건 채은하뿐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은하형은 정의도 불의도 아니었지만, 정해져 있지 않은 정의와 불의의 세력, 모두에게 존경을 받을 만큼 멋진 사람이었어. 다만, 정이 지나칠 정도로 많았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지. 씹.. 그것만 아니었음, 현이 형이 포커스가 되었을 텐데..' 은별의 머리 속에서 재아의 말이 머리 속에 스쳐지나가고 이어지는 겨울의 말에 차근차근 모든 기억이 정리되어 간다. "무슨 소리야?" "난 제 3세력의 차기 포커스이자 반란 세력과 정식 세력 두 쪽 모두에 파견된 스파이였으니까. 그런 나에게 너를 맡긴 것은 고양이 앞에 생선을 맡긴 격이었지. 하지만 천재아의 눈 때문에 너에게 어떤 짓을 할 수도 없었어. 기회를 엿보고 있던 차에 네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현한결을 만난거야. 그리고 난 보았어. 널 사랑하게 된 현한결의 눈을... 곰곰히 생각했다. 현한결과 네가 사랑하게 된다면 너로 인해서 계속 반란을 미루고 있던 선우 현에게 반란을 일으키게 될 아주 좋은 촉진제가 될 거란 것을... 반란 세력과 정식 세력이 전쟁을 일으킨다면 두 쪽 다 어마어마한 손실을 감수해야겠지. 그들이 전쟁하는 동안 반란을 꿈꾸는 세력인냥 잠복하고 있다가 두 세력간에 전쟁이 끝나고 승패가 갈라지면, 어느 쪽이든 이긴 세력을 친다면 그들은 지쳐있어서 쉽게 무너질테고 베일에 감춰져있던 우리 제 3세력에도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는 계획을 세웠어. 넌 선우 현에 대한 기억을 잃은 상태였고 만약 나까지 널 버린다면 넌 외로움에 쉽게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게 될거라는 생각을 마친 난 널 현한결 앞에서 차갑고 모질게 버렸다. 예상대로 넌 현한결을 사랑하게 되었고, 돌아온 선우 현은 반란을 일으켰다." 기억이 하나 둘 돌아오는 은별에게 겨울이 말하는 진실은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겨울의 목소리가 슬픔에 벅찬 듯 떨려왔고, 그의 눈시울은 벌써 붉게 변해 있었다. "하아. 은별아. 한 번만- 한 번만 안아봐도 될까?" 진실을 자신에게 털어놓는 그가 너무 슬퍼 보여서였을까? 그녀는 쉽사리 고개를 끄덕였고, 겨울은 자신 앞에 서 있는 은별을 품에 끌어안았다. "선우 현의 반란은 성공했어. 현한결은 선우 현에게 무릎을 꿇었지. 반란을 꿈꾸는 세력인냥 잠복하고 있던 난 계획대로 이행할 수가 없었다. 현의 과거 얘기를 듣고 기억을 찾은 네가 고통스럽게 울면서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난 바보같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나도 모르게 널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선우 현 그 녀석은 이미 계산했던 것일지도 몰라. 어떤 여자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는 내가 널 사랑하게 될 거라는 것을. 나 역시 네가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될 거라는 것을..." 겨울의 두 눈에서 따뜻한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런 그의 품에 안긴 은별의 두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러나왔다. "서열이라는 것 너무 허무하게 느껴지더라. 네가 없으니까... 무엇 때문에 서열을 쫓았는지 모르겠더라. 네가 없으니까... 네가 아파 우는게 보기 싫더라. 널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네가 행복해서 웃을 수 있음 좋겠다. ..널 사랑하니까..." "겨울아. 난.." 그녀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들은 그는 은별이 기억을 모두 찾았다는 것을 느끼곤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난 이미 널 행복하게 해 줄 자격을 잃었어. 결정은 네 몫이야." "무슨..?" "현한결인지, 선우 현인지. 네가 같이 있어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야?" "난....." 겨울의 직접적인 질문에 은별은 말문이 막힌 나머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채은별, 그녀 때문에 두 눈을 잃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만을 사랑해주는 그녀가 없으면 몸도 마음도 모든게 무너질 그녀의 첫사랑, 현. 외롭고 의지할 곳 없는 그녀에게 새로운 사랑이란 감정을 심어준 한결. 그녀를 아프게도, 울게도, 웃게도, 행복하게도 만든 한결... 한결... 한결... 겨울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눈동자만 굴리는 은별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너무 머리 아프게 생각하지마. 네 심장을 뛰게 하는 사람은 누구야?" "심장을 뛰게 하는 사람...?" 겨울의 말에 그녀는 자신의 왼쪽 가슴에 손을 얹혔다. 그리고 그 사람을 생각한다. 두근- 두근- 두근- 빠르고 경쾌하게 뛰는 심장소리가... "현...한결.." 그녀의 붉고 작은 입술에서 새어나온 한결의 이름. 겨울은 그녀가 모르게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이곤 그녀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가자! 마지막 최후의 무대로." 143. * * * 피의 향은 그 어떤 향보다도 진하며 한편으로는 그 어떤 향보다도 중독성이 있다. 그 중독성에 피에 굶주린 듯한 광기 어린 눈을 한 일진들은 처절한 싸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있는 힘껏 주먹을 뻗는다. 때리지 않으면 맞는다. 이기지 않으면 질 수 밖에 없다. 싸움이란 그런 것이다. 흑백논리로 이루어진 어느 상황에서도 약자에겐 고통이 되는… “아.. 윽..” “씨발! 더 밟아! 일어나지 못 하게!” “존나 독종들만 모아놨나.” 이미 쓰러진 일진도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현의 세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악 물고 끝까지 버티려는 한결의 세력들. 바람을 타고 비의 비릿한 향기가 운동장 곳곳을 파고든다. [쏴아아아-] 잿빛 하늘에서는 무심하게도 시립도록 차가운 가을비를 하염없이 뿌려댄다. 쏟아지는 비를 타고 운동장 바닥으로 떨어지는 붉은 핏방울들이 아찔하다. “...............” 운명이란 필연 혹은 우연. 굴러가는 수레바퀴에서 어긋난 인연인 현과 한결이 서로를 마주보며 서 있다. 서로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서 있었다. 그런 그들의 주위로 벌어진 한결의 반란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대등하게 맞서 싸우던 한결의 세력들이 하나 둘, 수에 밀려 지쳐 쓰러졌다. 대세는 이미 현에게 기울어지고 있었다. “이미 판가름은 난 것 같군. 아니- 킥, 원래부터 너의 승리란 없던거야. 넌 영원한 짝퉁 포커스니까. 안 그래? 현한결. 겁도 없이 덤비기는-“ “...............” 비릿한 조소를 지으며 현이 한결을 조롱하듯 침묵 속에서 말을 꺼냈다. 현의 뒤에서 그의 조롱을 들으며 유빈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에 입술을 깨물며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한결을 바라보았다. 걱정과는 달리 한결은 대답 없이 주먹만을 불끈 쥘 뿐이다. “하룻밤 개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비다가 너 같은 꼴이 되는 거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법이야.” 계속되는 현의 조롱에 한결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2달 전에 그라면 현의 말에 노발대발 주먹 먼저 나갔겠지만, 그는 성장했다. 뼈를 깎는 아픔 속에서 인내란 것을 배웠고, 패배란 쓰라림 속에서 냉정이란 것을 배웠다. “두 달 전과는 조금은 달라졌다 이건가? 킥.” 의외로 차분한 한결의 모습도 현 역시 조금은 놀란 듯 조소를 지었다. “쿡- 현한결, 조금이라도 변한 것에 대해선 칭찬해 주지. 하지만 말야, 힘이 없는 자에겐 정의란 없다. 네가 그렇게 발버둥친다고 은별이가 너에게 돌아갈 줄 안다면 그건 자만이고, 오만이야. 절대 그럴 일은 없을 테니....“ 현은 하고 있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볼을 강타한 주먹에 의해 한 두 걸음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현의 몸에 손 하나 댈 수 없었던 한결의 주먹이 현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그를 친 것이다. “좀 센데? 저번에 나한테 맞고 많이 벼루고 있었나본데? 큭.” 한결에게 볼을 내주고도 현의 얼굴엔 평상시와 같이 차가운 조소만이 있을 뿐이다. 한결이 현에게 느끼는 가장 두려운 점이 이 것이다. 남의 도발하기에 충분한 비웃음과 어느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는 이성적인 머리. “너한테 칭찬 따위 들으려고 친 것 아냐. 선우 현.” “큭, 왜 한 대 더 쳐보지 그래? 어차피 이 전쟁에서 넌 질 테고. 억울할 텐데 한 대 더 때려야 속 시원하지 않겠어?” “지면 다음에 다시 또 도전할 거다. 은별이를 되찾을 때까지 계속-” [퍽-!!!!!] 한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은별이란 이름이 튀어나오자마자 현의 굳게 쥔 주먹의 한결의 배를 빠르게 강타했다. 그의 주먹에 한결 역시 한 두 걸음 물러섰다. 현의 주먹은 여전히 셌다. “씨발, 은별이 이름 입에 담지 마. 불결해. 너 같은 새끼 입에 담길 애 아니야. 깨끗하게 그만 포기해. 구질구질 해 보여. 현한결.“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동자로 한결을 노려보는 현의 모습에 한결 역시 싸늘하게 식은 눈동자로 맞대응하며 대답했다. “포기라고? 웃기지 마. 포기 따윈 한 번 경험한 것으로도 족해. 네가 날 무너뜨려도 날 계속 일어설 거야. 네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끝까지 일어설 거다. 내 곁에 없는 은별이를 그리면서 산산이 부서져버리는 심장보다 그녀를 찾기 위해서 너에게 맞서 싸우며 부서지는 심장이 덜 아프니까.” “너, 이 자식!!!!” 현의 주먹이 다시 나가려는 찰나, “와아아아아!!!” 커다란 고함소리와 함께 수천 명의 각각의 교복을 입은 학생 무리가 반란으로 쑥대밭이 된 사대부고 운동장으로 들어왔다. 한참을 치고 박고 싸우던 한결의 세력과 현의 세력은 잠시 싸움을 멈추고 운동장으로 들어와 주위를 감싸는 그들을 바라보았고, 한결과 현 역시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듯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한결아.” 그 때였다. 낯익은 목소리가 한결의 귀에 들린 것은.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본 그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천 명의 일진들이 터준 길을 따라 걸어오는 은별의 모습을 보았기에. “…채은별.” 그가 부른다. 그의 부름에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은별은 한 걸음에 그의 품으로 달려가 안겼다. “한결아, 미안해. 한결아-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잠시라도 널 혼자 둔 거 너무 미안해. 잠시라도 너에 대한 기억을 잊어서 너무 미안해. 사랑해. 미치도록 사랑해. 내 심장, 내 마음은 네 거라서 네가 곁에 없으니까 고장 나 버렸어. 수리를 받아야할 것 같아. 네가 없으니까 웃을 수가 없어.“ “하아, 채은별. 채은별. 돌아온 거지? 내 심장 병신된 거 고쳐주려고 돌아온 거 맞지?” “응응. 한결아. 나 돌아왔어.” “씨발, 무슨 짓거리야!!!!!!!!!” 서로를 끌어안고 재회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차갑게 얼어붙은 표정을 한 현이 그들에게 다가와 안고 있는 그 둘을 힘으로 떼어냈다. 그는 은별의 손목을 거칠게 잡으면 화가 났을 때의 특유한 시니컬한 목소리로 말했다. “은별아. 돌아가. 여기 네가 있을 자리 아니야.” “현아.” “돌아가.” 단호하게 말하는 그를 바라보면 은별은 2달 동안 보이지 않았던 미소를 지었다. 슬프게, 애달프게, 눈물이 나게… 그녀는 이제 그만 행복해 지고 싶었다. 그만 눈물짓고 싶었다. 설사 그녀의 선택이 현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할지라도… “미안해. 현아. 미안하지만 나 돌아갈 수 없어. 너에게 느꼈던 감정은 사랑이 아니야. 미안함과 안쓰러움이였어. 사랑과 동정은 비슷한 것 같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거야. 현아, 내 심장을 널 위해 뛰지 않아. 사람에게는 자신의 인연을 연결해주는 붉은 실이라는 것이 있대. 내 심장에서 나온 붉은 실은 한결이의 심장에 연결 되어있어서 한결이가 울면 나도 울게 되고 한결이가 아프면 나도 아프게 돼. 한결이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고 한결이가 웃어야만 나도 웃을 수 있어. 현아- 나 이제 그만 웃고 싶어. 이제 슬퍼하지 않고 한결이 옆에서 웃고 싶어.“ 차분하게 대답하는 은별의 말에 현은 할 말을 잃은 듯 초점없이 눈이 흔들렸다. 그녀 역시 한결과 마찬가지로 어떤 계기로 성장한 것 같았다. 왜 항상 자신만 그 자리에 맴도는 것일까? 따라잡으려고 발버둥 쳐도 너무도 멀리 달아나버리는 그녀가 나쁘다. “싫어. 못 놔줘. 웃지 마. 사랑하지도 마. 나만 보고 있어.” "현아!!! 윽-“ 현은 팔목을 빼내려고 안간 힘을 쓰는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을 더욱 꽉 움켜쥐었다. “놔- 선우 현!” “꺼져. 현한결. 죽이기 전에 꺼져버려.” “은별이 놔.” “은별이 내 거야! 넌 패자야. 킥- 은별이 가질 자격 없어. 사랑하지 않아도 은별이는 내 거야. 4년 전부터 그렇게 믿고 왔어. 아니 4년 전부터 변함없는 사실이야! 꺼져!!!“ 이미 이성을 잃은 듯 보이는 광기어린 눈을 한 현이 발버둥치는 은별을 억지로 끌어안았다. 숨이 막힐 듯 꽉 붙잡혀 있는 그녀 때문에 현에게 어떻게 손도 쓰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한결은 애꿎게 바싹바싹 타는 입술만 깨물었다. 그 때, 이성을 잃은 현의 팔을 기술적으로 가볍게 꺾어 넘겨 은별을 빼내는 사람이 있었다. “선우 현. 지금 네 모습 완전 광견병 걸린 개같이 보여, 알고나 있냐?” 144. “한겨울...?!” “동사새끼?!” 이성을 잃고 날뛰던 현이나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한결이나 갑작스럽게 등장한 겨울의 모습에 놀란 듯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겨울은 그들의 반응을 지켜보다가 이내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랜만이네. 귀하신 두 분.” “씨발!!! 동사새끼, 채은별한테서 안 떨어져?!” 은별을 데리고 온 건 겨울인데, 상황을 알 리 없는 한결은 겨울에게 상처받았던 적이 있던 그녀가 아파할까 걱정스럽게 소리쳤다. 그런 그에게 은별은 괜찮다는 미소를 지었지만 겨울은 괜한 오해를 받는 게 싫었던 것이지 서둘러 현에게서 빼낸 은별을 한결의 품에 돌려놔주었다. "씨발, 한겨울. 무슨 짓이야?!“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 그만 하지?” “뭐, 무슨 헛소리야. 한겨울, 지방에 있어야 할 네가 지금 왜 여기 있는 거지?!” 은별을 빼앗아간 겨울을 싸늘하게 노려보는 현의 눈동자에는 살기마저 느껴졌다. “이번 전쟁에서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께서 예상치 못한 가장 큰 변수는 바로 감춰진 우리 제 3세력이지. 소개하지. 제 3세력의 2대 포커스 한겨울이라고 한다.” “한겨울!!!!!!! 너!!!!!!!!!” “선우 현. 이제 그만 이 지긋지긋한 전쟁놀이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어? 너의 사사로운 원한 감정으로 아무 죄 없는 일진들을 끌어다 싸우게 만드는 거 이제 진절머리가 난다. 이제 끝낼 때가 온 거야.“ “신지빈의 사주냐?!” 현의 입에서 튀어나온 유빈의 형 지빈의 이름에 유빈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겨울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대답했다. “지빈형은 그저 잠깐 우리 세력에 머물렀을 뿐. 지금은 자유의 몸. 우리 3세력은 내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내 의지는 현한결의 뜻과 같아.“ 겨울의 말에 은별을 품에 안고 상황을 지켜보던 한결의 눈이 커졌다. 그의 말은 즉, 제 3세력이 한결의 세력에 가담한다는 뜻이었다. 한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적어도 3~4천명은 되어 보이는 겨울이 이끄는 제 3세력을 본 그는 현의 세력과 비등해지자 승리를 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얼굴에 비춰졌다. “하… 말도 안 돼!! 이기는 건 나야. 이겨야만 해. 난… 난!!!!!” 광기(狂氣). 현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졌다. 그에 따라 암울하게 내리던 빗발은 점점 더 거세졌다. 血淚. 하늘은 처절하게도 슬픈 운명들을 알고 있었던 걸까? 오열하는 현의 외침과 함께 이성을 잃은 그가 한결을 향해 달려들었다. “안 돼!” 돌진하던 현에게 돌연듯 달려들어 온 몸으로 막은 것은 은하였다. 그는 현에게 치여 쏟아지는 비로 젖은 운동장 바닥에 내박쳐졌다. “으..은하형?!!” “은하형?!!!” “은하혀~~~엉~~!!!!!!!” “채은하??!!!!!” 외마디 외침으로 등장한 은하의 모습에 은별을 제외한 한결과 현, 태하, 유빈, 사랑 그리고 겨울마저도 놀라 저절로 은하의 이름을 입 밖으로 냈다. 그들의 부름에 앞이 보이지 않는 은하는 옆으로 다가온 피아나의 도움으로 일어섰다. “오랜만이다. 다들.” “은하형!!! 눈이??!!!!” “쉿, 우선은...” 초점없는 은하의 눈을 본 태하는 은하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른 체 놀라 소리치자 그의 말을 막으며 은하는 피아나의 부축을 받아 망연자실한 채 서있는 현에게 다가갔다. “현아.” 은하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있었다. 눈물을 참는 듯 간간히 목소리가 떨리는 것 같이 들렸다. 고개를 들어 은하를 바라본 현은 눈물을 삼키며 소리쳤다. “은하형, 형은 알고 이렇게 될 줄 있었던 거죠? 그런 거죠?!! 형은 항상 그랬어요. 아버지하고 은규 삼촌이 돌아가실 때도, 유노형이 죽을 때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항상 냉정하게 행동했어요. 형은 알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나에게 아무런 질책도 하지 않은 거죠?!! 안 돼요. 은별인 안 돼요. 제발, 내게서 빼앗지 말아줘요.” “선우 현.” “형, 현한결한테 포커스 자리도 돌려줄게요. 이제 나한테는 아무 것도 없어요. 제발, 은별이만은… 은별이만은…” 사내의 오열은 울음에 가까웠다. 분노에 치를 떨던 사내는 절망에 빠진 것 마냥 생기가 없었다. 아마 어떠한 말을 해도 위로가 될 수 없겠지. 은하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저 현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는 입을 열었다. “울지 마라. 아프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마라. 증오는 한 순간일 뿐. 보이지 않던 우리의 끝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이 비 속에서 드러날 테니.” “허무한 끝에 낙담하지 않기를…” 은하의 말 뒤에 낯익은 중후하고 근엄한 목소리가 오버랩 되었다. 모두가 은하의 등 뒤로 시선이 옮겨졌다. 시선을 옮긴 한결은 믿기지 않는 표정을 한 체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은하의 등 뒤에 서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은… “아버지…?” 한결의 아버지, 한준이었다. 놀란 듯 한결의 입에서 아버지란 소리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현 역시 한준에게로 절망과 함께 살기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살인자!!!!” (털썩-) “......용서해다오.....” 서슴없이 한준에게 살인자라고 외치던 현의 살기 어린 눈이 초점을 잃었다. 옆 편에 서 있던 한결 마저도 놀라 눈조차 깜빡일 수 없었다. 한준이 현의 앞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무릎을 꿇고 빌고 있다. “...한준 아저씨, 아저씨가 용서 빌 필요 없어요.” “아니, 은하야. 그 동안 저 아이가 나에게 증오의 감정을 품고 자랐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난 이미 씻을 수 없는 죄인인 거다. 정말 미안하다. 날 용서해다오.” 은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한준은 용서를 빌었다. 하? 너무도 쉽게 그가 용서를 구한다. 이런 게 아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걸까? 뭔가 잘못 되도 한참이 잘못 되었다. 이렇게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상황 따위는 생각해 본적이 없다. “아악!!!!! 일어나!! 살인자!!! 일어나라고!!!! 일어나서… 일어나서…” 한준에게 달려들어 그의 멱살을 잡고 발악하는 현의 행동에도 꿈쩍없이 한준은 무릎을 꿇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울부짖는 현은 지친 듯 했다. 복수를 위해 여태껏 버텨온 그였건만… “4년 전 생긴 비행기 사고는 한준 아저씨의 지시가 아니었다. H그룹과 비약 발전하는 S그룹 사이에서 틈을 노리고 있던 A그룹이 조작했던 일이야. A그룹의 산업스파이가 H그룹 사원인 것처럼 회사로 잠입해 근무하면서 일을 꾸몄다. 한준 아저씨에게 가장 크게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것은 바로 친구가 죽는 일일 테니까. 유현삼촌은 한준 아저씨가 자신의 동생을 죽게 했다고 미워하신 것 같지만 그런 것도 아니였어. 비행기가 추락한 장소를 근 1년 동안 수색해서 찾은 거야. 유현삼촌의 펜던트 안에 남아있던 거래. 읽어봐. 현아.“ 애써 상황을 설명하던 은하는 반응이 없는 현에게 조그만 메모를 하나 넘겼다. 현은 떨리는 손으로 은하가 넘긴 메모를 조심스럽게 펼쳤다. 깔끔하게 한자 한자 또박또박 적혀있는 글은 분명 자신의 아버지 선우유현이 쓴 글이 분명했다. 현은 천천히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갔다. 「사랑하는 여보, 그리고 나의 귀여운 두 아들에게. 여보, 이 편지가 전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마지막 희망을 담아 적어보오. 비행기가 잠시 후면 추락할 듯 보이오. 아마 나 역시 무사하지 못하겠지. 이렇게 당신과 아이들을 세상에 버려두고 혼자 떠나게 되어 미안하오. 사랑했소. 아니 지금도 사랑하오. 영원히… 내 몫까지 건강하게 살아서 우리 두 아들들 장가가고 손주까지 보도록 해 주시구려. 하늘에서 지켜볼 테니… 마지막 가는 길에 한 가지 아직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소. 20년 가까이를 내가 증오한다고 생각하고 져버렸던 한준이가 자꾸 생각이 나오. 원래 심장병으로 오래 살지 못할 내 동생 유진일 거두어준 것만으로 고마운 일인데… 당신이 나 대신 한준이에게 미안하다고 전해주시오. 그리고 죄책감에 그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버렸다는 그 한결이란 아이를 한얼이에게 쏟는 사랑만큼 …더 이상 숨기지 말고 사랑해주라고 전해주시오. 사랑하오. 여보. 사랑해.........」 메모를 다 읽은 현은 힘없이 메모를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그의 다갈색 빛을 내는 눈엔 맑은 눈물이 한 가득 고였다. 진실이란 이런 것이었던 걸까? 이렇게 단숨에 풀어져 버릴 것이면서 그렇게 풀리지 않을 것처럼 꽁꽁 얽혀있던 것일까? “현아, 한얼형은 진심으로 유노형을 친구라 여겼었다. 서열 1위 자리 역시 유노형에게 넘기려고 했었어. 하지만…“ “하지만 나의 형 한가을이 선우유노와 현한얼, 둘 사이를 이간질시켰다. 명문고등학교는 H그룹이 아닌 나의 형 한가을과 친분이 있는 A그룹이 이끌었거든. 가을형의 사주로 명문고등학교 이사장이었던 A그룹의 사장의 친척은 선우유노의 입학을 혼혈은 안 된다는 기막힌 이유로 허가하지 않았지. 선우유노가 현한결에게 포커스 자리를 넘긴 채은하를 찾아갔을 때 죽도록 팼던 것도… .............................현한얼이 아니라 바로 내 형이야. ......미안하다. 모든 일들은 가을형의 욕심으로 인해 일어났지만 나의 형 역시 작년에 죄값을 치룬 것인지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기고 눈을 감아 버렸다. 제 3세력의 내부 반란으로...” 끝을 흐리는 은하의 말을 겨울이 담담하게 이어 말했다. 서로의 깊은 오해로 빚어진 사건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제 3자의 사람들. 모든 것에 보호받고 얽매여 있던 것처럼 보이던 끝이 무방비하게 드러났다. 현의 잔혹한 복수의 칼날은 처음부터 빗겨나간 것이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드러난 진실은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싸웠고, 무엇 때문에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했단 말인가? 모두가 생각에 잠겨 침묵에 감싸여있을 때, 천천히 한준이 무릎을 털고 일어나 탈진해 보이는 현을 품에 안았다. “뭐야!! 이거 놔!!!” 한준의 넓은 품에 얼떨결에 안겨버린 현은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쳤다. 한준은 한결에겐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인자한 모습으로 현을 더욱 꼭 끌어안았다. “우리들의 인연이 어디서부터 엉킨 것인지 나는 모르고 있었다. 사실 현이 네가 눈 수술을 받기 위해 은하와 독일에 갔을 때, 태후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유현이의 아들이 왔다고, 한 번 만나보지 않겠냐고… 난 반가운 마음에 독일로 갔다. 그 곳에서... 지독하게 우리 집안사람들을 미워하는 눈을 잃은 너를 만났지. 은하의 부탁에 태후와 목소리가 비슷했던 난 태후 행세를 하면서 너를 지켜보았다.“ “...당신이 날 돌봐줬던 태후 아저씨였다고?” “...그래.” 한준의 대답에 현은 발버둥치던 것을 멈추고 맥없이 한준의 품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것이 진실이다... 이것이... 자신이 증오한다고 믿었던 사람에게서 간호를 받고 돌봄을 받았다니... 이미 현의 마음에 높게 쌓여있던 증오들이 하나 둘 허물어져 버렸다. “...당신마저 그러면 어떻게 해. 복수를 위해서 살아온 난 어뜩하냐고…” 눈물을 흘리는 현의 목소리가 가냘프게 떨려왔다. 눈물 어린 그의 목소리에는 이미 용서와 참회의 뜻이 담겨있었다. “…현아. 조사 때문에 더 빨리 오해를 풀어주지 못해 미안하다.” “......하아.......” “현아.” 은하는 때가 되었다는 듯 침묵을 지키는 현의 이름을 불렀다.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거겠죠? 은별이도, 포커스 자리도, 사랑도, 야망도... 원래 내 자리가 아니였던 거죠? 이게, 은하형. 형이 하고 싶어했던 말이죠? 현은 알았다는 듯 슬픈 표정을 한 고개를 그의 부름에 두어 번 끄덕였다. “..........하아. 전쟁 끝. 최후의 승자는 현한결. 패자는 선우 현.” 그렇게 한준의 따뜻한 품에서 온기를 느끼며 현은 자신의 패배를 시인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승리의 환성을 지르지 못한 채 침묵만을 지켰다. .....하늘에서 내리던 슬픈 비가 그쳤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얼굴에 흐르는 빗방울들을 닦아내지 못했다. 145. 깊은 오해와, 말할 수 없는 슬픔, 사사로운 원한으로 빚어졌던 피의 비릿한 향으로 가득했던 그들만의 전쟁이 끝났다. 최후의 승리는 한결의 차지가 되었지만 그 역시 착잡한 표정이었다. 무엇을, 무엇 때문에… 미움 받고 미워하고 아파하고 아픔을 줘야 했던 건지. 숙연한 분위기가 무겁기만 하다. “..............” 이미 모든 게 끝나버렸지만 어느 누구도 밖으로 발걸음을 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모든 시선이 아이를 어르듯이 현을 안고 있는 한결의 아버지 한준과 말없이 그저 그의 품에 안겨 조용히 눈물을 떨어뜨리는 현, 그리고 근 1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초점 없는 눈동자를 가진 은하에게 쏠려 있었다. “하, 씨발. 다 구경났어? 그 딴 동정 어린 시선 집어치우고 해산해.” 한참동안 한준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던 현은 자신을 보는 그들의 눈빛이 동정 어린 시선이라고 생각했는지 한준의 품에서 벗어나 차갑게 소리쳤다. 그의 외침에 그들은 우물쭈물하며 서로의 눈치를 보다 일제히, 넋이 나간 체 현과 한준을 바라보는 한결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젠장.” 그래, 승자는 현한결이니 이제 자신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겠지. 씁쓸하게 웃는 현은 시선을 돌리다 한결의 곁에 서 있는 은별과 시선이 맞닿았다. 이슬 같은 눈물이 맺혀있는 다갈색의 눈동자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녀는 항상 그랬다. 남의 아픔만 보면 그녀가 대신 눈물을 흘리곤 했다. “바보같이 울지 마.” 현은 보다보다 못 하겠던지 마주친 시선을 외면하며 은별에게 말했다. 그녀만 바라보면 눈물샘이 고장 난 것 같다. 한 동안 고쳐지지 않겠지. 어쩌면 평생 동안 고쳐지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현의 말에 한결은 곁에 있는 은별의 눈에 매달린 주옥같은 눈물을 하얗고 고운 그의 긴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이제 웃네.” 한결의 눈물을 닦아주자 그녀는 괜찮다는 듯 싱긋 웃어 보인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너희 둘 정말 잘 어울린다. 헌데, 그들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하는 현의 가슴 속은 아무리 좋은 쪽으로 다독여도 이미 너덜너덜해진 천 조작처럼 변해간다. “픽, 씨발, 선우 현. 멋대로 심장을 고장 내고, 멋대로 아파하면 바보가 되는 거잖아.” 씁쓸하게 웃는 현의 다갈색 빛 눈동자에는 끝없이 깊은 아픔이 비춰졌다. 한준은 그런 현을 안쓰럽게 바라보다 천천히 한결과 은별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결은 다가오는 그를 보고 불안감에 떠는 은별의 손을 꼭 잡으며 긴장감이 가득 한 경계의 눈빛으로 한준을 바라보았다. “결국은… 돌아왔는가?” 현을 안아줄 때와는 사뭇 다르게 표정이 없는 한준이 은별을 향해 물었다. 반기지 않는 듯한 그의 말에 은별은 애꿎은 입술만 잘근 깨물었다. “당신이 그런 말 할 자격 없어.” “네게 묻지 않았다.” 한준에 대한 두려움에 떠는 은별 대신 차갑게 대답하는 한결의 말에 한준은 감정 하나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그의 말을 맞받아쳤다. “은별양. 꼭 돌아와야만 했나?” “아, 씨발!! 애 울려고 하잖..” “한결아. 나 괜찮아.” 계속 되는 한준의 추궁에 은별의 눈엔 눈물까지 고였지만 여기서 두 달 전처럼 한준에게 모진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한결은 절대 인정하려 들지 않았지만 분명 그의 아버지였다. 피로서 부정할 수 없는 아버지이기에 은별은 한준에게서 인정을 받아야 했다. “죄송합니다. 아버님의 충고를 무시하고 다시 돌아와서…” “잊진 않았겠지? 은별양. 한결인 다음 달에 약혼식이 있을 예정이네.” “씨발! 누가 그딴 약혼 한다고 그랬어!!!” 한준의 말 하나하나가 비수가 깃든 것 같다. 그녀의 심장을 이리도 아프게 하는 것을 보면… 한결은 그의 말에 말도 안 된다는 식으로 매몰차게 부정을 했지만 눈물로 촉촉이 젖은 은별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려왔다. “은별양은 원래 현이의 약혼녀가 아니었나?” 한준의 말에 은별은 잠시 고개를 돌려 떨리는 눈으로 현을 바라보았다. 은별과 현의 시선이 마주쳤다. …잠깐의 정적. 은하가 현에게 준 다갈색의 깊고 심오한 눈동자가 슬프게 일렁거린다. 여린 그녀의 마음이 아파왔다. 어쩌면… 어쩌면… 기억을 잃은 그녀가 한결보다 현을 먼저 만났다면 그를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니다. 지금은 현을 향한 모든 감정들은 그저 동정심일 뿐. 더 이상 그에게 어떤 기대도 가지게 해서는 안 된다. “아니요. 전 현이 약혼녀가 아니에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한결이에요. 한결이가 없으면 저도 없어요. 한결이 아버님도 사랑을 해보셨으니 아실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 없이는 한시도 숨을 술 수 없다는 것을요. 내게 산소와 같은 사람. 제게 한결인 그런 사람이에요. 한결이가 없으면 저도 살 수 없어요. 한결이도 마찬가지고요.“ 젖은 듯한 목소리였지만 그녀의 말 한마디 한 마디는 카랑카랑했다. 명백한 뜻이 담긴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한결과 현의 표정은 확연히 달랐다. 여유가 담긴 미소를 짓는 한결에 비해 현의 표정은 참담, 그 자체였다. “그게 한결을 떠났었던 동안 은별양이 얻은 답인가?” 무슨 생각하는 지 알 수 없는 미묘한 표정을 한 한준의 질문에 은별은 천천히, 그러나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의 안색은 그럴수록 더더욱 창백해졌다. 너무 많이 사랑했다, 아니 사랑한다. 맹목적인 사랑. 아프다. 패배를 시인한 이상 은별을 향한 자신의 사랑의 끝이 비참할 줄은 알았지만… “현아. 잠깐 얘기 좀 할까?” “........” 배려하는 듯 묻는 은하의 말에 현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녀석, 많이 아프겠지. 마음에서 곪은 상처를 치료하려면 몇 년, 아니 몇 십 년이란 세월이 걸릴까? 은하는 안쓰러운 그의 모습에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옆에 서 있는 피아나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듯 귓속말을 했다. 그의 얘기를 끝까지 들은 피아나는 숨죽인 것 마냥 조용한 주위를 살피다 한결 주변에 모여 있는 태하와 유빈, 사랑을 발견하곤 그들에게 말했다. “아, 당신들이 신유빈, 민태하, 진사랑 군인가요?” “아- 네.” “은하가 일진들을 모두 돌려보내 달라고 부탁하네요. 그리고 은하를 만나고 싶으면 한빛 오피스텔 1004호로 오세요.” “아…” “에에! 혀엉~ 우리 재회의 회포도 안 풀고~ 어딜 가는 거예요! 아잉~ 형!! 내 순결을 빼앗아놓고 그렇게 가는 게 어디 있어요~!!!!” “진사랑.” 냉정한 태하의 목소리에 특유의 아양을 떨며 소리치던 사랑이 입을 다물었다. 아무튼, 진사랑. 2달 전이나 후나 변한 게 없다. 그게 사랑의 가장 큰 장점이겠지만 서도, 가장 큰 단점일수도. “가죠, 형.” “아아~ 은하혀어엉!!! 내 순결 돌려주고 가요!!!!” “야! 진사랑!!!” 사랑녀석. 은하가 좋긴 좋나보다. 순결을 운운하면서 가는 길을 막으려 들다니. 눈이 안 보이는 은하로서는 그저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인 채 옆으로 온 현과 피아나의 부축을 받아 이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2대 포커스 채은하 아냐?“ “그러게. 눈이 왜 저렇지?“ “모두 해산! 서열이 이제부터 없어진다! 자세한 사항은 나중에 통보한다!” 은하와 현, 피아나가 서둘러 어디론 가로 자리를 뜨자, 태하가 운동장에 서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일진들에게 소리쳤다. 그 소리에 망설이던 그들은 하나 둘 사대부고등학교 운동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모두가 빠져나갈 때까지 한결 일행과 한준은 서로를 마주본 체 침묵만을 지켰다. “.................” 한준은 카리스마를 느끼게 하는 시선으로 은별과 함께 서 있는 한결을 바라보았다. 한결 역시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으로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현을 안아줄 때의 마치 진짜 아버지와 같았던 한준의 모습에 입을 다물 수 없었던 한결은 자상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서늘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한준의 메마른 무표정에 할 말을 잃었다. “아버지.” 얼어붙은 고요함을 깬 것은 한결이 어렵게 꺼낸 아버지란 한 마디였다. “................” “지금 사람을 가지고 노는 건가? 분명 말했을 텐데. 난 당신의 인형이 아니라고.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한결아.” “가만히 있어. 채은별. 이제 와서 무슨 낯짝으로 은별이한테 뭐라 그러는 거야? 이젠 아무것도 안 뺏겨. 내 힘으로 아버지한테 빼앗긴 것 모두 되찾을 거야.” “…내가 네게서 빼앗은 건 아무것도 없다.” 매몰찬 한결의 말에 한준은 근엄한 목소리로 조용히 반박했다. “빼앗은 것이 없다고?” “.............” “하! 말이 되는 소릴 해! 가족이란 것도, 형제란 것도, 자식이란 것도. 다 당신이 앗아갔잖아!! 다 당신의 이기심으로 인해 사라졌잖아! …한 때, 당신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나와 엄마를 가차 없이 버린 잘난 당신에게 보란 듯이 성공으로 복수하겠다고 다짐했었다. …이젠 됐어. 당신도 나 같은 아들 없다고 생각해. 이제 그만해. 더 이상 내 일에 끼어들지 마. 내가 처음 찾은 행복이고... 사랑이야.“ 아들과 아버지의 마음에 쌓인 담은 너무도 높았다. 철저히 아버지를 원망하는 아들의 오열에 가까운 외침에 그의 앞에 서 있던 한준의 표정은 오묘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안색은 눈에 띠게 초췌하고 창백해져있었다. 마치 병색을 오래 않은 사람처럼. 말없이 자신의 아들의 얼굴을 천천히 살피던 그의 파도치듯 쉴 새 없이 일렁거리는 눈동자에 차갑게 식어버린 눈물이 매달려있었다. “너에게서 내가 앗아갔다고 생각한 모든 것들을 나 역시도 너처럼 모두 잃었다.” 146. “모든 걸 잃었다고?” 한준의 말에 한결의 차가운 냉기가 실린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비에 젖은 천연적인 그의 붉은빛 머리칼이 더욱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겨낸다. “말도 안 돼. 당신이 잃은 게 무엇 하나 있어? .......당신은 그저 사람을 가지고 놀았잖아.” 독기를 품어내는 눈빛에 아버지는 할 말을 잃은 듯 아들의 얼굴을 찬찬히 쳐다보았다. 수 년 동안, 쌓아진 아들과 아버지 사이의 담은 높게만 느껴졌다. 허물어지지 않는 담. 무엇 때문에 그들을 이리 갈라놓은 것인지… 한준은 흐르는 눈물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며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믿지 않겠지만 난 지금도 여전히 희아를 사랑하고 있다. 내 평생에 여자는 하나뿐이었으니까… 하지만 하늘의 장난인지 희아는 내가 사랑해서는 안 될 여자였다.” “…무슨 소리야.” “현이에게 들었을 거라 생각되지만… 희아의 진정한 사랑은 나, 현한준이 아니었다. 그녀가 진정 사랑한 사람은 유감스럽게도 나의 소꿉친구였던 태후였지.“ “그럴 리가 없어.” 한결이 아는 어머니는 한 평생 아버지만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그 고통을 견디지 못 해 자살이란 길을 택했다. 단호하게 말하는 한결의 대답에 한준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나도 희아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 믿고 있었다. 태후가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하지만 태후와의 단 두 번의 만남으로 희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희아는 부정하려 했지만 태후에게 향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천 년을 기다려온 태후의 사랑이니까…“ “천 년이라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어렸을 적부터 태후는 나에게 말해왔다. 자신은 전생을 기억한다고. 그리고 전생에 사랑했던,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여자를 찾기 위해 이번 생도 쏟을 거라고. 그렇게 갈구하며 세계 방방 곳곳을 떠돌아다니던 태후는 전생의 여자였던 희아를 만났다. 내 여자가 되어있던 희아를… 태후는 나 때문에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고 동유렵으로 떠났다. 희아에게 쓴 마지막 편지 한 장만을 자신의 별장에 남긴 채…“ 한결은 한준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져버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옆자리를 지키고 있던 태하 역시 침묵을 지키고는 있었지만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한준의 입에서는 더욱 믿기 힘든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단 두 번의 만남으로 태후를 그리워하는 희아를 놔주기로 확고히 결심한 것은 한결이 네가 이 세상에 나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동유럽에서 만나 태후와 연을 맺은 희아의 언니 강희우가 태후에게 버림받고 마음에 상처를 입은 채 나를 찾아와 태후가 희아에게 남겼던 편지를 보여주더군. 전생에서부터 현세까지 희아를 기다려왔다고 쓰인 편지… 평생을 아니 천 년을 희아를 기다린 태후에게 말 못할 죄책감을 느꼈다. 내가 가지면 안 될 사람을 가졌다는 것이 그렇게 가슴 아픈 일이라는 것을 그 때 알았다. 내 마음이 산산이 조각나더라도, 내 마음이 아프더라도 그녀를 태후에게 보내줘야 했다. 그게 나의 친구와 나의 사랑을 위한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녀가 내게 미련을 두지 못하게 너와 그녀를 모질게 버렸다.“ 말을 잇는 한준의 창백한 안색이 더욱 파리하게 변해 있었다. 지금도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왔다. 지금까지도 울부짖던 희아와 갓 난 한결의 얼굴이 떠올라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어리석었다. 희아는 내 생각처럼 태후를 찾아가지 않고 혼자서 너를 길렀지. 몇 년이 흐르고, 희아는 그녀를 찾아온 자신의 언니 강희우를 만나게 되었다. 태후에게 버림받고 점점 광기로 미쳐가는 자신의 언니 강희우에게서 태후의 편지를 건네받은 희우는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태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는 죄책감과 자신을 기다려온 태후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미쳐가는 자신의 언니에 대한 슬픔으로 결국 자살이란 극단적인 길을 선택했다. 그녀가 생의 마지막 날에 나에게 전화를 했었다. 미안하다고,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이제 그만 속박에서 편해지고 싶다고..... 난 그렇게 손 쓸 틈도 없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말았다.“ 한준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한결과 마주했던 시선을 태하에게로 옮겼다. 마주친 태하의 흑옥 같은 짙은 눈동자가 쉴 새 없이 요동치며 흔들렸다. 한준의 입에서 나오는 그의 아버지 태후와 어머니 희우의 이야기는 그에겐 과히 충격적이었고 비밀을 안 것만큼 전율마저 느껴졌다. 희우는 태후와 닮은 태하를 너무도 미워하며 또 한편으론 사랑했다. 태하는 어릴 적부터 자신의 어머니가 두려웠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버지에 대한 편협적인 집착과 어머니의 동생인 희아에게 자신의 사랑 태후를 뺏았겼단 분노에 의해 만들어진 광기(狂氣)로 나날이 미쳐가는 어머니가 두려웠다. 결국 어머니는 자신의 광기에 몸을 내주었지만… 한준의 입에서 풀어지는 마지막 반전은 비록 믿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현과 한결, 겨울의 이야기를 포함해 누구의 이야기보다 설득력이 있었다. “희아를 잃고 그 슬픔을 감추기 위해 난 냉소적인 사람이 되어 일에만 전념했다. 그런데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오해로 사이가 틀어지긴 했지만 나의 소꿉친구들이었던 은규와 유현이 의문의 비행기 추락사고로 세상을 등졌다.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지. 더 이상 아무도 잃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H그룹의 회장이란 내 위치에서는 무엇 하나 제대로 지킬 수 없었다.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나 때문에 세상을 떠난 유진이가 남긴 내 아들 한얼이까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땐 앞이 컴컴해지는 기분이었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더구나. 그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그 때, 18년 동안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던 한결이 네가 내 앞에 나타났다. 세상의 눈을 피해 음지로 내몰았던 나의 불쌍한 아들… 너마저 잃을 수 없었다. 세월에 의해 생긴 나와 너의 담이 높을지라도… 오해로 빚어진 너의 냉기 어린 눈초리가 날 아프게 했지만 날 원망하더라도 너만큼은 최고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싶었다.“ 한준은 한결을 버린 것도, 사랑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사랑받지 못하고 큰 한준 역시 사랑을 주는 법을 몰랐던 것뿐이었다. 그는 그저 한결에게 좋은 것만, 최고의 자리만을 주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알 리 없는 한결은 그가 내민 모든 것을 강요라 여긴 것이었다. “헌데 1년 전, 연락이 끊겨있던 태후에게서 20년 만에 연락이 왔다. 유현이의 아들인 현이가 자신의 집에 머물고 있는데 한 번 만나보지 않겠냐고… 난 망설일 틈도 없이 태후와 현이를 만나기 위해 독일로 한걸음에 떠났다. 하지만 내가 도착했을 때, 태후는 이미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다만 은규의 아들이 은하와 유현이의 아들이 현이 눈을 잃고 수술을 기다리고 있었지. 도착한 내게 은하가 부탁을 하더구나, 태후의 행세를 해 달라고.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와 목소리가 비슷했기에 은하의 부탁대로 태후의 행세를 했지. 그리고 현이를 만났다. 나에게 살인자라 부르며 날 지독하게 원망하는 그 아이를… 그 때 깨달았다. 모든 것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오해로 인해 빚어진 사슬들이 꽁꽁 엉켜버려 있다는 사실을…“ 긴 이야기를 마친 한준은 힘없이 한 숨을 푹 내쉬었다. 한결과 태하는 한준의 이야기에 할 말을 잃었는지 멍한 표정으로 서로를 응시했다. 뒤에 있던 유빈과 사랑은 가라앉은 분위기와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이야기에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눈치만 보며 서 있었다. 한준은 마른 목에 침을 삼키고 이번엔 은별에게 시선을 돌렸다. “은별양. 난 은별양의 선택에 추궁할 마음은 없네.” “…네?” “다만, 1년 전 만난 현이 모든 것을 다 잃은 상태에서도 은별양을 너무도 사랑하고 원했기에 은별양을 현에게 보내주고 싶었던 것뿐일세. 내 아들 한결이는 돌아올 집도, 가족도 있지만 현이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니까. 은별양만이라도 현이에게 돌려주면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은별양에게도, 한결이에게도, 그리고 현이에게도 결과적으로 상처만 주었네.“ 모질게 한결을 떠나라 윽박지르던 한준의 말은 진심이 아니었단 소리에 은별은 눈물이 맺힌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준 역시 한 시름 놓은 듯이 다소 밝은 표정으로 모두를 바라보았지만 한결에게는 아직 가장 중요하게 해결할 문제가 남아있었다. “은결이, 내 아들 은결이는 어디 있죠?!” 한결의 추궁에 한준의 안색이 흙빛으로 급격하게 변했다. “후, 안 그래도 얘기를 하려고 했다. 은결이는…” * * * [Q카페]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노랑 장미가 아름다운 카페였다. 은하와 그를 부축하는 피아나의 마주 편에 앉은 현은 묵묵히 카페의 경치만을 바라보았다. 아픈 마음을 달랠 길이 없는 현에게 최선의 방법은 침묵하는 길이었다. 그런 마음을 아는 은하는 한참동안 침묵을 지키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현아, 내가 한결이 못지않게 너를 아꼈던 것은…” “.............” “단지 유노형의 동생이었을 뿐 아니라 네가 나와 닮아갈 거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형?” “넌 외모뿐 아니라 나와 닮은 사랑을 하게 될 거라고 느꼈으니까.” “무슨 소리예요?” 대답하는 현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려왔다. 그의 대답에 은하는 초점 없는 눈을 허공에 응시한 채 슬프게 미소를 지었다. 이미 퇴색해버린 다갈색의 눈동자에는 어떠한 상도 잡히지 않았지만 그는 보이지 않는 눈에서 무언가를 보는 듯 신경을 집중하며 신중하게 말했다. “…난 지금도 미래를 느끼고 있으니까.” 147. [은하‘s behind story - 미래를 느끼는 눈을 가진 소년] 아마, 2살이었던가?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할 나이이지만,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식은땀이 절로 흐르던 끔찍한 악몽을 꿨다. 한기와 오한이 내 몸을 감쌌던 그 때, 칭얼거림으로 불안감을 표했을 그 때. “아아악!!!!!!!!!!” 찢어질듯 한 비명소리가 아찔했던 그 때.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함께 또 다른 생명이 지고 있을 그 때. “응애- 응애-” “하별아!!!!” “...은규.. 하아.. 미안...해.. 사랑...해....” “-마, 엄마!!!!” 아무 것도 몰랐을 나이, 어렸던 난 불안한 마음에 한참이고 칭얼거렸던 그 때. 힘겹게 은별이를 낳은 병약한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세상을 뜨셨다. 2살 박이 아이에게 미래란 아득한 꿈의 일. 하지만 내게 미래란 느끼고 있는 현실 그 자체. “은하야! 축구하러 안 갈래?” 초등학교를 다닐 때였다. 같은 반 친구, 준호가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내게 물었다. 아마, 그 아이는 우리 반에서 가장 축구를 잘 하던 아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아이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한 가지쯤은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재능을 개발하여 남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다. 하지만, 난 신이 내게 내려준 단 하나의 재능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난 안 할래. 비 올 것 같다.” 교실 창밖으로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내가 문득 머지않아 비가 올 것 같은 느낌을 받고 무심결에 말을 내뱉었다. “은하야. 어디 머리 다쳤냐? 이 맑은 하늘에 무슨 비? 오늘 기상일보에서도 비 온다는 소리 없었어. 그냥 축구하기 싫음 말아.” “....글쎄.” 준호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 한번 쳐다보고는 축구를 하기 위해 운동장으로 나갔다. 하지만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하늘 저 쪽 편에서는 검은 구름들이 몰려왔다. [쏴아아아-] “으악!! 웬 마른 하늘에서 비?!” “으- 차가워! 오늘 비 온다는 소리 없었는데.” 일기예보에서도 없던 폭우가 내 말 한마디에 차갑게 쏟아져 모든 것을 적셨다. 운동장 한 가운데서 갑작스럽게 쏟아진 비를 흠뻑 맞고 들어온 아이들 중 나와 이야기를 나눴던 준호만은 씩씩 거리며 나에게 다가와 내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 “너 뭐야! 씨! 일기예보에서 비 안 온다고 했었는데!” “........” “너 무당집 아들이냐?! 엄마도 없는 녀석이!!!” “야!! 한준호!! 그만둬! 은하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래?!” “맞아! 은하가 잘 생긴데다가 축구도 너랑 비등비등하게 하니까 샘내는 거냐?” 아무것도 모르는 반 여자아이들은 내 멱살을 잡고 있는 준호에게 이래저래 호통을 쳤다. 무심결에 뱉은 한 마디에 이런 소리까지 듣게 될 줄은 몰랐지만, 하지만 난 소리치는 준호의 말에 아무런 대꾸를 할 수 없었다. 무당집 아들은 아니지만 이미 난 미래를 느끼고 있으니까 말이다. “씨!! 채은하, 너 뭐라고 말 좀 해!” “…아무것도 막을 수 없지만 그래도 하늘에겐 내 재능을 감사하고 싶어.” 내 말에 성을 내던 준호는 숙연해졌다. 내 말뜻을 이해한 것일까? 아니면 엉뚱한 헛소리를 지껄인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 . “은별아. 오빠 왔어.” 이따금 불길한 기운을 느낄 때면 곳곳에서 이런 저런 일이 터지긴 했어도 미래를 느끼고 있는 나는 아무 것도 손을 쓸 수 없었다. 그래도 큰 사고 없이 세월이 흘렀고 나의 작은 천사는 어느 덧 숙녀티를 내기 시작했다. 꿈 많은 소녀의 나이에 도달한 나의 작은 천사, 은별이는 천식으로 인해 폈던 날개를 잠시 접고 홀로 아는 할머니 댁에서 요양 중이었다. 한 달 만에 찾아간 나의 모습에 은별이는 반가운 기색을 가득 담아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나를 끌어안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오빠, 은하오빠. 요번엔 왜 이리 늦게 왔어!” “미안, 은별아. 기침은 덜 심하지?” “응. 오빠! 헤헤- 은하오빠~ 은별이는 은하오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다는 작은 생명의 한 마디에 가슴이 벅차오르던 나. “오빠도 은별이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네가 말하는 좋다는 감정과 나의 사랑한다는 감정은 사뭇 다르겠지만. 이미 난 내 사랑의 끝이 어떤지 느끼고 있지만… 마음대로 멈출 수가 없다. 너를 향한 내 심장은 이미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감춰둘게, 내 말 못할 감정은. 나의 작은 천사. 너는 그저 티 없이 맑게 자라주면 되.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 * *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평상시와 같이 일상이 반복되던 날. 하지만 그 날은 오랫동안 꾸지 않았던 악몽을 다시 꾼 것으로 인해 내 마음은 뒤숭숭했다. 미약하게 느껴지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와 같은 불길한 느낌. “꺄악!!!!!!!!!!!!!! 차도에 사람이!!!!!” 사람들의 긴박한 외침에 때마침 친구들과 함께 길을 걷고 있던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이번만큼은 이미 느끼고 있던 불행을 막기 위해 차도 한 가운데 넋을 놓고 서 있는 남자아이를 향해 몸을 날렸다. [끼이익!!!!] 자동차 바퀴에서 나는 굉음이 머리를 울린다. “어이구! 얘야! 괜찮니?!” “은하야, 채은하? 괜찮아?!!” 어떻게 된 걸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위에 몰려있는 사람들과 친구들이 나를 부른다. …내가 다가올 미래를 막은 걸까? “은하야! 무모하게 뛰어들면 어떻게 해! 너까지 죽을 뻔 했잖아!” “…뭐? 어떻게… 된 거야?” “이 바보야! 자살하려고 결심한 애를 구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데!!!” “그래도 차도에 서 있던 그 녀석, 악의는 없었던 것 같아. 달려드는 너는 살리려고 널 바깥으로 밀치고 자기 혼자 차에 치였어. 차에 치인 그 아이, 즉사인 것 같아. 숨을 쉬지 않아.” “하...? 하하...” 결국은 막지 못했다. 아무것도... 어이가 없어 터져 나오는 웃음과 함께 눈물이 흘러 나왔다. 무기력했다. 바보 같았다. 결국 난 미래를 느낄 수 있는 재능만 있을 뿐. 어떠한 발버둥을 쳐도 신이 느끼게 해 준 그 미래를 미약한 난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다. 바꾸려고 노력할 수록 운명은 더욱 잔인한 결과를 가져온다. 신은 어째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 걸까? 무엇 하나 바꿀 수 없는 현실이 아프다. * * * 그 일이 있은 후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나는 많은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순간 엇나갈 듯 보였던 미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런 사실들은 어린 나이에 맞지 않게 날 성숙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러한 사실을 체념한 체, 내가 15살이 되던 해. 아직 봄의 길목에 서 있던 그 날은 화창했다. 아버지와 함께 말로만 들었던 아버지의 친구 분을 만나러 가는 길이 마냥 좋았다. 아버지가 평생을 함께 했다는 그 친구분, 어떤 분일까?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께 노랫말처럼 들어왔던 판박이처럼 나와 닮은 아이가 있다는 그 분의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큰 기대감과 함께 한편으로는 느껴지는 가슴 가득 이는 불안감… "얘들아! 삼촌 왔다!" 아버지는 익숙한 듯 친근하게 삼촌이란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었다. 아버지의 외침에 한 명, 두 명 모이기 시작한 아버지의 친구 분의 가족들. 그들은 내 얼굴을 보더니 하나같이 입을 딱 벌린 체, 경악하기 시작했다. "은규삼촌~!!!!! 어.. 어라...?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왜 그러니? 유노.... ..어머..!!! 이게 웬일이야?!" 그리고 이어서 내 눈앞에 나타난 그 아이… “다들 왜 그래요? 누구기에...?!! .......에.... .....도플갱어??!!!" 한 순간 아버지께 간간히 그 아이의 말을 들어오던 나도 놀라고 말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흑옥 빛을 내는 눈동자만 빼놓고 그 아이는 너무도 나를 닮았다. 마치 일란성 쌍둥이를 보는 것 같이. 그래서 더욱 슬펐는지도 모른다. 눈동자 색깔은 다르지만 내 눈빛과 너무도 닮은 아이의 눈빛에... "커헉.. 난 아직 13살 밖에 안 되었다고요!! 이런데서 도플갱어를 보다니!!! 제 2의 숨겨진 주인공인데 이런 곳에서 죽을 수는 없다고요!!!!!!" 그 때까지만 해도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아이였다. 아이의 시선과 내 시선이 공중에서 엉켰다. 한 순간이었지만 앞으로 일어날 비극적인 아이의 운명이 내게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깊게 박힌 원한과 끝이 보이지 않는 오해... 그리고 이 아이는 나와 같은 외(外)사랑을 하게 될 거란 숙명을 지녔다는 것을… 나와 닮았기에 더욱 선명하게 느껴지는 아이의 미래를 바꿀 수 없는 무기력한 나는 그저 그 아이를 향해 슬프게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재밌는 아이네, 네가 선우 현이구나. 아버지 말대로 나랑 똑같이 생겼네? 신기하다. 하여튼 반갑다. 난 채은하라고 해." 나의 미소가 당신의 슬픈 운명에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길… 148. [은하‘s behind story - 미래를 느끼는 눈을 가진 소년]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가족처럼 가깝게 지낼 수 있었던 유현삼촌, 그의 아내 반하숙모, 그리고 첫째 유노 형과 나를 너무도 닮은 현. 이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뚜렷해지는 미래의 느낌. 불안했다. 이토록 강렬하게 미래를 느낀 것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로는 없었는데… 어쩌면 깊은 오해와 분노로 인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복선의 시작이었지 모르는 그 날. 그 날도 그랬다. 알 수 없는 전율로 미치도록 떨리던 가슴. "형, 어디 불편해요?" 침울한 마음에 거실의 창가 밖으로 앙상한 벚꽃가지를 넋을 놓고 바라보던 날 본 것인지 어느 새 옆으로 다가온 현이 내게 물었다. "응? 뭐가?" "꼭 울 것 같아 보여서요." 울 것 같다라… 아이야, 넌 나의 표정만 봐도 나의 기분을 알아맞히는 구나. 어쩌면 나와 너무도 닮아서 나의 기분을 공유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그래서 더욱 가엾고 불쌍한 아이. 현아, 널 보면 괜스레 눈물이 난다. 마치 은별이를 볼 때처럼 말이야. "아무 것도 아냐, 그저 잠깐 불길한 기분이 들어서... 참! 벚꽃 하니까 생각난 건데 벚꽃은 은별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야." 그렇기에 이 아이에겐 누구에게도 꺼내지 않았던 은별이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걸까? "..형, 그거 알아요?" "응? 뭐?" "형이 그렇게 여동생에 대해 말할 때 보면 진짜 시스터 콤플렉스 같아요." 그렇게 여동생을 아끼면서 도대체 어떻게 그 애 곁을 떠나온 거예요?" 현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지레 놀라 순간이었지만 말문이 막혔다. 현인 눈치 채지 못한 눈치였지만… 아마 피가 섞인 혈육을 사랑하는 날 이 세상에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겠지. 이해를 바라진 않지만 마음이 씁쓸해진다. 나는 애써 쓴웃음을 지으며 장난처럼 가볍게 아이에게 대답했다. "정말 그렇게 보여? 아- 그래도 은별이가 보고 싶은 걸. 나도 병이다. 휴우- 나도 어떻게 그 약한 애를 그 곳에 혼자 두고 왔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강해져야 해. 그래야 우리 은별이를 지켜줄 수 있으니까." 강해져야 한다. 그 누구에게서라도 은별이를 지킬 수만 있다면… 지켜볼 수밖에 없는 사랑이라면 하늘의 숙명대로 지켜보기 위해… 두런두런 현이에게 은별이의 자랑을 늘어지게 늘어놓고 있을 때였다. "씨발!!!!!!!!!!!!!!!!!!!!!!" 평소에는 하지 않던 욕을 힘껏 내뱉으며 유노형이 현관으로 들어왔다. 낯설게 보이는 분노로 가득 찬 유노형의 모습. 침울하게 잠겼던 내 기분, 내 느낌에 또 다시 미래가 맞아 떨어지는 걸까. "형, 왜 그러세요?" "유노형, 뭐 잘못 먹었어? 왜 그래? 어울리지 않게 웬 욕이야?" 다급하게 묻는 나와 현이에게 유노형은 화를 주체하지 못 하고 어이가 없어 나오는 코웃음을 치며 이마를 손으로 짚은 체 입을 열었다. "씨발, 명문고 입학 불가란다." "뭐?!! 형, 수석으로 입학했잖아?!!" "그 개새끼 현한얼이랑 그 녀석 아버지인 현한준이 술수를 쓴 거지." 현한준. 현한얼. 그들의 이름을 듣는 순간 낯익은 느낌이 낸 온몸에 전율처럼 흘렀다. 전에 아버지께 들은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는 것 말고도 이토록 낯이 익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은 필시 하늘이 주신 나의 재능이 알려주는 미래란 숙명의 느낌. 하지만, 한편으로 마음에 소용돌이치는 또 다른 불안감. "도대체, 무슨 상황이에요? 전 이해가 잘 안 가는데..." 나의 질문에 현이도 알고 있는 사실인지 분노에 찰 때 특유하게 나타나는 차가운 조소를 지은 체 내게 모든 근황을 차근히 설명해주었다. 너무도 커져버린 분노로 인해 엉켜버린 듯 끝이 보이지 않는 오해의 사슬. 원수지간의 집안, 명문중학교 입학 때부터 동시 수석합격이라는 것부터 시작해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라이벌이라는 유노형과 현한얼이란 사람. 순간, 온 몸에 휘감기는 운명적으로 얽힌 그들의 미래를 아픔과 슬픔, 그리고… "전국의 엘리트들을 양성하는 명문고를 중심으로 일진들이 서열을 가리기 시작했다. 모든 엘리트들이 모이는 명문고에서만 서열 1위가 나올 수 있고, 2년마다 포커스가 지정하는 사람에게로 계속 교체된다. 픽- 웃기지 않아? 현한얼, 그 자식 보기와는 다르게 승부욕 하나는 무서울 정도로 많은 녀석이거든. 보나마나 자신이 서열 1위가 되기 위해 가장 걸림돌이 될 나를 제거하려 수를 쓴 거지. 혼혈이 입학이 안 되다니, 말이 되냐? 웃음 밖에 안 나온다. 명문고는 H기업에 의해 돌아가는 학교니 별 수 없다, 이거지. 킥- 씨발.." 그들만의 깊은 분노로 인해 빚어진 어리석은 오해의 시작. 무엇을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정의와 불의조차 없는 의미 없는 전쟁. 그에 의한 파장으로 전국에 부는 붉고 비릿한 피의 바람. 적나라하게 드러난 미래가 아찔하다. "현한얼, 그 녀석이 오늘 나한테 뭐라는 줄 아냐? 그 동안 선의의 경쟁을 해서 즐거웠단다. 선의의 경쟁 좋아하네. 언제 지가 선의의 경쟁을 했다고? 그딴 것 개한테나 주라고 그러라지. 좋아, 서열이라... 재미있어. 나도 그 딴 것 따위 만들어 주지." 그 날 이후 반란을 꿈꾸는 세력은 유노형과 기존 세력에 반감과 회의를 느낀 일진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인해 세워지게 되었다. “은하야, 네 힘이 필요하다는 것 알잖니?” “유노형… 전…” “네 여동생을 위해 강해지고 싶다면서? 우리의 반란이 성공한다면 네가 2대 포커스가 될 거야.”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지만 난 세력전쟁, 포커스 따위엔 관심 없었다. 그 땐 그저 강해지면 그걸로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다. 어렸었다. 생각도, 마음도, 그리고 사랑도… 씁쓸한 마음을 애써 무시한 체 1대 포커스 유노형의 왼팔로는 나, 오른팔로는 유노형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지빈형이 세력을 지탱했다. 우리들의 전쟁의 끝이 희미하게나마 느껴지지만 애써 난 내 느낌을 부정했다. ................ ...................... …사(死). * * * "유노형, 할 말이 있습니다." 나를 아는 반란 세력의 일진들이 모두 말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에서 외치는 운명적인 이끌림에 사대부중학교가 아닌 명문중학교에 전학 가기 전 날, 난 소문을 듣고 사색에 빠져 있을 유노형을 찾아갔다. 찾아온 날 형은 물끄러미 쳐다보다 흔들리는 시선을 보이며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아쉽겠지만 명문중학교로 전학 가는 것은 포기해라." "아니요. 유노형, 전 명문중학교로 가겠습니다." "....무슨 소리하는 거냐?" "전, 싸움이 싫습니다. 피도 싫고요, 은별이가 싫어하는 것처럼. 전쟁보다는 제가 차기 서열 1위 자리를 차지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기존 세력은 반란을 꿈꾸는 세력이 되겠죠." 형, 내가 다치는 것 따윈 상관없지만 내가 다치면 은별이가 울어요. 마음 여린 아이가 내 조그만 상처만 봐도 끝도 없이 울어서 내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아요. 이 반란이 모두에게 불행을 부르는 전쟁이라면 하늘이 내게 미래를 순응하라 해도 다시 한 번, 전 이기적일지라도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반란을 막아볼 거예요. "....자신 있는 거냐?" "믿어 주세요." 확신이 담긴 시선으로 한 동안 유노형의 눈을 바라보았다. 유노형은 깊이 생각을 하는 듯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허락해주는 유노형을 뒤로 하고 나는 명문중학교로 전학을 갔다. ....................................... ....................... 그리고 명문중학교에 전학을 간 첫 날. 미래란 불가항력에 저항하는 나를 하찮은 돌맹이같은 존재라는 것을 인식시켜 주듯 어긋날 줄 알았던 운명의 수레바퀴는 원 방향을 향해 천천히 구르기 시작했다. “은하야, 전학을 와서 반 분위기에 적응이 좀 안 될 거다.” “...?” 담임선생님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의아했던 나는 그 이유를 교실로 들어가자마자 깨달았다. "아! 씨팔!!! 야, 더 패!!" "이게 왕따 주제에!!!" "킥- 그렇게 사니까 재밌냐? 앙?" 반 배정을 받고 들어선 2학년 4반 교실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선생님이 들어오건 말건 책상에 발까지 올려놓고 거만하게 앉아있는 아이들, 왕따로 보이는 아이를 겹겹이 둘러싼 채 이루어지는 폭행들. 명문중학교란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아니, 어쩌면 이게 진실일지도 모르겠다. 서열이 생겨난 학교로서 명문고 일진들은 가장 큰 세력과 기득권을 확보한 만큼 권위를 과시하며 제멋대로 행동하는 소위 말하는 양아치들의 집합소로 보였다. “조용! 조용!” “씨발, 선생 왔네. 킥. 옆에 달고 온 건 뭔가?” “흠흠. 저..전학생이다. 모..모두 친하게 지내도록!” “오- 씨발, 포커스 현한얼보다 좀 더 생긴 것 같네? 큭큭.” “신고식 좀 단단히 해야겠는 걸? 키득.” 선생님을 향한 어떠한 존칭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권력이란 것에 무력했던 학교와 선생님의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선생님은 흐르는 식은땀을 애써 보이지 않기 위해 교실 밖으로 도망치듯 나갔다. 그러자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교단 위에 서 있는 나를 일진들이 둘러쌌다. “졸라 계집애같이 예쁘장하게 생겼다? 킥?” “........” “도도하기는. 대답도 안 한다 이건가? 대답을 안 하는 대가는 치러야지!!” [퍽!!!!] 비열하게 보이는 비릿한 웃음을 짓던 한 일진이 내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느리다. 난 그 주먹을 한 손으로 낚아채듯 잡고 가볍게 비틀었다. 표정이 구겨지는 일진에게 주먹을 쥔 반대 손을 그대로 복부로 날렸다. 약하다. 그 아이는 반항 한 번 못한 체 신음을 하며 뒤로 나자빠졌다. 창피함에 얼굴이 붉어진 아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표독스럽게 날 노려봤다. “씨...씨발!!! 퉷!!! 감히 날!!!” “…더 덤비고 싶다면 덤벼도 좋아. 하지만 명심해 둬. 너희는 절대 날 이길 수 없어. …바다는 비에 젖지 않으니까.” "씨발!!! 다 저 새끼 죽여!!!!!" 이윽고, 반에 있던 수십 명의 남자 일진들은 중앙에 서 있는 나에게 덤벼들었다. 너희들의 싸움 실력이 안타깝지만 어떤 수를 쓰더라도 나를 이길 수 없어. 미래를 느끼는 나에게 어디로 공격해올지를 아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이니. 하나, 하나 일진들을 굴복시킨 나는 단 5분의 시간으로 모두를 쓰러트렸다. …그리고 그 순간, 나, 채은하는 명문고등학교의 전설이 되었다. 149. [은하‘s behind story - 미래를 느끼는 눈을 가진 소년] “제가 채은하래.” “웬일이야. 2학년 한 방에 나가 떨어졌다며?” “생긴 것도 곱상하게 생겨서… 눈동자 색깔 좀 봐. 빨려들어 갈 것 같아.” “진짜 최고다. 그럼 2학년 일진짱 바뀐 거야?!” 이리 수군, 저리 수군. 내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따라다니는 말들. 전학 온 첫 날부터 사고를 친 것도 문제였지만 나한테 진 아이가 2학년 일짱이었나 보다. 그래, 이것도 운명의 일부겠지. 필연적으로 나와 얽힌 그 사람과 만나게 할 하늘의 신호. “저기…” 아마 때가 된 듯싶다. 창문가에 앉아 조용히 창가로 들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을 맞고 있을 때, 겁에 질린 듯 우물쭈물 거리던 아이가 나에게 다가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말해. 괜찮으니까.”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이미 알고 있지만… 겁에 질린 아이를 달래줄 심정으로 말을 거는 아이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이는 조금 마음이 놓이는지 한숨을 크게 지어보이곤 말을 이었다. “포..포커스께서 널 찾으셔!” “…운동장으로 가면 되는 거지?” “어.. 어떻게...” 먼저 선수 친 나의 대답에 아이는 넋을 잃고 멍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고 서둘러 운동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순간을 고대하며 기다렸다. 드디어 만나는군요. 하나의 잘못된 숙명에 유노형과 함께 얽혀있는 당신을… “왔군.” 사람을 섬뜩하게 만드는 차가운 목소리에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눈부신 태양 아래 와인빛 붉은 머리가 시리도록 멋지게 빛나던 그 사람. 입가에 지어진 차가운 조소가 누구보다도 어울리던 그 사람. 나이에 맞지 않은 성숙함과 외로움, 그리고 고독감이 느껴지던 그 사람. “처음 뵙겠습니다.” 누구에게도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당신에게서 느껴지는 그 지독한 외로움과 사무치는 고독감이 유노형에게 이질감은 준 것일까? “네가 명문중학교 2학년 일짱과 여러 일진들을 5분 만에 해치웠다는 전설이냐?” “…전설이란 단어는 아무에게나 붙이는 말이 아닙니다. 제겐 그렇게 불릴 자격 없어요.” “겸손하군.” “겸손이 아닙니다. …전 저만의 정의를 추구할 자격이 없으니까요.” 난 유노형이나 내 앞에 서 있는 당신처럼 자신만의 정의를 위해 움직일 수 없다. 이미 내 미래마저도 아득하게 느끼고 있는 나에게 내릴 수 있는 정의란 자체가 없다. 내 존재는 무(無). 있어서도 없어서도 안 될, 그저 모든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無).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것처럼 보이는 눈을 가졌군. 너의 눈빛은 사람을 잡아당기는 힘이 있다. 채은하. 네가 추구할 정의가 없다면 내 정의를 따라 너의 길을 찾아봐. 내겐 너와 같은 힘과 인재가 필요해. 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 한얼형의 정의도, 유노형의 정의도 미래를 바꿀 수 없다. 하지만 한얼형은 신비하게도 사람은 자신에게로 잡아당기는 고독한 눈을 가졌다. 어쩌면 그 고독함에 이끌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환영한다. 채은하!” 다가올 상처뿐인 미래를… 환영한다. * * * 1년이란 세월이 빠르게 흘렀다. “은하형, 오늘 유노형이 저녁에 뵙자고 하는데요.” 반란세력과 기존세력 사이에서 미래를 향한 정의를 찾던 내가 불안했던 것일까? 며칠 전, 유노형이 나의 행동과 한얼형을 감시하기 위해 보낸 스파이이자 지빈형의 동생인 유빈이가 내 귀에 대고 조용히 말을 했다. “오늘은 단합인 것 알잖니. 유빈아.” “형… 하지만.” “책임은 내가 진다. 걱정 마라.” 우물쭈물하는 유빈이에게 미안하지만 선약이니까. 그리고… 우리들의 미래를 좌우하게 될 또 다른 사람을 만날 테니까. 난 걱정스럽게 나를 바라보는 유빈이를 뒤로하고 호프로 향했다. “쿡쿡..” 그 날은 오랜만에 있던 단합 날이었다. 한얼형은 나를 자신의 옆에 앉혀두고 뭐가 그리 기분 좋은지 웃음을 지었다. 의아하게 형을 바라보고 있을 때, 호프 안으로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명문고 교복을 입은 여자 일진들 몇 명이 들어와 우리가 앉은 테이블을 향해 다가왔다. 그녀들 중 가운데 서 있던 유난히 눈에 띄던 여자. 매섭게 치켜 쳐진 눈매 때문에 차갑게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상당한 미인이었던 그녀. ‘차수진.’ 그 여자에게 시선이 돌아가는 한얼형의 눈동자가 설렘으로 일렁거린다. “아, 수진아. 왔구나.” “뭐야. 현한얼. 왜 불렀어?” 나에게조차도 보여주지 않던 환한 미소를 차수진에게 지어보이는 한얼형의 자태가 눈에 부실 정도로 화려하게 빛나 보였다. 하지만 그런 멋진 웃음을 짓는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그녀의 싸늘한 냉대뿐. “나 바빠. 현한얼. 할 말 없으면 간다.” 그녀의 냉기 흐르는 말에 형은 당황한 듯 표정이 구겨졌다. 한얼형, 형도 그런 거였어요? …외(外)사랑이라는 것. 그저 느낌인 줄 알았는데… 그래서 그렇게 외롭고 고독해 보이는 거였어요? “차수진, 너 왜 그렇게 차갑게 구냐?” “후- 할 말 없으면 간다.” “기다려! 사람들 모인 것 안 보여? 오늘 차기 포커스 지정하는 날이야.” 차기 포커스? 설마? 의아함에 형에게 시선을 돌린 내 눈빛을 알아챈 형은 살짝 내게 윙크했다. “...그게 뭐.” “너 명문고 여짱이야. 차기 포커스 얼굴은 봐야할 것 아냐?” 말은 그렇게 하지만 한얼형의 눈빛은 말하고 있었다. 그저 손에 잡힌 차수진을 놓아주기 싫은 것이라고... 차수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한얼형을 응시하다 한얼형의 손에 잡힌 손목을 빼내며 말했다. “누군데?” “응?” “차기 포커스가 누구냐고? 내 맘에 안 들면 바꿔도 되는 거야?” “아. 수진이 네 마음에 들 거야. 너 나랑 은근히 취향 비슷하잖아. 얘야. 은하야. 너의 미래의 형수님이 될 명문고 여짱 차수진이야.” 형은 차수진을 이끌어 형의 뒤편에 앉아있던 나에게 소개를 시켰다. 내가 차기 포커스라고? 놀란 내가 형에게 시선을 돌리던 중, 그녀의 시린 얼음 같은 시선과 공중에서 엉켰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이 오묘하게 일그러진다. “…저 애야?” “응. 큭. 어때? 은하, 저 녀석은 전설이 될 거야.” “뭐, 괜찮네. 나 술 마셔도 되지?” “아?! 안 갈 거야?!” “어.” 그녀는 감정 없는 인형처럼 딱딱하게 형에게 대답하고 한얼형 옆자리, 그러니까 한얼형과 내 사이에 와서 털 푸덕 앉더니 냉정하게 굳어있던 얼굴에 묘한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나긋나긋하게 말을 걸었다. “차기 포커스된 것 진심으로 축하해.” “감사합니다.” “어차피 내년이면 명문고로 올 텐데. 말 놔.” 한얼형은 나에게 말하는 차수진의 갑작스런 제안에 놀란 듯 우리를 쳐다보았다. 불안함과 초조함이 가득 한 형의 시선과 한얼형이 그녀를 바라볼 때의 시선으로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대답을 갈망하는 차수진의 시선에서 나지막하게 미래가 느껴졌다. 우려했던 일, 미래를 바꾸려 했던 내 노력이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아니요. 사양하겠습니다.” “사양할 필요 없어. 어차피 차기 포커스잖아. 나보다 서열이 더 높은 거라고.” “…후. 형,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은하야?!” 그 때부터였다. 지독한 외(外)사랑의 시작. 한얼형의 맹목적인 사랑은 차수진에게 향하고 차수진의 마음은 나를 겨냥한다. 그 결과는 산산이 조각나 파편이 되어버리는 몸과 마음. 그로 인해 또 다시 내가 틀어버렸던 미래는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血淚. 눈물을 부르는 전쟁을 향한 움직임을 막을 수 없는 것인가. * * * "오- 채은하! 너 차기 서열 1위로 선정됐다며!" "그래, 그렇게 됐다.." "자식! 축하한다! 이젠 소원 풀었네!! 그렇게 노력하더니.." "축하는 무슨… 아무튼 고맙다." "빼기는, 진짜 축하하고 나 먼저 내려가 본다." "그래." 신입생 입학식이었던 그 날, 날씨가 화창하다 못해 맑고 포근했던 그 날, 따뜻한 날과는 상반되는 슬프도록 시린 파란 하늘 아래에서 느끼지 못 했던 미래를 만났다. "..서열 1위라..." 자그맣게 들리던 미성의 목소리. 평소였더라면 그냥 지나쳤을 테지만 아이의 목소리에서 바람의 향기를 느꼈다. "어?! 이런 곳에 사람이 있었네? 안녕~ 반갑다. 이름이..?" 내 말에 아이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공허하게 비어있는 붉은 빛을 띠는 눈동자에서 선천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강함이 보였다. 마치, 한얼형과 닮은 듯한...? 설마?! "현한결.." ..........천천히 입을 열어 대답하는 아이........ 현한결, 현한얼… 이름도 닮았다. 어쩌면 이 아이는.... .............? 그런데 이상하다. 아까전부터 아이의 미래를 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내게 아이의 미래가 느껴지지 않는다. 뿌연 연막에 싸인 것처럼 알 수가 없다. 여태껏 내가 느낄 수 없는 미래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이질감, 낯선 기분과 두근거림. 어쩌면… 어쩌면 한결이 너라면…? "네 눈이 강해지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아. 네 눈이 마음에 든다. 일진에 들어와라." 한결이 너라면 내가 찾고 싶어 하던 정의를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150. [은하‘s behind story - 미래를 느끼는 눈을 가진 소년] 하늘도 예측하지 못한 한결이와의 만남 뒤로 며칠이 지났다. 차기 포커스란 자리를 얻고 난 뒤 며칠 동안 내내 마음이 영 좋지 않았다. 이렇게 쉽게 차기포커스의 자리를 잡게 될 지,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다. 모든 게 내 생각대로 평화적으로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불안으로 만들어진 위화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안 돼!!!!” 아버지께서 유현삼촌과 함께 영국으로 출장을 가시던 날이었다. 초조하게 몸을 사리다 잠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꿈을 꾸었다. 어머니의 피로 붉게 물들여진 아버지의 영정과 유현삼촌의 영정. 눈물과 함께 시작된 서릿발 같은 복수의 칼날. 그 칼자루를 지은 것은 다름 아닌 …선우 현. 그 칼자루에 의해 잠식해가는 아이의 모습에 놀라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떴다. “은하야? 은하야?” “..아- 아버지.” “왜 그러니? 안 좋은 꿈이라도 꾼 거니?” 내가 지른 소리에 놀라 내 방으로 들어오신 아버지께서 이미 자신보다 커버린 나를 품에 안고 불안에 떠는 나의 머리를 천천히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주 어릴 적 이후로, 아버지는 나를 품에 안아 주신 적이 없었다. “아버지...?” “조금은 내가 네 짐을 덜어주고 싶었단다…” “.......?” “미안하구나. 혼자 괴로워하며 삭히는 네가 안쓰러워 눈물이 난다. 하지만 나 역시 다가올 미래를 어긋나게 해줄 수가 없구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아이는 진정한 정의를 찾은 아이겠지. 그래도 아껴 주거라, 그 아이들은. 사랑한다. 아들아… 나는 순응으로 너의 운명의 짐이 조금은 덜어졌으면 좋겠구나.“ 그날따라, 의문스러운 말을 연달아 이으시던 아버지… "넌 소중한 가치가 지닌 나의 아들이란다." 하지만 그 의문스러운 말들에서 어렴풋이 아버지께서 전하시는 뜻을 알 수 있었다. 희생(犧牲), 아버지는 어쩌면… . . 출장을 가게 된 아버지의 부탁으로 잠시 현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헤- 은하형, 역시 해낼 줄 알았어요! 바보 같은 현한얼이 이렇게 속아줄 준 몰랐는걸요?! 은하형, 정말 대단해요!" "현아.." 거실에서 어느 때보다도 피같이 붉게 빛나는 태양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내게 다가온 현이 밝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하지만 난 그 밝은 웃음에서 순간 ‘쫓기는 자’의 망가져가는 모습이 보였다. "형, 왜 이렇게 힘이 없어요?" "현아, 정의란 뭐고 불의란 뭘까?" "...................?" 내가 꺼낸 갑작스러운 얘기에 현이는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무슨 소리냐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현아, 네 눈에서는 내가 원하는 답이 없어. 넌 누구도 건들 수 없는 견고한 힘을 원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힘이 아니다. 너의 상처만 남은 미래를 바꾼다할 지라도 내가 원하는 정의는 네게 없다. "후- 힘이 있어야만 세상을 움직이는 걸까? 이제 바쁜 자와 지쳐버린 자, 쫓기는 자와 쫓는 자만이 남았다." "무슨 소리예요? 형?" "................................" 바쁜 자. 진정한 정의를 쫓기 위해 미래를 향해 도약하는 자. 지쳐버린 자. 숨 가쁘게 쫓던 정의가 불의로 바뀌어버린 자. 쫓기는 자. 자신이 세운 정의가 급격히 무너져 가는 자. 쫓는 자. 기존의 정의를 타파하고 새로운 정의를 세우려는 자. 그들만이 남았다. 그들만이 미래를 만들어 간다. 쉴 틈 없이 굴러가는 바퀴처럼 멈추지 않는 필연적인 운명을… (투둑투둑-) 순간,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던 하늘에서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대들의 눈물로 만들어진 비가 세상을 차갑게 적신다. 결국에는… 결국에는… (우르르쾅-!!!!!!!!!) "꺄악!!!!!!!!!!!!!!!!" "혀.. 현아!!! 현아!!!! 은하야!!!!" 아버지… 아버지… 당신 역시 미래를 아셨던 것입니까? 운명을 틀게 만든 자에겐 죽음이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요. 아버지… 당신이 희생으로 하늘의 뜻을 져버린 절 구하시는 겁니까? 어긋나던 운명을 제자리로 돌아오게 할 발판을 만듦으로서...? …아버지, …아버지. 저 역시,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비가 온다. 이 비는 어떤 눈물로 만들어진 비일까.." 이 비 역시 당신의 눈물로 만들어진 비입니까? * * * “오빠, 나! 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동안 오빠 도플갱어 봤어! 선우 현이라고! 오빠가 말했던 아이 있잖아. 오빠하고 꼭 닮은 아이가 있다고 했잖아. 진짜 닮았더라. 헤헤. 신기해.“ 하늘은 예정했던 대로 은별이와 현이를 만나게 하고 말았다. 그 둘의 잘못된 만남은 나와 닮은 아이에게서 형제애를 사랑이라 착각한 은별에겐 지독한 미안함을, 그리고 맹목적으로 사랑에 빠진 현에겐 지독한 집착만을 남겼다. . . "…유노형도 숙모를 따라 좋은 곳으로 갔을 거야." "하하.. 은하형, 그게 무슨 말이에요?" "......유노형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치밀하게 계산된 3 세력에 의해 오해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유노형과 반하숙모의 자살. 차수진과 자신의 아이를 구하기 위해 그녀의 계략에 목숨을 잃은 한얼형. 자신의 형의 옛 친구에 의해 사랑도, 두 눈도 잃고 오열하는 현. 계속되는 핏빛 운명. 핏빛 사랑. 핏빛 집착. 핏빛 결과. "모든 게 원망스러워요. 현한결도, 현한준도, 현한얼도, 신지빈도… 꼭 이 수모는 갚아줄 거예요. 내가 아픈 만큼 그들도 아프게 할 거예요." "현아." 어린 나이에 많은 것을 잃어버린 아이, 그리고 앞으로 더욱 더 큰 것을 잃어버릴 아이. 견딜 수 없는 마음의 상처가 이 아이를 광기로 자멸하게 만들겠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져 버린 네게 내 눈으로 조금이라도 빛을 주고 싶다. 어쩌면 너 역시 그 아이에 의해 숙명으로 엉켜버린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을테니. “아버지…” 당신의 희생으로 돌아온 목숨을 걸고 지켜보겠습니다. 당신이 말했던 진정한 정의를 찾는 아이를요. 현한결. 그 아이라면 어쩌면 우리가 추구했던 정의를 찾아줄지 모르겠어요. 그 아이라면 사랑하는 은별이를 맡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 아이라면 사랑해 줄 거예요. 제가 주고 있는 사랑보다 더… "한결아.." 미래가 결정되지 않은 아이야. "예. 형" "내가 네 눈을 처음 보고 느꼈던 것은 저 하늘과 그 아이의 눈 속에 들어있는 것과 같은… ..........슬픔이었어.." "..." "그리고 외로움을 느꼈다." "형..." 너라면 오해로 얽혀버린 운명의 사슬을 끊게 할 수 있을지 몰라. 부탁한다. 한결아. 네가 너만의 정의를 찾게 되는 날, 모두가 웃을지 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모든 것을 네게 걸어본다. "만약 네가 언젠가 그 아이를 만나게 된다면, 만약 너와 같이 슬픔이 깃든 그 아이의 눈을 본다면 넌 분명 그 아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거야." "형..?" "만약, 우연히 그 아이를 만난다면 운명이라 생각하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나 대신 그 아이를 꼭 지켜주길 바래." 아이야, 만약 하늘도 모른 인연이라면 그만큼 더 그 아이를 사랑해 주렴. 험난한 산 같은 아득한 미래가 너희를 가로 막아도 슬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울지 말고, 포기하지 마라. 너와 같은 눈동자를 가진 그 아이를 만난다면… 행복하게 해주렴. ................................................. ............................. ........................................... 말을 끝낸 은하는 천천히 감았던 눈을 뜨고 자신의 앞에 있는 현을 바라보았다. 현의 다갈색 눈동자에서 멈췄던 눈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결국 운명은 신념을 찾은 자에게 돌아간 것일까? 곁에서 묵묵히 이야기를 듣던 피아나의 눈에도 짙은 슬픔이 보였다. “네게 어떠한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현아.” “.......” “하지만 난 말이야. 그 애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어. 내 사랑이 조금이라도 그 애를 웃게 할 수 있단 사실에 말이야. 은별이가 웃으면 내 심장도 따라 웃거든. 설사 그게 다른 사람에 의해서라도 말이야.” “하지만, 내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파요.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워 질만큼. 저 잊을 수 있을까요? 이렇게 심장이 새까맣게 변할 정도로 사랑하는데… 형은 알고 있잖아요. 제 미래가 어떨지… 저 잊을 수 있을까요?” 볼의 타고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현의 눈물이 애절하게만 느껴진다. 맹목적인 사랑, 외사랑 이었기에 아픔 또한 배가 되리라. 피아나 역시 숨죽인 채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녀 역시 자신의 사랑의 끝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은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누구보다도 고결하고 누구보다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랑은 잊지 마. 가슴 속에 담아놓은 사랑은 먼 훗날 펼치면 추억이 되어 있을 테니까. 다만 지금 흘리고 있는 눈물만은 잊어. 그러면 돼. 그러면 되는 거야. 현아.” 말을 마친 은하는 천천히 자신의 주머니에서 비행기 표를 꺼내 현의 앞에 내놓았다. 현은 묵묵부답으로 흘리던 눈물을 소매로 닦고 은하가 건넨 비행기 표를 집어 들었다. 바로 한 시간 뒤에 독일 베를린으로 떠나는 티켓이었다. “필요하지? 시간이 필요할 테니…” “.........” “은별이에게 전화 걸어줄게. 작별인사는 하고 가야지.” 대답 없는 현을 보며 은하는 자신의 핸드폰으로 은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은별아.” [은하오빠?! 어디야?!] “한준 아저씨랑은 잘 얘기했니?” [응? 은결이 얘기가 나오니까 한결이만 데리고 어디로 가버렸어. 오빠, 어디야?] “아, Q카페. 그것보다 현이 바꿔줄게.” [뭐?! 오빠!!!! 내 애 떨어지게 할 일 있어!!!!!] 애가 어디 있다고? 은하는 얼토당토하게 소리치는 은별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핸드폰을 넘겼다. 현은 당황한 그녀의 목소리에 피식 웃으며 은하의 전화기를 받아들였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은하는 멋진 미소를 지은 후, 통화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인지 옆에 있던 피아나의 부축을 받아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여보세요.” [..아.. 현아.] 두근두근. 또 다시 가파르게 뛰는 내 심장. 너의 목소리 하나에도 반응하는 내 심장을 잠재울 날이 과연 올까? “나 독일 가.” [....아?!.....]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겠다. 잊어 볼 거야. 내 눈물. ..................사랑은 잊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아…] “사랑한다.” 현의 뜬금없는 말에 은별은 당황한 듯 말을 잃었다. 현 역시 침묵을 지키며 수화기만을 든 체 침묵을 지켰다. 이내, 울음으로 미세하게 떨리는 은별의 목소리가 현의 귓가를 자극시켰다. […미안.] “…미안해하지 마. 미안한 건 나 혼자 할 테니. 넌 웃어. 지금은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지만, 저 말이 친구하자로 바뀔 수 있을 때 한국으로 돌아올게. 그러니까, 현한결이랑 울지 말고 행복하게 지내.” 현은 자신의 심장에 칼날을 꽂는 듯한 기분으로 말을 마쳤다. 수화기 멀리서 훌쩍훌쩍 은별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자신의 목소리가 아직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그녀를 아프게 하나 보다. “은별아, 먼저 끊어.” [미안해… 현아, 꼭 돌아와. 돌아오면 우리 좋은 친구… 하자. (뚝-)] 좋은 친구하자. 친구… 넌 참 쉽구나. 난 가능할 것 같지 않는데. 눈물은 지우더라도 사랑은 지우지 못할 것 같은데. 너의 한 마디에 아프다. 왼쪽 가슴이… 잘려나간 나의 붉은 실을 다시 가슴으로 연결해 줄 사람이 과연 나타날까? [뚜- 뚜-] 전화가 끊겨 신호음만 들리는 전화기에 대고 현은 눈물을 비추며 조그맣게 속삭였다. “As I hear your voice on the line, My heart doesn't stop the pain again. (전화로 네 목소리를 들으니, 내 심장이 또 다시 아파.) I took for granted all the times that I thought would last somehow. (난 우리 사이가 어떻게든 지속될 거란 것을 항상 당연히 여겨왔어.) But it is not true. You already doesn't love me." (그런데 아닌가봐. 넌 이미 날 사랑하지 않으니까.) Nevertheless, I hear the whimper, I taste the tears again. (그래도 난 너의 울음소리에 또 다시 눈물을 흘려.) Wherever you go, whatever you do, (네가 어딜 가든지, 네가 무엇을 하든지) I will be waiting for you. (너를 기다릴게.) Whatever it takes or how my heart breaks.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내 가슴이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I will be right behind waiting for you.“ (바로 너의 뒤에서 기다릴게.) 조용히 혼잣말을 마치고 그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카페 밖으로 나왔다. 밖에 서서 택시를 잡고 기다리고 있던 피아나가 그에게 손짓했다. 현은 고개를 끄덕인 후 잠시 하늘을 바라보며 바람 결에 말을 실어 보냈다. "Good bye- Honey. See you....next..." 사랑한다. 사랑한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너의 마음마저도 사랑한다. 너의 눈물로 한낱 부셔지더라도, 너의 웃음으로 다음을 기약한다. 안녕. 151. 갑작스럽게 독일로 떠난다는 현과의 통화를 마친 은별은 착잡한 마음에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만을 바라보던 착한 아이에게 너무도 큰 상처만 준 것은 아닌지… 잘 다녀오라는 말 한마디라도 해줬어야 하는 것이었는데… 은결의 말이 나오자마자 훌쩍 한결만 데리고 사라지는 한준 덕분에 한결과 제대로 재회조차 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헤어지고 한동안 머물게 된 한빛 오피스텔로 발을 옮기는 그녀의 발걸음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벼어어얼따아아악지이이이이!!!!!!! 거기 서랏!!!! 서지 않으면 침 공격 백만번!!” 분위기 좀 잡아볼라 했더니 떡하니 깨어놓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 이름도 유명한 우리들의 영원한 Happy Man, 분위기 메이커 사랑이었다! 은별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뭐.. 뭐야? 너희들?” “은별아! 이 기지배야! 이 언니가 보고 싶지도 않았냐!!!” 고개를 돌린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사람들은 사랑뿐만이 아니라, 태하, 유빈, 겨울, 어느새 낀 아리, 거기에다 덩달아 따라온 듯 재아까지 있었다. “아웅! 그게 다들 은하형이 보고 싶다고 해서~ 히힛~♡ 앙~♡ 은하형은 인기쟁이야!! 사람들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따라오네. 헤헷, 은하형 사인이라도 받아둬야 하는 것 아닌가 몰라!!! 꺄꺄~♡“ 사랑녀석, 또 시작했다. 덩치에 안 맞게 말하면서 저 딴에는 귀엽다고 앙탈을 부리는 저 버릇. 뭐 아리야 콩깍지에 단단히 씌어 저런 모습도 귀여워 보일 테지만 5년 지기 친구인 유빈과 태하도 쏠린다는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처음 보는 겨울과 재아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는가! 안 봐도 비디오다. “쟤 정상 맞아?” “쯧쯧. 또라이 새끼가 따로 없군.” “하핫, 겨..겨울아, 재아야. 아니, 그래도 그렇지. 너희들 몸도 피곤한데 지..집에 안 가?” 제발, 가라. 이 누님께서 혼자 생각하고 싶은 게 많다. 고독 좀 씹어보자? 앙? 간절한 은별의 눈빛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무시한 채 사랑이 소리쳤다. “힘들게 전쟁도 끝냈겠다! 뒤풀이는 기본~!!!” “진사랑, 너 솔직하게 말해. 우리 오빠 보러온 게 아니라 술 사달라고 온 거지?!” “헉! 딸국!” 정곡 찔렀구나. 사랑은 거짓말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상인가 보다. 바로 딸꾹질이 튀어나오다니. 은별은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사랑을 쳐다보다 천천히 말을 꺼냈다. “오빠, 공항 갔을 텐데.” “뭐?!!” “현이가 잠시 독일에 가 있는 다고 그래서…” 그녀의 말에 묵묵히 서 있던 재아가 특유의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씨발, 지랄한다. 누나는 그걸 또 그냥 보냈어? 좇 같네. 환장하겠네. 씨발.” 웃으면서 욕하는 재아의 현란한 스킬에 감탄의 모습으로 바라보는 저 인물. 눈에서 평소에 보지 못했던 반짝반짝 빛까지 난다. 신기한 장난감이라도 보는 듯 끈적끈적한 사랑의 시선에 재아, 당황했다. 웃던 인상을 확 찌푸리며 그를 향해 재아가 소리쳤다. “씨발, 뭘 꼬라봐?” “우와! 우와! 신기만땅! 웃으면서 저렇게 욕하는 애 처음 봤어!” “저게 신기해? 나는 소름 돋던데.” 사랑의 말에 유빈이 한 마디 거든다. 재아, 차가운 조소를 지으며 유빈을 노려보지만 유빈은 화려함 웃음으로 맞받아친다. 현도 없는 이 마당에 꿀릴 게 뭐가 있으리오. 이 웃음돌이들! 싱글벙글 웃으며 쏟아져 나오는 스파크가 더 무섭다. “헤헷~♡ 아리랑 은결이 다음으로 너 마음에 든다!! 내 쫄병해라~ 내가 쫄병 시켜줄게!!” 그들의 스파크를 단숨에 저지하며 재아에게 달라붙는 사랑의 불굴의 파워! “됐거든? 씨발, 너 같은 수준 낮은 놈이랑 대화하는 것 자체가 수치다. 아, 씨발. 돌아버리겠네. 현이형 그렇게 가버리면 돌아오지 않을 텐데…” 치근덕대는 사랑이 귀찮다는 듯 밀어내며 중얼거리는 재아의 혼잣말에 은별은 우물쭈물 거리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했다. 그녀의 난처함을 눈치 챈 건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태하가 입을 열었다. “넌 괜찮냐?” “응?” “한결이, 아버지하고 가버리고, 넌 기억도 방금 돌아왔잖아. 혼란스러울 텐데.” “아. 태하야, 괜찮아. 고마워.” 항상 무표정으로 일관한 채 무뚝뚝한 태하가 남들이 보기엔 차가워 보이겠지만 은별이 느끼는 그는 자상하면서도 남을 위할 줄 아는 사려 깊은 아이이다. 누구보다도 은별과 한결이 잘 될 수 있도록 혼신을 다해 준 태하였기에 그녀가 더욱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씨발, 은별누나 후회할 거예요.” “히힛! 재아 너도 후회할 거야!!!!” (쿡-♡) 앙증맞은 소리와 함께 한결도 두려워한다던 사랑의 무시무시한 침 공격이 시작되었다. 주르르 볼을 타고 내려오는 사랑의 침. 그리고 놀라서 굳어버린 재아! 사랑의 끈끈한 침 공격의 4번째 희생자가 된 것을 축하한다. “아아아아악!!!!!!!!!!!!!!!!!!!!” 잘못 걸.렸.다. 재수 옴.붙.었.다. 어느 때라도 당황하지 않던 재아의 눈물 어린 절규가 동네를 뒤흔든다. “...너희들 여기에서 뭐하니?” 재아의 비명 뒤로 들리는 차분한 목소리에 아이들의 시선은 모두 그 쪽으로 향했다. 그리곤 그들 앞에 서 있는 그를 보고 모두 합창이라도 하듯 입을 모아 소리를 질렀다. “엇!!! 은하형!!!♡” “은하형!!!” 현을 데려다주고 오는 길이었는지 피아나의 부축을 받아 천천히 걸어온 은하였다. 두 눈을 잃은 은하를 보곤 태하와 사랑은 여전히 놀란 표정이었고 은하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것 같이 고개를 저어보이곤 입을 열었다. “한결이는 오지 않았구나?” “엇!! 형!!! 어떻게~!!! 그 분이 오셨다!!!♡” “쿡, 사랑이는 여전하구나.” 사랑의 장난스러운 말에 은하는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은하형.” 사랑의 침공격으로 패닉 상태에 빠져있던 재아가 시니컬한 목소리로 은하를 불렀다. 은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재아구나. 오랜만이구나.” “은하형, …은하형이 이렇게 잔인할 줄 몰랐어요. 현이형, 그렇게 독일로 보내면… 돌아올 것 같아요? 죽어도 형은 못 잊어요. 아무것도 못 잊고 방황할 거라고요!!” 현아, 사람을 믿지 않는 너는 아마 자신을 위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겠지만 한결이에겐 태하가 있듯이 너에겐 너만을 위하는 재아가 있다는 것을 잊었구나. 한 때, 왕따였던 재아의 구해 준 현을 누구보다도 따랐던 재아. 아마도 이번 전쟁의 패배와 함께 떠나버린 현의 모습은 충격이겠지. “현이의 선택이다. 힘들어도 아픔을 이겨내는 것은 그 아이의 몫이니…” 은하의 차분한 미소는 씁쓸한 빛을 띄웠다. 누구라도 범접할 수 없는 그만의 분위에 재아는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그런 재아의 머리를 그의 하얗고 고운 손으로 천천히 쓰다듬으며 은하가 말을 이었다. “재아야, 현이는 너의 이정표가 아니다. 넌 너만의 정의를 추구하면 돼. 현이가 너의 목숨을 구해줬다 해서 네가 그 아이가 된 것은 아니니까. 그만 굴레에서 벗어나 너의 신념대로 살아가. 현이도 그것을 원할 테니까.“ “은하형…” 재아의 강해보이던 눈망울이 여리게만 느껴졌다. 남에게 괴롭힘을 받아왔던 재아에게 누구보다도 강해보였던 현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자살 직전까지 몰린 그에게 차갑지만 손을 뻗어주던 현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를 향한 이정표에서 벗어나야할 듯싶다. 눈물을 글썽이는 재아의 모습을 보며 그에게 달려드는 이가 있었으니. “우리 쫄병~~ 왜 우는 거야?! 형아의 사랑이 부족한 거야?!!♡” 누구이겠는가. 사랑군이지. 훗. 노란 병아리가 그려진 손수건을 앙증맞은 손수건을 꺼내 보이는 사랑의 모습에 훈훈한 감정을 느낀 재아는 눈에 고인 뜨거운 눈물을 떨어뜨리며 픽 웃음을 터트렸다. “씨발. 이제 전쟁도 끝났겠다, 우리 모두 친구하자. 나이 따윈 따지지 말고!” 재아의 갑작스러운 외침에 눈만 말똥말똥 굴리며 서로를 바라보던 아이들. 이내 한 마디씩 풀어놓기 시작한다. “뭐 찝찝하긴 하지만 적보단 낫겠지. 찬성~” “나야 우리 쫄병이 마음에 들었으니~♡ 사랑이도 찬성!!” “사랑이가 마음에 든다면 일심동체 아리도 찬성!! 헤헷!” “뭐, 나쁠 건 없겠네. 서열도 없어졌겠다. 한 바탕 오늘 쏟아 붓자고!” “맞아! 맞아!♡ 은하형~ 오랜만에 만났는데 쏠 거죠?!!” 유빈의 대답에 이어 사랑, 아리 그리고 겨울까지. 자기들끼리 흥에 젖어 술타령을 하는 그들을 보며 태하와 은별은 조용히 웃음만을 지었다. 이번 전쟁, 서로의 마음속에 상처만을 준 것 같지는 않다. 피아나 곁에 서 있던 은하의 손목을 다짜고짜 잡고 술집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사랑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그들을 멀뚱히 바라고 있는 은별과 태하 그리고 피아나에게 소리쳤다. “채은별, 민태하!!! 그리고 옆에 있는 아줌마!!!! 다들 안 오고 뭐해?!!! 안 오면 사랑이의 침 공격 들어갑니다!!!♡“ “윽. 진사랑!! 미친놈아. 너 그 짓거리 하지 말랬지?!” “아악!! 진사랑~ 진짜 추접스러워!! 간다, 가!!” 소리치는 사랑의 목소리에 섬뜩해진 은별과 태하는 서둘러 그들의 무리에 합세했다. 그리고 금세 분위기에 맞춰 어울리는 아이들. 웃고 떠들며 마치 예전부터 친했던 사람들처럼 허물없는 그들을 보며 피아나는 슬프게 미소를 지으며 조그맣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은하, 당신이 찾던 정의는 지금 웃고 있는 거죠?” 152. * * * 한편, 이 시각... 꽤 오랜 시각을 달려온 것 같다. 한결은 한준의 손에 이끌려 그의 차를 탔건만 어디론 가로 끊임없이 향하는 차 속에서 자신의 옆에 앉아 한 마디 말도 없이 굳은 표정으로 침묵하는 한준에게 물었다. “아버지 지금 도대체 어딜 가시는 거예요?” “................” “은결이 보러 가는 것 맞아요?!” 은별이와 세 달 만에 극적으로 만났건만 다짜고짜 재회의 기쁨도 마주하기 전에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향하자 신경이 날카로워진 한결은 짜증을 부리며 침묵하는 한준을 향해 소리쳤다. 그의 안색이 눈에 띠게 나쁘다. 한준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한결아.” “.....?” “넌 말이다. 나 같이 나쁜 아버지가 되지 말거라. 슬픈 자식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그런 나쁜 일 따윈 하지 말거라.” 눈물을 보이지 마라. 말하는 한준의 창에 비친 모습에서 그의 눈은 눈물 한 줄기가 떨어뜨렸다. * * * 상쾌한 날이 밝았다. 저녁 내내 한결의 전화를 기다리다 피로함으로 인해 지쳐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들었던 은별이 갈증을 느끼곤 일어났다. "쌔액- 쌔액-" 눈을 뜬 그녀의 시선에 보인 것은 자신의 옆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피아나와 아리의 얼굴. 다들 많이 피곤했나 보다. 그녀는 습관처럼 머리맡에 있는 핸드폰의 폴더를 열었다. 하지만 한 통도 걸려오지 않은 전화.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은 아닌지… “으으으.. 냠냠냠.... 헤헤- 아리야아~♡” “쿠울....” 밤새 술을 먹고 은하의 오피스텔에서 곯아떨어진 아이들을 요리조리 피해 부엌을 향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는 그녀를 불러 세우는 목소리가 있었다. “어? 일어났냐?” “노.. 놀래라! …태하야?” 조용히 부엌 싱크대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던 태하를 본 은별이 놀라 소리쳤다. 태하는 그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려 만들고 있던 것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보며 부엌 안으로 들어온 은별의 코에 알싸하고 맛있는 냄새가 느껴졌다. “와! 이게 뭐야?” “보면 모르냐. 해장국이지.” “태하 너 요리도 할 줄 알아?!” “혼자 사는데 못 하면 굶고 사리?” 태하가 만든 해장국을 맛보면서 은별은 베싯 웃음을 짓다 해장국 옆에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조그마한 냄비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맛있다. 그런데, 이건 뭐야? 열어봐도 돼?” “열지 마. 내가 먹을 거니까.” “뭐야?! 혼자 먹으려고 만들었다 이거야?! 치사하게!!” “...그냥.” 그냥이라고 말하는 무뚝뚝한 태하의 모습이 길 잃은 아이처럼 슬퍼보였다. 도대체 뭐가 들어 있기에?!! 궁금해~ 궁금해~ 파를 썰고 있는 태하의 눈치를 보며 궁금함이라면 참을 수 없는 은별이 순간 손을 뻗어 그 조그만 냄비를 열고 빠르게 쳐다보았다. 에? …미역국? “태하야, 너…” 굳어버린 은별이 흔들리는 다갈색 눈동자로 태하를 바라보았다. 태하는 흔들리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 픽 웃으며 은별의 이마에 살짝 꿀밤을 주는 시늉을 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뭐 하러 열어보냐.” “태하야. …너, 생일 때마다 이렇게 보낸 거야...?!” “그냥…” 말을 잇지 못하는 태하의 힘없는 목소리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무뚝뚝하고 차가운 겉포장을 벗겨보면 가장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아이. 생일조차도 다른 이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홀로 챙기는 아이. 착해빠진 아이. 마음 여린 아이. 그래서 눈물이 나는 아이. “안 되겠어!! 민태하!! 오늘은 너를 위해 내가 쏜다!!!!” * * * . . “에이,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아침 일찍부터 영 내켜하지 않는 태하를 끌고 온 놀이동산이건만 우글우글한 사람들 덕택에 놀이기구라고는 회전목마 하나 타고 기다리다 지쳐 결국 놀이기구를 타는 것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온 은별과 태하다. 그런 은별의 눈에 포착된 것이 있으니! “뭐냐? 쏜다는 게 노래방 오는 거냐?” 막무가내로 또 다시 태하를 끌고 은별이 방문한 곳은 다름 아닌 허름한 노래방. 태하는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이리 저리 이끄는 은별의 손이 부담스러운지 그녀가 기분이 상하지 않게 살짝 손을 빼내며 말했다. “내가 쏜다니까! 민태하~!!” “별로, 안 쏴도 된다.” “야아아아~ 사람의 성의를 무시하면 안 되는 거야!!” “네가 놀고 싶은 것 아니냐?” “헉, 딸꾹!” 그의 말에 딸꾹질을 하는 은별의 모습에 태하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그녀도 거짓말 못 하는 것은 사랑과 똑같다. 아마 한결과 연락이 안 돼 답답한 마음에 그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 씨이. 웃지 마!! 딸꾹!” 은별, 거짓말이 뽀록난 것이 쪽팔린 것인지 연신 딸꾹질이 멈추질 않는다. 태하는 딸꾹질을 참으려 애쓰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쓸어주며 말했다. “뭐, 이 한 몸 희생해서 놀아준다. 노래나 불러라.” “히힛! 진작에 그래야지~” 태하의 말에 은별은 신이 난 듯 노래를 신청했다. 이내 반주가 흘러나오자 탬버린을 집어 들고 태하를 향해 눈을 맞추고 잔잔한 반주에 맞춰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겐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 ....................................................... ................................................. 당신은 사랑을 받고 있지요. 153. 시간이 흐르고... 어느 덧 노래방 시간은 3분 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뭐야!!! 놀아준다면서 한 시간 내내 노래도 안 부르고!!!” “노래는 내 체질이 아니다.” “에이~ 그래도!!! 애국가라도 불러!!!!!! 내 노래만 실컷 감상하고 너는 그렇게 내빼면 안 되지!” “뭐, 돼지 멱따는 소리더만.” 태하의 비아냥거리는 소리에 은별의 두 눈 도끼눈 되어 간다. 오, 눈에서 레이저 나온다. 살벌한 그녀의 무시무시한 시선에 태하, 뒷목이 시큰해지는 게 한 곡 안 부르면 뭔 일 나게 생겼다. 그는 아무 곡도 신청하지 않은 채 진짜 애국가라고 부를 심산인지 담담하게 마이크를 들어 입으로 가져가더니만 아무렇지도 않게 처음 들어보는 슬픈 멜로디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What's the sense of trying hard to find your dreams without someone to share them with Tell me, what does it mean? Run away, No, I need you here, I need you here to wipe away my tears, to blow away my fears. No, if you only know how much....." “.....태하... 너...” 놀랐다. 남자의 목소리가 이렇게 감미로울 수도 있다니… 그런데, 발음이 완전 본토 발음이라 뜻을 잘 못 알아 들었다. 왠지 슬픈 듯한 가사 내용이었는데.... “됐지? 나가자? 좁아터진 곳에 있으니까, 짜증난다.” 태하는 마이크를 내려놓고 놀란 듯 입을 다물지 못하는 은별을 재촉했다. 그러나 태하의 노래에 빠져버린 듯 은별은 눈을 반짝거리며 그에게 소리쳤다. “우와!!! 민태하!!! 너 노래 진짜 잘 부른다!!!!! 가수해도 되겠다!! 무슨 노래야? 멜로디 진짜 좋다!!! 와- 진짜 반하겠다!!! 야~“ “...제목 없는 노래.” “응?” “가자, 한 턱 쏜다면서? 설마 이건 끝이 아니지?” “으응~ 물론이지!! 아- 저기서 우리 기념으로 사진 찍자!!!” “뭐?! 야!!” 그녀는 눈에 띤 스티커 사진관을 보더니 또 다시 태하를 끌고 들어간다. 여자 맞아? 무슨 여자애가 빼빼 말랐음에도 불구하고 이리도 힘이 센 건지. 태하, 무지막지한 그녀의 힘에 질질 끌려 사진관 안으로 들어갔다. “에이~ 태하야. 인상 좀 펴~ 네가 한결이니~!!” “…사진 안 찍어.” “이미 돈 넣었어! 자~ 태하야!! 치즈~!!!!” (찰칵-) 은별이 태하의 입가에 손을 가져가 웃는 것처럼 만들어주는 순간 찍혀진 사진. 어떻게 보면 언밸런스하고 어떻게 보면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사진처럼 보였다. "사진 나온다. 태하야~ 받아!" "어. 응." [벨렐렐레레~ 벨렐레레~♪] 그 사진이 나오는 순간 은별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화들짝 놀라 핸드폰을 꺼내보니 액정에 한결의 번호가 띄어 있었다. 생각할 틈도 없이 서둘러 핸드폰 폴더를 열고 귓가에 대는 은별. “여..여보세요?!” [..............] “한결아?! 한결이 맞지?!!” [..........하아....] 반가운 마음에 한결의 이름을 외치는 은별의 귀에 돌아온 것은 가느다란 한숨 소리. 분명 한결의 한숨 소리이긴 한데. …불안하다....? “한결아? 왜... 그래?” [...흑... 은별아, 우리... 어떻게 하냐?] 눈물 어린 목소리. 한결이 울고 있다? 전화기를 쥔 은별의 손이 불안감으로 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모습에 사진을 꺼내던 태하가 의아한 표정으로 은별을 쳐다보았다. “하..한결아? 왜 그래??!! 너 어디야???!!!” [....은결이.... ....................래.] (툭-) 한결의 슬픔 어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은별은 핸드폰을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멍한 표정으로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드는 그녀의 모습에 그녀가 놓친 핸드폰을 집어 들던 태하는 한결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말을 걸었다. “한결아?” [....하.. 태하...냐?] “너..? 울어?! 무슨 일이야?!! 야!! 채은별?!!!” 눈물을 흩뿌리며 갑작스럽게 어디론 가로 달려가는 은별의 모습에 태하는 불안으로 콩콩 뛰어대는 가슴을 안고 그녀를 소리쳐 불렀다. 허나 은별은 들리지 않는 것인지 태하가 따라가기도 전에 사라져버렸다. “뭐야...? 현한결?! 무슨 일이야?!!” [.......하아.. 흑.. 태하야. 흑... 나 몹쓸 아빠인가 봐.... 하아...] “현...한결?” [우리 은결이... 백혈병이래.... 우리 은결이가 더 슬픈 텐데... 은결이 앞에서... 흑... 울고 말았어... 나... 정말..... 구제불능 아빠인가 봐...] …태하는 항상 자신의 생일이 싫었다. 그의 축복받지 못한 생일엔 꼭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 그의 두 번째 생일엔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고, 그의 12번째 생일엔 어머니가 광기에 미쳐 세상을 떠났다. 그의 16번째 생일엔 오해의 표출이었던 신영고 사건이 터졌다. 그리고 그의 18번째 생일엔 자신의 친구가 …울고 있다. * *　　　　　　　　＊ 미친 듯이 달렸다. 남들이 손가락질하면서 정신 나간 여자처럼 쳐다봐도 앞뒤 볼 것 없이 달렸다. 숨이 터질 것 같았지만 마음이 더욱 터질 것 같았다. 병원 중환자실을 찾아가는 동안 그녀의 머릿속은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하아.. 하아.. 은결아!!! 우리 아들 은결이 어디 있어!!!!!!” “은별....아...” 중환자실 앞에 도착하자마자 고래고래 은결을 찾으며 소리를 지르는 은별을 반기는 사람은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붉게 충혈 된 한결이었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부정하던 사실. 우려했던 걱정이 사실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한결아? 아니지? 응? 사실... 아니지?!!” 애원하듯 한결의 옷자락을 잡고 소리치는 그녀의 눈가에 한 가득 눈물이 차올랐다. 백혈병이라니? 그 건강하던 아이가 백혈병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다. 분명 돌팔이 의사들이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것이다. “흑... 한결아... 나 충분히 놀랐으니까... 흑.. 장난 그만 쳐... 응?” “....하아... 은별아... 채은별.......” 하염없이 눈물을 떨어뜨리기 시작한 가냘픈 은별을 품에 끌어안으며 한결 역시 또다시 말라버린 눈물을 주르륵 흘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아픔이 끝날 줄 알았건만 또 다시 찾아온 아픔에 심장이 멎을 것 같다. “은결이.. 흑... 그렇게 밝고 건강했는데... 이렇게 큰 병 걸렸다는 거 말.. 안 되잖아? 응? 한결아.. 흐앙... 제발, 거짓말이라고 해 줘... 흑... 제발.... 나 심장이 너무 아파..“ “미안해.. 하아.. 미안해. 은별아... 아프게 해서 미안해.... 아무도 지킬 수 없었던... 날 용서해..... 미안해... 미안해....” 병이란 지독한 녀석 앞에선 아무 것도 보호해 줄 수 없었다. 은별만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어딘가에서 건강하게 살고 있을 거란 안일한 생각을 한 벌인 걸까? 말을 잇지 못하는 한준이 데려온 병원에서 은결이 백혈병이란 큰 병을 앓고 있단 사실은 안 순간 세상이 무너진 듯 모든 게 어지럽게 보였다. “흐윽.. 은결이... 살 수 있는 거지? 응...? 살 수 있지?!!” “.....살 수 있을 거야... 꼭 그렇게 만들 거야... 하아.. 그럴 거야... 그럴 거야... 내가 그렇게... 흑... 만들 거야.” 하늘아. 이제 그만 해라. 장난도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 우리 충분히 아팠다. 충분히 눈물도 흘리고 충분히 서로를 그리워했다. 이제 좀 더 웃을 수 있는 사랑할 수 있게 좀 놔두면 안 되냐? …그게 그렇게 어렵냐? 154. “현은결 환자, 면회 시간입니다.” 서로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 은별과 한결에게 감정 없이 차가운 간호사의 목소리는 마치 시한부에게 내려진 죽음의 선고와도 같이 느껴졌다. “들어가실 때, 마련해 두신 가운 입어주시고요.” “은별아, 들어가자.” 간호사의 당부에 한결은 병실 가운을 입고 은별의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그리곤 그녀에게도 자신과 같은 가운을 입혔다. 쓰러질 듯 위태위태한 그녀를 부축하며 한결은 소매로 눈물을 닦고 새하얀 대리석이 삭막한 분위기를 풍기는 중환자 병실로 들어갔다. 병실엔 울음소리도 없이 정적만이 가득 했다. "은결아... 은결아..." “..현은결 환자 보호자 되십니까?” 천천히 병실 안에서 은결을 찾는 그 둘을 맞이한 것은 담당 의사였다. 그들의 시선은 의사의 얼굴에 머물러 있다 이내 미끄러지듯 아래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담당의사가 서 있는 옆 쪽 침대에 새근거리며 잠들어 있는 아이. 은결이다. 세달 가까이 만에 보는 아이의 모습은 병을 앓고 있는 아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눈같이 새하얀 피부도, 붉고 앙증맞은 작은 입술도, 통통한 아이의 몸도… 하지만 눈에 띠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흑옥 같이 윤기 흐르던 머리칼이 사라지고 맨들 맨들하게 변해버린 머리를 감추기 위해 흰 모자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흡..." 그 모습에 더욱 눈물이 나는 한결과 은별이다. 의사는 담담하게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다 이내 차트를 들여다보며 말을 꺼냈다. “현은결 환자, 상태가 아주 좋지 않습니다. 골수의 증식이 이상적으로 높습니다. 게다가 병을 앓은 지 꽤 오래된 것 같군요. 수술을 해도 생명의 유지가 어려울 마당인데... 가족 중에서 검사를 해봤지만 골수가 맞으시는 분이 없군요. 현한준씨, 현한결씨 골수 모두 현은결 환자와는 맞지 않습니다.” “..하..?” “죄송합니다. 빠른 시일 내로 골수를 찾아보도록 노력을 해보겠습니다만....” 담당의사는 말끝을 흐리며 슬픈 표정을 한 번 짓곤 자리를 피했다. 이런 말을 전해야하는 의사도 괴로우리라. 하지만, 전해 듣는 부모의 맘만 하겠는가. 은별은 의사가 자리를 뜨자마자 자지러지듯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말도 안 돼....” 그것보다 병을 앓은지 오래 되었다니? 진정하려고 마음을 다스리고 추슬러도 덜덜 떨리는 입은 좀처럼 닫히지 않았다. 수술을 해도 살 가능성이 희박하다니? 믿고 싶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 "젠장." 한결 역시 자신을 자책하듯 병실 벽을 두드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부스럭-] “…엄마? 아빠?” 넋을 놓고 서로 만에 생각에 잠겨있던 은별과 한결을 부른 것은 잠에서 깬 은결이었다. 졸린 듯 자꾸 감기려는 눈을 손으로 부비며 아이는 믿기지 않는 듯 잘 나오지도 않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들을 불렀다. 은별의 시선과 한결의 시선이 동시에 은결의 시선과 공중에서 엉켰다. “꿈 아니죠? 진짜, 은결이 엄마, 아빠 맞죠?” “…은결아.” “엄마, 아빠!!” “은결아!!!” 은별은 눈에 고였던 눈물을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떨어뜨리며 믿기지 않는 듯 자신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은결을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런 둘을 한결 역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넒은 품에 끌어안았다. “은결아... 은결아...” “엄마, 아빠… 돌아온 거죠? 은결이가 매일 별님한테 빌어서… 매일 별님한테 엄마하고 아빠 보고 싶다고 소원 빌어서… 돌아온 거죠?” “은결아.. 흑...” “헤헤, 엄마, 아빠. 조금만 더 일찍 왔으면 좋았을 텐데… …천사님들이 은결이가 예뻐서 하늘로 데리고 간대요. 은결이 저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예쁜 별님이 된대요.“ 아이의 말은 비수가 되어 한결과 은별의 심장을 찔러왔다. 아직 죽음이라는 말의 뜻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이의 아이가, 그런 아이가 죽음을 너무나도 의연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 아니, 은별과 한결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 붉어지는 눈시울을 웃음으로 감추며 말하는 속 깊은 아이의 모습에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팠다. “엄마, 울지 마요. 은결이, 괜찮아요. 그 동안 멋진 할아부지가 은결이 많이 귀여워 해줬는걸요? 은결이 엄마 없어도 울지 않고 기다렸어요. 별님한테 매일매일 소원 빌어서 이렇게 엄마랑 아빠, 은결이한테 돌아왔잖아요.“ “은결아… 미안해… 미안해… 은결아…” 여린 아이이다. 여린 아이. 선한 눈망울에 큰 꿈을 지닌 어린 아이이다. 아직 세상을 향해 불조차 켜보지도 못한 작은 아이이다. 그런 아이를 하늘은, 어째서 하늘은 자신의 품으로 아이를 불러들이는 걸까. "은결아, 많이 아팠니?! 그 동안 왜 아프면서 말을 안 했니?!! 응?!!!" "...엄마..." "말이라도 하지. 은결아. 흑... 말이라도 하지!!!!" "...은결이 아프면 마귀할멈처럼 엄마도 은결이 버릴거잖아..." 담담하게 말하는 아이의 말은 가시가 서려 있었다. 아프면 버리다니... 이미 한 번 버려진 아이는 너무도 큰 상처를 받은 것이다. "엄마가.. 왜 은결이를 버려... 흡... 왜.... 이렇게 사랑스러운 우리 아들을... 흑.. 어떻게 버려...." "....엄마..." "흐윽... 은결아... 우리 은결이..." 아이를 품에 안고 세상이 무너지듯 절규하는 그녀의 울음 소리가 애처롭다. “현은결 환자, 면회시간 종료입니다. 보호자 분들 나와 주시죠.”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는 그들에게 간호사는 민폐라는 듯 쳐다보며 꼭 껴안고 있는 그들을 완력으로 은결에게서 떼어놓았다. 은별은 떨어질 수 없다는 듯 바동거리며 애절하게 은결을 바라보았다. “은결아!!!” “얼른 나가 주세요.” “안 돼!! 은결아!!!” “엄마, 아빠. 저녁에 다시 오면 되요. 은결이는 울보 아니니까.” 아이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부모들을 위해 웃음을 지었다.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누구보다도 청아하고, 누구보다도 서글픈 웃음을… 155. * * * 아픈 마음에 며칠이 흐른 지도 모르게 시간이 흘렀다. “흑... 흑....” 마음을 조금은 진정한 한결과 은별의 연락을 받은 아이들이 은결이 입원한 중환자실 앞에서 소리를 죽인 채 앉아있었다. 은결을 나름대로 아꼈던 사랑은 눈물을 참지 못하고 훌쩍거렸고 아리 역시 사랑을 따라 큰 눈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미 미래를 느꼈을지 모를 은하는 조금은 담담해 보였지만, 마음 여린 피아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은결의 일이건만 끊임없이 눈물을 떨어뜨렸다. 그들의 반대편엔 슬픔을 머금은 채 침울한 표정을 한 채 서있는 유빈과 아무런 표정이 없는 얼굴에 짙은 슬픔을 띠고 있는 태하, 그리고 한준이 서 있었다. “은결이가 아프다는 것을 안 것은 은결이를 데리고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회사 일을 마치고 부리나케 은결이 입원한 중환자실 병실 앞으로 찾아온 한준은 슬픔으로 인해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을 향해 말을 꺼냈다. “밝은 아이더구나. 너무도 밝은 아이. 태양같은 아이였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하면서도 영악한 아이더구나. 은결이는…“ 아이들의 눈에 비친 한준의 퀭하게 들어간 눈과 초췌한 안색이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그에게 커다란 아픔인지를 알려주었다. “다른 가정에서 행복하게 살게 해줄 심상으로 데려오긴 했지만 막상 다른 가정으로 보내려니 내 마음이 너무도 아프더구나. 하나 밖에 없는 손주이니 말이다. 지켜보고 있자니 한얼이 생각도 나고… 그런데, 며칠이 안 돼서 아이가 자꾸 헛구역질을 해댔다. 심장이 섬뜩하더구나. 고열까지 앓는 아이를 보곤 화들짝 놀라 병원에 데리고 왔을 땐 이미 늦었더구나.“ “....흡....” “골수의 증식 이상으로 인한 급성 골수성 백혈병(AML)이라 더구나. 병원에선 이미 발병한 지 꽤 되었는데 왜 이제야 찾아왔냐고 너무 늦었는데… 수술을 해도 살 가능성은 20%… 티끌만한 가능성이지만 살릴 수 있을 거란 일념 하에 골수 검사까지 받아봤지만 내 골수도 한결이 골수도, 심지어 은별양까지 검사해 봤지만 맞질 않는다 하니…” 흐릿하게 말을 마치는 한준의 목소리에 은별은 또 다시 충혈 된 눈에 눈물을 흘리며 한결의 넓은 품에 안겨 계속 가는 몸을 쉼 없이 떨었다. 한 자리에 모인 아이들 역시 한준의 말에 아무런 말을 꺼내지 못하고 갑자기 닥친 불행에 대책 없이 눈물만을 흘렸다. “현은결 환자, 면회 시간입니다.” 간호사는 병실 앞에 앉아있거나 서 있는 그들을 향해 말을 전했다. 아이들은 일분, 아니 일초라도 은결과의 만남의 시간을 늘리기 위해 서둘러 준비해놓은 가운을 입고 빠른 발걸음으로 병실로 들어왔다. “어라?” 대거로 몰려온 그들의 모습에 놀란 은결은 커다란 눈을 깜빡거렸다. 나날이 창백해지는 아이의 안색과 보랏빛으로 물들어 버린 아이의 입술. 사랑은 맨질맨질하게 변한 은결의 머리를 보더니 이내 엉엉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흐아아앙!!! 은결아!!!!!!!!” “바보 아저씨? 아저씨, 왜 울어요.” “은결아, 우리 은결이!! 흐앙!!! 많이 아프지? 응?!!!” “아저씨, 나 안 아파요…” 은결은 다짜고짜 자신을 끌어안고 몸을 부비며 울음을 터트린 사랑을 안타깝게 쳐다보며 힘없는 목소리로 그의 말에 대답했다. 그런 은결이 더욱 안쓰럽게 느껴진 건지 사랑은 더욱 크게 울며 소리쳤다. “흐앙!!!! 은결이 바보!!!!! 은결이가 아프면… 형은, 형은 어떻게 해?!!! 은결아!!! 엉엉!!!! 대장 없는 쫄병이 어디 있어!!!!! 흐아아앙!!!!!!!” “바보 아저씨…” “싫어, 은결아. 너 아프면 안 돼!!! 흐흑... 내가 대신 아프면 안 돼?!! 대장이 왜 아파… 쫄병이 아파야지!!! 흐윽... 내가 살릴 거야!! 내가 살릴 거라고!!!! 내 골수 다 뽑는 한이 있더라도... 흡!!! 은결이 내가 살릴 거야!!!!!“ 오열하던 사랑은 슬픔에 못 이겨 병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리야…” “나, 따라 나가볼게.” 은별은 눈짓하자 아리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사랑을 따라 나섰다. 사랑과 아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이미 아이의 눈이라고 하기엔 슬픔의 빛이 애처로울 정도로 강한 은결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바보 아저씨, 바보… 아저씨가… 대신 별님이 돼 줄 순 없잖아…” 조용히 중얼거리는 은결의 목소리를 들은 아이들은 침묵에 잠겼다. 아팠다. 마음이 너무도 아팠다. 이 어린 것이 견디고 있는 고통이 너무도 커 그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아팠다. 신음 한 번, 아프단 말 한 번 하지 않는 어린 것의 인내가 안쓰러워 아팠다. “나 정말 괜찮은데… 은결이 정말 괜찮은데… 하늘나라 가기 전에 엄마랑, 아빠랑, 바보아저씨랑, 태하형이랑, 유빈아저씨, 마귀할멈누나 다들 봐서 난 괜찮은데… 은결이 별님 되면 은결이가 하늘에서 매일 지켜 볼 텐데…“ “..................” “정말 괜찮은데… 정말…” 눈물을 흘리는 아이의 눈은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사랑의 절규에 굳건히 다잡았던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고통을 참는 것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하늘나라로 가면 다시는 보지 못할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남몰래 눈물을 흘리던 은결이었다. “..씨이... 왜 이럴 때 진사랑 그 얄미운 녀석이 보고 싶은 거지...” “…은결아, 꼬마 사랑이 보고 싶어?” 은결의 작은 목소리를 귀담아 들은 은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어두운 빛을 띤 얼굴을 천천히 끄덕이는 아이. 병실에만 갇혀 생활한 지 벌써 3개월이 지나가니 사람이 많이 보고 싶은 것 같았다. 아니, 언제나 티격태격 싸우기만 했던 꼬마 사랑이와 정이 들은 거겠지. “사랑이, 엄마가 데려올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흡....” 은별은 또 다시 눈물을 참지 못하고 터트렸다. 그런 그녀에게 한결은 자신의 어깨를 빌려주었고 위로하듯 등을 토닥였다. 슬픈 정적 속에서 눈이 보이지 않는 은하가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걸어가더니 용케도 은결의 머리를 찾아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문을 열었다. “네가 은결이구나.”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은하의 얼굴을 본 은결은 놀란 듯이 소리쳤다. “작은 아빠?!” 아마, 현이를 꼭 닮은 은하의 모습에 놀랐으리라. 은하는 그런 은결의 외침에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아니란 뜻을 표했다. “나는 은결이 삼촌이야. 은결이 엄마의 오빠, 채은하라고 한다.” “삼촌…?” “그래, 은결아.” “헤헤. 작은 아빠랑 꼭 닮았다!” 현과 닮은 은하가 마음에 든 것인지 은결은 작은 몸을 은하의 품에 쏙 안겼다. 은하는 그런 은결이 귀엽다는 듯 꼭 안아주며 은결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은결아, 삼촌이 은결이는 꼭 살려줄게. 아무리 네게 ........................더라도. 그러니 끝까지 살아주겠다고 삼촌이랑 약속해 줄래?” “....삼촌?” 은결이 선한 눈망울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건지 은하는 그저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무언가 말하려는 아이의 입가에 살짝 검지를 갖다 대며 말했다. “비밀이다. 약속.” 그의 말에 아이는 조그맣게 네- 라고 대답했다. 은하는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곤 의아해하는 은별과 한결, 그들의 뒤에 서 있는 피아나와 유빈, 태하에게로 다가와 말했다. “찾아야할 사람이 있어.” “…?” “은결이의 희망은 그녀에게 맡겨야 할 것 같다. …차수진 그녀에게.” 156. * * * 은결의 병실 밖으로 울며 뛰쳐나갔던 사랑이 진정을 했는지, 우울한 표정을 한 아리 옆에 쥐 죽은 듯 서 있었고 그 옆으로 유빈과 태하, 은별과 한결, 그리고 은하의 부름을 받고 온 재아가 서 있다. “은결이에게 걸 수 있는 희망은 오직 수진누나 뿐이야. 유빈아, 재아야. 부탁할게. 너희들 정보망은 알아주니까.“ “형, 쑥스럽게…” 그들 앞에서 은하가 건넨 말에 재아와 유빈이 동시에 말을 꺼냈다. 서로 말해놓고도 서로 무안한지 얼굴을 붉히는 두 아이들. 헌데, 어째 잠잠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사랑이 빠질 리 만무 하지만 은결이 아픈 것이 꽤나 충격인 듯싶었다. 아무 말도 없이 기죽은 채 바닥만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니… “사랑아, 은결이 살 수 있을 거야.” 그런 사랑의 모습이 생소하면서도 안쓰럽기 그지없어 보인다. 은하는 강아지를 쓰다듬듯이 조심스럽게 사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중학교 1학년 때와는 달리 이젠 자신의 키만큼 자라버린 사랑의 키. 벌써 이렇게나 컸다. 다들… “사랑아.” “은하형, 사랑이가 밤마다 정화수 떠 놓고 달님한테 빌 테니까… 우리 은결이 꼭 살려줘요… 꼭이요!! 꼭 살려줘야 해요!!!!“ 어디서 본 것은 많아 가지고 정화수 떠 놓고 빈다는 소리에 아이들의 어두운 얼굴에 잠시나마 웃음의 꽃을 피웠다. 어떻게 보면 조금은 바보 같아 보여도 누구보다 순수한 사랑이기에 아이의 죽음이란 생각지도 못 했던 아픔으로 다가왔던 것일까? “사랑아, 너의 마음이 하늘에도 닿았으면 좋겠다…” ........하늘도 너의 그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 * * 수진을 찾기 위해 한참이나 상의하던 아이들은 이내 말을 마치고 각자의 집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한준을 만나러 가야한다는 은하의 부탁으로 한결은 오랜만에 은별과 단 둘이서 은하의 오피스텔로 향하고 있었다. “채은별.” 너무 많은 눈물을 쏟아 부은 나머지 눈이 아픈 건지 자꾸 눈을 비비는 은별을 보며 한결은 아직도 그녀가 자신의 곁으로 돌아온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 나지막하게 작은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응, 한결아. 왜?” 자신을 부르는 한결에게로 시선을 옮긴 은별의 시선과 그의 시선이 마주쳤다. 걸음을 멈춘 한결이 세 달 사이에 바싹 마른 그녀의 여린 몸을 꼭 끌어안았다. “은별아, 채은별. 채은별. 채은별.” “한결아?” “내 심장, 정말 돌아왔구나. 내 심장, 지금 뛰고 있지?” “…한결아.” “하아, 하늘이 우리 사랑 시샘하나 보다. 그렇지? 우리 사랑이 너무 깊어서 저 하늘새끼가 많이 샘나나 보다.“ 그녀를 안은 한결의 팔에 힘이 들어가면서 그녀를 더욱 꽉 끌어안았다. “은별이 너 돌아오면 은결이랑 함께 바다 가려고 했는데… 너 여행 다니는 것 좋아하잖아. 정동진 가서 밤바다 보면서 멋지게 프러포즈도 하려고 그랬는데…“ “...많이 아팠지? 한결아…” “심장이 부서지는 줄 알았어… 그래도 같은 하늘 아래 있으니까…” “미안… 읍...”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려는 그녀의 입을 한결이 입술로 막아버렸다. 여전히 부드러운 그녀의 입술을 삼키는 그의 모습에 약간의 안도감이 비춰졌다. 한참을 그녀의 입 안을 헤집던 그가 아쉬운 듯 베이비 키스를 하며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미안하단 말 듣고 싶은 것 아냐. 널 사랑하니까 기다릴 수 있었어.” “한결아, 나도 사랑해. ...내 심장도 너만을 향해 뛰고 있어.” “픽- 다신 한 눈 팔지 마. 안 그러면 은결이한테 이른다.” “뭐?! 너~ 현한결!! 치사하게!!!” 잠시나마, 아픔을 잊혀주기 위해 장난을 치며 은별을 위로하는 한결이 어른스럽다. 도망가는 한결을 쫓아 뛰는 은별의 얼굴에 나지막하게 미소가 번졌다. 성장한 아이들은 이제 서로의 아픔을 감싸줄 수 있는 날개를 가졌다. * * * 그 후, 시간이 흘렀다. “…미안. 부산지방도 없는 것 같다.” “대구도 샅샅이 뒤져본다고 뒤져봤는데 마찬가지야.” 이대로 나날이 병약해지는 은결이를 하늘로 보내야 하는 것일까? “…미안하다. 한결아.” “씨발, 애새끼를 어떻게 간수했기에 그 지경을 몰아넣었냐? 좇 같네, 현이형 알면 난리 나겠다. 야, 짝퉁. 차수진년 외국으로 뜬 것 아냐?“ “누가 짝퉁이라는 거야. 씨발. 천재아. 넌 입 다물고 있는 게 돕는 거다.” “쯧쯧, 지레 찔려가지고. 아~ 씨발!! 차수진 그 년은 도대체 어디로 숨은 거야.” 차수진을 찾아 사방으로 수소문한지 벌써 보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정보통으로 전국에서 유명한 유빈과 마당발로 소문난 재아까지 합세했지만 역시 그들의 힘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히기 십상이었다. 학교만 파하면 아이들은 모여서 대부분의 시간을 차수진을 찾는데 썼지만, 털 끌 하나 보이지 않도록 자취를 감춰버린 그녀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조그만 희망이라도 걸어본 병원에선 역시 쉽사리 골수를 구하지 못했다. “하, 씨발.” “한결아…” “은별아. 뭐, 세상이 이렇게 더럽냐? 젠장!!!! 기다리라고? 언제까지? 수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나빠질 때까지? 아님, 우리 은결이 하늘로 보내야할 때까지? 씨발, 어떻게 그 많은 인간들 중에서 은결이한테 맞는 골수 하나 없냐.” 시간이 지날수록, 나날이 깊은 절망감에 빠지기 시작한 아이들. 길길이 날뛰던 사랑마저 점점 지쳐가는 지 슬픔에 잠겨 마르지 않는, 조금만 움직이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은결이… 정말 하늘로 보내야 하는 걸까?” “…사랑아. 흡… 울지 마.” “아리야, 내 눈물샘이 고장 난 것 같아. 울면 안 되는데… 은결이… 하늘 올라가면 사랑인 하늘 아래 있기 싫어질 것 같아. 너무 멀다… 너무 멀어서 다가갈 엄두도 나지 않잖아… 흑…” 사랑의 애절함이 묻어나는 말에 묻어난 자신의 무력감. 그 무력함에 또 다시 눈물이 고이려는 찰나 아이들의 곁으로 다가온 학생 무리들. 각각 다른 교복을 입은 10명 남짓 되는 학생 무리들은 머뭇거리다 한결의 앞으로 다가갔다. 차림새와 생김새를 보아하니 낯이 익은 게 학교의 일짱들로 보였다. 서열이 없어진 지금, 일짱들이 더 이상 한결을 찾을 일이 없었다. 그들의 등장에 가뜩이나 예민해진 한결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들에게 소리쳤다. “뭐야? 나한테 할 말 있어? 씨발, 서열도 없어졌는데 볼 일 없을 거 아냐?” “저, 포커스. 아… 아니, 현한결. 우리도 같이 찾는데 동참하고 싶다.” “뭐?” “그 은결이란 아이… 같이 찾아도 될까? 필요하다면 우리 골수도 검사해 봤으면 해.”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더니, 그 아이들의 말이 딱 그 것이었다. 그 아이들은 서열이란 것에 묻혀 나날이 이어지는 전쟁에 회의를 느끼던 찰나, 한결의 새로운 반란으로 서열이 없어지자 내심 그에게 고마워하고 있다고 했다. 더 이상 무의미한 전쟁으로 인해 피를 흘리지도 남을 해하지도 않게 되어서… “하아, 젠장맞을 정도로 고맙다. 씨발, 그런데 왜 눈물이 나냐.” 한결의 눈에 쉽게 보이지 않는 눈물이 맺혔다. 한 사람, 한 사람 한결이 찾은 그만의 정의에 이끌려 힘이 되어주는 듯싶다. 아니, 어쩌면… 어쩌면… 말이다. 이 세상, 그렇게 살기 힘든 세상은 아닌 듯싶다. 157. * * * 은하 역시 피아나와 함께 한준의 도움으로 차수진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었다. 한준이 사람을 풀어 전국을 뒤지며 돌아다니는 유빈과 재아의 뒤를 보조해주는 동안, 은하는 다가올 미래의 무언가를 느낀 것일까? “김기사님, ‘그 곳’으로 가주세요.” “알겠습니다.” 한준의 기사가 모는 차에 피아나의 부축을 받고 올라탄 은하는 자신이 지시한 대로 어딘 론가로 향하는 차에 몸을 맡기고 말없이 보이지 않는 눈을 돌려 차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기라도 하듯 그렇게 시선을 주고 있었다. “은하,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계속 되는 침묵이 어색한 것인지 피아나가 먼저 굳게 다문 입을 열었다. 그는 한 동안 그녀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마 답을 찾는 듯 싶었다. 자신의 답을. 은하는 여전히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는 것처럼 시선을 주시한 체 대답했다. “…눈물을 찾으러 가요. 슬프게 지는 눈물을요.” 태양의 밝은 햇살이 차창 밖으로 튕겨나가듯 반사된다. 그런 창에 비친 그의 얼굴에 비친 부드러운 미소가 불안할 정도로 떨렸다. “피아나, 어쩌면 말이죠. 하늘이 흘리는 눈물은 마르지 않을 지도 모르겠어요.” “은하…” 은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준의 차는 어느 시골에 있는 요양원에 멈춰 섰다. 평안해 보이는 곳이었다. 넓게 펼쳐진 푸른 잔디도,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커다랗게 자린 느티나무들도. 어째서 그는 이곳에 온 것일까? 피아나는 의아하게 은하를 바라보았다. “들어가요. 이곳에 우리가 찾던 사람이 있어요.” “은하? 설마…” 당신, 또 다시 당신의 힘으로 미래를 바꾸려 하는 것인가요? 안 돼요. 그러면 은하, 당신은 이 세상을 등지게 되는 것이잖아요. 막아야 한다. 이곳에 들어가면 분명 은하가 모든 짐을 지게 된다. “싫어요. 안 돼요. 은하! 당신을… 당신을 죽게 할 순 없어요.” “피아나, 내가 죽긴 왜 죽어요. 걱정 마요. 미래가 꼭 정해졌다고 할 순 없잖아요?” “은하?!” “나는 한결이가 보여주었던 그 1%의 희망에 나를 걸어보고 싶어요. 후- 피아나, 당신도 그 희망을… 지켜봐 주지 않을래요?” 김기사의 부축을 받으며 은하는 피아나를 향해 고개를 틀어 해맑게 웃어보였다. 거의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인 피아나는 애써 고개를 끄덕이며 은하를 뒤따랐다. 쏟아지는 햇살이 화창하다. 너무도 화창해서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 같다. . . “차수진 환자분! 면회 왔습니다.” 하늘아, 모든 것을 지켜보는 하늘아. 너는 한편으로는 웃음을 만들면서 한편으로는 끝없이 눈물만을 만드나 보다. *　　　　　　　　　　*　　　　　　　　　　　＊ 간병인의 안내를 받아 은하와 함께 피아나가 들어선 삭막한 병실엔 적막만이 감돈다. 피아나의 시선엔 한껏 비치는 햇살을 받으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왜소하고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빼빼 마른 한 여자가 보였다. “수진씨, 손님이 왔어요.” 간병인의 말에 그 마른 여자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병색이 완연하게 드러나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과 보라 빛으로 변해버린 입술, 예전의 형형하게 빛나던 날카로운 눈빛은 어느새 퇴색되었고, 검게 변해버린 눈 밑이 그녀가 그 동안 얼마나 아팠는지 알 수 있게 해줬다. 수진의 시선이 천천히 은하 쪽으로 움직였다. “!!!!” 은하를 바라본 그녀의 눈은 커져버린 채 고정되었다. 그의 다갈색 눈이 퇴색된 것을 본 그녀의 입은 벌어진 채 닫힐 줄 몰랐다. “은하?!!” “…오랜 만이예요. 수진누나.” 놀라 소리치는 수진의 목소리에 은하는 그저 서글픈 미소를 보이며 화답했다. 피아나는 서로를 아는 그들의 모습에 어리둥절해하며 은하를 바라보았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수진의 빛바랜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이내 뚝뚝 눈물을 떨어뜨렸다. “흡… 역시, 현이에게 눈을 준 거… 은하였구나.” 그녀의 눈물 섞인 말에 은하는 긍정의 뜻으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흐윽!! 미안해, 은하야. 나 때문에… 나 때문에… 눈까지 잃게 해서…” “수진누나…” “미안해... 흐윽... 정말 미안해… 내가 미쳤었어! 사랑에 눈이 멀어서 미쳤었어…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 알아… 흐윽… 널 너무 사랑해서… 사랑해서…” 봇물 터지듯 눈물을 흘려대며 오열하는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은하는 피아나의 곁을 벗어나 천천히 우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눈물을 닦아줄 수 없지만 수진의 야윈 어깨를 살짝 두드려주는 것이 은하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였다. “미안해… 미안해… 은하야… 나... 흡... 너무 못된 짓을 많이 해서 벌 받나 봐.” “수진누나…” “은하, 너도 들었지? 간암 말기래… 나 정말 벌 받나 봐… 흡… 한얼이한테 너무 못된 짓을 많이 해서 나 이렇게 벌 받나 봐.” 수진의 입에서 흘러나온 간암 말기란 소리에 피아나는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은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기에 눈물을 찾으러 간다고 말을 했던 것일까? 수진의 어깨를 두드리던 은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피아나의 시선을 느끼곤 슬픔을 담은 시선을 허공으로 돌리며 조용히 울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쩌면 눈물은 정말…………지도.” “은하야?” “수진누나, 피는 정말 물보다도 진한 건가 봐요.” 눈물을 흘리던 수진의 은하의 말에 고인 눈물을 소매로 닦아내며 그를 바라보았다. “은결이가… 당신의 아들, 은결이가 아파요.” 158. (벌컥!!!) “씨발!! 차수진!!!” “은하오빠!!!!” 은하의 중얼거리는 말의 끝으로 병실 안으로 은하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한결과 은별이 쿵쾅거리며 시끄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등장으로 적막했던 병실이 한 순간 시끄러워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결의 시선에 환자복을 입은 수진의 모습이 눈에 띠었다. 한결은 날카롭게 보일 정도로 굳어버린 표정을 지으며 수진과 은하의 앞으로 다가왔다. “현한결? 네가 어떻게…” “하아, 씨발!!! 차수진!!! 너... 너 왜 요양원에 있어?! 왜 이따위 차림새로 여기 있는 거냐고!!! 젠장 맞을!!!!!!” 한결의 절규어린 외침에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 눈물로 젖은 속눈썹이 안쓰러워 보이는 그녀의 큰 눈은 병색이 완연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연신 깜빡이며 그를 주시했다. “씨발, 마지막 희망이라고 찾아온 너까지 아프면… 이 따위로 아프면…” “무슨 소리야…” 수진의 목소리가 왠지 모를 불안함으로 떨렸다. 수진을 향해 쏟아지는 아이들의 원망과 슬픔 어린 시선들. 한결은 부르르 떨리는 주먹을 꼭 쥔 채, 벽을 세게 치며 소리쳤다. “씨발!! 은결이 백혈병이라고!!!!!!!!” “…뭐, 뭐라고?!” “네가 내다버린 은결이… 하아, 아프단 말야… 씨발.” 한결의 말에 수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도리질 쳤다. 말도 안 돼 라는 말을 연발하면서… 그녀의 떨리는 시선은 슬픔에 잠긴 듯 보이는 은하의 얼굴로 옮겨졌다. “은하야? 거짓말이지? 한새, 아니 은결이가 아프다니? 거짓말이지?!” “…사실이에요.” “아아아악!!!!!!!!!!!!!!!!!!” 은하의 나지막한 대답에 수진은 발악하며 소리를 질렀다. 숨이 멎을 정도로 오열하는 그녀. 그녀를 바라보던 사람들은 놀란 듯 굳어버렸다. 은별은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 발악하는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품에 안았다. 그녀의 품에 안긴 수진은 거의 정신을 잃을 정도로 몸을 떨었다. “수...수진씨. 지.. 진정해요.” “안 돼… 한새야. 한새야.... 흡…” 눈물을 흘리며 진정을 못 하는 그녀의 모습은 아이를 버린 모진 여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날카롭게 그녀의 행동을 관찰하던 한결은 그녀의 행동이 역겹다는 듯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불만과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소리쳤다. “씨발, 넌 울 자격도 없잖아!!!!! 은결이를 버린 주제에!!!!” “그만해, 한결아!!!” “씨발, 뭘 잘 했다고 쳐 우냐고!!! 씨발…” 말리는 은하의 말에도 불구하고 한결은 악을 쓰며 그녀에게 소리쳤다. 한결의 마음엔 아직도 버려졌던 자신의 마음의 상처가 남아있는 듯 했다. 은별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수진을 품에 안은 채 어쩔 줄을 몰라 했고, 그녀의 품에서 발악하던 수진도 조금은 진정이 된 듯 떨림이 머졌다. “미안해… 미안해… 은결이한테도, 한얼이한테도, 현이한테도, 은하한테도…” “수진씨…” “하아… 악녀 따위가 변명할 여지가 없겠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 수진은 떨어지는 눈물 사이로 한숨을 작게 쉬곤 말을 이었다. “한얼이가 그렇게 죽어버릴 줄 몰랐어… 내 욕심으로, 나의 목숨을 건 도박으로… 은하를 너무 사랑한 결과가 이럴 줄은 꿈에도 몰랐어… 그저, 조금만이라도 은하의 관심을 받아보고 싶었는데… 은결이가 원망스러웠어, 처음엔… 그래서 그렇게 모질게 대했는지도 몰라… 하지만, 은하의 행세를 하는 현이가 나타나고 종종 한새를 보살펴 줬어. 그 때부터 나도 아이를 진심으로 대하려고 노력했어. 내 배로 내가 낳은 자식인 만큼, 원망한 만큼 아이를 사랑했으니까. 하지만 아이의 마음은 이미 닫혀 버렸나 봐. 그 영악한 아이는 날 엄마라고 부르지도 않더라. 마음이 많이 아팠어… 그런데, 아픈 건 마음뿐이 아니었어. 흡… 현이가 사라진 이후, 나날이 갈수록 잦은 구토와 함께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는 거야.“ 은별과 한결은 그녀의 이어지는 말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 밖의 말이었다. 참회하는 듯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도 아프고 작아보였다. “현이가 은하에게 각막 이식을 받고 오기 며칠 전이었을 거야. 병원에서 결과가 나왔어. 간암 중기에서 말기를 향해 가고 있다고… 이미 늦어서 길어야 1년에서 2년을 살 수 있다고… 벌을 받는 거야. 나… 한얼이한테 너무 몹쓸 짓해서 이렇게 벌 받는 거야… 은결이라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한결이에게로 보내주기로 결심한 건 그 때야. 한결이 너는 너처럼 버려진 아이는 져버리지 못 할 테니까… 악녀가 된 이상, 내 병 따윈 알리지 않는 게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겠다 싶었어. 은결이를 기르게 된 한결이 너에게 아픈 나란 부담감도 주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그 때, 경찰서에서도 그렇게 모진 악녀의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어… 그렇게라도 하면 불쌍한 은결이한테 좀 더 잘 해주지 않을까 해서… 흡…“ 수진은 긴 말을 끝내곤 다시 눈물을 흘렸다. 은별 역시 그녀의 말에 마르지 않던 눈물샘에 또 다시 눈물이 나왔다. 어쩌면, 그녀는 누구보다 자신의 아들을 사랑했을 지도 모른다. 자신의 배에서 나온 아이다. 그것도 너무도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다. 그런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나약하다. 어머니란… 자신의 아이의 행복 앞에선 나약하다. 강하다. 어머니란… 자신의 아이의 행복 앞에선 강하다. “수진씨, 그만 울어요. 이제 그만…” 말하는 은별의 눈시울이 붉다. 그런 그녀들을 바라보는 한결의 눈시울에도 점점 눈물이 고여 왔다. “미안해… 미안해… 흡… 우리 불쌍한 은결이… 우리 불쌍한 한새…” “하아, 제길!!!!!!” 하늘이 장난치는 것 같다. 기껏 찾은 희망이 간암 말기라니… 수진의 상태 또한 은결의 상태 못지않게 위독했다. 이미 죽음을 눈앞에 둔 그녀에게서 은결에게 필요한 골수를 채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암이란 고통에 이미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버린 그녀의 몸이 죽음을 당겨올지도 모른다. 수진을 찾았다는 은하의 연락을 받고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달려왔건만… 절망이다. 이제 희망이란 사라져 버리는 걸까? “뭐 이렇게 젠장 맞냐. 제기랄!!” 한결은 욕을 지껄이며 거칠게 자신의 머리를 긴 손가락으로 쓸어 올렸다. 천하의 몹쓸 여자라고 생각했던 수진 역시 자식의 아픔 앞에선 쉽게 무너져버렸다. 그녀 역시 나름대로 마음의 큰 아픔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다가 이젠 몸까지… 참회하며 흘리는 그녀의 눈물에 한결 역시 그녀를 원망하던 마음이 사라져버렸다. “수진누나, 이제 됐어요. 나 이미 예전부터 누나를 미워하지 않았어요. 한얼형은 하나뿐인 자신의 사랑을 지키다 세상을 눈 감는 것이 소원이었으니까… 너무 자신을 원망하지 말아요. 그게 한얼형의 사랑 방식이니까요.“ “은하야…” “사실, 당신에게 부탁을 하려 했어요. 골수 검사를 받아볼 수 있냐고… 하지만 역시 1%의 희망은 무리였던 것 같아요. …다른 방법 꼭 찾아서 은결이 살릴게요.” 은하는 씁쓸하게 웃으며 수진을 향해 말했다. 그의 말에 수진의 퇴색해 버린 눈에 한 순간 형형했던 빛이 돌아왔다. 어쩌면, 아이에게 주지 못 했던 사랑을 지금이라도 주라고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닐까. “나, 골수검사 받아볼래. 은결이한테 해 주지 못했던 사랑, 지금이라도 줄래.” “무리예요!! 수진씨!!!” 그녀의 말에 지레 놀란 듯 은별이 소리쳤다. 또한 한결도 마찬가지로 굳은 표정을 일관한 채 수진에게 말했다. “씨발, 너 죽게 하면서까지 은결이 안 살려.” “아니, 어차피, 내 목숨 얼마 남지 않았어. 한새 아니 은결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은결이에게 마지막으로 엄마의 사랑을 주고 싶어. 이건 내 부탁이야. 부탁해.“ 굳게 다짐한 듯 의연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강인함이 보였다. 아이를 위하며 아릿한 눈물을 짓는 그녀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사랑이 보였다. 그리고 아이에게 자신의 목숨이라도 내놓을 그녀의 모습에 어머니의 희생이 보였다. 159. [카톨릭 병원] “에잇! 왜 이렇게 결과가 느려!!” “진사랑, 산만해.” “그러는 유빈이 너도 계속 왔다 갔다 하잖아!!” “너보단 나아!!” 병실 앞에서 수진의 골수의 소량을 채취한 결과가 나오길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들의 초조하게 돌아다니며 시계만을 바라보는 모습이 눈에 띤다. 나날이 병세가 악화되는 은결은 이제 말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까지 되어버렸다. 그러니 아이들은 더욱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둘 다 시끄러워.” 티격태격하는 유빈과 사랑을 말리는 한결의 목소리에도 불안함이 실려 있었다. 그 때였다. 타이밍 좋게 그들의 곁으로 검사를 마친 은결의 담당 의사가 다가왔다. “현은결 환자, 보호자분.” “네!” 그를 기다렸다는 듯 아이들은 그의 질문에 하나같이 같은 대답을 했다. 이 녀석들, 모두 다 은결이 보호자하려고 작정을 한 사람들 같았다. 당황한 담당 의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현은결 환자 보호자분이 참 많군요. 어쨌든, 차수진양의 골수를 검사해본 결과 아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만…“ 아이들의 얼굴에 그 동안 보기 힘들었던 화사한 웃음꽃이 피기도 전에 의사의 이어지는 말은 그들의 웃음에 또 다시 훼방을 놓았다. “소량의 골수를 채취하는데도 수진양이 상당히 고통스러워했습니다. 현은결 환자에게 필요한 골수를 채취하기 위해선 상당한 양이 필요한데… 이미 간암말기로 쇠약해져버린 수진양의 몸이 견디지 못 할 것 같습니다. 거기에다 현은결 환자의 건강 상태가 아주 좋지 않습니다. 수술을 받는다 해도 성공할 지는 저조차도 의문입니다.” “씨발!!! 뭐야!!!!” 의사의 말에 열 받은 한결은 다짜고짜 그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한결아!!! 무슨 짓이야!!!”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당황한 은별이 의사의 멱살을 잡고 있는 한결을 떼어놓으려 애썼지만 그는 요지부동한 체 의사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은결이 살려내!!! 살려내라고!!! 살려내지도 못하면서 너희가 의사냐!!!!” “윽… 이… 이러시면 저희도 곤란…합니다.” “한결아, 현한결! 진정해라.” 무지막지한 힘을 주고 있는 한결의 손에서 의사의 멱살을 빼내며 태하가 말했다. 표정 없는 그의 얼굴에 조차도 이미 절망스러운 표정이 만연했지만… “하아… 은결이, 은결이… 제발 살려주세요!! 부탁 드려요. 부탁드립니다.” 눈물을 흘리며 절대 꿇지 않았던 무릎을 의사 앞에서 망설임 없이 꿇는 한결의 모습은 어느 아버지에게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강한 부성애과 슬픈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니, 정정한다. 어느 아버지라도 이 상황에서 그처럼 행동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독할만큼 그의 애처로운 모습에 모든 감정을 없애고 환자를 대하던 담당의사의 감정마저도 흔들렸다. “보호자분, 일어나시죠. 저희 의료진들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렵겠지만 현은결 환자 꼭 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의사의 눈시울도 붉고 모인 아이들의 눈시울도 붉지만, 하나같이 벌겋게 충혈 된 그들의 눈이 아름답게만 보인다. . . . 하늘에서 삼라만상을 지켜보는 별님, 달님. 모두의 마음이 하늘에 닿으면 소원이 이루어질까요? * * * [중환자실] “여기예요.” 힘겹게 골수 검사를 마친 수진은 아픈 몸을 이끌고 은결의 면회 시간에 맞춰 간호사의 부축을 받아 은하와 피아나와 함께 병실로 들어왔다. 조용하다. 숨소리마저 멎어 버릴 정도로 병실은 적막하다. “항암치료가 아이에게 많이 힘겨운 것 같아요.” 간호사의 말에 수진의 흔들리는 눈동자는 한 곳을 집중했다.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은결의 입을 감싼 산소마스크와 가녀린 작은 생명의 미약한 심장박동기의 수치가 그녀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은결아…” 나지막하게 수진의 입에서 은결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어째서 이 작은 아이에게까지 하늘은 심술을 부리는 걸까. 아직 마르지도 않은 그녀의 눈물샘에 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그녀의 부름을 들은 것일까? 곤히 잠에 빠져 꿈나라로 여행을 떠났던 은결이 힘겹게 눈을 떴다. “.......” 아이는 눈만 깜빡이며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수진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믿기지 않은 건지 연신 눈을 깜빡이던 아이가 입모양으로 말을 전했다. ‘마귀할멈이다!’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는 아이의 입모양에 수진은 슬픈 표정을 지은 채 은결이 누운 침대 옆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움찔거리는 아이는 힘겹게 발버둥을 치려 노력했지만 이미 연약해 질대로 연약해진 몸은 더 이상 은결이 움직이고 제어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자신을 보자마자 도망가려고만 하는 아이의 움직임에 수진은 결국 눈물을 떨어뜨렸다. “미안해… 흡… 미안해, 은결아… 엄마가 미안해… 이렇게 널 아프게 해서 미안해… 흡… 미안해… 한새야. 미안해… 미안해…” 홍수처럼 봇물 쏟아지듯 쏟아지는 눈물을 떨리는 손 때문에 제대로 닦지도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수진의 모습은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은결은 힘겹게 깜빡이는 눈으로 그녀의 눈물을 한참이고 쳐다보았다. 그녀의 안색이 자신보다 더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챈 영악한 아이는 그녀가 자신보다 더 큰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듯 싶었다. ‘울지 마요.’ 아이는 입 모양으로 천천히 수진을 향해 말을 전했다. 어느 새, 은결의 눈시울에도 눈물이 한 가득 고여 있었다. “은결아… 흡… 미안해… 아가야, 내 아가… 사랑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가… 엄마가 은결이 살려줄게… 흡… 아가야… 꼭 살아야 해!! 꼭!!!” 링겔을 꼽고 있는 아이의 손을 꼭 잡은 채 수진은 다짐하듯 말을 되풀이했다. “은결아… 사랑한다… 내 아가… 흐흑… 사랑해… 꼭 살려줄게… 꼭…” 진심은 통하는 것일까? 그녀의 다짐어린 외침에 수진을 향해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이 열린 것인지 은결은 산소마스크 때문에 버겁지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 은결이… 흐흑... 착하다, 착하다… 우리 아가… 한새야, 넌 꼭 살아야 해… 꼭 행복해야한다… 아가… 흡…“ 은결의 힘겨운 끄덕거림에 더욱 감정이 북받쳐 오른 것인지 수진은 슬픈 잿빛 눈동자를 가진 눈에서 더욱 더 많은 눈물을 흘려댔다. 그런 그녀의 볼에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물컹한 무언가가 닿았다. “…은결아?” 은결의 손이었다. 수진의 눈물을 닦아주는 은결의 고사리 같은 손에서 사람의 온기가 느껴진다. ‘엄마, 울지 마요.’ 아이의 입에서 수진을 향해 엄마란 소리가 나왔다. 은결은 그 작은 손으로 힘겹게 그녀의 눈물을 모두 닦아주곤 해맑게 웃었다. 160. * * * 수진의 간의 암세포가 골수 검사를 한 이후 나날이 날로 퍼져 가고, 은결의 상태도 눈에 띄게 나날이 악화되고 있기에 더 이상 전이가 되기 전에 당당 의사는 빠른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술은 일주일 후로 잡혔다. 그렇게 정신없게 수일이 빠르게 지났고, 드디어 오늘 은결이 수술에 들어간다. “은별아, 많이 긴장 돼?” “응.” 학교가 파하고 여지없이 가방을 챙기며 표정이 굳은 체 은결의 병원에 들를 준비를 하는 은별에게 아리가 다가와 넌지시 말을 붙였다. 은별은 대답할 여유조차 남아있지 않는 것인지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책가방을 싸면서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꾸 물건을 떨어뜨리는 은별이 안 돼 보였는지 아리가 차근차근 그녀의 책가방을 싸줬다. “은별아, 너무 긴장하지 마. 잘 될 거야. 은결이 강한 애잖아.” “....응. 그래. 은결이 강하니까…” 은별은 말꼬리를 흐렸다. 사실 그녀는 어젯밤부터 잠도 한 숨도 자지 못했다. 수술을 해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20%란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돈다. 그 때였다. 여자 아이들의 비명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 명문고 사대천왕 떴다!!!!!!!” “와!!!!!!!! 현한결이다!!!!!!!!” “그런데 현한결 옆에 붙어 있는 저 여자애는 누구야? 가만!! 저 여자애 현한결 약혼녀라고 떠벌리고 다니던 애잖아?! 그 강 뭐신가...” “...............” 여아들의 침 티기는 외침에 은별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에 잡힌 것은 한결의 옆에 찰싹 같이 붙어있는 예진의 모습이었다. 한결은 짜증을 부리며 그녀를 떼어버리려 안간 힘을 썼지만 어찌나 힘도 좋은지 절대 떨어지지 않고 찰싹 같이 붙어 있었다. “은별아!” “가자. 아리야.” 아리도 본 것인지 다급하게 외치는 외침에 은별은 침착하게 대답하며 교실을 나섰다. 그녀의 너무도 태연하고 평온한 모습에 아리를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은별아? 너 진짜…?” “괜찮아, 걱정 마.” 한결의 사랑은 너무도 견고해서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을 알고 믿고 있는 은별이기에 이렇게 태연할 수 있는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교문을 향해 다가가는 은별의 모습을 본 건지 한결은 화들짝 놀라 자신의 곁에 붙어있는 예진을 있는 힘껏 떼어 내며 소리쳤다. “채은별!!! 뭘 그렇게 늦장을 부려!! 얼른 안 뛰어와?” 그의 부름에 은별이 후다닥 달려 그의 너른 품에 폴싹 안겼다. 역시 한결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여자는 채은별 하나뿐이다. 그런 그녀를 꼭 끌어안은 한결은 그 자세로 예진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거 봐. 내 마누라 돌아왔다고 했지? 이제야 믿겠냐?” 콧방귀를 뀌며 당당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독기를 문 예진이 소리쳤다. “하.. 말도 안 돼... 이럴 순 없어!!! 앞으로 3주 뒤면 약혼식인데!!! 이제서 파혼한다고?!!! 말도 안 돼!!! 오빠!!! 나 5년 동안이나 오빠만 바라봤어!!! 절대 포기 못 해!!! 못 한단 말이야!!!! 채은별!!!! 떨어져!!! 한결 오빤 내 거야!!!” 그녀는 한결의 품에 안긴 은별을 떼어내려 안간 힘을 썼다. 한결은 예진의 행동에 인상을 찌푸리며 은별을 더욱 꼭 안았다. 그런 한결의 행동에 은별은 고개를 저으며 풋 웃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화가 나 씩씩대는 예진과 시선을 마주했다. “오랜만이에요. 강예진씨.” “씨발, 왜 왔어!! 왜 돌아왔냐고!! 한결오빠 그렇게 폐인처럼 만들어 놓고 왜 왔어!!” 예진은 분에 찬 듯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5년이란 세월, 짧은 세월이 아니다. 12살이란 어린 나이였지만 거리에 서서 눈부신 하늘만을 슬프게 바라보던 한결의 고혹적인 모습에 첫눈에 반한 예진은 상사병이라도 걸린 듯 한결만을 바라보았다. 그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갔고, 그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했다. “나하고 한결이의 심장엔 운명이란 붉은 실이 연결되어 있어요. 아무도 그 끈을 끊지 못 해요. 그 실 철보다도 더 견고하거든요.“ 그런데, 그의 곁에 듣지도 보지도 못 했던 채은별이란 여자가 덜컥 자리를 잡았다. 그것도 단 몇 달 만에 서로에게 사랑한다 속삭이면서… “나, 5년이나 한결 오빠만 바라봤어… 한결 오빠는 내 거라고!!! 어디서 굴러 온지도 모르는 너 같은 여자한테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시간은 중요치 않아요. 예진씨 사랑이 깊은 것 알 수 있어요. 하지만요. 정말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보내줄 수도 있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에요. 예진씨, 당신이 그럴 수 없다면 그 사랑은 집착일 뿐이에요.“ “네가 뭔데!! 네가 뭔데!!!” “씨발, 말귀 못 알아 듣냐? 이미 내 마음에 있는 건 채은별이야. 앞으로도 변할 이유도 없고 마음도 없어. 채은별 없으면 나 죽어. 단 하루도 살지 못하고 죽어. 숨도 못 쉬어. 그러니까 너도 그만 해라.“ 한결의 단호한 말에 악을 쓰던 예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미련 없이 매몰차게 은별과 함께 돌아서서 멀어지는 한결의 모습에 예진은 낙담한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부들부들 그녀의 입술이 눈물을 참는 듯 떨려왔다. “한결오빠… 한결오빠…” 넋이 나간 채 나지막하게 한결의 이름만을 웅얼거리는 그녀를 누군가가 위로하듯 따뜻한 품으로 꼭 끌어안아 주었다. “이봐요. 맹랑한 아가씨. 그렇게 울면 예쁜 얼굴 다 망가져.” “흡… 뭐야? …유빈오빠?” 그녀를 안고 토닥토닥 달래듯이 등을 쳐 주는 사람은 유빈이었다. 놀란 듯 눈물을 흘리던 예진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유빈은 애처로운 미소를 지으며 예진을 향해 나긋하게 말했다. “이제 그만 한결이 보내줘라. 너도 아프고 한결이 마음도 좋지 않잖아.” “하지만… 하지만!! 유빈오빠도 내 마음 알고 있잖아요.” “…바보야. 사랑은 말야. 꼭 가져야만 사랑이 아니야. 보내주는 것도 사랑이고 지켜봐 주는 것도 사랑이고 포기하는 것도 사랑이야.“ 유빈의 이어지는 말에 예진은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다물었다. 항상 돈만 밝히던 유빈이 이렇게 진지하게 사랑에 대해 말할 줄은 몰랐다. 마치 그는 지금 사랑의 열병이라도 앓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짝사랑이 슬픈 건 이렇게 울고 있어도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고,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어서 그런 거야.“ 천천히 눈을 감으며 유빈의 슬프게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만을 바라보는 그 사람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은 정말 가혹한 형벌이지? 하지만 말이야, 예진이 너의 짝사랑은 나의 외사랑보다 덜 아프잖아… 언제 구치 창으로 끌려들어갈 지 모르는 우리 형만 바라보고 있는 우리 형수. 한 평생 우리 형만 바라보고 살 우리 형수를 사랑해버린 나는 어떡하냐. 우리 형 구치소 들어가면 졸도할 우리 형수 때문에 내 마음은 찢어진다. 넌 그래도 한결이에게 사랑한다 외치지만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유빈오빠...” “앞만 보고 걷지 마라. 가끔은 쉬어주고 해야지. 힘내라.” 유빈은 예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빙긋 웃어 보이며 먼저 간 한결의 뒤를 따랐다. 예진은 그가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그의 뒷모습만을 바라보았다. 형수를 사랑한다… 형수를… 절대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한다. 구치소에 들어갈 수도 있는 형을 빼낼 수 있는 방법이라곤 돈뿐이니까… 그래서 그렇게 앞도 뒤도 안 보고 악착같이 돈에 집착한 거야…? 바보 같다. 당신도… 정말 바보 같아. 그녀는 다리에 힘이 빠진 듯 천천히 자리에 주저앉아 중얼거렸다. “어쩌면 좋지. 하늘아, 난 짝사랑만 할 운명인가 봐. ................내 새로운 사랑도 쉽지 않을 것 같아.” 소설제목 :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작가명 : +메시아+ E-mail : darksorcery@hanmail.net 연재장소 : 새싹소설① -10대 총편수 : 총 162편 완결 장르 : 연애소설 -------- 출처 : 인터넷소설닷컴 (http://cafe.daum.net/youllsosul) 팬까페 : http://cafe.daum.net/msacafe 댓글 0 개 이 글을...(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최신목록 목록 윗글 아랫글 '　　　[퍼온소설]' 게시판의 다른 글더보기 제목 닉네임 날짜 [시작▶] [판타지] 금 구슬에 나의 영혼을... < 01 ~ 10 >' 나린소주인 05.11.21 [완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161 ~　完 >' 나린소주인 05.11.28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141 ~ 160 > 나린소주인 05.07.11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121 ~ 140 >' 나린소주인 05.07.11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101 ~ 120 >' 나린소주인 05.07.11 카페에서 공개한 게시글입니다.'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키워드로 검색한 게시글 더보기 서비스 약관/정책권리침해신고카페 신고이용약관카페 고객센터검색비공개 요청 Copyright (c) Daum Communications Co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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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 수진! Are you crying?!" 은하의 부탁으로 수진의 상태를 보기 위해 대기실 안으로 들어본 피아나가 그녀의 눈물에 놀란 듯 그녀에게로 달려오며 소리쳤다. 수진은 피아나의 목소리에 살짝 고개를 돌려 자신의 곁에 서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이 참 선하다. 그런 그 두 눈엔 은하만을 한 가득 담고 있었다. “…은하를 사랑해?” 수진은 젖은 목소리로 피아나에게 물었다. 피아나는 잠시 갑작스러운 그녀의 질문에 놀란 듯 주춤했으나 이내 솔직하게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수진은 피식 웃으며 피아나의 손을 꼭 잡아주며 말을 이었다. “많이 힘들 거야. 많이… 그래도 끝까지 은하를 사랑해줘. 나처럼 동경을 사랑이라 착각하는 바보같은 짓은 하지 말고... 그 아이는 다른 이들은 너무도 자상하게 보살피면서 정작 자신은 돌보지 않아. 외롭고 슬프고 고독한 사람. 그게 채은하야. 그러니까 당신이 많이 사랑해줘.“ “..수진씨..” “피아나라고 했지? 부탁 하나만 할게.” 수진은 소매로 눈물을 닦고 진지한 시선으로 피아나를 바라보았다. “나 죽으면… 내 각막 은하한테 줘. 내가 뺏은 눈이야. 이제 돌려줘야지. 내 잿빛 눈동자 색깔이 은하에게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진심을 가득 담아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여리고 슬프다. 수진의 진심 어린 말에 피아나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수술을 시작하기 위해 간호사들이 수진을 데리러 왔다. 수진은 살짝 피아나에게 고개를 끄덕이곤 그대로 간호사들에 의해 수술실로 데려가졌다. 잠시 동안 마주친 눈동자였지만… 피아나의 눈엔 수진의 잿빛 눈동자가 어느 누구의 눈동자보다도 아름다워 보였다. * * * [수술실] “현은결 환자, 차수진 환자 모두 마취제를 투여하겠습니다.” 간호사는 잔뜩 긴장한 듯 뻣뻣하게 수진과 은결을 향해 말하며 주사를 놓았다. 이제 10분 뒤면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될 두 사람이다. 은결의 옆 수술대에 누운 수진은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은결 역시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은결아… 꼭 살아야한다…” 수진은 은결의 조그만 손을 꼭 잡았다. 마치 마지막 인사인 것처럼… 그녀의 애잔한 눈빛에 은결 역시 손에 힘을 주며 마지막으로 입모양으로 말을 전하며 잠이 들었다. ‘엄마… 사랑해요.’ . . 수술실에 실려 온 은결은 이미 마취제의 위력으로 잠에 빠져있었다. 수진 역시 마취제를 맞고 어쩌면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할 잠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간호사들은 수시로 은결과 수진의 상태를 검사하며 빠르게 상황을 보고 했다. “선생님, 큰일 났습니다. 현은결 환자의 백혈구 수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어요.” “선생님, 현은결 환자의 심장 박동이 점점 떨어지고 있어요!!” “차수진 환자의 심장 박동 또한 불안합니다!” “후- 두 사람 모두에게 항암제 투여해요!! 수술이 시작될 때까지는 버텨야 합니다!!” 간호사들의 가냘픈 외침에 은결의 담당 의사는 빠르게 소리쳤다. 그런 담당 의사를 보다 보다 더 이상은 안 되겠던지 수술에 동참한 한 의사가 말도 안 되는 수술을 고집하는 그를 설득하기 위해 말을 꺼냈다. “김 선생님, 차수진 환자의 골수 채취는 불가합니다. 건강한 사람도 참기 힘든 고통입니다!! 이건 정말 차수진 환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입니다! 수술을 해도 현은결 환자가 살 확률은 20%입니다!! 오히려 차수진 환자 쪽이…“ 간호사들의 질책 어린 눈망울에 젋은 의사는 뒤에 이을 말을 흐리고 말았다. 은결의 담당의사는 흘러내린 안경을 치켜 올리며 젋은 의사를 보던 시선을 돌려 진지한 시선으로 수술실 한 구석의 벽에 걸린 십자가를 바라보았다. 그는 한참이고 그 십자가를 바라보다 천천히, 그리고 무게 있게 말을 꺼냈다. “이 선생. 나는 그 아이에게 기적이란 것을 걸어보고 싶네. 설사 하늘이 져버린다 해도 말일세, 오랜만에 그 기적이란 것을 믿어보고 싶다네.” * * * 한편, 수술실을 수술 대기실의 유리창으로 지켜보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은 착잡했다. 은하와 한준의 부탁으로 수술 장면을 지켜보게 되었지만 여간 곤욕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싸움을 할 때면 수도 없이 봐 온 피지만 수진과 은결에게서 피가 보일 때마다 하나같이 심장이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 드는 아이들이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자꾸 몰렸다. “많이 고통스럽고 아픈가 봐.. 수진씨...” “....하아, 젠장....” 마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통스럽게 일그러지는 수진의 얼굴에서, 숨조차 쉬지 않는 듯 보이는 은결의 창백한 얼굴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보였다. “하느님, 제발… 제발…” “제발, 살려 주세요… 제발…” 지켜보던 아이들은 하나 둘 손을 모아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제발, 이 기도, 이 소원이 하늘에 닿길 바라면서… * * * 6시간에 걸친 긴 수술이 막바지로 들어왔다. 결과는 아무도 예측을 할 수가 없었다. 숙연한 분위기에서 의사들과 간호사들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메스.” “여기 있습니다.” 신중하고 꼼꼼하게, 어디 하나 잘못된 것은 없는지 살펴보며 수술에 임하는 의사들의 눈썰미가 날카롭다. 침묵과 고요만이 수술실 안을 감싸고 있다. 그러던 중, 심장 박동기를 지켜보고 있던 간호사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이 선생님!! 차수진 환자의 심장 박동수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어요!!” “뭐?!!” “이 선생님!! 크.. 큰일 났어요!!! 현은결 환자의 골수가 차수진 환자의 골수에 이상 거부반응을 나타냅니다!! 이대로라면 차수진환자도 현은결환자도 생명이 위험합니다!!!! “현은결 환자!!! 차수진 환자!!!!!!” . . . 좁은 수술실 안에 의사의 절규 소리가 가득 하다. 162. [완결] [3년 뒤....] 아무리 가을이라지만 아직 찬바람도 나지 않았건만 목 위까지 덮어버리는 새하얀 레이스가 주렁주렁 달린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천사같이 아름답고 성숙해진 여인. 바로 은별이다. 벌써 그녀가 오늘 결혼식을 올린다. 그녀는 앞서가는 아리를 따라가기 위해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한 움큼 손에 쥐고 열심히 걸음을 옮겼지만 역시 아리의 빠른 걸음을 쫓아가기엔 역부족이었다. “야!! 채은별!!! 늦었어!!!! 너 화장 안 할 거야?!” “씨이, 아리야, 나 힘들어!! 드레스가 자꾸 거치적거린단 말이야!!!” “아우!!! 현한결, 그 자식은 좀 파인 드레스가 어디가 어때서!!! 그렇게 난리 생부르스를 떠냐고오!!! 차암~ 센스도 죽이지. 이렇게 레이스가 치렁치렁 달린 걸 고르냐. 나 참, 별나다니까.“ 3년 전보다 더욱 세진 무지막지한 불굴의 파워로 은별을 신부대기실까지 끌고 들어와 앉혀놓고 한결에 대한 불만을 터트리는 하얀 정장을 입은 아리가 보인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한참 대학을 다니며 배우는 아리가 천천히 화장품을 꺼내 은별의 뽀얀 얼굴에 신부 화장을 해주기 시작했다. 3년이란 세월이 길긴 길었나 보다. 철부지 소녀였던 아이들은 어느덧 이렇게 성숙한 분위기를 뿜어내며 변해 있었다. “드레스, 예쁘기만 한데 뭘! 민아리, 너 지금 한결이 없다고 한결이 욕하지 마!! 그러는 아리, 너 진사랑이랑 결혼할 때 드레스가 얼마나 유아틱했는 줄 알아? 진사랑, 그 녀석 여전히 유아스러운 것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어떻게 걘 세월이 흘러도 그렇게 수준이 낮냐. 메롱이다~” “뭣이!!!!! 채은별~ 너 식전에 엉덩이에 불나게 나한테 맞아볼래?!” “민아리. 뭐가 어쩌고 저 째?” 갑작스럽게 들리는 중저음의 목소리에 아리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신부 대기실 문 쪽으로 뻣뻣한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엔 멋들어지게 턱시도를 입고 띠겁다는 듯 눈썹을 꿈틀대는 한결이 서있었다. 그런 그의 와인 빛 색깔을 내는 윤기 흐르는 머리칼이 오늘따라 불빛에 비춰져 반사되면서 더욱 오묘하면서도 멋들어지게 보인다. “아.. 아니, 현한결… 내.. 내 말은...” “병아리. 오늘 진사랑한테 결혼식 끝나고 약간 손 좀 봐 주겠다고 전해라?” “뭐~ 싫어!! 한결아!!! 너무해~ 왜 매일 내가 매타작을 당해야 하는 건데!!!” 어느 새, 아리를 찾아 신부 대기실로 온 사랑, 그의 품에 그와 똑 닮은 그의 갓 돌 지난 아들 ‘이랑’이 안겨 잠들어 있었다. 까만 세미정장까지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사랑이지만 한결의 무시무시한 말을 들었는지 3년 전과 똑같이 징징대며 그에게 소리쳤다. “진사랑. 여전하기는. 여기가 장례식장이야? 곡을 하게.” 사랑의 징징대는 소리를 듣고 달려온 유빈이 그에게 한 마디 추파를 던진다. 3년이란 세월에 유빈 역시 많이 변해있었다. 회색 정장을 입은 부드러운 그의 얼굴에서도 어느새 어른의 성숙미가 물씬 풍겼다. 사랑의 머리에 꿀밤을 주는 유빈의 뒤로 낯익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빈오빠, 혼자 그렇게 가기가 어디 있어요!!!” “강예진! 너 또 따라왔냐?!” 여자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유빈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뒤에 서 있는 예진을 바라보았다. 예진 그녀 역시 예전에 그 앙칼진 모습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한 남자만 바라보는 성숙하고 기품 있는 여인으로 변해 있었다. 벌써 3년째다. 한결을 포기한 예진이 유빈을 쫓아다닌 것은. “유빈오빠, 나 떼어버리고 자꾸 도망가면 재미없어요.” 예진은 살짝 어설프게 뒷걸음질 치는 유빈을 한 번 강하게 째려주고는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은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머! 은별언니! 너무 예뻐요! 나는 언제 이렇게 드레스를 입어보나 몰라. 하여튼 유빈오빠도 징그럽다니까. 결혼 진심으로 축하해요! 언니!” “응. 고마워, 예진아. 너도 얼른 유빈이 붙잡고 결혼해야지. 제가 저렇게 빼도 예진이 너 없으면 막 찾고 돌아다닌다니까. 웃기는 녀석이야.” “뭐?!! 채은별!!! 내가 언제!!!” 은별의 폭언에 유빈은 놀란 토끼마냥 눈을 크게 뜨고 소리쳤다. 그런 그의 모습에 과거의 모든 아픔들은 잊고 어느 새 친해져버린 예진과 은별은 서로를 바라보며 살풋 웃음을 터트렸다. “흐응, 다들 여기서 모여서 뭐해?” “그러게, 현한결 넌 여기서 뭐해. 하객들 안 보고?” 신랑과 신부가 보이지 않자 직감적으로 신부 대기실로 찾아온 겨울과 재아가 우르르 몰려있는 그들을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을 꺼냈다. 한결은 하객 따윈 필요 없다는 듯 은별의 옆자리를 지켜서 있었고,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재아를 향해 강력한 경계의 시선을 내뿜었다. “쯧쯧, 짝퉁씨. 뭘 그렇게 꼬라보시나? 그렇게 안 봐도 돼. 현이형 못 온대.” 한결이 자신을 노려보는 이유를 당연히 알고 있다는 듯 재아가 말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경계의 눈빛이 풀어지는 한결의 눈. 이런 단순한 녀석. 그나저나 재아의 응당 당연하단 말에 놀란 것은 은별이었다. 그녀는 화장을 하던 고개를 돌려 재아를 바라보며 다급하게 말을 꺼냈다. “왜? 현이 바쁘대?” “엉, 형 회사일 때문에 바빠서 한국에 들어올 수가 없대.” 재아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마쳤다. 현이가 독일로 떠난 지도, 한국을 벗어난 지도 벌써 3년째, 사랑의 아픔을 잊기 위해 분명 공부와 일에만 몸을 맡겼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22살이란 이른 나이에도 불구하고 독일에서 가장 잘 나가는 아우디 회사에 이사자리로 당당하게 앉아 있는 것이다. “참, 결혼 축하한다고 전해 달래. 현이형이.” “아, 응…” 재아의 말에 은별 역시 조금은 서글프게 웃어보였다. 아직도 일까? 아직도 그녀를 친구라 부를 자신이 없는 것일까? 조금은 숙연해진 분위기가 풍기고 있을 그 때였다. “어? 다들 여기 모여 있었구나?” “엄마!!!! 아빠!!!!!” 잿빛 눈동자가 생기를 얻어 싱그럽게 빛나는 은하와 여느 때처럼 묵묵하게 그의 곁을 지키는 피아나가 신부 대기실로 들어왔고, 그리고… … 어느새 훌쩍 자라버린 은결이가 팔을 벌리며 은별에게로 달려 왔다. 그런 은결을 은별은 대견스럽다는 듯 꼭 끌어안아주며 살짝 이마에 입을 맞췄다. “우리 은결이, 외삼촌이랑 병원 잘 다녀왔어?” “헤헷, 응응. 엄마! 의사선생님이요, 은결이 너무너무 건강해져서요. 이제 재발할 위험 없대요~! 은결이 이제 안 아파요~ 헤헷. 은결이 엄마랑 아빠랑 딴따따따~♪ 결혼식 하는 것 보려고 병원에서부터 삼촌이랑 피아나 누나랑 이렇게 서둘러 뛰어왔어요! 엄마, 너무너무 예뻐요!!!“ “은하오빠... 정말이야?!” 은결의 말에 은별은 얼굴에 한 아름 웃음을 담고 은하에게 물었다. 은하는 그녀의 물음에 온화한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3년이란 힘든 세월 끝에 결국은… 결국은 은결이가 해낸 것이다. “이제 은결이 정말 완치된 거구나!!!!” 은하의 끄덕거림에 대기실에 있던 유빈도, 재아도, 사랑도, 아리도, 그리고 한결도 모두 기쁨에 겨워 포복절도하며 소리쳤다. 그리고 은별 역시 믿기지 않다는 듯 눈물까지 글썽이며 중얼거렸다. “수진씨… 수진씨… 고마워요. 우리 은결이 살려줘서…” 그녀의 중얼거림에 대기실은 다시 한 번 숙연해졌다. 수진, 그녀는 결국 3년 전 수술 날, 골수 채취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견딜 수 없는 아픔과 고통으로 찡그렸던 얼굴에 어느덧 미소를 품고… …은결에게 자신의 남은 생명을 모두 주는 듯, 아이의 작은 손을 꼭 잡은 체 너무도 평안한 모습으로… 그 순간, 은결의 이상적으로 높아지던 은결의 백혈구 수치가 정상을 향해 떨어지며 살 확률이 20%밖에 되지 않았던 수술은 극적으로 성공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아이를 향한 사랑과 아이의 살겠다는 강한 의지의 결합으로… 하지만 2~3년 동안 재발한 위험이 없잖아 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며 검사를 하던 중 이젠 재발 위험까지도 모두 사라졌다는 것이다. “고마워요… 정말, 너무 고마워요… 은하오빠에게 각막까지 주고 가서…” 수진의 마지막 부탁이었던 그녀의 각막을 은하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하늘로 간 수진이 보필한 까닭일까? 각막 시술은 매우 성공적이었고, 어느 덧 은하의 눈에는 형형하게 빛나는 잿빛 눈동자가 자리잡게 되었다. 어찌 보면 언밸런스한 듯싶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빨려 들어갈 듯한 빛을 띠는 잿빛 눈동자가 은하에겐 너무도 잘 어울렸다. “....어쩌면… 그녀가 기적을 만들어 준 것일지도 모르지.” 은하가 은별의 말에 이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사실, 은결의 죽음을 이미 느끼고 있던 은하가 미래를 틀기 위해 수진을 찾았다. 하지만 하늘은 무심하게도 그녀에게 간암말기란 병을 쥐어 주었다. 수진의 죽음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그녀의 희생으로서 은결을 살릴 순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사랑이… 어머니의 사랑이 기적을 만든 것일까? “엄마, 울지 마요. 은결이 큰 엄마 예쁜 별님이 되었을 거예요.” “맞아, 채은별!! 너!!! 울지마!!! 울면 안 돼!!! 화장 공들여서 한 거야!!!” 은결의 말에 이어 눈물을 떨어뜨리려고 하는 은별의 눈물을 지성스럽게 닦아주며 아리는 호들갑을 떨었다. 나름대로 아리가 은별을 위로하는 방법 중 하나인 것을 아는 은별은 알았다는 듯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픽 웃었다. “피- 알았어. 기지배야. 안 울게.” “키득~ 별딱지가 울면 청개구리 된다~ 눈이 퉁퉁~ 얼굴도 퉁퉁~” “뭐?! 진사랑!! 너 오늘은 한결이한테 맞는 게 아니라 나한테 먼지 나게 맞아볼래?!” “사양하겠어!! 별딱지~ 참! 그나저나 태하는 한참 비행기 타고 가고 있겠다. 오전 12시 비행기라고 했지? 부럽다~ 태하는 해외여행도 가고~ 난 아리랑 신혼여행도 제주도로 갔는데~ 돈도 많아~!!!” 사랑은 장난스럽게 훌쩍이는 척 하며 모두에게 소리쳤다. 그 소리에 한결은 띠겁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사랑의 말에 말을 이었다. “그 녀석은 어떻게 친구 결혼하는데 훌쩍 가 버리냐. 그것도 지 생일날.” “섭섭하냐? 그래도 어쩔 수 없잖냐. 아버지 찾으러 간대잖아~ 그리고 비행기 표도 이미 사버렸다는데 어쩔 수 없지 뭐. 무를 수도 없고.” 섭섭해 하는 모습이 확연하게 보이는 한결의 모습에 유빈이 달래듯이 말했다. 많이 섭섭하겠지. 하긴, 태하는 가장 믿고 가장 아꼈던 친구이니 말이다. 유빈은 한결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그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곤 한 마디 덧붙였다. “사내 녀석이 삐지면 첫날밤 일 못 치룬다.” “뭐?! 신유빈!!!!!” 한결에게 혀를 살짝 내밀곤 대기실 밖으로 도망가는 유빈을 붙잡으러 한결이 뛰쳐나가는 모습을 보며 대기실 안에 있던 아이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앞으로는 행복들로만 가득하겠지. (댕- 댕-) 어느 덧 시간이 흘러 오후 2시를 가리켰다. 앞으로 10분 후면 한결과의 결혼식이 시작된다. 대기실에 걸려있던 자명종이 2시를 가리키는 종을 울리는 순간, “어..?” 은별과 은하의 두 눈에서 갑작스럽게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왜 눈물이 난건지는 모르겠다. 그저 자신들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나왔다. 동시에 눈물을 흘리는 그들을 보며 지켜보던 아이들 중 사랑이 놀란 듯 소리쳤다. “뭐야? 은하형이랑 별딱지 눈물 연기 해?! 왜 동시에 눈물을 흘려?!” “은별언니, 한결오빠랑 결혼하는 게 그렇게 감동이야?!” “은하형, 은별누나 결혼하는 게 그렇게 좋아서 눈물까지 나오는 거예요?” 사랑, 예진에 이어 재아까지…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는 두 남매를 보며 한 마디씩 장난스럽게 말을 날렸다. 자신들도 왜 눈물을 흘린 것인지 이유를 모르는 은별과 은하는 그저 알 수가 없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만 갸웃거렸다. “그나저나 다들 여기에 있을 거야?! 얼른 객실로 들어가!! 곧 결혼식 시작이야!!! 은별아, 너 덜렁거리지 말고 신부 입장할 때 절대 넘어지지 말고!! 알았지? 부케는 우선 급한 우리 예쁘고 착한 피아나 언니한테 던져!!!!” “에엣?!” “뭐?!! 아리언니!! 나도 급하단 말이야!!!!” 아리의 말에 놀란 듯이 눈이 커져 버린 피아나와 자신이 먼저라고 주장하는 예진. 그들의 모습에 또 다시 아이들은 크게 웃음을 지으며 객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은하는 신부의 마스코트를 해 주기 위해 신부 입장을 준비하는 은별의 곁에 섰다. 어느 덧 자라 이렇게 결혼에까지 도달한 은별이 대견스럽기만 하다. “은별아.” “응? 오빠?” “오빠는 네가 정말 대견스럽다. 꼭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알았지?” “헤헷, 당연하지.” 은별은 은하를 향해 환히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였다. 그래, 은별아. 너는 꼭 행복하렴. 오빠가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게. 우리 예쁜 동생 눈에서 절대 눈물 나오지 않게 지켜봐줄게. 사랑한다. 사랑한다. 이제는 바라보기만 해야 될 내 사랑아. “신부 입장이 있겠습니다! 신부는 나와 주시죠!” 이윽고, 사회를 보는 유빈의 명랑한 목소리가 대기실로 들려왔다. 은하는 빙긋 웃으며 자신의 팔짱에 팔을 낀 은별을 천천히 이끌어 식장으로 들어갔다. 한 발짝, 한 발짝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은별의 팔은 어느 덧 한결의 팔로 옮겨졌다. 은하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면서 한결을 향해 조그맣게 말했다. “은별이, 행복하게 해 줘라.” “알았습니다. 형. 걱정 마세요. 이 세상 무너지는 날까지 함께 있을 겁니다.” 한결은 걱정 말라는 듯 보기에도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은하가 하객 석으로 물러나고 은별과 한결이 조심스럽게 주례 앞에 섰다. 이제 둘은 부부란 이름 아래 은결과 이후에 낳을 아이들과 평생을 함께 지낼 것이다. 행복하게… 서로를 사랑하며… 서로를 아끼며… “신랑 현한결군과 신부 채은별양의 축복 받은 결혼식을…” . . . .............안녕… ..................안녕… . .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검정색 선글라스를 꼈음에도 불구하고 귀티 나는 수려한 외모가 눈에 띠는 말끔하게 검정색 정장을 입은 한 남자. 현은 애처로운 시선으로 한참동안이나 발을 떼지 못하고 행복해하는 그들을 바라보다 이내 결혼식장엔 발도 들여놓지 않은 채 발걸음을 돌리며 허공을 향해 중얼거렸다. “행복해라… 채은별… 아직도 사랑하는 나의 슬픈 운명아… 안녕… 안녕… 내 심장아… 오늘부로 너를 향해 뛰는 내 심장 …깊은 곳에 묻어버린다. 내 어긋난 운명아, 다음 생애엔 말이다… 불쌍한 내 심장 건재 좀 해 줘라.” 안녕… 안녕… 이제는 정말 안녕이다… * * * . . [오전 11시 30분, 인천 국제공항.] “오전 12시 독일행 비행기를 타실 분들은 4번 게이트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낭랑한 안내원의 목소리가 공항 한 가득을 메운다. 태하는 안내원의 목소리를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움직였다. 3년이 지난 지금, 그도 많이 변해있었다. 우울한 빛을 띠는 눈은 그대로였지만… …아마 지금쯤 아이들은 한결의 결혼식 때문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그는 애꿎은 가방의 손잡이를 이리저리 만지며 초조하게 게이트 앞에 줄을 섰다. 작별인사라도 제대로 하고 올 것을 괜스레 후회가 된다. “하아… 마지막일지도…” 요 며칠을 똑같은 꿈을 계속 꾸었다. 심장병을 앓는 어느 소녀와 그녀의 아버지가 다급하게 비행기 표를 끊었지만 수술 시간에 맞춰 가기는 턱없이 시간이 모자랐다. 결국 급한 아버지는 딸의 비행기 표만이라도 사람들에게 바꿔달라고 애원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같이 매몰차게 외면하고 결국 그는 태하 앞에 까지 오게 된다. 꿈속에서 태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의 3등석 1시행 비행기 표와 자신의 1등석 12시행 비행기 표를 망설임 없이 바꾼다. 그리고 1시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태하는… “…바보같이, 꿈일 뿐인데…” 태하는 애써 머리를 흔들며 자신의 표 확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였다. 그의 뒤쪽으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딸아이의 수술이 급합니다. 부탁드려요!! 부탁드려요!!!” “아- 이 아저씨가 정말!!! 3등석 표랑 1등석 표랑 바꾸자는 게 말이 되요!! 일 없으니까 그냥 그 비행기 타고 가세요!!! 정말 별꼴을 다 보겠네!!!“ “제발, 제발 부탁드려요!! 딸아이… 이번에 수술 받지 못하면 살 수 없어요!!! 제발!!” 태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울며불며 아이를 품에 안고 냉담한 사람들에게 사정을 하는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남자의 얼굴을 본 순간 태하는 자신의 비행기 표를 손에서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똑같다. 꿈에서 본 남자의 얼굴과 똑같다! 데자뷰(Dejavu). 남자는 낙담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다 태하를 보곤 놀란 듯 눈이 커지더니 서서히 뭐에 홀린 듯한 표정을 일관한 체 그를 향해 다가왔다. “청년은…” 이 남자 역시 태하와 같은 꿈을 꿔왔던 것일까? 커진 남자의 동공에서 당혹감과 놀라움이 비춰졌다. ....운명일까? “당신의 아이의 얼굴을 잠시 볼 수 있겠습니까?” 태하는 침착하게 놀라워하는 남자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품에서 괴로워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태하는 희고 고운 피부가 아픔에 질려 창백해 질대로 창백해진데다가 보랏빛으로 물들어져버린 여자 아이의 입술을 보는 순간 은결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는 가픈 숨을 내쉬며 힘겹게 눈을 떠 태하를 바라보았다. 다갈색의 예쁜 눈을 가졌다. 어쩌면… 어쩌면… 이 아이는… “이름이 뭐니?” 태하는 고통으로 헐떡헐떡 숨을 몰아쉬는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앵두 같이 작은 입술을 달싹거리며 힘겹게 말을 뱉었다. “채이별…” “이별… 이별… 예쁜 이름이구나. 이별아… 아저씨가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 아이는 눈을 깜빡거리며 태하를 힘겹게 쳐다보았다. 바라보는 아이의 큰 다갈색 눈이 영락없이 은별을 닮은 듯 보였다. 그런 아이의 작은 손을 자신의 손으로 펴주곤 태하는 자신의 목에 걸려 있던 두개의 팬던트 중 하나를 그 아이의 손에 쥐어주었다. “꼭 살아주렴. 꼭. 약속할 수 있지?” 아이는 태하의 당부 어린 부탁에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에 의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의 힘은 없지만 확신 어린 끄덕거림에 태하는 안심이라는 듯 빙긋 웃으며 자신의 1등석 비행기 표를 망설임 없이 아이의 아버지에게 건넸다. 아이의 아버지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망설임 없이 확고한 표정을 한 태하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연신 꾸벅거리며 눈물을 떨어뜨리며 아이의 비행기 표를 태하에게 건네곤 힘겹게 눈물 섞인 말을 중얼거리며 자리를 떴다. “…당신 대신 아이를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민태하씨.” ........................................ ................................................................. 1시행 비행기에 올라탄 태하의 표정은 암울하면서도 조금은 기뻐보였다. 비행기는 이륙을 시작했고 서서히 창공을 향해 날개를 뻗었다. 이윽고, 하늘로 이륙한 비행기는 서서히 독일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젠 정말 안녕이다...” 태하는 하늘의 구름들을 바라보며 슬프게 중얼거렸다. 시계의 바늘이 1시 55분을 가리킨다. 이제 곧… 이제 곧… “이게 뭐야? 무슨 타는 냄새 나는 것 같지 않아?” “어머!!! 여.. 여보!! 비행기 날개에 불이!!!!” “엄마!!!!!!!!!!!!!!! 아아아악!!!!!!!!!!!!!!!!!!!!!!!!!!!!!” 비행기 날개에 불이 붙었다. 사람들은 겁에 질려 소리를 지르고 승무원들 역시 두려움에 질려 소리를 질렀다. 비행기가 사정없이 흔들리더니 불에 붙은 날개 한 쪽이 떨어져 버리면서 귀가 찢어질 듯한 굉음을 내기 시작하면서 점점 고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삐- 삐-!!!” “크.. 큰일 났습니다!!! 비행기 엔진에 불이 붙었습니다!!!” “어.. 어떻게!!! 불이 빠르게 옮겨 붙고 있어요!!!!” “뭐야!!! 준비된 낙하산은 몇 개나 되?!!!” “20개도 채 되지 않습니다!!!! 고.. 고도가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젠장!!!!!!!!!!!!!!!!!!!!!!!!!!!!” “사람 살려!!!! 사람 살려요!!!!!!!” 이미 때는 늦었다. 소리를 지르며 살려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안타깝다. 태하는 고개를 한 번 저으며 중얼거렸다. “다들 내가 12시행 비행기를 탄 줄 알고 있으니 내 죽음을 알리는 없겠지? … …그래, 그 아이 울 일 없을 거야.......“ 태하는 씁쓸하게 웃으며 자신의 목에 걸린 팬던트를 열었다. 익숙한 멜로디가 풍겨져 나오는 그 팬던트 안에는 3년 전 자신의 생일에 은별과 찍었던 스티커 사진이 자리 잡고 있었다. “.....큭, 채은별. 나도 바보 같다...? 안 그러냐?” 서서히 땅을 향해 추락하는 비행기… 서서히 끝을 향해 추락하는 그의 목숨… “넌 모를 거야. 아닌 넌 몰라야 해.” 항상 태양만을 바라보던 해바라기처럼 한결 만을 바라보던 은별, 그리고 태양의 그림자처럼 그녀의 뒤에서 그녀의 아픔만을 바라보던 태하. 어느 덧 자신도 모르게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를… 우연이 아니다. 아니, 하늘이 정해준 것이다. 한결이 사랑하는 은별을, 한결의 그림자인 태하 역시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친구라 생각하며 믿고 있는 그녀를 져버릴 수 없었다. “…그림자 사랑이란 것 참 지독하다. 짝사랑이건 외사랑이건 아파도 다들 자신이 원해서 하는 사랑이잖아. 내 사랑은 이미 정해져 버렸어… 빛이 따라가는 대로.“ 활활 불에 타오르는 비행기의 고도는 점점 땅을 향해 추락했다. 태하는 그 동안에도 사진 속 은별의 얼굴을 마치 진짜 은별의 얼굴인 것처럼 소중하게, 너무도 소중하게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죽기 전에 아버지를 만나보고 싶었다. …만나서 한 번 물어보고 싶었다. 다음 생애에도… 당신이 천년을 기다려온 사랑을 사랑할 수 있냐고… 설사 이번 생애에서처럼 그림자 사랑으로 그녀를 사랑할 수 있냐고…“ 순간 태하의 중얼거리던 목소리가 생각에 잠긴 듯 끊어졌다. 불이 붙은 창문 밖으로 땅이 보인다. 힘겹게 마지막 말을 중얼거리는 그의 말을 끝으로 비행기는 땅과 부딪히고 말았다. “하… 물어보나 마나지. 분명 사랑할 것이라고 대답할 테니까…” (콰아아아앙!!!!!!!!!!!!!!!!!!) 땅과 충돌한 비행기는 2시를 가리키는 태하의 시계의 알림 소리와 함께 폭발하는 커다란 굉음과 사람들의 비명 소리에 산산이 부서졌다. . . 산산이… 불과 함께 파편을 뿌리며… ................................................... ................................................................... “크윽... 쿨럭... ... 다음 생애라도... 아니... 다음 생애가 안... 된다면.... 그.... 다음... 쿨럭... 생애라도...... 나..... 한 번만.... 바라봐.... 주면.... 안 .... 큭.. 되냐...“ 활활 타오르는 비행기 주변에 널브러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피투성이가 된 남자는 자신의 손에 쥔 팬던트를 끝까지 놓지 않으며 가냘프게 이어진 숨을 몰아쉬며 끊길 듯 위태롭게 말을 이었다. ‘우와, 그렇게 웃는 거 처음 보네.. 웃으니까 훨씬 어울린다!’ 숨을 놓기 전 그의 귓가에 오래 전 들었던 말이 맴돌았다. 웃는 게 어울린다… 웃는 게… 남자는 순간 피로 덮여 흉물스럽게 일그러진 얼굴에 웃음을 지었다. “....지...금도... 웃는..게... 어..울...리냐....? ..............쿨.....럭.. ........................채...은...별... 사...랑...한...............다............” . . . 그의 마지막 말과 함께 하얀 나비가 애절한 춤을 추며 하늘을 향해 날아올라갔다. 남자의 팬던트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하게 하늘을 울리는 멜로디와 함께… “......그렇게 허락된 하루라면.... ...내일이 나에겐 없다 해도.... .............. ...... ...................웃으면 눈감을게.“ -The End- ---------------------------------------------------------------- 드디어 육아일기가 완결입니다^^ 에필로그랑 번외를 빼면 말이죠~ 하핫. 결말이 마음에 안 드실수도 있지만 제가 생각했던 결말은 이것입니다. 해피와 새드의 결합이죠. 웃음을 드리면서도 눈물을 드리는^^ 태하는 제가 아끼던 캐릭터 중 하나인데 가슴이 아프네요.. 1년 반이란 긴 세월을 쓴 육아일기를 이렇게 완결내니 기분이 묘하군요. 육아일기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요새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부모에게 버려지는 아이. 그리고 그런 아이를 키우며 같이 성장해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철부지 아이들이 자신만의 정의를 찾아가면서 보여주는 사랑과 희생, 어머니와 아버지의 끊임없는 사랑도요. 친동생을 사랑하는 은하의 금단의 사랑, 맹목적인 사랑에 의해 현이의 집착하는 사랑,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하의 그림자 사랑까지… 사회에서도 아마 일어나는 사랑들이겠죠^^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제 소설에서도 마땅한 해결책은 없지만^^; 자신의 의지로 극복해 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잘 표현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자.. 길고 길었던 육아일기의 연재는 여기서 끝을 맺습니다. ※에필로그와 번외는 팬카페에만 쓸 예정입니다... 그 동안 함께 육아일기를 사랑해주시며 울고 웃었던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사랑해요! 여러분!!! 소설제목 :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작가명 : +메시아+ E-mail : darksorcery@hanmail.net 연재장소 : 새싹소설① -10대 총편수 : 총 162편 완결 장르 : 연애소설 -------- 출처 : 인터넷소설닷컴 (http://cafe.daum.net/youllsosul) 팬까페 : http://cafe.daum.net/msacafe 댓글 12 개 이 글을...(0) S2놀자S2 으앙!! 너무너무 슬퍼요 정말.. 이렇게 다른 소설 이후로 이렇게 가슴 뛰는 소설은 오랜만이예요 ^ㅡ^ 05.07.15 16:32 좋앙~ ㅠ.ㅠ으아앙~너무 슬퍼요오~태하(?)가 너무 슬픈 사랑만하는 거같애요오ㅠ.ㅠ 05.07.19 11:41 crazy 태하가 너무 존경스러워져요.. 05.08.08 20:15 ll블랙데빌ll ㅠ ㅇ ㅠ 너무 슬포요 ! 보면서 몇번은 울었어요..ㅠ ㅇ ㅠ 05.08.12 18:50 ㅅl들ㅈl않는꽃 진짜 놀자님말에 동감해요 ㅜㅜ 진짜 저는 아직도 가슴이 콩닥거려여 ㅜㅜ 06.07.29 10:00 남자밝힘증__* 진짜 재미있었어요...ㅠ근데...왜 팬까페에만...ㅠ 06.12.14 18:10 중독 진짜 많이 울었어요 엉엉 우리 태하어떻게 진짜 은별이랑 한결이랑 된거 진짜 좋은데 왜 현이는 ..정말 슬프다.. 태하진짜 좋았는데 재미있었어요 06.12.27 22:21 v야부리 어떻게 된건지.. 저는 완벽한 해피를 원하지만.. 중간중간 새드도 있고.. 해피&새드 결말이라니.. ㅜ0ㅜ.. 기분이 묘해요...... 07.06.28 21:22 은혁왕자 /슬프다ㅜㅜ 07.07.15 14:07 호이사랑 07.07.28 13:46 김유진님 태하 왜 죽었어요.....ㅜ0ㅜ 죽이지 말지...슬퍼ㅠ0ㅠ 07.08.20 11:16 행복한날 정말 태하만 죽지않았다면 좋았을 텐데..ㅜㅁㅜ 그래도 재밋었어요>ㅁ' 나린소주인 05.07.14 [시작▶] [판타지] 금 구슬에 나의 영혼을... < 01 ~ 10 >' 나린소주인 05.11.21 [완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161 ~　完 > 나린소주인 05.11.28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141 ~ 160 >' 나린소주인 05.07.11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121 ~ 140 >' 나린소주인 05.07.11 카페에서 공개한 게시글입니다.'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키워드로 검색한 게시글 더보기 서비스 약관/정책권리침해신고카페 신고이용약관카페 고객센터검색비공개 요청 Copyright (c) Daum Communications Corp. All rights reserved. 163. [육아일기 에필로그 1] 우연 혹은 필연. [명문고등학교 2학년 4반] 예나, 지금이나 토요일의 교실엔 소란스러움으로 가득 하다. 내일이 일요일이란 생각에 생기가 넘치는 아이들은 왁자지껄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아침 조례를 기다리고 있을 찰나였다. “제발! 한 번만? 응? 내 얼굴을 봐서라도 제발 좀!!!” “싫다니까. 진사랑. 내 신조 잊었냐?” 한 소년은 창가에 앉아 하늘만을 뚫어지도록 바라보는 자신에게 두 손을 모아 싹싹 빌며 사정을 하는 사랑의 부탁에도 정확히 선을 그으며 잘라버린다. 진사랑. 그 순수했던 4살 때의 모습은 싹 자취를 감추고 18살인 지금은 섹시하고 도발적인 모습만이 줄줄 흐르는 귀티 나는 외모로 변해있었다. 소년의 거절에 사랑은 결 좋은 블루블랙 머리칼을 손으로 거칠게 쓸어 올리곤 그 잘생긴 얼굴에 성이 난 듯 인상을 한 가득 찌푸리며 두 볼엔 바람을 한 가득 넣어보이곤 소년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다시 매달렸다. “‘일편단심’. 죽어도 한 여자만 보고 한 여자만 사랑한다고?!!! 너 그 말도 안 되는 신조가지고 자꾸 버틸래?! 이 형님이 애가 타 죽겠다!! 그 수려한 외모를 가지고 너만을 바라보는 여친 네들이 불쌍하지도 않더냐?!! 자고로 우리 아버지 말씀이 남자는 많은 여자를 만나봐야 한다고 하셨다!!” 사랑의 말에 창밖을 보고 있던 소년이 그에게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잡티 하나 없는 하얀 피부, 형형하게 빛나는 크고 선하면서도 카리스마를 가진 눈. 눈이 오면 그 위에 쌓일 것 같은 긴 속눈썹과 빛을 내는 갈색의 눈동자. 적당히 높은 코와 붉고 매력적인 입술, 거기에다 매끄럽게 내려오는 턱선까지. 그야말로 조각 같은 얼굴과 어울리는 붉은 빛 도는 결 좋은 머리카락까지 가진 그는! 바로 은결이었다. 그 작은 아이가 어느 덧 18살의 소년으로 훌쩍 자라버렸다. “진사랑. 왜 하필 나냐? 안 갈 것 뻔히 알면서. 징그럽다. 매번 이렇게 거절해야 하는 내가 더 고통스럽다. 이제 그만 하자. 응?” “그러니까 거절하지 말고 가자니까!!” 은결의 말에 이어지는 사랑의 말에 다그치듯이 그의 머리를 세게 치는 소년이 있다. 사랑의 옆자리에 앉은 것을 보니 그의 짝꿍인 것으로 추정되는 소년은 자꾸 은결의 앞에서 조잘대는 사랑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정신 차리라는 듯이 그의 머리를 치며 샤프해 보이는 얼굴에 오만가지 상을 다 표현해내고 있었다. “아씨, 신하빈!! 왜 때려!!!” “쯧쯧. 그러니까 사람들이 너를 플레이 보이라고 부르는 거다. 친구라도 부탁할 게 있고, 없는 게 있지. 내가 네 검은 속내를 모를 줄 아냐? 여자 꾀기 위해 순진한 왕자님 악의 수렁텅이로 꾀지 말고 네 볼일이나 봐라. 임마. 가끔은 네가 친구인 게 부끄러워 질려 한다. 진사랑.” “아!!! 진짜!!! 치사해!!!! 너희 둘 다!!!!!” 자신을 방해하는 하빈의 말에 미치겠다는 듯이 블루블랙 머리칼을 두 손으로 잡아 쥐어뜯는 사랑을 본 그의 짝꿍이자 귀여운 외모를 소유한 소년이 누구라도 보면 해맑게 보이는 웃음을 한 가득 지으며 사랑의 어깨에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사랑이는 바보~♬ 키득키득, 바보래요~ 바보래요~♬ 사랑이는~ 바보~♬ 은결이네 엄마가~ 첫사랑이래요~♬ 7살 때 고백했다 채이고 여자만 밝히는 바보가 되었대요~♬ 그래도 그렇지~ 우리 순진한 왕자님 자꾸 꼬드기면 쌤통~ 부라 보통~ 밥통~ 쓰레기통~♬” “아악!! 한태양!!! 너… 너까지!!!! 악.. 내 뒷골!!! 내 뒷골!!!!!!” 사랑은 태양의 말이 결정타였는지 뒷목을 잡으며 어지러운 듯 비틀거렸다. (드르륵-) “야! 담임 떴다!” 그 모습에 하빈과 은결이 풋 웃음을 터트리던 찰나, 담임선생님이 들어왔다. 그리고 선생님을 뒤따라 미소녀라 칭해도 될 만큼 예쁘고 청초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이면엔 한기를 뿜어내는 한 여자아이가 따라 들어왔다. “와우!! 전학생이다!!! 오!!! 외모 죽인다!!!” “와우~ 졸라 예쁘다!!!! 오~ 우리 학교 얼짱 하지혜도 긴장 타야겠는 걸?!” “야호!!! 드디어 우리 반에도 꽃 미녀 등극이야?!!” 그 청초한 여자아이를 보자마자 남자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에 여자를 밝히는 사랑의 눈도 자연스럽게 교단을 향해 움직였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모습을 본 사랑은 충격을 받은 듯 딱딱하게 굳어져서는 자신의 뒷자리에 앉아 창밖만 바라보는 은결에게 고개를 돌려 조용히 말을 걸었다. “현은결, 쟤- 너희 엄마 닮았어.” “.......무슨?” 사랑의 속삭임에 은결 역시 고개를 돌려 교단을 바라보았다. 보호본능을 일으킬 정도로 쓰러질 듯 마른 몸과 그에 비해선 여자치곤 큰 키. 창백하다고 느낄 정도로 새하얀 피부와 아기자기한 붉은 입술, 그리고 반듯한 코. 다갈색의 윤기 흐르는 긴 머리카락, 연하게 쌍꺼풀 지는 눈에 다갈색 눈동자까지… 외모는 비슷하지만 뭔가 다르다. 그래. 자신의 엄마인 은별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은별은 화기애애하고 다정한 분위기를 뿜지만 저 여자아이는 얼음같이 살벌하다. 하지만 은별과 닮은 그녀의 외모에 은결과 사랑의 시선이 떼어질 줄 모른다. “조용! 조용!!” 여자아이를 보자마자 터져 나오는 외침들이 교실 전체를 소란스럽게 만들자 담임선생님은 여자아이가 교단에 서자마자 교탁을 두드리며 아이들을 진정 시켰다. 그제야, 입을 닫고 선생님과 여자아이만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아이들이다. 분위기가 어느 정도 수그러들며 진정이 되자 선생님은 여자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 소개하렴.” “채이별이라고 해. 독일에서 왔어.” 예쁜 목소리를 가지고 단 두 마디로 소개를 마쳤다는 듯 이별은 인사라는 식으로 성의 없이 자신에게로 시선을 모은 아이들을 향해 고개를 까닥 숙였다. 어이없는 그녀의 행동에 당황한 아이들은 입만 벌린 체 멍하게 이별을 바라보았고, 담임선생님도 당황한 것인지 괜스레 헛기침을 하며 무안한 분위기를 달랬다. “흠흠. 뭐… 소개가 가..간단해서 좋구나. 이별이는 독일에서 여태껏 살다왔으니 너희가 많이 도와주거라. 그럼 자리는… 그래. 은결이 옆자리가 비었구나. 저기 앉으렴.” 선생님은 교실을 쭉 둘러보더니 이별을 향해 은결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이별은 알았다는 듯 선생님께 고개를 숙여보이곤 그의 옆자리로 서서히 발걸음을 옮긴다. 그녀가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갈 때마다 여자아이들의 시선이 따갑게 쏟아졌다. 이윽고, 긴장되는 분위기 안에서 그녀가 은결의 옆자리에 도달했다. (끼이익-) 의자를 빼면서 계속 자신에게 시선을 주는 은결의 얼굴을 한 번 쓱 쳐다보던 이별은 한 숨을 푹 쉬더니 귀찮다는 듯 그의 시선을 외면해 버리며 자리에 털 푸덕 앉았다. “헉. 지.. 지금 저 여자애, 현은결 시선 외면한 것 맞지?!” “엄마, 웨..웬일이야!! 우리는 한 번이라도 받아보지 못 한 시선을!!!” 여자아이들은 이별의 그런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흥분하며 소리쳤다. 사랑과 하빈, 그리고 태양 역시 은결의 시선을 거부한 이별이 신기한 듯 궁금증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두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별은 그저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포커페이스로 챙겨온 책을 꺼내다, 이래저래 자신의 이름을 들먹거리며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그들을 생기 없이 차갑게 식은 다갈색 눈동자로 바라보며 얼음 같은 냉정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Scheig!(닥쳐!)” 순식간에 그녀의 가냘프면서도 상대를 압도하는 날카로운 외침에 잠잠해지는 아이들. 저렇게 마른 몸으로 어디서 남의 위축시키는 힘이 나오는 것인지 놀라울 뿐이다. 침묵 속에서 그녀를 계속 지켜보고 있던 사랑의 눈이 먹이를 찾은 것처럼 빛났다. “야! 진사랑!!!” “신하빈~ 날~ 말리지 말라! 얜 내가 찜!!” "뭐야?! 이거 놔!!“ 하빈의 다급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다짜고짜 저항하는 이별의 팔목을 잡아 힘으로 그녀를 끌고 교실 밖으로 나섰다. [학교 옥상] 옥상엔 여름의 따가운 햇살과 동시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 불어오는 바람이 이별의 다갈색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고 지나간다. 한 폭의 그림 같다. 연약할 듯, 부서질 듯 보이면서도 강인한 그녀가… 이별을 학교 옥상까지 끌고 온 사랑은 이별의 어깨를 두 손으로 꽉 쥐며 말했다. “너 내 맘에 든다. 나랑 사귀자.” 그의 갑작스러운 말에 이별은 진노한 듯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다 이내 표정을 굳히곤 한 손을 들어 냅다 그의 싸대기를 치며 차갑게 소리 질렀다. “Sie sind ja schrecklich unhöflich!” (너 정말 무례하구나!) “아야야. 여자한테 뺨 맞아 보긴 또 처음이네- 미안하지만 내 첫사랑을 닮은 건 네 잘못이라고. 내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큰데. 네가 뭐라고 중얼거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귀한 뺨을 친 대가는 받아야겠지?” “윽-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자~ 그럼 시식하겠습니다!” 사랑이 싱글벙글 웃으며 저항하는 이별을 엄청난 힘으로 품에 안으며 강압적으로 그녀의 붉고 작은 입술에 입술을 갖다 대려 하는 순간! (퍽!!!) 누군가 사랑을 이별에게서 떼놓으며 그의 볼을 주먹으로 강하게 쳐 쓰러뜨렸다. “야, 진사랑. 내가 그 짓거리하지 말라고 그랬지?” 나가떨어진 사랑은 익숙한 목소리에 충격으로 얼떨떨한 고개를 흔들곤 시야를 바로 잡아 자신을 때린 사람을 부리부리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곧, 자신을 무자비하게 때린 것이 은결이란 것을 안 사랑은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씨!! 뭐야!!! 현은결!! 거의 넘어오게 할 수 있었는데!!!” “넘어오긴 개뿔이 넘어 오냐? 애 얼굴 하얗게 질린 것 안 보여?” “무슨 상관이야!! 예전 같으면 눈 하나 까닥 안했잖아!!” “그래서 잘 했다고? 진사랑… 한 대 더 맞고 싶냐?” 뭘 잘 했다고 큰 소리야? 사랑의 외침에 왠지 모르게 열이 확 받는 은결이다. 그는 정말 한 대 더 칠 심산인지 한 걸음 앞으로 나가려는 순간, 뒤에서 자신의 와이셔츠를 잡아당기는 작은 힘이 느껴져 뒤로 돌아보았다. “하악... 하악.. 하... 윽....” “야? 너 왜 그래?!! 야!!” 창백한 얼굴이 보랏빛으로 질려서는 숨까지 할딱거리며 심장을 부여잡은 이별의 모습에 은결은 놀란 듯 그녀의 어깨를 두 손으로 꽉 잡곤 소리쳤다. “하악... 야..약... 약... 가방... 큭... 뒤..주머니...” 그녀의 불안정하게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내뱉는 말을 들은 은결은 너부러져 있는 사랑을 향해 다급하게 말을 전했다. “야!! 진사랑, 얘 가방 뒷주머니에서 약 가져와!!!” “뭐?! 내가 왜?!!” “얼른!!! 숨넘어가게 생겼어!!! 한 대 맞기 전에 곱게 가라?!!” “아, 씨발!!!” 사랑은 은결의 협박 아닌 협박에 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리며 옥상 문을 빠져나갔다. 그가 나가자마자 이별은 긴장이 풀린 것일까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는 듯 왼쪽 가슴을 부여잡은 체 고통스럽게 흐물흐물 거리며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그런 위태로운 이별을 은결이 보다보다 못 보겠는지 품에 안았다. “하악... 학.... 학...” 교실에선 그렇게 강한 카리스마로 아이들을 잠재워놓곤 지금은 아픔을 못 이겨 고통스러워하는 이 여자애, 정말 이상하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엄마를 닮아서일까? 자꾸 눈에 밟힌다. 자꾸 심장이 콩콩 뛰는 게 이상하다. “야, 정신 좀 차려봐!! 야!!” “하악... 하악... 학.... 주..머...니.. 크윽...” “아, 뭐라는 거야? 진짜 환장하겠네.” 그녀를 끌어안은 체 한숨을 쉬던 은결은 주머니란 말에 문득 밑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그의 시선에 잡힌 것은 이별의 주머니에 있는 하얀 약 봉지였다. 그 약봉지를 꺼내들은 은결은 의아한 표정으로 이별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야? 이 약은…” “...학... 약... 줘.. 학...” “뭐야, 물도 없어!! 뭘 어떻게 먹겠다는 거야. 그 상태로!!” “...아..악... 학.....” 정신까지 희미해지는 것인지 이별의 눈이 자꾸 감겼다. 난감하다. 이 상황. 사랑녀석은 뭐 이리 뜸을 들이는 것인지. 그나저나 숨이 자꾸 미약해지는 게 점점 상황이 위급해 지는 것 같다. “씨,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 머리를 거칠게 긁적이곤 은결은 그녀의 악화되는 상태에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듯 서둘러 약봉지를 자신의 입에 털어 넣더니 그대로 이별의 질려가는 입술에 망설임 없이 자신의 붉은 입술을 가져다댔다. ------------------------------------------------------------------- 에필로그가 좀 길어질 듯 하네요^^ 은결이의 고등학생 이야기... 훗...[퍽] 재밌게 봐 주시고.. 다음편은 좀 늦어질 것 같네요^^ 댓글 36 개 이 글을...(0) +메시아+ 독일어가 자꾸 깨지네요^^; 그냥 양해하시고 봐주시길..;; 05.06.27 20:38 깜찍이소다 에필로그 길게 하지마세요 ㅇ_ㅇ 던질 돌 마련 되있습니다 +ㅁ+ 05.06.27 20:48 +메시아+ 도..돌이라뇨?;;[후다닥] 전 돌 맞을 짓을 한 기억...[삐질] 번외를 빼버리고 몽땅 에필로그에 집어넣으려고^^; 05.06.27 20:52 ＃러브하늘〃♡ 우와~ 너무 재밌어요~ ㅋㅋ 은결이는 한결이랑 똑같다아~ ㅇ_ㅇ* 05.06.27 21:15 큐트시연☆ 허걱 ! 은결이 짱이다 ! ㅋ_ㅋ ! 은별이랑 한결이는 안나와요??ㅎㅎ 05.06.27 22:16 +메시아+ 은별이랑 한결이 당연히 나오죠^^ 05.06.27 22:31 귀여운 은결이... 빨리 다음편두 써주세여~~~ 05.06.27 22:43 여우냥a 이별이라면, 태후였나? 어쨌든 목숨을 맞바꾸어 살려낸 아이 아닌강?-ㅁ-? 05.06.27 23:42 love〃 정말 에필로그 길~게 하지말고 걍 번외랑 투표에서 거의 결정된 육아일기 2부를 넘기시는게 신상에 좋으실꺼에요. 저희 집이 산 근처라서 돌이 엄~청 많거든요. 에필로그 길게 하시면 돌이랑 집에있는 식칼, 과일칼 다 던질꺼에요!! 05.06.28 09:52 은하수 이별이라는 아이 1부완결편 마지막에 나온 애 맞져?? 태후와 목숨 바꿔서...^^;; 사랑이랑 은결이 유치원떄 라이벌이였는뎅~ 많이 친해졌네요~^0^ 재미있어요~^0^ 담편 궁금~^0^ 05.06.28 10:08 조아조아 혹시.. 태후와.. 비행기를 바꿔탄.. 아이 아닌가요.. 05.06.28 16:01 희망의주문aa 은결이의 이야기군요,,,,,, 은결이 시점으로 나갈건가요??? 저는 여자시점이 좋던데 05.06.28 16:30 +메시아+ 2부는요^^; 아직 결정된 것이 아니라.... 쓴다고 해도 1부에 나왔던 사람들과는 연관이 없을겁니다. 러브미션 쪽도 고려를 해봐야할 듯. 에필로그를 끝으로 육아일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마무리 됩니다. 05.06.28 16:55 LOVE HOLIC 귀여운 은결이가...................헉헉헉.....................................;; 05.06.28 18:50 suim =_=;;; 은결이;;;[깜짝] 마..많이 변했네..ㅋㅋ 그래도 멋있네요~ 05.06.28 19:50 바보ㅋㅋㅋㅋㅋ... 은결이가... ㅋㅋ 그래도 멋있네요 ^^* 05.06.29 14:47 ː유천이내꺼¿ +_+이별이...ㅡ _ㅜ.. 태후가 대신 그 비행기 타서, 사고난거... ㅜ _ㅜ.. 허윽.. 꼬옥! -0-은결이랑 이어져야해요~ 05.06.29 15:23 사ㄹ5해여 은결이!!!! 엄마 끝까지 좋아하면 안되나요?? ,, 그랬음 재미겠는데,, 05.06.29 16:50 은빛날개、 은결아, 난 니가 개인적으로 마덜 콤플렉스였으면 좋겠구나. -_-* 자고로 난 니가 은별이를 가운데 두고 한결이와 다투는 모습을 보고싶다고. ㅋㅋ 05.07.01 01:07 샤방이 은결이가 너무 멋있어졌네~ 05.07.02 14:16 잇픈은선 재밌당 > 3<ㅋㅋㅋㅋㅋㅋㅋ빨리 올려줘요 ~!!!!!!!! 05.07.03 18:26 니픈사랑찾아乃 ㅋㅋㅋ멋져용,ㅋ!, 05.07.04 13:30 little♬ 깜직하고 귀여운 은결이가 멋있게 변했군요-_-. 그래도 은결이 좋아♡(퍼억) 05.07.04 17:53 왕도도공주뉨 > <멋져용 ㅇ_ㅇ 태후의 목숨이랑 바꿔간 > <이별인데 ㅇ_ㅇ! 병이 아직도 안나았낫 ㅇ--ㅇ? 05.07.04 19:37 아로하 한결이도 좋지만 이제 은결이도 남자로..<-감당안됨 05.07.05 18:10 꺄♡ 너무재밋어요!!+_+ 빨리2편나왓으면 ㅠㅠ ♡진짜 멋잇어용 ㅋㅋㅋㅋ 05.07.06 13:54 Σðⓛⓞⓥⓔγ 아~ 빨리 다음편이요~!ㅇㅅㅇ* 05.07.08 20:04 우주황태자부인 태하랑 비행기 바꿨탄 그 여자에죠 ? ~ ~~ 05.07.08 21:54 하얀별위에 -_-...나의 사랑스럽고도 예쁘고도 깜찍한 은결이가..은결이가...(패닉상태) 어째든, 뭐 지금도 귀엽네-_-*(진정으로 저 카리스마있는 모습이 귀엽냐...-_-....)아무튼 채이별이라는 애, 태하랑 비행기 바꿨탄 여자애:? 05.07.20 17:25 쏜우혁ㄱ 아행복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05.07.23 15:09 천사님 열공해야 하는데.... 미워요 05.07.23 17:44 이별지킴이 이게 번외인가요? 05.08.09 12:03 예늬 번외편 말고는 없나요..? 05.08.18 08:01 곰탱이a 으하!! 천년을 기다렸습니다 ㅋㅋ 본권 3편에서 그렇게 나오죠 ㅋㅋㅋㅋㅋ 정말 정말 잼있어, !!! 05.09.09 19:20 黑血惡魔 맞아요>ㅁ<[그럼요, 천년을 기다렸습니다. 채은별 씨.]이부분에서 감동먹음ㅠ^ㅠbb 05.11.01 19:51 사탕♡ 이전것들은 어디에 있나요? 제가 여기 까진 읽지 못해서 그러는데....... 06.01.20 10:58 이전 1 다음 최신목록 목록 윗글 아랫글 '【 메시아완결 】───' 게시판의 다른 글더보기 제목 닉네임 날짜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5) ※ [에필로그(3)]'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4) ※ [에필로그(2)]'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3) ※ [에필로그(1)] +메시아+ 05.07.23 카페에서 공개한 게시글입니다.'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에필로그'키워드로 검색한 게시글 더보기 서비스 약관/정책권리침해신고카페 신고이용약관카페 고객센터검색비공개 요청 Copyright (c) Daum Communications Co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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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댕동~♬♪♪♬] 어느덧 1교시가 끝나는 종이 경쾌하게 학교 전체에 울렸다. 어지러움과 숨이 막혀오는 아픔에 정신을 잠시 놓았던 이별이 자신의 코를 간질이는 익숙한 향기에 살짝 눈을 떴다. 가물가물하지만 희미하게나마 기억하는 아주 오래 전 그 사람에게서 나던 향기… 눈을 뜬 그녀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자신을 품안에 꽉 끌어안은 넒은 어깨와 티끌 하나 묻어있지 않은 하얀 와이셔츠, 그리고 단정하게 매여진 군청색 넥타이… 시선을 점차 위로 옮기던 이별은 이내 놀란 듯이 눈이 커졌다. “…내가 또 무슨 민폐를 끼친 거야.” 그녀가 깨어나길 기다리다 잠에 든 것인지 자신을 안은 채 눈을 감고 얕은 숨을 내쉬는 은결을 본 이별은 그의 품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쓰러질 것 같이 마른 자신의 몸을 살짝 움직였다. “괜찮아?” 자고 있는 줄 알았던 그가 그녀의 미세한 움직임을 눈치 채고 눈을 떴다. 이별은 그런 은결의 행동에 더욱 당황했는지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백짓장보다 더욱 창백한 안색을 한 채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굳어버린 이별의 모습에 낯빛이 변한 은결은 아직도 아픈 것 같이 보이는 그녀의 어깨를 다잡고 물었다. “아직도 많이 아픈 거야?” “(도리도리-)” 부드럽고 따뜻한 은결의 음성에 이내 긴장이 풀린 이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은결은 안심했다는 듯 화사하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눈이 부실정도로 빛이 나는 멋진 아이… 그리고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얼굴을 가진 아이… 순간, 그의 미소를 본 이별의 창백한 얼굴에 붉은 홍조가 띄워졌다. “얼굴이 갑자기 빨개. 열은 없는 것 같은데, 정말 안 아파?!” 이별의 이마에 손을 얹은 채 말하는 은결의 걱정 섞인 말에 이별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 그런 그녀의 붉게 변한 얼굴을 보며 은결은 알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천천히 이별의 이마에서 손을 떼며 그녀를 향해 다시 말을 꺼냈다. “아프면 말해. 양호실 가자.” “아, 저기… 수업은?” 시간이 꽤 지났다는 것을 느낀 이별은 붉어진 얼굴을 푹 수그린 채 은결에게 말했다. 은결은 걱정스럽게 말하는 그녀의 머리칼을 천천히 쓰다듬어 주곤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미 1교시 땡~ 그냥 아예 땡땡이 칠까?" "뭐?!" "아니 그렇게 정색할 필요야…" 안 그래도 큰 눈이 왕방울 만하게 커지며 정색하는 이별이 모습에 은결은 무안한지 시선을 돌리곤 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는 가운데 굳게 닫혀있던 옥상 문이 벌컥 열렸다. 순간, 은결에게 안겨있던 이별은 문소리에 자지러지게 놀라며 자신을 안고 있는 은결을 있는 힘껏 밀쳐 떨어뜨리며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오, 씨발!!!" 옥상으로 들어온 사람은 은결이 시켜 이별의 약을 가지러 교실로 내려간지 약 50여분만에 불만스럽다는 표정을 한 가득 얼굴에 담은 사랑이었다. 욕을 지껄이며 옥상으로 들어온 그는 묘한 분위기 속에 은결의 얼굴과 붉어진 이별의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약간은 띠겁다는 듯이 은결에게 소리쳤다. "뭐야!! 나는 약 가지러 갔다가 선생한테 걸려서 이렇게 붙잡혀있다 왔는데 넌 친구가 작업 걸려던 애를 네가 가로 채냐!!!! 치사하게!!!!" "누가 가로챘다는 거냐?" 사랑의 질투 섞인 장난 어린 말을 은결이 날카롭게 되받아 치며 왠지 모르게 넘쳐흐르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풍기며 사랑을 노려보았다. 저 놈의 카리스마의 위세가 어찌나 대단한지… 그의 눈빛에 한 순간 오징어포처럼 쫄아 버린 사랑이다. "씨이. 그래~ 너 다 가져라! 에이! 치사한 놈아!!!" "야, 진사랑. 너 아직도 정신 못 차렸냐!" "야! 현은결!!!" 사랑은 불만에 가득 찼다는 것을 표시라도 하는 듯 크게 은결의 이름을 불렀다. 순간, 은결의 이름을 들은 이별의 눈이 심하게 흔들렸다. 정신을 놓기 전 은결의 이름을 언뜻 들었을 때 긴가민가했었는데 설마… "현은결이라고…?" 이별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은결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야? 너 아직도 아파?! 괜찮은..." "먼저 내려갈게." 갑자기 낯빛이 더욱 안 좋아지는 이별의 모습에 걱정스럽게 말하는 은결의 말을 잘라버리는 한 마디만을 남겨놓고 이별은 차갑게 돌아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랑과 은결을 뒤로하고 옥상을 빠져나갔다. "어라? 이게 뭐냐?" 이별이 옥상을 벗어나 버리자 그녀가 서 있던 자리에 시선을 돌린 사랑이 무언가 반짝이는 금빛 물체를 보곤 후다닥 빠르게 달려가 주워 올렸다. …팬던트? 오래된 것인지 색이 바래버린 팬던트. 사랑이 흥미롭게 쳐다보며 손으로 이곳저곳 만지작거리고 있는 이별이 흘리고 간 듯한 팬던트를 은결이 사랑의 손에서 가볍게 낚아챘다. "뭐야!!! 현은결!!!!" "주인한테 돌려줘야지." "현은결! 나 아직 속 내용물도 보지 않았단 말야!!" "뭐 하려고 보냐? 남의 것인데."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은결의 모습에 사랑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소리쳤다. "혹시 아냐!!! 그 속에 남자친구랑 같이 찍은 사진이 있을지?!!" "남자친구…?" "그래! 다른 말로 말해 줘? 애인, 달링, 허니, 꿀단지~!!!!" 줄줄 외치는 사랑의 요란한 말에 흔들리는 은결, 왠지 이별에게 남자친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분이 언짢아진다. 두근두근 뛰어대던 심장이 땅으로 추락하는 느낌. 은결은 결심한 듯 붉은 입술을 꼭 깨물며 서서히 팬던트의 뚜껑을 열었다. "어?!" 팬던트 안에 무언가를 본 은결은 놀란 듯 소리쳤다. 한 여자가 한 남자의 입에 웃음을 만들어주기 위해 자신의 손으로 남자의 입을 웃고 있는 것처럼 만들어주며 다정하게 찍힌 사진. 사랑 역시 은결이 연 팬던트 안에 내용물을 보더니 당황한 듯한 은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거 너희 엄마 아니야?" "…맞아." "이 옆에 있는 남자는 누구야? 너희 아빠 아니잖아?" "…이 남자 얼굴 익숙해. …그래, 아빠 친구 중 한 분이셨어..." 곰곰이 사진 속 남자의 이름을 생각하는 은결의 어깨를 흔들며 사랑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왜 이 사진을 채이별이 가지고 있어?" "…글쎄." 은결 역시 알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하늘을 바라보는 은결의 머리 속에는 한 여자의 형상만이 맴돌 뿐이다. 얼음같이 차가운 아이, 강한 척 하는 아이, …하지만 누구보다 약한 아이. . .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낀 게 비가 올 듯 싶다. ------------------------------------------------------------------------------- 좀 있다 한 편 더 올릴께요^^ 참, 운영자 모집해요! 소설지기와 메인지기!;; 하고 싶으신 분~ 손~ [유도한다..=ㅁ=;;] 댓글 19 개 이 글을...(0) 니가알아서모해 ㅎㅎㅎ 언능언능 다음편을 빨리빨리 다읽고 싶은 욕망의 물결이 ;;; 05.07.10 17:28 lsh11039 너무재있어요 다음편이 빨리 나왔으면// 05.07.10 17:35 LOVE HOLIC 어어어어.. 담편도 기대할게요.. 05.07.10 18:11 아로하 오우! 좋아좋아!<-.. 운영자라면,...다른건 소질이 전혀없어서...흑흑<-.. 05.07.10 20:30 봉선화s 저거 태하가 죽을 때 손에 꼭 쥐고 있던 팬던트 아닌가 ;; 이별이 비행기 양보해줬잖아요 ㅎㅎ 와, 훗날 큰 반전이 ! 05.07.10 22:07 냥이냔♪ 드뎌 팬던트를 발견했꾸나+ㅁ+ 이제 태하의 죽음을 사람들이 알수있는건가ㅠ_ㅠ 불쌍한 태하....흑... 05.07.11 00:27 신애냥 태하가 그래워요 ㅠ_ㅠ 저 팬던트를 은별이가 보면 어떻게 될까 ㅠ_ㅠ 05.07.11 15:47 장난의여신ㅋ 빨리 다음편을 보구 싶다는....ㅠ.ㅠㅋㅋ 05.07.11 17:20 희망의주문aa 태하가 보고싶네요,, 우리 불쌍한 태하 ㅠ_ㅠ*// 05.07.11 18:31 은하수 나중에 태하의 죽음이 알려지나요? 슬픔지만 태하의 죽을 알려줘으면~~ㅠ.ㅠ 담편 기대~^0^ 05.07.11 18:47 샤방이 담편을 기대하겠습니다.^^ 05.07.11 20:45 Foreverlce‥☆ 와...신기한데...진짜 태하 그리워요 ㅠㅠ 05.07.11 21:17 ＃러브하늘〃♡ 우으.. 오랜만에 봐서 감회가 새롭다는.. ㅠ_ㅠ 05.07.12 21:07 큐트시연☆ 오오 ! 도대체 무슨일이 +ㅁ+ ㅋ 05.07.13 12:35 사랑해q 오와 재밌다.ㅎㅎ 그 팬던트 옛날에 태하가 비행기에서... 05.07.22 11:07 천사님 왠지모르게 끌리네` 05.07.23 17:46 crazy 태하다 ㅇㅁㅇ 나의 서방님.. (-_-^) 컥.. 죄소합니다 ㅜㅁㅜ 05.08.10 18:14 날개 달린 천사 저요..저 메인지기 할래요...^^ 05.08.11 13:07 곰탱이a 이거 3편에 있는거네요 ㅋ 비하인드 스토리?? 05.09.09 19:21 이전 1 다음 최신목록 목록 윗글 아랫글 '【 메시아완결 】───' 게시판의 다른 글더보기 제목 닉네임 날짜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6) ※ [에필로그(4)]'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5) ※ [에필로그(3)]'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4) ※ [에필로그(2)]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3) ※ [에필로그(1)]' +메시아+ 05.07.23 카페에서 공개한 게시글입니다.'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에필로그'키워드로 검색한 게시글 더보기 서비스 약관/정책권리침해신고카페 신고이용약관카페 고객센터검색비공개 요청 Copyright (c) Daum Communications Corp. All rights reserved. 새로운 카페관리를 만나보세요. 바로가기 Daum 카페 음악샵 내 블로그 내 메일 내 쪽지 랜덤 〃♥ㅅl아랑 노올자~♬♥〃 cafe.daum.net/msacafe 식물(공개) | 회원수 1351 카페정보내 정보 가입 0 방문 4 새글 1 카페지기 시아。랑하l♥ 개설일 2004.03.30 프로필 손님 쪽지 0통 메일 0통 내 글 반응 휴대폰 카페 카페 초대 【 메시아완결 】─── 시아의 완결 소설이 있는 곳입니다. 최신목록 목록 윗글 아랫글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5) ※ [에필로그(3)] 글쓴이: +메시아+ 조회수 : 1099 05.07.23 10:31 http://cafe.daum.net/msacafe/1U3j/52 165. 옥상을 빠져 나오면서 은결의 이름을 되새기던 이별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은결의 이름은 그 사람이 남긴 마지막 글에 있던 자신의 운명. "현은결, 분명… 분명…" 하지만 은결의 이름에 대한 생각을 다 마치기도 전에 교실로 들어온 이별은 여아들의 따가운 눈초리에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 여아들 중, 이별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앙증맞은 붉은 입술을 꼭 깨물고 그녀를 노려보는 명문고 얼짱 지혜가 이별 앞으로 다가왔다. "네가 전학생이야?" "…So?(그래서?)" "얘, 뭐라는 거냐? 씨발, 네가 오자마자 은결이한테 꼬리친 년 맞냐고!!!" 예쁜 얼굴에 독기를 가득 뿜어내는 지혜의 날카로운 외침에 이별은 대답할 가치를 못 느낀다는 듯 냉담한 표정으로 지혜를 무시하곤 자신의 자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감히 네 년 따위가 날 무시해?!" 자신의 존재를 무시하는 이별의 행동에 머리끝까지 화가 난 지혜는 앞서가는 이별의 손목을 잡아채 힘으로 그녀를 벽쪽으로 밀쳤다. 지혜의 힘도 힘이지만 이미 심장에 무리를 느낀 이별에게 남은 힘이라곤 없었기에 그대로 딱딱한 벽에 밀려 부딪혔다. "으윽..." 힘없이 벽에 부딪힌 이별은 고통스러운 듯 인상을 찌푸리며 얕은 신음소리를 내며 지혜를 얼음같이 서늘하게 변해버린 다갈색 눈동자로 노려보았다. 근의 눈빛이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 지혜는 이별의 멱살을 쥐며 소리쳤다. "씨발, 은결이한테 꼬리만 쳐 봐!" "난.... 꼬리친 적 없어." "이년이 그래도!!!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다 이거지?!!" 지혜는 자신의 말에 단호하게 대꾸하는 시건방진 이별의 싸대기를 때리려 손을 들었다. 그 순간, 그녀의 손목을 누군가 잡아챘다. "하지혜, 나한테 먼저 맞고 싶은 거냐?" 평소보다 낮게 깔린 익숙한 목소리에 지혜는 두려움에 젖은 듯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예상대로 은결이었다. 하지만 이리도 차갑고 매몰찬 은결이 모습은 처음인지라 지혜는 적잖이 당황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은결에게 소리쳤다. "은... 은결아! 그게 아니고!" "변명할 필요 없어. 너와 난 아무 관계도 아니고. 이미 내 눈은 진실을 보았거든." "은결아!!!" "셋 쉴 때까지 내 눈앞에서 사라져. 1.. 2..." 사람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은결의 카리스마에 찍 소리도 못 하고 지혜는 차가운 눈물만을 떨구며 교실 밖으로 나갔다. 반 아이들은 놀라 입을 쩍 벌렸고, 뒤따라온 사랑과 교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태양과 하빈 역시 처음 보는 은결의 매몰찬 모습에 놀라 멀뚱히 그를 바라보았다. 은결은 그런 시선들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자신의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는 이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괜찮아?" ".........." 이별의 심장은 은결의 따뜻한 목소리에 또 다시 터질 듯이 뛰어댔다. 얼굴에서 열이 나는 것이 이대로 은결의 얼굴을 보면 삽시간에 붉어질 것이다. 자꾸만 자신의 페이스가 무너지는 것을 받아드릴 수 없는 이별은 애써 은결의 시선을 무시하며 냉담한 표정을 유지한 체 그를 지나쳐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푸...큭큭..." 은결의 손이 무안해진 것을 지켜보던 사랑은 고소하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현은결. 임자 한 번 제대로 만났네." "우리 순진한 왕자님 무안하겠다~" 하빈과 태양도 무안한 나머지 머리를 긁적이며 이별의 옆자리에 앉는 은결을 안 됐다는 듯 바라봄 한마디씩 중얼거렸다. 그들의 말에 이별의 복잡한 마음은 더더욱 심난해졌다. 싱숭생숭 알 수 없는 감정과 익숙지 않게 터질 듯이 뛰는 심장, 자꾸만 붉어지는 얼굴까지. 이름만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은결의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마음속의 동요가 자꾸 거세졌다. ".......?!!" 마음이 복잡해질 때마다 슬픈 멜로디로 자신을 진정시켜주던 팬던트를 떠올리며 목으로 손을 옮긴 이별은 이내 팬던트가 없어진 것을 깨닫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서 잃어버린 것일까? 어디서… 어디서… 초조함에 얼굴이 잔뜩 굳어진 이별의 손을 은결이 잡아당겨 다시 자리에 앉혔다. "왜 그래? 수업 시작이야." "…팬던트…" 팬던트란 말을 힘없이 중얼거리는 이별의 말소리에 은결은 자신의 바지 주머니 속에 있는 팬던트를 손에 꽉 쥐었다. 도대체 어째서 이 아이가 이 팬던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알고 싶었다. 아니, 알아야만 할 것 같았다. 이 아이를 향해 뛰는 심장이 우연이 아닌 필연인 듯한 느낌이 들기에… 절대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사명감마저 들기에… (드르륵-) 이내 교실로 수학 담당인 대머리 학주 선생님이 들어왔고 곧 교단 위에 선 학주선생님은 잔뜩 화가 난 표정을 하곤 멍한 표정의 이별을 향해 말했다. "채이별학생. 첫 시간부터 땡땡이입니까?!" "..........." 땡땡이란 말에 당황한 듯 이별의 어굴이 급속도로 굳어졌다. 처음 당해보는 상황인지라 이별은 쉽사리 변명거리를 찾지 못했다. "아, 그게…" 뭐라 그녀가 반박하기도 전에 은결이 먼저 선수를 쳤다. "선생님, 이별이가 머리가 아프다해서 제가 양호실에 데리고 갔다 왔습니다." 막힘 없이 또박또박 말하는 은결의 말에 근엄한 학주의 표정이 점점 풀리더니 아까와는 상반되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은결에게 말했다. "역시 우리학교 최고 엘리트 현은결군이군요. 심성도 착하지. 자 그럼, 수업을 시작할까요? 페이지 45를 펴세요." "저 놈의 편애… 진짜 표난다." "그러게… 아무리 우리 학교 공식 왕자님이라지만..." 학주의 말에 궁시렁 거리며 모두 책으로 시선을 돌리는 동안, 이별은 갑작스럽게 정리된 상황에 눈만 깜빡이며 은결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에 은결은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이별의 손등에 무언가를 적었다. 「고마우면 오늘 수업 끝나고 나랑 진짜 땡땡이 치자^ ^」 은결의 앙증맞은 작은 글씨들을 읽으며 이별의 입가에 잠시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잃어버린 팬던트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은결은 불안한 시선으로 수업시간 내내 이별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수업 도중 내내 초조함에 자꾸 목 주변을 만졌고, 수업이 끝나면 어디론가 쏜살같이 나가서 쉬는 시간이 끝날 때쯤 낙담한 표정으로 교실에 힘없이 들어왔다. 아마도 팬던트 때문일까? 은결은 돌려줘야지, 돌려줘야지 하면서 쉽사리 팬던트를 건네지 못했다. --------------------------------------------------------------------------------- 도서출판 나래에서 출판제의가 왔습니다..=_=;; 어떡하죠?[대책없다;;] 댓글 11 개 이 글을...(0) 으하하하ㅋㅋ 그 출판제의 받아드리세요^ ^ 저 님 소설 책으로도 보고 싶어요> _< 05.07.12 15:30 LOVE HOLIC 하하하하하하 축하드려요. 출판제의 들어오면 당연히 받아들이셔야죠.. !! 05.07.12 17:29 아로하 책으로 나오면 더 좋을것같아^^귀엽기만하던 은결이 참 많이 컸구나..<-니가엄마니..?? 05.07.12 17:54 ＃러브하늘〃♡ 책으로 하면 더 좋을것 같은데요.. 받아 드리세요! +_+// [왜 니가 더 흥분을 하니. -_-] 05.07.12 21:09 냥이냔♪ 오오+ㅁ+!! 언뉘 책으로 내야쥐~! 꺄하하하하 좋오았써-0-!![머가 좋았다는건지=_=;] 05.07.13 00:10 포카칩내꺼★ 우와아아아!!!!!!!책 내세요..!!제가 책으로도 열심히 봐드릴게요!!★ㅁ★［시아님 좋켓다..근데 지인짜 작가분 되시믄 더 바빠지시지 않을까요??ㅇ_ㅇ*］ 05.07.13 20:54 천사님 당연히 책내셔야죠.. 05.07.23 17:48 꼴통ol 우와~^^ 축하드립니다~ 책 내셔야죠~^^ 05.07.23 20:12 으히히-3-♡ 책내세요^-^책나오면바로살게요 ^^ ~ 05.07.28 18:06 crazy 부전자전이라더니.. -_- 은경이도 아빠를 닮는구나.. 05.08.10 18:17 날개 달린 천사 ㅜ.ㅜ받으세요..하지만 완결 못보면 어떻하죠??ㅡ.ㅡ 05.08.11 13:09 이전 1 다음 최신목록 목록 윗글 아랫글 '【 메시아완결 】───' 게시판의 다른 글더보기 제목 닉네임 날짜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7) ※ [에필로그(5)]'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6) ※ [에필로그(4)]'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5) ※ [에필로그(3)]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4) ※ [에필로그(2)]'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3) ※ [에필로그(1)]' +메시아+ 05.07.23 카페에서 공개한 게시글입니다.'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에필로그'키워드로 검색한 게시글 더보기 서비스 약관/정책권리침해신고카페 신고이용약관카페 고객센터검색비공개 요청 Copyright (c) Daum Communications Co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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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땡땡이 치러 가자." "뭐?!!! 야!!!!" 이별의 대답조차 듣지 않고 그녀의 손을 꼭 잡은 체 막무가내로 이끄는 은결. 어렸을 적 그 사악함과 영악함이 아직도 남아있단 말인가. 후훗. . . . "저기 어디 가는 거야?!" "앗, 차가워. 뭐야." 계속 은결에게 놔달라고 애원을 하며 그에게 잡힌 손을 빼내려는 이별을 막무가내로 끌고 오던 은결의 머리 위로 차가운 물이 떨어졌다. 그는 여전히 이별의 손을 꼭 잡은 채 발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우르르르 쾅!!!) 때마침 효과음으로 번개와 천둥이 쳐주고 하늘에서는 우렁찬 소리를 내며 비가 쏟아졌다.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게 웬만해서 그치진 않을 것 같았다. "이런." 은결은 떨어지는 비와 옆에서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이별을 번갈아 보다 이내 자신의 군청색 마이를 벗어 그녀의 머리 위에 씌워주었다. 이별은 자신의 머리 위에 느껴지는 온기에 땅에 둔 시선을 은결에게로 옮겼다. 머리를 긁적이며 장대비를 홀로 다 맞으며 미안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은결의 모습에 또 한 번 이별이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저기, 괜찮은데...." "너 비 맞고 감기 걸리면 내가 안 괜찮아." 해맑게 웃는 얼굴로 자상하게 말하는 은결의 말에 이별의 창백한 얼굴에 또다시 붉게 홍조가 띄워졌다. "…내 마이는 내 운명에게만 주는 거니까. 이 마이로 인해 너의 마음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직접적으로 고백 발언을 하는 은결의 말에 이별이 얼굴이 더욱 새빨갛게 변했다. 자꾸 심장에 자극을 주는 아이. 심장을 자극하는 만큼 자꾸 볼 수록 눈물을 나오게 하는 아이. 그리고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르는 아이. 은결은 자신이 말해놓고도 쑥스러운지 젖은 머리칼을 손으로 넘기며 주머니 속에 있는 펜던트를 꺼내 이별의 손에 쥐어주며 말을 이었다. "…너에 대해 천천히 알아가고 싶어. 내가 알아 가는 만큼 너도 천천히 내게 다가와 줬으면 좋겠어." 말을 끝낸 은결은 붉어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반대로 돌리곤 이별의 입에서 어떠한 대답도 나오기 전에 서둘러 그녀의 손을 잡고 어디론 가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은결처럼 붉어진 얼굴로 이별이 들릴 듯 말 듯 애매하게 그의 말에 대답을 했다. "Schiksal(운명)." . . [한결의 집] 세차게 내리는 비를 뚫고 은결이 이별을 이끈 곳은 자신의 집이었다. 이별은 의아함에 은결의 얼굴만을 바라보았고 비 맞은 머리칼을 손으로 털어 내던 은결은 이별의 시선에 피식 웃어주며 서둘러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인터폰을 통해 흘러나온 앙증맞은 여자아이의 목소리에 은결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별아, 오빠야." [엄마, 결아! 은결오빠 왔어!] 신이 난 듯 경쾌한 별이의 외침과 함께 대문이 철커덕 열렸다. 은결은 어리둥절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이별을 이끌어 집안으로 들어왔다. 현관에서 서서 말똥말똥한 시선으로 들어오는 은결과 은결의 손에 잡혀 끌려온 이별을 본 10살쯤 되 보이는 예쁘게 생긴 한 여자아이, 별이가 놀라 자지러지게 소리쳤다. "어라?! 엄마!!! 결아!!! 은결오빠가 여자 데리고 왔어!!!" "뭐?!!!" 별이의 다급한 외침에 부엌에서 동시에 두 사람이 쏜살같이 달려나왔다. 그리고 그 중 한 사람과 시선이 엉킨 이별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신과… 너무도 닮았다. 아직도 세 아이의 엄마라고 하기엔 20대처럼 너무도 젊어 보이는 은별 역시 자신의 동생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닮은 이별의 얼굴을 보고 놀란 듯 보였다. --------------------------------------------------------------------------------- 운영자 모집합니다~^^ 으으...; 드디어 은별 등장~ 히힛^^;; 댓글 6 개 이 글을...(0) 은하수 담편 궁금~^0^ 05.07.12 15:16 LOVE HOLIC 하하하.. 은별이 등장이군요. 한결씨는?? ㅎㅎㅎ 결이 별이.. ^^ 05.07.12 17:33 아로하 한결이 너무너무 보고싶어ㅜ.ㅜ♡ 그래두 은하가 더...*-_-* 05.07.12 17:57 ＃러브하늘〃♡ 음.. 뭐가 어떻게 된거지? ㅇ_ ㅇ? [바~ 보. -_-] 05.07.12 21:13 【天血面修羅劍... 출판사에 대한 여러가지를 알아보시고 안심되신다 싶으면 출판하세요 ;ㅂ; 05.07.15 19:07 천사님 책내주실꺼죠? 05.07.23 17:50 이전 1 다음 최신목록 목록 윗글 아랫글 '【 메시아완결 】───' 게시판의 다른 글더보기 제목 닉네임 날짜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8) ※ [에필로그(6)]'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7) ※ [에필로그(5)]'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6) ※ [에필로그(4)]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5) ※ [에필로그(3)]'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4) ※ [에필로그(2)]' +메시아+ 05.07.23 카페에서 공개한 게시글입니다.'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에필로그'키워드로 검색한 게시글 더보기 서비스 약관/정책권리침해신고카페 신고이용약관카페 고객센터검색비공개 요청 Copyright (c) Daum Communications Co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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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은별의 짓궂은 질문에 은결은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런 은결의 모습에 적응 안 된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며 결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현은결, 저 자식 꼴스럽게 얼굴 붉히는 것 봐라." 나이에 맞지 않게 도가 한참을 지나친 결의 말에 별은 정색을 하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결에게 엉겨 붙어 떼를 쓰듯 그를 다그쳤다. "으, 현결! 너 자꾸 은결오빠한테 형이라고 안 부를래?!" "윽! 현별, 무거워!! 아.. 씨. 알았으니까 그만 엉겨붙어! 사람 죽일 일 있냐?!" 말은 이렇게 해도 다른 누구의 말은 듣는 체도 안 하면서 별의 말이라면 정말 죽는시늉까지 하는 결이. 정말 누굴 닮은 건지, 원… 그나저나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은결이 멍한 이별을 데리고 거실로 들어왔을 때 현관문이 열리며 이젠 어엿한 H그룹의 사장으로서 일을 마치고 온 한결이 들어왔다. "아빠 왔다." 이미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된 한결의 모습은 아직도 20대 초반처럼 보였다. 이 집 사람들은 잘 늙지도 않는가 보다. "아빠~" "아, 재수탱이 왔네." 한결의 등장에 결의 옆에 서 있던 별이 폴짝 뛰어 한결의 품에 안겼고, 그런 별의 모습을 보며 결은 자신의 아빠라고 하기엔 너무 띠거운 듯 아니꼽게 한결을 바라보며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현결, 엄마가 아빠한테 그런 말 쓰지 말라했지?!" "재수탱이를 재수탱이라 부르지 뭐라 불러." "어휴, 결이 너!! 그러다 진짜 아빠한테 한 대 맞는다? 한결아, 왔어?" 결을 꾸짖다 안 되겠던지 은별은 돌아온 한결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의 인사에도 불구하고 현관에 선 채 요지부동하는 한결의 모습에 은별은 알았다는 듯이 픽 웃으며 이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결의 입에 살짝 입을 맞췄다. "우리 엄마, 아빠 잘 어울리지? 벌써 10년째 변함이 없어." 은결은 못 말린다는 듯이 멋쩍게 웃으며 멍하게 은별과 한결을 바라보는 이별에게 말했다. 그의 말에 이별의 다갈색 눈동자는 심각하게 흔들렸다. 행복해 보이는 한 가정. 그리고 사진 속 주인공의 해맑은 웃음... "이 하나의 행복을 위해서… 당신들의 사랑을 포기한 건가요? …당신들 정말 모두… 바보 맞네요… 정말 바보예요…" 갑작스럽게 이별의 눈에서 이슬 같은 눈물들이 툭툭 바닥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물에 은결은 당황한 듯 이별의 눈물을 닦아주려 손을 뻗었지만 이별은 그런 은결의 손을 저지하며 자신의 주머니 속에서 펜던트를 꺼내 펜던트 뒤쪽에 있는 숨겨져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단추를 찾아 꾹 눌렀다. "What's the sense of trying hard to find your dreams (꿈을 좇아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without someone to share them with. (그 꿈을 함께 나눌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Tell me, what does it mean? (말해 주세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Run away, No, I need you here, (멀리 가버리세요. 아녀요, 난 여기에 당신이 필요해요.) I need you here to wipe away my tears, to blow away my fears. (당신이 여기서 내 눈물을 닦아주고 내 불안을 떨쳐 주세요.) No, if you only know how much....." (내가 얼마나 당신께 달려가고픈 지 당신도 알면 좋으련만...) 천천히 펜던트 안에서 흘러나오는 서글프고 마음을 울리는 멜로디에 한결의 옆에 서 있던 은별의 귀가 반응을 했다. 아주 오래 전, 그 아이에게서 들었던 하나밖에 없는 노래… 은별은 한결에게서 시선을 돌려 눈물을 떨어뜨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이별과 시선을 마주했다. "…이 곡은?" 노래를 듣고 반응하는 은별의 말에 이별은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눈에 눈을 마주했다. 제발, 알아달라는 듯한... 그런 애절한 눈빛을 보내며... "어떻게 이 노래를… 태하가, 분명 태하가 부른 노래인데?" 펜던트에서 나오는 노래에 은별은 10년간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태하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입 밖으로 냈다. 그녀의 말에 한결의 시선 역시 이별에게로 옮겨졌다. 이별은 태하의 이름에 눈물을 닦곤 자그맣게 미소를 지으며 은별의 앞으로 다가가 자신의 손에 든 펜던트를 은별에게로 건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드디어 찾았네요… 이 펜던트의 주인… …저 대신 하늘로 간 태하 아저씨의 유일한 사랑...." ---------------------------------------------------------------------------- 하핫..;; 출판이라..=_=;;[허공에 뜬 상태로 소설을 쓰니..;;] 기분이 묘하군요^^ 드디어 태하의 죽음이.....[삐질] 댓글 16 개 이 글을...(0) 은하수 드디어 태하의 죽음이~^^;; 담편 궁금~^^ 05.07.12 15:31 빵ol 우와! 재밌어요`> < 이거 볼라고 가입까지 했답니다~ 05.07.12 16:38 레안ol♡〃 태하 ㅠㅠㅠ 태하가 탄 비행기 추락할때 서글프게 울었는데 ㅠㅠㅠ 05.07.12 17:02 이쁘늬토깽2 -ㅁ-태하 죽을때 정말 불쌍했는데... ㅜ_ㅜ 이별이는 그럼 누구? 05.07.12 17:12 LOVE HOLIC 결이가 너무 심하게 사악한 것 같아요... 엄마보고 호박아줌마라고 하지를 않나. 아빠보고 우리 집 재수탱이래// ㅋㅋ 하지만 죽은 태하가 등장하려니.. 좀 그렇네요.. ;; 05.07.12 17:37 아로하 태하가 등장하였구나...흑흑 은하도 언니!!<-...ㅉㅉ 05.07.12 18:01 ＃러브하늘〃♡ 아흑.. 드디어 태하의 불행한 죽음이.. ㅠ_ㅠ 이별아아~ 넌 비밀을 하는 게니? 05.07.12 21:15 귀여운 은결이... 다음편두 빨리 써주세여~~>_< 05.07.12 23:14 I LOV... 다음편 기대돼요~! 05.07.13 20:07 우주황태자부인 아우 원츄 ~ 원츄 ~ 05.07.13 20:10 SRHDIS 태하 너무 불쌍해 ㅜ_ㅜ 이별이가 뭔가 아는 것 같기도...;; 흠.. 그나저나 은별이가 태하의 사랑이었다니;; 05.07.13 21:09 Foreverlce‥☆ ㅠ-ㅠ..드디어.. 05.07.13 21:44 suim 이별이가 어떻게 모든걸 아는걸까..=_=;;; 신기..;;; 무슨 내용이 또 숨겨져 있을까;;; 05.07.14 10:57 유수는뽑뽀중-... 전에 스티커 사진 찍었던건가? 하툰 담편 원츄~!!!!!! 05.07.14 17:14 봉선화s 결이 너무 사악하다 ^ ^ ; 저렇게 개기다간 언젠가 ^ ^ 태하가 이별이 대신 비행기 늦게 타서 추락사로 죽은 거 아닌가 > < ? 막판에서 반전 죽음 보고 쇼크 받았어요 ㅠㅠ 이제 이별이가 뭔가를 말해주겠지 ㅠㅠ 05.07.15 19:02 천사님 결이 너무쪼아~ 05.07.23 17:51 이전 1 다음 최신목록 목록 윗글 아랫글 '【 메시아완결 】───' 게시판의 다른 글더보기 제목 닉네임 날짜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9) ※ [에필로그(7)]'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8) ※ [에필로그(6)]'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7) ※ [에필로그(5)]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6) ※ [에필로그(4)]'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5) ※ [에필로그(3)]' +메시아+ 05.07.23 카페에서 공개한 게시글입니다.'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에필로그'키워드로 검색한 게시글 더보기 서비스 약관/정책권리침해신고카페 신고이용약관카페 고객센터검색비공개 요청 Copyright (c) Daum Communications Corp. All rights reserved. 새로운 카페관리를 만나보세요. 바로가기 Daum 카페 음악샵 내 블로그 내 메일 내 쪽지 랜덤 〃♥ㅅl아랑 노올자~♬♥〃 cafe.daum.net/msacafe 식물(공개) | 회원수 1351 카페정보내 정보 가입 0 방문 4 새글 1 카페지기 시아。랑하l♥ 개설일 2004.03.30 프로필 손님 쪽지 0통 메일 0통 내 글 반응 휴대폰 카페 카페 초대 【 메시아완결 】─── 시아의 완결 소설이 있는 곳입니다. 최신목록 목록 윗글 아랫글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8) ※ [에필로그(6)] 글쓴이: +메시아+ 조회수 : 1065 05.07.23 10:31 http://cafe.daum.net/msacafe/1U3j/55 168. 이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은별의 표정이 오묘하게 일그러졌다. 자신의 귀가 잘못된 듯 싶다. 태하의 유일한 사랑이 자신이라니? 아니, 그보다도 독일에 있을 태하가 세상을 떠나다니? "잠깐. 태하가… 태하가… 뭐가 어쨌다고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은별의 말과 그녀의 어안이 벙벙한 표정에 이별은 생각지도 못한 은별의 반응에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다물었다. 설마… 정녕 10년 동안 아무 것도 몰랐던 것이었단 말인가. '하, 태하 아저씨. 당신… 정말 대단하네요… 그림자처럼 따랐던 친구의 여자이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말 한 번 못해보고 그저 멀리서 그들의 사랑을 지켜주며, 행복을 빌어주기까지 했는데… 그것도 모자라 죽으면서도 슬퍼할 당신의 사랑에게 당신의 죽음을 숨긴 건가요? 그렇게 당신의 유일한 사랑인 그녀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 나오길 바라지 않은 건가요?' 이별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이내 결심을 한 듯 천천히 눈을 감았다. 사랑한단 말 한 번 건네지 못한 당신의 사랑의 눈에서… ..........조금만, 아주 조금만.........눈물을 흘리도록 할게요. 이대로 아무도 모르면 평생을 찾는 이 없는 당신의 빈 빈소가 너무 쓸쓸하잖아요. "태하 아저씨는 이 세상에 없어요. 이미 10년 전 하늘로 가셨다고요!" 이별은 자신과 너무도 닮은 은별의 눈에 눈을 맞추곤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줘서 말했다. 10년 전에 하늘로 가다니? 한결은 그녀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잘 생긴 얼굴에 인상을 가득 찌푸렸고, 은별은 잠깐 당황했던 빛을 지우고 빙긋이 웃으며 대꾸했다. "아가씨, 장난이 심하네요. 10년 전에 태하가 죽었다고요? 우린 10년 전부터 내내 태하와 편지를 주고받고 했는걸요. 한 달 전에 태하가 국제 우편으로 보낸 편지도 있는 걸요? 아가씨가 어떻게 태하를 안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라고요?" 은별의 말에 이별은 흐르던 눈물을 닦아내며 놀란 듯이 크게 반문했다. 은별은 그저 빙긋이 웃으며 방안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예쁜 편지봉투를 가지고 나왔다. 그녀는 그 편지봉투를 이별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녀에게서 받은 편지봉투의 보낸 이의 명의엔 분명 민태하 이름 석자가 적혀있었다. 이별은 잠시 당황한 빛을 보이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편지봉투 안에 있는 편지를 꺼내보더니 이내 입은 허탈하게 웃으며 눈에는 눈물을 흘렸다. "…바보 현아저씨. 당신도 바보예요. 정말…" "채이별…"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리는 이별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은결이 자신의 넒은 품에 가냘픈 그녀를 소중한 보물처럼 꼭 안았다. 너무도 작고 왜소해서 금방이라도 바람처럼 허공에서 사라져버릴 것 같은 아이… 은결의 품이 너무 따뜻한 나머지 이별의 눈에선 장대비 같은 눈물이 쉼 없이 떨어졌다. "흑- 바보들!! 당신들은 정말 다 바보야!!! ....흡.... 자신의 죽음을 미리 봐 놓고도...... 자신의 사랑과 닮은 사람을 위해 죽은 그 사람도 그렇고..... 흐윽.... 자신의 사랑이 눈물을 흘릴까봐..... ....죽은 사람 대신 편지를 써 보낸 그 사람도 그렇고...... 하아.... 정말 다들 바보야....... 흡..... 10년 동안 그 사실도 모르고 변함없이 웃고 있는 당신들도 다 바보야… 흐윽…" "…아가씨?" "흡… 아주머니 모르시겠어요? 이 편지 안에 쓰인 글씨… 선우 현 아저씨 글씨잖아요!! …이렇게 말하는데도 모르시겠어요?" 눈물을 흘리는 이별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은별에게 이별은 너무 울어서 이젠 갈라지는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그녀의 가냘프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외침에 빙긋이 웃던 은별도, 인상을 찌푸리던 한결도 넋이 나간 듯 이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별은 체념한 듯 천천히 그리고 애처롭게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성 심장병이란 큰 병이 있었어요. 10년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1시행 독일행 비행기가 추락한 사건은 아실 거예요. 비행기에 탄 인원 모두가 숨진 대형사고였죠… 그 날, 전 심장수술을 받기 위해 독일에 수술 스케줄이 잡힌 상태였어요. 급하게 수술 일정이 잡힌 만큼 저의 아버지는 다급하게 비행기표 밖에 끊을 수 없었어요. 구할 수 있는 표는 독일행 비행기 1시표. 하지만 제 수술 시간에 맞춰 가려면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죠. 아버지는 사정을 하며 사람들에게 매달렸지만 모두 냉담하게 거절했어요. 그런데… 그런데… 태하 아저씨가 제 얼굴을 보자마자 제 비행기표와 자신의 비행기표를 바꿔주셨어요. ..........이미 자신의 운명을 알면서도…" 이별의 눈에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또 다시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이 새어나왔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소매로 닦으며 그녀는 자꾸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기 위해 붉은 입술이 파랗게 질릴 정도로 꾹 깨물곤 말을 이었다. "비행기표를 바꾸면서 태하 아저씨가 저에게 준 것이 바로, 제가 아주머니께 건넨 그 펜던트예요. 이제 본 주인을 찾은 거예요…" 은별과 한결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얼굴은 이미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은결 역시 납득하긴 힘든 것인지 이별을 안은 손이 심하게 떨려왔다. 그런 그들을 보며 이별은 슬프게 미소를 지었다. "심장이식은 성공했지만 이미 비행기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저는 병원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한 아저씨의 집으로 입양이 되었어요. 자신의 마지막 사랑과 닮았다는 그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아저씨는 몸도 성치 않은 저를 데려다 지극 정성으로 길러주셨어요. …선우 현 아저씨, 바로 그 분이요." "어떻게.... 어떻게... 그런.....!!!" 은별은 망연자실한 듯 아슬아슬하게 한결의 품안으로 쓰러졌다. 쓰러지는 그녀를 품에 안은 한결 역시 충격으로 온 몸이 후들후들 떨려왔다. 10년 동안이나 태하, 그의 죽음을 모르다니… 자신들이 받아왔던 편지가 현이 보내왔던 것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럴리가 없어… 그럴리가…" 은별과 한결, 그리고 은결의 눈에 투명한 눈물이 차 올랐다. 그들을 지켜보던 어린 별의 눈에는 영문도 모른 체 눈물이 매달려 있었고, 결은 그런 별의 눈물을 닦아주며 별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 속상한 건지 불만스럽다는 표시로 볼에 바람을 가득 넣은 체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별은 눈물을 흘리는 그들을 향해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펜던트 안에 있는 사진을 누르면 빈 공간이 있어요. 그 빈 공간 속에 태하 아저씨가 남긴 마지막 편지가 있어요." ---------------------------------------------------------------------------- 불쌍하고 착한 우리 현이...[퍽] 후후.. 다음편 반전을 기대하시라요~[꿍꿍이...=_=;;] 댓글 12 개 이 글을...(0) 니샤이 처음으로 글을 남기는군요........너무 재미있구요... 태하가 너무 불쌍해요... 05.07.14 19:54 I LOV... 넘 재밌고,넘 슬프구.....^-^ 05.07.14 20:18 신화영원사랑 태하야, 누나 마음으로 들어오렴~ ㅠ_ㅠ 05.07.14 20:28 소희님 슬퍼요ㅜㅜ 05.07.14 20:38 LOVE HOLIC 현이가 참 착한일을 했군요.. ;; 불쌍한 사람들.. ㅜㅜ 05.07.14 21:47 +메시아+ 에필로그, 저도 쓰면서 마음이 많이 아프네요. 하핫, 뒷부분으로 갈수록 아마 생각하지 못하셨던 또 다른 반전이...^ ^ 05.07.14 23:47 god는 영원하다 으아악..너무슬프당..번외가이렇게 슬프다닛..ㅠ 05.07.15 11:30 은하수 태하~~ 현이도 많이 힘들었겠당~~ 담편이 궁금하네요~^^ 05.07.15 14:58 원조수다걸 태하가 불쌍..ㅠ_ㅠ 05.07.15 15:00 봉선화s 또, 반전이다 ^-^ 이제 반전에 익숙해질 때도 되었는데 ㅠ_ㅠ 그러고보니 태하도 미리 운명을 아는 능력이 ㅜ 은결이랑 이별이도 운명인가봐요 ; 인연이 얽히고 설켰네요 ㅜ 05.07.15 19:05 사랑해q 헝헝.ㅠㅠ 태하야~ 05.07.22 11:14 천사님 완죤 반전 소설이네여 05.07.26 12:01 이전 1 다음 최신목록 목록 윗글 아랫글 '【 메시아완결 】───' 게시판의 다른 글더보기 제목 닉네임 날짜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70) ※ [에필로그(8)]'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9) ※ [에필로그(7)]'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8) ※ [에필로그(6)]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7) ※ [에필로그(5)]'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6) ※ [에필로그(4)]' +메시아+ 05.07.23 카페에서 공개한 게시글입니다.'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에필로그'키워드로 검색한 게시글 더보기 서비스 약관/정책권리침해신고카페 신고이용약관카페 고객센터검색비공개 요청 Copyright (c) Daum Communications Co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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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 봐." 곱게 접혀진 종이를 손에 잡은 체 망설이는 은별을 보며 한결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의 말에 은별은 망설이던 손으로 그 낡고 바랜 종이를 바스락거리며 열었다. 「내일이면 나의 생일… 그리고 난 독일로 아버지를 찾아 먼길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 아이도 이젠 어엿한 한 남자의 신부가 되는 날… …꿈을 꾼다. 며칠째 반복되는 꿈. 심장병에 걸린 한 여자아이의 아버지가 아이의 수술을 위해 비행기표를 바꿔달라 사정을 하는데 난 그 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무엇 때문인지 그 아이의 비행기표와 내 비행기표를 바꿨다. 그리고 바꾼 비행기표로 비행기를 탄 난 비행기 추락사로 세상을 등지게 된다… 자꾸만 불안해지는 이 기분… 마지막일 거란 생각이 내 머릿속을 맴돈다. 정말 마지막일까? …마지막이라면 그 아이에게 단 한 번이라도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아니, 부질없는 생각이겠지… 이미 한결이와 어렵게 행복을 찾은 아이를 더 이상 아프게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림자처럼 지켜만 보는 사랑이 더 이상은 숨기기가 어려워… 이제는 그만 그 아이의 곁을 떠나려 한다. 길고도 짧은 4년이란 세월. 그 아이를 사랑할 수 있어 하늘에 처음으로 감사한다. 행복해라, 행복해라.... 수백 번을 그 아이를 위해 빌어보지만… 내게 돌아오는 답은 없다. 그림자 사랑… 그것이 나의 운명인 걸까? ....하늘에 감사하는 만큼 죽도록 하늘을 원망한다. 왜 하필… 왜 하필… 내가 사랑해서는 안 될 아이일까? 하아- 만약 아버지처럼 천년을 기다리면… 정말 천년을 기다린다면… 채은별… 그 아이도 날 한 번만이라도 바라 봐줄까? …눈도, 귀도, 입도, 머리도.... 그리고 가슴마저 속여왔던 사랑. 채은별..... 천년이란 세월, 하늘에 걸고 잊지 않고 널 기다릴 거다. 그러니까… 다음 생애엔 말이다… 아니 다음 생애가 안 된다면 그 다음 생애라도… 날 기억하진 못해도… 한결이에게 보내주던 눈빛으로… 그렇게… 그렇게… 내게 한 번만… 한 번만 널 떳떳이 사랑할 수 있게 기회를 줘… 사랑한다... 사랑한다....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너 하나만을 사랑한다.....」 애절한 편지 한 통엔 말못한 태하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아버지에게도, 심지어 어머니에게도… 태어나면서부터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다.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누구보다도 남을 사랑해주던 아이다. 혼자서, 외롭게 그림자처럼 은별과 한결의 사랑을 지켜주던 아이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은 전혀 비춰 보인 적이 없는 굳센 아이… 친구의 사랑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가슴 깊숙이 묻어버린 강한 아이… 죽음마저 홀로 감춰버린..... .... ......미련스러울 정도로 착한 아이… "태하야.. 흐읍... 태하야!!!... 어떻게... 어떻게.... 흡...." 충격으로 읽던 편지를 손에서 떨어뜨린 은별의 눈에서 비가 내리듯 흐르는 차가운 눈물들이 거실 바닥을 적신다. 가슴이 찢겨나갈 것 같았다. 아무 것도 모른 은별,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전혀… 아니, 절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바보 같은 아이… 착해서… 너무 착해빠져서 자신의 행복은 이미 안중에도 없는 아이를 어쩌면 은별 자신이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일지도 모른다. "엄마, 엄마 울지마." "현별, 그만 울고 방에 들어가자." 눈물을 쏟아내는 은별의 눈물에 그녀의 치마 자락을 잡고 별이 울먹거리며 말했다. 눈치 빠른 결은 자신들이 끼어 들 자리가 아니란 것을 안 것인지 그런 별의 손을 잡고 자신들의 방으로 이끌었다. "민태하… 젠장!!! 그런 거였냐…정말 그랬던 거냐!!!!" 은별의 다갈색 눈동자가 공허한 빛을 띠는 만큼 한결의 눈동자도 공허해졌다. 가끔씩, 정말 아주 가끔씩 은별을 향해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태하의 눈이 한결의 머리 속을 맴돈다. "바보 같은 녀석… 젠장, 미련스러운 녀석!!!" 한결의 눈시울은 이미 토끼 눈처럼 벌개졌다. 바닥을 향해 떨어지는 굵은 눈방울들이 가슴 아프다. 그렇게 자신의 사랑을 숨겨왔다니… 자신의 사랑을 숨기면서까지 한결의 사랑을 지켜주었다니… "태하 아저씨는… 죽음까지 숨길 정도로 아주머니를 사랑했어요." 이별은 멍하게 눈물을 흘리는 은별과 한결을 향해 다시 말을 꺼냈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를 발견한 은결이 떨어진 편지를 주워들더니 반대편으로 돌렸다. 그리고 거의 편지지 끝엔 다급하게 적힌 듯한 글씨들이 눈에 들어왔다. 「비행기표를 바꾼 은별일 닮은 이별이란 아이의 얼굴에서 은결이의 얼굴을 보았다. 그 아이들의 운명(運命)을 위한 희생… 어쩌면 의미 없이 사는 것보다 값진 죽음…」 비행기 안에서 다급하게 쓴 듯 휘갈겨 쓴 글씨에서 은결의 운명을 위해 대신 자신을 희생한 태하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 했다. 10년도 더 된 편지지만 편지 한 장에 태하의 체취가 아직도 남아 있는 듯 했다. 그 남겨진 짧은 글을 본 은별은 더욱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함께 눈물을 흘리던 한결이 보다보다 못 보겠던지 은별을 가슴 깊숙이 안아버린다. 하지만 마음이 너무 여린 은별이 눈에선 눈물이 그치질 않는다. "그만, 이제 그만 우세요. 아주머니." "…태하, 태하야…" 그래서… 태하도 현도 그렇게 필사적으로 은별의 눈물을 막기 위했던 걸까? 이별은 함께 눈물을 쏟아지려는 것을 참으며 꿋꿋하게 말을 꺼냈다. "아주머니가 우는 걸 태하 아저씨도, 현 아저씨도 바라지 않아요." "흐읍...." "아주머니가 울면 하늘도 울어요. 이제 그만… 그만 우세요." 한참을 눈물을 쏟아내던 은별은 이별의 말에 그녀에게 시선을 돌리며 간절하게, 애절하게 이별에게 애원하며 말을 이었다. "흡- 태하야… 우리 불쌍한 태하... 아가씨... 태하, 무덤이라도 있나요?" "…네." "어디에? 어디에…" "현이 아저씨가 알고 있어요…" "그럼, 우리를 현이에게 데려다줘요. 지금…" -------------------------------------------------------------------------- 어째, 점점 새드모드가 되어가네요..=_=;; 불쌍한 태하... 불쌍한 우리 현이~ 댓글 26 개 이 글을...(0) 빵ol ㅡㅜ 둘다 넘넘넘 불쌍해요. 05.07.15 15:30 은하수 현이의 오랜만의 등장~^^ 그뎅 현 어디 아픈나요?? 아까전편에 몸이 성치않다고 하는뎅~~ 담편 궁금~^0^ 05.07.15 15:37 육아일기＃ 오늘 등업이되서 다봤써요 ㅇ_ㅜㅜ !! 태하하고 현이가 진짜 불쌍해요 ㅜ ㅜ !! 다음편 원츄요 +ㅠ + ~ 05.07.15 15:59 love〃 담편원츄~~ 05.07.15 16:13 I LOV... 넘 슬퍼요~! 그런데 왜 별이하고결이가 태어난 이야기가 없어요? 05.07.15 17:36 하나마눌 태하 어뜩하냐?ㅜㅜㅜㅜㅜ; 진짜 새드모드가 되간다T^T 05.07.15 17:50 촛불 ㅠ ㅠ 태하랑현이 넘 불쌍하다 ㅠ ㅠ 05.07.15 18:05 LOVE HOLIC 너무 불쌍해요. ㅠㅠㅠㅠㅠㅠㅠㅠ 05.07.15 18:28 희망의주문aa 이제 에필로그도 끝날떄가 다되가네요,,, ㅠ_ㅠ*/// 그리고 태하하고 현이 너무 불쌍! 05.07.15 18:29 니픈사랑찾아乃 아.... 영원히 숨겨질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05.07.15 18:52 봉선화s 울고 싶다 ㅡㅡ 이런 우울 모드 싫은데 ㅜㅜ 태하의 운명이 너무나 불쌍하다 ^ ^ 모두한테 사랑받지 못했다는 거 진짜 슬픈건데 ^0^ 에필 8 빨리 올려주세요 ㅇ_ㅇ 05.07.15 19:07 【天血面修羅劍... 우에엥 ㅠ-ㅠ 05.07.15 19:11 소희님 ㅜㅜ 슬퍼요 05.07.15 19:52 기분째지는날 ㅠ_ㅠ..불쌍해요..태하가 죽다니...ㅜ,.ㅜ!!!우째 이런일이!!! 05.07.15 20:24 냥이냔♪ 드뎌..ㅠ_ㅠ..우리 불쌍한 태하가..ㅠ_ㅠ...흑흑..... 05.07.15 21:23 +메시아+ 냥아-_-; 나중에 반전 보고 날 죽이려 들지 말아죠;;; 05.07.15 22:29 레안ol♡〃 반전+ㅁ+// 태하가 살아있나요 ? +ㅁ+// 05.07.15 23:12 +메시아+ 하하^^; 그..럴리가;;;^^;;;; 05.07.16 11:58 샤방이 드디어 태하의 죽음이 발켜지는 군요. 05.07.16 16:48 큐트시연☆ 태하역시 ` 마지막 까지 멋있네요 ^ ^ 05.07.16 18:11 ＃러브하늘〃♡ 으흑.. 너무 불쌍해요~ 태하.. 현이도.. ㅠ^ㅠ 05.07.16 19:11 purify 이게 완결은 아니죠? ㅠㅠ;; 05.07.17 01:40 아이리스 근데 이별이한테 준 팬던트는 비행기속에서 편지를 썼던 팬던트랑 다른거 아닌가요?? 그럼 이별이가 그 팬던트를 가지고 있지 않을텐데; 05.07.19 00:28 윤호내꼬야 역시 태하입니다....ㅠ.ㅠ 05.07.19 14:53 천사님 ㅠㅡ ㅠ 반전이 조았는데... 이젠 시로요 05.07.26 12:03 ♥OI쁜냔a〃 ㅠ0ㅠ 재밌긴 한데 너무 슬프네요 ~ 05.09.15 08:13 이전 1 다음 최신목록 목록 윗글 아랫글 '【 메시아완결 】───' 게시판의 다른 글더보기 제목 닉네임 날짜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71) ※ [에필로그(9)]'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70) ※ [에필로그(8)]'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9) ※ [에필로그(7)]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8) ※ [에필로그(6)]'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7) ※ [에필로그(5)]' +메시아+ 05.07.23 카페에서 공개한 게시글입니다.'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에필로그'키워드로 검색한 게시글 더보기 서비스 약관/정책권리침해신고카페 신고이용약관카페 고객센터검색비공개 요청 Copyright (c) Daum Communications Corp. All rights reserved. 새로운 카페관리를 만나보세요. 바로가기 Daum 카페 음악샵 내 블로그 내 메일 내 쪽지 랜덤 〃♥ㅅl아랑 노올자~♬♥〃 cafe.daum.net/msacafe 식물(공개) | 회원수 1351 카페정보내 정보 가입 0 방문 4 새글 1 카페지기 시아。랑하l♥ 개설일 2004.03.30 프로필 손님 쪽지 0통 메일 0통 내 글 반응 휴대폰 카페 카페 초대 【 메시아완결 】─── 시아의 완결 소설이 있는 곳입니다. 최신목록 목록 윗글 아랫글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70) ※ [에필로그(8)] 글쓴이: +메시아+ 조회수 : 1025 05.07.23 10:31 http://cafe.daum.net/msacafe/1U3j/57 170. 먹구름들이 푸른 하늘을 감춰버린 우울한 날… 아직도 하늘에서는 거센 비를 지상에 고루 뿌리고 있었다. "좌회전해서 쭉 가세요." 이별의 지시에 따라 차를 타고 현의 집으로 향하는 은별과 한결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13년만에 만나는 현이기에 은별의 슬픈 눈동자에는 기대감이 맴돌았지만, 한결은 아직도 현을 만나는 사실이 꺼림칙해 보였다. 뒷좌석에 이별과 단 둘이 앉은 은결은 은별과 마찬가지로 어릴 적 자신을 돌봐주던 현을 만난다는 사실에 약간은 설레어 보였다. "여기예요."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이별의 한 마디로 한결이 몰던 차를 급하게 세웠다. 긴장되는 기분을 안고 이별을 뒤따라 차에서 내린 그들의 눈엔 아담하면서도 예쁜 정원이 있는 마치 동화 같은 집이 보였다. (딩동-) 대문 앞에 선 이별은 초인종을 눌렀다. 벨소리가 나온 지 3초도 되기 전에 달칵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달칵-) 이별이니?!" 기다렸다는 듯이 급하게 튀어나온 현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이별은 미안스러운 것인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네, 아저씨. 저예요." 이별의 대답과 함께 철컥 소리를 내며 대문이 열렸고, 그녀는 한결과 은별, 은결을 인도해 집안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저씨… 손님이 오셨어요." 현관에 들어선 이별이 거실에서 초조하게 그녀를 기다리는 현에게 말했다. 13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현은 은하를 닮은 수려한 외모는 그대로였지만, 고단한 모습이 눈에 띠고 드러났고 예전보다 많이 수척해 보였다. 그는 이별의 뒤로 따라 들어온 은별과 한결, 그리고 은결의 모습에 놀란 듯 입을 다물지 못 하고 눈이 커진 체 그들을 바라보았다. "채은별…?" "…현아." ".......어떻게.....?!" 현의 시선이 그녀의 붉게 충혈된 눈에서 그녀의 손으로 옮겨졌다. 그녀의 손에는 그 동안 현이 죽은 태하를 대신해 그가 태하의 행세를 하며 보냈던 편지들이 들려있었다. 현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낙담한 듯 웃으며 허탈하게 말했다. "결국은.... 알게 됐구나." 현의 말에 은별은 손에 든 편지를 우수수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녀의 눈물샘은 지치지도 않는지 또 다시 투명한 눈물을 내보냈다. 현의 앞으로 다가간 은별은 그의 와이셔츠 자락을 잡은 체 오열하며 외쳤다. "흐윽.... 이 바보야!!! 알면서… 알면서 왜 말 안 한 거야?!!!! 그렇게 태하인 척 감추면… 그렇게 감추면… 내가 좋아할 것 같았어?!! 아무 것도 모른 체 웃고 있는 나를 보며 하늘에 있는 태하는… 태하는… 나를 지켜보며 얼마나 마음 아파했을까… 흡…" "채은별…" "흡… 너도 그래… 너 정말 나빴어…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때 돌아온다면서!!! 13년 동안 그렇게 연락 한 번 없이 지내니까 좋았어…? 너 그렇게 독일로 보내버리고 내 마음은 편했을 줄 아냐고!!!" 은별의 절규 어린 외침에 뒤에서 지켜보던 한결은 고개를 떨궜다. 세 아이를 키우며 항상 웃고 행복해하던 은별의 가슴속에는 선우 현이란 상처 자국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것이다. 현은 아직도 변함이 없이 눈물 많고 여린 은별을 두 손으로 안아주었다. "지금도 이렇게 많이 우는데… 며칠을 아니, 몇 달을 계속 눈물 흘릴지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안 숨길 수가 있겠니…? 현한결도 내 상황이었다면 나처럼 민태하의 죽음을 숨겼을 거야. …이제 내가 위로해줄 수 있는 한도는 여기까지, 나머지는 현한결 몫." "흡- 현아...." 현은 가녀린 은별의 등을 위로하듯 몇 번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다 이내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그녀를 한결의 품으로 보내주었다. 한결의 품에 안겨서도 여전히 자신에게 시선을 둔 은별을 바라보며 현은 예전과는 달리 빙긋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이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돌아왔어. 친구하자. 채은별." "…현아." "뭐해? 친구하기 싫은 거야? 악수는 해야할 것 아냐. 음, 현한결이 걸리는 건가? 악수정도는 허락하지, 현한결?" 은별에게서 시선을 돌려 한결을 바라보며 웃는 현의 눈동자에서 은별은 보지 못했지만 한결은 뚜렷하게 보았다. 아직도 변함없이 은별을 사랑하고 있는 현의 애틋한 마음을…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이지 않기 위해 한결을 바라보는 현의 눈동자를… "현한결, 치사하게 정말 허락 안 하는 거야?" 대단한 녀석. 사랑은 지우지 못했지만 눈물은 지운 강한 녀석. 현의 사랑을 집착이라 치부했던 한결은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13년이란 긴 세월동안 홀로 대답 없는 사랑을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현은 이젠 눈물은 지우고 웃음으로 미래를 기약하고 있다. 한결은 자신을 바라보는 은별을 향해 허락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은별은 천천히 손을 들어 현이 내민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이제 우린… 친구야." 13년만에 잡아본 현의 손은 따뜻하면서도 사람의 온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헌데, 친구란 그 말이 왜 이리도 서글프게 들리는 것인지… 또 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은별이다. "아빠…" 그런 그들을 지켜보던 은결이 나지막하게 현을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이젠 어느 정도 굵어진 목소리에 현은 고개를 돌려 자신만큼 자라버린 은결을 바라보았다. 13년이란 세월이 길긴 길었나 보다. 한얼보단 한결을 빼다 박아 놓은 듯한 은결의 외모에 현은 빙긋이 웃었다. "많이 컸구나. 은결아." "아빠…" "건강하게 자라줘서 고맙구나. 은결아… 이별이를 맡길 수 있을만큼 듬직하게 자라줘서 고맙다." "…아... 아저씨...////" 딸을 사위에게 부탁하는 듯이 말하는 현의 억양에 이별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그런 이별의 손을 꼭 잡으며 은결이 확신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이별이를 키워주셔서 고마워요, 아빠! 이 한 몸 다 받쳐 사랑해 줄 거예요!" "풋, 성급한 건 누구를 꼭 빼다 닮았구나." 현의 뼈있는 말에 한결이 지레 움찔거린다. 여전히 마음에 안 드는 녀석. 끝까지 자신을 약 올리는 현이 얄미운 한결이다. "그런데… 현아." 은별의 힘없는 목소리에 다시 시선을 은별에게로 돌리는 현. 그를 향해 그녀는 꼭 알아야겠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태하 무덤은… 네가 만들어 준거니?" "............" 그녀의 말에 현은 사색에 잠긴 듯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침묵의 시간, 묘한 분위기가 맴도는 가운데 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후… 조금은 너희들에게 충격적인 말이 될지 모르겠다. 민태하의 무덤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민태하의 숨겨진 쌍둥이 동생이 만들었어." ------------------------------------------------------------------------------- 냐하하^^ 과연 태하의 숨겨진 쌍둥이 동생은 누구란 말인가~ 맞히는 사람 뽀뽀~> 3< (단, 은하수냥 빼고~//ㅅ//) 댓글 24 개 이 글을...(0) 외로운수깔 ㅡ.ㅡ;;;;;;;;;;;; 점점 머리아파지게 베베꼬이는 소설 -_-;;;; 05.07.17 14:58 +메시아+ 나의 특기지롱-ㅅ- 후후.. 소설 내용을 꼬기 좋아하는 나~>_<[돌 날라온다] 05.07.17 15:02 love〃 진짜 머리아프네요;;ㅜ0ㅜ; 05.07.17 15:19 LOVE HOLIC 쌍둥이가 누구에요??? 점점 흥미 진진.. ㅋㅋ 05.07.17 15:20 최기윤 혹 이소설에서 본것은 아니겠죠? ㅎㅎ 05.07.17 16:53 +메시아+ 후후^^ 누굴까요~? 05.07.18 18:24 샤방이 헉 쌍둥이? 05.07.17 17:31 큐트시연☆ 태하야아 ~ ㅠ_ㅜ 돌아와 ~ ㅠ_ㅠ ㅋㅋ 05.07.17 18:24 육아일기＃ 쌍둥이 동생 ........ ? 아악 >__< 05.07.19 22:38 사랑해q 우와우와웅와 +_ + 도데체 누구일까? 05.07.22 11:19 날개 달린 천사 잠시만 기다리세요..제가 맞추겠어요..^^후훗..하지만 전 시아님의 뽀뽀보단..시아님의 휴펀 번호가...ㅡ.ㅜ? 05.08.11 13:18 날개 달린 천사 정답은..사군자현 아찌~~!! 맞져??그니깐 시아님의 휴대폰 번호 가르쳐 주세요.~~!!ㅜㅜ네??ㅜ.ㅜ 05.08.11 13:20 이전 1 다음 최신목록 목록 윗글 아랫글 '【 메시아완결 】───' 게시판의 다른 글더보기 제목 닉네임 날짜 [완결편♡→]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72) ※ [에필로그(10)]'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71) ※ [에필로그(9)]'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70) ※ [에필로그(8)]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9) ※ [에필로그(7)]'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68) ※ [에필로그(6)]' +메시아+ 05.07.23 카페에서 공개한 게시글입니다.'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에필로그'키워드로 검색한 게시글 더보기 서비스 약관/정책권리침해신고카페 신고이용약관카페 고객센터검색비공개 요청 Copyright (c) Daum Communications Co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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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와 함께 찾아간 태하 아저씨 무덤에 있던 비석에 걸려 있었어요. 현이 아저씨께서 무덤을 만드시고 유품으로 걸어놓으신 것 아니었어요?! 설마…" "그래… 나도 그 땐 너에게 혼란을 주고 싶지 않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무덤은 내가 어렵게 수소문해서 찾은 무덤이었고 만든 사람은 따로 있었지. 나도 처음엔 그저 유골을 회수한 카톨릭 교인들이 만든 것쯤이라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의문이 생겼어. 과연 만든 교인들이 매년 기일마다 날짜를 맞춰 꽃을 놓고 가고 가끔 들려 벌초까지 할까? 혹시나, 민태후 아저씨가 만든 것은 아닐까 해서 조사를 하던 도중에 만나게 되었어. 출생 때부터 어쩔 수 없이 숨겨진 민태하의 쌍둥이 동생을 말이야… 그 사람이 때가 될 때까지 비밀로 해달라기에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사색에 잠긴 현의 다갈색 눈동자는 예전의 은하의 눈동자처럼 깊어 보였다. 시니컬한 웃음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는 평화로워 보이는 얼굴. 은별은 그런 그의 얼굴이 마치 은하를 보는 듯해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한결은 아무래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현에게 되물었다. "하지만 태하는 호적상으로도 외아들이야. 그리고 태하 역시 전혀 쌍둥이 동생에 대한 존재를 몰랐었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야. 민태하의 쌍둥이 동생은 태어나자 마자 민태후 아저씨가 직접 다른 집으로 입양했으니까. 쌍둥이 동생의 말로는 자신은 오래 전부터 민태하를 알아왔지만 민태하는 쌍둥이 동생인 자신에 대한 존재를 전혀 몰랐다 했으니까." 한결은 현의 말에 믿지 못 했던 사실이 진실로 다가왔다. 말하는 현을 지켜보던 그는 조금은 숙연해진 모습으로 뜸을 들이며 말했다.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모두에게 시선을 주며 다시 말을 꺼냈다. "물론. 마침 그 사람이 이별이를 보기 위해 한국에 왔거든." * * * [** 국립묘지] 현이 모두를 이끌고 온 곳은 태하의 무덤이 있다는 묘지였다. 각각의 묘지를 방문한 몇몇 사람들만이 있는 그 곳은 침묵 그 자체였다. 현은 묘지 안에 있는 납골당 안으로 모두를 안내했다. 한 젊은 남자가 향을 들고 있는 것 외엔 납골당 안은 숨소리 하나 없이 조용했다. "…우리의 인연은 그 때 끝난 것이 아닌가 보군요. 채은별씨. 그리고… 이별양." 그 침묵을 깬 것은 향을 피우고 있던 한 남자의 차분한 목소리였다. 남자는 경건하게 고개를 숙여 짧게 묵념을 하고는 불을 붙인 향을 향로에 꼽고는 납골당 문 앞에 모여있는 그들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아저씨는?!" 그의 얼굴을 본 순간, 은별과 이별이 눈이 커지며 동시에 소리를 쳤다. 180cm가 넘는 큰 키에 흐트러짐 하나 없이 단정하게 검정색 양복을 입고 백옥같이 하얀 피부에 눈썹 위까지 덮는 결 좋은 보라색 빛 도는 머리칼과 연한 회색 빛 눈을 가진 여전히 조각같이 수려한 외모를 지닌 남자… ‘인연과 필연. 너와 나의 만남은 우연 아닌 필연. 우리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지만. 난 길잡이. 그리고 넌 길을 찾는 자. 하지만 가끔은 뒤에서 널 지켜보는 그림자도 돌아봐 줘.’ 13년 전 현에 의해 한결을 져버린 태하를 찾던 그 날. 명문고를 찾아갔던 은별에게 도움을 주었던 남자가 분명했다. 그 묘하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있기에 은별은 쉽게 기억을 떠올렸다. "사군자현?!" "군자현 의사 선생님!" 은별이 소리침과 동시에 이별 역시 군자현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영문을 모르는 현과 한결, 그리고 은결은 눈만 깜박거리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군자현은 생각을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을 한 체 이별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은별에게 시선을 돌렸다. "당신의 선택에 후회도, 방황도, 그리고 눈물도 없었나 보군요. 다행입니다. 우리의 인연은 13년 전에 끝난 줄 알았건만…" "어째서 당신이 이 곳에…" "내가 이 곳에서 당신을 만났다는 것은 하늘에 있을 나의 형, 민태하가 자신의 죽음을 드디어 밝히도록 허락했다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정말 당신이 태하의 쌍둥이 동생?" "맞아요. 제가 당신들이 찾는 민태하의 이란성 쌍둥이 동생이에요." 말을 마친 군자현은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려 불에 타 재를 내는 향을 바라보았다. 은별은 할 말을 잃고 눈에 초점을 잃은 체 멍하게 군자현을 바라보았다. 그런 은별 옆에 서 있던 이별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심하게 몸이 떨려왔고 이윽고, 차가움으로 포장된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쏟아졌다. "군자현 선생님. 어떻게… 어떻게… 선생님이 태하 아저씨의 동생인 거예요?!" 이별의 절규 어린 외침에 새로운 향에 불을 피우던 군자현의 손이 멈칫 했다.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눈물을 떨구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선생님께서 그러셨잖아요. 제게 심장을 주시는 분은 선생님의 아버지라고… 그럼 제 심장수술 기증자는… 제 심장수술 기증자는… 저를 위해 목숨을 버린 태하 아저씨의 아버지란 소리잖아요!!" --------------------------------------------------------------------------- 참고로 군자현은 132편에 잠깐 출현했던^^ 인물이랍니다~ 기억나시는 분은 귀염둥이>_<)/// 이제 곧 에필로그도 막을 내리겠군요.. 훗... 마지막까지 반전이....(?) 댓글 19 개 이 글을...(0) 분홍잎삭 역시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습니다.^^ 올라오자 마자 보는 재미도 쏠쏠 한 듯 싶군요. 반전이라.. 기대됩니다. 05.07.19 22:00 마르 에구.. 정말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소설, 그 마지막 반전은 또 뭘까요? 05.07.19 22:35 봉선화s 시아님, 반전이 너무 많네요 ^ ^ 골 아퍼요 >_< 그럼, 이별이 심장은 민태후의 심장이란 말인가요 ^ ^ ? 05.07.19 22:44 냥이냔♪ 언뉘-ㅁ-.....먼 반전이 이케 마너=ㅁ=...;;; 05.07.19 23:43 +메시아+ 내 특기잖어~_~ 후훗~ 마지막편 기대해줘~ 아마도....[먼 산] 05.07.20 11:28 희망의주문aa 이런 ,,,, 근데,, 마지막 반전은 뭘까요??? 05.07.20 08:24 love〃 왜 이리 반전이 많나요... 슬슬 머리가 아픈데;; 05.07.20 10:11 +메시아+ 이제 큰 반전은 다 끝났고요^^ 마지막편에 살짝~ 05.07.20 11:29 빵ol 역시역시 재밌어요~ 05.07.20 11:17 윤호내꼬야 재미있어여~^^ 05.07.20 11:53 은하수 헉!! 부자가 이별이을~~와우~담편의 마지막 반전 궁금하네요~^0^ 담편 궁금~~^0^ 05.07.20 13:53 외로운수깔 ㅋㅋㅋㅋ 반전녀구만 ㅡ,.ㅡ;;;;;;; 05.07.20 13:59 LOVE HOLIC 그 군자현이라는 사람이 태하 동생이었군요.. ;; 그런데 심장 기증한 사람이 현한준씨의 친구 민태후씨였단말이에요.?? 대반전이군요.. ㅎㅎㅎ . 아.. 그리고 출판계약 성사되셨다면서요?? 정말 축하드려요.. 책나오면 돈 모아서 꼭 살게요... ^^ 05.07.20 15:20 ＃러브하늘〃♡ 컥! 그럼 태후 아저씨가! 이별이에게 심장을 이식해 준 사람?! 사군자현은 태하 동생이고.. 아.. 어려워! @_ @* 05.07.20 18:40 레안ol♡〃 아아 ㅠㅠ 그사람 기억 나써요 +ㅁ+// 05.07.21 00:46 시비니 정말 반전이 많네요..... 사군자현 이사람이 왜 잠깐 스쳐가나 했더니..... 여기에서 드뎌 등장했네요.... 정말 재밌어요 05.07.21 10:48 사랑해q 맞아요 맞아요 +_ + 재밌어요>_ < ㅋㅋ 근데 조금씩 헷갈리는 부분이@0@ 이해안가는 부분도 많고 ㅠ_ㅠ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지.훗ㅋ 그럼 다음편도 기대하면서 저는 육아일기 첨부터 다시보러 가겠숩니다.ㅋ 05.07.22 11:22 육아일기＃ 재밌써요 ~ >ㅁ _< 05.08.29 22:01 곰탱이a 흑흑 ㅠㅠ 이거 소설책으로 3편 다읽구요,, 몇번 중간에 많이 울었어요 ㅠㅠ 더 이어졌으면 좋을것만,,, 05.09.09 19:24 ♥OI쁜냔a〃 ><진짜 재밌어요 ^ ㅇ ^ 결말 마음에 드네요 ~ 태하의 " 그럼요. 천년을 기다렸습니다. 채은별씨 " ㅠ ^ㅠ 감동 이빠이 먹음 ~ 05.09.15 08:22 섹시한그녀♡ 오오~ 태하가 1000년을 기다렸으니까 은별이랑 예쁜사랑을 하구 그럼 한결이는 어쩌죠? 05.10.09 13:27 날 위해 써줘... 정말 멋지고 재밌는 소설이에요^-^ 05.10.27 19:58 ㆀ종이인형ㆀ 소설책으로 봤는데 정말 내용이 알차고 기억에 남아요...정말 멋진소설이였습니다...ㅡ.ㅠ 05.11.23 22:31 사랑해q 으악, 천년을 기다렸다니, 다시 보고 또 보지만 역시 멋져요, 온몸에 소름이 화악 돋아요<< 이상하다는건 아니에요.< 그저 너무 멋져서... ;ㅁ; 06.01.03 13:31 미나♡ 와아 지금 책읽구 잇는데 역시 잼잇습니다 진짜 감동이에용 06.07.08 15:57 이전 1 2 다음 최신목록 목록 윗글 아랫글 '【 메시아완결 】───' 게시판의 다른 글더보기 제목 닉네임 날짜 [번외편♡→] [특집] 그들과의 인터뷰~♬' +메시아+ 05.07.26 [완결편♡→]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72) ※ [에필로그(10)]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71) ※ [에필로그(9)]'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70) ※ [에필로그(8)]' +메시아+ 05.07.23 카페에서 공개한 게시글입니다.'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에필로그'키워드로 검색한 게시글 더보기 서비스 약관/정책권리침해신고카페 신고이용약관카페 고객센터검색비공개 요청 Copyright (c) Daum Communications Co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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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썹을 치켜들며) 우선 한결씨께 질문 하나 할께요. 요새 들어서 많이 망가지시던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한결: (빠직) 좋을 리가 있겠냐-_-^ 네가 망가트리는 거잖아!!! 시아: 알겠습니다. 더 망가트려 드리죠.[웃음] 한결: 삐-----#%^353^#&&#$#%315삐----- (욕이므로 방음처리) 시아: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하핫, 현한결씨 살벌하십니다. 다음 질문입니다. 우리 은결군은 은별양을 처음 보고 엄마라고 불렀잖아요? 한결씨는 한얼씨와 닮아서 아빠라고 부르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은별양은 아무 연관이 없지 않나요? 은결: @_@;;;[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한결: 바보 아냐? 그렇게 어렵게 말하니까 애가 이해를 못 하잖아. 은결아, 엄마를 왜 엄마라고 불러? 은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예쁘잖아요! 천사 같아요! 은결이는 엄마가 세상에서 최고로 좋아요! 시아: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 그게 답니까? 은결: 네! 아줌마보다 백 배 천 배 예뻐요! 시아: 헉...-_-IIIIIII(우득)...아.. 줌마....[이성이 끊어지려는 것을 간신히 다잡음] 현: (비웃음을 지으며) 키킥^-^ 골 때리는 부자(父子)네. 시아: (표정 관리하고 현을 바라보며) 아참, 현씨^ ^ 은하씨와 전화 연결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현: 아, 별로 고생이라 할 것은 없는데? 은하형이 순순히 응해줬어. 시아: (전화기에 대고) 은하씨, 안녕하세요. 은하: '예. 안녕하세요.' 시아: 처음 등장 하시는 건가요? 은하: '그렇군요. 뭐, 이렇게 등장하다니 뜻밖입니다.' 시아: (웃음을 지으며) 해외에서 전화하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전화 삯은 드릴 수 없군요^ ^ 은하: '쿡. 예상하고 이미 시아님 출연료에서 삭감했습니다.' 시아: (엄청 놀란듯 눈이 커지며) 네????ㅇ_ㅇ!!!!!!!!!!!! 한결: (고소하다는 듯 조소를 지으며) 샘통이다.-_- 킥. 형 1년 만인데 역시 지존이네요. 은하: '한결아, 내가 말버릇 고치라고 했지. (헛기침하며) 시아님 농담입니다. 흠흠, 진행하시죠.' 시아: (울쌍인 얼굴로) 헉, 벌써부터 사람을 놀리시다니.. 우선 현씨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은하씨와는 잘 아시는 사이인가 봐요? 현: 뭐, 그럭저럭. 시아: 대답이 애매하네요. 모두들 두 분이 동일인물 아니냐고 하던데.. 은하: '뭐, 현이랑 제가 똑같이 생겼긴 하죠. 게다가 더욱이 닮아 보이는 이유가...' 현: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형. 그 말은 아직 하지마! 은하: '아.. 그래..' 시아: 뭡니까?! 궁금합니다! 뭘 숨기시는 겁니까?! 혹시 현씨.. 성형수술..... 현: (차가운 조소를 지으며) 죽고 싶으면 더 말해라^-^? 시아: (식은땀을 흘리며) 하하; 입 다물고 있겠나이다..-_-; 그럼 다음으로 은하씨,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은하: '뭐, 사회에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만..' 시아: 그 사회에 도움되는 일이란 구체적으로..? 은하: '저도 숨기고 싶은 게 있습니다.' 시아: 아..네..(땀) 저기, 은하씨 은별양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많이 아끼던 동생인데.. 은하: '..........많이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어요.. 이 상태로는 은별이 앞에 나타날 수가 없네요..' 한결: (전화기에 대고) 은별인 내가 지킬테니까 걱정마요. 은하형. 현: (빈정대며) 지킬 수나 있으려나? 한결: (현을 노려보며) 너만 안 건들면 돼-_-^ 시아: 하하, 그만들 하시죠. 건드는지 안 건드는지는 제가 정합니다. 한결, 현: (동시에) 씨발, 사회자 죽는다???!!!!!!! 시아: 찌찌뽕~-_-)/ 순간, 일시에 분위기 조용해진다. 시아: 죄..죄송합니다. 마저 진행하겠습니다.-_-; (태하 쪽을 바라보며) 태하씨, 은별양에게 요새 흑심이 있어 보이시던데.. 진심인가요? 태하: (한결의 째림을 한껏 받으며) 은하형은 내게 있어서 특별한 사람이야. 그리고 한결이도 마찬가지지. 난 친구의 여자를 탐할 만큼 나쁜 놈은 아니야-_-^ 채은별은..... 은하형과 닮아서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뿐이야. 한결: (미심쩍게 태하를 노려본다) -_-+ 현: 쯧, 현한결. 보기 흉하다. 친구한테도 질투냐? 한결: (현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살짝 치켜들며) 꺼져라. 시아: 하하; 두 분 왜 그러십니까;;? (진정시키며) 자, 현씨 질문입니다. 제 3대 반란을 꿈꾸는 포커스라고 하시던데, 은하씨는 스파이이면서 어떤 면에서 보면 당신에겐 배신자가 아닌가요? 현: (약간 고심하며) ...아직 정확한 내용이 안 나왔으니, 대충 답변하지. 난 아직까지도 은하형을 존경한다. 그리고, 저 짝퉁 녀석이 포커스가 된 건, 은하형의 사사로운 동정 때문이었다고 생각해. 한결: (현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너 지금 짝퉁이라고 그랬냐-_-^? 은하: '그만해라. 한결아. 현아. 조금 있으면 모든게 밝혀질거야.' 한결: (전화기에 대고) 형! 도대체 이 재수없는 자식은 누구예요?! 현: (조소를 지으며) 재수 없기는 네가 더 재수없어. 현한결.^-^ 시아: 하하.. 그만 그만, 자.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한결씨, 도대체 무슨 알바를 뛰었길래, 천문대를 살만큼의 돈이 나온 것입니까? 한결: (움찔거리며) 씹...-_-^ 그 일을 생각하면... 알바라면 내가 말을 안 한다. 개뿔이.. 일주일동안 내내 새벽까지 그 화장발 이모가 날 징그럽게 부려먹었다. 됐냐? 시아: 하하.. 그..그런 비밀이..-_-; 그런데 진짜 이모의 젊음의 비결은..? 태하: 화장발이야.-_- 시아: (땀) 하하; 화장발이라도 그렇지.. 부럽군요.. 크흑.. 그럼 오늘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 자리에 나와주신 현은결군과 현한결씨, 그리고 민태하씨, 선우 현씨. 특별 게스트인 채은하씨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은결: (졸린 듯 눈을 비비며) 아빠, 이제 집에 가는 거예요? 한결: 어. 빨리 끝내라.-_-^ 은하: '시아님 수고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과 빠른 시일내에 만남을 기약했으면 좋겠군요.' 시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걱정마세요. 은하씨..^ ^; 곧 등장시켜 드리겠나이다. 현: 은하형, 사회자 말 믿지 마! 태하: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한결: 맞아.-_- 은결: (얼떨결에) 맞아요! 시아: 헉!!!! 너무 하시어요~ㅠㅁㅠ 다들 시아가 괴롭혀 줄꺼야~ 모두: (다 함께) 그 전에 다굴시켜 주마. 그 날, 시아는 반죽음이 되었다는 이야기가.....[탕] -The end- 댓글 20 개 이 글을...(0) 즐ㅋ 어머어머 > ＿< * 재밋으심 > ＿< 은하아자씨 카리쓰마 짱 .... ㅇ ＿ㅠㅠㅠㅠ ,,,,,, 전 ,빨리 공부를하러가야해서 ; 엄마의 째림이 상당함 ; 안녕히 ,,,,,, [탕] 04.04.17 20:31 사랑합니다 하하!역시 시아님이셔*>__<* 04.04.17 20:46 사랑합니다 군데..은하 언제 나와여?? 04.04.17 20:46 suim 진짜 웃겨요ㅋㅋ 아, 배야ㅋㅋㅋ 시아님 최고!!!乃 04.04.17 22:36 ㅅL 랑한 남자 역시 시아님은. 흠.. 짱!!!!!!! 04.04.18 00:11 ㅇ_ㅇㅋ 재미있어요..ㅋㅋ 은별이를 왜 등장 시키지 않으셧나요..ㅠ0ㅠ 04.04.18 14:23 ㅈlㄷH여l픈녕a 재밌으심 >ㅁ< 04.04.18 14:36 테네시아、 풋...ㅋㅋ잼있어요...>ㅁ<푸하핫... 04.04.18 16:48 ㅅㄴㅌ6ㅅㄴㄹ6 너무 재밌어요..-_-ㅋ 그런데 왜 은별이랑 사랑이랑 아리는..? (혹시.. 왕따..-_-? {퍽!} (＃_-)죄송... ) 04.04.18 20:55 ㅅL 랑한 남자 완벽해여 ㅋㅋ 04.04.18 22:04 +메시아+ 은별이와 사랑이 아리, 그리고 유빈이는 다음 기회에...[다음 언제? ( . .)(외면)] 04.04.19 08:34 불량학생-_ -a 시아님 -_-ㅋㅋ 너무 귀여우신.. 시아님 소설 진짜 잘지으신다~~아 ㅋㅋ 04.08.07 14:41 은하수 와~재미있어요~^0^ 은하 넘 멋져~~/// 05.06.26 11:04 사랑이란.... 짱이당~~ 05.06.26 22:45 봉선화s 은결이의 비중이 적었어 >_<* 하지만 에필엔 은결이가 얘기를 끌어나간다는 >_< .. 은별이도 나왔음 좋았을꺼라고 생각해요 ㅇ_ㅠ 아무쪼록 재밌었답니다 ;; 어머니들의 째림을 당해내 시아님의 소설을 당당히 읽어보아요 ;; 05.07.10 22:12 ΜΙζκψ♡ ㅜ_ㅜ..이거 얼마나 많이 본건데요오.. 3번넘게 봤답니다요오.. 05.07.27 18:14 포Llㅇ_ㅇv 시아님 에필로그도 정말 재미있어요 ~!! 시아님 화팅~!!!! 05.09.21 21:15 사랑해q 엄머 엄머<<< 헤헤, 너무 귀여워요. 진짜, 재미있게 봤습니다요< 06.01.03 13:33 미나♡ 진짜 잼잇어요 06.07.08 16:00 래스아 베리 굿!!!!乃 07.01.01 20:19 이전 1 다음 최신목록 목록 윗글 아랫글 '【 메시아완결 】───' 게시판의 다른 글더보기 제목 닉네임 날짜 [번외편♡→] [특집] 그들과의 인터뷰~♬ +메시아+ 05.07.26 [완결편♡→]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72) ※ [에필로그(10)]' +메시아+ 05.07.23 [※육아일기※]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171) ※ [에필로그(9)]' +메시아+ 05.07.23 카페에서 공개한 게시글입니다.'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에필로그'키워드로 검색한 게시글 더보기 서비스 약관/정책권리침해신고카페 신고이용약관카페 고객센터검색비공개 요청 Copyright (c) Daum Communications Corp. All rights reserved. 결말이 마음에 안 드실수도 있지만 제가 생각했던 결말은 이것입니다. 해피와 새드의 결합이죠. 웃음을 드리면서도 눈물을 드리는^^ 태하는 제가 아끼던 캐릭터 중 하나인데 가슴이 아프네요.. 1년 반이란 긴 세월을 쓴 육아일기를 이렇게 완결내니 기분이 묘하군요. 육아일기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요새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부모에게 버려지는 아이. 그리고 그런 아이를 키우며 같이 성장해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철부지 아이들이 자신만의 정의를 찾아가면서 보여주는 사랑과 희생, 어머니와 아버지의 끊임없는 사랑도요. 친동생을 사랑하는 은하의 금단의 사랑, 맹목적인 사랑에 의해 현이의 집착하는 사랑,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하의 그림자 사랑까지… 사회에서도 아마 일어나는 사랑들이겠죠^^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제 소설에서도 마땅한 해결책은 없지만^^; 자신의 의지로 극복해 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잘 표현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자.. 길고 길었던 육아일기의 연재는 여기서 끝을 맺습니다. ※에필로그와 번외는 팬카페에만 쓸 예정입니다... 그 동안 함께 육아일기를 사랑해주시며 울고 웃었던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사랑해요! 여러분!!! 소설제목 :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작가명 : +메시아+ E-mail : darksorcery@hanmail.net 연재장소 : 새싹소설① -10대 총편수 : 총 162편 완결 장르 : 연애소설 -------- 출처 : 인터넷소설닷컴 (http://cafe.daum.net/youllsosul) 팬까페 : http://cafe.daum.net/msacafe 댓글 1 개 이 글을...(0) 여니 쨈있게 잘 봤습니다^^ 06.05.11 12:50 이전 1 다음 최신목록 목록 윗글 아랫글 ' [♡]＇인기소설방＇　♬' 게시판의 다른 글더보기 제목 닉네임 날짜 [막가파깡녀] [남장소설]Mission ( 11 ~ 20 )' 쪼꼬`ⓢ쩜빵 05.07.05 [막가파깡녀] [남장소설]Mission ( 01 ~ 10 )' 쪼꼬`ⓢ쩜빵 05.07.05 [+메시아+]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161 ~　完 > 쪼꼬`ⓢ쩜빵 05.07.05 [+메시아+]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141 ~ 160 >' 쪼꼬`ⓢ쩜빵 05.07.05 [+메시아+] ※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 ※ < 121 ~ 140 >' 쪼꼬`ⓢ쩜빵 05.07.05 카페에서 공개한 게시글입니다.'메시아 서열 1위 포커스의 육아일기'키워드로 검색한 게시글 더보기 서비스 약관/정책권리침해신고카페 신고이용약관카페 고객센터검색비공개 요청 Copyright (c) Daum Communications Co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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